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을 지휘하라 - 지속 가능한 창조와 혁신을 이끄는 힘
에드 캣멀.에이미 월러스 지음, 윤태경 옮김 / 와이즈베리 / 201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내게 '창의성'은 항상 화두였다. 아주 뛰어난 발명품이나 놀라운 작품을 만드는 직업은 아니지만, 사회현상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나름 해결방안을 모색해 보는 것은 (남들이 알아주든 아니든) 내게 있어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일을 혼자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함께 일할 사람들과 '조직'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변화'와 '혁신'에 대해서도 연관지어 볼 때가 있다. 구글과 같은 창의성 가득한 직장에서 자유로운 방식으로 일하고 싶은 것은 많은 사람들의 바람일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자신이 경영하는 직장을 구글처럼 파격적으로 만들 수 있겠느냐에 대해서는 많은 경영인들이 고개를 저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기업문화를 구축하기 위하여 끊임 없이 고민하고 시도하는 경영자가 있다. 픽사 디즈니 애니메이션 사장 에드 캣멀(Ed Catmull)이다. 그는 이 책에서 루카스필름, 픽사를 거쳐 합병된 픽사디즈니의 사장을 맡으면서 그동안 계속 고민해왔던 "영리하고 야망 있는 인재들이 서로 휴율적으로 협력하도록 돕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개인의 이야기이자 픽사라는 기업의 이야기인지라 책의 내용은 에드 캣멀의 개인사와 더불어 픽사의 탄생과 성장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기업의 탄생과 발전, 위기, 부활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앞서 읽은 <레고 어떻게 무너진 블록을 다시 쌓았나>와 비슷한 구성이다. 그러나 <레고..>가 한 기업의 성장에 대한 제3자의 객관적 분석이라면, 이 책은 실제 기업 경영자의 경험과 생각을 주관적으로 제시하였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그래서 읽다보면 <레고...>보다 더 생생한 기업문화에 대한 느낌을 느낄 수 있다. 알렉스 슈어, 조지 루카스, 스티브 잡스 같은 이들과의 만남이나 <토이 스토리>, <카>, <라따뚜이>, <몬스터 주식회사>, <니모를 찾아서>, <업(UP)>, <벅스라이프>, <월E>, <브레이브> 등 다양한 애니메이션의 의 탄생 배경과 제작 당시의 상황을 엿보는 것만해도 꽤 재미있는 일이다. 


저자의 핵심 고민은 기업 내부에 존재하는 직원들의 창의성을 저해하는 요소들이 무엇이며, 관리자는 이를 어떻게 발견하고 해소해야 하는 것인지에 있다. 그는 기업의 불확실성, 불안, 소통 부족, 보이지 않는 문제에 대처하는 메커니즘을 기업의 중요한 경영 전략으로 보고, 경영자가 어떻게 겸손하고 열린 자세로 직원들의 의견을 경청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상당부분을 언급하고 있다. 경영자는 자신이 틀리거나 모를 수도 있다는 것을 항상 인식하면서 자신보다 뛰어난 인재들을 영입하기 위하여 힘쓰고, 조직구성원들의 생각을 집단지성으로 모아 경영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이것을 위해 저자가 제시한 것은 데일리스(dailies) 회의, 현장답사, 한도 설정, 기술과 예술의 융합, 소규모 실험, 보는 법 배우기, 사후분석 회의, 픽사 대학이라는 8가지 메커니즘이었다.


위 메커니즘의 상세한 내용과 장점을 일일히 열거할 수는 없지만, 디즈니와 픽사의 합병 이후 픽사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 디즈니의 수직적 구조를 타개하고 픽사의 기업문화를 지키려는 노력,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고 열린 마음을 활성화하여 창의성을 극대화 하기 위한 데일리스 회의의 시도, <라따뚜이> 제작시 프랑스에서 2주간 머물며 레스토랑과 주방을 방문하고 <니모를 찾아서> 제작을 위하여 샌프란시스코 하수구 처리장을 견학하는 등 현장에서 답을 구하는 방식은 레고랜드, 갤리도어 등 잘못된 혁신의 위기에서 레고가 했던 근본적인 고민, 오픈 소스를 통한 고객의견 청취와 공동개발의 시도, 닌자고 제작을 위하여 도쿄 근처 이가(Iga) 닌자 박물관을 견학하는 일은 먼저 보았던 <레고...>에서 레고가 기업의 위기를 벗어나려고 시도했던 항목들과 일치한다. 


세계에서 가장 창조적인 기업들이 실시하고 있는 공통분모라면 많은 기업들이 하루라도 빨리 벤치마킹해야 하는 것일테지만, 저자는 프로세스 이전에 '신뢰'의 구축에 보다 중점을 둔다. 몇 달에 한두번 회의를 열어 "솔직하게 말해보자"라고 한다고 그 기업이 다양하고 솔직한 의견을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결국 모든 메커니즘은 그 자체로 훌륭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기업문화라는 성공적인 기반을 갖추어야 가능한 것이다. 새겨 들을 이야기가 많다.

나는 (이들이 "넉넉한 여유, 발칙한 상상력, 엉뚱한 이탈"이라고 표현하는) 픽사의 기업문화야말로 픽사가 성공하는 데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였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픽사가 성공할 수 있었던 핵심 비결은 따로 있다.
그것은 ‘문제는 항상 존재하는 법이고, 그중 상당수는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원들이 인정한다는 점이다. 픽사 직원들은 자신이 그냥 지나쳐버리는 문제들을 찾아내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다소 불편해도 노력을 중단하지 않는다. 그리고 문제를 발견하면 모든 에너지를 문제를 해결하는 데 투입한다. 바로 이것이 내가 즐겁게 출근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다. 나는 미지의 문제들을 발견하고 해결하는 과제를 수행하며, 직원들도 이 같은 과제를 수행할 수 있게 돕고 싶다. 이것이 내가 픽사에서 일하는 동기이자, 내가 느끼는 사명감이다. - 8쪽

기업 내부에는 직원들의 창의성 발휘를 저해하는 위협 요소들이 있다. 이런 요소들을 발견하고 해소하는 것이 중간관리자와 경영자의 임무다. (...) 최고의 경영자들은 자신 역시 모르는 것이 있음을 인정한다. 겸손이 미덕이어서가 아니라, 이런 마음 자세로 접근하지 않으면 최고의 혁신을 일으킬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경영자들이 통제를 강화하는 대신 완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영자는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경영자는 직원들을 신뢰해야 하고, 직원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한다. 경영자는 직원들의 공포를 유발하는 요인을 파악해서 그것이 무엇이든 제거해야 한다. 성공한 리더들은 자신의 경영 모델이 잘못됐을 수도 있고, 불완전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열린 자세로 받아들인다. 우선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모르는 것을 배울 수 있다. - 15, 16쪽

경영이란 이런 것이다. 타당한 이유에 따라 내린 결정이 새로운 문제를 초래하고, 이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또 다른 결정을 내려야 한다. 기업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최초의 오류를 수정하는 것만으로 간단히 풀리는 법이 없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최초의 문제뿐만 아니라 여기서 파생된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해 함께 해결해야 한다. 참나무 한 그루를 뽑아내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다. 참나무 주변에 떨어진 도토리에서 새로운 참나무가 자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도토리를 없애지 않는 한, 참나무를 베었어도 문제가 사라졌다고 볼 수는 없다. - 26, 27쪽

나는 컴퓨터그래픽 연구소를 유타대학을 떠날 때 세운 목표를 추구할 수 있는 장소로 보았다. 컴퓨터그래픽 연구소에서 내 꿈을 추구하려면 가장 영리한 인재들을 끌어 모아야 했다. 그러려면 내 자리를 뺏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떨쳐버려야 했다. 다행히 내 머릿속에는 ‘도전을 직면했을 때는 더 영리한 인재들이 필요하다’라는 고등연구계획국의 교훈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더 영리한 인재들을 채용하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앨비 레이 스미스는 나와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내가 가장 신뢰하는 동료가 됐다. 그 후 나는 나보다 똑똑한 사람을 채용하는 것을 신조로 삼았다. 경영자가 뛰어난 인재들을 채용할 때 누릴 수 있는 확실한 이점은, 그들이 기업을 혁신하고 성과를 내는 덕분에 기업은 물론 경영자까지도 더 돋보이게 만든다는 것이다. 나는 특히 더 많은 혜택을 누렸다. 앨비 레이 스미스를 채용한 결정으로 나는 경영자의 길에 접어들었다. 나는 그를 채용함으로써 뛰어난 인재에게 내 자리를 뺏길 것이란 공포를 극복했고, 이런 공포가 근거 없는 것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됐다. - 50쪽

에드워드 데밍과 도요타의 접근법은 제품 생산 과정에 밀접하게 관여하는 사람들에게 제품의 품질을 높일 권한과 책임을 부여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 근로자들은 자신이 단지 컨베이어벨트 위를 지나가는 부품들을 조립하는, 영혼 없는 톱니바퀴 같은 존재가 아니라, 제품 생산 과정의 문제를 지적하고, 변화를 제안하고, 문제 해결에 기여해 회사를 키우는 구성원이라는 ‘자부심’을 느꼈다(나는 특히 마지막 대목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 끊임없는 개선이 일어나 불량률이 떨어지고 품질이 향상됐다. 즉, 일본의 조립라인은 근로자들이 제품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곳이 됐다. 모든 직원이 책임과 권한을 가지고 품질 개선에 달려드는 품질 경영체제는 세계 제조업의 판도를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 84쪽

나는 이런 제작관리자들의 선택을 선의에서 출발한 마이크로 경영(micromanaging: 경영자가 직원들을 직접 챙기면서 업무를 지휘 감독하고 통제하는 관리 스타일)이라고 해석했다. 영화 제작은 수백 명의 사람을 움직여야 하는 프로젝트이기에 지휘 계통이 필수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소통 구조와 조직 구조를 혼동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물론 애니메이터는 상관에게 사전 보고할 필요 없이 모형 제작자에게 직접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모든 임직원에게 직위나 시간에 상관없이, 누구든 문책받을 걱정하지 말고 다른 임직원에게 직위나 시간에 상관없이, 누구든 문책받을 걱정하지 말고 다른 임직원에게 자유롭게 얘기하라고 말했다. 직원들끼리 소통하는 일은 지휘 계통을 거칠 필요가 없어야 한다. 정보 교환은 픽사가 애니메이션 제작 사업에 성공하기 위한 열쇠였다. 또한 직원들끼리 직접 소통하고 나중에 상관에게 알리는 편이 ‘적합한 절차’와 ‘적절한 지휘 계통’을 거쳐 정보를 교환하는 것보다 효율적이다. - 101, 102쪽

제1원칙은 "스토리가 왕이다(Story is King)"이다. 우리는 제품 제작 과정에서 어떠한 요소도, 예컨대 기술이나 캐릭터 상품화 가능성도 스트리를 결정하는 과정에 끼어들지 않도록 조심했다. 우리는 관객들이 컴퓨터그래픽 기술이 아니라 <토이 스토리>의 감명 깊은 스토리에 주목해 높은 평가를 내린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다. 이는 스토리를 제작 과정의 길잡이로 삼은 결과다. - 105쪽

제2원칙은 "프로세스를 신뢰하라(Trust the Process)"다. 우리는 이 원칙을 좋아했다. 제작 과정의 고민을 덜어주는 원칙이기 때문이다. 복잡한 창작 활동 중에는 문제에 부딪히고 실수를 저지르기 일쑤지만, 픽사 직원들은 ‘프로세스’를 따라가면 문제를 해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버텼다. 이 원칙은 "조금만 더 힘내(Hang in there, baby)!" 같은 낙관적 경구들과 다를 바 없으나 픽사 직원들에게는 매우 유용했다. 픽사의 프로세스는 다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와 다른 점이 있기 때문이다. 픽사 경영진은 애니메이터들에게 자유롭게 작업할 공간을 배정하고, 감독들에게 권한을 부여하고, 각자에게 문제 해결을 맡겼다. - 106쪽

좋은 아이디어를 평범한 팀에게 맡기면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온다. 반면 평범한 아이디어를 탁월한 팀에게 맡기면, 그들은 아이디어를 수정하든 폐기하든 해서 더 나은 결과를 내놓는다.
이 교훈은 더 설명할 가치가 있다. 적합한 팀에게 일을 맡기는 것이 아이디어를 성공적으로 구현하는 선결 조건이다. 재능 있는 인재들을 원한다고 말하기는 쉽고, 경영자들 또한 재능 있는 인재들을 원하지만, 정말로 핵심 관건은 이런 인재들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이다. 아무리 영리한 사람들을 모아놓아도 서로 어울리지 않으면 비효율적인 팀이 된다. 경영자가 직원 개개인의 재능이 아니라 팀이 돌아가는 상황에 초점을 맞추는 편이 낫다는 뜻이다. 좋은 팀은 서로 보완해주는 사람들로 구성된다. 여기서 도출할 수 있는 중요한(자명해 보이지만 내 경험상 경영자가 깨닫기 어려운) 원리가 있다. 업무에 적합한 인재들이 상성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도록 하는 것이 좋은 아이디어를 내는 것보다 중요하다. - 115, 116쪽

<토이 스토리 2>는 픽사를 밑바닥에서부터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픽사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소중한 직원들을 희생시키는 사태가 또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방지하고, 직원들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이 배려할 필요가 있었다. <토이 스토리 2> 제작이 끝나자마자 경영진은 직원들이 작업 중 다치는 확률을 낮추는 방안을 강구했다. 픽사 경영진의 고민은 녹초가 돼 앓는 직원들을 의료진에게 보내고,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된 컴퓨터, 요가 강좌, 물리치료를 직원들에게 제공하는 차원에서 멈추지 않았다. 근로 의욕이 높고 일에 중독된 직원들이 마감 기한을 맞추고자 불철주야 일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보는 경영자가 많지만, <토이 스토리 2> 제작 과정을 지켜본 나는 직원들이 한계를 넘어 과로하다 보면 기업이 파멸할 수도 있겠다고 느꼈다. 픽사 직원들이 해낸 일이 너무도 자랑스러웠지만, 이런 방식으로 또다시 작품을 제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확신했다. - 118, 119쪽

무릇 경영자라면 직원들이 기업의 성과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게 개입하고, 직원들을 보호해야 한다. 경영자가 장기적 관점에서 직원들을 보호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다. - 118, 119쪽

단순히 아이디어를 반복해서 말하는 것만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 말만 하지 말고 그에 딸 행동하고 생각해야 한다. "스토리가 왕이다"란 문구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것은 <토이 스토리 2>를 제적한 신예감독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 지침은 제작 과정에서 많이 언급됐지만, 결국 작품이 산으로 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오히려 제작진에게 일이 잘 풀릴 것이라는 잘못된 희망만 불어 넣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프로세스를 신뢰하라"는 문구도 <토이 스토리 2>가 잘못된 길로 들어서는 것을 막지 못했다. 제작진은 "프로세스를 신뢰하라"는 문구를 "프로세스가 문제를 해결해줄 테니 걱정하지 마라"라고 해석했다. 제작진은 이 문구를 되뇌며 위안을 얻었다. 그러면서 경계심을 늦추고 수동적으로 변해 대충 작업하게 됐다. - 122쪽

이런 사실을 깨닫고 나서 나는 직원들에게 "프로세스를 신뢰하라"는 문구가 의미 없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 문구가 우리가 문제에 신경 쓰고 대응하지 못하도록 신경을 흐트러뜨리는 장애물이 됐다고 말했다. 우리가 신뢰해야 할 대상은 프로세스가 아니라 사람이다. 우리가 저지른 오류는 ‘프로세스’ 자체는 내용도, 의미도 없다는 점을 망각한 것이다. 프로세스는 도구이자 체계일 뿐이다. 픽사 직원들은 목표의식과 주인의식을 가지고 스스로 통제하고 책임지고 일할 필요가 있었다. - 122쪽

이즈음 존 래스터가 "품질이 최고의 사업 계획(Quality is the best business plan)"이라는 슬로건을 만들었다. 뜻은 이렇다. 품질은 일련의 프로세스를 통해 나온 결과가 아니다. 품질은 제작에 나서기 전에 갖춰야 할 전제 조건이자 정신 자세다. 모든 사람이 품질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말만 하지 말고 항상 품질을 높이는 방안을 생각하며 일해야 한다. 픽사 직원들이 최고품질의 애니메이션만 제작하길 원한다고 주장하고, 이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였을 때 픽사의 정체성이 공고히 다져졌다. 이후 픽사는 절대 안주하지 않는 기업이 됐다. 그렇다고 해서 픽사가 실수를 저지른 적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실수는 창의성의 일부다. 픽사 직원들은 실수를 저질렀을 때 변명하지 않고 적극 변화하려는 의지를 지니고 실수에 정면대응했다. - 125, 126쪽

‘픽사의 브레인트러스트가 다른 기업의 피드백 메커니즘과 다른 게 뭐야?’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내가 볼 때, 두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다. 첫째, 픽사의 브레인트러스트는 스토리텔링을 심도 있게 이해하는 사람들, 대개 작품 제작에 참여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다. 픽사 감독들은 다양한 사람들의 비평을 환영하지만(사실 모든 픽사 직원들은 중간결과물을 보고 의견서를 보내야 한다), 특히 동료 감독, 각본가가 보낸 피드백을 더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둘째, 픽사의 브레인트러스트는 지시할 권한이 없다. 이는 중요한 차이다. 감독은 브레인트러스트의 특정 제안을 꼭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없다. 브레인트러스트 회의 후, 브레인트러스트의 피드백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결정하는 것은 감독의 몫이다. 브레인트러스트 회의는 강압적인 하향식 피드백 메커니즘이 아니다. 감독에게 해법을 지시할 권한을 브레인트러스트에 부여하지 않음으로써 감독이 브레인트러스트에 반발하거나 소통이 어려워지는 일을 방지한다. - 139, 140쪽

몇 달마다 한 번씩 직원들을 모아놓고 솔직하게 토론하라고 맡기면 저절로 기업의 병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실수다. 첫째, 어떤 집단이건 간에 처벌받을 것이란 공포 없이 솔직하게 의견을 표현하고 비평하고 건설적인 비평 언어를 배우기까지는 일정 수준의 신뢰를 구축할 시간이 필요하다. 둘째, 경험 많은 전문가로 구성된 브레인트러스트일지라도 브레인트러스트의 철학을 이해하지 못하고 방어적인 자세로 비평을 듣는 사람들 혹은 피드백을 소화해 업무를 재설정하고 재시작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도울 수는 없다. 셋째, 브레인트러스트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진화하는 조직이다. 따라서 경영자가 한번 만들고 방치해도 좋은 조직이 아니다. 재능 있고 인성 좋은 사람들을 모아놓은 브레인트러스트일지라도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직원들 사이의, 부서들 사이의 역학관계가 늘 바뀌기 때문에 브레인트러스트가 제기능을 수행하도록 보장하기 위해서는 경영자가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보호하고, 필요하면 수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 155, 156쪽

실패를 다르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실패에 적절하게 접근하면, 실패는 성장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대다수의 사람이 이 같은 주장을 ‘실패는 필요악’이라고 해석한다. 실패는 필요악이 아니다. 실패는 전혀 ‘악하지’ 않다. 실패는 새로운 일을 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피할 수 없는 귀결이다(그리고 실패는 가치 있다. 실패 없이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실패를 받아들이는 것은 중요한 학습 기회이지만, 이런 진실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실패는 고통스러운 경험이기에, 실패에 대한 감정이 실패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실패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구분하기 위해선 고통스러운 현실과 그 결과 달성하는 성장의 혜택을 둘 다 인식해야 한다. - 160쪽

실패를 (인간 본성이 허락하는 한) 두려워하지 않는 기업문화를 조성할 경우, 직원들은 새로운 영역을 탐구하고, 가지 않은 길을 찾아보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행위를 훨씬 덜 꺼리게 된다. 또한 과감한 행동의 좋은 면을 인식하게 된다. 막다른 길에 당도했을 때, 자신이 제대로 된 길로 왔는지 되돌아가야 할지 고민하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것만 해도 큰 이득이다.
길을 선택하는 것만으론 충분치 않다. 선택한 길로 가야 한다. 그렇게 해야 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된다.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쓸모 없을 수도 있고, 혼란만 더할 수도 있지만 최소한 ‘몰랐던 곳을 탐색해봤다’는 의미는 있다. 잘못된 곳을 헤맸다고 뒤늦게 깨달았어도 올바른 길로 되돌아갈 시간이 여전히 존재한다. 잘못된 곳을 헤매는 동안 경험한 일들은 헛된 것이 아니다. 당장 업무에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 솔깃한 아이디어를 탐색했다면 기억해뒀다가 나중에 활용할 수도 있다. - 164쪽

픽사 경영진이 직원들에게 독려하는 ‘시행착오 반복’은 최대한 빨리 틀려 학습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접근법이다. 모든 가능성과 결과를 염두에 두고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성공 확률을 높이는 접근법을 쓰는 경영자도 있다. 그러나 창의적인 제품을 생산하려는 기업에서 모든 문제에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는 경영자는 자기기만의 함정에 빠질 위험이 있다. 실패 확률을 낮추는 데 집착하면, 과거에 성공한 제품이나 방식을 복제하기 심상이다. 따라서 세밀하고 완벽하게 계획을 세운 뒤에 일을 추진하려는 경영자는 독창적이지 않은 제품을 생산할 확률이 높다. 아니, 무엇보다도 문제해결 방법을 미리 계획하기란 불가능하다. 계획은 중요하다. 픽사 임직원들도 많이 계획한다. 하지만 창의적 제품을 만들려면 통제해야 할 요소들이 너무 많이 해법을 미리 계획할 수 없다. - 167, 168쪽

내가 지금까지 관찰한 바로는 접근 방식을 오래 고민하고 선뜻 행동에 나서길 주저하는 사람이 오류를 저지를 확률은 빨리 뛰어들어 일하는 사람과 비슷했다. 지나치게 계획하는 사람은 실패 확률을 낮추지 못한다. 실패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어질 뿐이다(투입한 시간이 증가하는 만큼 실패할 때 느끼는 좌절감은 더 커진다). 더군다나 계획에 시간을 많이 들일수록 효과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집착하기 십상이다. 현재의 접근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두외자 다른 접근 방식을 생각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행동은 바로 현재의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는 것인데도 말이다. 창의적인 제품을 만들려는 기업이 실패 확률을 낮추는 데 집착하는 것은 오히려 더 큰 실패를 부르게 마련이다. - 167, 168쪽

사람들은 효과가 검증된 것, 예컨대 과거에 통한 스토리, 방법, 전략에 안주하고 싶어 한다. 새로 고안한 방법이 효과가 있다고 판명되면, 이 방법을 계속 사용한다. 조직은 이런 식으로 학습한다. 조직은 성공을 거둬 성장할수록 기존 접근법에 집착하고, 점점 더 변화를 거부하게 된다.
변화는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변화의 불가피성 때문에 사람들은 더더욱 자신에게 익숙한 기존 방식을 고수하고자 저항한다. 불행히도 인간은 아직 유효하고 지킬 가치가 있는 것과 유효하지 않고 버려야 하는 것을 구분하는 데 서툴다. 창의적 기업의 직원들에게 변화가 긍정적인 것이라 믿는지 묻는다면, 절대다수가 그렇다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픽사와 디즈니의 합병 후 내가 경험한 현실은 정반대였다. 인간은 변화를 두려워하는 본성이 있다. 변화에 대한 공포는 이성으로 억누르기 어렵고, 직원들에게 지속적으로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변화에 대한 공포에 전염된 직원들은 의자 빼앗기 놀이를 할 때와 비슷한 심리 상태를 보인다. 즉, 안전하다고 인식하는 장소에 계속 머물려고 하고, 다음에도 안전한 장소에 앉을 것 같지 않으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으려 한다. - 210쪽

인정하기는 싫지만, 이 대목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변화를 반기든 거부하든 상관없이 변화는 일어난다는 사실뿐이다. 많은 사람이 예측할 수 없고 무작위로 일어나는 사건들을 두려워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내가 생각하기에 무작위성은 피할 수 없는 게 분명하지만, 이는 인생의 묘미이기도 하다. 이 점을 인식하고 인정하면 뜻하지 않은 상황이 닥쳐도 건설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사람들은 공포에 짓눌려 확실하고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지만 확실한 것, 안정적인 것을 추구한다고 안전해진다는 보장은 없다. 나는 다르게 접근한다. 나는 무작위성을 두려워하는 대신 인생에서 무작위성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로 인식하고, 무작위성을 긍정적으로 활용하는 선택을 내릴 수 있다고 믿는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은 창의성의 산실이다. - 211쪽

가끔 모든 것을 바꾸어놓는 큰 사건이 일어난다. 사람들은 이런 사건을 작은 사건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사건으로 인식한다. 기업에서는 이런 큰 사건을 문제로 인식한다. 사람들은 갖가지 문제를 ‘통상적 문제’와 ‘비상사태’ 두 부류로 분류하고, 두 부류의 문제에 다른 태도와 다른 사고방식으로 접근한다. 사람들은 큰 문제에 대처하느라 정신이 팔려 작은 문제들을 무시한다. 작은 문제 중 일부는 장기적으로 볼 때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는데, 이 같은 사실을 간과하고 큰 문제의 싹을 방치하고 있는 셈이다. 나는 큰 문제와 작은 문제에 동등한 가치와 동등한 태도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큰 문제와 작은 문제는 본질적으로 같은 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예기치 못한 비상사태가 발생했다고 해서 공포에 질리거나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예기치 못한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 227쪽

내가 지켜보고 경험한 바에 따르면, 창의적인 사람들은 어느 날 갑자기 번뜩이는 영감으로 비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헌신하고 고생한 끝에 비전을 발견하고 실현한다. 창의성은 100미터 달리기보다는 마라톤에 가깝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오랫동안 페이스를 유지해야 한다. 나는 컴퓨터 애니메이션의 미래를 전망해달라는 요청을 자주 받는데, 그때마다 통찰력 있는 답변을 내놓고자 최선을 다하지만, 솔직히 고백하면 나도 미래를 잘 모른다. 픽사 감독들이 자신이 구상하는 작품이 어떤 모습으로 탄생할지 정확히 예상하지 못하는 것처럼, 나도 앞으로 어떤 기술이 나와 컴퓨터 애니메이션을 바꾸어놓을지 상상할 수 없다. 미래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를 예상하고 미리 대처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다. 그저 자신이 지침으로 삼는 원칙들을 지키며 본래 의도에 맞게 목표를 추구해 나갈 뿐이다. 이와 관련, 유타대학 시절 알게 된 인연으로 내게 스티브 잡스를 소개해준 컴퓨터공학자 앨런 케이(Alan Kay)는 핵심을 찌르는 말을 했다.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 - 305, 306쪽

며칠이면 풀 수 있는 문제를 기술부서 현장감독들은 왜 6개월이나 걸린다고 보았을까? 나는 이들이 너무나 오랫동안 오류 예방 절차에 지나치게 신경 써온 탓이라고 해석했다. 실수를 저지를 경우 처벌받을 것이란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직원들의 주목표는 절대로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것이 돼버렸다. 직원들은 이런 공포 때문에 며칠이면 풀 수 있는 문제에 대한 해법을 상사에게 제안하지 않았다. 현장감독들은 캐릭터가 ‘아무 오류 없이’ 완벽하게 작동하도록 다시 만들려면 6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우리에게 보고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만약 오류를 며칠 만에 수정할 수 있다면 수정할 시간이 충분히 남아돌 테니, 처음부터 오류를 예방하려고 그토록 집착할 필요가 없다. 현장감독들이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을 원천봉쇄하려고 집착한 것이 오히려 위기를 부른 셈이다. 비단 이 사례뿐만이 아니다. 중간관리자들이 실패하지 않으려고 집작하다가 문제를 키우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 358쪽

나는 픽사가 조만간 또 다른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창조적인 조직문화를 계속 활성화하기 위해서 경영자는 지속적인 불확실성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항상 변하는 날씨를 받아들이듯, 지속적인 불확실성을 받아들여야 한다. 불확실성과 변화는 변수가 아니라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상수다. 불확실성과 변화가 있기에 인생이 재미있는 것이다. - 3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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