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성평등 1위 아이슬란드의 비밀 스프라카르
엘리자 리드 지음, 지은현 옮김 / 꾸리에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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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내용이라 읽기 시작했는데 번역 문장이 정말 괴롭네요. 번역에 대해 어지간하면 그냥 넘어가는데 이건 교열을 했는지도 의심스럽고...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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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기니 - 기획 29주년 기념 특별 한정판 버지니아 울프 전집 12
버지니아 울프 지음, 오진숙 옮김 / 솔출판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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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인>에 쓴 독후감

조금은 늦은 나이에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내가 모델로 삼은 것은 버지니아 울프였다. 그의 소설을 유달리 좋아해서는 아니었다. 내가 생각한 것은 작가로서의 성실성이었다. 버지니아 울프가 남긴 일기를 읽으며 나는 강박적일 정도로 글쓰기에 헌신하는 작가를 보았다. 심각한 우울증과 전쟁의 공포에 시달리면서도 그는 하루도 쓰지 않고 넘어가는 날이 없는 것 같았다. 나는 그처럼 가차 없는 태도로 글쓰기에 전념하고 싶었다. 타고난 재능은 없지만 그런 성실함이라면 세상에 아주 부끄럽지는 않은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버지니아 울프를 전범으로 삼았을 때 오로지 열심히 쓰는 성실성만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당시 나는 <3기니>에서 보여준 그의 태도를 생각했다. 버지니아 울프 하면 흔히 소설 <댈러웨이 부인>과 에세이 <자기만의 방>을 첫손 꼽지만, 내게 가장 큰 울림을 준 것은 <3기니>였다. <3기니>를 읽고 나는 비로소 그의 성실함이 매일 열심히 쓴다는 사실 이상의 엄정함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3기니>에서 그는 누구도 감히 던지지 못한 어려운 질문을 제기하고 그 난감한 질문에 답하려 고투했기 때문이다. 질문에 대한 대답의 유효성 이전에 스스로 그런 질문을 감당하려 나섰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작가적 성실성은 감탄스러운 것이었다.

 

1925<댈러웨이 부인><보통의 독자>가 성공을 거두면서 버지니아 울프는 스스로 고백했듯 영국에서 자기가 쓰고 싶은 것을 쓸 수 있는 유일한 여자”(1925922일 일기)가 되었다. 그는 이 사실을 자랑으로 삼기보다 책임으로 여겼다.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지 고심하며, 쓰고 싶은 것을 쓰는 데서 나아가 써야 하는 것을 쓰려 애썼다. 1929년 그는 <자기만의 방>을 펴냈고 근 십 년에 걸친 모색 끝에 1938<3기니>를 발표했다.

 

시작은 1931년의 한 강의였다. 울프는 여성 작가로서의 직업적 경험을 얘기해달라는 강연을 의뢰받았고, 이를 계기로 여성의 전문직을 주제로 한 글을 구상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 여성의 경제, 사회생활, 교육, 종교 등에 관해 신문 잡지의 기사들과 연감, 전기, 자서전, 일기, 편지 등 각종 자료를 수집, 스크랩했다. 자료들 중엔 여성에 관한 것뿐 아니라 전쟁과 파시즘에 대한 것도 많았다.

 

당시 유럽은 파시즘이 발흥해 전운이 감돌던 시기였다. 1936년 스페인 내전이 일어났고 공화정을 지키려 참전했던 조카 줄리언 벨이 전사했다. 울프는 “<3기니>를 쓰는 내내 줄리언을 생각했다고 토로했다. 이런 시대적, 개인적 정황을 떠올리면 이 책에서 반전과 평화를 내세우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그가 여성의 경제적 독립과 반전·반파시즘을 연결 지은 것은 단지 정황 때문은 아니었다. 울프에게 여성의 독립은 반전 투쟁을 위한 필수조건이었다.

 

파시즘의 발호로 스페인 내전이 일어나고 이에 맞선 저항 전쟁이 국제적으로 조직되던 시기에, 버지니아 울프는 내부의 파시즘을 비판했고 모든 전쟁에 반대했다. 민주주의와 자유를 옹호하는 이들에게 이것은 배신이고 투항이었다. 그러나 울프는 벗들의 비난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파시즘과 전쟁, 애국주의의 광풍 속에서 그는 <3기니>를 썼고, 왜 모든 차별과 억압에 반대하는 페미니스트가 철저한 반전, 평화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는지 보여주었다.

 

<3기니>는 가상의 남성 변호사를 내세워, ‘전쟁을 막기 위해 여성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변호사는 질문과 함께 대안도 제시하는데, ‘문화와 지적 자유를 수호하는 선언문에 서명하고, 반전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에 가입하여 기부금을 내라는 것이었다. 이에 울프는 전쟁 저지를 위해서 자신은 여성대학을 설립하는 데에 1기니, 여성 취업을 지원하는 단체에 1기니, 마지막으로 변호사가 제안한 반전단체에 (가입은 하지 않고) 1기니를 기부하겠다고 답한다. 그리고 여성 교육과 여성 취업이 왜 반전으로 이어지는지, 독자가 지칠 만큼 상세히 설명한다.

 

무엇보다 그는 전쟁이 그 자체로 남성성의 배출구이며, 특히 파시즘은 가부장제 독재의 극단적 형태임을 분명히 한다. 그에 따르면 공적 세계와 사적 세계는 분리될 수 없고 한쪽의 폭정과 예속은 다른 한쪽의 폭정과 예속이므로, 파시스트 독재에 맞서 저항하는 것과 여성이 가부장적 종속에 반대하는 것은 같은 싸움이다.

나아가 그는 종속된 여성은 자신의 조국에서 제대로 된 지위도 권한도 갖지 못하며, 따라서 그들에게 애국심을 요구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여성은 아웃사이더다. 아웃사이더인 그는 어떤 형태의 국가적 자화자찬에도 동조하지 않을 것이며, 전쟁을 장려하는 박수부대의 일부가 되지도 않을 것이다.” 페미니즘과 평화주의는 분리될 수 없다. 하여 버지니아 울프는 선언한다.

여성으로서 내겐 조국이 없다. 여성으로서 나는 조국을 원하지도 않는다. 여성으로서 나의 조국은 전 세계다.”

 

얼마 전 여성 독립운동가를 주제로 미술가 윤석남과 콜라보 작업을 했다. 식민지 조선에서 일제 파시즘에 맞서 싸운 여성 독립운동가 14인의 삶을 언어로 형상화하면서 나는 오래전에 읽었던 <3기니>를 떠올렸다. 같은 시대를 살았음에도 너무도 다른, 그들 사이의 거리를 보았다. 제국의 여성이 억압의 주체인 조국을 부정할 때, 존재조차 위태로운 식민지 여성은 조국을 지키려 목숨을 걸었다. 양쪽 다 무너뜨리고자 하는 것은 같았으나 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신 식민지 여성은 남성과 연대해 싸웠고, 그렇게 일으킨 나라에 제 몫이 있을 것을 믿었다. 그러나 침묵과 공백으로 남은 그들의 삶은 믿음이 배반당했음을 말해준다. 남성들과 나란히 어깨를 겯고 싸웠음에도 기록도 기억도 되지 않은 그들의 존재는, 여성에게 조국이 없는 것이 아니라 조국에는 여성이 없다는 것을 일깨운다.

없음은 춥고 서러운 결핍이지만 또한 그것은 버지니아 울프의 말처럼, 그리고 내가 만난 우리 선배들의 삶처럼, 자유이기도 하다. 지배와 예속의 역사로부터 자유롭게,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싸웠던 이들. 그들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리라.

 

 

* 기니; 영국 제국이 사용하던 옛날 금화 

** <3기니>의 번역본은 이후출판사에서 나온 태혜숙본과, 솔출판사에서 나온 오진숙본을 함께 참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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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로 태어나서>는 전부터 벼르다가 이제야 읽기 시작했다. 머리말을 읽을 때는 솔직히 그만 덮고 싶었다. 문장의 과잉의 눈에 거슬려서. 하지만 본론으로 들어가자 불만은 완전히 사라졌고 계속 감탄하고 감동하게 된다. 저자에게. 성실하고 깊고 다스하고 정직하다. 한국에서 정말 보기 드문 논픽션인데, 희소성을 넘어 탁월한 성취를 이뤘다. 

 


 

 

 

 

 

 

 

 

 

 

<악녀의 재구성>은 도서관 서가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 별 기대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정말 재미있고 새롭다. 

조선시대에 이런 여성들이 있었나, 계속 놀라면서 읽게 된다. 


 

조지 월드, <우리는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가Therefore choose life>를 읽다. 처음엔 별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래서 앞을 건너뛰어 4장 '죽음의 기원'을 읽다가 매료되었다. 그렇게 3장을 읽고 다시 앞 장을 읽는 역순의 독서를 하다. 기억해두고 싶은 문장이 많아 메모하다.

 

 

 

 

 

 

 

 

 

 

 

 

요즘 읽은 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신복룡의 <인물로 보는 해방정국의 풍경>이다. 조선일보에 연재했던 글을 묶었는데, 단편들이고 개인적인 소회도 뒤섞여 본격 역사서라고는 하기 힘들지 모르나 이 시대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책이다. 좌우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저자의 입장 때문에 더욱 논란이 되는 사건들에 접근하는 데 좋다. 독서회에도 권했지만 입문서로 손색이 없다. 4.3과 대구항쟁, 여순사건, 한국전쟁 등에 대한 내용을 읽으며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끔찍한 보복, 특히 우익의 잔인함을 보며 어디서 왜 이런 증오가 나왔는지 묻게 된다. 왜 이렇게까지 증오하는 걸까? 그리고 미국. 5.18에 대한 증언을 보면서도 그렇고 미국은 참 오랜 문제다.   

 

 

 

 


김승섭의 <우리 몸이 세계라면>을 읽다. 화제작 <아픔이 길이 되려면>도 그렇고 이 책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읽지만 아쉬움은 있다. 여러 주제를 짧게 다루다 보니 깊이있게 고민이 전개되는 데 한계가 있다. 캐나다의 보건과학자 캐런 매싱이 쓴 <보이지 않는 고통>이 떠오르며 다음엔 좀더 깊게 문제의식을 펼쳐나갔으면 싶다.

 

 

 

정민의 <나는 나다>는 실망스러웠다. 다작에도 불구하고 읽는 책마다 만족스러웠던 정민 교수라 이번에도 기대했는데 실망. 같이 나온 <채수유병집>도 그리...

 


 

 

 

 

 

 

카를로 로벨리의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는 요즘 만나는 사람들에게마다 추천하는 책. 그 책이 계기가 되어 읽게 된 <1417년 근대의 탄생> 역시 기대에 값하는 근사한 저작이었다.

교황의 비서였던 필경사 포조가 루크레티우스의 시집을 발견하고 그것이 몽테뉴를 비롯한 근대의 여러 사상에 영향을 미친 이야기를 그야말로 영화처럼 흥미진진하게 썼다. 인문서를 읽는 게 얼마나 즐겁고 도움이 되는지 모처럼 실감하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도서관 사서 실무>는 제목 그대로 사서 실무가 궁금해서 읽었다. 아주 얇은 독립출판물인데 재미있게 단숨에 읽었지만 아쉬움이 많다. 일단 제목과 달리 사서 실무에 대해 자세히 알기 어렵다. 글을 쓰고 싶어하고 그래서 직접 책을 만드는 개인적인 얘기와 사서 경험이 뒤섞인 일기 같은 글이다. 일반 출판사라면 아마 이대로 출간하지는 않았으리라. 편집이 안 된 책인데, 과연 이런 출판이 괜찮은가 의문이 든다. 작가로서 편집자의 의견을 듣고 조율하는 과정은 정말 힘들다. 글을 쓰는 즐거움은 없고, 남의 말을 들어야 하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설득해야 하는 괴로움만 가득한 과정이다.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글 쓰기도 배우고 사는 법도 배우고, 무엇보다 내 자신의 부족함을 배우게 된다. 내가 좋아서 쓴 글, 내가 좋아서 내는 데 무슨 상관이냐 할 수도 있지만 책과 출판엔 나만 좋은 것 이상의 책임도 있으니까 역시 편집의 역할을 생각하게 된다.   


 

<신체설계자>- 상상을 넘어선 현대 의료기술의 세계. 그 미래를 도무지 가늠할 수 없다. 꽤 전문적인 설명도 있어 독서가 더뎠으나 기억해두고 싶은 내용이 많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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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라, 있는 그대로 - 화상경험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송효정 외 지음 / 온다프레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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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책장을 넘기기가 힘들었다. 눈을 질끈 감으면서 근근히 읽다가 어느 사이 눈앞이 환해졌다. 화상이란 고통을 온몸으로 통과해 ‘경험자‘가 된 이들에게 같은 인간으로서 존경과 감사를 전한다. 그 고통을 보고 듣고 기록해준 작가분들께도 고맙다. 덕분에 살아갈 힘과 이유를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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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은유 지음, 임진실 사진 / 돌베개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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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읽고 싶지 않았다. 책임감으로 마지못해 펼쳐든 책, 그러나 머리말을 읽는 사이 모든 잡생각이 사라졌다. 선입견처럼 읽기 쉽지 않은 책이었으나 읽기를 정말 잘한 책이었다. 책에 나온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고, 겸손한 목격자 은유님께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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