다시, 올리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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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페이지를 읽으며 올리브가 타자기로 친 "종이를 빼내 쌓인 기억 위에 조심스럽게 올렸다"고 하는 문장이 내가 책을 읽는 동안 머릿 속을 채우던 수 많은 삶의 기억들을 한마디로 요약해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떤 책은 읽으면서 너무도 많은 기억들을 떠올리게 만드는데  <다시, 올리브>가 나에게는 그랬다.  너무 많은 기억들이 짧은 며칠 사이에 파노라마처럼 떠올라서 모든 기억을 갈무리해서 글로 옮기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하지만 뭐 어떤가 모든 기억을, 그리고 드는 생각을 모두 말로 표현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 모든 생각을 말로 표현하고 싶다가 이내 그 모든 것을 조용히 마음 속으로 갈무리해 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다.  한편으론 지금 드는 생각들을 조금만 남겨 두는 것도 좋겠단 생각이 드는 거다. 올리브가 타자기에 자신의 기억들 쳐서 쌓아두었던 것처럼.

 

  이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이 너무 많았다.  기억들이 밀려와 머리로는 기억을 떠올리느라 바쁘고 눈으로는 책을 읽고 있는 나를 순간순간 발견한다.

  올리브는 '헨리'와 '잭'이라는 두 명의 남편이 있었지만 먼저 보내고 홀로 남았는데, 나도 생각해보니 내가 남편보다 더 오래 살거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고 있었던 거 같다. 내가 홀로 살아간다면 남편에 대해 어떤 기억들을 떠올리며 살아가게 될지, 아니면 욕을 하면서 원망을 할지, 홀가분해 할지, 그도 아니면 깊은 슬픔의 감정을 가지게 될지 전혀 알 수가 없는 거다. 배우자의 죽음이 인생에서 겪는 가장 큰 스트레스 중에 하나라고 하던데 난 어떨지 알 수 없다는 것이 사실은 조금 충격?이기도 했다.  어떤 이별이 기다리고 있을런지 알 수 없는 건 사실이니까! 



  올리브는 혼자가 되면서 헨리와 잭을 한없이 그리워하는 거 같았다.  먼저 가버린 남편들을 원망하기도 하고 그리워했다 미워했다 그런 감정들이 교차하고 있지만 잘 견뎌 내고 있었다.  사람이 나이를 먹었다고 다 그런건 아니란 걸 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내가 느끼기에 올리브는 점점 나이가 들수록 성숙한 하나의 사람이 되어 가는 것 같아서 그게 너무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처음엔 아니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지 - 툴툴거리면서 솔직한 것이 좋은건 줄 아는거야? 싶기도 했고 - 하고 생각할 정도로 사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캐릭터였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어갈 수록 점점 괜찮은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 중인거 같다.  주위 사람들을 잘 살필 줄 알고 딱 알맞게 위로를 전하고 별 말 아닌데 멋진 말도 하면서 아주 좋은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  남편들에 대한 원망과 미움으로 생을 마감하지 않아서, 그리고 다가오는 죽음이 너무너무 무서울텐데도 거기에 굴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채워나가는 모습에서 나의 시간들도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그렇다해도 올리브가 과거로 돌아간다고 한들 지금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될지 알 수 없고, 지금과는 다른 선택을 할 것이라고 자신할 수도 없다.  올리브의 삶에서 내가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주로 아들 크리스토퍼와의 관계이다.  올리브가 생각하기에 아들과  사이가 멀어지기 시작한 것이 첫 결혼에서 며느리와 사이가 좋지 않아 결국 이혼을 하게 되면서부터인거 같다고 했는데,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그 사람에 대해 싫은 감정이 어떻게 감춰질 수 있을까!  내가 올리브라도 그건 할 수 없을 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올리브라는 여자를 좋아할 수 없을지라도 좀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참 다행스러웠던건 헨리도 그렇고 잭도 그렇고 그 두 남편이 정말 나쁜 남편들이 아니어서(사실 헨리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지!), 정말 나쁜 아버지가 아니어서 얼마나 감사하던지...  딸에게 아버지는 항상 비열했다는 말을 듣는 아버지이자 남편(로저 라킨, '도움' 에서 수잰의 말), 딸을 범하는 아버지도 있었고, 무능력하고 폭력적인 남편들, 남자들을 어찌할 수 없어 고통받는 아내와 자녀들의 다양한 삶의 형태들이 이 한 권의 책 속에 어찌나 빈번히 등장하던지 . . . 이런 이야기들을 보면 어쩔 수 없이 인생은 너무 슬프고 가슴이 미어질 거 같은데 하지만 이 상처받은 사람들의 곁에 올리버! 우리의 올리버가 잠시 그 곁에 머물러 무심한 듯 따뜻한 위로를 건넬 때 한없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 또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그래서 올리버의 고향 메인 주의 크로스비와 셜리폴스가 정말 실재하는 도시이고 장소인 듯 미국 지도를 찾아보고 싶은 충동을 참으로 여러번 느꼈다.   

 



  오늘도 남편은 다락방 올라가서 열심히 색소폰을 연습하고 있다. 밴드 활동도 꾼준하고. 주 중과 주말 동호회 가서 테니스도 열심히 치면서 동네 사람들도 잘 사귀고 있는 거 같다. 이 곳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남편이 말하길 아파트를 버리고 전원주택 이사 와서 좋은 점 중 하나가 악기를 맘껏 불어도 된다는 거... 퇴근해서 얼른 집에 오고 싶단 생각이 든다는 거, 집에 오면 작지만 작은 텃밭을 일굴 생각에 신이 난다는 거, 갓 따온 채소들을 요리해서? 먹는 즐거움은 빼놓을 수 없는 많은 장점들 중에 하나라는 거. 음. . .  겨울은 추워서 좀 고생이긴 해도 어떻게든 추위에 적응하려고 이 방법 저 방법 시도하며 아직은 노력 중이다. 하지만 그 시간을 제하고 나도 남는 시간이 너무 많다는 것이 문제다.  그 남는 시간에 넷플릭스 시청은 - 주로 액션, 스릴러를 본다. 알아서 계속 추천해준다. 근데 나중에 보면 본건데 아니라고 우기며 또 본다 ㅎㅎ 오늘 본 주지훈 주연의 암수살인 안봤다고 박박 우긴다 - 남편의 새로운 취미 생활 중 하나로 단단히 자리를 잡았다. 



  물론 나도 역시 이미 예상했던 바와 같이 아주 만족하며 하루하루를 재미나게 보내고 있다. 아이들이 떠나간 집은 너무도 조용해서 안하려고 들면 정말 하루 종일  남편 퇴근 전까지 아무것도 안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 한편으론 너무 감사하다가도 이렇게 언제까지 살아야하는 거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어버리는 날은  남편과 둘이 살아갈 시간들이 갑자기 너무 무서워지는 거다. 바쁘게 살 땐 시간아 제발 빨리빨리 가라 하던 생각들이 시간이 많아지고 몸도 편해지니 이젠 우리 둘 앞에 남겨진 시간이 너무 무섭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현재로선 하루하루의 시간들이 사실 너무 소중하게 느껴진다.  <다시, 올리브> 읽으면서 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요즘 우리의 하루하루는 돌아온 봄을 한껏 즐기는 것으로 가득하다. 손바닥 정원에 심을 화살나무도 몇 그루 들이고 블루베리 나무도 한 주 더 들이고. 어수선하던 정원에 파쇄석 깔고 벽돌로 둘러 놓아서 단정하게 만들기도 하고, 부엌 옆 데크에 흙 덜 떨어지라고 텃밭에 디딤돌도 깔아서 텃밭도 아주 깔끔해졌다.  곧 올라올 새싹과 꽃봉오리를 기다리고 있다.  하나하나 내 손으로 가꿔갈 수 있는 지금의 우리 집이 너무 사랑스럽다.  올리브가 헨리와 살았던 집을 부수지 않고 그냥 가지고 있었으면 좋았겠단 생각이 그래서 더 드는 거다.  아까워라!!!  



  마지막 장인 '친구'에서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또 다른 소설 <에이미와 이저벨>의 이저벨이 올리브가 살고 있는 메이플 트리 공동주택에 입주를 하였다. 난 이 책은 읽지 않았지만 흠... 이름을 보니 그럴 거 같더라니... 두 사람이 친구가 되어서 서로 도우며 나누는 교감은 가슴 뭉클하게 하는 감동을 주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은 '죽음'이라는 이 두려운 현실에서 누구도 비켜갈 수 없다는 공포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으며 특히 메이플 트리 공동주택은 노인들만이 거주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빈번한 죽음을 경험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올리버와 이저벨이 인생의 거의 끝에 이르러 보여주는 진한 우정의 시간들이 더 간절하고 아름답게 다가온다.  


  새로운 곳으로 이사 온 지 이제 1년 4개월.  나도 이곳에서 조심스럽게 새로운 인간관계를 쌓으려 노력하고 있다. 올리브가 이저벨과 기꺼이 친구가 되려고 애섰듯이 나도 선물 같은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을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궁금하면... 나도 올리브처럼 더 성숙하고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죽음의 공포가 나를 붙잡으러 오는 그 시간까지 노력해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보기 싫다고 투덜거리면서 남편과 <암수살인>을 보고 낮에 불려서 삶아 두었던 곤드레 들기름에 묻혀 곤드레밥 해서 채끝살 구워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평화로운 저녁 시간이었다.  올리버가 타자기로 자신의 기억을 글로 한 자, 한 자 토닥토닥 기록했듯이 - 이것도 기록으로 남겨야 해. 이제 올리브가 너무 좋아졌다는 것^^* -나도 오늘의 일을 다소 장황하지만 글로 남겨본다.  오늘이 .... 훗날 돌아보면 간절히 기억하고 싶지만 기억나지 않을 많은 날들 중 하루일 뿐일지 모른다. 하지만 글로 이렇게 남겨 놓았으니 잊혀진다 해도 나의 기억 속에 좀 더 오래 머물러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기억 위에 기억을 소중하고 조심스럽게 쌓아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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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3-28 09: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휴 리뷰가 너무 좋은데 그건 좋은 책을 읽었기 때문일까요.
조용하고 가만하고 여유로운 일상을 보내시는 것 같아서 읽는 동안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저는 아직 올리브 만큼의 나이를 먹진 않았지만 나이를 먹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에 올리브에게 닥친 일이 다 제 일이 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했어요. 공동주택에서 이저벨과 서로 괜찮은지 수시로 들여다보는 일은 저에게도 앞으로 필요한 일인것 같았고요. 올리브는 <올리브 키터리지>에서 다소 괴팍하고 까탈스러운 것 같았는데 <다시, 올리브>에서 좀 더 유연하고 부드러워진 것 같더라고요. 그것은 세월과 나이가 그리고 그동안 쌓인 경험들이 그렇게 만들어준 것이겠죠.

좋은 책을 읽으면 기분이 좋은데 좋은 책을 읽고 쓴 리뷰를 읽는 것도 참 좋으네요.
:)

은하수 2023-03-28 09:39   좋아요 2 | URL
좋은 책을 읽으니 정말 온 인생을 다 돌아보게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네요. 다락방님께서도 그렇게 느끼셨군요 올리브의 변화하는 모습도 좋았고.. 나이 먹었다고 누구나 저리 늙어가는건 아니란거 너무 잘 알잖아요. 아집만 느는 사람도 많단거.. 근데 어떻게 저렇게 나이들수 있는건지 좋아할 수밖에 없어요.
친구로 만난 이저벨은 저에게 시사하는바가 컸어요
서로의 돌봄을 나누고 일상을 함께하는 존재가 얼마나 감사한지... 저도 간절히 그런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앞으로 닥칠 시간들이 무섭지만은 않을거 같아요.

좋은 리뷰 읽는 재미에 제가 하루종일 여길 들락날락... 도장을 수십번 찍는다니까요^^
오늘도 즐건 하루 되시기 바랍니당~~

책읽는나무 2023-03-28 21: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올리브와 똑같은 삶은 아녀도 은하수님의 지금의 전원주택에서의 삶이 제가 가장 바라는 삶입니다^^
나이가 들면 젊은 시절 바랐던 각자의 삶에서 얼마나 그 바람이 실현되어 있을까요?
올리브 키터리지를 읽으면 젊은 시절 내가 바랐던 노년의 모습이 아닌 늙은 모습이 되어 있더라도 그저 삶을 관조하는 너그러운 할머니가 되어 있음 좋겠다! 그리고 키터리지처럼 잘 걷는 노인이 되어 있음 좋겠다! 늘 그 생각을 했네요.
암튼 은하수님의 생활도 응원합니다^^
참고로 저도 암수살인을 봤어요ㅋㅋㅋ

은하수 2023-03-28 22:49   좋아요 1 | URL
많은 분들이 전원주택에서의 삶을 꿈꾸시더라구요. 저도 40대 중반까지도 전원에서의 삶은 생각도 안했었거든요^^ 전 지금의 제 생활이 만족스러운데 지금처럼 건강한 정신과 몸으로 살아갈수 있다면 더 바랄게 있을까 싶기도 해요. 많은 것을 욕심내지 않고 책과 함께 천천히 아름답게 늙어가고 싶어요. 올리브처럼 점점 성숙해가는 삶이면 더없이 좋겠지요~~
나무님 바람도 응원합니다^^

전 개인적으로 스릴러 별로 안좋아해서 보다가 잘 피하거든요 그래서 세세한 부분 기억을 못하니까 줄거리를 줄줄 말을 못하겠는데 암튼 마지막에 어찌어찌 되는거 아니냐구 했더니 자긴 본적이 없다는 거예요 어이없어서리..ㅠ 혼자선 절대 못보는데 난 대체 어떤 남자랑 본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