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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 어떻게 무너진 블록을 다시 쌓았나
데이비드 로버트슨.빌 브린 지음, 김태훈 옮김 / 해냄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레고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 아니 좋아하지는 않더라도 한번쯤 그 원색의 블록을 맞추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포천>지에서 한 농담처럼 " 적어도 100억 개는 소파 쿠션 밑에 그리고 30억 개는 진공청소기 안에 있을" 정도로 레고는 전 세계인에게 오랫동안 폭넓게 사랑을 받은 브랜드이다. 그런데 이런 레고가 거의 파산지경에 이를 정도의 위기를 겪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을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나 또한 어려서부터 다양한 레고를 갖고 놀았지만 나중에 아이와 같이 놀아줄 때나 레고를 다시 접했을 뿐이지, 그 중간의 시간동안 레고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신제품이 간간히 출시되는 것 외에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그저 늘 그렇게 존재하고 있었다는 생각만 했을 뿐.
레고는 1980년대 말 상호 결속 블록에 대한 특허가 만료되면서 메가블록스, 옥스퍼드블릭스 등 다양한 업체들의 도전을 받았다. 이들은 저렴한 가격과 모방제품으로 레고의 아이덴티디를 약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러한 위기와 맞물려 성장 동력을 찾던 중 절제하지 않은 다량의 신제품 출시는 레고 그룹 스스로 자초한 문제점이 되어 재정을 압박했다. 1990년대 이후 급변하는 사회 분위기는 컴퓨터 게임과 텔레비전 앞에 몰려든 아이들이 더이상 블록을 맞추며 놀도록 만들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레고는 1. 다양하고 창의적인 사람의 고용, 2. 블루오션 시장으로의 진출, 3. 고객 중심의 운영, 4. 파괴적 혁신, 5. 열린 혁신 촉진, 6. 혁신의 전 영역 탐험, 7. 혁신 문화 구축이라는 일곱가지 원칙을 실천하면서 재성장을 도모했다. 그러나 조직 관리와 인재 활용에 대한 누수, 새로운 시장에 대한 과도한 야심, 새로운 고객 중심 전략에 따른 기존 고객의 이탈, 잘못된 방향의 파괴적 혁신, 대중의 공감과 호응 부족, 단계적 접근방식을 고려하지 않은 리스크 관리의 실패, 올바른 혁신에 대한 방향 설정 부재 등 각 원칙을 잘못 실현함으로써 더 심하고 근본적인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위의 7원칙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원칙을 어떻게 실현하는가가 문제였다.)
이후 레고의 본질을 다시 설정하면서 이를 지키려는 노력들이 레고의 생존 시스템을 만들었고, 제품뿐만 아니라 조직 문화 내에서의 진실성과 현실성의 추구가 '최고의 제품'이라는 원칙을 다시 한번 공유하게 했다. 이밖에도 레고 시티의 부활로 기존 고객들을 다시 불러들이고, 바이오니클로 신규 고객들을 흡수하면서, 마인드스톰을 통하여 고객과의 공동 개발 및 참여를 확대함으로써 재도약을 이루게 되었다.
한 기업의 탄생, 발전, 위기, 부활에 대한 일련의 흐름이 비교적 잘 정리되어 있고, 레고라는 기업에 맞춘 생생한 인터뷰와 자료 정리가 돋보인다. 그렇지만 기업의 운영에 관하여 제3자가 분석하고 평가하는 형태를 띄고 있기 때문에 레고나 레고 그룹에 그다지 많은 관심이 없다면 책의 상당 부분은 지루할 수도 있다.
고트프레드는 이 경험을 기억하며, 훗날 아버지의 이상을 목판에 새겨서 영원히 간직했다. 지금도 "Det bedste er ikke for godt", 즉 "최고만이 최선이다"라고 새겨진 목판을 벽화 크기로 찍은 사진이 빌룬 레고 본사의 식당 입구에 걸려 있다. 이 사진은 직원들에게 탁월한 성과를 내도록 독려하는 푯말과 같다. ‘미래의 건설자들’을 섬기고 ‘최고만을 만든다’는 두 가지 근본 원칙이 레고를 경쟁자들과 차별하고 세계시장에서 두드러지게 해준다. 품질에 대한 레고의, 헌신이 의심스럽다면 다음을 떠올려보라. ‘레고를 밟는 고통을 느낀 사람들을 위한’ 페이스북 페이지에 무려 50만 명 이상이 ‘좋아요’ 버튼을 누르게 만들 만큼 엄청나게 튼튼하고 단단한 블록을 제조하기 위해 투입하는 그들의 노력과 기술을 말이다. - 39, 40쪽
판도를 바꾸는 혁신은 하나의 포괄적이고 야심찬 전략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적어도 하나의 시도가 미래에 먼저 이르게 해줄 확률을 높이는 줄기찬 실험에서 나온다. 비즈니스 전략가인 게리 하멜은 <경영의 미래>에서 이 견해를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혁신은 언제나 수치 게임이다. 더 많이 이룰수록 큰 수확을 거둘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점을 아는 레고는 새로운 혁신에 다수의 베팅을 하기에 충분한 창의성 그리고 그 베팅에 대한 상금을 거둘 수 있을 만큼 오래 버틸 충분한 끈기를 지니고 있었다. - 40, 41쪽
명확하게 규정된 핵심 사업에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은 혁신에 대한 보편적인 사고 중 다수와 상충한다. 보편적 사고에 따르면 유능한 사람들은 창의성을 발휘할 폭넓은 캔버스를 지니고 ‘블루오션’ 시장을 찾거나 ‘파괴적’ 기술을 개발하도록 허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고트프레드는 레고 시스템이 대단히 긴밀한 제약 안에서도 상당한 혁신을 허용할 만큼 충분히 유연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가 보기에 모든 레고 디자이너의 아이디어는 블록을 토대로 삼고 놀이 시스템에 부합하는 한 추진 범위 안에 들었다. 뒤이은 수년 동안 디자이너들은 블록의 DNA를 확장하는 능력을 향상시켰다. 그리고 취학 전 아동을 위한 듀플로 블록과 숙련된 조립자들을 위한 테크닉 블록들로부터 프로그래밍 가능한 마인드스톰 블록까지 이익을 창출하는 현란한 일련의 제품들을 개발했다. 그러나 이 모든 획기적 제품들은 ‘블록 안에서(inside the brick)` 이뤄지는 혁신에서 나왔다. - 49쪽
고트프레드는 핵심 사업의 경계를 엄격하게 규정함으로써, 디자이너들에게 ‘블록 기반’ 창의성을 토대로 세계를 선도하는 역량을 개발할 기회를 주었다. 이는 향후 오랫동안 활용되었다. "더 적은 것이 더 많은 것이다"는 많은 기업이 잊었고, 레고 자신도 세기 말에는 잊게 될 원칙이었다. - 49쪽
블록만은 디자인하는 것처럼 한정된 일을 탁월하게 해내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은, 또 다른 혁신가인 스티브 잡스가 제시한 리더십에 대한 핵심적 교훈의 전례가 되었다. 그는 "혁신은 잡다한 것들을 거부하는 일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비록 그것이 정말 좋은 것이라도 배제할 대상이 무엇인지 아는 일은 때로 훨씬 나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1977년에 나온 레고의 유니버설 빌딩 세트가 그런 예이다. 이 세트는 단 일곱 가지 색상에 수십 가지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도 그 단순성과 활용성 덕분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 50쪽
1. 다양하고 창의적인 사람을 고용하라 2. 블루오션 시장으로 향하라 3. 고객 중심으로 운영하라 4. 파괴적 혁신을 실행하라 5. 대중의 지혜를 활용하고 열린 혁신을 촉진하라 6. 혁신의 전 영역을 탐험하라 7. 혁신 문화를 구축하라 - 76쪽
‘공유 비전’은 크투스토르프가 임원뿐만 아니라 일선 직원까지 포함하는 베테랑 구성원들과 수차례에 걸쳐 진행한 워크숍을 통해 마련했다. 아스킬센이 성인 팬 그리고 직원들과 가진 내부 만남에서 했던 것처럼 크누스토르프는 레고 그룹을 향해 거대하고 철학적인 질문을 제기했다. 그 질문은 회사가 공유하는 정체성은 무엇인가였다. 그는 레고에 진정으로 필요한 폭넓은 대답들을 갖고 있었다. 하나는 핵심 가치를 통해 이익을 얻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고급 제품으로서 레고가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 그는 "회사가 나아갈 방향을 모든 구성원이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정확하게 같은 표현을 쓸 필요는 없어요. 같은 방향을 공유한다고 해도 나름의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으니까요"라고 설명했다. - 200, 201쪽
‘공유 비전’이 지닌 즉각적인 목표는 성장을 이루기 위해 바라볼 지점을 정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유 비전은 하나의 이데올로기, 근본적으로 향후 수년 동안 레고를 이끌 탄탄한 정체성을 부여하기 위한 철학이기도 했다. 이 점은 레고 그룹에 활력을 불어넣는 가치관 중 하나로서 ‘최고만이 최선’이라는 올레 키르크의 신조를 다시 받드는 것을 뜻했다. 근래에 직원들은 제품을 과도하게 디자인하고 복잡하게 만들도록 유도해 개발 절차를 느리게 만든다는 생각에 이 모토에서 멀어졌다. 완벽성에 대한 추구가 추진력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크누스토르프는 이 모토를 되살려서 표현을 더 직접적으로 해석했다. "최고라고 해도 충분히 좋은 것은 아니다."- 200, 201쪽
닌자고 팀의 에릭 레제르네스는 "다른 분야에서 온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를 도발하고 자극합니다. 이는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과 일하는 것보다 훨씬 생산적입니다"라고 말했다. 이 논리에 따라 레고는 일각에서 ‘T자형 인재’로 불리는 사람들을 고용하려고 애썼다. T자형 콘셉트는 오랫동안 크누스토르프의 전 직장인 맥킨지앤드컴퍼니와 디자인 기업 아이데오의 주요 특징이었다. T자의 수직 기둥은 특정한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나타내며, 수평 들보는 여려 분야에 걸친 지식의 폭을 말한다. 이렇게 깊이와 통섭적 기술이 결합된 강력한 역량은 레고 디자이너들이 항상 부딪히는 대단히 까다로운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을 높여준다. - 346쪽
모든 혁신 노력과 마찬가지로 혁신의 진리를 활용하려면 특정한 순서와 속도가 필요하다. 핵심 가치와 고객에서 출발하고, 거기서부터 노력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리고 너무 많은 일을 너무 빨리 하려 해서는 안 된다. 크누스토르프가 말한 대로 ‘일을 해내는’ 법을 아는 핵심 사업을 먼저 구축하지 않으면,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발견할 가능성은 대단히 낮아진다. - 3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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