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 세상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 플라톤 아카데미 총서
강신주 외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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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금 마키아벨리는 카스트루초를 이용해서 <군주론>의 내용을 뒤집고 있는 것입니다. 책략을 써서 늘 승리를 꿈꾸고, 상대방의 기선을 제압하여 성공을 거두는 삶도 다 무의미하단 뜻이지요. 그렇게 살아본들 남아 있는 것은, 감기에 걸려 죽게 되는 인간의 부질없는 운명이란 것입니다. 허무한 죽음을 앞둔 카스트루초는 양아들 피골로 귀니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너 자신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네가 가지고 있는 영혼의 힘과 너의 나라를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네가 전쟁을 치르기에 적합한 인물이 아니라면 너는 평화의 방법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 내 생각에는 이렇게 하는 것이 네게 최선의 방책이 될 것이다. 이 방법이 내가 애쓰고 위험을 무릅쓰고 노력해서 얻은 결실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 될 것이다. - 124, 125쪽

참으로 놀라운 통찰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비르투스Virtus(탁월함)의 삶보다 우선하는 것은 포르투나Fortuna(행운)의 힘에 굴복당하는 인간의 유한함이란 것입니다. 이런 유한함에 노출되어 있는 인간은 먼저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포르투나의 지배에 노출되어 있는 인간은 겸손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평화의 방법으로 삶에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 125쪽

유럽의 자본주의는 근대화 작업을 통해 수백 년 동안 진행되어왔습니다. 문화 활동도 하고 신화도 만드는 등 사회적 담론을 통해 많은 것들을 담아냈습니다. 하지만 무슬림 사회는 어떤가요? 굉장히 짧은 시간에 어떤 보호막도 없이 급격하게 자본주의가 적용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동안 그들이 유지해온 상징적인 우주 자체가 침범당하고 잔인하게 짓밟히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를 대체할 만한 또 다른 근간을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일부 아랍 국가에서는 문화가 완전히 붕괴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리고 살기 위해 근본주의라는 보호막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정신병적으로 혼미하고 배타적인 종교의 제 주장이 이뤄졌다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초자아superego`가 부상하면서 이를 신격화했고, 이것이 무슬림 국가들에 신성한 현실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 176, 177쪽

사실상 ‘초자아’의 부상은 포스트모던주의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지나친 관용성과 유사점이 매우 많습니다. 초자아는 희생을 요구합니다. 이 ‘희생’은 어떤 신성한 근본주의일 수도 있고 아니면 지나친 자유방임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에 신이 없다면 그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무효해질 수 있다는 것이지요. - 177쪽

진정한 보수주의자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글로벌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진보의 어두운 면만 계속해서 부각시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보수주의자들은 급격한 발전을 반기는 반면, 동시에 과거에 그들이 가지고 있던 기득권적인 제도를 놓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의 역설적인 주장은 오늘날 가장 급진적인 좌파야말로 진정한 보수주의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 183, 184쪽

진정한 지식인은 다른 사람이 정해놓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올바른 접근법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 185쪽

그런데 기준을 외부에서 들여와 적용만 해본 사람들에게, 기준을 수입하여 사용만 해본 사람들에게 기준을 생산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한 번도 기준의 생산자, 기준의 창조자가 되어보지 못하고 항상 외부의 것을 기준 삼아 사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든 기준은 분명코 어느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고, 어느 사회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기준은 엉뚱한 질문을 하는 것에서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며, 그 엉뚱한 질문에 계속적으로 심혈을 기울인 결과 하나의 기준으로 생산되었을 것입니다.
항상 자신이 지켜야 하는 가치와 이념의 기준을 외부에 두고 있는 사람이나 사회는 자신이 직접 기준의 생산자로 등장하는데 상당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기준의 수행자가 아니라 기준의 생산자가 되어보겠다는 것입니다. - 207쪽

우리가 생존하는 공간, 우리의 지혜가 발휘되는 공간은 사건의 세계이지 이론의 세계가 아닙니다. 이론은 하나의 사건을 정리해놓은 것이고, 우리가 그 이론을 공부하는 까닭은 다음에 일어날 사건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사건에 부합되는 이론은 어떤 것일지를 예측할 수 있는 힘을 갖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윤편의 이야기는, 우리가 진리라고 여기며 읽고 있는 것은 그것이 생산되는 그 순간까지만 진리였을 뿐,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찌꺼기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 211, 212쪽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면 언어의 세계 속에 갇히게 됩니다. 개념 속에 제한되어 명사(名詞)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계는 여전히 움직입니다. 동사(動詞)인 것이지요. 그러므로 세계와 제대로 접촉하려면 나 스스로 동사가 되는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언어가 세계의 진실을 표현한다는 것을 누구도 믿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제한된 범위 안에서 언어를 사용합니다. - 231쪽

우리는 보통 ‘생물’이라고 하면 그것이 한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생물은 ‘살아 있다’는 것과 ‘물체(또는 물질)’의 복합어입니다. 물체 중에서도 살아 있는 물체를 생물이라고 부르지요. 그렇다면 물체 중에는 살아 있지 않는 것도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여러분들 주위에 있는 많은 것들을 포함해서 우주의 대부분은 살아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살아 있는 것들을 ‘생물’이라는 한 단어로 묶어서 바로 개념화시켜버렸습니다. 어느덧 생물의 의미는 살아 있지 않은 것과 차별화된 정의를 굳이 겪지 않은 채 생물 자체로 존재하게 됩니다. - 239, 240쪽

열역학 법칙에는 0, 1, 2, 3의 네 가지 법칙이 있습니다. 그중 제1법칙은, 주어진 계에 존재하는 에너지의 총량은 일정하다고 말합니다. 이 에너지는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전되거나 또 모양이 변환될 수도 있지만 창조되거나 소멸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우주의 시작 시점에 100이 있었으면 끝날 때까지 100으로 그 양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2법칙에서는 운동 에너지가 위치 에너지로, 위치 에너지가 다시 빛 에너지로, 빛 에너지가 전기 에너지, 원자력 에너지, 수력 에너지, 태양 에너지 등의 수많은 에너지로 이전되거나 변환될 때마다 떡고물 흘리듯이 유용한 에너지를 조금씩 잃어버린다고 말합니다.
이 떨어진 떡고물들, 쓸모없게 된 에너지는 어떻게 될까요. 당연하게도 계 전체를 어지럽히는 데 기여하게 됩니다. 결국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잘 조직되고 질서를 가진 모습에서 점점 무질서한 모습으로 흩어지게 됩니다. - 242쪽

우리는 모두 한때 별이었습니다. 흩어진 별이 내가 되었고 다시 내가 죽어서 살아 있지 않은 물질로 흩어지면 이 우주의 한 구성원으로 돌아갑니다. 나의 일부가 탁자가 될 수도 있고 그 탁자가 다시 새로운 생명체를 구성하는 질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핵심은 살아 있는 물질인가, 그렇지 않은 물질인가 하는 것입니다. - 250쪽

이처럼 우리는 가능하면 유전적 배경이 자신과 다른 개체를 짝으로 선택하게 되며, 이는 겉으로 확인되는 외모나 집안 또는 당장의 직업이나 수입 등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부분일 것입니다. 인간을 포함한 대부분의 고등생물이 유성생식을 통해 최대한의 ‘다름’을 창출해내고, 다름 아닌 이 ‘다름’을 기준으로 자신만의 짝을 찾아내어 성공적인 세대적 연속성을 이어간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 2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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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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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닌 것이 되는 게 좋아요?"
"다시 원래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걸 안다면."
"원래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적은 없어요?"
가후쿠는 잠시 생각했다. 그런 질문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도로는 정체되고 있었다. 그들은 수도고속도로에서 다케바시 출구로 향하는 참이었다.
"그런다고 달리 돌아갈 데도 없잖아." 가후쿠는 말했다.
마사키는 그 말에 의견을 말하지 않았다. - 32쪽

"싫더라도 원래로 되돌아와. 하지만 돌아왔을 때는 그전과 조금 위치가 달라져 있지. 그게 룰이야. 그전과 완전히 똑같을 수는 없어."- 37쪽

"대학은 시시한 데야." 나는 말했다. "들어와보면 실망할 거다. 틀림없어. 근데 그런 데조차 들어가지 못하는 건 더 시시하잖아."- 74, 75쪽

"(...) 하지만 나는 대체 무엇인가, 요즘 들어 자꾸 그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것도 상당히 진지하게 말이죠. 내게서 성형외과 의사의 능력이나 경력을 걷어낸다면, 지금 누리고 있는 쾌적한 생활환경을 잃는다면, 그리고 아무 설명도 없이 한낱 맨몸뚱이 인간으로 세상에 툭 내던져진다면, 그때 나는 대체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140쪽

나는 그에게 설명했다. 나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아닌 한탄 인간’이라는 출발점에서 맨몸뚱이나 다름없이 인생을 시작했다. 우연한 계기로 글을 쓰기 시작해 다행히 그럭저럭 먹고살 정도가 되었다. 그러니 내가 아무 장점도 특기도 없는 일개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기 위해 굳이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같은 거창한 가정을 들고 나설 필요는 없다, 고. - 142쪽

"어쨌든 학교 졸업하고 나니까 어느샌가 그를 잊어버렸더라. 스스로도 신기할 만큼 깨끗이. 열일곱 살의 내가 그의 어떤 점에 그토록 깊이 빠졌었는지, 그것조차 잘 생각나지 않아. 인생이란 묘한 거야. 한때는 엄청나게 찬란하고 절대적으로 여겨지던 것이, 그걸 얻기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내버려도 좋다고까지 생각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혹은 바라보는 각도를 약간 달리하면 놀랄 만큼 빛이 바래보이는 거야. 내 눈이 대체 뭘 보고 있었나 싶어서 어이가 없어져. - 211쪽

원래부터 아무런 성취도, 아무런 생산도 없는 인생이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고 당연히 나 자신을 행복하게 하지도 못한다. 행복이라는 것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이제 기노는 이렇다 하게 정의 내릴 수 없었다. 고통이나 분노, 실망, 체념, 그런 감각도 뭔가 또렷하게 와닿지가 않았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렇듯 깊이와 무게를 상실해버린 자신의 마음이 어딘가로 맥없이 떠내려가지 않도록 단단히 묶어둘 장소를 마련하는 것 정도였다. ‘기노’라는 골목 안쪽의 작은 술집이 그 구체적인 장소가 되었다. 그리고 그곳은 - 어디까지나 결과적인 얘기지만 -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지는 공간이었다. - 226, 2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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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
공지영 지음 / 분도출판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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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는 알았다. 내가 무력하게 느껴질 때, 어떤 노력도 부질없을 때, 세상이 모두 내게 등을 돌리고 있다고 느껴질 때, 눈물이 터지기 직전, 바로 이런 때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그때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것이 축복이라는 것을 알았다. - 64쪽

그 후로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무엇을 믿는다는 것일까? 주 예수가 그리스도, 그러니까 나의 주인임을 믿는다고? 그건 믿는다.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일은 내 생애 전체를 통틀어 2퍼센트도 되지 않았다. 나는 엄청난 내 생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것을 깨닫는 행운을 누린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그분이 나의 주인이 맞다. 그러면 그게 다일까?
한참 후에 나는 깨달았다. 믿는다는 것은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 설사 내 눈앞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 나쁜 일이 벌어진다 해도, 사랑한다면 이런 일이 어떻게 생겨날 수 있을까 싶은 나쁜 일이 벌어진다 해도, 산 같은 고통이 닥쳐온다 해도, 설사 내가 어이없이 죽는다 해도, 내 식구가 내 자식이 죽는다 해도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고 구원하여 벗을 삼고 싶어 하심을 믿는 것이라는 것을. - 65, 66쪽

내가 싫다는 아이를 억지로 데리고 가서 아이가 그토록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예방주사를 맞히듯이, 내가 아이를 위해 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빼앗듯이, 내가 싫다고 해도 그분이 시키는 그것, 내가 아프다는데 그분이 나를 그 아픔으로 밀어 넣는 그것, 그것이 결국 끝끝내 그분이 나를 두고 하시는 사랑의 행위임을 믿는 것이라는 것을, 아마도 그것을 믿음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 66쪽

나는 이혼하지 않게 해 달라고 정말이지 열심히 기도했었다. 열렬하고 열렬하게 빌었다. 행복한 가정을 달라고, 아이들이 공부 잘하게 해 달라고, 책도 잘 쓰고 잘 팔리게 해 달라고 빌었다. 그런데 하느님은 하나도 허락하지 않으셨다. 나는 세 번째 이혼녀가 되어 있었고 아이들은 나날이 속을 썩였다. 책 쓰는 것도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고 빚은 갚을 길이 없었다. 솔직히 마음 깊은 곳에서 하느님께 서운한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이 화재 사건 앞에서 나는 깨닫게 되었다. 이토록 큰일도, 막으려고 맘만 먹으면 이렇게 막으시는 분이, 어떤 일이 일어나게 그냥 내버려 두었다면 그건 그분이 내게 허락하신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모르지만, 더 큰 그분이 보시기에 그게 내게 더 유익해서 그냥 내버려 두셨다는 것을 말이다.
그 이후 나는 매사를 예민하게 관찰하게 되었다. 내가 자고 있는 동안, 내가 아무 생각 없는 동안, 내가 다른 일에 정신을 팔고 있는 동안 얼마나 많은 죽을 고비에서 그분이 나를 구해 주고 계신지 알고 싶어서. 내가 차마 그것의 백의 하나라도 알까마는. - 108쪽

그중에서 제일 먼저 내 가슴을 노크한 분이 안젤름 그륀(Anselm Grun) 신부님이었다. 그분은 냉철하지만 말할 수 없이 따스한 언어로 많은 이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계셨다. 그분의 책들을 읽고 나면 내 영혼이 한 뼘은 자라 있는 것 같았고 상처는 조금 더 아무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말라>라는 책을 읽고 있었다.
아직도 그 구절을 기억한다.

우리는 가끔 우리를 비난하는 사람들을 우리의 배심원으로 앉혀 두고 언제까지나 피고석에 앉아 변명을 지속하려고 한다. - 125쪽

"내가 처음 수도원에 입회하고 신부가 되기 위해 대학에 갔을 때 대학은 이미 68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죠. 수도원도 마찬가지였어요. 그 옛날 우리 수도원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 그분들도 개혁적인 분들이었죠. 그러나 아시잖아요. 처음에 개혁적인 사람들이 개혁과 이상의 양날을 쥐고 모든 것을 개선해 나가지만 어느 순간 개혁의 열정만큼 열렬하게 안주해 버리고 보수화되지요. 저는 그런 분들을 모시는 젊은 수사였지요. 저는 수도원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것은 절박했지요. 아니면 우리 모두는 그저 낡은 옷을 입고 사라져 가는 먼지같이 될 거 같았어요.(...)"- 141쪽

그들이 나를 비난한다고 내가 불행해하는 것은 그들이 나를 칭찬한다고 내가 행복해하는 것만큼이나 허망한 일이라는 것을. 누구나 자기 앞에 놓인 생의 길을 가는 것이다. - 147, 148쪽

"하루에 한 번 이상 당신의 그림자를 살펴보라. 그러면 당신이 얼마나 약한지 알게 될 것이고, 당신은 당신이 경멸하고 증오하는 악인들과 진배 없음을 알게 되면서 저절로 겸손해지고 말 것이다."- 148쪽

"어떤 의미에서 신앙이란 자기 자신의 유한하고 불확실한 지식을 초월하려는 정신의 개방이다."-179쪽

생각해 보면 우리는 우리 인생에서 뭐가 제일 위급한지, 무엇이 제일 긴요한지, 심지어 무엇이 나를 가장 아프게 하는지조차 모른다. 이것 또한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다만 우리가 그분을 바라보면 우리의 모든 거짓을 제치고 그분께서 우리에게 지적해 주신다. "마리아야, 아니다. 그게 아니다. 이게 네가 제일 아파하는 곳이다" 하고. - 191쪽

이제 나는 세상에서 내가 잘나갈수록 어쩌면 하느님의 은총에서 멀어진다고 생각해 보기도 한다. 물론 내가 잘나가면 잘나가게 해 주시니 감사하면 되고, 내게 역경이 닥치면 그것이 하느님의 사랑하는 자녀 된 징표이니 자랑스럽고, 그러므로 이 지상의 저주처럼 느껴지는 가난이 축복이 되고 이 세상의 모든 역경과 수난이 월계관이 되는 이 오묘한 신비여! 나는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기쁨에 넘친다. 누가 이 미친 듯한, 돈과 쾌락과 유혹 그리고 물질을 숭상하는 세상에서 이토록 신선한 진리를 우리에게 일러주었단 말인가. 이 진리를 알고 이 진리를 사랑하게 된 나는 그러므로 아직 많이 모자라긴 하지만 얼마나 복된가. - 201, 202쪽

진실한 관계는 결코 언제나 일치함을 의미하지도, 언제나 한마음인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그런 관계는 꼭두각시 관계밖에 없다. 진실한 관계는 내 느낌이나 생각 그리고 주장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도 상대로부터 배척받거나 버림받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진 것을 의미한다. 조금 불편한 상태가 온다고 해도 그것이 근본적인 사랑을 절대 위협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양쪽이 가지는 것이라고 한다. 아이가 자랄 대 부모로부터 바로 이런 지지를 받아야 한다고 교육학자들은 말한다. 어쩌면 이 지상에서 부모만이 그나마 자식이라는 존재들에게 이러한 사랑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다른 관계라면 어림도 없다. 그리고 사실, 그런 부모도 ... 참으로 없다. 그런 분은 오직 한 분이시다. 하느님은 진실하게 우리를 대하시기에 우리가 드리는 기도를 다는 들어주시지 않는다. 하느님도 우리에게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 2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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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껑 대신 마음을 여는 공감 글쓰기
이강룡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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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어떻게 판단하든 그건 독자의 몫이지 저자가 관여할 영역이 아니다", "뭔가 설득하고자 한다면 독자도 그렇게 판단할 수 있게끔 정황 증거를 충분히 제공하자. 설명하려 하지 말고 보여주기만 하자."- 38쪽

1. 상식을 뒤집어라. (인생은 피자다)
2. 두 대상의 차이를 보여주어라. (기부란 수능이 아니라 검정고시다)
3. 두 대상의 유사성을 보여주어라. (초가집이 동어반복이듯 알라신도 틀린 표현이다)
4. 순서를 바꾸어라. (특별한 날에 와인을 따는 게 아니라, 와인을 따는 날이 특별한 날이다)
5. 범주의 원리를 지켰는지 확인하라. (아이를 혼낼 때는 엄마는 직구로, 아빠는 커브로) - 1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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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학교 | 일 - 일에서 충만함을 찾는 법 인생학교 3
로먼 크르즈나릭 지음, 정지현 옮김 / 쌤앤파커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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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간단한 상황이 아니었어요. 대안이라고는 직업을 바꾸고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는 것뿐이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사표를 던진다는 건, 어릴 때 그렇게도 벗어나려고 애썼던 리버풀의 불안정한 삶으로 돌아간다는 뜻이었으니까요. 절대로 그렇게는 살기 싫었어요. 어떻게 안전하고 편안한 삶을 불확실한 삶과 바꾸겠어요? 지금까지 일궈온 것들을 전부 내버려야 하잖아요? 게다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세상에서 ‘의미’니 ‘성취감’ 타령은 사치처럼 느껴져서 죄참감도 들었고요. 할아버지였다면 그렇게 태평한 상황에서 불평하셨을까? 가혹하게도 인생은 돈과 의미 중 하나를 선택하게 만들더군요."- 21쪽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는 직업의 핵심요소는 무엇인가?’가 첫 번째 질문이다. 우리가 일에서 실제로 기대하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거기에는 세 가지 본질적인 요소가 존재한다. 바로 의미와 몰입, 자유다. 셋 다 얻기 힘들고 추구하다 보면 양립하기 힘든 요소들 간의 긴장과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 35쪽

슈워츠(Barry Schwartz)에 따르면 선택의 역설은 첫째, 너무 많은 선택권은 자유가 아닌 무기력을 초래한다. 그래서 쉽게 포기해버리고 이미 이용하고 있는 전화 회사를 그대로 이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둘째, 설령 무기력 상태를 극복하고 결정을 내린다 해도 선택지가 적은 경우보다 결과에 대한 만족감이 떨어진다. 역설의 주요 원인은 언제나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었는데’라며 이미 내린 결정을 후회하고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54쪽

그렇다면 현대인을 괴롭히는 선택 과잉에 대처하는 방법은 없는 걸까. 슈워츠는 크게 두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선택지를 ‘제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예를 들어 옷을 사러 갈 때는 좀 더 괜찮은 디자인이나 가격을 찾아 끝없이 헤매지 말고 두 군데 매장만 들르겠다는 나름의 규칙을 세운다.
둘째, 최적화보다는 ‘만족’을 추구한다. 완벽한 청바지를 사려고 하기 보다는 ‘그 정도면 괜찮은’ 청바지를 사야 한다는 뜻이다. 즉 기대를 낮춤으로써 선택 과잉이 일으키는 불안과 시간낭비를 상당수 피할 수 있다. - 56쪽

지금까지 애써 일궈놓은 업적이 시간낭비가 된다는 생각은, 우리가 직업을 바꾸지 못하도록 하는 가장 커다란 심리적 장벽이다. 10년 가까이 (때로는 그 이상) 노력해서 법률이나 광고 등의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았는데, 이제 와서 전혀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 63쪽

간단히 요약하자면, 지금 우리는 두 가지 후회 가능성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 첫 번째는 수년 동안 시간과 에너지, 감정을 쏟아부은 직업을 ‘왜 버렸을까’하는 후회이고, 두 번째는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돌이켜볼 때 전혀 성취감을 느끼지 못했던 직업을 ‘왜 버리지 못했을까’하는 후회다. 두 가지 후회 모두 뼈아프지만, 현실을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사람의 일이란 것이, 아무리 최상의 결정을 하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후회를 피할 방법은 없다. 다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 64쪽

이번 장에서는 직업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다섯 가지 측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 다섯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돈’을 버는 것,
둘째는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는 것,
셋째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
넷째는 ‘열정’을 따르는 것,
다섯째는 ‘재능’을 활용하는 것이다. - 81쪽

경제학자 E. F. 슈마허(E. F. Schmacher)는 저서 <굿 워크>에서 서구사회에 널리 퍼진 ‘자유에의 갈망’을 시적으로 묘사한다.

나는 끝없는 경쟁에 내 삶을 바치고 싶지 않다.
나는 기계와 관료제의 노예가 되어 권태롭고 추악하게 살고 싶지 않다.
나는 바보나 로봇, 통근자로 살고 싶지 않다.
나는 누군가의 일부분으로 살고 싶지 않다.
나는 내 일을 하고 싶다.
나는 좀 더 소박하게 살고 싶다.
나는 가면이 아닌 진짜 인간을 상대하고 싶다.
내겐 사람, 자연, 아름답고 전일적인 세상이 중요하다.
나는 누군가를 돌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 165쪽

워드(Colin Ward)의 설명은 매우 현실적이다. 자영업이 주는 자유에는 확고한 책임감이 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워드가 추구하는 아나키즘 전통은 요즘 미디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검은 마스크를 쓴 젊은이들이 경찰에 화염병을 던지는 모습이 아니다. 그의 아나키즘 사상은 18세기 철학자 윌리엄 고드윈(William Godwin)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아나키즘이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협력을 위해 기업과 권위주의적인 정부기관의 영역 밖으로 공간을 확장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워드에게 영웅은 반체제 인사가 아니라 자신의 카페를 창업하거나 동료들과 공동으로 건강식품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들이다. 자율성을 꿈꾸는 사람의 내면에는 아나키스트가 잠재해 있다. - 170쪽

어찌 보면 그(Wallace Stevens)의 이중적(?) 삶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순수의 영역에 두고 보호하기 위한 자구책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직장생활을 인생의 중요 프로젝트로 삼는 대신, 인간으로서 더욱 원대한 꿈을 추구하도록 해주는 경제적 안전망으로 활용했다.
‘삶의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는 일’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이것은 누구나 적용할 수 있는 삶의 기술이기도 하다. 여가시간에 바이올린을 연주하거나 풍경사진을 찍고, 동호회 활동을 하는 일에 충분한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수 있는 여유로운 직업을 찾으면 된다. - 186쪽

그녀(마리 퀴리)의 목표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가 더욱 중요하다. 직업 진로 때문에 침울해하는 모든 사람들이 정말로 알고 싶어하는 것, ‘어떻게 하면 천직을 찾을 수 있는가?’의 답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마리 퀴리의 생애는 ‘천직은 찾는 것이 아니라 키워나가는 것’이라는 답을 선사한다. - 2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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