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닌 것이 되는 게 좋아요?" "다시 원래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걸 안다면." "원래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적은 없어요?" 가후쿠는 잠시 생각했다. 그런 질문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도로는 정체되고 있었다. 그들은 수도고속도로에서 다케바시 출구로 향하는 참이었다. "그런다고 달리 돌아갈 데도 없잖아." 가후쿠는 말했다. 마사키는 그 말에 의견을 말하지 않았다. - 32쪽
"싫더라도 원래로 되돌아와. 하지만 돌아왔을 때는 그전과 조금 위치가 달라져 있지. 그게 룰이야. 그전과 완전히 똑같을 수는 없어."- 37쪽
"대학은 시시한 데야." 나는 말했다. "들어와보면 실망할 거다. 틀림없어. 근데 그런 데조차 들어가지 못하는 건 더 시시하잖아."- 74, 75쪽
"(...) 하지만 나는 대체 무엇인가, 요즘 들어 자꾸 그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것도 상당히 진지하게 말이죠. 내게서 성형외과 의사의 능력이나 경력을 걷어낸다면, 지금 누리고 있는 쾌적한 생활환경을 잃는다면, 그리고 아무 설명도 없이 한낱 맨몸뚱이 인간으로 세상에 툭 내던져진다면, 그때 나는 대체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140쪽
나는 그에게 설명했다. 나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아닌 한탄 인간’이라는 출발점에서 맨몸뚱이나 다름없이 인생을 시작했다. 우연한 계기로 글을 쓰기 시작해 다행히 그럭저럭 먹고살 정도가 되었다. 그러니 내가 아무 장점도 특기도 없는 일개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기 위해 굳이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같은 거창한 가정을 들고 나설 필요는 없다, 고. - 142쪽
"어쨌든 학교 졸업하고 나니까 어느샌가 그를 잊어버렸더라. 스스로도 신기할 만큼 깨끗이. 열일곱 살의 내가 그의 어떤 점에 그토록 깊이 빠졌었는지, 그것조차 잘 생각나지 않아. 인생이란 묘한 거야. 한때는 엄청나게 찬란하고 절대적으로 여겨지던 것이, 그걸 얻기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내버려도 좋다고까지 생각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혹은 바라보는 각도를 약간 달리하면 놀랄 만큼 빛이 바래보이는 거야. 내 눈이 대체 뭘 보고 있었나 싶어서 어이가 없어져. - 211쪽
원래부터 아무런 성취도, 아무런 생산도 없는 인생이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고 당연히 나 자신을 행복하게 하지도 못한다. 행복이라는 것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이제 기노는 이렇다 하게 정의 내릴 수 없었다. 고통이나 분노, 실망, 체념, 그런 감각도 뭔가 또렷하게 와닿지가 않았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렇듯 깊이와 무게를 상실해버린 자신의 마음이 어딘가로 맥없이 떠내려가지 않도록 단단히 묶어둘 장소를 마련하는 것 정도였다. ‘기노’라는 골목 안쪽의 작은 술집이 그 구체적인 장소가 되었다. 그리고 그곳은 - 어디까지나 결과적인 얘기지만 -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지는 공간이었다. - 226, 2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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