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아 날 살려라 장생보법
이승헌 지음 / 한문화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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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창 집에 늘어놓은 책 정리를 하는 중인데, 정리를 하다보면 '이런 책을 내가 샀었나?'라는 의문이 드는 책이 더러 있기 마련이다. 취향상으로는 절대 내가 샀을리가 없는 책인데 어찌하여 여기까지 흘러 들어온 것이지? 예전에는 책 모으는 것이 취미였던지라 책이라면 무조건 받고 보았는데, 그때 딸려온 것일까? 아무튼 읽지 않는 오래된 책들을 정리하면서 그냥 보내기 아쉬워 몇 장 넘겨보다가 다 읽고 말았다. 


무언가를 절대적인 만병통치의 도구로 믿게 하는 일종의 사술에는 거부감이 있기 마련인데, 이 책은 올바른 걸음을 통하여 건강을 회복하자는 취지여서 이상한 기(氣)와 같은 책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접할 수 있었다. 더욱이 초중반에 제시하고 있는 건강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일부 새겨들을 부분이 있었다.


장생보법은 바르게 선 자세에서 몸을 1도 정도 앞으로 기울이고, 몸의 중심을 발바닥 용천에 두어 발을 내디딜 때 발가락까지 힘을 주고 11자가 되도록 걷는 것을 말한다. 아무래도 글만으로는 느낌이 잘 와닿지 않지만, 평소 의식하지 않는 걸음걸이부터 신경써야 한다는 것에는 수긍이 간다.

장수 시대에는 새로운 장생의 철학이 필요하다. `어떻게 건강하게 잘 살 것인가`에 스스로의 답을 찾아야 한다.
흔히 `장생`이라고 하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불로장생을 꿈꾸던 진시황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데, 원래 `불로장생(不老長生)`이라는 말은 우리 민족의 선도 사상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선도의 본질이 현대에 와서는 많이 훼손됐지만 옛말에는 그 의미가 조금은 남아 있다. `불로(不老)`란 늙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동사로서의 불(不)과 목적어로서의 노(老)의 문장으로 `늙지 않게 한다`는 적극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그리고 장생이란 말도 그저 오래 산다는 뜻이 아니라 자연과 하나되는 이치를 터득하면 하늘에서 받은 생명까지도 자유롭게 연장할 수 있다는 뜻으로 쓰였다. - 22, 23쪽

뇌를 젊게 만드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뇌를 잘 속이기만 하면 된다. - 26쪽

삶에 대한 목표나 비전은 삶을 건강하고 활기차게 만든다. 비전이 없는 삶이 편안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아무런 꿈이나 목표가 없을 때 삶은 무감각해지고 무질서해진다. 변화가 없는 삶, 타성에 젖은 삶, 도전하지 않는 삶은 뇌를 무기력하고 우울하게 만드는 주범이다. - 37쪽

먼저 `감정은 내가 아니라 내 것`이라는 자각이 필요하다. 감정이 `내 것`이면 내가 자유롭게 바꿀 수 있다. 하지만 `감정이 나`라고 하면 평생 감정의 노예로 살 수밖에 없다. - 41쪽

생각은 절대 생각을 이길 수 없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잡생각으로 에너지를 소모해서는 안 된다. 제멋대로 떠오르는 생각은 그것이 일어나는 것을 그대로 관조함으로써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 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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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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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지난 주는 사회적으로 <채식주의자>의 한 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매스컴에서는 많은 지면을 할애해 이 책의 수상에 대해 다루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이 책에 푹 빠져 지냈다. 내 기억으로 <파이 이야기>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또한 맨 부커상 수상작이었던 것 같은데, 이 책들을 만족스럽게 읽었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채식주의자>에 대한 기대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이 책을 읽고자 하는 동기는 부족했다. 한강의 책 <소년이 온다>와 <채식주의자>, <희랍어 시간>을 e북으로 사 놓은지는 꽤 되었지만, 맛있는 간식을 아껴놓는 심정이랄까? 꼭 읽어봐야 겠다고 생각한 책들을 웬만하면 급하게 바로 펼쳐보지 않는 이상한 습성 때문에 <채식주의자> 또한 e북 창고에 잘 저장되어 있을 따름이었다. 그런데 유일한 절친이라 할 수 있는 그가 '좋다'는 평가를 하였기에 읽던 책을 덮어 두고 <채식주의자>를 펴보게 되었다. 어찌보면 내게는 맨 부커상보다는 친구의 평이 더 신뢰가 가는 지도 모른다. 그처럼 나도 단 하루만에 단숨에 빨려들어 읽은 걸 보면, "나직한 목소리지만 숨 막힐 듯한 흡인력이 돋보이는"이라는 수식어는 이 책을 표현하기에 매우 적절한 말이다. 

 

이 책은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이라는 각각의 단편을 합한 것이다. 이 3편의 단편들은 모두 '채식주의자'인 영혜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다. 각각이 단편이면서 그 자체로 완결성을 지녔음에도 3편이 합쳐져 또 다른 이야기의 배경과 흐름, 총괄적 완결성을 주는 구성은 자못 신선하다.


평범함과 무난함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남들과 '다른' 혹은 '구별되는' 채식주의자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무리와 집단 내 다수와 같지 않다는 이질감은 끝끝내 다수의 불편함이 되어 그를 둘러싼 주변인들까지도 영혜(채식주의자)와 유사하게 낯선 시선을 감내해야 하는 고통(?)을 안긴다. 이런 낯섦에 반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자신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닌 불편함과 고통을 쉽게 극복해 낼 수 있는 주변인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당연하게도 남편을 비롯한 가족들은 모두 그녀가 택한 방식을 바꾸려고 한다. 그래서 고기를 먹으라 하고, 억지로 먹이려 하고, 심지어 뺨을 때리기 까지 한다. 남의 살을 먹는다는 '육식'이 잘 숨겨왔던 불편함, 포장된 진열대 위의 고기가 주지 못하는 폭력성이 비로소 행위적인 강압과 폭력으로 현실화 되는 순간이다.   


불필요한 폭력으로 타인의 죽음을 섭취하며 살아가지 않으려는 채식주의자는 식물이 되고자 했나보다. 형부에 의해 그녀의 몸에 그려진 줄기와 화려한 잎사귀들은 아예 그녀에게 각인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몽고반점이라는, 어린 애의 티를 벗은 어른들이면 갖고 있지 않은, 상징은 어찌보면 영혜에게 아직 남아 있는 인간 본연의 순수함이었을 것이다. 모두들 그것을 잃어버렸지만, 누구도 상실감을 느끼지 않은 채 살아가는... 그러나 예술가인 형부는 몽고반점을 통해 그녀의 '무엇'을 발견한다. 그것은 처제라는 여자의 몸에 대한 욕망이기도 하지만 그가 추구하고자 했던 작품(바디페인팅을 통한 비디오 아트)의 완결이자, 그가 읽어낸 '식물의 욕망'이었을테다.


영혜는 자신이 이제 곧 나무가 될 거라며 식음을 전폐한다. 동물로서 살아가는 것을 그만두기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 언니를 비롯한 병원 의료진은 그녀를 살리려 하고, 살리기 위해 먹이려 한다. 이번에도 고기를 먹이려는 1부의 장면과 동일한 폭력이 자행된다. 읽을 수록 가슴이 답답해지는 생명의 존중으로 치장된 이들의 생명연장 노력 앞에서, 내가 과연 타인의 삶을 어느 정도까지 관여할 수 있는지를 되묻게 된다. 그러면 그것은 과연 누구의 인생인가?


내게 채식주의자는 단순히 육식을 하지 않는 한 여자의 에피소드로 읽히지 않았다. 내가 읽은 <채식주의자>는 삶의 다른 방식을 인정하지 않는 굳은 관념들과 냉담한 시선, 실제 '그녀'가 느끼는 불편함이 아니라 자신들이 느끼는 불편함을 이겨내지 못하는 이기심, 그리고 관용을 잃은 폭력과 그 폭력에 물들어 있음에도 자각하지 못하는 이들로 구성된 이 사회에 대한 자화상이었다. 순수는 추구될 수 없다. 그것은 내재되어 있을 뿐이니. 그런데 우리는 그 몽고반점을 잃어버린 것조차 알지 못한 채 당연한 육식주의자로 살아간다.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이 둥근 가슴이 있는 한 난 괜찮아. - 49쪽

그녀가 살았으면 하고 그는 바랐지만, 동시에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그는 의문했다. 그녀가 자신의 목숨을 내던져버리려 했던 순간은 인생의 코너 같은 거였을 것이다. 아무도 그녀를 도울 수 없었다. 모든 사람이-강제로 고기를 먹이는 부모, 그것을 방관한 남편이나 형제자매까지도-철저한 타인, 혹은 적이었을 것이다. 지금 그녀가 다시 깨어난다 한들 그 상황이 변해 있을 리는 없다. 이번의 시도는 충동적이었지만 그녀는 다시 시도할 수도 있따. 그때에는 좀더 주도면밀하게 모든 것을 진행해, 이렇게 방해받는 일 따위는 없을 수도 있다. 문득 그는 차라리 그녀가 깨어나지 않길 바라고 있다는 것을, 다시 깨어난다는 상황이 오히려 막연하고 지긋지긋해, 눈을 뜬 그녀를 창밖으로 던져버리고 싶어질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 90, 91쪽

아이를 통해 연결된, 군더디기없는, 일종의 동업자의 관계가 이즈음 아내와 그의 관계였다. - 110쪽

그는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제 동서라고 부를 필요도 없게 된 그녀의 옛 남편의 얼굴을 떠올렸다. 감각적이고 일상적인 가치 외의 어떤 것도 믿지 않는 듯 건조한 얼굴, 상투적이지 않은 어떤 말도 뱉어본 적 없을 속된 입술이 그녀의 몸을 탐했을 거란 상상만으로도 그는 일종의 수치를 느꼈다. 둔감한 그는 그녀의 몽고반점을 알기나 했을까. 알몸의 두 사람을 상상한 순간, 그것은 모욕이라고, 더럽힘이라고, 폭력이라고 그는 느꼈다. - 117쪽

이제 그녀는 안다. 그때 맏딸로서 실천했던 자신의 성실함은 조숙함이 아니라 비겁함이렀다는 것을. 다만 생존의 한 방식이었을 뿐임을. - 212쪽

그 순간 그녀는 뜻밖의 고통을 느꼈다. 살아야 할 시간이 다시 기한 없이 남아 있었는데, 그것이 조금도 기쁘지 않았던 것이다. 지난 한달 동안 염려했던 큰병의 가능성은 오히려 사소한 번민에 불과했다는 것을 그녀는 깨달았다. - 2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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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여행 2016-05-25 13: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보다 서평이 더 좋네요.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글에 관해 이렇게 깊게 생각해보고 토론해보고 기록까지 한다는 것을 알면 그 작가도 한 없이 행복할 것 같습니다.
읽고 싶은 소설이 많지 않던 요즘에 참 인상적인 책이었습니다. 이 서평으로 다시 한번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붉은눈 2016-05-26 23:35   좋아요 0 | URL
부족한 글에 과찬을 해주셔서 부끄럽습니다. 그냥 제가 생각한 관점인데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제가 감사합니다.

희망여행 2016-05-25 13: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평에 감동 받는 참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cyrus 2016-05-25 15: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한국소설을 잘 안 읽는 편인데, 정말 오랜만에 재미있게 읽은 한국소설이 <채식주의자>였습니다. ^^

붉은눈 2016-05-26 23:38   좋아요 0 | URL
앗, cyrus님이 잘 안 읽으시는 분야도 있군요. ^^
저도 한동안 먹을 수 없었던 좋아하는 음식을 허겁지겁 먹듯 읽은 소설이었습니다.

가람과 뫼 2016-05-26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을 다 읽을 때까지도 무슨 뜻인지 작가의 의도를 확실히 알 수 없었지만 이 서평을 읽고난 후 이 책의 출판의도를 알 것 같읍니다. 물론 읽는 사람마다 각자 느끼는 바가 다르긴 하겠지만 말이죠. 좋은 서평 감사드립니다.

붉은눈 2016-05-27 01:19   좋아요 0 | URL
작가는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니까, 제가 나름대로 더듬거리며 읽어낸 작품의 뜻은 이 정도 밖에 안됩니다.
또 다른 분들이 새로운 관점이나 더 깊은 뜻을 읽어내셨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그게 무척 궁금하기도 합니다.
부족한 글인데도 좋게 봐주시고 댓글까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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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하루키만큼 많은 화제와 논란과 선호를 갖고 있는 소설가가 또 어디 있을까? 발간 당시 대학가를 휩쓴 <상실의 시대>는 지금까지도 스테디 셀러로 남아 있고, 몇 해전에 나온 <1Q84>는 팬덤을 형성했을 정도로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이후 발간된 <색체가 없는 다자키 스크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여자 없는 남자들>도 꾸준한 사랑받고 있는 걸 보면, 그가 한국 소설계에서 갖는 힘은 실로 막대하다.


그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바(bar), LP, 비틀즈의 음악, 재즈, 칼스버그 맥주, 온 더 락 위스키 등은 하나의 유행이 되었던 적이 있었고(심지어 야나체크까지도), 그의 소설에서 나타난 모호한 상징(태엽감는 새), 독특한 비유(봄날의 곰), 설명이 없는 불친절한 결말(<1Q84>의 난쟁이들은 도대체 뭐냐고)은 계속되는 이슈를 낳았다. 게다가 숱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소설가인 그에 대한 궁금증은 결코 시들지 않고 있다. 그는 여전히 우리에게 가장 '핫'한 소설가임은 틀림 없다.


베일에 쌓여 있는 그가 소설가에 대해 말한다. 그가 진구 구장에서 야구를 보다가 소설가가 되어야 겠다고 결심한 에피소드나 매일 규칙적으로 일정 분량의 글을 쓴다는 것, 체력 관리를 위해 마라톤을 한다는 것은 이전에 그가 한 인터뷰나 <작가란 무엇인가>를 통해서 이미 어느 정도 알려진 사실이기는 해도, 이런 그의 생각과 습관이 그가 소설가를 업(業)으로 삼고 있는 것에는 어떤 영향을 미친 것인지를 그에게 직접 듣는다는 유혹을 뿌리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소설이라는 진입이 쉬운 장르에서 한번 반짝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수십년 간을 소설가라는 직업으로 버텨올 수 있었던 특별함, 전업 소설가가 되기까지의 개인사, <군조> 신인상에 대한 에피소드, 그와 아쿠타가와상을 둘러싼 풍문에 대한 생각, 문학상 심사를 맡지 않는 이유, 오리지널리티를 갖추기 위한 요건, 소설가가 되기 위한 약간의 팁(소설가로서 무엇을 쓰고, 어떻게 쓰고, 누구를 위해 쓰고, 독자의 범주를 어떻게 넓혀 갔는지)까지 다양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그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다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했던 독서는 읽는 동안 글쓰기에 대한 대작가의 생각을 듣는 기쁨으로 변했다.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깎아내는 방법으로서의 소설 영작, 많은 독서, 글쓰기 외의 다른 일에 대한 정리, 슬럼프 없는 글쓰기, 200자 원고지 20매 라는 꾸준하고 규칙적인 집필활동, 퇴고와 양생 그리고 퇴고, 충분한 시간의 확보와 같이 글을 쓰기 위한 세세한 경험이 가득하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실제 경험이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글쓰기에 대한 팁'과 같이 기술적인 것을 강조한 것에만 머물지는 않는다. 하루키라는 작가가 소설이라는 것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어떻게 누구를 위하여 글을 쓰고 무엇을 전달하려 하는지,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그의 개인적 삶을 어떻게 관리하는지를 집필한 것이다. 그가 표현한 대로 '한없이 개인적이고 피지컬한 업(業)'으로서 말이다.

즉 소설이라는 장르는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쉽게 진입할 수 있는 프로레슬링 같은 것입니다. 로프는 틈새가 넓고 편리한 발판도 준비되었습니다. 링도 상당히 널찍합니다. 참여를 저지하고자 대기하는 경비원도 없고 심판도 그리 빡빡하게 굴지 않습니다. 현역 레슬링 선수도-즉 이 경우는 소설가에 해당하는데-그런 쪽으로는 애초에 어느 정도 포기해버린 상태라서 `좋아요, 누가라도 다올라오십쇼`라는 기풍(氣風)이 있습니다. 개방적이라고 할까, 손쉽다고 할까, 융통성이 있다고 할까, 한마디로 상당히 `대충대충`입니다. - 16쪽

하지만 링에 오르기는 쉬워도 거기서 오래 버티는 건 쉽지 않습니다. 소설가는 물론 그 점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소설 한두 편을 써내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아요. 그러나 소설을 오래 지속적으로 써내는 것, 소설로 먹고사는 것, 소설가로서 살아남는 것, 이건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보통 사람은 일단 못할 짓, 이라고 말해버려도 무방할지 모릅니다. 거기에는 뭐랄까, `어떤 특별한 것`이 점점 필요해지기 때문입니다. 그 나름의 재능은 물론 필요하고 그만그만한 기개도 필요합니다. 또한 인생의 다른 다양한 일들과 마찬가지로 운이나 인연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거기에 더해서 어떤 종류의 `자격` 같은 것이 요구됩니다. 이건 갖춰진 사람에게는 갖춰져 있고, 갖춰지지 않은 사람에게는 갖춰져 있지 않습니다. 애초에 그런 것이 갖춰진 사람도 있는가 하면 후천적으로 고생고생 해가며 습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 16, 17쪽

맨 처음의 테마를 그대로 척척 명확히, 지적으로 언어화할 수 있다면 ‘이를테면’이라는 치환 작업은 전혀 필요 없으니까. 극단적으로 말하면 ‘소설가란 불필요한 것을 일부러 필요로 하는 인종’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소설가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바로 그런 불필요한 면, 멀리 에둘러 가는 점에 진실, 진리가 가득 잠재되어 있다, 라는 것입니다. 어쩐지 강변(强辯)을 늘어놓는 것 같지만 소설가는 대체로 그렇게 믿고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소설 따위는 없어도 상관없다’라는 의견이 있어도 당연한 것이고, 그와 동시에 ‘이 세상에는 반드시 소설이 필요하다’라는 의견도 당연합니다. 그건 각자 염두에 둔 시간의 스팬(span)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서,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의 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효율성 떨어지는 우회하기와 효율성 뛰어난 기민함이 앞면과 뒷면이 되어서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중층적으로 성립합니다. 그중 어느 쪽이 빠져도(혹은 압도적인 열세여도) 세계는 필시 일그러진 것이 되고 맙니다. - 23, 24쪽

한참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아고타 크리스토프라는 작가가 그 비슷한 효과의 문체를 사용해 몇 편의 뛰어난 소설을 썼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녀는 헝가리 사람인데 1956년의 헝가리 혁명 때 스위스로 망명해 거기서 반쯤은 어쩔 수 없이 프랑스어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헝가리어로 소설을 써서는 도저히 먹고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어는 그녀에게는 후천적으로 학습한(학습하지 않을 수 없었던) 외국어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외국어를 창작에 채용하는 것을 통해 그녀만의 새로운 문체를 고안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짧은 문장을 조합하는 리듬감, 번거롭게 배배 꼬지 않는 솔직한 말투, 자신의 감정이 담기지 않은 적확한 묘사, 그러면서도 뭔가 아주 중요한 것을 일부러 쓰지 않고 깊숙이 감춰둔 듯한 수수께끼 같은 분위기. 한참 나중에야 그녀의 소설을 처음으로 읽어보고 거기서 뭔가 그리움 같은 것을 느꼈던 게 또렷이 기억납니다. - 50, 51쪽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문학상의 심사위원을 맡은 일이 한 번도 없습니다. 부탁받은 적도 없지는 않지만, 그때마다 "죄송하지만 저는 할 수 없습니다"라고 거절해왔습니다. 문학상 심사위원을 맡을 자격이 나에게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유는 간단한데, 나는 너무도 개인적인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나라는 인간 속에는 나 자신의 고유한 비전이 있고 거기에 형태를 부여해나가는 고유한 프로세스가 있습니다. 그 프로세스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포괄적인 삶의 방식에서부터 개인적이 되지 않을 수 없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제대로 글을 쓸수 없는 것입니다. - 78, 79쪽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나 자신의 척도이기 때문에 나한테는 맞아도 그대로 다른 작가에게도 맞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 방식 이외의 모든 방식을 배제한다’는 건 결코 아니지만(내 방식과는 다르더라도 경의를 품을 수 있는 것은 물론 세상에 수없이 많습니다), 개중에는 ‘이건 도저히 나와 맞지 않는다’ 혹은 ‘이건 이해할 수 없다’라는 것도 있습니다. 어떻든 나는 나 자신이라는 축에 의해서 뭔가를 바라보고 평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좋게 말하면 개인주의지만 다른 말로 하면 자기 본위고 내 멋대로겠지요. 그래서 내가 그런 내 멋대로의 축이나 척도를 들고 거기에 맞춰 타인의 작품을 평가했다가는 그걸 당하는 쪽은 도저히 못 견딜 일이 될 거라는 마음이 듭니다. 이미 작가로서의 지위가 어느 정도 정착된 사람이라면 또 모르지만, 이제 막 나온 신인 작가의 명운을 나만의 선입견이 걸린 세계관으로 좌지우지하는 그런 일은 무서워서 도저히 못 합니다. - 79쪽

그처럼 과거에 ‘오리지널이었던’ 것을 콕 집어내 현재의 시점에서 분석하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사라질 것은 이미 사라져 없어져버렸기 때문에 뒤에 남은 것만 집어내 마음 놓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실제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동시대적으로 존재하는 오리지널한 표현 형태에 감응하고 그것을 현재진행형으로 정당하게 평가한다는 것은 용이한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동시대 사람들의 눈에는 불쾌하고 부자연스럽고 비상식적인-경우에 따라서는 반사회적인-양상을 띤 것처럼 보이는 일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혹은 그저 단순히 어리석은 것으로 비칠지도 모릅니다. 어떤 경우든 그것은 종종 경악과 동시에 쇼크와 반발을 불러일으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본능적으로 혐오하고, 특히 기성의 표현 형태에 푹 잠겨 그 속에서 지반을 구축해온 기성 권력(establishment)에게는 타기해야 할 대상이 됩니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들이 다져둔 지반을 그것이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 94, 95쪽

내 생각에는 이렇다는 얘기입니다만, 특정한 표현자를 ‘오리지널’이라고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조건이 채워져야 합니다.
(1) 다른 표현자와는 명백히 다른 독자적 스타일(사운드든 문체든 형식(form)이든 색채든)을 갖고 있다. 잠깐 보면(들으면) 그 사람의 표현이라고 (대체적으로) 순식간에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2) 그 스타일을 스스로의 힘으로 버전 업 할 수 있어야 한다. 시간의 경과와 함께 그 스타일은 성장해간다. 언제까지나 제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그런 자발적 내재적인 자기 혁신력을 갖고 있다.
(3) 그 독자적인 스타일은 시간의 경과와 함께 일반화하고 사람들의 정신에 흡수되어 가치판단 기준의 일부로 편입되어야 한다. 혹은 다음 세대의 표현자의 풍부한 인용원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 97, 98쪽

내가 작가로 등단한 게 1979년인데, 그 무렵에도 아직 그런 좌표축은 문학계에서 상당히 견고하게 기능하고 있었습니다. 즉 시스템의 ‘관례’는 여전히 힘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건 전례가 없다’ ‘그게 관례다’라는 식의 말을 편집자에게서 자주 들었습니다. 나는 작가란 제약 따위 없이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직업이라는 느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왜 이러지?’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원래는 분쟁이나 싸움을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라서(정말입니다) 그런 ‘관례’ ‘문학계의 불문율’을 거스르겠다는 식의 의식은 딱히 없었습니다. 다만 지극히 개인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인간이라서 어렵사리 이렇게 (일단은) 소설가가 되었으니까, 그리고 인생은 단 한 번뿐이니까,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나가자고 처음부터 마음을 정했습니다. 시스템은 시스템대로 해나가면 될 것이고 내 쪽은 내 쪽대로 해나가면 된다. - 104, 105쪽

나는 1960년대 말의 이른바 ‘반란의 시대’를 뚫고 나온 세대의 사람이라서 ‘체제에 말려들고 싶지 않다’는 의식은 나름대로 강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라고 할까, 그보다는 우선, 그래도 명색이 표현자의 말단으로서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자유롭고 싶었습니다. 내가 쓰고 싶은 소설을 내게 맞는 스케줄에 따라 내가 원하는 대로 쓰고 싶다. 그것이 작가인 내가 가져야 할 최저한의 자유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소설을 쓰고 싶은지, 그 개략은 처음부터 상당히 확실했습니다. ‘아직은 잘 쓰지 못하지만 나중에 실력이 붙기 시작하면 사실은 이러저러한 소설을 쓰고 싶다’라는, 합당한 내 모습이 머릿속에 있었습니다. 그 이미지가 항상 하늘 한복판에 북극성처럼 빛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그냥 머리 위를 올려다보면 됩니다. 그러면 나 자신의 지금 서 있는 위치며 나아가야 할 방향이 잘 보였습니다. 만일 그런 정점(定點)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곳곳에서 상당히 헤맸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104, 105쪽

그런 나 자신의 체험에 따라 생각한 것인데, 자신만의 오리지널 문체나 화법을 발견하는 데는 우선 출발점으로서 ‘나에게 무엇을 플러스해간다’는 것보다 오히려 ‘나에게서 무언가를 마이너스 해간다’는 작업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 105쪽

‘나는 무엇을 추구하는가’라는 문제를 정면에서 곧이곧대로 파고들면 얘기는 불가피하게 무거워집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이야기가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자유로움은 멀어져가고 풋워크는 둔해집니다. 풋워크가 둔해지면 문장은 힘을 잃어버립니다. 힘이 없는 문장은 사람을-혹은 자기 자신까지도-끌어들일 수 없습니다.
그에 비하면 ‘뭔가를 추구하지 않는 나 자신’은 나비처럼 가벼워서 하늘하늘 자유롭습니다. 손바닥을 펼쳐 그 나비를 자유롭게 날려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문장도 쭉쭉 커나갑니다. 생각해보면, 굳이 자기표현 같은 것을 하지 않아도 사람은 보통으로, 당연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뭔가 표현하기를 원한다. 그런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자연스러운 문맥 속에서 우리는 의외로 자신의 본모습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 110, 111쪽

나는 삼십오 년 동안 계속해서 소설을 써왔지만 영어에서 말하는 ‘라이터스 블록(writer`s block)’, 즉 소설이 써지지 않는 슬럼프 기간을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았습니다. 쓰고 싶은데 써지지 않는 경험은 한 번도 없었다는 얘기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나는 재능이 넘친다’는 식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그럴 리는 없고요, 실은 매우 단순한 얘기인데, 내 경우에는 소설을 쓰고 싶지 않을 때, 혹은 쓰고 싶은 마음이 퐁퐁 샘솟지 않을 때는 전혀 글을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쓰고 싶을 때만 ‘자, 써보자’라고 마음먹고 소설을 씁니다. 그렇지 않을 때는 대개는 번역(영어->일본어)을 합니다. 번역은 기본적으로 기술적인 작업이라서 표현 의욕과는 관계없이 거의 일상적으로 할 수 있고 동시에 글쓰기에 아주 좋은 공부가 됩니다(만일 번역을 하지 않았다면 뭔가 그런 쪽의 다른 작업을 찾아냈을 겁니다). - 111쪽

아무래도 나는 그런 유형인 것 같습니다. 물론 두뇌 회전이 그리 빠르지 않기 때문이라는 점도 있겠지만(상당히 많음), 어느 시점에 조급하게 결론을 내렸는데 나중에 보니 그때 내렸던 결론이 올바르지 않은(혹은 부정확한, 불충분한) 것으로 판명되는 씁쓸한 경험을 지금까지 수없이 되풀이했기 때문입니다. 그 바람에 몹시 창피하거나 식은땀을 흘리거나 쓸데없이 멀리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일의 결론을 즉각 내리지 않도록 하자’ ‘가능한 한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자’라는 습관이 서서히 내 안에 형성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건 타고난 성향이라기보다 오히려 후천적으로, 경험적으로 따끔한 일을 겪어가며 몸에 밴 습관입니다. - 120, 121쪽

그래서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그것에 대해 즉각 어떤 결론을 내리는 쪽으로는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내가 목격한 광경을, 만난 사람들을, 혹은 경험한 사상(事象)을 어디까지나 하나의 ‘사례’로서, 말하자면 표본으로서, 최대한 있는 그대로의 형태로 기억에 담아두려고 노력합니다. 그렇게 하면 그것에 대해 나중에 좀 더 마음이 침착해졌을 때, 시간 여유가 있을 때, 다양한 방향에서 들여다보고 주의 깊게 검증하고 필요에 따라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 경험을 통해 말씀드리자면, 결론을 내릴 필요에 몰릴 만한 일이라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적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는-단기적이든 장기적이든-결론이라는 것을 사실은 별로 필요로 하지 않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들 정도입니다. 그래서 신문 가사를 읽거나 텔레비전 뉴스를 볼 때마다 나로서는 ‘저렇게 자꾸자꾸 결론만 내려놓고 대체 어쩌려는 거지?’하고 고개를 갸윳거리게 됩니다. - 120, 121쪽

제임스 조이스는 ‘상상력(imagination)이란 기억이다’라고 실로 간결하게 정의했습니다. 딱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임스 조이스, 완전 정답입니다. 상상력이란 그야말로 맥락 없는 단편적인 기억의 조합(combination)을 말합니다. 단어의 의미상으로는 좀 모순된 표현으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유효하게 조합된 맥락 없는 기억’은 그 자체의 직관을 갖고 예견성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스토리의 올바른 동력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 125, 126쪽

장편소설을 쓸 경우, 하루에 200자 원고지 20매를 쓰는 것을 규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내 맥(Mac) 화면으로 말하자면 대략 두 화면 반이지만, 옛날부터의 습관으로 200자 원고지로 계산합니다. 좀 더 쓰고 싶더라도 20매 정도에서 딱 멈추고, 오늘은 뭔가 좀 잘 안된다 싶어도 어떻든 노력해서 20매까지는 씁니다. 왜냐하면 장기적인 일을 할 때는 규칙성이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쓸 수 있을 때는 그 기세를 몰아 많이 써버린다, 써지지 않을 때는 쉰다, 라는 것으로는 규칙성은 생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타임카드를 찍듯이 하루에 거의 정확하게 20매를 씁니다. - 150쪽

이사크 디네센은 ‘나는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매일 조금씩 씁니다’라고 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는 매일매일 20매의 원고를 씁니다. 아주 담담하게. ‘희망도 절망도 없다’는 것은 실로 훌륭한 표현입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네 시간이나 다섯 시간, 책상을 마주합니다. 하루에 20매의 원고를 쓰면 한 달에 600매를 쓸 수 있습니다. 단순 계산하면 반년에 3,600매를 쓰게 됩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해변의 카프카>라는 작품의 초고가 3,600매였습니다. - 151쪽

그녀의 비평에는 ‘아닌 게 아니라 그렇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고 수긍이 가는 것도 있습니다. 그렇게 수긍하기까지 며칠씩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또한 ‘아니, 그렇지 않아. 내 생각이 옳아’라고 생각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제 삼자 도입’ 과정에서 내게는 한 가지 개인적인 규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트집 잡힌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 어찌 됐건 고친다’는 것입니다. 비판을 수긍할 수 없더라도 어쨌든 지적받은 부분이 있으면 그곳을 처음부터 다시 고쳐 씁니다. 지적에 동의할 수 없는 경우에는 상대의 조언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고치기도 합니다.
그런데 방향성이야 어찌 됐든,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아 그 부분을 고쳐 쓴 다음에 원고를 재차 읽어보면 거의 대부분의 경우, 이전보다 좋아졌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생각건대, 읽은 사람이 어떤 부분에 대해 지적할 때, 지적의 방향성은 어찌 됐건, 거기에는 뭔가 문제가 내포된 경우가 많습니다. 즉 그 부분에서 소설의 흐름이 많든 적든 턱턱 걸린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내가 할 일은 그 걸림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제거하느냐는 작가 스스로 결정하면 됩니다. - 157

물론 타인의 의견을 모두 다 덥석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개중에는 잘못짚은 의견, 부당한 의견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떤 의견이든 그것이 제정신에서 나온 것이라면 거기에는 뭔가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런 의견은 당신의 머리를 조금씩 냉각시켜 적절한 온도로 이끌어줍니다. 그들의 의견이란 즉 세상 사람들의 의견이고, 당신의 책을 읽는 건 결국 세상 사람들이기 때문에. 당신이 세상 사람들을 무시하려고 한다면 아마도 세상 사람들도 똑같이 당신을 무시할 것입니다. - 162, 163쪽

그래서 나는 내 작품이 간행되고 그것이 설령 혹독한-생각도 못할 만큼 혹독한-비판을 받는다고 해도 ‘뭐, 어쩔 수 없지’하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할 만큼은 했다’는 실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전 작업에도 양생에도 진득하게 시간을 들였고, 망치질에도 충분히 시간을 들였다는. 그래서 아무리 혹독한 비판을 받아도 그것 때문에 위축되거나 자신감을 잃는 일은 일단 없습니다. 물론 약간 불쾌해지는 정도의 일은 가끔 있지만, 그리 대단한 건 아닙니다. ‘시간에 의해 쟁취해낸 것은 시간이 증명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시간에 의해서가 아니면 증명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만일 그러한 확신이 내 안에 없었다면 아무리 베짱 좋고 태평한 나라도 어쩌면 침울해졌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은 똑 부러지게 했다’는 확실한 실감만 있으면 기본적으로 아무것도 두려워할 게 없습니다. 그다음은 시간의 손에 맡기면 됩니다. 시간을 소중하게, 신중하게, 예의 바르게 대하는 것은 곧 시간을 내편으로 만드는 것이기도 합니다. 여성을 대할 때와 똑같은 일이지요. - 167, 1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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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5-19 16: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출판사 서평에 보면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답하는 책”이라고 소개했어요. 아무리 소설을 쓰고 싶어도 하루키처럼 따라하지 못할 것 같아요.

붉은눈 2016-05-19 17:00   좋아요 0 | URL
출판사의 실제 의도도 그러했군요. 몰랐습니다. 이 책도 책이지만 어제 cyrus님의 서평을 읽으니 하루키가 더 대단해 보였습니다.

희망여행 2016-05-22 2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도 개인적인 작가가 쓰는 글에 너무나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매혹되는 이유는 누구나 개인주의적인 면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 개인적 성향을 편히 드러낼 수 있는 환경인지 아닌지의 차이일뿐..
서평이 너무 자세하고 좋아서 책을 다 읽은 것 같네요.

붉은눈 2016-05-25 11:31   좋아요 0 | URL
그의 반향처럼 어쩌면 그의 글을 읽는 많은 사람들이 조금 더 개인주의적인 삶을 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서평이랄 것도 없는 부족한 글을 칭찬해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루키는 뭔가 특정할 수 없는 매력이 있는 작가이죠. 그를 기점으로 많은 이들이 그를 흉내내기는 해도, 그와 같은 작가를 또 만나기란 당분간은 불가능 할 것 같습니다.

희망여행 2016-05-22 2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곧 읽을거예요. ^^
 
창의성을 지휘하라 - 지속 가능한 창조와 혁신을 이끄는 힘
에드 캣멀.에이미 월러스 지음, 윤태경 옮김 / 와이즈베리 / 201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내게 '창의성'은 항상 화두였다. 아주 뛰어난 발명품이나 놀라운 작품을 만드는 직업은 아니지만, 사회현상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나름 해결방안을 모색해 보는 것은 (남들이 알아주든 아니든) 내게 있어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일을 혼자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함께 일할 사람들과 '조직'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변화'와 '혁신'에 대해서도 연관지어 볼 때가 있다. 구글과 같은 창의성 가득한 직장에서 자유로운 방식으로 일하고 싶은 것은 많은 사람들의 바람일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자신이 경영하는 직장을 구글처럼 파격적으로 만들 수 있겠느냐에 대해서는 많은 경영인들이 고개를 저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기업문화를 구축하기 위하여 끊임 없이 고민하고 시도하는 경영자가 있다. 픽사 디즈니 애니메이션 사장 에드 캣멀(Ed Catmull)이다. 그는 이 책에서 루카스필름, 픽사를 거쳐 합병된 픽사디즈니의 사장을 맡으면서 그동안 계속 고민해왔던 "영리하고 야망 있는 인재들이 서로 휴율적으로 협력하도록 돕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개인의 이야기이자 픽사라는 기업의 이야기인지라 책의 내용은 에드 캣멀의 개인사와 더불어 픽사의 탄생과 성장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기업의 탄생과 발전, 위기, 부활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앞서 읽은 <레고 어떻게 무너진 블록을 다시 쌓았나>와 비슷한 구성이다. 그러나 <레고..>가 한 기업의 성장에 대한 제3자의 객관적 분석이라면, 이 책은 실제 기업 경영자의 경험과 생각을 주관적으로 제시하였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그래서 읽다보면 <레고...>보다 더 생생한 기업문화에 대한 느낌을 느낄 수 있다. 알렉스 슈어, 조지 루카스, 스티브 잡스 같은 이들과의 만남이나 <토이 스토리>, <카>, <라따뚜이>, <몬스터 주식회사>, <니모를 찾아서>, <업(UP)>, <벅스라이프>, <월E>, <브레이브> 등 다양한 애니메이션의 의 탄생 배경과 제작 당시의 상황을 엿보는 것만해도 꽤 재미있는 일이다. 


저자의 핵심 고민은 기업 내부에 존재하는 직원들의 창의성을 저해하는 요소들이 무엇이며, 관리자는 이를 어떻게 발견하고 해소해야 하는 것인지에 있다. 그는 기업의 불확실성, 불안, 소통 부족, 보이지 않는 문제에 대처하는 메커니즘을 기업의 중요한 경영 전략으로 보고, 경영자가 어떻게 겸손하고 열린 자세로 직원들의 의견을 경청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상당부분을 언급하고 있다. 경영자는 자신이 틀리거나 모를 수도 있다는 것을 항상 인식하면서 자신보다 뛰어난 인재들을 영입하기 위하여 힘쓰고, 조직구성원들의 생각을 집단지성으로 모아 경영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이것을 위해 저자가 제시한 것은 데일리스(dailies) 회의, 현장답사, 한도 설정, 기술과 예술의 융합, 소규모 실험, 보는 법 배우기, 사후분석 회의, 픽사 대학이라는 8가지 메커니즘이었다.


위 메커니즘의 상세한 내용과 장점을 일일히 열거할 수는 없지만, 디즈니와 픽사의 합병 이후 픽사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 디즈니의 수직적 구조를 타개하고 픽사의 기업문화를 지키려는 노력,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고 열린 마음을 활성화하여 창의성을 극대화 하기 위한 데일리스 회의의 시도, <라따뚜이> 제작시 프랑스에서 2주간 머물며 레스토랑과 주방을 방문하고 <니모를 찾아서> 제작을 위하여 샌프란시스코 하수구 처리장을 견학하는 등 현장에서 답을 구하는 방식은 레고랜드, 갤리도어 등 잘못된 혁신의 위기에서 레고가 했던 근본적인 고민, 오픈 소스를 통한 고객의견 청취와 공동개발의 시도, 닌자고 제작을 위하여 도쿄 근처 이가(Iga) 닌자 박물관을 견학하는 일은 먼저 보았던 <레고...>에서 레고가 기업의 위기를 벗어나려고 시도했던 항목들과 일치한다. 


세계에서 가장 창조적인 기업들이 실시하고 있는 공통분모라면 많은 기업들이 하루라도 빨리 벤치마킹해야 하는 것일테지만, 저자는 프로세스 이전에 '신뢰'의 구축에 보다 중점을 둔다. 몇 달에 한두번 회의를 열어 "솔직하게 말해보자"라고 한다고 그 기업이 다양하고 솔직한 의견을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결국 모든 메커니즘은 그 자체로 훌륭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기업문화라는 성공적인 기반을 갖추어야 가능한 것이다. 새겨 들을 이야기가 많다.

나는 (이들이 "넉넉한 여유, 발칙한 상상력, 엉뚱한 이탈"이라고 표현하는) 픽사의 기업문화야말로 픽사가 성공하는 데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였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픽사가 성공할 수 있었던 핵심 비결은 따로 있다.
그것은 ‘문제는 항상 존재하는 법이고, 그중 상당수는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원들이 인정한다는 점이다. 픽사 직원들은 자신이 그냥 지나쳐버리는 문제들을 찾아내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다소 불편해도 노력을 중단하지 않는다. 그리고 문제를 발견하면 모든 에너지를 문제를 해결하는 데 투입한다. 바로 이것이 내가 즐겁게 출근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다. 나는 미지의 문제들을 발견하고 해결하는 과제를 수행하며, 직원들도 이 같은 과제를 수행할 수 있게 돕고 싶다. 이것이 내가 픽사에서 일하는 동기이자, 내가 느끼는 사명감이다. - 8쪽

기업 내부에는 직원들의 창의성 발휘를 저해하는 위협 요소들이 있다. 이런 요소들을 발견하고 해소하는 것이 중간관리자와 경영자의 임무다. (...) 최고의 경영자들은 자신 역시 모르는 것이 있음을 인정한다. 겸손이 미덕이어서가 아니라, 이런 마음 자세로 접근하지 않으면 최고의 혁신을 일으킬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경영자들이 통제를 강화하는 대신 완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영자는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경영자는 직원들을 신뢰해야 하고, 직원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한다. 경영자는 직원들의 공포를 유발하는 요인을 파악해서 그것이 무엇이든 제거해야 한다. 성공한 리더들은 자신의 경영 모델이 잘못됐을 수도 있고, 불완전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열린 자세로 받아들인다. 우선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모르는 것을 배울 수 있다. - 15, 16쪽

경영이란 이런 것이다. 타당한 이유에 따라 내린 결정이 새로운 문제를 초래하고, 이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또 다른 결정을 내려야 한다. 기업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최초의 오류를 수정하는 것만으로 간단히 풀리는 법이 없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최초의 문제뿐만 아니라 여기서 파생된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해 함께 해결해야 한다. 참나무 한 그루를 뽑아내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다. 참나무 주변에 떨어진 도토리에서 새로운 참나무가 자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도토리를 없애지 않는 한, 참나무를 베었어도 문제가 사라졌다고 볼 수는 없다. - 26, 27쪽

나는 컴퓨터그래픽 연구소를 유타대학을 떠날 때 세운 목표를 추구할 수 있는 장소로 보았다. 컴퓨터그래픽 연구소에서 내 꿈을 추구하려면 가장 영리한 인재들을 끌어 모아야 했다. 그러려면 내 자리를 뺏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떨쳐버려야 했다. 다행히 내 머릿속에는 ‘도전을 직면했을 때는 더 영리한 인재들이 필요하다’라는 고등연구계획국의 교훈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더 영리한 인재들을 채용하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앨비 레이 스미스는 나와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내가 가장 신뢰하는 동료가 됐다. 그 후 나는 나보다 똑똑한 사람을 채용하는 것을 신조로 삼았다. 경영자가 뛰어난 인재들을 채용할 때 누릴 수 있는 확실한 이점은, 그들이 기업을 혁신하고 성과를 내는 덕분에 기업은 물론 경영자까지도 더 돋보이게 만든다는 것이다. 나는 특히 더 많은 혜택을 누렸다. 앨비 레이 스미스를 채용한 결정으로 나는 경영자의 길에 접어들었다. 나는 그를 채용함으로써 뛰어난 인재에게 내 자리를 뺏길 것이란 공포를 극복했고, 이런 공포가 근거 없는 것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됐다. - 50쪽

에드워드 데밍과 도요타의 접근법은 제품 생산 과정에 밀접하게 관여하는 사람들에게 제품의 품질을 높일 권한과 책임을 부여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 근로자들은 자신이 단지 컨베이어벨트 위를 지나가는 부품들을 조립하는, 영혼 없는 톱니바퀴 같은 존재가 아니라, 제품 생산 과정의 문제를 지적하고, 변화를 제안하고, 문제 해결에 기여해 회사를 키우는 구성원이라는 ‘자부심’을 느꼈다(나는 특히 마지막 대목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 끊임없는 개선이 일어나 불량률이 떨어지고 품질이 향상됐다. 즉, 일본의 조립라인은 근로자들이 제품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곳이 됐다. 모든 직원이 책임과 권한을 가지고 품질 개선에 달려드는 품질 경영체제는 세계 제조업의 판도를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 84쪽

나는 이런 제작관리자들의 선택을 선의에서 출발한 마이크로 경영(micromanaging: 경영자가 직원들을 직접 챙기면서 업무를 지휘 감독하고 통제하는 관리 스타일)이라고 해석했다. 영화 제작은 수백 명의 사람을 움직여야 하는 프로젝트이기에 지휘 계통이 필수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소통 구조와 조직 구조를 혼동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물론 애니메이터는 상관에게 사전 보고할 필요 없이 모형 제작자에게 직접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모든 임직원에게 직위나 시간에 상관없이, 누구든 문책받을 걱정하지 말고 다른 임직원에게 직위나 시간에 상관없이, 누구든 문책받을 걱정하지 말고 다른 임직원에게 자유롭게 얘기하라고 말했다. 직원들끼리 소통하는 일은 지휘 계통을 거칠 필요가 없어야 한다. 정보 교환은 픽사가 애니메이션 제작 사업에 성공하기 위한 열쇠였다. 또한 직원들끼리 직접 소통하고 나중에 상관에게 알리는 편이 ‘적합한 절차’와 ‘적절한 지휘 계통’을 거쳐 정보를 교환하는 것보다 효율적이다. - 101, 102쪽

제1원칙은 "스토리가 왕이다(Story is King)"이다. 우리는 제품 제작 과정에서 어떠한 요소도, 예컨대 기술이나 캐릭터 상품화 가능성도 스트리를 결정하는 과정에 끼어들지 않도록 조심했다. 우리는 관객들이 컴퓨터그래픽 기술이 아니라 <토이 스토리>의 감명 깊은 스토리에 주목해 높은 평가를 내린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다. 이는 스토리를 제작 과정의 길잡이로 삼은 결과다. - 105쪽

제2원칙은 "프로세스를 신뢰하라(Trust the Process)"다. 우리는 이 원칙을 좋아했다. 제작 과정의 고민을 덜어주는 원칙이기 때문이다. 복잡한 창작 활동 중에는 문제에 부딪히고 실수를 저지르기 일쑤지만, 픽사 직원들은 ‘프로세스’를 따라가면 문제를 해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버텼다. 이 원칙은 "조금만 더 힘내(Hang in there, baby)!" 같은 낙관적 경구들과 다를 바 없으나 픽사 직원들에게는 매우 유용했다. 픽사의 프로세스는 다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와 다른 점이 있기 때문이다. 픽사 경영진은 애니메이터들에게 자유롭게 작업할 공간을 배정하고, 감독들에게 권한을 부여하고, 각자에게 문제 해결을 맡겼다. - 106쪽

좋은 아이디어를 평범한 팀에게 맡기면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온다. 반면 평범한 아이디어를 탁월한 팀에게 맡기면, 그들은 아이디어를 수정하든 폐기하든 해서 더 나은 결과를 내놓는다.
이 교훈은 더 설명할 가치가 있다. 적합한 팀에게 일을 맡기는 것이 아이디어를 성공적으로 구현하는 선결 조건이다. 재능 있는 인재들을 원한다고 말하기는 쉽고, 경영자들 또한 재능 있는 인재들을 원하지만, 정말로 핵심 관건은 이런 인재들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이다. 아무리 영리한 사람들을 모아놓아도 서로 어울리지 않으면 비효율적인 팀이 된다. 경영자가 직원 개개인의 재능이 아니라 팀이 돌아가는 상황에 초점을 맞추는 편이 낫다는 뜻이다. 좋은 팀은 서로 보완해주는 사람들로 구성된다. 여기서 도출할 수 있는 중요한(자명해 보이지만 내 경험상 경영자가 깨닫기 어려운) 원리가 있다. 업무에 적합한 인재들이 상성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도록 하는 것이 좋은 아이디어를 내는 것보다 중요하다. - 115, 116쪽

<토이 스토리 2>는 픽사를 밑바닥에서부터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픽사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소중한 직원들을 희생시키는 사태가 또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방지하고, 직원들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이 배려할 필요가 있었다. <토이 스토리 2> 제작이 끝나자마자 경영진은 직원들이 작업 중 다치는 확률을 낮추는 방안을 강구했다. 픽사 경영진의 고민은 녹초가 돼 앓는 직원들을 의료진에게 보내고,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된 컴퓨터, 요가 강좌, 물리치료를 직원들에게 제공하는 차원에서 멈추지 않았다. 근로 의욕이 높고 일에 중독된 직원들이 마감 기한을 맞추고자 불철주야 일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보는 경영자가 많지만, <토이 스토리 2> 제작 과정을 지켜본 나는 직원들이 한계를 넘어 과로하다 보면 기업이 파멸할 수도 있겠다고 느꼈다. 픽사 직원들이 해낸 일이 너무도 자랑스러웠지만, 이런 방식으로 또다시 작품을 제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확신했다. - 118, 119쪽

무릇 경영자라면 직원들이 기업의 성과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게 개입하고, 직원들을 보호해야 한다. 경영자가 장기적 관점에서 직원들을 보호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다. - 118, 119쪽

단순히 아이디어를 반복해서 말하는 것만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 말만 하지 말고 그에 딸 행동하고 생각해야 한다. "스토리가 왕이다"란 문구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것은 <토이 스토리 2>를 제적한 신예감독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 지침은 제작 과정에서 많이 언급됐지만, 결국 작품이 산으로 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오히려 제작진에게 일이 잘 풀릴 것이라는 잘못된 희망만 불어 넣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프로세스를 신뢰하라"는 문구도 <토이 스토리 2>가 잘못된 길로 들어서는 것을 막지 못했다. 제작진은 "프로세스를 신뢰하라"는 문구를 "프로세스가 문제를 해결해줄 테니 걱정하지 마라"라고 해석했다. 제작진은 이 문구를 되뇌며 위안을 얻었다. 그러면서 경계심을 늦추고 수동적으로 변해 대충 작업하게 됐다. - 122쪽

이런 사실을 깨닫고 나서 나는 직원들에게 "프로세스를 신뢰하라"는 문구가 의미 없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 문구가 우리가 문제에 신경 쓰고 대응하지 못하도록 신경을 흐트러뜨리는 장애물이 됐다고 말했다. 우리가 신뢰해야 할 대상은 프로세스가 아니라 사람이다. 우리가 저지른 오류는 ‘프로세스’ 자체는 내용도, 의미도 없다는 점을 망각한 것이다. 프로세스는 도구이자 체계일 뿐이다. 픽사 직원들은 목표의식과 주인의식을 가지고 스스로 통제하고 책임지고 일할 필요가 있었다. - 122쪽

이즈음 존 래스터가 "품질이 최고의 사업 계획(Quality is the best business plan)"이라는 슬로건을 만들었다. 뜻은 이렇다. 품질은 일련의 프로세스를 통해 나온 결과가 아니다. 품질은 제작에 나서기 전에 갖춰야 할 전제 조건이자 정신 자세다. 모든 사람이 품질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말만 하지 말고 항상 품질을 높이는 방안을 생각하며 일해야 한다. 픽사 직원들이 최고품질의 애니메이션만 제작하길 원한다고 주장하고, 이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였을 때 픽사의 정체성이 공고히 다져졌다. 이후 픽사는 절대 안주하지 않는 기업이 됐다. 그렇다고 해서 픽사가 실수를 저지른 적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실수는 창의성의 일부다. 픽사 직원들은 실수를 저질렀을 때 변명하지 않고 적극 변화하려는 의지를 지니고 실수에 정면대응했다. - 125, 126쪽

‘픽사의 브레인트러스트가 다른 기업의 피드백 메커니즘과 다른 게 뭐야?’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내가 볼 때, 두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다. 첫째, 픽사의 브레인트러스트는 스토리텔링을 심도 있게 이해하는 사람들, 대개 작품 제작에 참여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다. 픽사 감독들은 다양한 사람들의 비평을 환영하지만(사실 모든 픽사 직원들은 중간결과물을 보고 의견서를 보내야 한다), 특히 동료 감독, 각본가가 보낸 피드백을 더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둘째, 픽사의 브레인트러스트는 지시할 권한이 없다. 이는 중요한 차이다. 감독은 브레인트러스트의 특정 제안을 꼭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없다. 브레인트러스트 회의 후, 브레인트러스트의 피드백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결정하는 것은 감독의 몫이다. 브레인트러스트 회의는 강압적인 하향식 피드백 메커니즘이 아니다. 감독에게 해법을 지시할 권한을 브레인트러스트에 부여하지 않음으로써 감독이 브레인트러스트에 반발하거나 소통이 어려워지는 일을 방지한다. - 139, 140쪽

몇 달마다 한 번씩 직원들을 모아놓고 솔직하게 토론하라고 맡기면 저절로 기업의 병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실수다. 첫째, 어떤 집단이건 간에 처벌받을 것이란 공포 없이 솔직하게 의견을 표현하고 비평하고 건설적인 비평 언어를 배우기까지는 일정 수준의 신뢰를 구축할 시간이 필요하다. 둘째, 경험 많은 전문가로 구성된 브레인트러스트일지라도 브레인트러스트의 철학을 이해하지 못하고 방어적인 자세로 비평을 듣는 사람들 혹은 피드백을 소화해 업무를 재설정하고 재시작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도울 수는 없다. 셋째, 브레인트러스트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진화하는 조직이다. 따라서 경영자가 한번 만들고 방치해도 좋은 조직이 아니다. 재능 있고 인성 좋은 사람들을 모아놓은 브레인트러스트일지라도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직원들 사이의, 부서들 사이의 역학관계가 늘 바뀌기 때문에 브레인트러스트가 제기능을 수행하도록 보장하기 위해서는 경영자가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보호하고, 필요하면 수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 155, 156쪽

실패를 다르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실패에 적절하게 접근하면, 실패는 성장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대다수의 사람이 이 같은 주장을 ‘실패는 필요악’이라고 해석한다. 실패는 필요악이 아니다. 실패는 전혀 ‘악하지’ 않다. 실패는 새로운 일을 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피할 수 없는 귀결이다(그리고 실패는 가치 있다. 실패 없이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실패를 받아들이는 것은 중요한 학습 기회이지만, 이런 진실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실패는 고통스러운 경험이기에, 실패에 대한 감정이 실패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실패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구분하기 위해선 고통스러운 현실과 그 결과 달성하는 성장의 혜택을 둘 다 인식해야 한다. - 160쪽

실패를 (인간 본성이 허락하는 한) 두려워하지 않는 기업문화를 조성할 경우, 직원들은 새로운 영역을 탐구하고, 가지 않은 길을 찾아보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행위를 훨씬 덜 꺼리게 된다. 또한 과감한 행동의 좋은 면을 인식하게 된다. 막다른 길에 당도했을 때, 자신이 제대로 된 길로 왔는지 되돌아가야 할지 고민하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것만 해도 큰 이득이다.
길을 선택하는 것만으론 충분치 않다. 선택한 길로 가야 한다. 그렇게 해야 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된다.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쓸모 없을 수도 있고, 혼란만 더할 수도 있지만 최소한 ‘몰랐던 곳을 탐색해봤다’는 의미는 있다. 잘못된 곳을 헤맸다고 뒤늦게 깨달았어도 올바른 길로 되돌아갈 시간이 여전히 존재한다. 잘못된 곳을 헤매는 동안 경험한 일들은 헛된 것이 아니다. 당장 업무에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 솔깃한 아이디어를 탐색했다면 기억해뒀다가 나중에 활용할 수도 있다. - 164쪽

픽사 경영진이 직원들에게 독려하는 ‘시행착오 반복’은 최대한 빨리 틀려 학습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접근법이다. 모든 가능성과 결과를 염두에 두고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성공 확률을 높이는 접근법을 쓰는 경영자도 있다. 그러나 창의적인 제품을 생산하려는 기업에서 모든 문제에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는 경영자는 자기기만의 함정에 빠질 위험이 있다. 실패 확률을 낮추는 데 집착하면, 과거에 성공한 제품이나 방식을 복제하기 심상이다. 따라서 세밀하고 완벽하게 계획을 세운 뒤에 일을 추진하려는 경영자는 독창적이지 않은 제품을 생산할 확률이 높다. 아니, 무엇보다도 문제해결 방법을 미리 계획하기란 불가능하다. 계획은 중요하다. 픽사 임직원들도 많이 계획한다. 하지만 창의적 제품을 만들려면 통제해야 할 요소들이 너무 많이 해법을 미리 계획할 수 없다. - 167, 168쪽

내가 지금까지 관찰한 바로는 접근 방식을 오래 고민하고 선뜻 행동에 나서길 주저하는 사람이 오류를 저지를 확률은 빨리 뛰어들어 일하는 사람과 비슷했다. 지나치게 계획하는 사람은 실패 확률을 낮추지 못한다. 실패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어질 뿐이다(투입한 시간이 증가하는 만큼 실패할 때 느끼는 좌절감은 더 커진다). 더군다나 계획에 시간을 많이 들일수록 효과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집착하기 십상이다. 현재의 접근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두외자 다른 접근 방식을 생각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행동은 바로 현재의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는 것인데도 말이다. 창의적인 제품을 만들려는 기업이 실패 확률을 낮추는 데 집착하는 것은 오히려 더 큰 실패를 부르게 마련이다. - 167, 168쪽

사람들은 효과가 검증된 것, 예컨대 과거에 통한 스토리, 방법, 전략에 안주하고 싶어 한다. 새로 고안한 방법이 효과가 있다고 판명되면, 이 방법을 계속 사용한다. 조직은 이런 식으로 학습한다. 조직은 성공을 거둬 성장할수록 기존 접근법에 집착하고, 점점 더 변화를 거부하게 된다.
변화는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변화의 불가피성 때문에 사람들은 더더욱 자신에게 익숙한 기존 방식을 고수하고자 저항한다. 불행히도 인간은 아직 유효하고 지킬 가치가 있는 것과 유효하지 않고 버려야 하는 것을 구분하는 데 서툴다. 창의적 기업의 직원들에게 변화가 긍정적인 것이라 믿는지 묻는다면, 절대다수가 그렇다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픽사와 디즈니의 합병 후 내가 경험한 현실은 정반대였다. 인간은 변화를 두려워하는 본성이 있다. 변화에 대한 공포는 이성으로 억누르기 어렵고, 직원들에게 지속적으로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변화에 대한 공포에 전염된 직원들은 의자 빼앗기 놀이를 할 때와 비슷한 심리 상태를 보인다. 즉, 안전하다고 인식하는 장소에 계속 머물려고 하고, 다음에도 안전한 장소에 앉을 것 같지 않으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으려 한다. - 210쪽

인정하기는 싫지만, 이 대목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변화를 반기든 거부하든 상관없이 변화는 일어난다는 사실뿐이다. 많은 사람이 예측할 수 없고 무작위로 일어나는 사건들을 두려워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내가 생각하기에 무작위성은 피할 수 없는 게 분명하지만, 이는 인생의 묘미이기도 하다. 이 점을 인식하고 인정하면 뜻하지 않은 상황이 닥쳐도 건설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사람들은 공포에 짓눌려 확실하고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지만 확실한 것, 안정적인 것을 추구한다고 안전해진다는 보장은 없다. 나는 다르게 접근한다. 나는 무작위성을 두려워하는 대신 인생에서 무작위성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로 인식하고, 무작위성을 긍정적으로 활용하는 선택을 내릴 수 있다고 믿는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은 창의성의 산실이다. - 211쪽

가끔 모든 것을 바꾸어놓는 큰 사건이 일어난다. 사람들은 이런 사건을 작은 사건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사건으로 인식한다. 기업에서는 이런 큰 사건을 문제로 인식한다. 사람들은 갖가지 문제를 ‘통상적 문제’와 ‘비상사태’ 두 부류로 분류하고, 두 부류의 문제에 다른 태도와 다른 사고방식으로 접근한다. 사람들은 큰 문제에 대처하느라 정신이 팔려 작은 문제들을 무시한다. 작은 문제 중 일부는 장기적으로 볼 때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는데, 이 같은 사실을 간과하고 큰 문제의 싹을 방치하고 있는 셈이다. 나는 큰 문제와 작은 문제에 동등한 가치와 동등한 태도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큰 문제와 작은 문제는 본질적으로 같은 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예기치 못한 비상사태가 발생했다고 해서 공포에 질리거나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예기치 못한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 227쪽

내가 지켜보고 경험한 바에 따르면, 창의적인 사람들은 어느 날 갑자기 번뜩이는 영감으로 비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헌신하고 고생한 끝에 비전을 발견하고 실현한다. 창의성은 100미터 달리기보다는 마라톤에 가깝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오랫동안 페이스를 유지해야 한다. 나는 컴퓨터 애니메이션의 미래를 전망해달라는 요청을 자주 받는데, 그때마다 통찰력 있는 답변을 내놓고자 최선을 다하지만, 솔직히 고백하면 나도 미래를 잘 모른다. 픽사 감독들이 자신이 구상하는 작품이 어떤 모습으로 탄생할지 정확히 예상하지 못하는 것처럼, 나도 앞으로 어떤 기술이 나와 컴퓨터 애니메이션을 바꾸어놓을지 상상할 수 없다. 미래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를 예상하고 미리 대처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다. 그저 자신이 지침으로 삼는 원칙들을 지키며 본래 의도에 맞게 목표를 추구해 나갈 뿐이다. 이와 관련, 유타대학 시절 알게 된 인연으로 내게 스티브 잡스를 소개해준 컴퓨터공학자 앨런 케이(Alan Kay)는 핵심을 찌르는 말을 했다.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 - 305, 306쪽

며칠이면 풀 수 있는 문제를 기술부서 현장감독들은 왜 6개월이나 걸린다고 보았을까? 나는 이들이 너무나 오랫동안 오류 예방 절차에 지나치게 신경 써온 탓이라고 해석했다. 실수를 저지를 경우 처벌받을 것이란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직원들의 주목표는 절대로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것이 돼버렸다. 직원들은 이런 공포 때문에 며칠이면 풀 수 있는 문제에 대한 해법을 상사에게 제안하지 않았다. 현장감독들은 캐릭터가 ‘아무 오류 없이’ 완벽하게 작동하도록 다시 만들려면 6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우리에게 보고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만약 오류를 며칠 만에 수정할 수 있다면 수정할 시간이 충분히 남아돌 테니, 처음부터 오류를 예방하려고 그토록 집착할 필요가 없다. 현장감독들이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을 원천봉쇄하려고 집착한 것이 오히려 위기를 부른 셈이다. 비단 이 사례뿐만이 아니다. 중간관리자들이 실패하지 않으려고 집작하다가 문제를 키우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 358쪽

나는 픽사가 조만간 또 다른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창조적인 조직문화를 계속 활성화하기 위해서 경영자는 지속적인 불확실성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항상 변하는 날씨를 받아들이듯, 지속적인 불확실성을 받아들여야 한다. 불확실성과 변화는 변수가 아니라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상수다. 불확실성과 변화가 있기에 인생이 재미있는 것이다. - 3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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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 어떻게 무너진 블록을 다시 쌓았나
데이비드 로버트슨.빌 브린 지음, 김태훈 옮김 / 해냄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레고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 아니 좋아하지는 않더라도 한번쯤 그 원색의 블록을 맞추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포천>지에서 한 농담처럼 " 적어도 100억 개는 소파 쿠션 밑에 그리고 30억 개는 진공청소기 안에 있을" 정도로 레고는 전 세계인에게 오랫동안 폭넓게 사랑을 받은 브랜드이다. 그런데 이런 레고가 거의 파산지경에 이를 정도의 위기를 겪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을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나 또한 어려서부터 다양한 레고를 갖고 놀았지만 나중에 아이와 같이 놀아줄 때나 레고를 다시 접했을 뿐이지, 그 중간의 시간동안 레고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신제품이 간간히 출시되는 것 외에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그저 늘 그렇게 존재하고 있었다는 생각만 했을 뿐.  


레고는 1980년대 말 상호 결속 블록에 대한 특허가 만료되면서 메가블록스, 옥스퍼드블릭스 등 다양한 업체들의 도전을 받았다. 이들은 저렴한 가격과 모방제품으로 레고의 아이덴티디를 약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러한 위기와 맞물려 성장 동력을 찾던 중 절제하지 않은 다량의 신제품 출시는 레고 그룹 스스로 자초한 문제점이 되어 재정을 압박했다. 1990년대 이후 급변하는 사회 분위기는 컴퓨터 게임과 텔레비전 앞에 몰려든 아이들이 더이상 블록을 맞추며 놀도록 만들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레고는 1. 다양하고 창의적인 사람의 고용, 2. 블루오션 시장으로의 진출, 3. 고객 중심의 운영, 4. 파괴적 혁신, 5. 열린 혁신 촉진, 6. 혁신의 전 영역 탐험, 7. 혁신 문화 구축이라는 일곱가지 원칙을 실천하면서 재성장을 도모했다. 그러나 조직 관리와 인재 활용에 대한 누수, 새로운 시장에 대한 과도한 야심, 새로운 고객 중심 전략에 따른 기존 고객의 이탈, 잘못된 방향의 파괴적 혁신, 대중의 공감과 호응 부족, 단계적 접근방식을 고려하지 않은 리스크 관리의 실패, 올바른 혁신에 대한 방향 설정 부재 등 각 원칙을 잘못 실현함으로써 더 심하고 근본적인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위의 7원칙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원칙을 어떻게 실현하는가가 문제였다.)


이후 레고의 본질을 다시 설정하면서 이를 지키려는 노력들이 레고의 생존 시스템을 만들었고, 제품뿐만 아니라 조직 문화 내에서의 진실성과 현실성의 추구가 '최고의 제품'이라는 원칙을 다시 한번 공유하게 했다. 이밖에도 레고 시티의 부활로 기존 고객들을 다시 불러들이고, 바이오니클로 신규 고객들을 흡수하면서, 마인드스톰을 통하여 고객과의 공동 개발 및 참여를 확대함으로써 재도약을 이루게 되었다.


한 기업의 탄생, 발전, 위기, 부활에 대한 일련의 흐름이 비교적 잘 정리되어 있고, 레고라는 기업에 맞춘 생생한 인터뷰와 자료 정리가 돋보인다. 그렇지만 기업의 운영에 관하여 제3자가 분석하고 평가하는 형태를 띄고 있기 때문에 레고나 레고 그룹에 그다지 많은 관심이 없다면 책의 상당 부분은 지루할 수도 있다.

고트프레드는 이 경험을 기억하며, 훗날 아버지의 이상을 목판에 새겨서 영원히 간직했다. 지금도 "Det bedste er ikke for godt", 즉 "최고만이 최선이다"라고 새겨진 목판을 벽화 크기로 찍은 사진이 빌룬 레고 본사의 식당 입구에 걸려 있다. 이 사진은 직원들에게 탁월한 성과를 내도록 독려하는 푯말과 같다.
‘미래의 건설자들’을 섬기고 ‘최고만을 만든다’는 두 가지 근본 원칙이 레고를 경쟁자들과 차별하고 세계시장에서 두드러지게 해준다. 품질에 대한 레고의, 헌신이 의심스럽다면 다음을 떠올려보라. ‘레고를 밟는 고통을 느낀 사람들을 위한’ 페이스북 페이지에 무려 50만 명 이상이 ‘좋아요’ 버튼을 누르게 만들 만큼 엄청나게 튼튼하고 단단한 블록을 제조하기 위해 투입하는 그들의 노력과 기술을 말이다. - 39, 40쪽

판도를 바꾸는 혁신은 하나의 포괄적이고 야심찬 전략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적어도 하나의 시도가 미래에 먼저 이르게 해줄 확률을 높이는 줄기찬 실험에서 나온다. 비즈니스 전략가인 게리 하멜은 <경영의 미래>에서 이 견해를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혁신은 언제나 수치 게임이다. 더 많이 이룰수록 큰 수확을 거둘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점을 아는 레고는 새로운 혁신에 다수의 베팅을 하기에 충분한 창의성 그리고 그 베팅에 대한 상금을 거둘 수 있을 만큼 오래 버틸 충분한 끈기를 지니고 있었다. - 40, 41쪽

명확하게 규정된 핵심 사업에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은 혁신에 대한 보편적인 사고 중 다수와 상충한다. 보편적 사고에 따르면 유능한 사람들은 창의성을 발휘할 폭넓은 캔버스를 지니고 ‘블루오션’ 시장을 찾거나 ‘파괴적’ 기술을 개발하도록 허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고트프레드는 레고 시스템이 대단히 긴밀한 제약 안에서도 상당한 혁신을 허용할 만큼 충분히 유연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가 보기에 모든 레고 디자이너의 아이디어는 블록을 토대로 삼고 놀이 시스템에 부합하는 한 추진 범위 안에 들었다. 뒤이은 수년 동안 디자이너들은 블록의 DNA를 확장하는 능력을 향상시켰다. 그리고 취학 전 아동을 위한 듀플로 블록과 숙련된 조립자들을 위한 테크닉 블록들로부터 프로그래밍 가능한 마인드스톰 블록까지 이익을 창출하는 현란한 일련의 제품들을 개발했다. 그러나 이 모든 획기적 제품들은 ‘블록 안에서(inside the brick)` 이뤄지는 혁신에서 나왔다. - 49쪽

고트프레드는 핵심 사업의 경계를 엄격하게 규정함으로써, 디자이너들에게 ‘블록 기반’ 창의성을 토대로 세계를 선도하는 역량을 개발할 기회를 주었다. 이는 향후 오랫동안 활용되었다. "더 적은 것이 더 많은 것이다"는 많은 기업이 잊었고, 레고 자신도 세기 말에는 잊게 될 원칙이었다. - 49쪽

블록만은 디자인하는 것처럼 한정된 일을 탁월하게 해내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은, 또 다른 혁신가인 스티브 잡스가 제시한 리더십에 대한 핵심적 교훈의 전례가 되었다. 그는 "혁신은 잡다한 것들을 거부하는 일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비록 그것이 정말 좋은 것이라도 배제할 대상이 무엇인지 아는 일은 때로 훨씬 나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1977년에 나온 레고의 유니버설 빌딩 세트가 그런 예이다. 이 세트는 단 일곱 가지 색상에 수십 가지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도 그 단순성과 활용성 덕분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 50쪽

1. 다양하고 창의적인 사람을 고용하라
2. 블루오션 시장으로 향하라
3. 고객 중심으로 운영하라
4. 파괴적 혁신을 실행하라
5. 대중의 지혜를 활용하고 열린 혁신을 촉진하라
6. 혁신의 전 영역을 탐험하라
7. 혁신 문화를 구축하라 - 76쪽

‘공유 비전’은 크투스토르프가 임원뿐만 아니라 일선 직원까지 포함하는 베테랑 구성원들과 수차례에 걸쳐 진행한 워크숍을 통해 마련했다. 아스킬센이 성인 팬 그리고 직원들과 가진 내부 만남에서 했던 것처럼 크누스토르프는 레고 그룹을 향해 거대하고 철학적인 질문을 제기했다. 그 질문은 회사가 공유하는 정체성은 무엇인가였다.
그는 레고에 진정으로 필요한 폭넓은 대답들을 갖고 있었다. 하나는 핵심 가치를 통해 이익을 얻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고급 제품으로서 레고가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
그는 "회사가 나아갈 방향을 모든 구성원이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정확하게 같은 표현을 쓸 필요는 없어요. 같은 방향을 공유한다고 해도 나름의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으니까요"라고 설명했다. - 200, 201쪽

‘공유 비전’이 지닌 즉각적인 목표는 성장을 이루기 위해 바라볼 지점을 정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유 비전은 하나의 이데올로기, 근본적으로 향후 수년 동안 레고를 이끌 탄탄한 정체성을 부여하기 위한 철학이기도 했다. 이 점은 레고 그룹에 활력을 불어넣는 가치관 중 하나로서 ‘최고만이 최선’이라는 올레 키르크의 신조를 다시 받드는 것을 뜻했다.
근래에 직원들은 제품을 과도하게 디자인하고 복잡하게 만들도록 유도해 개발 절차를 느리게 만든다는 생각에 이 모토에서 멀어졌다. 완벽성에 대한 추구가 추진력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크누스토르프는 이 모토를 되살려서 표현을 더 직접적으로 해석했다. "최고라고 해도 충분히 좋은 것은 아니다."- 200, 201쪽

닌자고 팀의 에릭 레제르네스는 "다른 분야에서 온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를 도발하고 자극합니다. 이는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과 일하는 것보다 훨씬 생산적입니다"라고 말했다.
이 논리에 따라 레고는 일각에서 ‘T자형 인재’로 불리는 사람들을 고용하려고 애썼다. T자형 콘셉트는 오랫동안 크누스토르프의 전 직장인 맥킨지앤드컴퍼니와 디자인 기업 아이데오의 주요 특징이었다. T자의 수직 기둥은 특정한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나타내며, 수평 들보는 여려 분야에 걸친 지식의 폭을 말한다. 이렇게 깊이와 통섭적 기술이 결합된 강력한 역량은 레고 디자이너들이 항상 부딪히는 대단히 까다로운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을 높여준다. - 346쪽

모든 혁신 노력과 마찬가지로 혁신의 진리를 활용하려면 특정한 순서와 속도가 필요하다. 핵심 가치와 고객에서 출발하고, 거기서부터 노력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리고 너무 많은 일을 너무 빨리 하려 해서는 안 된다. 크누스토르프가 말한 대로 ‘일을 해내는’ 법을 아는 핵심 사업을 먼저 구축하지 않으면,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발견할 가능성은 대단히 낮아진다. - 3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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