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었다. 아이리스 머독의 소설 <잘려진 머리>를 읽은 것도, 그 며칠 후 영화 <아이리스>를 본 것도. 지금은 문 닫은 코아아트홀에서 <아이리스>를 봤는데, 그게 소설가 아이리스 머독의 이야기인 줄도 몰랐다. 그냥 쥬디 덴치와 케이트 윈슬렛이라는, 언뜻 영 안 어울려 보이지만 은근히 호기심을 자극하는 두 배우의 궁합이 궁금해서 극장을 찾은 터였다. 영화를 보면서 비로소, 영화의 '아이리스'가 그 며칠 전 나를 놀랍게 했던 소설가 '아이리스'임을 알게 되었고, 그녀가 알츠하이머라는 어쩌면 그녀에게 가장 끔찍한 병에 시달리다 죽었음을 알게 되었다. 아마 <잘려진 머리>를 읽지 않았더라면 영화를 보는 90분간 그렇게 대성통곡하진 않았으리라. 정말이지 백 장이 넘는 화장지 한 통을 다 쓰고 퉁퉁 부은 눈으로 영화관을 나왔으니까. 사실 아이리스 머독을 모르고 영화를 봐도 눈물이 날 만한 영화다. 허나 그녀의 까다롭고 깊고 웅숭깊은 소설을 한 편이라도 읽고 이 영화를 본다면, 장담컨대 누구라도 나와 같을 것이다. 

아이리스 머독은 철학자였고 소설가였다. 그녀의 소설은 읽기도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어떤 점에선 창작보다 번역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나로선 왠만해선 번역의 잘못을 지적하고 싶지 않지만, 대학출판부에서 나온 <잘려진 머리>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한 번역에 대해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바라건대, 제발 착한 번역자와 출판사가 나서서 이 책의 새 번역판을 내주기를!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독서를 끊임없이 방해하는 번역문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끝까지 읽게 하는 마력이 이 소설에는 있다는 것. 이 소설과 영화에 고무되어 안정효가 번역한 <바다여 바다여>도 읽었는데, 철학과 소설의 경계에 선 아이리스 머독의 매력은 살아 있으나 <잘려진 머리>만큼 재미있진 않았다.

누구보다 언어에 민감했고 자유로운 정신의 즐거움에 탐닉했던 아이리스. 그녀가 언어를 잃고 자유를 놓친 채, 텅 빈 바닷가에서 돌멩이를 늘어놓고 하염없는 눈길을 보낼 때, 운명의 가혹함을 떠올리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그나마 그녀의 지성과 자유를 끝까지 사랑했던 존 베일리가 있었기에, 가혹한 운명도 조금은 살아낼 만한 것이 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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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6-19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독은 젊은 시절, 좋아했던 소설가입니다.
그의 'The Sea, The Sea(바다여 바다여)'를 열심히 읽었지요..
말씀대로 머독은 철학자과 소설가의 중간 영역에 있는 분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