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 세상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 플라톤 아카데미 총서
강신주 외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금 마키아벨리는 카스트루초를 이용해서 <군주론>의 내용을 뒤집고 있는 것입니다. 책략을 써서 늘 승리를 꿈꾸고, 상대방의 기선을 제압하여 성공을 거두는 삶도 다 무의미하단 뜻이지요. 그렇게 살아본들 남아 있는 것은, 감기에 걸려 죽게 되는 인간의 부질없는 운명이란 것입니다. 허무한 죽음을 앞둔 카스트루초는 양아들 피골로 귀니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너 자신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네가 가지고 있는 영혼의 힘과 너의 나라를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네가 전쟁을 치르기에 적합한 인물이 아니라면 너는 평화의 방법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 내 생각에는 이렇게 하는 것이 네게 최선의 방책이 될 것이다. 이 방법이 내가 애쓰고 위험을 무릅쓰고 노력해서 얻은 결실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 될 것이다. - 124, 125쪽

참으로 놀라운 통찰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비르투스Virtus(탁월함)의 삶보다 우선하는 것은 포르투나Fortuna(행운)의 힘에 굴복당하는 인간의 유한함이란 것입니다. 이런 유한함에 노출되어 있는 인간은 먼저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포르투나의 지배에 노출되어 있는 인간은 겸손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평화의 방법으로 삶에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 125쪽

유럽의 자본주의는 근대화 작업을 통해 수백 년 동안 진행되어왔습니다. 문화 활동도 하고 신화도 만드는 등 사회적 담론을 통해 많은 것들을 담아냈습니다. 하지만 무슬림 사회는 어떤가요? 굉장히 짧은 시간에 어떤 보호막도 없이 급격하게 자본주의가 적용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동안 그들이 유지해온 상징적인 우주 자체가 침범당하고 잔인하게 짓밟히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를 대체할 만한 또 다른 근간을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일부 아랍 국가에서는 문화가 완전히 붕괴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리고 살기 위해 근본주의라는 보호막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정신병적으로 혼미하고 배타적인 종교의 제 주장이 이뤄졌다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초자아superego`가 부상하면서 이를 신격화했고, 이것이 무슬림 국가들에 신성한 현실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 176, 177쪽

사실상 ‘초자아’의 부상은 포스트모던주의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지나친 관용성과 유사점이 매우 많습니다. 초자아는 희생을 요구합니다. 이 ‘희생’은 어떤 신성한 근본주의일 수도 있고 아니면 지나친 자유방임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에 신이 없다면 그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무효해질 수 있다는 것이지요. - 177쪽

진정한 보수주의자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글로벌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진보의 어두운 면만 계속해서 부각시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보수주의자들은 급격한 발전을 반기는 반면, 동시에 과거에 그들이 가지고 있던 기득권적인 제도를 놓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의 역설적인 주장은 오늘날 가장 급진적인 좌파야말로 진정한 보수주의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 183, 184쪽

진정한 지식인은 다른 사람이 정해놓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올바른 접근법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 185쪽

그런데 기준을 외부에서 들여와 적용만 해본 사람들에게, 기준을 수입하여 사용만 해본 사람들에게 기준을 생산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한 번도 기준의 생산자, 기준의 창조자가 되어보지 못하고 항상 외부의 것을 기준 삼아 사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든 기준은 분명코 어느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고, 어느 사회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기준은 엉뚱한 질문을 하는 것에서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며, 그 엉뚱한 질문에 계속적으로 심혈을 기울인 결과 하나의 기준으로 생산되었을 것입니다.
항상 자신이 지켜야 하는 가치와 이념의 기준을 외부에 두고 있는 사람이나 사회는 자신이 직접 기준의 생산자로 등장하는데 상당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기준의 수행자가 아니라 기준의 생산자가 되어보겠다는 것입니다. - 207쪽

우리가 생존하는 공간, 우리의 지혜가 발휘되는 공간은 사건의 세계이지 이론의 세계가 아닙니다. 이론은 하나의 사건을 정리해놓은 것이고, 우리가 그 이론을 공부하는 까닭은 다음에 일어날 사건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사건에 부합되는 이론은 어떤 것일지를 예측할 수 있는 힘을 갖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윤편의 이야기는, 우리가 진리라고 여기며 읽고 있는 것은 그것이 생산되는 그 순간까지만 진리였을 뿐,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찌꺼기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 211, 212쪽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면 언어의 세계 속에 갇히게 됩니다. 개념 속에 제한되어 명사(名詞)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계는 여전히 움직입니다. 동사(動詞)인 것이지요. 그러므로 세계와 제대로 접촉하려면 나 스스로 동사가 되는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언어가 세계의 진실을 표현한다는 것을 누구도 믿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제한된 범위 안에서 언어를 사용합니다. - 231쪽

우리는 보통 ‘생물’이라고 하면 그것이 한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생물은 ‘살아 있다’는 것과 ‘물체(또는 물질)’의 복합어입니다. 물체 중에서도 살아 있는 물체를 생물이라고 부르지요. 그렇다면 물체 중에는 살아 있지 않는 것도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여러분들 주위에 있는 많은 것들을 포함해서 우주의 대부분은 살아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살아 있는 것들을 ‘생물’이라는 한 단어로 묶어서 바로 개념화시켜버렸습니다. 어느덧 생물의 의미는 살아 있지 않은 것과 차별화된 정의를 굳이 겪지 않은 채 생물 자체로 존재하게 됩니다. - 239, 240쪽

열역학 법칙에는 0, 1, 2, 3의 네 가지 법칙이 있습니다. 그중 제1법칙은, 주어진 계에 존재하는 에너지의 총량은 일정하다고 말합니다. 이 에너지는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전되거나 또 모양이 변환될 수도 있지만 창조되거나 소멸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우주의 시작 시점에 100이 있었으면 끝날 때까지 100으로 그 양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2법칙에서는 운동 에너지가 위치 에너지로, 위치 에너지가 다시 빛 에너지로, 빛 에너지가 전기 에너지, 원자력 에너지, 수력 에너지, 태양 에너지 등의 수많은 에너지로 이전되거나 변환될 때마다 떡고물 흘리듯이 유용한 에너지를 조금씩 잃어버린다고 말합니다.
이 떨어진 떡고물들, 쓸모없게 된 에너지는 어떻게 될까요. 당연하게도 계 전체를 어지럽히는 데 기여하게 됩니다. 결국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잘 조직되고 질서를 가진 모습에서 점점 무질서한 모습으로 흩어지게 됩니다. - 242쪽

우리는 모두 한때 별이었습니다. 흩어진 별이 내가 되었고 다시 내가 죽어서 살아 있지 않은 물질로 흩어지면 이 우주의 한 구성원으로 돌아갑니다. 나의 일부가 탁자가 될 수도 있고 그 탁자가 다시 새로운 생명체를 구성하는 질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핵심은 살아 있는 물질인가, 그렇지 않은 물질인가 하는 것입니다. - 250쪽

이처럼 우리는 가능하면 유전적 배경이 자신과 다른 개체를 짝으로 선택하게 되며, 이는 겉으로 확인되는 외모나 집안 또는 당장의 직업이나 수입 등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부분일 것입니다. 인간을 포함한 대부분의 고등생물이 유성생식을 통해 최대한의 ‘다름’을 창출해내고, 다름 아닌 이 ‘다름’을 기준으로 자신만의 짝을 찾아내어 성공적인 세대적 연속성을 이어간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 2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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