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

 

하느님
   가령 이런 시는
   다시 한번 공들여 옮겨적는 것만으로

새로 시 한 벌 지은 셈 쳐주실 수 없을까요

다리를 건너는 한 사람이 보이네
  가다가 서서 잠시 먼 산을 보고

가다가 쉬며 또 그러네

얼마 후 또 한 사람이 다리를 건너네

빠른 걸음으로 지나서 어느새 자취도 없고

그가 지나고 난 다리만 혼자서 허전하게 남아 있네

다리를 빨리 지나가는 사람은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이네

라는 시인데

(좋은 시는 얼마든지 있다구요?)

안되겠다면 도리없지요

그렇지만 하느님

너무 빨리 읽고 지나쳐

시를 외롭게는 말아주세요, 모쪼록

내 너무 별을 쳐다보아

별들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내 너무 하늘을 쳐다보아

하늘은 더렵혀지지 않았을까

덜덜 떨며 이 세상 버린 영혼입니다

*이성선 시인(1941-2001)의 [다리] 전문과 [별을 보며] 첫부분을 빌리다

김사인 시인이 오랫만에 내놓은 [가만히 좋아하는]을 읽다가 이 독특한 시에 마음이 머물렀다. 이성선 시인의 시를 통해 자신의 부끄러운 마음을 쓴 시가 나를 착하게 만든다. 그가 오래 전에 썼던 [밤에 쓰는 편지]를 좋아했는데, 시인은 아직도 그때의 부끄러움을 잃지 않았구나. 나는 이렇게 뻔뻔해졌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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