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인간 -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 살림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가, 하릴 없이 서적 코너에 있는 책들을 훑어보았다. 요즘 통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 가볍게 읽을 소설을 찾던 중에 마침 적당한 제목과 두께의 책이 눈에 띄었다. 잠깐동안 서서 책을 넘기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4분의 1 정도를 읽어버렸다. 이 자리에서 끝까지 읽을지를 고민하다가 돌아갈 시간이 되어 구입한 책이다.

 

다수의 일본 소설처럼 이 책도 별다른 구성이나 목차가 없다. 주인공(후루쿠라)의 회상과 시선에 따라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이야기는 평범이나 보통이라는 범주에 편입되지 못한 주인공이 그래도 자신의 본질 혹은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겪게되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사건'이라고 표현했지만, 이 책의 설정들은 편의점이라는 장소에서 일어날 법한 그리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일들이다. 다만, 편의점 내의 한 부품으로서의 삶에 만족하고, 그 이상의 것을 바라지 않는 주인공에게 던져지는 세상의 낯선 시선과 평범함의 강요라는 것에 대해서는 현대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 생각해볼 여지를 제시하는 것 같다.

 

더 이상 바라는 것 없이 서른 살이 훌쩍 넘도록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그에 대해서, 이제 제대로 된 직장도 잡고 결혼도 해야 한다고 조언하는 그 주변인들과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다가, 그냥 그대로 사는 것은 왜 안된다는 것인지에 대한 거부감이 들기도 한다. 자신이 가장 편하게 느끼는 삶을 살고 있음에도 주변의 눈치를 봐야 하는 그에게 연민을 느끼다가도, 그 불편한 시선을 떨어내고자 억지스럽게 동거를 하려는 후루쿠라의 선택에는 혀를 끌끌 차기도 한다.

 

'나는 나의 본질을 어떻게 찾아야 할까?' 책을 다 읽고 나서 든 생각이다. 나역시 그처럼 조직이나 단체의 일원으로 속해 있을 때 안정감과 행복감을 느낀 적이 있었다. 아니, 어쩌면 지금 이 순간 강하게 인지하지 못할 뿐이지, 여전히 그런 안도감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후루쿠라의 삶을 불편하게 읽었다면, 내가 이미 평범이나 정상이라는 범주를 당연스럽게 수용하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반대로 그를 둘러싼 시선들에 반감을 느꼈다면, 내 마음 속 어딘가에는 지금의 평범함에서 벗어나고 싶은 충동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비록 내가 가려는 곳이 평범의 기준에서는 한참 수준 미달의 것이라고 해도 말이다.

 

가끔씩 느끼는 '적어도 저런 사람처럼 살지는 않는다'라는 안도감을 경계하기로 다짐한다. 이런 생각의 기저에는 '저런 사람'에 대한 배타적인 감정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내 평범함의 범주로부터 타인을 배제하지 않으면서, 나를 굳이 평범함의 범주에 밀어넣지 않으면서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어머니는 "이 새는 작고 귀엽지? 저쪽에 무덤을 만들고, 모두 함께 꽃을 바치자꾸나"하고 열심히 말했고, 결국 그 말대로 되었지만,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모두 입을 모아 작은 새가 불쌍하다고 말하면서, 흐느껴 울며 그 주위에 핀 꽃줄기를 억지로 잡아 뜯어 죽이고 있었다. "아름다운 꽃이네. 분명 작은 새도 기뻐할 거야"라고 말하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 다들 머리가 이상한 것 같았다. - 13쪽

그때 나는 비로소 세계의 부품이 될 수 있었다. 나는 ‘지금 내가 태어났다‘고 생각했다. 세계의 정상적인 부품으로서의 내가 바로 이날 확실히 탄생한 것이다. - 27쪽

아침이 되면 또 나는 점원이 되어 세계의 톱니바퀴가 될 수 있다. 그것만이 나를 정상적인 인간으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 30쪽

지금의 ‘나‘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거의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다. 3할은 이즈미 씨, 3할은 스기와라 씨, 2할은 점장, 나머지는 반년 전에 그만둔 사사키 씨와 1년 전까지 알바 팀장이었던 오카자키 군처럼 과거의 다른 사람들한테서 흡수한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35쪽

같은 일로 화를 내면 모든 점원이 기쁜 표정을 짓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은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직후의 일이었다. 점장이 버럭 화를 내거나 야간조의 아무개가 농땡이를 부리거나 해서 분노가 치밀 대 협조하면, 불가사의한 연대감이 생기고 모두 내 분노를 기뻐해준다. - 39쪽
이즈미 씨와 스기와라 씨의 표정을 보며 아아, 나는 지금 능숙하게 ‘인간‘이 되어 있구나 하고 안도한다. 이 안도를 편의점이라는 장소에서 몇 번이나 되풀이했을까. - 40쪽

빨리 편의점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편의점에서는 일하는 멤버의 일원이라는 게 무엇보다 중요시되고, 이렇게 복잡하지도 않다. 성별도 나이도 국적도 관계없이, 같은 제복을 몸에 걸치면 모두 ‘점원‘이라는 균등한 존재다. - 50쪽

아, 나는 이물질이 되었구나. 나는 멍하니 생각했다.
가게에서 쫓겨난 시라하 씨의 모습이 떠오른다. 다음은 내 차례일까?
정상 세계는 대단히 강제적이라서 이물질은 조용히 삭제된다. 정통을 따르지 않는 인간은 처리된다.
그런가? 그래서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 고치지 않으면 정상인 사람들에게 삭제된다.
가족이 왜 그렇게 나를 고쳐주려고 하는지, 겨우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98쪽

손님들만은 변함없이 가게에 오고, ‘점원‘으로서의 나를 필요로 해준다. 나와 같은 세포라고 여겼던 사람들이 모두 차츰 ‘무리의 수컷과 암컷‘이 되어가고 있는 불쾌감 속에서 손님들만은 나를 계속 점원으로 있게 해주었다. - 151쪽


댓글(3)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7-01-26 15: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인간은 공동체 집단에 소속감을 느끼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혼자만 누릴 수 있는 세계를 찾습니다. 평범함을 추구하면서, 특별함을 찾으려고 살아가는 것, 고민을 동반한 삶의 방식이지만 이렇게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설 연휴 잘 보내세요. ^^

희망여행 2017-01-26 18: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편의점 인간 살까 고민했었는데... 전달 플리즈

희망여행 2017-01-26 18: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품으로의 삶이 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 책을 읽은 후엔 생각이 바뀔까요?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천명관 지음 / 예담 / 201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타고난 이야기꾼이라 일컬어지는 천명관의 신작을 보고 무척이나 반가웠지만 제목과 표지가 어쩐지 가벼워 보여 몇 번을 주저했다. '그렇게 따지면, <나의 삼촌 부르스 리>는 가벼워 보이지 않았었나', '그런데 그 책도 재미있게 읽었잖아' 라는 생각이 결국 이 책을 읽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작가의 말'에서 밝힌 "모두 다른 사람들로부터 주워들은 이야기"가 어떠한 방식으로 조합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러 이야기들은 작가에 의해 뭉치고 쪼개지면서 흥미있는 한 편의 완결된 스토리로 재편된듯 하다. 


벤츠, 다이아몬드, 지독한 사랑, 말, 고양이, 여배우, 호랑이, 에필로그. 사물과 사람, 동물에 대한 명사로 구성된 목차는 전체적으로 보면 서로 어울리지 않을 법한 대상들을 열거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이들은 일련의 사건 속에서 우연적 요소를 발생시키는 중요한 매개체의 역할을 한다. 이 중 벤츠나 다이아몬드, 말과 호랑이는 모두 재력이나 권력에 대한 상징 또는 그것들을 얻기 위해 반드시 가져야 할 대상으로 그려지고 있다.


"양 사장은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제대로 돈이 되는 일엔 언제나 좋은 냄새가 났다. 고급 오데 코롱처럼 가볍고 상쾌한 냄새! 지금이 바로 그랬다." (68쪽)


천명관 소설의 주된 특징은 변사의 말을 듣고 있는 것과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유려하게 쏟아져 나오는 내러티브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소설에서도 작가는 특유의 내러티브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데, 읽은 지 몇 분 되지도 않았는데 책장은 이미 절반을 훌쩍 넘어가고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무언가 알 수 없는 불안이 감지되었다. 그것은 코미디 조폭영화 수준의 재미만을 유지한 채 이 이야기가 덜컥 끝나버리는 것은 아닌지라는 두려움이었다. 그리고 이 불안감은 어느 정도 맞아 떨어졌다. 

천명관 소설의 또 다른 특징이라면 각 인물들의 의도가 전혀 다른 사건을 일으키고 또 다른 결말을 맺는 우연적 재미에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 우연은 단지 웃음만을 제공하려는 것이 아니라 현실세계의 고정관념이나 편견에 대한 풍자와 해학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랬다. 정상적으로는 주류가 될 수 없는 이들이 냉혹하고 살벌한 이 세상을 어설프게 살아가면서 자기 안의 순진함을 간직한 채 인생의 거대한 굴곡을 넘어가는 여정 속에서 독자들은 안타까움과 다행스러움을 반복하여 느끼며 이야기 속에 몰입한다. <고래>의 금복과 춘희가, <나의 삼촌 부르스 리>의 도운이 그랬다. 그런데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의 양사장과 울트라에 대해서도 내가 이전과 같은 감정이나 연민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이번 책에서는 '무엇인가'가 빠져있는 것 같았다. 


천명관 작가에 대한 기대를 가진 독자라면, 이 책에서 B급 조폭영화가 주는 (과장과 욕설로 점철된) 재미 이상의 무언가를 원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른바 '남자의 세상'이라는 것은 우리가 흔히 아는 조폭들을 둘러싼 조잡하고, 치사하고, 가식적이면서, 허세에 찌든 풍경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과거의 미숙함을 포장하여 평범한 삶에 대한 지루함을 달래는...


"그동안 참한 마누라도 얻었고 연수동에 제법 유명한 고깃집도 가지고 있었지만 언제부턴가 기분이 우울했다. 한 마디로 사는 재미가 사라진 것이다. 그즈음 그가 관심을 돌린 건 좋은 차와 멋진 슈트였다. 값비싼 이태리제 양복으로 잘 차려입고 나서면 잠시 기분이 근사해지곤 했다. 그래도 가끔은 경마장에서 마권 다발을 들고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시절이 그리웠다. 남자의 인생이란 대개 그런 거였다." (126쪽)


부(富)와 권력을 추구하는 비루한 수컷들의 세력 다툼 속에서 변변찮은 직업도 없고 미래에 대한 이렇다할 비전도 없는 새내기 조폭 울트라가 작가의 기존 소설 속 주인공들의 사회적 지위를 잇는 소외되고 비루한 부적응자일 수는 있겠다. 하지만 주먹, 뒷골목, 돈, 포르노라는 것들에서 아직도 '남성성'을 찾고 있는 소설 속 현실에서 그가 말을 탄 아가씨와의 숲속을 산책한다는 꿈을 이룬다는 결론이 어떤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다. 단순한 현실의 도피인지, 우연찮게 굴러온 행운인지, 아니면 벤츠같이 값비싼 종마(種馬)와 아름다운 여인에 대한 남자의 뻔한 판타지일 뿐인지.

양 사장은 나이가 들수록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견디기가 점점 더 힘들어졌다. 그를 위협하는 건 이제 라이벌 조직이 아니었다. 검찰도 아니었고 호시탐탐 자신의 자리를 노리는 믿을 수 없는 부하들도 아니었다. 그의 가장 큰 적은 어둠 속에 널려 있는 무의미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피로처럼 쌓여가는 무기력과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었다. 그 불안은 육체와 일체가 된 듯 익숙해진 외로움과 한데 뒤섞여 온몸 구석구석까지 뻗어나갔다. 손 회장도 죽고 엄 사장도 죽었다. 장다리는 실종되어 생사도 알 수 없었고 연희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양 사장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279쪽


댓글(1)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7-01-11 18: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과거를 화려하게 지냈어도 미래가 불투명하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생기고, 현재의 상황이 지루하게 느껴집니다.
 
우리의 소원은 전쟁
장강명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1월
평점 :
품절


그리 구매욕이 당기지 않는 파격적인 제목과 투박한 표지,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도 불구하고, (게다가 얼마 전에 읽은 에세이가 매우 마음에 든 것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장강명이라는 이름 하나만 믿고 읽은 책이다. 나보다 앞서 이 책을 읽고는 '이번 책은 꽤 괜찮다'고 평했던 지인의 추천도 한 몫을 했다. 책을 집자 묵직함이 손으로 전달되었다. 그 묵직함을 이겨내며 한장 한장 넘기기 시작한 이 책을 다 읽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주 잘 짜여진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서사와 묘사가 눈 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지는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 장을 읽은 후에도 한동안 잔상이 남을 정도였다. 

 

소설의 구성은 3부로 되어 있다. 이 책에서는 그의 에세이 <5년 만에 신혼여행>처럼 독특한 조합의 제목을 짓지는 않고, 1부, 2부, 3부로만 표기하고 있다. <우리의 소원은 전쟁>이라는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에는 남한과 북한의 정권이 지속적인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실상은 통일이 아닌 전쟁을 바라며, 대외적으로 표방하는 통일을 내부적으로는 어떻게 방해하는지를 그리는 것이라고 추측을 했었지만, 책의 프롤로그를 읽는 중에 그 추측은 빚나가고 말았다. 프롤로그에서 작가는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남북의 통일을 가정하며 김씨 왕조가 붕괴된 이후의 북한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을 통일과도정부, 유엔 평화유지군, 엄청난 양의 마약을 수출하는 나라, 마약 카르텔이 부패한 정치인들과 결탁한 나라, 아귀와 수라들의 축생도 등으로 묘사한다. 북한의 이 혼란스러운 상황은 일제강점기의 종지부를 찍은 후 우리나라의 모습과도 매우 유사하게 그려진다.

 

"정말 어이가 없었던 것은, 집단농장 간부는 이름을 바꾼 국가 소유의 농장 간부가 됐고, 국가안전보위부의 지도원들 역시 이름을 바꾼 새 공안조직의 직원으로 계속 일한다는 현실이었다. '김씨 왕조에 조금이라도 충성했던 사람을 다 잘라낸다면 새 정부에서 일할 사람이 누구겠느냐, 그 포악했던 시절에 김씨 왕조에 저항했던 사람들은 다 수용소로 끌려가 죽지 않았느냐'고 사람들은 말했다. '7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억울한 일이 한두 가지였나, 집집마다 원통한 사연 하나쯤은 있지 않은가, 그걸 다 들춰내면 새 출발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라고도 말했다. (210, 211쪽)

 

남북의 개방에 대해서는 여전히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는 남한 정부의 태도를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지만, 갑작스러운 통일은 모두에게 재앙"이라는 말로 정리한다. 통일이 되었지만 실제로는 하나로 통할 수 없는 상황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 사람들은 '남조선에 가는 게 김씨 왕조 시절보다 더 어려워졌다'고 푸념했다. 뗏목을 타고 넘어오거나, 제3국을 경유해 한국에 들어오는 루트 같은 것은 사라졌다. 그렇게 들어온들 곧바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추방될 뿐이다. 민준은 남한의 해안 경비 예산이 김씨 왕조가 건재했던 시절보다 줄기는 커녕, 오히려 다섯 배 가까이 증가했다는 뉴스 보도를 본 적도 있었다." (98쪽)

 

이러한 배경 아래에서 세 명이 주연을 캐스팅하여 각자가 속한 북한의 상황을 그려나간다. 자신이 속했던 신천복수대라는 특수부대가 와해된 이유를 밝히는 것밖에는 자신의 본질을 찾을 수 없는 장리철, 절친한 지인들의 가족이 실종 사망한 이유를 밝히는데 도움을 주려는 은명화, 통일로 인해 군에 재입대한 불운을 탄식하며 군생활을 무탈하고 유연하게 넘기려는 강민준. 이들이 처한 상황과 목적은 각각 상이했지만, 인물의 관계와 사건의 흐름을 통하여 이들 목적은 모두 눈호랑이라고 명명된 대단위 마약운반계획으로 집중된다. 이 계획의 내용을 밝히고 저지하려는 각각의 노력이 이리저리 연결되기 시작하면서 소설은 그 재미를 더해가기 시작한다. 잠시 눈을 돌릴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는 전개와 개성 넘치는 인물의 등장, 상황에 대한 생생한 묘사는 글을 읽는 동안 온전히 거기에 몰입할 수 있게 한다.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우리의 소원은 전쟁>이라는 제목과 소설의 내용 사이의 괴리감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우리'는 누구이며, 그 '소원'이 '전쟁'이라는 것의 단서를 찾기가 어려웠다. 소설의 내용에는 남한이나 북한측 어디에서도 전쟁을 원한다는 구체적인 의도나 사건이 제시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민준의 말을 통해 '이렇게 통일이 될 것이라면 전쟁을 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라는 후회만이 드러날 뿐이다. 물론 전쟁으로 모든 것을 불살라버린 후 북한을 새롭게 재건한다는 가정이, 대한민국 정부수립 때 우리가 겪었던 시행착오 없이 통일 정부를 세울 수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주지 못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아, 개소리하지 말라고 하십쇼. 요즘 남한 젊은이들은 '이러느니 차라리 북한과 전쟁을 벌였어야 했다'는 이야기들을 공공연히 합니다. 인터넷 게시판 같은 데서 '전쟁터에서는 앞에 있는 적만 살피면 되는데, 평화유지군에 가면 사방에 숨은 적을 신경 써야 한다'고 불평합니다. 전쟁을 했더라면 섬멸전이 벌어졌을 거 아닙니까. 그렇게 북한을 완전히 불 지르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나았을 것 같지 않습니까? 무력통일을 하든, 아니면 남한 입맛에 맞는 괴뢰정부를 세우든, 지금보다 나쁘지는 않았을 거에요. 통일과도정부 같은 괴상한 정부도 없고, 부패한 관료도 없고, 마약조직도 다 소탕할 수 있었을 거에요." (332쪽)

 

멍하게 앉아서 책의 내용을 반추하다가 들었던 질문이 있다: 우리에게 통일은 반드시 해야 하지만 풀리지 않은 숙제일까, 아니면 풀고 싶지 않아 그때마다 미루어 두고 있는 어려운 문제일까. 통일에 대한 이런 강박적인 질문에 작가는 미셸 롱이라는 등장인물을 통해 이렇게 대답한다.

 

"한국 사람들은 왜 그렇게 꼭 통일을 해야 한다고 강박관념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말레이시아는 화교가 많은 싱가포르를 억지로 분리시켰죠. 1965년에 싱가포르 주를 말리이시아 연방에서 쫓아냈어요. 싱가포르는 원치 않은 독립이었고, 분리 당시에도 심지어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보다 더 잘사는 나라였지만, 그렇게 갈라선 결과는 말레이시아에도 싱가포르에도 좋았어요. 한 나라로 있었다면 인구의 대부분인 말레이계가 싱가포르 화교 자본에 종속된 채 중산층이 되지 못한채 살았어야 했을 거에요. 말레이계와 화교 사이 갈등도 지금보다 훨씬 더 심했을 거거요. 두 나라로 떨어뜨려놓고 나니 싱가포르는 싱가포르대로 똘똘 뭉쳐서 선진국이 되었고, 말레이시아도 싱가포르 없이 자기 힘으로 선진국 문턱까지 왔어요." (333쪽)


개인적으로 남북한의 물리적 통일은 가능할지 몰라도 내적인 합일이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계속 의문스러웠다. 그렇기에 지금까지의 제안 중 '연방제통일안'이 가장 무난하다고 생각했었다. 서로가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남한과 북한이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그것을 인정받으면서 전쟁의 위협 없이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도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와 같은 공존이 가능할까? 우리가 소원으로 전쟁을 바라지만 않는다면? 작가가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참고한 자료의 10분의 1도 읽거나 생각해보지 않은 나로써는 답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꾸준히 생각해보아야 하겠다. 어느새 우리에게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강박이 되어버린 통일이라는 소원은 여전히 유효한 것인지를.

그는 미친 나라에서 태어났다. 미친 나라에서 살아남으려면 항상 주변의 모든 사람을 의심하고, 언제라도 주변의 모든 사람을 배신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 가끔 그런 경쟁과 전투에는 아무런 한계가 없어 보였다. 극한상황에 이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옳고 그름에 대해 생각하기를 포기한다. 한번 그렇게 황폐해진 내면에 어떤 덕성이 다시 깃들기란 매우 어렵다.
어린 리철에게 가치 기준을 제공하고 그를 도덕적으로 재무장시킨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군대였다. 비록 그 가치와 도덕이 군대만의 질서, 군대만의 논리와 섞여 있기는 했지만. 리철은 규칙과 명령을 따랐고, 복종 속에서 편안해졌다. 그는 무리에 속해 있는 한 마리 개와 같았다. 시키는 대로 열심히 짖고, 뛰어 다녔다. - 79쪽

선을 넘는 게 어려운 게 아니라 적절한 지점까지만 선을 넘는 게 어렵다. - 352쪽

민족이라든가 통일이라는 개념은 어떨까. 북한 주민을 향해 책임감을 불러일으키는 데에는 유용하지 않을까. 이웃 사람이 굶거나 부당한 이유로 괴롭힘을 당할 때 내야 할 용기를 발휘하는 심리적 도구로써 말이다.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역사를 공유하면서 훨씬 부유하게 사는 사람들이 바로 제 옆에 있는 못 사는 사람들을 외면하는 것은 창피한 일 아닌가. - 49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파이
파울로 코엘료 지음, 오진영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제부터인가 만족보다는 실망을 더 자주하기 시작했지만, 코엘료의 책은 여전히 내 구매목록에 포함되어 있다. 처음 이 책의 제목을 접하고 나서는 아마도 <승자는 혼자다>와 유사한 류의 소설일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제목과 같은 흥미진진한 첩보물류 소설은 아니었다. 이 소설은 마타 하리(마르하레타 젤러)라는 실존 여성에 대한 사실에 근거로 한 소설이다. 내가 보기에는 한 인물을 둘러싼 은폐된 사실을 다시 재조명하고자, 관련된 사건들을 '주관적으로' 엮어 놓은 책으로 보인다. 굳이 주관적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이 책이 서간(書簡)의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사실'이라는 명사를 수식하는 것은 '객관적'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지만, 사실 자체가 왜곡되어 버린 상황에서 객관성을 찾는 것처럼 무모한 일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이 경우는 은폐된 것을 밝히고 더 세밀하고 구체적인 부분을 드러내기 위한 '주관적'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이다.

 

이 책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면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프롤로그에서는 마타 하리의 처형장면을 기사로 건조하게 서술하였고, 이후에는 마타 하리가 자신의 변호사에게 이 사회의 부조리 앞에 선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서간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1부에서는 불운한 유년기를 벗어난 그가 군인 장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인도네시아에서 생활하던 때를, 2부에서는 자신을 갉아먹던 결혼생활에서 벗어나 파리로 이동해 전위적인 무용수로 성공하던 때를 각각 회고하고 있다. 2부 후반부에는 전쟁이 발발하자 프랑스를 벗어나 네덜란드로 탈출하며 첩보활동을 제안받는 부분이 간략하게 제시되어 있기는 하다. 다만, 그가 지금까지 전해오는 명성대로 대단위의 첩보활동을 한 이중간첩인지, 혹은 불확실하고 모호한 시대상황과 무책임하고 비도덕적인 남성들에 의한 희생양이 된 것인지는 분명하게 언급되어 있지는 않다.

 

저자는 변호사의 글을 빌려 3부에서 당시 사법부의 무지와 무능에 대해서 절망하며, 마타 하리가 썼던 1부와 2부의 글에 심정적인 동의를 보내고 있다. 억울하지만 당당하게 그려진 마타 하리의 목소리와 변호사의 한탄과 자괴가 뒤섞여 마타 하리의 안타까운 최후에 대한 죄책을 부조리한 사회에, 그것을 유지하려는 그릇된 권위에, 그것에 부역하는 이들에게, 비겁한 남성들에게 묻고 있다. (남성일 것으로 추정되는) 변호사의 울분에 찬 문체는 나에게 거대한 부조리 앞의 체념을 전하였지만, 마타 하리의 차분한 해명과 서술은 체념이 아닌 극복의 느낌을 연상시켜주었다.

 

작가는 왜 이 책을 썼을까. 한 때 최고의 무용수였던 그녀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할 수 밖에 없었던 부조리에 대한 분노였을까, 왜곡된 역사적 사실을 바로 잡고 싶다는 의지였을까, 과거의 사실에 빗대어 현재에도 계속 반복되고 있는 이러한 문제들을 극복해보자는 암시였을까. 그가 작품 초기부터 집중하고 있는 은유 - 여성성과 신비("죄 없이 잉태하신 성모마리아") - 에 대한 일반인들의 무지를 비웃기 위함이었을까.

나는 그 씨앗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해바라기 씨앗이란다. 하지만 해바라기 씨앗 그 이상의, 네가 배워야 할 가치가 담겨 있단다. 이 씨앗들은 네가 다른 꽃시와 구별하지 못할 때라도 언제나 해바라기로 피어날 거야. 아무리 원한대도 장미나 우리 나라의 상징인 튤립으로 변할 수는 없어. 타고난 자신의 존재를 부정한다면 죽을 때까지 고통스러운 삶을 보내게 된단다.
그러니까 그게 무엇이든 너의 운명을 기쁜 마음으로 따르도록 해라. 꽃들이 피어나면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모두의 사랑을 받게 되지. 그러다 시들면 씨앗을 남겨 다른 존재들이 신이 하시는 일을 이어가게 한단다." - 32, 33쪽

"꽃들은 우리에게 가르쳐주지. 영원한 건 아무것도 없다고. 아름다움도 시듦도 지나가고 새로운 씨앗을 남길 거야. 네가 기쁠 때나 아플 때, 슬플 때에도 그 사실을 기억하면 좋겠어. 모든 것은 지나가고 늙고 죽고 새로 태어난다는 것을." - 33쪽

삶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를 때는 길을 잃는 법도 없습니다. - 86쪽

내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것은, 아무리 공포스럽다 해도 이 숲에는 끝이 있다는 것이고, 나는 저편에 다다르려 한다는 것이지요. 승리가 왔을 때 나는 관대할 것이고 나에 대해 온갖 거짓말을 한 이들을 비난하지 않을 것입니다. - 126쪽

"내가 어릴 적에 우리 부모님은 내게 피아노를 배우게 하였어요. 나는 그게 너무 싫었고 집을 떠나자마자 다 잊어버렸습니다. 한 가지만 제외하고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멜로디도 조율이 안 된 채로 연주하면 흉물스럽게 변한다는 것이죠." - 130쪽

"죄악은 신이 창조한 게 아니고, 우리가 절대적인 것을 어떤 상대적인 것으로 변형시키려 할 때 만들어졌어요. 우리는 전체를 보지 못하고 일부만 보게 된 겁니다. 그리고 그 일부가 죄와 규칙, 악에 맞서 싸우는 선을 결정하다보니 결국은 각자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죠." - 133, 134쪽

여자라는 죄로, 자유로운 영혼이었다는 더 큰 죄로, 대중 앞에서 옷을 벗었다는 막중한 죄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평판을 유지해야 하는 남자들과 관계를 가졌다는 위험한 죄로, 당신은 부당하게 희생되었습니다. 그들의 평판은 당신이 프랑스 혹은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질 경우에만 유지될 수 있겠지요. - 196, 197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7-01-02 20: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마타 하리의 일대기를 자세히 알아본 후에 코엘료의 소설을 읽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마타 하리를 소개한 책을 찾기가 힘들었어요. ^^;;

붉은눈 2017-01-02 20:25   좋아요 1 | URL
책 뒷면에 ‘작가 노트‘에 보니까 코엘료가 참고했던 책들이 나와 있네요. 팻 시프먼 <팜므파탈: 마타 하리의 사랑과 거짓말,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삶> (하퍼콜린스, 2007), 필리프 콜라스 <마타 하리, 그녀의 진짜 이야기> (플롱, 2003). 그런데 두 권 모두 국내에 소개되어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을 읽고 나니 저 역시도 보다 자세한 역사적 사실이 궁금해지긴 합니다.
 
5년 만에 신혼여행
장강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좋아하는 소설가들의 에세이가 출간되면, 대체적으로는 구입해서 읽는 편이다. 작가 자체를 좋아해 그가 쓴 책이면 일단 읽어보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에세이를 통하여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거나, 그의 생각을 소설에서보다 명료하고 정확하게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장강명 작가의 에세이가 나왔다는 것을 알고 책을 선택하는데 별로 주저하는 마음은 없었다. 다만, 제목이 제목이니만큼 너무 신변잡기적인 글이 아니기만을 바랬을 뿐이다. (개인적으로는 남의 연애사에 별로 관심이 없는 편이라서...) 다행히(?) 우려했던 만큼은 아니었다.


차례를 보면 소제목들이 무척 독특하다. 제목만 보았을 때는 일부러 특이한 제목을 지으려고 고심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어쩌면 하루키를 흉내내어 독자들에게 익숙치 않거나 다소 생뚱맞은 표현들을 일부러 만든 것은 아닐지도 상상했었다. 책의 제목인 '신혼여행'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제목들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섭식장애가 있는 듯한 커플과 바보 같은 눈물', '이 불공평한 세계와 자기파괴적인 봉사 활동', '캘리포니아 드리밍과 수확체감의 법칙', '승합차의 최종 도착지와 유황 지옥에 빠지는 기분'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제목에 드러난 소재들은 모두 내용에 녹아있다. '더블린에 있는 것과 사장님들이 정하는 것'이라는 제목과 내용을 연결해보면, 여행을 가기 전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이라는 책을 빌렸는데, 너무도 지루한 이 책이 자신이 어디에 있건 더블린에 있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준다는 것과 지하철역 옆에 있는 파리바게트 매장에 들렀는데 빵 가격이 자기 동네에 비해 너무 저렴해서 물어보았더니, 매장마다 빵 종류와 가격이 다른데 그것은 사장이 정하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그리 주목할 것 같지 않은 소재에서 제목을 뽑아내는 저자의 표현력에 탄복하고 말았다.


내용 자체가 흥미 있고, 작가의 글빨도 좋기 때문에 책은 술술 잘 읽힌다. 게다가 에세이의 최대 장점이라 할 수 있는 저자의 구체적인 생각을 직접적인 표현으로 접할 수도 있다. 글 곳곳에는 그의 결혼관, 직업관, 행복관 같은 것들이 일정 부분 녹아있다. 물론 이러한 생각들은 삶의 방식의 문제이므로 (당연히) 그 중에는 공감가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기 마련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자신의 삶의 방식이나 주의(主義)를 옹호하기 위하여 할애한 주제들은, 부모와 자식의 대립, 결혼에 대한 생각과 같은 것들이다.


예를 들면, 저자는 부모와 자식 간의 언쟁이 있다면, 이는 부모가 잘못하는 것이라고 한다. 자식도 자기의 인생이 있는데, 부모 뜻대로 살지 않는다고 자식의 의사에 반대하거나 그것을 모욕할 권리가 없다는 주장이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는 자신이 부모의 뜻대로 취업을 하거나 결혼 상대를 구하지 않은 논거로 이 주장을 활용한다. 그러면서 부모 뜻대로 취직하고 결혼하고 애 낳고 살았어도 시시하거나 안전하지 않은 삶이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 이유가 자신이 (기자가 되기 전에) 다니던 건설회사가 비리 의혹에 휘말렸는데 자신도 거기에서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며, 건설경기 추락으로 결국 옷을 벗게 되었을 것이고, 아내가 바람을 피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란다.


한편, 그는 스스로를 '실용주의자'라고 칭하는데, 언제나 가격 대비 성능을 따지기 때문에 불필요한 지출이나 허세를 부리지 않는다. 그래서 결혼식은 하지 않고 혼인신고만 올린 후 5년이 지나서야 신혼여행다운 신혼여행을 가게 된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를 거부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해방이라는 이름의 억압'이라며 비난한다. 그러면서 인위적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하려면 옷을 다 벗고 다녀야 한다거나 '사과'를 '자갈'로 불러야 한다는 등 억지스런 설명을 덧붙이기도 한다. (이런 식의 억지라면, 존재는 모름지기 살아가야 한다는 당위 자체도 억압이라는 논리가 된다). 자신의 선택과 그로 말미암은 현재를 긍정하려는 태도야 말릴 생각이 없지만, 스스로를 긍정하기 위한 논거들이 (미안한 얘기지만) 다소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몇몇 동의할 수 없는 생각과 표현, 나와는 썩 어울리지 않는 여행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관념들을 엿보며 그와 그의 아내가 함께하는 여행을 따라가는 일은 그래도 즐겁다. 남들은 이왕 한번 가는 신혼여행에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즐기고 올테지만, 실용주의자들인 이들 부부는 가격 대비 성능을 따져가며 하나하나를 선택한다. 그런데 그렇게 고민해서 선택한 저가항공이 연착되어 출발부터 피곤해지기 시작한다. 리조트로 들어가기 위해 불안한 구조의 승합차에 몸을 싣고, 힘들고 지치는 중에도 검색했던 맛집을 찾아 헤매는 여정은 안타까울 정도이다. 그러나 불필요한 환상과 작위적 우연으로 얼기설기 포장한 다른 여행서보다 (비록 결혼한지 5년이 지난 후의 신혼여행이라고는 하지만) 장강명이라는 작가에 대한 인간적인 면모와 풋풋한 신혼의 느낌, 그리고 소소한 재미가 어우러진 이 어설픈 커플의 솔직한 여행기가 더 낫다는 생각이다.

인격자, 리더, 세계사의 위인들, 일일드라마의 주인공들이라면, 그런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믿고 ‘난 할 수 있다’며 결의를 다지겠지. 나는 그런 훌륭한 인간이 못 되었으므로 끊임없이 번민했다.
내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내가 옳은 선택을 한 걸까?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마흔이 되어서까지 그런 걸 고민한다는 게 이상했다. - 21쪽

양쪽이 똑같이 잘못했나? 그렇지 않다. 언쟁을 벌이는 과정에서부터 부모님의 잘못이다. 자식이 자기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살지 않을 때, 거기에 부모가 반대할 권리는 없다. 반대는 할 수 있어도, 모욕할 권리는 없다. 왜냐하면 그건 부모 인생이 아니라 자식 인생이기 때문이다.
우리 부모님이 특별히 나쁜 분들은 아니다. 사실 이건 대부분의 한국 부모들이 공통으로 갖는 문제다. 자식들의 인생에 과도하게 간섭하는 것. 자식이 타인임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 자식들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정신적인 폭력을 서슴지 않는 것. 그리고 나는 그 부모들을 이해한다.
그런 폭력이 원인은 대부분 사랑 때문이다. 이이러니하게도. 그들은 자식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자식이 위험에 빠지는 광경을 두고 볼 수가 없다. 그들은 안락한 감옥을 만들어 자식을 그 안에 가두고 싶어 한다. 과보호.
그리고 그 감옥 안에 갇혀 있는 한 자식은 영원히 성인이 될 수 없다. 인간은 자기 인생을 걸고 도박을 하는 순간부터 어른이 된다. 그러지 못하는 인간은 영원히 애완동물이다. - 37쪽

왜 이런 미친 짓거리가 사라지지 않을까?
내 생각에 그 이유는, 모든 사람들이 이 미친 짓거리에 협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세대가 미친 짓거리의 뼈대를 세우고, 신세대가 거기에 살을 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미친 짓거리에 협조하지 않는 자들을 "걔 원래 좀 특이하잖아"라며 이단자 취급하기 때문이다. 그 미친 짓거리를 성대하게, 무의미하게 치러낼수록 찬탄을 사고 그 사실을 자랑스러워하기 때문이다.
미친 짓거리는 온 사회 구성원이 거기에 협조하는 한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점점 더 강화될 뿐이다. 사교육이나 학벌 같은 문제가 그렇다. 언제나 더 똑똑하고 더 진보적인 다음 세대가 자신들의 앞 세대보다 더 미쳐 있었다. 그들은 새로운 관습과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편견과 새로운 속박을 만들어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명문대와 똥통대’라는 기준을 세웠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거기에 ‘인서울’, ‘수도권’, ‘지방대’라는 기준을 추가했다. 손자 손녀들은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건동홍 국숭세단 광명상가’ 어쩌고 하는 긴 디테일을 만든다.
결혼도 똑같다. 부모들의 허영과 위선에 자식들이 적극적으로 협조한다. - 48, 49쪽

남녀차별이나 성희롱, 음주운전, 공공장소 흡연과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맹렬히 저항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 결과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 왜 학벌이나 결혼 문제는, 그 부조리에 대해 "X이나 까세요"라고 말하지 못하는 걸까.
그 이유는 아마 정체성 문제에 관한 한, 한국인들이 정신적으로 허약해서라고 생각한다. 자기 삶의 가치에 대해 뚜렷한 믿음이 없기에 정체성을 사회적 지위에서 찾는 것이다. 사회적 지위는 대학 간판이나 자식 결혼식장에 모인 하객 수로 구체화된다. 그래서 다들 거기에 집착한다. - 50쪽

예를 들어 내가 내일 갑자기 뇌종양으로 난독증에 걸린다 치자. 이 난독증은 아주 중증으로, 읽고 쓰는 능력이 완전히 사라지고 도저히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 치자. 그러나 일상생활에서의 다른 능력은 전혀 피해를 보지 않는다고 가정하자. 즉, 소설가로서의 미래는 끝장이 났지만 다른 방식으로는 얼마든지 살 수 있는 상태다. HJ도 건강히 살아서 내 옆에 있다. 이때 나는 자살해야 할 것인가?
그럴 생각은 전혀 없다. 나는 목공이나 전기 기술 같은 걸 배워서 육체노동을 하며 살 것이다. 그것도 아주 즐겁게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더는 글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데 대해 얼마간 안도감과 해방감마저 느낄 것 같다.
이 얼마나 모순인가? 마치 세상의 모든 작은 즐거움들이 상황에 따라 논리를 바꿔가며 나를 살리려 애쓰는 것 같다. HJ의 힘이 부칠 때는 글쓰기가, 글쓰기의 힘이 모자랄 때는 HJ가, 그리고 치킨이라든가 맥주라든가 자전거라든가 재미있는 책이라든가 초여름의 산들바람이라든가 잘생긴 개 같은 것들이.
실제로도 많은 사람이 그런 이유로 죽지 않고 사는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왜 사는가’라는 질문에 명확히 답하지도 못하면서. - 8

선글라스를 쓴 채로 점점 붉게 물들어가는 해를 바라보고 있으니 정신이 다시 멍해졌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왜 사람들이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다니는지, 왜 자전거를 타고, 왜 수십 킬로미터를 달리며 러닝하이를 느끼려 하는지.
사람들은 멍해지려고 그런 일들을 하는 것이다. 무슨 생각을 하건,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마음을 피로하게 만든다. 생각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대신 괴로움에 빠뜨린다. 이것이 선악과(善惡果)의 정체다. - 122, 123쪽

배로 다시 올라왔을 때 우리를 포함한 한국인 관광객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물 뮈로 올라오고 나니 몸이 상당히 놀라고 지쳐 있다는 걸 깨닫게 됐고, 또 다들 어휘력이 빈곤해 조금 전에 본 별세계를 묘사하거나 그에 대해 토의할 실력이 되지 않았다.
에스키모들에게는 눈을 묘사하는 단어가 수십 가지라고 한다. 그런 단어들을 알기 때문에 그들은 땅에 눈이 쌓인 정도와 습도를 세밀히 분간하고 어제 내린 눈과 오늘 내린 눈의 다른 점에 대해 의견을 나눌 수 있다. 바닷속 풍경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려면 그런 단어들을 알아야 했다. 그러나 그 배에 있던 한국인 관광객들이 해저에 대해 아는 단어라고는 열대어, 불가사리, 니모, 산호 정도가 고작이었다. - 153쪽

더 나아가서는, 신세계를 발견하는 일에 우리 사회가 과도한 찬탄을 보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인생의 특정 시기에 신세계를 탐색하는 것은 권장할 만한 일이다. 마흔이나 쉰에 라도 종교나 마약의 대용품이 될 만한 분야를 찾는다면 좋은 일이다. 그리스 요리나 사도마조히즘이라도 좋다. 그러나 신세계를 찾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될 수 있을까? 끊임없이 직업을 바꾸고, 분기마다 새 취미에 열정적으로 도전하며, 어딘지 모를 이상향을 찾아 쉴 새 없이 떠돌아다니는 삶이 바람직한 걸까? 그걸 낭만이라고 포장하는 건 시시한 사기 아닐까. 그것은 기실 그 사람의 세계가 그만큼 황량하고 별 볼 일 없음을 폭로할 따름이지 않은가. 어느 정도 날씨가 괜찮고 마실 물과 식량이 있는 평평한 땅을 찾으면 방랑을 멈추는 게 정상이다. 거기에 건물을 짓고 사람을 불러 모아야 한다. - 156, 157쪽

나는 생각했다. 이곳에 뭐가 낯선 게 있을까. 왜 도시에서는 이렇게 감동하지 못했을까.
‘도시에서는 이렇게 석양을 기다려서 천천히 본 적이 없었으니까. 저녁 무렵에는 늘 할 일이 있었으니까. 해는 매일 지는 거라고, 구태여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석양 따위는 한가할 때 보면 된다고 여겼으니까.’ - 174쪽

인간은 가치를 좇는 존재다. 그리고 가치를 좇는 행위 자체가 세상에 폭력적인 질서를 부여한다. 제멋대로 세계를 가치 있는 것, 가치가 덜 한 것, 가치 없는 것으로 분류하기 때문이다. 그런 질서는 필연적으로 구속과 억압을 만들어낸다. 모든 광명은 반드시 그림자를 만든다. 아니, 이건 적절치 않은 비유인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종이에 데생을 할 때 펜으로 어둠을 그려서 빛을 표현하듯, 그림자가 광명을 만들어낸다는 말이 옳겠다. 왜냐하면, 그 모든 가치는 결국 허구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구속과 억압을 통해 겨우 그 허구가 현실 세계에 모습을 갖추는 것이다. - 187쪽

가톨릭 사제의 삶이 왜 고귀한가? 하느님이 그 삶에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인가? 신을 믿지 않는 나는, 사제들의 삶에 가치를 부여한 것은 사제들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지키기 어려운 구속을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하고, 사제 서품을 통해 그 약속을 지키겠다고 선언하고, 사제복을 입고 자신이 선언자임을 언제나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기 때문이다. 허구와, 허구가 만들어 내는 구속을 받아들일 때 의미 있는 삶이 시작된다. 그것이 내가 이해하는 ‘2 더하기 2는 4’다. 이 수식은 넘어설 수 없는 한계지만, 동시에 많은 가치를 가능하게 하는 출발선이기도 하다. 공리 없이는 수학도 없다. 때로는 멍해지는 것이 좋지만, 언제까지나 선셋 세일링을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우리의 삶은 바다가 아닌 물 위에 있다. - 188, 189쪽

그러자 나는 이 여행이 인상에 대한 비유와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정의 중반을 넘기고서야 어떻게 하면 시간을 의미 있고 즐겁게 보낼 수 있는지 알게 된다. 다시 한번 처음부터 시작하면 진짜 잘할 수 있는데, 생각하면서.
유년기에는 ‘둘째 날’부터 잘 놀 수 있게 몸을 다져놔야 한다. 오전이나 젊은 시기에 맥주를 너무 많이 마시면 안 된다. 만약 그러면 남은 시간을 짜증이나 내다가 흘려보내게 된다. 스스로 즐거워지는 법을 찾아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여행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수도 없이 계획을 변경하다 겨우 즐기는 법을 깨달았을 때, 그때 집에 돌아가야 한다. ‘아, 딱 이틀만 더 놀다 가면 좋겠는데’라고 아쉬워하면서. - 197쪽

행복을 얻기 위해 투입해야 하는 생산요소가 한 종류가 아니라 여러 종류인 거지. 거기에는 성숙한 인격도 필요하고, 돈도 필요해. 그리고 거기에도 수확체감의 법칙이 작동해서, 그런 요소 중 어느 것 하나만 잔뜩 넣는다고 해서 쉽게 행복감이 높아지지 않는 거야. - 207쪽

"응, 돈으로 사소하게 사서 해결할 수 있는 건 돈으로 해결하는 게 옳아. 일본 가고 싶은데 방에다 일본 그림 그려놓고 만족하는 것보다 그냥 일본 가는 게 나아. 그게 훨씬 더 싸게 먹히는 거야. 그런데 아직은 건강은 돈으로 살 수 없으니 평소에 운동을 해야지. 그리고 정신력도 진짜 중요해. 이게 나의 행복 철학이다. 정신, 육체, 돈의 삼각형 이론." - 208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6-12-30 16: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붉은눈님은 올해 동안 리뷰를 꾸준히 남기신 회원들 중 한 분입니다. 붉은눈님 같은 분들이 서재의 달인, 북플마니아 혜택을 받아야 합니다. 내년에도 좋은 글들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올해 마지막 주말 잘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붉은눈 2016-12-30 17:13   좋아요 1 | URL
아이고 아닙니다. 하반기에는 다른 일정으로 리뷰를 많이 남기지 못했습니다. 제 나름의 기억을 위해 긁적이는 수준이지만, cyrus님이 포스팅 하셨던 선정 기준의 문제점과 이 공간에 대한 애정에는 깊이 공감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cyrus님의 폭넓고 전문적인 글에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내년에도 좋은 글 기대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