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유학과 서양과학의 만남 - 조선후기 서학의 수용과 북학론의 형성
고즈윈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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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에 대한 책들을 읽으면서, 과연 이 시대가 그처럼 화려한 부흥의 시대였던가 의심하기 시작한 게 꽤 여러 날 되었다. 하지만 이런 의심을 해갈할 만한 책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대부분의 책들이 박지원, 홍대용, 정약용 등 당대 최고의 지성에 대해 이론의 여지 없이 실사구시와 이용후생에 전력을 다한 근대적 실학자라고 정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빗겨나는 경우라 해도, 박지원을 근대가 아닌 탈근대의 지성으로 보는 정도이니 나의 의심을 궁구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정조와 그 주위의 지성들이 중세의 유학을 벗어나 근대적 실학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해도, 같은 시대 지방과 집안에서는 철저한 유교 가부장적 질서가 하나의 체제로 완성되고 사람들의 의식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상층과 하층, 서울과 지방, 문화와 체제 사이에 언밸런스가 있었달까. 문제는 이 시기를 근대의 이행기로 이해'해야 한다'는 단계론적 역사 이해가 작동하는 한, 이런 언밸런스를 설명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탈근대 담론조차 근대의 자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그 반향 혹은 비틀기에 머무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근대냐 중세냐, 탈근대냐 라는 담론의 자장에서 벗어나 그 시대에 눈을 갖다대는 투명한 역사학은 불가능한 걸까. 박성순의 이 책은 그런 의심과 불신에 대한 하나의 희망이었다.

박성순은 매우 조심스럽게 기왕의 실학 연구을 뒤집고 있다. 이 책은 말하자면, 뒤집기를 위한 샅바싸움 같다. 새롭게 보기 위해서 새로운 판을 짜야 한다. 문제틀 자체를 바꾸지 않고는 오랜 세월 이런저런 이데올로기로 물든 실학사를 다시 보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좀더 강하게 밀고 나갔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은 남지만, 박성순의 시도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북학론이건 정약용이건 유학의 자장을 벗어난 건 아니라는 건 지금 시기에 반드시 짚어져야 할 대목이다. 정약용과 정조를 유교 이상주의자로 본다고 해서 한국사가 정체된 역사로 퇴보하는 건 아니다. 최한기의 기학을 근대의 출발로 보지 않는다고 해서 한국사를 움직이는 발전의 동력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한국사만의 독특한 역사흐름을 아는 것이다. 근대화란 기본적으로 서구식 자본주의화를 의미한다. 그 길을 밟았느냐 아니냐로 역사의 진보냐 후퇴냐를 말하는 건 우습다. 박성순의 연구가 근대-진보의 역사관 자체에 대한 질문을 포함해 조선 후기에 대한 새로운 역사쓰기를 실현하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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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뉴스
김중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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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함에 대한 강박이 느껴지는 소설들이 있다. 어지간해선 놀랍지도 새롭지도 않은 세상에 새로운 이야기를 내놓아야 한다는 강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소설들 때문인가, 최근엔 차라리 지극히 정통적인 문법의 소설들이 더 환영을 받는다. 이야기의 힘이 모든 걸 압도할 때도 있고, 스타일이 다른 결함에 눈감게 할 때도 있다. 결국 문제는 자신이 가장 잘하는 방식으로 자신이 가장 하고픈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그 이야기가 한 시대를 사는 사람들과 공감을 이룰 때 소설가도 독자도 즐거움을 맛볼 터이다. 김중혁의 [펭귄뉴스]는 그런 즐거움을 맛보게 하는 드문 소설이다. '무용지물 박물관'부터 '펭귄뉴스'에 이르기까지 여기 실린 단,중편들은 모두 독특한 소재와 발상으로 처음부터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문제는 그 독특함이 독특함에 대한 추구로 끝나느냐,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하나의 도약대로 기능하느냐인데, 김중혁은 아주 탄력있고 아름다운 도약대를 가장 정확한 위치에 설치하여 눈부신 도약을 보여준다. 가끔 주제를 추구하는 힘이 딸린다고 느껴지는 지점들이 없지 않지만 (그래서 별 하나를 뺐다), 능란한 솜씨와 소설가로서의 책임을 다하려는 진지함이 읽는 이를 즐겁고 행복하게 한다. 부디 다음 작품에선 그가 더 힘있게 자신의 비트로 세상을 쿵쿵 때려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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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서울시에서 좋은 영화제라는 걸 한다. 벌써 12회째라는데 나는 올해 처음 알았다. 집 옆 구립도서관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영화를 보여주기에 두어 번 갔다. 러시아 영화 '리턴'과 프랑스 영화 '차일드'를 봤는데, 후자는 처음부터 기대도 없었고 역시나 했지만 전자는 꽤 오래 울림이 남았다. 그래서 영화제 사이트에 들어가 꼼꼼히 체크를 했다, 볼 만한 영화가 또 없나. 그렇게 해서 건진 게 '댈러웨이 부인'. 달력에 표시까지 해두었다가 정독도서관에 갔다. 낮 2시인데 사람이 꽤 많다. 스무 명쯤. 내 앞의 두 아저씨, 졸다가 벌떡 일어서길 몇 번 하더니 한 사람은 결국 삼십 분만에 나가고 또 한 사람은 온몸을 비틀며 어쩔 줄 모른다. 그래도 웬일인지 나가진 않는다.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은 오래전 세 쪽쯤 읽다가 포기했던 소설이다. 대신 그의 에세이 '자기만의 방'과 '3기니'는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버지니아 울프 하면 왠지 우울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떠올리지만 이 에세이들에선 전혀 그런 느낌을 읽을 수 없었다. 재기발랄하고 신랄하면서도 섬세한 지성이 상쾌한 느낌을 주었었다. 하지만 소설은 역시 또 달라서 읽기가 편치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안토니아스 라인'을 만든 마를렌 고리스 감독의 '댈러웨이 부인'은 보통 사람이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잘 발라낸 다이제스트판 같다. 존재 자체가 영화인 바네사 레드그레이브가 나이든 댈러웨이 부인을, 나타샤 맥켈혼이 젊은 댈러웨이 부인을 연기하는데, 연기도 모습도 볼 만하다.

전쟁 후유증을 앓는 젊은이의 자살 기도 소식을 듣고 지금의 삶을 열심히 살아야지 라고 다짐하는 댈러웨이 부인, 그 모습에서 끊임없이 허무로 경도되는 자신을 다잡으려는 버지니아 울프의 안간힘을 떠올리게 된다. 삶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갈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정말 이런 마음으로 긴 인생을 책임질 수 있을까 두렵기도 하다. 마를렌 감독의 댈러웨이 부인이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과 얼마나 근사한지, 이번 참에 소설을 읽기로 한다. 그런데 열린책들에서 나온 저 책의 표지는 어쩐지 이물스럽다. 진짜 소설이 저런 느낌일까, 믿을 수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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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4 1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스머프 2007-09-14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어떤 판을 선택해야 하나 걱정이었거든요. 꼭 솔 출판사 걸로 읽겠습니다.^^
 
바너비 스토리
앤 타일러 지음, 장영희 옮김 / 프레스21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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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기대없이 펼친 책. 그러나 손에서 놓을 수 없다. 이제 막 서른이 된 한 청년의 성장 스토리이면서 노년의 모습을 통해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재미있고, 가슴이 따뜻해지고, 마음이 착해지는 소설이고, 이야기의 힘을 믿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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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이, 대디, 플라이 더 좀비스 시리즈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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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뭔가 신나는 일 좀 없을까, 하다가 역시 늘 똑같은 일상, 마침 도서관 서가에 꽂힌 이 책을 보고 혹시 즐거워질지도 몰라 하고 빌렸다. 그랬는데 정말 즐거웠다. 단숨에 읽히는 책인데, 그 사이에도 자꾸만 몸이 근질거리며 밖으로 나가 달리고 싶어진다. 단순하고 상쾌한 소설이다. 그리고 열심히 몸을 단련하고 싶게 만드는 건강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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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9-08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 좀비스 시리즈군요.^^ 정말 신나는 소설이었지요. 막~~ 달리고픈 마음이 생기게 만드는 책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표지를 보니 그때의 신나는 기분과 상쾌함이 되살아 나는 군요.

스머프 2007-09-12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이 참에 이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려 해요. 이렇게 신났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