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진화
데이비드 버스 지음, 전중환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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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버스의 '욕망의 진화'가 신간으로 소개되어서 찾아보니 예전에 나왔던 책이다. 신문 서평 등에서 그걸 좀 밝혀주면 좋으련만 마치 최근작인 듯 써서 잠시 착각했다. 데이비드 버스의 또다른 책인 [이웃집 살인마]가 오히려 이 책을 쓴 뒤에 나온 책인데...

다윈의 진화론을 부정하는 과학자는 과학계에 발을 붙일 수 없다는 통설이 있다고 한다. 진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진화론이 밝힌 진실만큼이나 진화론에 의해 숨겨진 진실도 많지 않은가 생각이 든다. 진화심리학자인 버스의 이 책을 읽다보니 그런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들었다. 가장 큰 답답함은 현재의 현상을 놓고 그 원인을 과거로 소급해서 찾는다는 것이다. 진화론적 증거로 드는 사례들 역시 미흡하고 너무나 취사선택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결론에 끼워맞추는 과학이란 생각이 자꾸 들어서 책을 읽어갈수록 흥미가 줄었다. [이웃집 살인마] 역시 이런 혐의는 짙지만 '살인'이란 극적 소재와, 살인을 진화적 결과로 해석하는 시각의 참신성 덕분에 이 책보다는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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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백년 18세기 - 동서문화 비교 살롱토크, 문화의 창 6
한국18세기학회 엮음 / 태학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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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에서 18세기는 화려한 문예부흥기, 자생적 개혁의 모색기로 평가된다. 그리고 개혁군주 정조와 박지원, 정약용 등의 실학자들이 보여준 근대지향성이 늘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한다. 특히 최근 들어 쏟아지는 박지원 저작들은 이런 관점을 더욱 강화하는 데 일조를 하고 있다. 그런데 개혁자로 통칭되는 이들 사이가 꽤 멀다. 동시대를 살았으나 그들은 서로 무시하거나 견제하거나 대립했다. 그리고 거기엔 근대화의 방법론을 둘러싼 갈등으로 볼 수 없는 측면이 있다. 18세기의 역동성은 분명히 엄연한 사실이나, 그 역동성의 출처가 문장에서 비롯하는지는 되짚어봐야 한다. 특히 거기에 근대의 딱지-탈근대 역시 마찬가지다-를 붙이는 것은, 서구사의 보편론을 조선사에 그대로 적용하는 또다른 '담론의 횡포'인지도 모른다.

18세기의 실체가 궁금하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는데 우연히 이 책을 만났다. '18세기 학회'라는 게 있는지도 이 책을 보기 전까지는 몰랐다. 각국사 전공자들이 함께 모여 18세기를 얘기한다는 출발점이 신선했다. 국경의 울타리, 대륙의 울타리가 역사학자들을 얼마나 얽매는지는 식민사관,동북공정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러니 이런 시도는 그 시도만으로도 평가할 만하다.

이 책을 읽다보면 일국사에 갇혀 있던 연구자들의 시각이 같은 시대 다른 나라를 만나면서 새롭게 확장되는 걸 목격할 수 있다. 물론 독자들의 눈도 함께 열린다. 근대화의 성공이냐 실패냐는 사후판단을 앞세워 조선과 중국은 왜 실패했고 일본은 왜 성공했는가 그 요인을 살피자는 게, 이 새대를 다룬 그간의 역사서의 대종이라면 이 책에선 그걸 다르게 생각할 여지를 준다. 일본이 개방에 적극적이어서 성공했다는 통념이 깨지고, 중앙집권과 분권, 권력의 무력함이 미치는 다양한 효과, 실제 18세기 역동성의 주역인 상품경제 담당자들의 활약 등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이 거둔 성과에는 좌담이라는 형식도 일조를 한 것 같다. 대화로 피력된 주장들은 읽기에 쉬우며, 말하는 이들도 글을 쓰는 부담을 잊고 좀더 편하게 자기 주장을 펼 수 있었던 듯하다. 많은 학자들이 전문가들이 모인 공간에서는 상당히 급진적인 주장들을 상식인 양 얘기하면서도 정작 대중을 상대로 한 글쓰기에선 교과서에서 배운 통념을 확대재생산하는 경향이 있다. 좌담집이 갖는 한계는 있지만 이 책은 전문적 성과를 교양서로 담아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다. 앞으로 다른 시대도 이런 식의 연구와 소통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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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

 

하느님
   가령 이런 시는
   다시 한번 공들여 옮겨적는 것만으로

새로 시 한 벌 지은 셈 쳐주실 수 없을까요

다리를 건너는 한 사람이 보이네
  가다가 서서 잠시 먼 산을 보고

가다가 쉬며 또 그러네

얼마 후 또 한 사람이 다리를 건너네

빠른 걸음으로 지나서 어느새 자취도 없고

그가 지나고 난 다리만 혼자서 허전하게 남아 있네

다리를 빨리 지나가는 사람은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이네

라는 시인데

(좋은 시는 얼마든지 있다구요?)

안되겠다면 도리없지요

그렇지만 하느님

너무 빨리 읽고 지나쳐

시를 외롭게는 말아주세요, 모쪼록

내 너무 별을 쳐다보아

별들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내 너무 하늘을 쳐다보아

하늘은 더렵혀지지 않았을까

덜덜 떨며 이 세상 버린 영혼입니다

*이성선 시인(1941-2001)의 [다리] 전문과 [별을 보며] 첫부분을 빌리다

김사인 시인이 오랫만에 내놓은 [가만히 좋아하는]을 읽다가 이 독특한 시에 마음이 머물렀다. 이성선 시인의 시를 통해 자신의 부끄러운 마음을 쓴 시가 나를 착하게 만든다. 그가 오래 전에 썼던 [밤에 쓰는 편지]를 좋아했는데, 시인은 아직도 그때의 부끄러움을 잃지 않았구나. 나는 이렇게 뻔뻔해졌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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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 인명사전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세계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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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은 이게 처음이다. 예쁜 표지를 펼치자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뱃속의 아기가 딸국질을 하고 그때문인지 만삭의 십대 임산부가 남편에게 총을 들이댄다. 빠르고 선정적인 이야기 전개에 눈이 혹해서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근데 페이지를 넘길수록 슬슬 흥미가 준다. 그래도 뭔가 굉징한 게 나올 거라는 기대로 계속 열심히 읽었다. 마지막 페이지에 가서야 나의 기대가 무너졌음을 알았다. 아멜리 노통브의 장점은 바로 이거다. 끝까지 기대를 갖고 읽게 만드는 힘. 한마디로 필력인데, 빠르고 거침없는 서술이 독자를 사로잡는다. 문제는 기대가 기대로 끝난다는 것. 이 소설의 부제는 나를 죽인 자의 일생인데, 결말은 이 부제를 만족시키려고 억지로 짜낸 결말처럼 생경하다. 주제의식 같은 건 물론 생각할 여지도 없다. 아멜리 노통브의 명망에 비하면 상당히 실망스런 독서라 목하 고민중이다. 한번 더 시도할까, 이걸로 끝낼까. 아무리 뛰어난 작가라도 범작은 있는 법이니까 한 권쯤 그녀의 소설을 더 읽어보는 게 좋겠지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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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익명으로 남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익명의 시골 익명의 마을에서 익명의 여자와 익명의 사랑을 나누어 역시 익명의 가족을 이루고 익명의 인물들을 모아 새로운 익명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에밀 아자르의 [가면의 생]은 그 제사(편집자가 본문에서 가져와 임의로 붙인 것인지도 모른다)부터 내 눈을 사로잡았다. 막상 소설을 읽는 것은 쉽지 않았다. 구성과 스토리를 기대하는 전통적 독법이 내 안에 너무 완강하게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설을 그냥 에밀 아자르이고픈, 아자르일 수밖에 없는 로맹 가리의 긴 자전적 시라고 생각하면 어렵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시작이란 없다. 나는 누군가의 자식이고, 사람은 각자의 차례대로 이 세상에 태어난다. 그러고는 어딘가에 소속된다. 나는 그 굴레에서 스스로 벗어나기 위해 온갖 시도를 다 해보았다. 하지만 그 일을 해낸 사람은 없었다. 인간이란 모두 어딘가에 더해진 존재다.

-조심하라. 적대적인 단어들이 여러분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모든 것이 꾸민 것일뿐 진실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가 자기 자신의 저자나 작품이 될 수 없는 한 과거에도 현재에도 진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부디 내 말을 믿어주기 바란다. 호메로스가 소리 높여 노래할 때 나는 이미 그런 상태였다. 우리를 이루고 있는 유전자로부터는 진실이 나올 수 없다. 유전자를 바꿔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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