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받을 용기 (반양장) -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아들러의 가르침 미움받을 용기 1
기시미 이치로 외 지음, 전경아 옮김, 김정운 감수 / 인플루엔셜(주)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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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유행에 따라 책을 읽고 싶지 않다는 다짐 때문일까? "나는 베스트셀러는 믿지 않는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니곤 했다. 그러면서도 내 장바구니나 보관함에는 항상 당시의 베스트셀러들이 담겨 있었다. 아닌 척은 해도 결국 나도 지금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의 관심과 유행이 무엇인지를 흘끔거리며 궁금해 하는 속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된 지 많은 시간이 흘러서 읽게 되었다. 몇 주 반짝였던 베스트셀러가 아니라, (내 기억에는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본에게 1위를 내어주기 전까지) 꽤 오랜 기간 상위에 랭크되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상하게도 상위 랭킹에서 떨어지자 비로소 이 책의 내용이 궁금해졌다.


프로이트나 융이야 워낙에 유명한 이름이어서 심리학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의 귀에도 흔한 이름이지만, 아들러라는 이름은 내게 생소했다. 더욱이 그가 프로이트, 융과 함께 3대 심리학자라고 일컬어진다고 하니, 이쯤이면 나의 무지를 탓할만 하다.


아들러의 심리학은 프로이트의 심리학과 대비된다. 프로이트의 심리학을 '원인론'이라고 한다면, 아들러의 심리학은 '목적론'이라고 부를 수 있다. 전자에 따르면, 지금의 나의 상태는 과거의 어떠한 원인으로 인해 형성된 것이며, 미래의 나 또한 현재의 모습이 투영된 것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내가 경험했던 과거의 '트라우마'와 같은 것이 내 삶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나 후자에 의하면,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내가 자유로워질 수는 없겠으나) 현재를 결정하는 건 과거의 그 사건이 아니라 그것을 통한 경험에 내가 어떠한 의미를 부여했느냐이다. 따라서 인과관계가 아닌 내 삶의 목적을 회복함으로써 보다 자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게 된다. 결국 필요한 것은 과거에서 원인을 찾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를 변화시키기 위한 '용기'뿐이다. 그래서 아들러의 심리학을 '용기의 심리학'이라고도 한다.


이 책의 제목인 '미움받을 용기'는 스스로 자유롭기 위해서는 타인에게 미움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따온 것 같다. 자기 중심적인 인정욕구에서 벗어나 타인이 바라는 내 모습을 버리고, 나 또한 타인에게 내 바람을 강요하지 않음으로써 내가 원하는 자유로운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 누군가가 부모를 빨리 실망시킬수록 자식이 빨리 자립하게 된다고 한 우스개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이런 것도 일맥상통하는 것일까. 


과거의 트라우마에 빠져 현재의 삶을 망치는 것, 타인과 경쟁하느라 스스로 불행해지는 것,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려고 눈치를 보는 것... 현대인들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이것들은 '지금, 여기'의 삶을 방해하는 것들이다. 아들러는 이와 같은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했는데, 행동적 측면에서는 '자립할 것'과 '사회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것'을, 심리적 측면에서는 '내게 능력이 있'으며, '사람들은 내 친구'라는 의식을 갖는 것이다. 구체적인 목표라고는 했지만, 이런 뻔한 도덕 교과서 수준의 이야기를 목표라고 제시하는 것에 답답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책 속 철학자의 설명을 끝까지 경청하다보면 행동적 측면을 통하여 자기수용을, 심리적 측면을 통하여 타자신뢰와 타자공헌을 함으로써 나를 인정하고, 남과 비교하지 않으며, 내 본연의 삶을 찾을 수 있다는 논리에 수긍하게 된다.


저자인 기시미 이치로가 플라톤 철학과 아들러 심리학을 공부해서인지는 몰라도 책의 구성은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처럼 철학자와 청년이 대화를 하며 기존 관념의 오류를 바로잡고 새로운 인식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심리학 책이지만 아들러 심리학의 이론을 그렇게 어렵지 않게 대화를 하듯 읽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철학자 :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 의미를 부여한 주관적인 세계에 살고 있지. 객관적인 세계에 사는 것이 아니라네. 자네가 보는 세계와 내가 보는 세계는 달라.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세계일 테지. - 12쪽

철학자 : 아들러 심리학은 트라우마를 명백히 부정하네. 이런 면이 굉장히 새롭고 획기적이지. 분명히 프로이트의 트라우마 이론은 흥미진진한 데가 있어. 마음의 상처(트라우마)가 현재의 불행을 일으킨다고 생각하지. 인생을 거대한 ‘이야기’라고 봤을 때, 그 이해하기 쉬운 인과법칙과 드라마틱한 전개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는 매력이 있어. 하지만 아들러는 트라우마 이론을 부정하면서 이렇게 말했네. "어떠한 경험도 그 자체는 성공의 원인도 실패의 원인도 아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받은 충격-즉 트라우마-으로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 경험 안에서 목적에 맞는 수단을 찾아낸다. 경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자신을 결정하는 것이다"라고. - 36쪽

청년 : 목적에 맞는 수단을 찾아낸다니, 그게 무슨 뜻인가요?
철학자 : 말 그대로일세. ‘경험 그 자체’가 아니라 ‘경험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자신을 결정한다는 말이지. 가령 엄청난 재해를 당했다거나 어린 시절에 학대를 받았다면, 그런 일이 인격 형성에 미치는 영향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네. 분명히 영향이 남을 테지.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일이 무언가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점이야. 우리는 과거의 경험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에 따라 자신의 삶을 결정한다네. 인생이란 누군가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는 걸세. 어떻게 사는가도 자기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고. - 36, 37쪽

철학자 : 과거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과거를 바꿀 수 없다고 한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유효한 수단도 써보지 못한 채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여야 하네. 그 결과 어떻게 될까? 나를 둘러싼 세계에 절망하고 인생을 포기하며 살다가 결국엔 허무주의나 염세주의(pessimism)에 빠지게 되겠지. 트라우마 이론으로 대표되는 프로이트의 원인론은 형태만 다른 결정론이자 허무주의의 입구일세. 자네는 그런 가치관을 인정할 셈인가?
청년 : 그야 저도 인정하고 싶지는 않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과거의 힘은 그만큼 세다고요!
철학자 : 가능성을 생각하게. 인간이 변할 수 있는 존재라고 한다면 원인론에 근거한 가치관은 있을 수 없다, 그러니 자연히 목적론에 입각해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말일세. - 46쪽

철학자 : 다시 아들러가 했던 말을 인용해보지. "중요한 것은 무엇이 주어졌느냐가 아니라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이다." 자네나 Y나 다른 누군가가 되고 싶은 것은 ‘무엇이 주어졌는가’에만 주목하기 때문일세. 그러지 말고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주목하게나. - 53쪽

철학자 : 내가 내 키에 대해 느낀 열등감은 어디까지나 타인과의 비교-다시 말해 인간관계-를 통해 만들어낸 주관적인 감정이었네. 만약 비교해야 할 타인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는 내 키가 작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자네도 지금 이런저런 열등감에 괴로워하고 있겠지. 하지만 그것은 객관적인 ‘열등성(劣等性)’이 아니라 주관적인 ‘열등감(劣等感)’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키에 관한 문제조차 주관이 개입하지. - 88쪽

청년 : 요컨대, 우리를 괴롭히는 열등감은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주관적 해석’이라는 건가요?
철학자 : 그렇지. 나는 "너한테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재능이 있잖아"라는 친구의 말을 듣고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네. 내 키도 사람을 편안하게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위압감을 주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보면 나름대로 장점이 된다는 것을. 물론 이는 주관적인 해석일세.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내 마음대로 생각하는 거지. 그런데 주관적으로 생각하면 좋은 점이 하나 있네. 자신의 뜻대로 선택이 가능하다는 점. 내 키를 장점으로 볼 것인가, 단점으로 볼 것인가 하는 것은 모두 주관에 달린 문제라서 나느 어느 쪽이나 선택할 수 있지. - 88, 89쪽

철학자 : 그렇지 않네. 앞서 걸으나 뒤에서 걸으나 관계없어. 쉽게 말해 우리는 세로축이 존재하지 않는 평평한 공간을 걷고 있네. 우리가 걷는 것은 누군가와 경쟁하기 위해서가 아니야. 지금의 나보다 앞서 나가려는 것이야말로 가치가 있다네.
청년 : 선생님은 모든 경쟁에서 자유로우십니까?
철학자 : 물론일세. 지위와 명예를 좇지 않고 재야의 철학자로서 세속의 경쟁과는 연이 없는 삶을 살고 있으니까.
청년 : 그것은 경쟁에서 내려왔음을, 즉 패배를 인정한다는 뜻입니까?
철학자 : 아니. 승부를 다투는 장소에서 물러났다는 표현이 맞겠지. 내가 나로서 살려고 할 때 경쟁은 필히 방해가 된다네. - 107, 108쪽

철학자 : 나는 옳다, 즉 상대는 틀렸다. 그렇게 생각한 시점에서 논쟁의 초점은 ‘주장의 타당성’에서 ‘인간관계의 문제’로 옮겨가네. 즉 ‘나는 옳다’는 확신이 ‘이 사람은 틀렸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고, 궁극적으로는 ‘그러니까 나는 이겨야 한다’며 승패를 다투게 된다네. 이것은 완벽한 권력투쟁일세.
청년 : 으음
철학자 : 애초에 주장의 타당성은 승패와 관계가 없어. 자네가 옳다고 믿는다면 다른 사람의 의견이 어떻든 간에 이야기는 거기서 마무리되어야 하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권력투쟁에 돌입해서 다른 사람을 굴복시키려고 하지. 그러니까 ‘나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을 곧 ‘패배를 인정하는 것’으로 여기게 되는 거라네.
청년 : 맞아요. 그런 측면이 있죠.
철학자 : 지고 싶지 않다는 일념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려 들지 않고, 결과적으로 잘못된 길을 선택하게 되지. 잘못을 인정하는 것, 사과하는 것, 권력투쟁에서 물러나는 것. 이런 것들이 전부 패배는 아니야. 우월성 추구란 타안과 경쟁하는 것과는 상관없네. - 123, 124쪽

철학자 : 아들러 심리학은 인간의 행동과 심리, 양 측면에서 아주 분명한 목표를 제시했지.
청년 : 허, 어떤 목표입니까?
철학자 : 먼저 행동의 목표로는 ‘자립할 것’과 ‘사회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것’이라는 두 가지를, 이러한 행동을 뒷받침하는 심리적 목표로는 ‘내게는 능력이 있다’는 의식을 갖는 것과 그로부터 ‘사람들은 내 친구다’라는 의식을 갖는 것을 제시했네. - 125쪽

철학자 : 함께 있으면 왠지 숨이 막히고 긴장으로 몸이 뻣뻣해지는 관계는, 연예는 가능해도 사랑이라고 할 수는 없네. 인간은 ‘이 사람과 함께 있으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사랑을 실감할 수 있네. 열등감을 느끼지도 않고, 우월함을 과시할 필요도 없는, 평온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상태라고 할 수 있지. 진정한 사랑이란 그런 걸세. 반면에 구속이란 상대를 지배하려는 마음의 표징이며, 불신이 바닥에 깔린 생각이기도 하지. 내게 불신감을 품은 상대와 한 공간에 있으면 자연스러운 상태로 있을 수 없겠지? 아들러는 말했네. "함께 사이좋게 살고 싶다면, 서로를 대등한 인격체로 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 133, 134쪽

철학자 : 자네는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네. 나도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고. 타인의 기대 같은 것은 만족시킬 필요가 없다는 말일세. - 154쪽

철학자 : 인정받기를 바란 나머지 ‘이런 사람이면 좋겠다’는 타인의 기대를 따라 살게 되지. 즉 진정한 자신을 버리고 타인의 인생을 살게 되는 거라네. 기억하게. 자네가 ‘타인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다면, 타인 역시 ‘자네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라는 걸세. 상대가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더라도 화를 내서는 안 돼. 그것이 당연하지. - 155쪽

철학자 : 단적으로 말해 "자유란 타인에게 미움을 받는 것"일세.
청년 : 네? 무슨 말씀이신지?
철학자 : 자네가 누군가에게 마움을 받는 것. 그것은 자네가 자유롭게 살고 있다는 증거이자 스스로의 방침에 따라 살고 있다는 증표일세.
청년 : 아, 아니. 하지만...
철학자 : 자네 말대로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는 것은 괴로운 일이야. 가능하면 누구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키며 살면 좋겠지.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지 않는다는 건 부자유스러운 동시에 불가능한 일일세. 자유를 행사하려면 대가가 뒤따르네. 자유를 얻으려면 타인에게 미움을 살 수밖에 없어. - 185, 186쪽

철학자 : 인정욕구의 진의를 생각해보게. 사람들이 자신을 얼마나 주목하는가,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즉 자신의 욕구를 얼마나 만족시켜주는가. ... 인정욕구에 사로잡힌 인간은 얼핏 타인을 보는 것 같아도 실제로는 자기 자신밖에 보지 않아. ‘나’ 이외에는 관심이 없지. 즉 자기중심적이라네.
청년 : 그러면 저처럼 타인의 평가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사람도 자기중심적이라는 말입니까? 그렇게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 쓰고 사람들에게 맞추려고 하는데도요?
철학자 : 그래. ‘나’ 외에는 관심이 없다는 의미에서 자기중심적일세. 자네는 타인에게 잘 보이려고 남들의 시선에 신경을 쓰는 걸세. 그것은 타인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자기에 대한 집착이나 다름없지. - 210쪽

철학자 : 어떤 사람이 과제를 앞에 두고 망설이는 것은 그 사람에게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야. 능력이 있든 없든 ‘과제에 맞설 용기를 잃은 것’이 문제라고 보는 것이 아들러 심리학의 견해지. 그러면 이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게 뭘까? 잃어버린 용기를 되찾는 것이겠지. - 232쪽

철학자 : 인간은 ‘나는 공동체에 유익한 존재다’라고 느끼면 자신의 가치를 실감한다네. 이것이 아들러 심리학의 대답이지.
청년 : 나는 공동체에 유익한 존재다?
철학자 : 공동체, 즉 남에게 영향을 미침으로써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고 느끼는 것. 타인으로부터 ‘좋다’는 평가를 받을 필요 없이 자신의 주관에 따라 ‘나는 다른 사람에게 공헌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 그러면 비로소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실감하게 된다네. 지금까지 논의했던 ‘공동체 감각’이나 ‘용기 부여’에 관한 말도 전부 이와 연결되네. - 236쪽

철학자 : 과제를 분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변할 수 있는 것’과 ‘변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해야 하네. 우리는 ‘태어나면서 주어진 것’에 대해서는 바꿀 수가 없어. 하지만 ‘주어진 것을 이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내 힘으로 바꿀 수가 있네. 따라서 ‘바꿀 수 없는 것’에 주목하지 말고, ‘바꿀 수 있는 것’에 주목하란 말이지. 내가 말하는 자기수용이란 이런 거네.
청년 : ...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
철학자 : 그래. 교환이 불가능함을 받아들이는 것. 있는 그대로의 ‘이런 나’를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를 낸다. 그것이 자기수용이야. - 261쪽

철학자 : 편의상 지금까지 자기수용, 타자신뢰, 타자공헌이라는 순서로 설명을 했네. 그런데 이 세 가지는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되는, 말하자면 순환구조로 연결되어 있네.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들인다, 즉 ‘자기수용’을 한다->그러면 배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타자신뢰’를 할 수 있다->타인을 무조건 신뢰하고 그 사람들을 내 친구라고 여기게 되면 ‘타자공헌’을 할 수 있다->타인에게 공헌함으로써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고 실감하게 되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다, 즉 ‘자기수용’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자기수용을 하면... - 276쪽

철학자 : 우리는 좀 더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살아야 하네. 과거가 보이는 것 같고, 미래가 예측되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자네가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살지 않고 희미한 빛 속에서 살고 있다는 증거일세. 인생은 찰나의 연속이며, 과거도 미래도 존재하지 않아. 자네는 과거와 미래를 봄으로써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려하고 있네.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든지 간에 자네의 ‘지금, 여기’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고, 미래가 어떻게 되든 간에 ‘지금, 여기’에서 생각할 문제는 아니지.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살고 있다면 그런 말은 나오지 않을 걸세.
청년 : 하, 하지만... - 308쪽

철학자 : 프로이트의 원인론에 서게 되면 인생을 원인과 결과로 구성된 하나의 큰 이야기로 보게 된다네. 언제 어디에서 태어나서, 어떤 어린 시절을 보내고, 어떤 학교를 나와서 어떤 회사에 들어갔는가. 그래서 지금의 내가 있고, 미래의 내가 있다고 하는 식으로 말이야. 확실히 인생을 이야기에 비유하면 재미있고 이해하기도 쉽지. 그래봤자 그 이야기 끝에는 ‘흐릿한 미래’가 보일 뿐이야. 그럼에도 그 이야기에 따라 살려고 하지. 내 인생은 이러니까 이대로 살 수밖에 없다, 나쁜 것은 내가 아니라 과거인 환경이다. 이렇게 과거를 들먹이며 탓하는 것은 자신의 인생에 면죄부를 주는 걸세. 인생의 거짓말과 다름없지. 하지만 인생이란 점의 연속이며, 찰나의 연속이다. 그것을 이해한다면 더는 이야기가 필요하지 않을 걸세. - 308, 3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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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 - 상처받지 않고 사람을 움직이는 관계의 심리학
양창순 지음 / 센추리원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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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하면서 '까칠하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데, 그것을 딱히 비난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쉽게 대충 넘어가는 일이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내심 계속 그런 태도를 유지하려 노력했다. 내가 생각하는 '까칠함'이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냥 넘기지 않는, 다소 피곤하기도 하지만 꼼꼼한, 그래서 결국 일적인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면이 많은 태도를 의미하였다. 그러나 이런 태도가 나를 외롭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나 혼자만 당당하다고 주장하는 오만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는 않은지, 까칠하면서 외롭거나 고독하지 않은 인간관계를 할 수는 없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차에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는 익숙한 제목의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불행히도 이 책에서는 내가 찾으려던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제목과 달리 이 책은 신경정신과 전문의가 생각하는 삶에 대한 바람직한 방향을 몇 개의 에피소드와 함께 엮어 놓은 책이었다. 프롤로그인 "세상이 내 진심을 알게 하는 법"에서 아주 간략하게 언급한 "그것은 상대방의 의사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죄책감 없이 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대신 '명확하고 간결하게'가 핵심이 되어야 한다", "그러니 내 본심을 당당히 표현하는 것이 좋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건강한 까칠함'이다" 정도 외에 "왜 세상은 내 마음을 몰라줄까?", "마음 가는 대로 살아라", "똑똑한 거리두기가 건강한 인간관계를 만든다", 상처받지 않고 사람을 움직이는 관계의 심리학"이라는 각 챕터의 제목과 내용들이 도대체 '까칠함'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마음대로 말하거나 마음대로 사는 것이 까칠하게 사는 게 아니지 않은가? 내가 생각하는 까칠함과 저자가 생각하는 그것이 물론 다르기는 하겠지만.


제목에 비해 그 주제에 집중하지 않은 내용이나 처방들이 아쉬웠다.


어차피 내가 책임져야 하는 일이라면 내 생각을 당당히 주장하는 것이 인간관계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나는 직접 경험했다. 그것은 상대방의 의사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죄책감 없이 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대신 `명확하고 간결하게`가 핵심이 되어야 한다.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하고 나면 상대방도 내 의사를 수용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상대방이 표현을 안 하면 본심을 모른다. 좋아서 좋다고 하는 것인지, 상처가 두려워서 좋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피곤하고 지친 나머지 갈등을 회피하려고 그러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그러니 내 본심을 당당히 표현하는 것이 좋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건강한 까칠함`이다. - 9쪽

물론 거기에는 전제 조건이 있다.
첫 번째는 내 의견에 대해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정보가 필요하다. 알지도 못하면서 주장만 한다면 그것은 까칠함이 아니라 무식하고 거친 것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인간과 삶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당당하게 자기를 주장하면서 그 사이에서 생겨나는 갈등을 수용하고 해결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어떤 경우에도 끝까지 매너를 지키는 것이다. 음식도 날것으로 먹으면 자칫 소화장애를 동반할 수 있다. 인간의 감정도 서로가 날것인 채로 부딪치다 보면 불필요한 상처가 생길 수밖에 없다. 매너는 그와 같은 날 것을 부드럽고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 10쪽

늘 말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지독하게 나르시시즘적인 존재다. 지금 이 순간의 나만큼 세상에 중요한 사람은 없다. 호르헤 보르헤스가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에서 표현한 저 유명한 문장, `수십, 수천 세기의 시간이 흘러가지만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현재뿐이다. 공기 중에, 땅에, 바다에, 수많은 사람이 있지만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바로 나한테 일어난 일뿐이다`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보르헤스는 오로지 지금의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어렵다. 자신은 중요하고도 특별한 존재라는 자의식이 우리의 내면을 지배하고 있는 탓이다. 따라서 남에게 하듯이 나에게 조언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다면 자신에게도 객관적인 시각을 갖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내게 일어나는 여려 가지 문제 역시 그냥 삶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받아 들이려고 애쓰는 것이다. - 54, 55쪽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인간은 그렇게 외부에서 자기를 고통스럽게 하는 일이 없으면 이번에는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면서 또한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이상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내 안에 있으면서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들은 무엇인지, 내가 갖고 태어난 잠재능력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외부세계와 대적해서 살아나가면서 자기를 발전시키는 첫번째 과정이다. - 77쪽

<학습된 낙관주의>의 저자 마틴 셀리그먼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성공하려면 인내력이, 다시 말해 실패를 겪어도 포기하지 않는 능력이 필요하다. 난 낙관적인 언어 습관이 바로 인내력의 열쇠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한다. 나 역시 그 말에 동의한다. 인생이 때때로 말하는 대로 되어가는 것이 분명하다면 가능한 한 나쁜 언어 습관은 갖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 109쪽

셀리그먼은 언어 습관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미국의 어느 대학에서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생을 연구하기 위해 그들을 십대 시절부터 추적하는 실험을 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결과 중의 하나가 바로 그들의 언어 습관이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십대의 일기장 비교에 따르면 좋은 일에 대한 언어 습관은 비교적 들쑥날쑥했다. 그러나 나쁜 일에 대한 언어 습관은 50년 동안 변함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십대 때 자신이 `매력이 없어서` 남자애들이 자기한테 관심이 없다고 쓴 여성은 50년 뒤에도 자신이 `매력이 없어서` 손자들이 놀러 오지 않는다고 쓰고 있었다는 것이다. 매우 슬픈 일이지만 그녀 역시 평생 말하는 대로 인생이 되어간 셈이다. - 109, 110쪽

굳이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스스로를 믿고 사랑해야 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는데도 어쩌다 보니 그런 말 자체가 지나치게 진부하고 상투적이 되어버렸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진부하고 상투적이란 건 그만큼 보편적으로 꼭 필요하고 중요한 것이란 의미이기도 하다. 아마도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글로 쓰고 강의 주제로 삼는 것일 테지만.
스스로를 믿고 사랑하는 일이 중요한 까닭은, 그렇지 못할 경우 지나치게 남의 말, 남의 판단, 남의 이목에 휘둘리게 되기 때문이다. - 110, 111쪽

무슨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심하게 망설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자신이 그 일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완벽한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순간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날은 영원히 오지 않는 법이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있을 수 없듯이, 완벽한 조건을 갖춘 순간이란 것 역시 애초에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별한 기회를 기다리지 마라. 평범한 기회를 잡아서 위대한 것으로 만들라"는 말이 있다. "오직 하느님만이 처음 하는 일도 완벽하게 하는 법이다"란 말도 있다. 완벽주의에 대한 욕구 때문에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유용한 경구가 있을까 싶다. - 125, 126쪽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크게 괴로워하고 갈등에 빠지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내가 아닌 내가 되고자 하는 욕망`에 있지 않던가. 자신과 불화하는 욕망으로 인해 잠재력은 낭비되고 정신은 신경증에 걸리고 결국 인생에는 `손실되었음`이란 꼬리표가 붙고 만다면 이보다 비극적인 일도 없다.
그런데 펄스는 인간이 때로 그런 함정에 빠지는 이유 중의 하나가 현재의 힘을 무시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내게 주어진 유일한 현실로서 `현재`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에 집중하다 보면 당연히 갈등에 빠지고 헛된 욕망으로 괴로워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마치 아직도 과거 속에 있는 듯이 살아가는 사람, 미래가 오늘 벌써 와 있는 듯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경우 결코 균형 잡힌 성격을 가질 수 없다"고 했다. 그들은 이미 지나가버렸거나 아직 오지 않아서 현실에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시간들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 127쪽

매너를 보면 그 사람이 머리가 좋은지 나쁜지 단박에 알 수 있다는 것이었다. 머리가 나쁘면 매너도 나빠서 "나 이렇게 형편없는 인간이오"하고 사방에 시위를 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그런 사실을 모르고 멋대로 살아간다는 말씀이었다. 평소 매너를 그런 식으로 연관지어 생각해보지 않은 터라 그분 말씀이 흥미로우면서도 곧 수긍이 갔다. - 147, 148쪽

헤밍웨이의 문체는 단순, 간결한 것으로 유명하다. 빙빙 돌리거나 늘어지는 건 그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는 "난 글을 쓰는 내내 어느 정도에서 그치려고 애썼고 그건 엄격하고 유용한 규칙이 되었다"고 쓰고 있다. 그에게 전범이 되어준 사람은 에즈라 파운드였다. 파운드는 작가가 너무 많은 단어를 사용하면 무능력이 드러난다고 주장했다.
나는 그 문장론이 분노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지나친 분노는 대개 당사자의 무능력을 드러내는 것 외에 별 효용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분노야말로 어느 정도에서 그치려고 앴는 편이 좋다. 또한 그것이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유용한 규칙이 되어준다면 삶의 많은 부분에서 낭비와 손실을 줄일 수 있다. - 203쪽

영국 작가 마크 해먼은 말했다.
"세상 그 어떤 일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끊임없이 자문하는 태도, 그것이 사라지는 순간 사람들은 늙기 시작한다." - 2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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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당신의 욕망이 보인다 - 빅 데이터에서 찾아낸 70억 욕망의 지도
송길영 지음 / 쌤앤파커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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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선 제목이 너무 매력적이다. <여기에 당신의 욕망이 보인다>라니. 뭔가 은밀하고 내밀한 욕망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 같은 것을 상상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관심법 같은 걸 다루는 것은 아니고, 이미 흔해져 버린 용어 '빅 데이터'에 대해 다루고 있는 책이다. 굳이 말하자면, 빅데이터를 알기 위한 입문서의 느낌이라고 할까.


방대한 양의 빅데이터는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정보의 덩어리일 뿐이다. 그러나 이 데이터를 분석하고 향방을 예측할 수 있다면 데이터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의미가 된다. 이런 데이터마이닝을 통하여 기업은 자신들의 제품 판매가 부진한 이유, 현재의 트렌드, 향후의 방향, 전략적 대책들을 알아낼 수 있다. 아이패드, 화장품 모델, 팻다운, 배즙, 카페, 캠핑 등 이 책에서 언급된 많은 예도 기업들이 적절한 타이밍에 데이터를 제대로 분석하였는지에 따라 새로운 도약을 맞이하거나 시장에서 퇴출되어 버리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어(예를 들면, 30-40대를 겨냥한 화장품 광고에 20대인 소녀시대를 모델로 한 탓에 부진한 매출을 이어갔지만, 비오템이라는 다른 화장품 회사는 공효진을 모델로 하여 매출이 늘어났다), 실제 발생한 사실과 현상에 대한 사후적 이해라는 재미도 준다. 


책을 읽다 보니, 이러한 빅테이터의 분석을 기업에서만 활용할 것이 아니라 정부도 채택하여 정부 정책에도 반영시켜보는 것은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여율도 적고 매번 뻔한 결과가 나오는, 그래서 민의를 정확히 분석해내지 못하는 ARS 여론조사가 아니라, 빅데이터의 분석을 통해 현 정치상황에 대한 진단과 평가는 물론 향후 정책에 대한 방향을 잡아본다면, 정치라는 것이 세대간, 계층간, 지역간의 대립의 장이 아니라, 보다 나은 정책 마련을 위한 제안의 장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마천루 지수(Sky Scrapper Index)`라는 사회 분위기 지표가 있다. 어떤 나라가 100층짜리 빌딩을 올린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낙관주의가 팽배해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는 것이다. 100층짜리 건물을 올리려면 사업비만 조 단위의 돈이 들어가고, 그것을 지어서 유지하려면 거의 모든 층이 임대돼야 한다. 그런데 낙관주의가 우세하면 이 어마어마한 투자와 임대가 다 완료되고, 이 모습을 본 사람들 사이에 `우리도 한번 해볼까`하는 심리가 발동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잔치는 계속되지 않는다. 투자를 받은 후 건물이 완공되는데는 대략 4년 정도 걸린다. 그때까지 이 건물과 경제상황에 대한 낙관론이 유지될까? 그렇지 않다. 멋들어진 건물이 막 완공될 즈음이면 경제는 조금씩 하강국면에 접어들기 시작한다. 캐스티는 자신의 책에서 한국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건물을 짓겠다고 선언한 사실을 언급했다. 그는 이 건물이 2015년에 완공될 예정이니, 곧 한국 주식이 정점을 찍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 28, 29쪽

우리는 흔히 사회가 거대한 사건을 계기로 변화한다고 생각한다. 오스트리아 황태자 저격사건을 계기로 세계대전이 일어났다는 식이다. 그러나 존 캐스티는 그러한 통념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사회가 이미 한 방향으로 가고 있으며, 무작위로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 가운데 변화의 방향에 부합하는 것들을 사회가 `선택`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사회가 사건을 선택하는 메커니즘이 곧 `대중의 직관`이다. 핵발전이나 스마트폰 같은 과학기술의 발전처럼 거대한 사건들은 미래의 변화를 활성화하는 촉매 역할을 수행하지만, 그 자체가 변화의 원인은 아니다. - 30쪽

그보다는 눈에 보이는 거대한 변화의 이면, 즉 어떤 음식을 먹을지, 어떤 TV 프로그램을 볼지 같은 수많은 자잘한 선택과, 그런 선택을 하는 사회 구성원들의 상호작용에 주목해야 한다. 선택이란 사회 구성원들의 이성적, 감성적 판단을 기초로 이루어지며, 이에 따른 선택의 결과를 통해 어떤 사건이나 유행, 경향이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배척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이 진화론적인 생로병사가 되어 문화나 일상의 `미래`가 된다. 수많은 `미래의 가능태`들 가운데 사회 구성원의 정서와 기호에 부합하는 것들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적자생존의 논리에 따라 도태된다는 것이다.
이는 무슨 뜻인가? 미래는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 안에 이미 존재한다는 의미다. 새로운 현상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우연히 생겨나지 않는다. - 30, 31쪽

기술적인 면에서의 발전은 눈부시다. 흔히 빅 데이터라 함은 `기존의 방법으로 분석하기에 너무 큰 데이터(too big to handle)`를 뜻한다. 그러나 데이터를 수집, 분석, 관리하는 기술은 지금 이 순간에도 발전하고 있다. 어찌 보면 `빅 데이터`라는 단어가 오늘날처럼 흔히 쓰인다는 사실 자체가 데이터를 실용적으로 사용될 수 있을 만큼 방대한 데이터를 다루는 기술이 발전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핵심은 자연어 처리 기술이다. 현재 만들어지고 있는 정보의 90%는 문자나 사진, 동영상 같은 비정형(unstructured) 데이터다. 이제 우리는 길게 두서없이 써내려간 한국어 텍스트를 분석해 측정 가능하고(scalable, countable) 구조화된(structured) 데이터를 산출할 수 있다. 소셜미디어에 어떤 키워드가 나왔는지(발현), 그것이 늘었는지 줄었는지(추세), 어떤 키워드와 연관돼 있는지(연관성) 등을 계측해 사람들의 생각이 어떻고 어디로 흘러가는지 추출해낼 수 있게 됐다. - 42쪽

빅 데이터의 의의는 `사고의 확장`에 있다. 이는 데이터의 양과 크기가 아니라, 시각의 고도(高度)와 조망에 관한 것이다. 숲을 보려면 숲 밖으로 나오는 게 아니라 산 위로 올라가야 한다. 마찬가지로 데이터로부터 의미 있는 통찰을 얻으려면 시각 자체를 더 위로 올려야 한다. 고도가 높을수록 더 멀리, 더 넓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무리 속에서는 결코 접할 수 없는 바깥쪽을 보기 위해, 기존과 다르게 보고, 그 이상을 보기 위해 빅 데이터를 활용하자는 것이다. - 71, 72쪽

기업마다 그런 아이디어가 수천 가지는 될 것이다. 예전에 어느 기업에 가서 새로운 모바일폰 아이디어를 낸 적이 있는데, 그때 이런 말을 들었다. "그건 우리 회사에 있는 3,000가지 아이디어 중 하나예요."
그들이 그 3,000개 아이디어를 다시 열어볼 날이 있을까? 타당성을 입증할 증거가 없기 때문에 아이디어를 쌓아놓기만 하고, 다시는 열지 않는다. 그 아이디어가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고, 만에 하나 실패했을 때 책임지기도 싫으니까. 그래서 업력(業歷)이 오래될수록 파괴적 혁신이 힘들다. 안 되는 이유를 너무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 155, 156쪽

소비자들로서는 짜증난다. 필요 없는데도 자꾸 우기니. 사람들은 제품에 관심이 없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들의 니즈와 욕망이다. 니즈란 것은 솔루션을 기대하게 마련이니, 니즈를 보고 솔루션을 만들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사갈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니즈가 없는 솔루션을 자꾸 팔려고 한다. 재차 강조하지만, 솔루션이 아니라 니즈가 먼저다. - 158, 159쪽

진화론이 우리에게 준 교훈이 있다면, 미래는 과거나 현재와 단절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일깨운 것이다. 과거에 선택받은 존재들이 현재에 남은 것이고, 현재에 선택받은 것들이 미래로 간다.
그래서 지금 사람들이 선택하는 바를 알면 미래를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선택받은 것은 계속 진화할 것이고, 그렇지 못한 것들은 사멸할 것이므로. 과거, 현재, 미래가 분절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현재의 선호(選好)를 가지고 풀어나가면 미래의 닫혀 있는 문을 열 수 있다. 이것이 트렌드 예측이요, 데이터마이닝의 가치다. - 171쪽

욕망을 조절하는 출발점은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이다. 기업도 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과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볼 때, 우리 기업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에 걸맞은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유산, 즉 `헤리티지`다. 이 연장선 상에서 우리가 제공할 수 있는 가치를 고민해보아야 한다.
이와 함께 눈에 보이는 가치보다 한 단계 위의 상위가치를 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 - 1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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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국가 -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
김애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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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4월


2년 전의 울분에 이끌려 책장에 있던 책을 다시 폈다. 노란 리본, 하늘색 바다, 그 속으로 가라 앉은 배의 모양, 그리고 그 배에 달린 말풍선에는 이런 말이 써있다.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라고. 그렇다 세월호는 사고가 아닌 사건이었다. 모든 국민들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뜬 채로 거대한 배가 천천히 가라앉는 모습을, 그 안에 갇힌 사람들이 단 한 명도 구출되지 못하는 것을 생생하게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그것은 사건이었다.


그때부터 였나? 모아놓은 돈, 제대로 된 기술하나 없으면서 '이민'이라는 단어를 검색창에 수차례 써보았던 것이. 그때 였나? 이런 나라에서 더는 내 자식을 못키우겠다고 다짐한 것이, 자기 나라 국민조차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정부에 더이상 꼬박꼬박 세금 바쳐가며 충실한 국민 노릇을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 


다시 4월. 공교롭게도 선거철이다.

세월호 후폭풍을 우려해 "한 번만 도와달라"고 읍소했던 그 추악하고 뻔뻔한 얼굴들이 생각난다. 그들은 선거 전날까지는 우리 앞에 무릎을 꿇었지만, 바로 다음 날부터는 결국 세월호 유가족들을, 우리를 무릎 꿇렸지. 그리고 마침내 새누리가 압승한 선거 결과는 내게 도대체 누구에게 화풀이를 해야하는지 모르겠을 울분으로 아직 남아 있다. 여전히 냉담한 정부, 인양되지 않는 세월호, 충분한 조사 없이 지내온 시간을 입증하듯 청문회에서 하나하나 밝혀지는 의혹들...


 '아직도'가 아니라 '여전히' 4월은 내게 세월호다.

`최선`을 다하겠단 얘길 들었다. `최대`한 힘쓰겠다는 말도, `모든 걸 동원`하겠다는 약속도 들었다. 한두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반복해 들었다. 그럴듯한 말들은 주로 `위`에서 내려왔다. 그 안에는 부사와 형용사, 서술어와 추상명사가 많았지만 시제와 동사, 주어와 고유명사는 잘 보이지 않았다. 곧이어 `책임`이란 말이 들려왔다. `적폐`라는 말, `엄벌`이라는 말도 등장했다. 그런데 그 말을 끝까지 다 들어도 대체 누가 무엇을 어떻게 책임지겠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죄송하다`는 말보다 `기다려달라`는 청보다 선명하게 들린 건 지도층의 막말과 실언이었다. 그리고 그중 어떤 말은 결국 유족을 거리로 나서게 했다. 어버이날, 두 팔을 올려 벌서듯 자식들의 영정을 들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어쩌면 정부가 말한 `최선`과 `최대`의 대상은 국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부는 계속해서 명령을 내리고 민심을 달래는 `입`이길 자처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국민들이 간절히 원한 건 권력의 `귀`였다. (김애란) - 13쪽

얼마 전 `미개(未開)`라는 말이 문제돼 그 뜻을 찾아봤다. `사회가 발전되지 않고 문화수준이 낮은`이라는 뜻이 먼저 등장했지만 그 아래 `열리지 않은`이란 일차적인 뜻도 눈에 띄었다. 앞으로 우리는 누군가 타인의 고통을 향해 `귀를 열지 않을`때, 그리고 `마음을 열지 않을` 때 그 상황을 `미개`하다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김애란) - 13, 14쪽

- 지금 당신을 가장 절망케 하는 건 무엇입니까.
작가들은 그 자리에서 저마다 할 수 있는 말들을 했다. 나는 좀 당황한 나머지 부끄럽고 두루뭉술한 얘기를 했다. 절망에 대해 혹은 희망에 대해 모두가 한마디씩 하고 이윽고 이창근씨 아내인 이자영씨 차례가 왔을 때, 그녀는 누구도 건너본 적 없는 시절로 혼자 돌아가듯 담담하게 말했다.
"저를 가장 절망하게 만든 건, 더 노력해야 된다는 말이었어요." (김애란) - 16쪽

지금 진도에 `사실`은 차고 넘치나 `진실`은 아직 다 드러나지 않은 듯하다. 그리고 그사이 나는 망가진 문법더미 위에 앉아 말의 무력과 말의 무의미와 싸워야 했다. 어떤 말도 바다 속에 가 닿을 수 없고, 어떤 말도 바로 설 수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를 납득시킬 만한 말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마냥 그렇게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어, 2년 전 이자영씨를 떠올리며 내가 가까스로 발견해낸 건 만일 우리가 타인의 내부로 온전히 들어갈 수 없다면, 일단 그 바깥에 서보는 게 맞는 순서일지도 모른다는 거였다. 그 `바깥`에 서느라 때론 다리가 후들거리고 또 얼굴이 빨개져도 우선 서보기라도 하는 게 맞을 것 같았다. 그러니 `이해`란 타인 안으로 들어가 그의 내면과 만나고, 영혼을 훤히 들여다 보는 일이 아니라, 타인의 몸 바깥에 선 자신의 무지를 겸손하게 인정하고, 그 차이를 통렬하게 실감해나가는 과정일지 몰랐다. 그렇게 조금씩 `바깥의 폭`을 좁혀가며 `밖`을 `옆`으로 만드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김애란) - 18쪽

어른들이 만든 원 바깥에서 그네를 타고, 모래성을 쌓으며 뭐라 외치고 웃는 아이들의 소리를 듣고 있자니 그 모든 게 마치 전생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순간 상복을 입은 내가 낯선 도시 한복판에서 가장 강렬하게 느끼고 있는 감정 중 하나가 `삶의 생생함`이라는 걸 깨달았다. 슬픔 속에 숨기려 해도, 환멸 안에 감추려 해도, 냄새처럼 기어코 드러나고야 마는, `우리가 살아 있다는 사실`의 그 `어쩔 수 없는 선명함`이었다. (김애란) - 19쪽

이성적으로 침착하게 협력하는 한, 비참하게 죽을 수밖에 없다는 이 진실은, 우리가 경제 성장이라는 분칠 속에 감춰둔 한국사회의 민낯일지도 모르겠다. 이 민낯을 마주 대하는 건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다. 어차피 내가 아는 한, 한국사회는 원래 그런 얼굴이었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혹은 안일하게도 시간이 흐른다는 이유만으로 그 얼굴이 점점 더 나아지리라고 생각한 것만은 부끄럽다. 그건 나이가 든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이 지혜로워질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왜 그런 착각을 했던 것일까? 그건 진보에 대해 우리가 잘못 생각하는 게 있기 때문이다. (김연수) - 38, 39쪽

과연 역사는 시간이 흐른다는 이유만으로 진보하는가? 말했다시피 이건 나이가 든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은 지혜로워진다는 것만큼이나 거대한 착각이다. 인간은 저절로 나아질 수 없고, 그런 인간의 역사 역시 시간이 흐른다는 이유만으로 진보하지 않는다. 가만히 놔두면 인간은 나빠지며, 역사는 더 나쁘게 과거를 반복한다. 즉 진보의 관점에서 보자면, 과거가 더 낫게 미래를 반복한다. 그러므로 이반 일리치는 "미래는 삶을 잡아먹는 우상입니다. 우리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 오직 희망만이 있을 뿐입니다"라고 말한 것이다. (김연수) - 40쪽

세월호는 애초부터 사고와 사건이라는 두 개의 프레임이 겹쳐진 참사였다. 말인즉슨 세월호는

선박이 침몰한 `사고`이자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

이제 이 두 장의 필름을 분리해야 한다. 겹쳐진 필름이 이대로 떡이 질 경우 우리는 이것을 하나의 프레임, 즉 `세월호 침몰사고`로 기억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언론이 아직도 이 타이틀을 쓰고 있다. 별다른 오류가 없어 보이지만 여기엔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함정이 있다. 명사는 모든 것을 아우른다. 그리고 인간의 무의식은 시간이 흐를수록 이를 `사고`로 인지하기 마련이다. 사소한 문제인 듯하나 이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박민규) - 56쪽

사고와 사건은 다르다. 사전적 해석을 빌리자면 `사고`는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을 의미한다. 반면 `사건`은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거나 주목받을 만한 뜻밖의 일을 의미하는데 거기엔 또 다암과 같은 해석이 뒤따른다. 주로 개인, 또는 단체의 의도하에 발생하는 일이며 범죄라든지 역사적인 일 등이 이에 속한다. 그렇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교통사고를 교통사건이라 부르지 않으며, 살인사건을 살인사고라 부르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월호 사고와 세월호 사건은 실은 전혀 별개의 사안이다. 나는 후자의 비중이 이루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번 분명히 말한다. 이것은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 (박민규) - 57쪽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는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주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의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연민은 어느 정도 뻔뻔한 (그렇지 않다면 부적절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마음껏 가엾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은 고통받는 이들의 상황에 우리 자신이 아무런 책임도 없다고 생각할 때뿐이다. 그런데 그날 이후로 우리는 그렇게 느낄 수가 없다. 우리는 교통사고 사망자들을 불쌍하게 여길 수는 있지만 같은 방식으로 세월호 희생자들을 불쌍하게 여길 수는 없다. 손써볼 사이도 없이 발생한 사고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충분히 구할 수 있는 이들을 죽어가도록 내버려두었다. 많은 사람들이 오래도록 괴로워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죽은 사람들이 단지 불쌍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죽어가는 긴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이 엉망진창인 시스템을 방치한 우리 자신에 대한 수치심 때문에 몸서리치는 것이다. (진은영) - 73, 74쪽

이번 지방선거와 이어진 보궐선거에서 `도와주세요`나 `살려주세요`라는 구호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가 오고간다. 지독하게 퇴행적인 선거 구호라는 논평들이 지배적이었다. 저들은 침몰하는 배 안에서 그토록 살려달라고 외쳤던 아이들의 간절한 모습을 자꾸 떠올리게 하는 저런 구호가 전략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보는지 의아해 하기도 했다. 그러나 두 가지 구호 모두 결과적으로 효과가 있었다. 선거 결과를 구호의 효과로만 볼 수는 없겠지만, 참사의 책임을 묻는 심판론이 대두되는 상황에서 그와 같은 구호들이 부정적 효과를 내지 않고 선전했다는 것만으로도 참 놀라운 일이다. (진은영) - 77쪽

그러나 그런 연설들이 성공하게 되는 메커니즘을 만들어 낸 것은 바로 우리 사회에 편만한 시혜의 에토스이다. `도와주세요`와 `살려주세요`는 그런 에토스를 환기시키는 강력한 언설들이다. 그 언설들을 통해 선거는 거룩함을 획득한다. 우리는 그저 한 표 행사할 뿐이지만 그 단순한 행위로 천사가 될 수 있다. 참사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며 눈물만 흘리는 한 여인을 돕고 살려달라 애원하는 또다른 여인을 구원할 수 있는 위대한 천사 말이다. 싸우고 항의하고 따져 물어야 하는 순간에 임재하여 모든 것을 거룩하게 만드는 천사는 정치를 근본적으로 소거한다. (진은영) - 77, 78쪽

선거는 우리를 대신하여 발언하고 활동할 정치인들을 뽑는 것인데, 사실 우리는 그들이 우리를 제대로 대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살려달라며 약자 코스프레를 하는 정당에 안됐다고 한 표 던지는 유권자들이 그 정당이 이후에 자신들의 뜻을 대리해줄 거라고 믿고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선거가 진정으로 자신을 대리할 사람을 뽑는 활동이 아니라면 이것을 가장 직접적인 활동으로 만드는 방식은 선거 자체에서 가장 극적인 효과를 만들 수 있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선거 국면에서 약자로 자처하는 이들을 구제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계층적 이해관계에 반하는 어리석은 정치적 선택을 하고 있따고 보이는 유권자들이야말로 실제로는 직접적 정치활동의 욕망에 가장 충실한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진은영) - 80쪽

여당이든 야당이든 불쌍해서 뽑아주는 투표 행위는 실제로 자신들의 진정한 대리자를 선출한다는 유보적 방식(사실 우리가 뽑은 이들이 우리를 제대로 대리할지의 여부는 미래로 유보되어 있다) 대신에 직접적 활동의 기쁨을 가장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선거의 장을 만들어가려는 시도이다. 즉 당선시킴으로써 우리는 더이상 불확실한 미래로 유보되지 않는 완결된 활동의 기쁨을 맛볼 수 있다. (진은영) - 80, 81쪽

세월은 돌이킬 수 없게 나를 어른으로 만들어버렸다. 나 역시 그 세계에서 발을 뺄 수가 없다는 것을 자각하게 만들어버렸다. 어른들을 향해서, 당신들의 세계를 왜 이렇게 만들어버렸습니까, 라고 묻는 입장이 더는 가능하지 않게 된 것이다. (황정은) - 93쪽

그들은 그 순간에 그렇게 하라는 말을 들었을 것이고 그대로 했을 것이다. 명령에 따랐을 것이다. 기울어진 선실에 머물고 있는 수백 명 목숨들에 관한 질문도 없이, 내가 이렇게 해서 정말 괜찮은 걸까, 라는 자문도 없이. 그런데 이것은 왜 이렇게 낯이 익나. 질문 없는 삶, 상상하지 않는 삶, 무감한 삶. 총체적으로 그런 삶에 익숙한 삶, 말하자면 살아가는 데 좀더 편리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삶. (황정은) - 94쪽

얼마나 쉬운지 모르겠다.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세상은 원래 이렇게 생겨먹었으니 더는 기대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은. 내가 이미 이 세계를 향한 신뢰를 잃었다고 말하는 것은. (...)
나는 그것을 듣고 비로소 내 절망을 돌아볼 수 있었다. 얼마나 쉽게 그렇게 했는가. 유가족들의 일상, 매일 습격해오는 고통을 품고 되새겨야 하는 결심, 단식, 행진, 그 비통한 싸움에 비해 세상이 이미 망해버렸다고 말하는 것, 무언가를 믿는 것이 이제는 가능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쉬운가. 그러나 다 같이 망하고 있으므로 질문해도 소용없다고 내가 생각해버린 그 세상에 대고, 유가족들이 있는 힘을 다해 질문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공간, 세월이라는 장소에 모인 사람들을, 말하자면 내가 이미 믿음을 거둬버린 세계의 어느 구석을 믿어보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제 내가 뭘 할까. 응답해야 하지 않을까. 세계와 꼭 같은 정도로 내가 망해버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응답해야 하지 않을까. (황정은) - 96, 97쪽

세상은 신의 노여움을 잠재울 의인 열 명이 없어서 멸망하는 게 아닐 것이다. 세상은 분명 질문에 대답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질문하는 사람 자리로 슬쩍 바꿔 앉는 순간에 붕괴될 것이다. (배명훈) - 113쪽

세상은 그렇게 역설적이다. 경쟁을 더 잘할 것 같은 사람들이 "이제 경쟁 좀 덜해도 되는 사회로 바꿉시다!"하고 외치고, 진짜 경쟁에 돌입하면 금세 나가떨어질 것 같은 사람들이 "이 빨갱이들이 무슨 소리야, 자유경쟁이 최고지!"하면서 그들을 매도하기도 한다. "너는 살 만하니까 그런 소리를 하지, 나는 당장 이거라도 해야겠다"는 질타를 몇 차례 듣다보면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공공재를 제공하겠다는 각오가 금세 무색해져버리기도 한다. (배명훈) - 1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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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씽 The One Thing - 복잡한 세상을 이기는 단순함의 힘
게리 켈러 & 제이 파파산 지음, 구세희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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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삶이 힘겨울 때면 무언가 위로가 되거나 새로운 다짐을 줄 수 있는 꺼리들을 찾기 마련이다. 이런저런 일과 사람들에 둘러싸여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지도 모르는 평범한 직장인들에게는 새해의 시작(1월), 진짜 새해의 시작(2월), 업무의 시작(3월)이라는 분기 한 번을 보내고 나면, 그러한 위로나 다짐이 더욱 간절할 것이다. 그래서 찾은 책이 <(더) 원씽>이다.


우리는 흔히 성공에 이르기 위해서는 탁월한 능력을 길러 다방면의 업무를 수행해내고 끊임없는 자기계발을 통하여 마침내 모두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가도로 나아가는 것을 상상하곤 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가장 중요한 '단 하나'를 찾아서 그것에서 부터 시작하는 것이 성공의 요인이라고 한다(물론 그 단 하는 독자가 스스로 찾아야 한다). 마치 제대로 된 하나를 밀면 그보다 큰 도미노를 연속적으로 넘어뜨릴 수 있는 도미노 효과처럼 핵심을 파악하고 그것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으면 '그걸 누가 몰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핵심을 찾기 위해서는 "모든 일이 다 중요한 것이 아님"을 인식하고 자신이 일에 대해 갖고 있는 초점을 가능한 한 좁혀야 한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통념과는 사뭇 다르게 느낄 수도 있다. 


저자에 따르면, 많은 일을 벌여 놓게 되면 오히려 작은 일 하나도 성공하지 못한 채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을 겨우 해내다가 길을 잃고 만다. 따라서 핵심을 찾고 그 외의 것은 어느 정도 무시할 수 있는 마이너스(-)적 태도가 필요하다. 핵심에 관한 내용을 지속적으로 숙달하고 이것을 습관화 할 때 성공의 파급력은 더욱 확대된다는 것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성공에 관한 몇가지 통념들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시도하는데, 예를 들면 멀티태스킹은 능력이 아니라,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망칠 기회"에 지나지 않으며(멀티 능력이 떨어지는 나는 이 대목이 매우 반가웠다), 성공을 위한 철저한 자기관리라는 허상에 주눅들 것이 아니라 습관을 만들 수 있는 66일을 유지하는 것만으로 족하다고 한다. 의지만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의지가 계속될 수 있도록 관리가 필요하며, 일과 삶의 균형을 찾을 것이 아니라 절대 타협할 수 없는 삶의 시간은 반드시 확보하고, 점진적 사고가 아니라 크고 대담한 생각을 시도하라는 것이다.


성공의 의미는 물론 개인마다 다 다를 것이다. 그러나 성공을 위해 일하다보면 그것은 내 자신의 착각일 뿐, 오히려 성공을 방해하는 많은 업무와 관계들로 인해 내가 무엇을 원했던 것인지를 잊고 살기도 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이 기회에 시간을 내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단 하나에 초점을 맞춘 삶, 그 외의 것들은 기꺼이 거절할 수 있는 삶, 핵심에 접근하여 그것을 이루도록 꾸준히 노력하는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다.


원하는 일이 어떤 것이든 최고의 성공을 원한다면 접근방법은 늘 같은 방식이어야 한다. 핵심 속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파고든다는 것’은 곧 자신이 할 수 있는 다른 모든 일을 무시하고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에만 집중하는 것을 뜻한다. 또한 모든 일의 중요성이 똑같지 않음을 인식하고, 가장 중요한 일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이 ‘하는’ 일과 자신이 ‘원하는’ 일을 연결 짓는 아주 단호한 방식이기도 하다. 탁월한 성과는 당신의 초점(focus)을 얼마나 좁힐 수 있느냐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 18쪽

자신의 일과 삶에서 최대한 많은 것을 얻어 내려면 최대한 파고들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커다란 성공은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고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의 달력과 할 일 목록에는 너무 많은 것들이 담겨 감당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른다. 성공은 점점 더 멀게만 느껴지고 결국 보잘것없는 결과에도 만족하고 마는 일이 생기게 된다. 이들은 소수의 몇 가지 일을 잘해낼 때 커다란 성공이 온다는 것을 모르고, 너무 많은 일을 하려고 애쓰다 길을 잃는다. 결과적으로 너무나도 적은 일을 해내는 데 그친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대치는 점점 낮아지고, 꿈을 포기하며, 삶 자체가 움츠러든다. 하지만 핵심을 파고들면 상황은 달라진다. - 18, 19쪽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다. 그것을 너무 넓게 펼치려 애쓰다 보면 노력은 종잇장처럼 얇아진다. 사람들은 일의 양에 따라 성과가 점점 더 쌓이기를 바라는데, 그렇게 하려면 ‘더하기’가 아닌 ‘빼기’가 필요하다. 더 큰 효과를 얻고 싶다면 일의 가짓수를 줄어야 한다. 한 번에 너무 많은 일을 하려다 보면 처음엔 그렇게 하는 것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무것도 줄이지 않은 채 일을 자꾸 더하기만 하면 결국엔 부정적인 결과를 맞을 수밖에 없다. - 19쪽

핵심은 오랜 시간이다. 성공은 연속하여 쌓인다. 단, 한 번에 하나씩이다. - 26쪽

파레토는 우리에게 매우 뚜렷한 방향을 제시한다. 당신이 원하는 것 중 대부분은 당신이 실천하는 몇 개의 일에서 비롯될 것이다. 남다른 성과는 생각보다 훨씬 적은 수의 행동에서 나온다.
그렇다고 숫자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파레토의 이론은 불평등을 기초로 한 것이고, 이것이 80/20이라는 비율로 표현되었을 뿐이다. 상황에 따라 비율은 다양하게 달라질 수 있다. 90/20, 성공의 90퍼센트가 20퍼센트의 노력에서 나올 수도 있고, 70/10나 65/5가 될 수도 있다. 단 이 비율 모두가 근본적으로는 같은 원칙에서 나온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주란의 통찰이 훌륭한 이유는 모든 것이 똑같이 중요하지 않음을 깨달았다는 데 있다. 어떤 일들은 다른 일들보다 중요하다. - 51, 52쪽

성공하기 위해 반드시 자기관리에 철저한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아니, 생각보다 훨씬 적은 자기통제력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단 하나다. 성공은 옳은 일을 해야 얻는 것이지, 모든 일을 다 제대로 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공을 이루는 비결은 올바른 습관을 선택하고 그것을 확립하기에 필요한 수준만큼의 통제력을 갖추는 것이다. 그게 전부다. 이 습관이 삶의 일부가 되면 당신도 남의 눈에 자기관리가 철저한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당신 스스로는 그 일을 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 75쪽

당신의 습관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 준다. 당신이 얻는 성취는 한 번의 행동(action)이 아닌 삶에서 만들어진 습관(habit)에서 나온다. 애써 성공을 찾을 필요는 없다. 선택적 집중의 힘을 이용하여 올바른 습관을 들여라. 그러면 탁월한 성과가 당신을 찾아올 것이다. - 80쪽

중요한 것은 중심을 잡느냐 잃느냐가 아니라 ‘짧게 가느냐, 길게 가느냐’이다. 개인적 삶에서 중심이 흔들리는 경우라면 간격을 짧게 두고 수시로 중심을 잡아라. 짧게 가면 가장 중요한 모든 것들과 관계를 잃지 않으면서 그것들을 함께 움직여 나갈 수 있다. 직업적인 살에서는 오랜 기간 활동하면서, 탁월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불균형 상태를 유지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라. 길게 가면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다른 것들을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에 집중할 수 있다. 개인적 삶에서는 버리고 가는 것이 없게 하고, 반대고 직업적 삶에서는 그렇게 해야만 한다. - 110, 111쪽

내가 배운 성공의 핵심은 이렇다. 삶의 매순간마다 가장 적합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떳떳하게 "여기가 지금 내가 있어야 할 곳이고, 나는 내가 이 순간에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당신의 삶 속에 숨어 있는 모든 훌륭한 가능성들이 현실이 될 것이다. - 133쪽

1. "당신이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일"
2. "그 일을 함으로써"
3. "다른 모든 일들을 쉽게 혹은 필요 없게 만들"(바로 그 일은 무엇인가?) - 142쪽

미국심리학협회의 전 회장인 마틴 셀리그만 박사는 우리의 행복에 다섯 가지 요소가 있다고 했다. 긍정적인 감정(positive emotion)과 기쁨(pleasure), 성취(achievement), 인간관계(relationships), 참여(engagement), 그리고 의미(meaning)이다. 이 중에서도 그는 참여와 의미가 가장 중요하다고 보았다. 우리의 삶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들어 줄 방법을 찾아 거기에 더 몰입하면 할수록 오랫도록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매일 하는 행동이 더 큰 목적의식을 충족시킨다면, 가장 강력하고도 오래 지속되는 행복이 가능해질 것이다. - 180, 181쪽

시간을 내어 쉬어라. 긴 주말과 긴 휴가를 따로 떼어 두고 그것에 맞춰 쉬어라. 그러면 전보다 에너지를 회복하여 더 여유롭고 생산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원활히 기능하려면 휴식 시간이 필수적이고, 당신도 여기서 예외는 아니다.
쉬는 것은 일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 208쪽

최고의 성과를 올리는 사람들을 코치할 때 나는 종종 이런 질문을 던진다. "단순히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겁니까, 아니면 이룰 수 있는 최고의 결과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겁니까?" 그들을 골탕 먹이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이 질문이 나오면 사람들은 언제나 당황한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최고의 노력을 기울이고는 있지만, 이룰 수 있는 최고 수준까지 노력하지는 않고 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나 행동 방식에 변화를 일으킬 마음까지는 없기 때문이다.
무언가의 경지에 이르는 길은 그냥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다. 최고의 결과를 얻기 위해 가장 알맞은 방법으로 노력할 수 있어야 한다. 시간 확보하기에서 최대한 많은 것을 얻어내려면 자신의 일하는 방식을 지속적으로 개선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것을 나는 ‘도전(entrepreneurial)에서 목적의식(purposeful)으로의 이동’이라고 부른다. - 225, 226쪽

언젠가 누군가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누군가 부탁을 해오면 ‘아니오’를 1000번쯤 한 후에 ‘예’라고 대답해야 한다고 말이다. 젊은 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현실이 그것보다 더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집중하려고 할 때 자꾸 방해를 받는 것도 문제지만, 목표 지점에 이르기도 전에 자꾸 다른 길로 빠지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자신이 정해 놓은 시간을 보호하고 생산성을 유지하려면 당신을 궤도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사람이나 사물에 반드시 거부 의사를 밝혀야 한다.
동료들은 당신에게 조언과 도움을 청할 것이다. 팀원들은 당신을 자기 팀에 끌어들이려 할 것이다. 친구들은 무언가를 도와 달라고 할 것이다. 낯선 사람들도 당신을 찾는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곳으로부터 각종 초대장과 방해가 날아든다. 이 모든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단 하나와 궁극적으로 원하는 성과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정해진다. - 240쪽

무언가에 대해 ‘예’라고 말할 때는 무엇을 거절하는지에 대해서도 반드시 알아야 한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유명한 시나리오 작가 시드니 하워드는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의 절반은 그것을 얻기 위해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다." 결국 크게 성공하는 가장 좋은 길은 파고드는 것이다. 그리고 파고들 때에는 다른 일에 대해 ‘아니오’라고 말해야 할 순간이 너무나도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예전에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많을 것이다. - 241쪽

몸속의 에너지를 잘 지키지 못해 미래의 힘을 자꾸 빌려 쓰게 되면 천천히 연료가 다 떨어져 버리거나, 너무 빨리 망가지고 마는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런 경우는 어디에서나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단 하나의 힘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너무나도 많은 일을 하려고 애쓴다. 그런데 그런 행동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효과가 떨어지게 되므로 결국 자기 자신과 끔찍한 거래를 맺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 바로 자신의 건강을 희생하는 대가로 성공을 얻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늦게까지 일하고, 식사를 거르거나 대충 먹고,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다. 건강과 가정생활을 희생시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된다.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생각에만 빠진 그들은 자기 몸을 해치는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 것이라 믿지만 그런 도박은 반드시 실패하게 되어 있다. 당신이 향후 한가한 시간에 느긋하게 즐길 수 있을 때까지 건강과 가정생활 두 가지가 얌전히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믿는다면 큰 오산이다. - 248쪽

출근해서는 자신의 단 하나를 위해 일하라. 당신도 나와 같다면 출근하자마자 가장 먼저 끝내야 할 몇 가지 업무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일들을 처리할 시간으로 최대 한 시간 정도 투자하라. 어정거리지도 말고 속도를 늦추지도 마라. 깔끔히 해치운 다음 곧장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을 시작하라. 정오쯤에는 휴식을 취하면서 점심을 먹고, 퇴근하기 전까지 처리할 수 있는 다른 모든 일에 주의를 집중하라.
마지막으로 퇴근한 뒤 잠들 시간이 되면 최소한 여덟 시간은 숙면을 취하도록 한다. 강력한 엔진은 다시 가동되기 전에 열을 식히고 충분히 쉴 시간이 필요하다. 당신도 다를 바가 없다. 정신과 신체가 푹 쉬고 재충전하여 다음 날 더욱 생산성을 높일 수 있도록 잠을 자야 한다. - 250쪽

사고의 한계를 높이면 삶의 한계 역시 넓힐 수 있다. 더 큰 삶을 상상할 때에만 큰 삶을 가질 수 있는 희망이 생긴다.
문제는 최대한 큰 삶을 살려면 생각만 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이르는 데 필요한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다른 성과를 얻으려면 단 하나를 파고들어야 한다.
초점을 최대한 작게 맞추면 사고가 단순해지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뚜렷하게 보인다. 얼마나 크게 생각하든, 거기에 이르기 위해 필요한 일을 하려면 언제든 작은 초점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 259, 260쪽

행동은 행동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습관은 습관 위에 쌓인다. 성공도 성공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제대로 세운 도미노는 그다음 것, 그리고 그다음 것을 연달아 넘어뜨리게 되어 있다. 그러니 남다른 성과를 원할 때마다 도미노 넘어뜨리기를 시작하게 할 바로 단 한 가지의 행동을 찾아라. 커다란 삶은 연쇄 반응의 물결을 타고 만들어진다. 성공을 목표로 할 때 중간 과정을 모두 건너뛰고 바로 결론에 이를 수 없다는 말이다. 남다른 성과는 그런 식으로 창출되지 않는다. 당신이 매일, 매주, 매달 그리고 매년 단 하나를 위해 살 때 축적되는 지식과 가속도가 곧 남다른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을 준다. 하지만 이것은 그냥 일어나는 법이 없다. 당신 스스로가 일어나게 만드는 방법 외에는. - 260, 2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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