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인간 -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 살림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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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가, 하릴 없이 서적 코너에 있는 책들을 훑어보았다. 요즘 통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 가볍게 읽을 소설을 찾던 중에 마침 적당한 제목과 두께의 책이 눈에 띄었다. 잠깐동안 서서 책을 넘기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4분의 1 정도를 읽어버렸다. 이 자리에서 끝까지 읽을지를 고민하다가 돌아갈 시간이 되어 구입한 책이다.

 

다수의 일본 소설처럼 이 책도 별다른 구성이나 목차가 없다. 주인공(후루쿠라)의 회상과 시선에 따라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이야기는 평범이나 보통이라는 범주에 편입되지 못한 주인공이 그래도 자신의 본질 혹은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겪게되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사건'이라고 표현했지만, 이 책의 설정들은 편의점이라는 장소에서 일어날 법한 그리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일들이다. 다만, 편의점 내의 한 부품으로서의 삶에 만족하고, 그 이상의 것을 바라지 않는 주인공에게 던져지는 세상의 낯선 시선과 평범함의 강요라는 것에 대해서는 현대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 생각해볼 여지를 제시하는 것 같다.

 

더 이상 바라는 것 없이 서른 살이 훌쩍 넘도록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그에 대해서, 이제 제대로 된 직장도 잡고 결혼도 해야 한다고 조언하는 그 주변인들과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다가, 그냥 그대로 사는 것은 왜 안된다는 것인지에 대한 거부감이 들기도 한다. 자신이 가장 편하게 느끼는 삶을 살고 있음에도 주변의 눈치를 봐야 하는 그에게 연민을 느끼다가도, 그 불편한 시선을 떨어내고자 억지스럽게 동거를 하려는 후루쿠라의 선택에는 혀를 끌끌 차기도 한다.

 

'나는 나의 본질을 어떻게 찾아야 할까?' 책을 다 읽고 나서 든 생각이다. 나역시 그처럼 조직이나 단체의 일원으로 속해 있을 때 안정감과 행복감을 느낀 적이 있었다. 아니, 어쩌면 지금 이 순간 강하게 인지하지 못할 뿐이지, 여전히 그런 안도감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후루쿠라의 삶을 불편하게 읽었다면, 내가 이미 평범이나 정상이라는 범주를 당연스럽게 수용하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반대로 그를 둘러싼 시선들에 반감을 느꼈다면, 내 마음 속 어딘가에는 지금의 평범함에서 벗어나고 싶은 충동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비록 내가 가려는 곳이 평범의 기준에서는 한참 수준 미달의 것이라고 해도 말이다.

 

가끔씩 느끼는 '적어도 저런 사람처럼 살지는 않는다'라는 안도감을 경계하기로 다짐한다. 이런 생각의 기저에는 '저런 사람'에 대한 배타적인 감정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내 평범함의 범주로부터 타인을 배제하지 않으면서, 나를 굳이 평범함의 범주에 밀어넣지 않으면서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어머니는 "이 새는 작고 귀엽지? 저쪽에 무덤을 만들고, 모두 함께 꽃을 바치자꾸나"하고 열심히 말했고, 결국 그 말대로 되었지만,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모두 입을 모아 작은 새가 불쌍하다고 말하면서, 흐느껴 울며 그 주위에 핀 꽃줄기를 억지로 잡아 뜯어 죽이고 있었다. "아름다운 꽃이네. 분명 작은 새도 기뻐할 거야"라고 말하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 다들 머리가 이상한 것 같았다. - 13쪽

그때 나는 비로소 세계의 부품이 될 수 있었다. 나는 ‘지금 내가 태어났다‘고 생각했다. 세계의 정상적인 부품으로서의 내가 바로 이날 확실히 탄생한 것이다. - 27쪽

아침이 되면 또 나는 점원이 되어 세계의 톱니바퀴가 될 수 있다. 그것만이 나를 정상적인 인간으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 30쪽

지금의 ‘나‘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거의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다. 3할은 이즈미 씨, 3할은 스기와라 씨, 2할은 점장, 나머지는 반년 전에 그만둔 사사키 씨와 1년 전까지 알바 팀장이었던 오카자키 군처럼 과거의 다른 사람들한테서 흡수한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35쪽

같은 일로 화를 내면 모든 점원이 기쁜 표정을 짓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은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직후의 일이었다. 점장이 버럭 화를 내거나 야간조의 아무개가 농땡이를 부리거나 해서 분노가 치밀 대 협조하면, 불가사의한 연대감이 생기고 모두 내 분노를 기뻐해준다. - 39쪽
이즈미 씨와 스기와라 씨의 표정을 보며 아아, 나는 지금 능숙하게 ‘인간‘이 되어 있구나 하고 안도한다. 이 안도를 편의점이라는 장소에서 몇 번이나 되풀이했을까. - 40쪽

빨리 편의점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편의점에서는 일하는 멤버의 일원이라는 게 무엇보다 중요시되고, 이렇게 복잡하지도 않다. 성별도 나이도 국적도 관계없이, 같은 제복을 몸에 걸치면 모두 ‘점원‘이라는 균등한 존재다. - 50쪽

아, 나는 이물질이 되었구나. 나는 멍하니 생각했다.
가게에서 쫓겨난 시라하 씨의 모습이 떠오른다. 다음은 내 차례일까?
정상 세계는 대단히 강제적이라서 이물질은 조용히 삭제된다. 정통을 따르지 않는 인간은 처리된다.
그런가? 그래서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 고치지 않으면 정상인 사람들에게 삭제된다.
가족이 왜 그렇게 나를 고쳐주려고 하는지, 겨우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98쪽

손님들만은 변함없이 가게에 오고, ‘점원‘으로서의 나를 필요로 해준다. 나와 같은 세포라고 여겼던 사람들이 모두 차츰 ‘무리의 수컷과 암컷‘이 되어가고 있는 불쾌감 속에서 손님들만은 나를 계속 점원으로 있게 해주었다. - 1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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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1-26 15: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인간은 공동체 집단에 소속감을 느끼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혼자만 누릴 수 있는 세계를 찾습니다. 평범함을 추구하면서, 특별함을 찾으려고 살아가는 것, 고민을 동반한 삶의 방식이지만 이렇게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설 연휴 잘 보내세요. ^^

희망여행 2017-01-26 18: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편의점 인간 살까 고민했었는데... 전달 플리즈

희망여행 2017-01-26 18: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품으로의 삶이 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 책을 읽은 후엔 생각이 바뀔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