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간단한 상황이 아니었어요. 대안이라고는 직업을 바꾸고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는 것뿐이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사표를 던진다는 건, 어릴 때 그렇게도 벗어나려고 애썼던 리버풀의 불안정한 삶으로 돌아간다는 뜻이었으니까요. 절대로 그렇게는 살기 싫었어요. 어떻게 안전하고 편안한 삶을 불확실한 삶과 바꾸겠어요? 지금까지 일궈온 것들을 전부 내버려야 하잖아요? 게다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세상에서 ‘의미’니 ‘성취감’ 타령은 사치처럼 느껴져서 죄참감도 들었고요. 할아버지였다면 그렇게 태평한 상황에서 불평하셨을까? 가혹하게도 인생은 돈과 의미 중 하나를 선택하게 만들더군요."- 21쪽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는 직업의 핵심요소는 무엇인가?’가 첫 번째 질문이다. 우리가 일에서 실제로 기대하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거기에는 세 가지 본질적인 요소가 존재한다. 바로 의미와 몰입, 자유다. 셋 다 얻기 힘들고 추구하다 보면 양립하기 힘든 요소들 간의 긴장과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 35쪽
슈워츠(Barry Schwartz)에 따르면 선택의 역설은 첫째, 너무 많은 선택권은 자유가 아닌 무기력을 초래한다. 그래서 쉽게 포기해버리고 이미 이용하고 있는 전화 회사를 그대로 이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둘째, 설령 무기력 상태를 극복하고 결정을 내린다 해도 선택지가 적은 경우보다 결과에 대한 만족감이 떨어진다. 역설의 주요 원인은 언제나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었는데’라며 이미 내린 결정을 후회하고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54쪽
그렇다면 현대인을 괴롭히는 선택 과잉에 대처하는 방법은 없는 걸까. 슈워츠는 크게 두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선택지를 ‘제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예를 들어 옷을 사러 갈 때는 좀 더 괜찮은 디자인이나 가격을 찾아 끝없이 헤매지 말고 두 군데 매장만 들르겠다는 나름의 규칙을 세운다. 둘째, 최적화보다는 ‘만족’을 추구한다. 완벽한 청바지를 사려고 하기 보다는 ‘그 정도면 괜찮은’ 청바지를 사야 한다는 뜻이다. 즉 기대를 낮춤으로써 선택 과잉이 일으키는 불안과 시간낭비를 상당수 피할 수 있다. - 56쪽
지금까지 애써 일궈놓은 업적이 시간낭비가 된다는 생각은, 우리가 직업을 바꾸지 못하도록 하는 가장 커다란 심리적 장벽이다. 10년 가까이 (때로는 그 이상) 노력해서 법률이나 광고 등의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았는데, 이제 와서 전혀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 63쪽
간단히 요약하자면, 지금 우리는 두 가지 후회 가능성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 첫 번째는 수년 동안 시간과 에너지, 감정을 쏟아부은 직업을 ‘왜 버렸을까’하는 후회이고, 두 번째는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돌이켜볼 때 전혀 성취감을 느끼지 못했던 직업을 ‘왜 버리지 못했을까’하는 후회다. 두 가지 후회 모두 뼈아프지만, 현실을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사람의 일이란 것이, 아무리 최상의 결정을 하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후회를 피할 방법은 없다. 다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 64쪽
이번 장에서는 직업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다섯 가지 측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 다섯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돈’을 버는 것, 둘째는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는 것, 셋째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 넷째는 ‘열정’을 따르는 것, 다섯째는 ‘재능’을 활용하는 것이다. - 81쪽
경제학자 E. F. 슈마허(E. F. Schmacher)는 저서 <굿 워크>에서 서구사회에 널리 퍼진 ‘자유에의 갈망’을 시적으로 묘사한다.
나는 끝없는 경쟁에 내 삶을 바치고 싶지 않다. 나는 기계와 관료제의 노예가 되어 권태롭고 추악하게 살고 싶지 않다. 나는 바보나 로봇, 통근자로 살고 싶지 않다. 나는 누군가의 일부분으로 살고 싶지 않다. 나는 내 일을 하고 싶다. 나는 좀 더 소박하게 살고 싶다. 나는 가면이 아닌 진짜 인간을 상대하고 싶다. 내겐 사람, 자연, 아름답고 전일적인 세상이 중요하다. 나는 누군가를 돌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 165쪽
워드(Colin Ward)의 설명은 매우 현실적이다. 자영업이 주는 자유에는 확고한 책임감이 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워드가 추구하는 아나키즘 전통은 요즘 미디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검은 마스크를 쓴 젊은이들이 경찰에 화염병을 던지는 모습이 아니다. 그의 아나키즘 사상은 18세기 철학자 윌리엄 고드윈(William Godwin)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아나키즘이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협력을 위해 기업과 권위주의적인 정부기관의 영역 밖으로 공간을 확장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워드에게 영웅은 반체제 인사가 아니라 자신의 카페를 창업하거나 동료들과 공동으로 건강식품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들이다. 자율성을 꿈꾸는 사람의 내면에는 아나키스트가 잠재해 있다. - 170쪽
어찌 보면 그(Wallace Stevens)의 이중적(?) 삶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순수의 영역에 두고 보호하기 위한 자구책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직장생활을 인생의 중요 프로젝트로 삼는 대신, 인간으로서 더욱 원대한 꿈을 추구하도록 해주는 경제적 안전망으로 활용했다. ‘삶의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는 일’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이것은 누구나 적용할 수 있는 삶의 기술이기도 하다. 여가시간에 바이올린을 연주하거나 풍경사진을 찍고, 동호회 활동을 하는 일에 충분한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수 있는 여유로운 직업을 찾으면 된다. - 186쪽
그녀(마리 퀴리)의 목표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가 더욱 중요하다. 직업 진로 때문에 침울해하는 모든 사람들이 정말로 알고 싶어하는 것, ‘어떻게 하면 천직을 찾을 수 있는가?’의 답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마리 퀴리의 생애는 ‘천직은 찾는 것이 아니라 키워나가는 것’이라는 답을 선사한다. - 2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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