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의 세계로 한 발...

소송 ㅣ 카프카 전집 3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주동 옮김 / 솔출판사 / 2005년 12월

드디어 [소송]을 읽다. 읽으면서 의아해하다. 이렇게 잘 읽히는 책을 왜 그전엔 읽다가 말았을까? 어쩌면 카프카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들, 그의 작품 뒤에 붙은 난해한 해설들, 어디선가 주워들은 그 말들에 지레 겁먹었던 아닐까. 물론 이렇게 말한다 해서 [소송]이 이해하기 쉬웠다던가, 그런 얘기는 아니다. 다만, 생각보다 그의 작품은 잘 읽혔고, 따지고 보면 [변신]도 또 그의 단편들도 읽히기는 잘 읽혔었다. 오히려 잘 읽힌 다음이 문제였다. 그는 무슨 얘길 하려던 걸까, 생각하면서 생각할수록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데 놀라고 골치가 아팠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번엔 즐겁게 생각하기로 했다. 내 식대로 읽는다,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 카프카가 무슨 얘길 하고 싶었든 나는 내 식대로 읽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하자 독서가 재미있어졌다.

요제프 K(카)가 어느날 잠에서 깨어보니 체포당해 있다. 처음에 그는 이유를 모르는 채 자신이 결백하므로 쉽게 무죄가 증명되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소송은 1년간 이어지고 마침내 그는 자신의 죄 혹은 자신의 패배를 자인하고 처형된다, 개처럼. 카를 체포한 법(원)은 아주 보잘것없는 임대주택의 다락방에 있는데, 이것은 법의 편재성을 보여주는 듯하다. 왜냐면 카가 찾아간 화가의 작업실 또한 알고보면 그 건물에 있으며, 소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카와 마주치는 사람들은 뜻밖에도 대부분 법원과 관계되어 있다. 그들은 평범하고 초라한 외양에도 불구하고 법(원)과의 관계를 맺고 있고 카보다 법에 대해, 혹은 소송과정에 대해 더 많은 지식을 자랑하며, 그를 이용해 카를 회유하거나 훈계하거나 비난한다. 체포된 이후 카가 만나는 여자들 역시 이 점에서 -뷔르스트너 양을 제외하고- 다르지 않다. 여자들과의 관계에서 카는 그녀들의 호의를 이용하고 성적 욕구를 채우려 하면서도 동시에 그녀들을 의심하고 그녀들의 성적 방탕을 비난한다. 카와 여자들의 관계는 불안하고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므로 이것은 카가 결국 법 앞에 무릎을 꿇는, 즉 그의 죄의식을 설명하는 한 요인일 수도 있다. 또한 카는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겠다고, 법에 맞서 싸우겠다고 다짐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자신의 무죄 증명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혹은 안한다).

소설이 진행되면서 결국 문제는 카의 유무죄가 아니라 소송에 임하는 태도라는 게 드러난다. 요컨대 카가 법에 대해 충분한 존중과 성의를 보이지 않으며, 자신의 소송에 대해 치욕을 감당할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은 점이 문제다. 법이 요구하는 것은 복종이다. 그러나 카는 법 안에 들어가기를 거부한다. 그는 법 안에 들어가지 못함을 끊임없이 불안해하면서도 법을 받아들이기를 주저하며 결국 처형을 승락한다. 이 점에서 처형은 카에게 내려진 심판이기도 하지만 카가 인정함으로써만 가능한 자살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법이란 무엇일까? 법이 지고의 진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것은 종교의 신일 수도, 제도나 질서, 도덕규범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법이란 금지하는 것이며, 안과 밖을 가르고 판단하는 것이며, 그의 판단이 영원히 진리라고는 아무도 믿지 않는 불안한 존재이므로 더욱 그렇다. 카프카는 자신이 '법'을 이길 수는 없으나 분석하고 조롱하여 상처입힐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가장 명석한 방식으로 그렇게 한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그런 행동 자체가 법을 무너뜨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 자기자신마저 조롱한다. 놀랍게 예리한 지성이 느껴지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