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자들 - 장강명 연작소설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도장 공장 옥상에 걸렸다. 해소는 살인이었으므로 그들은 ‘죽은 자’들이었고, 해고자 명단에 오르지 않은 사람은 ‘산 자’가 되었다. - 90, 91


이 대목이 이 연작소설의 전체적인 흐름을 관통하는 내용이다. 이 책은 '자르기, 싸우기, 버티기'라는 3부의 목차로 각각 3-4편의 단편을 모아 놓은 연작소설이다. 사람을 자르는 것과 그에 맞서서 버티고 싸우는 것이 엄밀하게 구분되지는 않기 때문에 자르기라는 목차에 구성이 되어 있더라도 싸우기나 버티기에 가까운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공장 밖에서'라는 제목의 단편은(쌍용자동차에서의 분쟁을 각색한 것 같다) '자르기'에 속해 있지만 그 안에는 잘리기를 거부하고 버티고, 버티는 이들을 몰아내기 위해 싸우는 이들이 공존한다. 작가가 생각하기에 가장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 노동 분쟁 사례를 구성한 것일 지도 모르겠다.


제목에 맞춰보자면, 이 단편들은 산 자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반대로 죽은 자들은 노동현장에서 자기의 위치를 끝까지 확보하지 못한 채 밀려나가는 이들이 될 것이다. 불성실한 알바생을 잘라야 하는, 대기발령 중인 사람들 틈에서 혼자라도 살아 남아야 하는, 공장을 돌려 임금을 받기 위해서 공장을 점거하고 버티고 있는 이들을 몰아내야 하는, 프렌차이즈 빵집의 출혈 경쟁 속에서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버텨야 하는, 그다지 높이 평가받지 못하는 학교 졸업자들 중에서 유독 홀로 대기업에 입사해야 하는...


다 읽고 나니 소설이라기보다는 르포같다는 느낌이 책을 펴서 읽기 시작할 때보다 더 강하게 들었다. 이 책은 소설인가, 르포인가, 아니면, 한국의 노동현실이야말로 이처럼 소설같은 현실이라는 것인가? 



사징이 혜미에게 처음 관심을 보인 것은 태국 바이어들을 접대한 회식 때였다.

"자존심이 밥 먹여 주는 것도 아니잖아."
"자존심이 밥 먹여 주는 거 아니지. 그런데 그때는 사람이 밥만 먹고 사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 - 63

연아는 전화를 끊고 누구에게 보내는 건지 모를 반성문을 썼다. 그 순간 가장 도움이 됐던 것은 중훈이 전에 술에 취해 했던 말이었다. 내가 굴욕이라고 생각하면 굴욕이지만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게 굴욕이라고. - 74, 75

진짜 구호도 있었다.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도장 공장 옥상에 걸렸다. 해소는 살인이었으므로 그들은 ‘죽은 자’들이었고, 해고자 명단에 오르지 않은 사람은 ‘산 자’가 되었다. - 90, 91

장사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주영이 이해한 것은 조금 더 나중이었다. 장사는, 돈을 쓰려는 사람을 섬기는 일이었다. 그러려면 그들의 마음을 이해해야 했다. - 135

주영은 동굴에서 사는 물고기들을 상상했다. 빛이 없고 먹을 것이 모자란 좁은 공간에 오래 살면서 눈이 퇴화하고 피부도 투명해진 작고 불쾌한 생물들. 불필요한 기관은 모두 버리고 오직 생존만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존재들. 주영은 하중동 사거리와 구수동 사거리가 그런 동굴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그 맑고 깜깜한 물속에 갇혀 있었다. - 137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될 수 없을 것 같은 열패감과 무력감.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듯한 소외감과 고립감. 자신이 그런 감정들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돌이켜 보자 금방 답이 나왔다. 거는 대외 활동을 다시 해야 했다. 그를 반겨 주고 인정해 주는 곳에 가야 했다. 설사 그들이 자신을 환영하는 이유가 값싼 노동력 때문이라 해도. - 263

악을 쓴다고 다리에 힘이 솟거나, 갈증이 해소되거나, 더위가 가시지는 않는다. 그것은 각성제도 스테로이드도 아니고, 인센티브도 페널티도 아니다. 육체적으로는 더 힘이 들고 더 고통스러워질 따름이다. 그럼에도 신은 대원들이 악을 쓰는 이유를 이해했다. (...)
몇 시간 동안 거울로 제 얼굴을 보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과 대화도 없이 땡볕과 아스팔트 열기 속에서 고행을 하다 보면 자기 자신이 존재한다는 감각이 희미해진다. 그럴 때에는 악을 써서 제 목소리를 귀로 들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현실감을 되찾아야 한다. 그렇게 악을 쓰는 건 일종의 대화이기도 했다. 나 죽을 것 같지만 조금 더 버틸게, 그러니까 너도 버텨 하는. - 264, 265

신은 자신이 어떤 역할극을 수행하는 중이고, 그 자리에서 너무 순도 높은 진실은 피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 267

경제학에서는 인간을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내리는 주체, 이콘이라고 가정한다. 경제학 밖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비판한다. 진실은 언제나 꼬여 있다. 인간은 이콘이 아니다. 하지만 완전히 아닌 것도 아니다. 소설을 쓸 때마다 내 안의 이콘이 그렇게 공들일 필요 있느냐며 딴죽을 걸었다. - 311

이미 세계의 질서가 정해졌는데 거기에 맞서는 기획이 얼마나 가망이 있을까. 질서는 시스템이고 기획은 이벤트다. 이벤트는 시스템을 결코 이길 수 없다. 성 평등 운동, 소수자 인권 운동, 환경 운동, 동물권 운동, 그런 기획들은 정말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거대한 질서가 새로 생길 때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 변화를 잘 타고 미끄러지는 것 정도가 아닐까? - 323

법규가 많아지면 도둑이 늘어날 뿐입니다.(法令滋彰, 盜賊多有) - 329

많은 새들이 날 수 있는 힘이 있지만, 실제로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때는 한정되어 있다. 놓칠 수도 있었던 잠재력을 깨닫고 목적에 맞게 쓴다는 것은 무척 즐거운 일 아닐까?
행정실장이 된 옛 교무 교감이나, 유체 이탈 화법을 쓴 학생 교감을 보며 내가 왜 이마를 찌푸렸는지, 이제는 설명할 수 있다.
그것은 사람의 잠재력과 관련이 있다. 사람은 대부분 옳고 그름을 분간하고, 그른 것을 옳게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 능력을 실제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행정실장과 학생 교감은 날지 않는 새들 같았다. 마지막으로 날아 본 게 언제인지도 모를 비둘기들이었다. - 37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이, 지니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전 정유정 작가의 작품 스타일을 기대하며 읽는다면 실망할 것이다. '이 작가도 이런 소설을 쓰네?'라는 다른 시선을 기꺼이 즐길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사실주의 작가의 판타지는 새로운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신작'을 기다려왔던 내 기대와는 많이 다른 방향이었다. 


프롤로그와 교통사고라는 전개까지는 흡입력이 있게 진행되었지만, 과하다 싶은 유인원과 밀렵에 대한 설명, 유인원의 시선으로 바라보게되는 지난 일에 대한 몽환적 묘사는 "생에 가장 치열했던 사흘에 대한 이야기"라는 표현이 무색하게 이야기로의 몰입을 오히려 방해했다. 


인간과 유인원의 공감, 이어서 벌어지는 다른 두 종의 사이에서의 허물어지는 경계, 그 둘이 다시 분리되는 과정에서 일상에서 소외되고 상처입은 이들이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서로를 치유하는 과정은 나무랄 데가 없다. 그러나 진이와 민주의 관점을 교차하는 편집, 빠른 전개를 방해하는 군더더기 설명과 묘사들은 뭔가 많이 아쉽다. 

막다른 곳에 불시착하는 때가 있다.

시험에 떨어졌다는 건 결과일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근거는 아니었다. 빈둥대는 걸로 보여도 묵묵히 내 할 일을 하고 있었다. ‘뭘 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 할 일의 대부분을 차지하긴 했지만.
고민의 핵심은 하고 싶은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되고 싶은 것도 없었다. 하다못해 넋 나갈 만큼 좋아하는 것조차 없었다. 대신 어떻게 해야 아버지가 좋아할지에 대해선 잘 알고 있었다. - 37

인생에서 최악의 사건은 죽음이 아니었다. 살아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나는 지쳤고, 피곤했다. 삶에 대한 미련도 없었다. - 48

화구가 닫힌 후, 나는 아주 단순한 진실을 깨달았다. 죽은 다음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진실. 무슨 짓을 하든, 얼마나 후회를 하든, 해병대 노인의 부름을 듣던 순간으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뭔가를 하려면 그때 했어야 했다. 뭔가를 할 수 있었던 그때 그 순간에. - 91

삶은 살아있는 자의 것이며, 살아 있는 동안 전력으로 살아야 한다고. 삶아 있는 한, 삶을 선택하는 것이 옳다고 – 293

죽음은 살아 있는 사람의 문제라고 했던 엘리아스의 말은 옳다. 잠에서 깨어난 아침, 나를 맞는 것은 언제나 정적이었다. 밥 먹고, 일하고, 숨 쉬는 매 순간순간 정적의 급류가 나를 휘감고 흔들었다. 어머니와 살던 집에서 기숙사로 거처를 옮겨봤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정적을 잊고 사람을 소리로 채웠다. 저 앞에 놓인 모퉁이를 향해서 온 힘을 다해 달려가는 내 발소리로. 잠시라도 발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불안하고 초조했다. 행여 틈을 비집고 정적이 끼어들까봐 두려왔다. 그 결과, 멈춰 사는 법을 잊어버렸다. - 296

누군가 그 숨소리에 이름을 붙이라고 한다면 나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두려움’이라 부르겠다. 그녀는 나와 함께 있었으나 완벽하게 혼자였다. - 326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토록 잔인한 일인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 328

나는 운명도 어느 지점에선 공평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살아남고자 안간힘을 다해온 자에게 비수를 꽂아서는 안 된다. 그런데 비수를 꽂고도 모자라 숨통마저 끊으려 들고 있었다. 다른 꼴은 다 봐도 너 사는 꼴은 못봐주겠다는 것처럼. - 34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몬 - 권여선 장편소설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점 한 켠에 노란 빛을 발하고 있는 표지가 눈에 띄었다. 그런데 막상 가까이에서 보니 멀리서 볼 때와는 달리, 레몬이 선명하게 찍혀있는 표지가 아니었다. 상당히 흐릿하게 다소 몽환적인 느낌의 레몬이 검은색과 대비되어 그 빛을 발하고 있었다. 소설에서 레몬이라는 노란색은 더이상 애도의 색이 아닌 복수의 색임을 다언을 통해 밝히고 있다. 하지만 그가 의도했던 복수란 결국 가까이에서 볼 수록 희미해져 알 수 없는 무엇이었는지도 모른다. 


언니(혜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쫓기 위한 과정은, 그 죽음을 둘러싼 다언, 태림, 상희 등 각자의 상념으로 재구성된다. 그러나 이런 상념들이 죽음 이면의 진실에 대한 단초는 되지만, 진실 그 자체는 되지 않는다. 결국 책을 다 읽어서도 혜언이 누구에 의해 왜 살해되었는지에 대한 실체적 진실은 파악되지 않는다. 자동차 옆에서 나란히 대기하고 있던 한만우의 스쿠터, 한만우 뒤에 앉아 차 안을 살펴보던 윤태림의 속삭임. 그것은 이미 끝나버린 혜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악마의 교묘한 속삭임이었을까.


결과의 원인을 파악하여 그 원인을 야기한 자를 징벌하는 스토리에서 느낄 수 있는 쾌감 같은 것은 없다. 오히려 암시가 아닌 분명한 확인이었으면 하고 바라던 기대를 얻을 수 없어 답답한 마음이 더 컸다. 한 사람의 생은 마감되었고, 그의 죽음으로 인하여 주변인들의 삶은 차례차례 파괴되기 시작한다. 범인으로 지목된 자는 범인이 아닌 것 같고, 범인일 수도 있을 것 같은 이들은 다른 방식의 고통을 받으며 피폐한 삶을 살아간다. 결국 진실은 알 수 없는 추측으로 남게되고, 인과응보의 순리가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모를 현실만이 계속 된다.

나는 오래전 어느 경찰서 조사실에서 있었던 장면을 상상한다.

상상도 실제만큼이나 고통스럽다. 아니, 실제보다 더 고통스럽기도 하다. 그것에는 한계도 기한도 없다. - 9, 10

그의 삶의 갈피갈피에도 의미 같은 것이 있었을까. 아니, 없었겠지. 없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삶에도 특별한 의미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한다. 그의 삶에도, 언니의 삶에도, 내 삶에도. 아무리 찾으려 해도, 지어내려 해도 없는 건 없는 거라고. 무턱대고 시작되었다 무턱대고 끝나는 게 삶이라고. - 12

하지만, 내가 이 삶을 원한 적은 없지만 그러나, 선택한 적도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 35

나는 점점 어리둥절해졌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내가 언니를 별로 사랑하지 않았던 게 아닌가 하는 의혹에 빠졌다. 그건 무척 슬프고 괴로운 의혹이었다.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라 사랑하지 않았던 게 아닌가 하는 것. 과거형이라 이제는 어떻게 해볼 수도 없는 것. 그대로 결정돼버린 것. - 71, 72

나는 우리가 현실로 돌아오지 못했음을 알았다. 비틀린 경로로 우회하지 않고는 다시는 현실로 돌아올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자기 자신을 놓칠까봐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머리를 흔들거나 눈을 깜빡이는 불안증 환자들처럼 끊임없이 무언가를 행하고 취소하고 반복하는 경련의 삶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 88

어떤 삶은 이유 없이 가혹한데, 그 속에서 우리는 가련한 벌레처럼 가혹한 줄도 모르고 살아간다. - 145

끔직한 무엇을 멈출 수 없다는 것, 그게 한 인간의 삶에서 어떤 무게일지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 190

그들은 죽었고, 나는 살아 있다. 살아 있음,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면 그밖의 것은 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살아 있고 하루하루 살아간다. 엄마와 어린 혜은, 아무도 모를 죄책감과 기나긴 고독이 내 곁에 있다. - 19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버드 스트라이크
구병모 지음 / 창비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구병모의 판타지를 좋아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On Your Mark>나 제임스 카메론의 <Avatar> 같은 영화나 소설에서 한 번쯤 읽어 봤을 법한 설정이지만, 각자가 속한 사회에서 주류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이 자신이 속한 경계를 넘어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피할 수 없는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는 볼 때마다 설레기도 하지만 안타깝기도 하다. 이런 설정이 반복되지만 쉽게 질리지 않는 까닭은, 그만큼 우리의 삶이 자신이 속한 집단과 경계에 얽매여 있어서 그것으로부터 쉽게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할테다. 소속과 경계를 넘어서면 우리는 결국 아무 것도 아닌 하나의 존재에 지나지 않는 것을...

열사의 대지라도 한밤중에는 기온이 5도까지 떨어진다.

- 그건 오래전의 이야기고 우리는 우리지. 신화는 우리를 있게 했지만 우리가 신화를 따라갈 수는 없어. 그로부터 몇천 년이나 세월이 흘렀는지 모르는데, 우리와는 모습도 능력도 달랐을 초원조의 행적을 그대로 답습할 필요도 없고. - 17

익인들은 나와 미래의 발걸음을 함께해 달라는 의미로, 청혼 상대에게 자신의 가죽신을 벗어 내민다. 대개는 꼭 맞지 않게 마련인 상대방의 신을 신고, 훗날 고난이 닥쳤을 때 배우자의 입장에 서서 한 번 더 고민하고 이겨 내겠다는 다짐을 부탁하는 과정이다. 신체적 특성상 날개를 꺼내서 깃털이라도 한 장 뽑아 주는 게 더 어울리겠지만, 하늘을 자유로이 날되 살아가기 위해서는 언제고 땅에 발을 디뎌야 해서다. 땅에 두 발을 내려놓고 걷는다는 것은 날 줄 아는 인간들에게도 각별한 의미다. - 72, 73

나는 그 사람이 도시에서 무엇을 했는지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 같은 건 알고 싶지도 않았고 묻지도 않았어. 우리에게 귀한 것은 이름뿐이었으니까. 서로를 부르고 대답할 수 있는 이름. 부르는 순간 세상에 단 하나만이 존재하는 것 같은, 평화와 친밀감과 흥분을 동시에 주는 이름. 단지 소리 내어 부르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체취를 상기할 수 있는, 동시에 서로의 껍질 안쪽에 자리한 영혼이 돌출되고 마는, 그런 이름 말이야. - 107

세상의 모든 엄마가 자식을 낳아 놓은 것에 대해 일일이 죄책감을 느끼거나 사죄하면서 사는 건 부당하고도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하거든. 사람은 누구나 그날그날의 감정에 충실할 권리가 있고, 그 결과로 인한 짐을 제 것이 아님에도 나눠서 져야 할 때가 있지. - 113

사람은 왜 자기와 다른 것이나 알지 못하는 것이나 알지 못하기에 비로소 아름다운 것의 비밀을 캐내려는 본능을 타고난 것인지. - 197

동정이어서 안 될 건 또 뭐란 말인가. 동정 역시 살아 있는 사람이 누군가에게 혹은 무언가에 가질 수 있는 무수한 현실적인 감정 가운데 하나일 뿐인데. 동정이 아니라면, 전폭적으로 그 삶을 끌어안고 그 존재를 지지하는, 진실하며 불순율 영에 육박하는 무공해의 애정이라는 게 혹시 존재한다면, 그것이 평생 변질되지 않고 보존되기라도 하나. 그 감정에 영원히 끝이 오지 않기ㄷ라도 하나. 어차피 이 감정을 무슨 이름으로 부르든 간에,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최초는 변색 내지 탈색될 운명이라면. - 326, 327

그 어떤 새도 영원히 허공에서만 살 수 없고 언젠가 땅에 내려앉아서 두 발을 더뎌야 한다면, 네가 그의 유일한 영토이니까. - 340

그가 내려앉을 유일한 땅 한 뼘이 되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나는 가만히 앉아서 누군가의 휴식처로 남을 마음이 없어. 그래서 기다리기보다는 내가 땅을 떠나기로 한 거야.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알고 그럼에도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 유한한 인간이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론이라고 생각하니까. - 34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완벽한 공부법 - 모든 공부의 최고의 지침서
고영성.신영준 지음 / 로크미디어 / 2017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읽다보면 실망할 수도 있다. 이 책은 제목 처럼 완벽한 공부법을 표방하면서, 믿음, 메타인지, 기억, 목표, 동기, 노력, 감정 등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저자들이 참고한 많은 서적들의 이야기를 잘 정리해놓은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저자들이 '창의성'편에서 스티브 잡스의 말을 인용한 것처럼 "창의성은 단지 사물을 잇는 것"이라고 한다면, 기존의 교육학, 인지심리학, 행동경제학, 뇌과학의 지식들을 이 한 권에 담아 요약하고 정리한 것도 새로운 시도이자 성과라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공부법'이라고는 했지만, 흔히 말하는 전략이나 공략법은 아니며, 저자들이 중시하는 성장형 사고방식을 통해 지적인 성장을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보아야 한다. 시험이라는 단기간의 목표가 없는 사회인들에게는 어쩌면 이러한 근본적인 사고의 확립이 스스로를 성장시켜가는 디딤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열거했던 목차 중 믿음, 메타인지, 기억, 목표 외에도 사회성, 몸, 환경, 창의성을 강조한 것도 눈에 띈다. 공부라는 것이 단지 한 자리에 앉아 열심히 파고드는 것만이 아니라는 점을 일깨워준다. 


마지막 3개의 장인 독서, 영어, 일은 앞서 설명한 공부법의 실천편이라고 할 수 있다. 독서는 저자 중 한 명인 고영성의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요약한 것이고, 영어는 이들과 함께 팟캐스트에 등장했던 필립이라는 사람의 영어공부 방법이다. 책을 두 명이 공저로 썼고, 그 둘이 각각의 장점이 있는 부분을 집필한 것은 알고 있으나, 매 챕터 말미에 '신박사의 통찰', '고작가의 심화'를 굳이 구분해 놓은 것이나 "고작가는~", "신박사는~"이라는 주어가 너무 자주 등장하는 것은 (또 자화자찬이 적지 않아서) 그다지 좋은 편집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참고문헌을 굳이 다 읽고 소화할 필요 없이 이 두꺼운 책 한 권을 통하여 보편적인 방법에서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는 공부법을 찾는다면 꽤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차려 놓은 것은 많다. 무엇을 취하고, 그걸 자기 것으로 할 수 있는지는 각자가 노력해야 할 사항이다.

기대를 잃어버리는 가장 큰 이유는 성공의 경험을 맛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패가 누적되면 자신의 미래에 비관적인 관점을 가질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공의 경험을 할 수 있을까? 기대수준을 낮춰 작은 성공에 도전하는 것이다. - 22

몰입이 주는 행복감은 순간적인 쾌감이라기보다 몰입한 뒤 느끼는 감정이다. 어떤 일을 하면서 시간이 흐르는 것도 모른 채 열심히 하는 만족에서 오는 것이다. 그래서 몰입하는 순간 자의식이 사라지지만, 몰입 이후에는 더 큰 자아존중감을 느끼게 된다.
게다가 과업 수행으로 자기 성장을 느끼기 때문에 더 행복하다. 최대한의 노력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일이 숙련되면서 어느 순간 그 일이 쉬워지고 지겨워진다. 그래서 몰입 상태에 다시 들어가려면 과제 난이도를 더 높여야 하고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자연스럽게 실력이 느는 것이다. - 117, 118

하지만 그 꿈이, 비전이, 원대한 목표가 ‘위험한’ 이유는 우리에게 ‘포기’를 수시로 종용하기 때문이다. 무언가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해 보지만 그 노력을 다 모은다 하더라도 가고자 하는 목표에 비해서 너무나 작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 순간이 위험하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의미를 찾지 못하고 해도 될 것 같지 않은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위험을 극복할 수 있을까? 바로 ‘단기 목표’를 세우는 것이다. - 156

외재적 보상이 단순히 과제를 수행했다는 사실 자체로 주어질 때는 내재적 동기에 부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지만 ‘성장’의 증거로 주어진다면 내재적 동기가 오히려 더 올라갈 수 있다. 그래서 학교에서 1등 상이나 우등상을 주기보다 개인 최고 기록상, 성장상 같은 보상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자신이 성장하고 능력이 향상되었다고 느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만약에 외재적 보상으로 자신의 능력 향상을 느끼고 자신의 잠재력에 대해 기대감을 품게 된다면 외재적 보상이 사라진 다음이라 할지라도 동기부여가 지속될 가능성이 커진다. 왜냐햐면, 한두 번의 외재적 보상이 <믿음> 장에서 살펴보았던 기대, 성장형 사고방식, 자기효능감 등을 선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은 매우 강력한 내재적 동기를 수반한다. - 166

"큰 영향을 미치거나 성공적인 아이디어를 생산해 낼 확률은 창출해 낸 아이디어의 총수가 많을수록 높아진다."
"아이디어 창출에서는 양이 질을 예측하는 가장 정확한 지표이다." - 345

우리는 독서하는 뇌가 아니다. 그래서 독서가 어렵다. 하지만 뇌의 가소성으로 독서하는 뇌로 변할 수 있다. 어떻게? 책을 많이 읽음으로써 가능하다. 처음부터 양서를 정독하려고 하지 말자. 자신이 초보 독서가라면 편안한 마음으로 손이 가는 대로 책을 읽자. 하지만 다독을 하자, 매일 한 시간 이상 2~3달 꾸준히 독서를 하면 습관이 형성되는데 이때부터는 서서히 독서가 삶의 일부분처럼 느껴진다. 책 권수를 늘려 나가면서 자신감을 얻자. 그리고 그렇게 만나 본 책 중에 소위 씹어 먹고 싶은 책이 등장하면 정독을 하도록 하자. 처음에는 계독으로 시작해 한 분야의 준전문가가 되고 그다음 남독을 통해 비판적 사고, 창의성, 겸손을 배우도록 하자. - 38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