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만 하다보니 무슨 책을 읽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이러다 읽은 책 또 읽다가 어? 하겠다. 그래서 간단히 정리해둔다.

[나이 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는 꽤 기대를 갖고 읽었는데 좀 평이하다. 시간에 대한 철학적 접근이라기보다 기억에 대한 인지과학적 에세이. 재미있는 내용도 있긴 했으나 새롭게 다가오는 내용은 적은 편. 

[우리와 그들 무리짓기에 대한 착각]은 이런 주제의 책이 드물어서 읽게 된 책. 전체적으로 산만한 느낌이 있고, 연구사례를 집중하고 자신의 논지를 전개하기보다 나열식으로 서술되어 아쉽다. 하지만 '무리짓기'에 따른 '우리'와 '그들'의 형성이,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구성된다는 저자의 주장은 새겨둘 만하다.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이 답을 결정한다는 레이코프의 주장에 저자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무리짓기 역시 상황에 따라, 그 방식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 

피카소에 관한 갑작스런 궁금증으로 읽은 책들. 김원일의 [발견자 피카소]는 피카소의 생애를 정리하면서 작품을 소개하는데 새로운 느낌은 없다.  

반면 [창조자 피카소]는 예술가로서의 피카소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책에 도판이 없어서 본문에서 말하는 작품이 무언지 도무지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작품 제목이 책마다 다른 것도 이런 점을 부추긴다. 도판이 원서에도 없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아쉽고, 그래서 2권은 안 읽었다.   

마로니에북스의 '피카소'는 도판이 많은 책이라 쏠쏠하게 읽었다. 그런데 작품설명에 교정 오류로 의심되는 점이 있어서 신뢰도가 반감되다. 

[피카소 만들기]는 흑백이지만 도판도 적절히 있고 내용도 충실해서 재미있게 읽다. 화상, 큐레이터, 화가들 사이의 밀고당기기를 엿보는 재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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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감상도 쓰지 못하고 읽기만 했다. 일단 목록부터 잊기 전에 정리해두자.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 -시장의 신화를 깨버린, 정말 잘 쓰고 잘 읽히며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책. 

[펭귄의 우울] -호평이 굉장해서 기대를 하며 읽었는데 그냥 그저 그렇다. 

 

[세상을 등지고 사랑을 할 때] -우연히 본 책, 금맥을 발견한 느낌! 즐겁고 애틋하다.   

 

[작은 변화를 위한 아름다운 선택] -얼마나 열심히 살아야 세상에 떳떳할 수 있나를 보여준다. 

[원통함을 없게 하라] -무원록을 정리한 책. 조선시대 법의학 관련책들이 여럿 있으나 이것 한 권이면 될 듯싶다. 

[에도일본] -에도의 풍속을 재미있게 담았다. 

[일본 근대독자의 성립] -매우 전문적이나 이런 책이 드물어서 좋은 공부가 되었다. 

[외딴집] -미야베 미유키의 시대물. 미미 여사의 글을 보며 종종 느끼지만 분량을 조금 줄였어도 좋았을 듯.

[대한민국 원주민] -아주 감동적인 만화책. 

[조선을 뒤흔든 21가지 비극애사] -비슷한 사실들을 담은 책들이 많아서 읽다보면 겹친다.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 -무원록과 흠흠신서를 이용한 여러 책들 중 한 권.  

[조선 최대의 과학수사 x파일] -위 책들과 비슷하나 제도에 대한 설명이 조금 더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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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군데의 도서관을 다닌다. 시립도서관 둘, 구립도서관 하나. 집 바로 옆에 있는 구립도서관보다 마을버스를 20분쯤 타야 하는 시립도서관을 자주 가는 이유는 장서량에서 워낙 차이가 나기 때문. 아, 또 하나, 커피를 마시며 책을 볼 수 있는 시립도서관과 달리 구립은 연필과 공책을 제외하곤 암것도 반입금지다. 그래서 쾌적하긴 한데 그래도 커피를 딱 갖다놔야 책읽기의 분위기가 잡히니... 음, 고쳐야 할 습관이나 쉽지 않다.

두 개의 시립도서관에서 부지런히 책을 빌리지만 신간을 보기는 쉽지 않다. 웬만한 신간은 대기자가 두셋씩 된다. 이름을 올리고 기다리다보면 무슨 책을 예약했는지도 감감할 때가 있다. 오늘은 가까운 구립에나 갈까 했더니 "띠링띠링" 문자가 왔다. 예약한 책이 들어왔다는 소식. [만들어진 신]이 한 달만에 내 손에 들어왔다. 커피를 한모금 마시고 책을 읽는다. 무신론자인 내게 도킨스의 주장은 새로울 건 없다. 다만, 그가 인용하는 광신자나 무신자의 이야기가 커피를 뿜을 만큼 웃음을 자아낸다. 우주를 떠도는 주전자를 믿는 사람들도 있단다. 하긴 허연 수염을 늘어뜨린 할아버지가 저 하늘에서 굽어보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그 신을 섬기지 않아서 복지가 문제라는 복지부 장관 지망생도 있으니까. 책을 읽다보니 신은 웃음을 위해 창조해낸 장치가 아닌가 싶다. 신이 없다면 이렇게 웃을 일도 없겠다. (물론 역사적으로야 신이 있어서 통곡한 일이 더 많겠지만) 책은 잘 읽혀서 두어 시간만에 백 쪽이 금세 넘었다. 근데 슬슬 짜증이 난다. 신이 있어서 신을 믿는다고 하지만 사실은 신이 있다고 믿고 싶은 거고, 신이 없다고 증명한다고 그들이 신이 없다고 믿을까 회의가 든다. 뭣보다 도킨스가 '신'의 위치에 '과학'을 두고 싶은 건 아닐까 의심스럽다. 과학이든 신이든 절대를 자임하는 존재는 거추장스럽다.

책을 덮고 나서는데 일층 강당이 소란하다. 이제 막 시작한 개척교회보다도 작은 강당인데 서울시향에서 온 현악오중주팀이 찾아가는 음악회를 한단다. 마침 입구에 의자 하나가 비었다. 얼른 자리를 잡자마자 음악회가 시작된다. 바이올린 둘,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 다섯 명의 연주자가 '사계의 봄'생상의 백조' 같은 유명한 곡들을 연주한다. 강당은 아이들을 데려온 엄마부터 노부부, 머리를 식히러 온 수험생, 호기심 많은 꼬마들까지 빈틈없이 꽉 찼다. 끊임없이 들고나는 사람들로 출입문은 바쁘지만 아름다운 현악의 선율을 놓칠 정도는 아니다. 몸을 비비 꼬면서도 꼬마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한 곡 한 곡 끝날 때마다 박수소리가 커지더니 나중엔 "와" 하는 함성까지 터져나와서 연주자들을 기쁘게 한다. 앵콜까지 아홉 곡이 끝나고 연주자들도 객석도 모두 환하게 웃는 얼굴로 자리를 일어선다.

시끄럽고 부산한 동네 음악회가 심드렁했던 마음을 활짝 깨운다. 우리의 연주자들은 성실하고 청중은 그들의 성실에 밝은 웃음과 환호로 응답한다. 신이 없어도 세상은 아름답다. 음악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비록 넉넉치 않은 살림에도 음악을 즐길 줄 아는 마음이 우리를 풍요롭게 한다. 더 무엇이 필요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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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 마음을 한결같이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분주하지만 따져보면 실속없는 분주함이요, 만나지만 돌아오는 길은 허허로운 만남들이다. 부질없다는 생각을 잊고 항상심을 유지하기엔 독서가 최고다.

[안락사의 역사]는 도서관 서가에서 우연히 만난 책. 출판사 이름도 낯선 신간인데 안락사에 대해 관심이 있던 터라 두말 없이 빼들었다. 자살이 금기 혹은 범죄가 된 것은 중세부터의 일이라는 역사적 예화에서 시작하여 최근까지 안락사, 자살, 훌륭한 죽음을 둘러싼 찬반운동과 논리의 발전사를 꼼꼼이 살피고 있다. 가장 눈에 띈 것은 안락사에 대한 적극적. 긍정적 시선이 우생학과 연결되는 지점. 어떤 생명, 어떤 삶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어느 순간 살 가치가 없는 삶에 대한 폄하로 이어지는 건 역사적으론 당연한 사실처럼 보여질 정도다. 안락사 하면 '존엄한 죽음'을 떠올렸으나, 이 책을 보니 그렇게 개념의 지형이 그려진 건 불과 30년 전의 일이며 그 전엔 오히려 안락사가 우생학적 관점에서 이루어진 살인과 더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다. 우리 사회에선 별다른 토론 없이 안락사의 법제화가 논의되고 있으나, 어쩌면 이런 침묵이 양날의 날을 가진 안락사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게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재미있는 소설을 읽는 건 언제나 즐겁다. 이참에 중국 작가를 좀 진지하게 만나보자고 작정하고 위화와 하진을 열심으로 읽었다. 위화의 단편집 [나는 이름이 없다]는 그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어 좋았다. [인생] [가랑비 속의 외침] 역시 그의 힘을 느끼게 한다.

하진은 처음엔 뜨악했으나 위화와 비교하며 읽다보니 점점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피아오 아저씨의 생일파티][니하오 미스터 빈][남편고르기] 등도 나름 재미있었으나 가장 좋았던 건 [기다림].

  한 남자가 고향의 아내와 이혼하는 단순한 이야기를 담은 꽤 긴 장편소설인데, 이처럼 단순한 이야기가 길게 서술되는 데도 전혀 군더더기가 없다. 유머스러우면서도 쓸쓸한 페이소스를 느끼게 하는 소설인 점은 위화와도 비슷하고 그의 다른 소설에서도 익히 경험했던 바이나, 이 소설은 책장을 덮고 난 뒤에 여러 다른 주제로 읽힐 수 있다는 점에서 놀랍다. 다시 한번 읽고 싶다.

세러 워터스는 역사소설로 유명한 영국의 여성 소설가. 이 소설 역시 19세기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이다. '도둑'을 뜻하는 핑거스미스가 주인공인 이 엄청나게 두껍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작가가 밝혔듯이 찰스 디킨스의 색채를 느끼게 한다. 세밀하게 복원된 당시의 역사가 감탄스럽고, 중반을 넘어서면서 책장에서 눈을 떼기 힘들게 하는 이야기가 재미있고, 예상치못한 반전도 흥미롭다. 거기에 자주 보기 힘든 동성애 코드도 설득력 있는 장치로 기능한다. 뒤에 남는 감동을 말하긴 어렵다는 점에서 이 무렵 함께 읽은 [달의 나라]와 비슷하나, 정교한 플롯과 섬세한 서술은 역시 감탄스럽다.

후배의 '아주 재미있다'는 평에 홀려 읽기 시작했는데, 세대차이인가, 나는 읽기가 쉽지 않았다. 소설 속 이야기는 익숙하고 경험의 한자락을 공유한 것임에도, 왜 이리 감정이입이 안 되는지, 지금도 이상하다. 책장을 띄엄띄엄 넘기기도 하면서 간신히 다 읽고난 소감은, [굳빠이 이상]의 김연수를 다시 만나고 싶다는 것. [청춘의 문장들]에서도 서술과 감정의 과잉에 이따금 낯을 찌푸렸는데 이 소설에서도 자꾸 과잉이란 느낌을 갖곤 했다. '이상'에서의 정교함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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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에 빠져서 도서관에 들어오는 족족 읽었다. 꽤 최근에 나온 [스나크 사냥]은 하루에 읽기 좋은 장편인데 미야베 특유의 서늘한 느낌을 준다. [모방범]은 전 3권의 어마어마한 분량. 한 권만 해도 엄청난 두께지만 오래 묵힐 수 없어 순식간에 1권을 읽었으나 2권이 영 감감무소식이다. 쩝, 이참에 장만할까... 하지만 그 대신 선택한 [이유]는 나오키 상 수상작이라지만 내겐 썩 재미있지는 않았다. 일본소설이나 만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정보 서술이 워낙 길다보니 긴장감도 좀 떨어지는 듯하고. [모방범]으로 그녀와 작별해도 좋을 성싶다.

신문에 실린 신간 소개를 보고 찜해두었던 [등대]를 읽었다. 근사한 사진과 우리나라의 등대를 망라한 발품이 첫눈에 들었으나 막상 책을 읽어내릴수록 답답하고 짜증스러워서 결국 중도포기하다. 등대는 감상적인 접근만 있었을 뿐이라 이처럼 그 역사와 하나하나에 담긴 건축적, 구조적 특징을 설명한 것이 퍽 반가웠는데, 막상 읽다보니 전문용어에 대한 설명도 거의 없고 주마간산식이라 오히려 점점 더 답답해지는 느낌이었다. 등대의 지역적 탐사와 함께 등대가 하는 역할, 구조, 설치기구의 특징, 과거의 등대와 최근 등대의 차이 등을 더 꼼꼼히 담았다면 좋았을 텐데, 역사서도 기행기도 감상문도 아닌 애매한 서술이 아쉽다.

[열네 살]은 일본 만화책이다. 극화의 전통에 서 있는 아름다운 책인데, 중년에 깨닫는 청춘과 인생의 회한, 일상에 대한 섬세한 성찰이 돋보인다. 만화책이지만 두고두고 되새김질이 필요한 깊이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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