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란 무엇인가 1 - 소설가들의 소설가를 인터뷰하다 파리 리뷰 인터뷰 1
파리 리뷰 지음, 권승혁.김진아 옮김 / 다른 / 201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아리스토텔레스가 언제나 우리보다 먼저 어떤 생각을 해냈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 자체는 독창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독창적이지 않은 생각에서 소설을 만들어냄으로써 그 생각을 독창적인 것으로 만들 수가 있습니다. 남자는 여자를 사랑한다, 이건 전혀 독창적인 사고가 아니지요. 하지만 문학적인 솜씨를 발휘해서 남녀의 사랑에 대해 멋진 소설을 쓴다면, 그것은 절대적으로 독창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움베르토 에코) - 37쪽

저는 희극적 감정이라는 것은 인간이 자신들이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아는 유일한 동물이라는 사실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답니다. 다른 동물들은 그걸 알지 못해요. 동물들은 자신이 죽는 순간에, 그 자리에서만 그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들은 모든 인간은 죽는다라는 진술 같은 걸 이해할 수가 없답니다. 우리는 이해할 수 있지요. 아마 이것이 종교나 제의 등등이 존재하는 이유일 거에요. 희극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향한 인간의 본질적 반응이라고 생각합니다. (움베르토 에코) - 59쪽

글을 쓰는 공간은 잠을 자거나 배우자와 공유하는 공간과 분리되어야 한다고 항상 생각했습니다. 집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의식ritual이나 세부적인 일들이 상상력을 죽이지요. 그런 일들은 제 안에 들어 있는 일종의 악마를 죽여버립니다. 가정적이고, 길들어진 하루 일과는 상상력을 사용해야 하는 다른 세계에 대한 열망을 사라지게 만들어요. 그래서 여러 해 동안 저는 사무실이나 집이 아닌 다른 작은 장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오르한 파묵) - 71쪽

반면에 소설가는 본질적으로 개미처럼 끈기 있고 천천히 장거리를 나아가는 사람이에요. 소설가는 악마적이고 낭만적인 비전 때문이 아니라 끈기 때문에 인상적이지요. (오르한 파묵) - 74쪽

제가 사유하는 방식에서는 책 한 권을 여러 장으로 나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소설을 쓸 때 줄거리 전체를 미리 생각하고 있다면 - 대개는 미리 알고 있지요. - 전체 줄거리를 각 장으로 나누어서 각각의 장에서 일어나게 하고 싶은 세부 사항들을 생각하지요. 그렇지만 반드시 1장에서 시작해서 순서대로 써 나가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글이 막히게 되더라도 별로 심각한 문제가 되지 않지요. 생각이 가는 대로 계속 쓰면 되니까요. 첫 장부터 다섯 번째 장까지 쓰고 나서 재미가 없으면 15장으로 넘어가서 거기서부터 계속 쓸 수도 있답니다. (오르한 파묵) - 75쪽

소설을 쓸 때는 네 시에 일어나서 대여섯 시간 일합니다. 오후에는 10킬로미터를 달리거나 1.5킬로미터 수영을 합니다. (둘 다 할 때도 있고요.) 그러고 나서 책을 좀 읽고 음악을 듣습니다. 아홉시에 잠자리에 들지요. 이런 식의 일과를 변함없이 매일매일 지킵니다. 반복 자체가 중요해지지요. 일종의 최면이 되거든요. 저는 좀 더 깊은 정신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 자기 최면을 겁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예를 들어 6개월에서1년 동안 이런 일과를 반복하려면 심신이 상당히 강해야 되지요. 이런 점에서 긴 소설을 쓰는 것은 서바이벌 훈련과 비슷해요. 신체적인 강인함이 예술적인 감수성만큼이나 중요하거든요. (무라카미 하루키) - 122, 123쪽

우리는 마음속에 제정신이 부분과 제정신이 아닌 부분이 함께 있어요. 이 두 부분을 타협해가면서 사는 거지요. 이게 제 신념입니다. 저는 글을 쓸 때 특히 제 마음의 제정신이 아닌 부분을 잘 볼 수 있어요. 아니, 제정신이 아니라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군요. 오히려 비일상적인, 비현실적인 부분이라고 해야 할 겁니다. 저는 물론 현실세계로 돌아오고 제정신을 되찾지요. 하지만 제정신이 아닌 부분, 즉 아픈 부분이 없다면 저는 존재하지 않을 거에요. 다시 말하지면, 주인공은 이 두 여성에 의해서 지탱되는 것이랍니다. 둘 중의 하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살아갈 수 없어요. (무라카미 하루키) - 127쪽

19세기와 20세기에 작가들은 실제를 보여줬습니다. 그게 그 작가들의 임무였지요. <전쟁과 평화>에서 전장을 너무나 자세하게 묘사해서 그게 진짜라고 믿었지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저는 제가 그리는 것이 실제인 척하지 않아요. 우리는 가짜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계 속에 살면서 가짜 저녁 뉴스를 보고 가짜 전쟁을 수행하지요. 우리 정부도 가짜에요. 하지만 우리는 이 가짜 세계에서 실제를 찾습니다. 우리가 만드는 이야기들도 마찬가지랍니다. 우리는 가짜 장면들을 지나쳐 가지만, 이 장면들을 걸어서 통과하는 우리 자신들은 실제이거든요. 상황은 진짜에요. 그 상황에 몰입하고 진정한 관계를 맺는다는 의미에서 진짜라는 것이지요. 그 점이 제가 쓰고 싶은 것이랍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 137쪽

저는 이 이야기들은 이론이나 어떤 철학적인 무게가 없는 일종의 시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일생에는 이상한 일들이 많았고, 또 예상할 수도 없고 있을 법하지도 않은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더 이상 무엇이 현실인지 확신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현실의 역학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며,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한 증거를 모으는 것이며, 가능한 한 충실하게 그것을 기록하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저는 제 소설에서 이러한 접근법을 써왔습니다. 이것은 방법이 아니라 신념에 따른 행위입니다.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 대로가 아니라, 또는 이렇게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대로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일을 그대로 제시하는 것 말입니다. 물론 소설은 허구입니다. 따라서 (그 용어의 엄밀한 의미에서 보자면) 소설을 거짓을 말합니다. 그렇지만 모든 소설가는 거짓을 통해서 세상에 관한 진실을 말하려고 애를 씁니다. (폴 오스터) - 165쪽

‘새 작품을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한 어떤 것도 미리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문제 해결 방법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문제 자체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이야기를 쓰기 시작할 때 제게 저항하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려 하지요. 저는 문젯거리를 찾습니다. 종종 글을 처음 쓸 때 확신이 서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그 이유는 글쓰기가 어려워서라기보다는 글쓰기가 충분히 어렵지 않기 때문입니다. 거침없이 글을 쓴다는 것은 아무것도 일어나고 있지 않다는 증표입니다. 거침없이 글을 쓴다는 것은 실제로는 글쓰기를 멈춰야 한다는 증표이지요. 한 문자에서 다른 문장으로 넘어갈 때 어둠 속에서 헤매게 되면, 계속 글쓰기를 해야 한다는 확신이 생깁니다. (필립 로스) - 240쪽

물고기가 헤엄치거나 새가 나는 것과 달리 제게 글쓰기는 자연스런 일이 아닙니다. 글쓰기는 어떤 종류의 자극 또는 특별한 긴박감하에 이루어집니다. 글쓰기는 정교한 가면을 씀으로써 개인적인 것을 공적인public 행위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 단어의 두 가지 의미인 공적이며 대중적이라는 점에서 말입니다.) 글쓰기는 당신의 도덕적인 성품에는 낯선 특질을, 당신이란 존재를 통해 빨아올리는 매우 고된 정신적 훈련이 될 수 있습니다. (필립 로스) - 249쪽

제가 바뀌어서 다른 사람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곧 제 삶이 결국에는 전혀 바뀌지 않을 거라는 걸 알게 되었답니다. 어쨌든 눈에 띄든 아니든, 제가 알아볼 수 있는 방식으로는 바뀌지 않았답니다. 그때 예술은 제가 시간이 있을 때, 제가 그렇게 할 여유가 있을 때 추구할 수 있는 어떤 것이라는 것, 단지 그런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술은 사치이고 그것은 저 자신이나 제 삶을 바꾸지 않을 거라는 거죠. 예술이 어떤 일도 일어나게 하지 않는다는 걸 어렵게 깨달았답니다. (레이먼드 카버) - 347쪽

문학과 목수 일 모두 매우 힘듭니다. 무엇인가를 글로 쓴다는 것은 탁자를 만드는 것만큼 힘이 들어요. 이 두 가지 모두 나무처럼 딱딱한 재료인 현실을 이용해 일합니다. 온갖 기교와 기술을 사용해야 하고요. 근본적으로 이 두 가지는 손쉽게 처리할 수 있는 마술 같은 것은 매우 적은 반면 일은 엄청나게 많이 고되게 해야 하지요. 프루스트가 말했다고 생각되는데, 10퍼센트의 영감과 90퍼센트의 노력을 필요로 한답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 369쪽

자신에게 글쓰기란 권투와 같아고 한 헤밍웨이의 글이 제게 큰 감명을 주었습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 374쪽

훌륭한 작가가 되기 위해 작가는 글을 쓰는 매 순간 절대적으로 제정신이어야 하며 건강해야 합니다. 저는 글 쓰는 행위는 희생이며, 경제적 상황이나 감정적 상태가 나쁘면 나쁠수록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낭만적인 개념의 글쓰기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합니다. 작가는 감정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아주 건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 375쪽

글을 쓸 때 가장 어려운 것 중의 하나는 첫 번째 단락입니다. 저는 첫 번째 단락을 쓰는 데 여러 달이 걸립니다. 일단 첫 단락을 마치면 나머지는 매우 쉽게 이루어집니다. 첫 번째 단락에서 저는 제 책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 대부분을 처리합니다. 여기서 주제와 스타일과 어조가 정해집니다. 최소한 저의 경우 첫 번째 단락은 제 책의 나머지 부분이 어떨지 보여주는 견본입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 377쪽

그러나 지식은 작가로서 더 큰 책무를 요구하고 글쓰기를 더 어렵게 만듭니다. 영원한 가치에 관해 글을 쓰고자 한다면, 작가는 전업 작가가 되어야 합니다. 그가 실제로 글을 쓰는 게 하루에 몇 시간밖에 안 된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작가는 우물에 비유될 수 있어요. 작가들의 수만큼 많은 종류의 우물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물에 좋은 물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물을 마를 만큼 퍼내고 다시 차기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일정한 양만 푸는 것이 더 낫습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 406쪽

작가가 글을 쓰는 것은 눈으로 읽히길 바라는 것이지, 어떤 설명이나 논문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독자들이 처음 책을 읽을 때 그들이 읽어낸 것보다 더 많은 것이 책에 있으리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그것에 대해 설명하거나, 작품에서 보다 어려운 부분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안내하는 것은 작가의 일이 아닙니다. - 41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