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울시에서 좋은 영화제라는 걸 한다. 벌써 12회째라는데 나는 올해 처음 알았다. 집 옆 구립도서관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영화를 보여주기에 두어 번 갔다. 러시아 영화 '리턴'과 프랑스 영화 '차일드'를 봤는데, 후자는 처음부터 기대도 없었고 역시나 했지만 전자는 꽤 오래 울림이 남았다. 그래서 영화제 사이트에 들어가 꼼꼼히 체크를 했다, 볼 만한 영화가 또 없나. 그렇게 해서 건진 게 '댈러웨이 부인'. 달력에 표시까지 해두었다가 정독도서관에 갔다. 낮 2시인데 사람이 꽤 많다. 스무 명쯤. 내 앞의 두 아저씨, 졸다가 벌떡 일어서길 몇 번 하더니 한 사람은 결국 삼십 분만에 나가고 또 한 사람은 온몸을 비틀며 어쩔 줄 모른다. 그래도 웬일인지 나가진 않는다.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은 오래전 세 쪽쯤 읽다가 포기했던 소설이다. 대신 그의 에세이 '자기만의 방'과 '3기니'는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버지니아 울프 하면 왠지 우울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떠올리지만 이 에세이들에선 전혀 그런 느낌을 읽을 수 없었다. 재기발랄하고 신랄하면서도 섬세한 지성이 상쾌한 느낌을 주었었다. 하지만 소설은 역시 또 달라서 읽기가 편치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안토니아스 라인'을 만든 마를렌 고리스 감독의 '댈러웨이 부인'은 보통 사람이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잘 발라낸 다이제스트판 같다. 존재 자체가 영화인 바네사 레드그레이브가 나이든 댈러웨이 부인을, 나타샤 맥켈혼이 젊은 댈러웨이 부인을 연기하는데, 연기도 모습도 볼 만하다.

전쟁 후유증을 앓는 젊은이의 자살 기도 소식을 듣고 지금의 삶을 열심히 살아야지 라고 다짐하는 댈러웨이 부인, 그 모습에서 끊임없이 허무로 경도되는 자신을 다잡으려는 버지니아 울프의 안간힘을 떠올리게 된다. 삶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갈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정말 이런 마음으로 긴 인생을 책임질 수 있을까 두렵기도 하다. 마를렌 감독의 댈러웨이 부인이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과 얼마나 근사한지, 이번 참에 소설을 읽기로 한다. 그런데 열린책들에서 나온 저 책의 표지는 어쩐지 이물스럽다. 진짜 소설이 저런 느낌일까, 믿을 수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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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4 1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스머프 2007-09-14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어떤 판을 선택해야 하나 걱정이었거든요. 꼭 솔 출판사 걸로 읽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