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라 문서
파울로 코엘료 지음, 공보경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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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대순환 속에는 승리나 패배 같은 개념이 없다. 오직 변화가 있을 뿐이다.
겨울은 맹위를 떨치며 줄곧 버티려 하나, 결국 꽃과 행복을 가져오는 봄의 도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여름 또한 온기가 땅에 유익하다 믿으며 따뜻한 나날을 영윈히 지속시키려 하나, 결국 땅을 쉬게 하는 가을의 도래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가젤은 풀을 먹고, 사자에게 잡아먹힌다. 이런 현상을 통해 신께서 보여주시려는 것은 누가 제일 강한 존재인가가 아니라 죽음과 생명의 순환이다.
자연의 대순환 속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 그저 거쳐가야 할 단계가 있을 뿐이다. 이 이치를 깨달을 때 우리 마음은 자유로워지며, 역경의 시기를 받아들이게 되고, 영광의 순간에 도취되어 그 순간이 영원할 것으로 착각하지 않게 된다.
역경의 시기도, 영광의 순간도 다 지나간다. 힘든 시절이 지나면 좋은 시절이 온다. 우리가 육신에서 해방되어 ‘신성한 힘’을 찾아낼 때까지 이 순환은 계속된다. - 30쪽

포기하는 사람이 패자이고, 그 외에는 모두 승리자이다.
언젠가 그대가 귀기울여 듣는 자들을 향해 역경의 시절을 자랑스레 이야기할 날이 올 것이다. 그들은 존경하는 마음으로 그 이야기를 들으며 세 가지 중요한 가르침을 얻을 것이다.

행동할 적기가 올 때까지 참고 기다려라.
다음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마라.
상처를 자랑스럽게 여겨라.

상처는 피부에 새겨진 훈장이다. 상처는 그대가 오랫동안 전장에서 경험을 쌓았음을 나타내는 증표이므로, 적들은 그 상처를 보고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그렇기에 그대와의 충돌을 피하고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려 들 때도 종종 있을 것이다.
상처를 낸 칼보다 상처 그 자체가 더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 33쪽

패배자는 패배한 사람이 아니라 실패를 선택한 사람이다.
패배는 특정한 전투나 전쟁에서 지는 것을 의미한다. 실패는 아예 싸우러 나가지도 않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간절히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때 패배했다고 느낀다. 실패는 애초에 무언가를 꿈꿀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아무것도 기대화지 마라. 그러면 실망도 없을 것이다’가 실패의 표어이기 때문이다.
패배의 끝에 우리는 다시 떨치고 일어나 싸우러 나간다. 그러나 실패의 끝에는 아무것도 없다. 평생 그렇게 좌절한 채로 살아갈 뿐이다. - 37, 38쪽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내일은 다를 거야.’
그러나 내일이 오면 그들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질문이 마음에 떠오른다. ‘해봐야 소용없으면 어쩌지?’
그래서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싸움에 져본 적 없는 사람은 불행하다! 인생에서 승자가 될 일도 없으니. - 40쪽

홀로인 때가 없으면 자기 자신에 대해 알 수가 없다.
자기 자신에 대해 알지 못하면 내면의 공허를 두려워하게 된다.
하지만 내면의 공허라는 것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영혼에는 발견해주기를 기다리는 광대한 세계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온전한 힘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존재하고 있지만 너무나 새롭고 강력한 세계이기에, 우리는 차마 그 존재를 인정하길 두려워한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게 되면 우리는 우리가 생각보다 멀리 갈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한다. - 44쪽

그들은 종교라는 것이 신비를 공유하기 위해 생겨난 것임을 이해하지 못한다. 타인을 억압하거나 개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기 위해 세상에 왔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신의 기적은 일상의 삶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 54쪽

쓸모없는 삶이란 없다. 모든 영혼은 나름의 이유가 있어 지상에 내려온 것이다.
진정으로 타인을 돕는 사람들은 억지로 쓸모 있는 삶을 살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저 유익한 삶을 이끌어갈 뿐이다. 남들에게 이래라저래라 조언을 하지도 않는다. 그저 조용히 모범을 보이며 살아간다.
자신이 늘 바라온 삶을 사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타인에 대한 비판을 그만두고 자신의 꿈을 이루는 데 집중하라. 그런 삶이 대단찮게 여겨질지도 모르지만, 만물을 주관하는 신의 관점에서는 남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그런 삶이야말로 세상을 개선하려는 신의 뜻에 부합한다. 따라서 신은 그런 삶을 사는 이에게 매일 더 많은 축복을 내릴 것이다. - 56, 57쪽

아름다움은 같음이 아닌 다름 속에 존재한다. 기다란 목이 없는 기린, 가시 없는 선인장을 어느 누가 상상할 수 있겠는가. 우리를 둘러싼 산봉우리들은 그 높이가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웅장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다. 산봉우리들의 높이를 전분 똑같이 만들어버리면 더 이상 그런 분위기를 내지 못할 것이고 우리의 우러름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우리를 놀라게 하고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은 바로 불완전함이다. - 76쪽

인생의 큰 목표는 사랑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침묵이다. - 91쪽

군더더기를 모두 덜어내고 단순함과 집중에 초점을 맞추면 우아함을 얻을 수 있다. 자세가 단순할수록 더 좋고, 수수할수록 더 아름답다.
단순함이란 무엇일까? 단순함은 인생의 진정한 가치와 맞닿아 있다.
하늘에서 내린 눈이 고운 이유는 한 가지 색깔이기 때문이다.
바다가 멋진 이유는 표면이 고르기 때문이다.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는 모래와 바위만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하나를 좀더 면밀히 들여다보면, 그것들이 얼마나 심오하고 완전한지를 알게 되고 그 귀함을 깨닫게 된다.
삶에서는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훌륭한 것이기도 하다. 단순한 것들은 스스로 그 가치를 드러낸다. - 122쪽

나는 잠들어, 삶은 그저 행복이라는 꿈을 꾸었네.
깨어보니 삶은 의무였네.
의무를 다하고 보니 삶은 행복이었네. - 127쪽

성공만을 좇는 사람은 오히려 성공하기 어렵다. 성공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살다보면 주어지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강박은 성공을 일구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강박적으로 일하다보면 어느 길로 가야 할지 혼란에 빠지고 삶의 기쁨도 느끼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 137쪽

사랑은, 늘 같은 모습으로 변화를 거부하기 때문이 아니라 계속 변화하기 때문에 오래도록 지속되는 것임을, 사랑의 힘은 그 모순됨에 있음을 깨닫게 하소서. - 144, 145쪽

피곤에 지쳐도 마음의 힘으로 계속 걸어갈 수 있음을, 마음마저 지치면 믿음의 힘에 의지해 나아갈 수 있음을 알게 하소서.
사막의 모래들 가운데서 다름의 기적을 볼 수 있게 도와주시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사막의 모래들이 똑같아 보여도 전부 다르듯, 사람은 누구나 생각하고 행동하는 바가 다름을 깨닫게 하소서. - 145쪽

증오를 증오로 갚지 말고 정의로움으로 갚아라.
세상은 적군과 아군으로 나뉘는 게 아니라 약한 자들과 강한 자들로 나뉜다.
강한 자들은 승리했을 때 아량을 베푼다.
약한 자들은 승리했을 때 무리를 지어 패자들을 괴롭힌다. 그 중에서도 제일 약해 보이는 자들을 골라 괴롭힌다. 그들은 승리와 패배가 일시적인 것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 1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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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 우리 시에 비친 현대 철학의 풍경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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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트가 생각하기에 사유란 `타자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무사유란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려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지요. 히틀러에게 받은 명령서에 서명하면서 아이히만은 그 명령을 수행햇을 때 자신의 서명이 그 서명과 관련된 사람들에게 어떤 효과를 미치는지 `사유`했어야만 합니다. 다시 말해 자신이 서명한 수용소 수감 명령서를 받았을 때 유대인들이 과연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지 `사유`해야만 했다는 것입니다. 수용소 공간이 부족해지자 이제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보내야만 한다는 정책이 채택되었을 때, 가스실로 걸어 들어가는 유대인들의 극심한 공포를 그는 `사유`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아이히만은 반드시 사유해야만 했을 것을 전혀 `사유`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 78, 79쪽

막스 베버(Max Wever, 1864-1920)가 말한 것처럼 자본주의가 발달한 현대사회에서는 분업과 전문화가 급속도로 진행됩니다. 이 때문에 같은 조직에 속해 있어도 우리는 옆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지조차 알기 힘든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가 <심판(Der Prozess) 1925>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도 바로 이 점이지요. - 79쪽

모든 일들이 너무나 전문화되고 분업화되어 있어 우리는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도대체 어떤 일인지,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거의 반성할 틈이 없습니다. 그저 내게 주어진 서류를 정리하고 거기에 서명하고 있을 따름이지요. 그 서류에는 유대인의 검거와 수용소 수용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그렇다며 아이히만이 저지른 악, 즉 무사유로 인해서 발생한 악은 도처에서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누구든지 제2의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 79, 80쪽

바타이유의 생각은 `금지된 것은 인간에게 강력한 욕망을 부여한다`는 통찰을 전제로 전개됩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경제 사정으로 인해 지금 내가 구매할 수 없는 핸드백에서 느꼈던 감정과도 유사하게, 가질 수 없는 것은 대개 인간에게 강렬한 열망을 심어 주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런 금지와 금기의 대상이 성적인 대상에 적용될 때 우리가 가지는 열망이 바로 에로티즘입니다. 따라서 에로티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금지와 금기 자체라고 할 수 있지요. 사실 이 때문에 바타이유는 에로티즘이 동물들의 성적인 충동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주장했던 겁니다. 동물들에게는 금지나 금기에 대한 의식 혹은 그러한 제한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110, 111쪽

바타이유에게 결혼은 `성행위와 존경의 결합된 형태`입니다. 결혼이란 주어진 금기에 입각하여 이루어진 합법적 성행위 제도입니다. 다시 말해 결혼을 한다는 것은 배우자를 제외하고는 다른 타인과는 결코 성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결혼 생활에 충실하면, 다시 말해 금기를 잘 지키면 사회적으로 인정과 존경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보면 이러한 사회적 존경의 논리 이면에는 금기를 넘어서려는 욕망이 강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존경이란 이와 같은 강렬한 금기 위반에 대한 욕망을 잠재우려는 미끼라고도 볼 수 있지요. - 114, 1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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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대 위의 까치 - 진중권의 독창적인 그림읽기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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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몸통에 커다란 머리를 가진 역사의 천사는 아마도 지식인을 가리킬 것이다. 천사의 작은 몸통은 현실의 무능함을, 커다란 머리는 과도하게 발달한 그의 관념성을 상징한다. 정의는 관념이고, 폭력은 물질이다. 그리고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어디까지나 원시적인 물질의 힘이다. 그 때문에 천사는 날개를 편 채로 거센 바람에 밀려 끝없이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다. 부조리야말로 삶의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 정상적 상태라는 것, 그것이 <교수대 위의 까치>가 연출하는 풍경만큼이나 을씨년스러운 세상의 진리,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 말하지 않는 비밀인 모양이다. - 머리말

르네상스의 인간들이 신을 향하던 눈을 자신에게로 돌렸을 때, 그들이 제일 먼저 맞닥뜨린 것은 인간 내면의 야수성이었다. 르네상스 시대에 갑자기 광우가 문학과 예술의 주제의 중심으로 떠오른 것은 이 때문이다. 문제는 이 광기를 대하는 태도이다. 인문주의자들의 텍스트는 인간의 광기에 화들짝 놀라 그것을 서둘러 이성의 지배 아래 도덕적으로 가두려 한다. - 90, 91쪽

어느 독일 주간지의 기사에 따르면, 브뤼헐은 실은 민중의 영웅이 되는 데 필요한 자질들, 가령 ‘당파성과 낙관주의, 휴머니즘적 진보의 신념’ 중 어느 하나도 갖고 있지 않았다고 한다. 진보주의는 인간의 노력에 의해 세계가 바뀔 것이라는 믿음을 전제한다. 하지만 <이카루스의 추락>이나 <바벨탑의 건설>의 예가 보여주듯이, 그의 작품에서 인간의 노력은 대개 좌절과 실패로 끝난다. 게다가 브뤼헐은 자신이 민중을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지도 않다. <소경의 인도>가 보여주듯이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모두가 구렁텅이에 빠질 뿐이다. - 108쪽

그렇다면 그는 민중을 사랑했을까? 그는 성직자를 풍자하고, 탁발승들을 조롱하고, 고위 관료를 우롱하고, 스페인 세리(稅吏)를 비난하고, 부유한 시민을 비판했다. 하지만 가난한 민중들 역시 그의 신랄하고 날카로운 풍자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그는 농민들의 어리석음 역시 공평하게 비웃었다. 대중을 바라보는 브뤼헐의 시선은 때로 고대의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보여준 인간 혐오에 가까울 정도읻다. 사회주의 리얼리스트들은 ‘대중이 역사의 주인’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다. 하지만 브뤼헐은 민중을 이상화하지 않는다. 민중의 어떤 부분은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나, 그들의 다른 부분에는 차가운 냉소를 보낸다. - 108쪽

최고의 풍자는 역시 자기풍자이다. 진정한 풍자는 세상의 모든 것을 거쳐 마침내 자기 자신까지 비웃을 때에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이다. - 112쪽

미술사학자 알로이스 리글(Alois Riegl, 1858~1905년)에 따르면, 미술사를 움직이는 것은 ‘능력(Können)’이 아니라 ‘의지(Wollen)’라고 한다. 현대 화가들이 유년기로 돌아가는 것은 사실적 묘사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들에게는 다만 그럴 ‘의지’가 없을 뿐이다. 미술사를 사실적 재현 기술이 발전하는 과정으로 볼 때, 아이들의 그림은 채 발달하지 못한 미숙함의 산물일 뿐이다. 하지만 미술사를 상이한 ‘의지들’이 교차하는 장으로 바라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이 경우 아이의 그림은 어른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예술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현대의 화가들이 아이들의 그림에 주목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 128, 129쪽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실물을 꼭 빼닮게 그리는 기술은 완성에 도달했다. 거기에 19세기에 카메라까지 발명되면서, 도처에서 사물을 꼭 빼닮는 이미지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실물을 빼닮은 이미지에 그다지 깊은 인상을 받지 않는다. 이는 화가들에게 커다란 위기를 의미했다. 그리하여 그들에게는 새로운 출발이 필요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다시 시작하려면 역시 근원으로 돌아가야 하는 법이다. 그리하여 현대의 화가들은 사회화를 겪지 않은 어린이, 문명화를 거치지 않은 미개인의 그림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거기서 그들은 르네상스 이후의 관행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예술의지’를 찾았던 것이다. - 129쪽

에스토니아의 기호학자 유리 로트만(Yuri Lotman, 1922~1993년)은 정물화에 대한 기호학적 분석을 제공해준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모든 문화적 현상 속에는 ‘낱말과 사물의 대립’이 존재하는 바, 정물화는 이 두 요소가 교차하는 지점에 놓여 있다고 한다. 낱말과 사물의 팽팽한 긴장 속에서 정ㅁ루화는 서로 대립되는 두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하나는 그림이 낱말이 되는 길로, 그 대표적인 예는 바니타스 정물이다. 거기서 그려진 사물은 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낱말일 뿐이다. 다른 하나는 그림이 사물을 지향하는 길로, 그 대표적인 예가 트롱프뢰유 정물이다. 여기서 그려진 사물은 그려지지 않은 진짜 사물로 착각되거나 아예 그것을 대체하려 한다. - 166, 167쪽

페테르 클라스(Pieter Claesz, 1597~1661년)의 <바니타스 정물>을 보자. 여기에는 두개골과 시계, 낡은 책, 꺼진 촛대, 넘어진 술잔 등 다양한 모티프가 등장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사물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실은 삶의 ‘무상함’을 뜻하는 어휘들, 즉 생긴 것은 달라도 모두 같은 낱말로 번역되는 동의어들이다. 반면, 기스브레히츠의 트롱푸뢰유는 어떤가? 그것은 사물을 가리키는 기호에 머물지 않고 아예 자기가 사물이 되려고 한다. 바니타스와 트롱프뢰유의 대립은 거저 사물과 낱말의 경계에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더 높은 의미의 차원에서도 둘은 대립한다. 트롱프뢰유가 사물의 소유에 집착한다면, 바니타스는 그 반대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허망하다고 말하지 않는가. - 1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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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쌀 한 알 - 일화와 함께 보는 장일순의 글씨와 그림
최성현 지음 / 도솔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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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글이다.
"가장 훌륭한 지도자는 사람들이 그가 있다는 정도만 알고, 그 다음 지도자는 사람들이 친근하게 여기며 받들고, 그 다음 지도자는 무서워하고, 그 다음 지도자는 경멸한다."- 100쪽

무엇을 이루려 하지 마라
앉은 자리 선 자리를 보라
이루려 하며는 헛되느니라
자연은 이루려 하는 자와 함께 하지 않느니라 - 101쪽

어느 시대나 깨어서 살고자 했던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돌아온다. 모든 것은 돌아온다. 한 생각조차 그냥 사라지지 않고 돌아온다."
현재는 과거의 결과이고, 미래는 현재의 결과다. 그러므로 내일의 자기 삶이 알고 싶은 사람은 오늘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면 된다. - 105쪽

오늘은 입추
산길을 걸었네
소리없이 아름답게 피었다 가는
너를 보고 나는 부끄러웠네 - 129쪽

장일순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사회를 변혁하려면 상대를 소중히 여겨야 해. 상대는 소중히 여겼을 적에만 변하거든. 무시하고 적대시하면 더욱 강하게 나오려고 하지 않겠어? 상대를 없애는 게 아니라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면 다르다는 것을 적대 관계로만 보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 말이야."
김기봉은 그것을 풀어 이렇게 설명했다.
"내 것이 옳다고 하는 매우 이데올로기적인 틀을 갖고 여기에 동의하는 사람들끼리만 판을 짜려고 하는 걸로는 세상의 큰 변화는 어렵다는 말씀을 하시고 싶었다고 생각합니다."- 1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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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란 무엇인가 1 - 소설가들의 소설가를 인터뷰하다 파리 리뷰 인터뷰 1
파리 리뷰 지음, 권승혁.김진아 옮김 / 다른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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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가 언제나 우리보다 먼저 어떤 생각을 해냈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 자체는 독창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독창적이지 않은 생각에서 소설을 만들어냄으로써 그 생각을 독창적인 것으로 만들 수가 있습니다. 남자는 여자를 사랑한다, 이건 전혀 독창적인 사고가 아니지요. 하지만 문학적인 솜씨를 발휘해서 남녀의 사랑에 대해 멋진 소설을 쓴다면, 그것은 절대적으로 독창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움베르토 에코) - 37쪽

저는 희극적 감정이라는 것은 인간이 자신들이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아는 유일한 동물이라는 사실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답니다. 다른 동물들은 그걸 알지 못해요. 동물들은 자신이 죽는 순간에, 그 자리에서만 그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들은 모든 인간은 죽는다라는 진술 같은 걸 이해할 수가 없답니다. 우리는 이해할 수 있지요. 아마 이것이 종교나 제의 등등이 존재하는 이유일 거에요. 희극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향한 인간의 본질적 반응이라고 생각합니다. (움베르토 에코) - 59쪽

글을 쓰는 공간은 잠을 자거나 배우자와 공유하는 공간과 분리되어야 한다고 항상 생각했습니다. 집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의식ritual이나 세부적인 일들이 상상력을 죽이지요. 그런 일들은 제 안에 들어 있는 일종의 악마를 죽여버립니다. 가정적이고, 길들어진 하루 일과는 상상력을 사용해야 하는 다른 세계에 대한 열망을 사라지게 만들어요. 그래서 여러 해 동안 저는 사무실이나 집이 아닌 다른 작은 장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오르한 파묵) - 71쪽

반면에 소설가는 본질적으로 개미처럼 끈기 있고 천천히 장거리를 나아가는 사람이에요. 소설가는 악마적이고 낭만적인 비전 때문이 아니라 끈기 때문에 인상적이지요. (오르한 파묵) - 74쪽

제가 사유하는 방식에서는 책 한 권을 여러 장으로 나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소설을 쓸 때 줄거리 전체를 미리 생각하고 있다면 - 대개는 미리 알고 있지요. - 전체 줄거리를 각 장으로 나누어서 각각의 장에서 일어나게 하고 싶은 세부 사항들을 생각하지요. 그렇지만 반드시 1장에서 시작해서 순서대로 써 나가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글이 막히게 되더라도 별로 심각한 문제가 되지 않지요. 생각이 가는 대로 계속 쓰면 되니까요. 첫 장부터 다섯 번째 장까지 쓰고 나서 재미가 없으면 15장으로 넘어가서 거기서부터 계속 쓸 수도 있답니다. (오르한 파묵) - 75쪽

소설을 쓸 때는 네 시에 일어나서 대여섯 시간 일합니다. 오후에는 10킬로미터를 달리거나 1.5킬로미터 수영을 합니다. (둘 다 할 때도 있고요.) 그러고 나서 책을 좀 읽고 음악을 듣습니다. 아홉시에 잠자리에 들지요. 이런 식의 일과를 변함없이 매일매일 지킵니다. 반복 자체가 중요해지지요. 일종의 최면이 되거든요. 저는 좀 더 깊은 정신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 자기 최면을 겁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예를 들어 6개월에서1년 동안 이런 일과를 반복하려면 심신이 상당히 강해야 되지요. 이런 점에서 긴 소설을 쓰는 것은 서바이벌 훈련과 비슷해요. 신체적인 강인함이 예술적인 감수성만큼이나 중요하거든요. (무라카미 하루키) - 122, 123쪽

우리는 마음속에 제정신이 부분과 제정신이 아닌 부분이 함께 있어요. 이 두 부분을 타협해가면서 사는 거지요. 이게 제 신념입니다. 저는 글을 쓸 때 특히 제 마음의 제정신이 아닌 부분을 잘 볼 수 있어요. 아니, 제정신이 아니라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군요. 오히려 비일상적인, 비현실적인 부분이라고 해야 할 겁니다. 저는 물론 현실세계로 돌아오고 제정신을 되찾지요. 하지만 제정신이 아닌 부분, 즉 아픈 부분이 없다면 저는 존재하지 않을 거에요. 다시 말하지면, 주인공은 이 두 여성에 의해서 지탱되는 것이랍니다. 둘 중의 하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살아갈 수 없어요. (무라카미 하루키) - 127쪽

19세기와 20세기에 작가들은 실제를 보여줬습니다. 그게 그 작가들의 임무였지요. <전쟁과 평화>에서 전장을 너무나 자세하게 묘사해서 그게 진짜라고 믿었지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저는 제가 그리는 것이 실제인 척하지 않아요. 우리는 가짜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계 속에 살면서 가짜 저녁 뉴스를 보고 가짜 전쟁을 수행하지요. 우리 정부도 가짜에요. 하지만 우리는 이 가짜 세계에서 실제를 찾습니다. 우리가 만드는 이야기들도 마찬가지랍니다. 우리는 가짜 장면들을 지나쳐 가지만, 이 장면들을 걸어서 통과하는 우리 자신들은 실제이거든요. 상황은 진짜에요. 그 상황에 몰입하고 진정한 관계를 맺는다는 의미에서 진짜라는 것이지요. 그 점이 제가 쓰고 싶은 것이랍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 137쪽

저는 이 이야기들은 이론이나 어떤 철학적인 무게가 없는 일종의 시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일생에는 이상한 일들이 많았고, 또 예상할 수도 없고 있을 법하지도 않은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더 이상 무엇이 현실인지 확신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현실의 역학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며,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한 증거를 모으는 것이며, 가능한 한 충실하게 그것을 기록하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저는 제 소설에서 이러한 접근법을 써왔습니다. 이것은 방법이 아니라 신념에 따른 행위입니다.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 대로가 아니라, 또는 이렇게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대로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일을 그대로 제시하는 것 말입니다. 물론 소설은 허구입니다. 따라서 (그 용어의 엄밀한 의미에서 보자면) 소설을 거짓을 말합니다. 그렇지만 모든 소설가는 거짓을 통해서 세상에 관한 진실을 말하려고 애를 씁니다. (폴 오스터) - 165쪽

‘새 작품을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한 어떤 것도 미리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문제 해결 방법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문제 자체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이야기를 쓰기 시작할 때 제게 저항하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려 하지요. 저는 문젯거리를 찾습니다. 종종 글을 처음 쓸 때 확신이 서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그 이유는 글쓰기가 어려워서라기보다는 글쓰기가 충분히 어렵지 않기 때문입니다. 거침없이 글을 쓴다는 것은 아무것도 일어나고 있지 않다는 증표입니다. 거침없이 글을 쓴다는 것은 실제로는 글쓰기를 멈춰야 한다는 증표이지요. 한 문자에서 다른 문장으로 넘어갈 때 어둠 속에서 헤매게 되면, 계속 글쓰기를 해야 한다는 확신이 생깁니다. (필립 로스) - 240쪽

물고기가 헤엄치거나 새가 나는 것과 달리 제게 글쓰기는 자연스런 일이 아닙니다. 글쓰기는 어떤 종류의 자극 또는 특별한 긴박감하에 이루어집니다. 글쓰기는 정교한 가면을 씀으로써 개인적인 것을 공적인public 행위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 단어의 두 가지 의미인 공적이며 대중적이라는 점에서 말입니다.) 글쓰기는 당신의 도덕적인 성품에는 낯선 특질을, 당신이란 존재를 통해 빨아올리는 매우 고된 정신적 훈련이 될 수 있습니다. (필립 로스) - 249쪽

제가 바뀌어서 다른 사람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곧 제 삶이 결국에는 전혀 바뀌지 않을 거라는 걸 알게 되었답니다. 어쨌든 눈에 띄든 아니든, 제가 알아볼 수 있는 방식으로는 바뀌지 않았답니다. 그때 예술은 제가 시간이 있을 때, 제가 그렇게 할 여유가 있을 때 추구할 수 있는 어떤 것이라는 것, 단지 그런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술은 사치이고 그것은 저 자신이나 제 삶을 바꾸지 않을 거라는 거죠. 예술이 어떤 일도 일어나게 하지 않는다는 걸 어렵게 깨달았답니다. (레이먼드 카버) - 347쪽

문학과 목수 일 모두 매우 힘듭니다. 무엇인가를 글로 쓴다는 것은 탁자를 만드는 것만큼 힘이 들어요. 이 두 가지 모두 나무처럼 딱딱한 재료인 현실을 이용해 일합니다. 온갖 기교와 기술을 사용해야 하고요. 근본적으로 이 두 가지는 손쉽게 처리할 수 있는 마술 같은 것은 매우 적은 반면 일은 엄청나게 많이 고되게 해야 하지요. 프루스트가 말했다고 생각되는데, 10퍼센트의 영감과 90퍼센트의 노력을 필요로 한답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 369쪽

자신에게 글쓰기란 권투와 같아고 한 헤밍웨이의 글이 제게 큰 감명을 주었습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 374쪽

훌륭한 작가가 되기 위해 작가는 글을 쓰는 매 순간 절대적으로 제정신이어야 하며 건강해야 합니다. 저는 글 쓰는 행위는 희생이며, 경제적 상황이나 감정적 상태가 나쁘면 나쁠수록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낭만적인 개념의 글쓰기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합니다. 작가는 감정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아주 건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 375쪽

글을 쓸 때 가장 어려운 것 중의 하나는 첫 번째 단락입니다. 저는 첫 번째 단락을 쓰는 데 여러 달이 걸립니다. 일단 첫 단락을 마치면 나머지는 매우 쉽게 이루어집니다. 첫 번째 단락에서 저는 제 책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 대부분을 처리합니다. 여기서 주제와 스타일과 어조가 정해집니다. 최소한 저의 경우 첫 번째 단락은 제 책의 나머지 부분이 어떨지 보여주는 견본입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 377쪽

그러나 지식은 작가로서 더 큰 책무를 요구하고 글쓰기를 더 어렵게 만듭니다. 영원한 가치에 관해 글을 쓰고자 한다면, 작가는 전업 작가가 되어야 합니다. 그가 실제로 글을 쓰는 게 하루에 몇 시간밖에 안 된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작가는 우물에 비유될 수 있어요. 작가들의 수만큼 많은 종류의 우물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물에 좋은 물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물을 마를 만큼 퍼내고 다시 차기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일정한 양만 푸는 것이 더 낫습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 406쪽

작가가 글을 쓰는 것은 눈으로 읽히길 바라는 것이지, 어떤 설명이나 논문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독자들이 처음 책을 읽을 때 그들이 읽어낸 것보다 더 많은 것이 책에 있으리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그것에 대해 설명하거나, 작품에서 보다 어려운 부분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안내하는 것은 작가의 일이 아닙니다. - 4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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