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 합격, 계급 - 장강명 르포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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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작가의 소설이 아닌 르포라는 신선함에 이끌려 책을 집었다. 장편소설공모전에서 4차례나 상을 받은 다관왕 장강명이 지금의 자신을 있게 만든 문학공모전의 폐해에 대해 파해친다는 점이 다소 낯설었다. 책 표지에는 "문학상과 공채는 어떻게 좌절의 시스템이 되었나"라는 부제가 달려 있지만, 나의 궁금함은 문학공모전의 최대 수혜자가 왜 그 시스템의 문제를 살펴보려는 생각을 갖게 되었는지였다. 이러한 측면을 인식했는지 저자는 본인 스스로가 문학공모의 시스템 안에 존재하는 자이므로 객관적인 비교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시스템, 즉 대입시험, 대기업 공채, 국가고시와 같은 공무원 시험과 비교를 하며 이들에 대한 공통분모를 통하여 현재 한국의 계급사회를 분석한다(구조적으로는 각 장마다 .5장을 할애하여 구분하고 있다).


소설 공모전를 통한 등단의 문제점과 폐해, 그 이면의 오해에 대해 취재와 본인의 경험을 통해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인들은 몰랐던 등단 시스템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런데 합격/불합격의 이런 시스템 -  하물며 문학작품에 대한 우수성을 인증(?)하는 공모에서도 - 이 전혀 낯설게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낮은 신뢰성을 기반으로 하여 높은 경쟁체제를 유지하려는 경향성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불합리한 시스템을 없애자는 주장만이 타당한 것일까, 저자는 반문한다. 저자는 엘리트주의, 패거리문화, 계급의식과 같이 현재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많은 부조리들의 원인이 이런 시스템을 원인으로 한다는 점은 부정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스템 자체를 없앨 것은 아니라고 한다. 문학계로 좁히자면, 상금과 등단이라는 열매를 딸 수 있는 공모전은 등단/미등단의 차별을 두기 위한 도구만이 아니라, 이슈를 통하여 문학작품을 독자들에게 알리려 하는 문학계와 출판계의 자구책('문예운동'이라고까지 표현한다)이라고 한다. 


시스템의 불합리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저자가 꼽는 것은 정보공개이다. 좁은 관문으로 통과한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사람이 그만한 실력과 자격을 갖추었는지를 검증하고 공개함으로써 '간판'만으로 그 사람을 미루어 짐작하는 단점을 극복하자는 것이다. 중소기업이 중요하다고만 할 게 아니라, 좋은 중소기업이 어디인지를 정확히 알림으로써 지원자들의 시선을 끌자는 것이다. 수요자들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짚어주지 못한 채, 대의만을 강조하는 기존의 방식으로는 공고한 시스템으로부터의 탈피도, 다양한 도전과 실패에 대한 용인도, 내부 구성원들의 실력과 경쟁력 향상도 더이상 아무것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르포라는 것이 장강명이라는 이미지에 적확히 들어맞지는 않는 방식의 글이라고 생각하며 책을 열었으나, 역시 잘 난 사람은 이런 글도 잘 쓰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책을 덮었다.


이것은 어떤 시스템의 일부다. 입시(入試)가 있는 시스템. 세계는 둘로 나뉘어 있고,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들어가려면(入) 시험(試)을 쳐야 한다. 시험 한쪽은 지망생들의 세계, 다른 한쪽은 합격자의 세계인 것이다. 문학공모전이 바로 그 시험이다.
대학 입시와 기업의 공채 제도, 각종 고시나 전문직 자격증 시험도 모두 본질적으로 같다. 대단히 효율적이지만 동시에 매우 획일적이고, 지독히 한국적이다. 지원자는 모두 한 시험장에 들어가 동일한 문제로 시험을 친다. 소수의 합격자와 다수의 불합격자가 생긴다. 불합격자들이 좌절로 괴로워하는 동안 합격자들은 불합격자들과 멀어진다. 그들은 합격자들의 세계에서 새로운 규칙을 배운다. 패거리주의, 엘리트주의가 생기는 것도 자연스럽다. - 17

몇몇은 이 시스템이 거의 한계에 온 것 아닐까 내심 걱정하기도 한다.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기획된 선발 시험이 이제 오히려 사람들을 억압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시험 자체가 부당한 계급사회를 만드는 권력의 도구가 되었다는 것이다. 한번 시험을 통과한 사람은 다시는 지망생들의 세계로 떨어지지 않는 경직성이 근본 원인이다.
비판자들은, 합격자들이 똘똘 뭉쳐서 자신들의 지위를 단단히 하는 데 입시를 악용하고, 그걸 일종의 산업으로 만들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문단의 폐해’라는 것들도, 큰 틀에서 보면 사실 한국 사회의 다른 분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끼리끼리 문화’의 문학계 버전에 불과하다. - 18

모든 사람이 시스템 안에 있으니까, 외부의, 시선이란 게 존재할 수 없는 거다. 대졸자에게는 대졸자의 입장이, 고졸자에게는 고졸자의 입장이 있다. 한쪽 의견이 은근한 우월감과 시스템이 정당하다고 믿고픈 기대에 휘둘릴 수 있다면, 다른 쪽 의견은 피해 의식으로 왜곡될 수 있다. - 20

문학상 심사위원회는 무엇으로부터 독립되고, 어떤 가치에 중립적이어야 하는가? 상업성, 금전적 가치다. 잘 팔릴 작품이 아니라 뛰어난 작품을 뽑기 위해 위원회를 둔 것이다. 장편소설공모전 수상작들의 대중성이 썩 높지 않을 것임은 이런 설계 단계에서부터 예고된 일이었다.
그럼에도 출판사들은 당선작이 화제를 모아 흥행까지 잘 되길 기대했다. 처음부터 모순이 내재해 있던 셈이다. 출판사들이 문학 출판 시장을 공급자가 주도하는, ‘밀어내기’가 가능한 부문으로 여겼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 판단 전후에는 계몽적, 엘리트주의적인 분위기가 다분히 깔려 있다. 나는 장편소설공모전이 출판인과 평론가들의 문예운동이었다고 생각한다. - 96


과저제도는 사회의 창조적 역동성을 막았다.
이 제도는 블랙홀처럼 온 나라의 젊음과 재능을 빨아들였다. 철저한 계급사회에서, 시험만 잘 치면 순식간에 기득권 핵심부에 들어설 수 있다는 약속만큼 달콤한 것도 없다. 유능한 청년들이 자기 주변에 있는 중소 규모의 지적, 산업적 프로젝트에서 관심을 거두고 중앙에서 실시하는 시험을 통과하는 데 모든 힘을 쏟았다.
합격자들은 그 질서의 가장 열렬한 수호자가 되었다. - 101

미국의 사회학자 토비 허프는 서양에서 근대 과학이 발전하고 동양에서는 그러지 못한 것을 인재 평가 방식의 차이에서 찾는다. 동양에서는 국가나 스승이 젊은이들의 능력을 평가했다. 그런 사회에서는 젊은이들이 선배들이 세운 기준을 충실히 따르게 된다. 반면 유럽의 대학에서는 일찍부터 논쟁과 토론이 발전했고 이는 체계적인 회의론으로 이어졌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중국에서 생겨난 과거제도를 받아들인 나라가 한국과 베트남이다. 일본에는 과거제도가 뿌리내리지 않았다. 한자 문화권 국가 중 과거제도를 도입한 중국, 한국, 베트남은 근대화에 뒤쳐져 외세에 시달리고, 그렇지 않았던 일본은 반대로 승승장구한 역사가 내 눈에는 우연으로 보이지 않는다. - 102

엘리트들이 한계에 부딪히는 영역이 한곳 더 있다. ‘전복적이고 혁명적인 작품’을 알아보는 분야다. 전복적인 작품은, 문자 그대로 체제를 전복하려 든다. 따라서 구체제의 엘리트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거기에 저항하게 되기 쉽다. 상상을 뛰어넘는 혁명적인 작품은 엘리트의 상상력 밖에 있다. 그러므로 엘리트는 그런 작품을 이해하지 못한다. 종종 엘리트들이 일반인보다 더 느리다. 왜냐하면 자기 상상력 바깥에 뭔가가 더 있다는 사실은, 엘리트보다 엘리트가 아닌 사람들이 더 잘 알기 때문이다. - 137

세상을 바꾸는, 혁명적인 아이디어를 원하는가? 그러면 또라이, 반항아, 괴짜들이 설칠 땅을 마련해 줘야 한다. 한국 기업이 모두 공채를 없애고 또라이들을 뽑아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다. 전문가들이 많은 후보 중에서 신인을 선발하는 공채 시스템은 공정하고 치열하다. 과거에 성공적인 제도였고, 현재도 효율적이며 믿을만한 제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공채와 별개로 또라이들이 사회 한구석에서 무모한 모험과 실험을 더 많이 벌여야 한다. 대담한 아이디어들은 실제로 구현해 보기 전에는 괜찮은 것과 황당한 것을 구분할 길이 없다. 모험가들이 황당한 아이디어를 성공시키면 그다음에 더 큰 회사가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인수하거나 창안자를 영입해야 한다. 또는 모험가들이 직접 자기 회사를 키우거나. 그런 과정이 더 쉬워지고 더 많아져야 한다. 어떤 아이디어들은 그런 식으로만 건질 수 있다. - 162

나는 개인적으로 로스쿨이나 학생부종합전형에 찬성한다. 잘만 운영되면 사시나 수능보다 더 나은 선발 제도라고 본다. 문제는 바로 그 ‘잘 운영되는가’다. 한국 사회는 그 문제에 굉장히 민감하다. 왜냐하면 경쟁은 치열한 반면 신뢰 수준은 아주 낮은 사회이기 때문이다.
지금 상당수의 사람들은, 아무리 장점이 많아도 공정성을 확실히 담보하지 못하는 제도보다는, 여러 가지 부작용이 있더라도 획일적으로 시험을 치러 점수를 기준으로 뽑는 게 차라리 낫다고 여긴다. 이런 분위기가 공채제도를 유지하는 큰 힘이기도 하다.
그런 정서를 비난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이것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 235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 입시 고득점자 = 명문대 출신 = 일 잘할 것 같은 사람’이라는 거친 등식은 한국 사회에서 널리 통한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다른 평가 방법이 딱히 없으니까.
대학 졸업장은 공신력 있는 기관이나 브랜드의 품질보증 마크 같은 역할을 한다. 명문대 마크가 찍히면 노동시장에서 좋은 기회를 얻기 쉽다. 그런 간판이 없으면 자기 실력을 제대로 알리기 힘들다.
그렇게 간판의 중요성이 점점 높아지다가 마침내 인간의 가치를 상징하는 데까지 이르고야 만다. 그때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은 단순히 좋은 일자리를 얻기 위한 방편이 아니라 존재 증명을 위한 투쟁이 된다. 나중에 거둘 수 있는 예상 이익보다 훨씬 큰 사교육비를 들여 자녀의 대학 입시를 지원하게 된다. - 312, 313

어떤 상품을 사기 전에 그 물건의 품질을 제대로 가늠할 수 있다면 간판은 힘을 잃는다. 간판으로 득을 보던 사람은 그런 정보공개에 반발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 지원자들과 소비자들은 모두 이익이다. 엄계 전체의 경쟁력도 높아지고, 간판으로 사람의 위아래를 정하는 악습도 사라진다. 중진, 원로라도 실력이 없으면 물러나고, 도전적인 신인이 그 자리에 들어온다. - 327

나는 정부와 중소기업계가 주도하는 중소기업 인식 개선 캠페인들이 독자를 도서관에 데려가 "좋은 책이 많으니 무조건 읽어라."라고 권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그런 캠페인들이 주장하는 논리가 대체로 이렇다. 대기업 못지않은 근로조건에 장래성도 유망한 중소기업들이 많은데 사회 전반에 퍼진 중소기업에 대한 안 좋은 이미지 때문에 청년들이 중소기업 취업을 꺼린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부정적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중소기업이 우리 경제에서 얼마나 중요하다는 둥,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몇 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는 둥 하는 설명도 따른다. - 355

그러나 중소기업들이 평균적으로 괜찮다거나 전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구직자 입장에서 쓸 만한 정보가 못된다. 구직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는 자신이 지원하려는 특정 기업에 대한 것이며, 그들의 눈높이는 급여, 작업환경, 복리 후생, 안정성 같은 사안에 맞춰져 있다.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우수한 중소기업이 아주 많다’고만 강조할 게 아니라, 그냥 우수한 중소기업이 어디인지, 어떤 점이 우수한지를 보여주면 될 일 아닌가. 그러면 구직자들이 저절로 그 기업들에 몰릴 거 아닌가. - 356

한국 사회는 공공기관의 조사가 끝나 법원에서 판결까지 내린 사안에 대해서조차 구직자에게 제대로 알려 주지 않는다. 그러면서 ‘우수한 중소기업이 많은데 요즘 젊은이들은 대기업만 바라본다’고 그들을 꾸짖는다. 가증스러운 기만이다. 지뢰밭으로 들어가기 주저하는 군인에게 용기가 부족하다고 다그치는 꼴이다. - 361

그렇게 관료 집단이 된다. 이 집단의 질서는 실력이 아니라 기수 문화와 인맥, 파벌이다. 엘리트를 모아 놓기는 했으나 외국의 같은 직업군에 비하면 전문성이 떨어진다. 외부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도 잘 모른다. 그런데도 뼛속 깊이 오만하다. 자신들을 뽑아 준 시험의 분별력과 공정함을 믿기 때문이다. 그 시험으로 자신들의 능력이 입증됐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 425

바꿔 말하자면, 한국에서 간판이 만드는 차별과 서열의 구조는 거기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유지된다. 그런 ‘합의’는 여러 각도에서 공고히 맞물려 있다. 왜냐하면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실제로 그 간판에 힘이 있기 때문이다. 좋은 간판을 믿고 선택하는 것이 각자에게 최선의 선택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간판 외에 달리 더 좋은 선택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간판의 본질적인 힘을 허물어야 한다. 그래야 간판의 중요성이 모든 방향으로 동시에 낮아진다. 간판의 힘은 정보 부족에서 나온다. 독자나 출판사가 등단 작가를, 구직자가 대기업을, 기업이 명문대 졸업생을 선호하는 이유는 그게 안전하다고 생각해서다. - 428

나는 사람들이 모험을 하게 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본다. 믿을 수 있는 정보는 그중 하나다. 다른 두 가지는 충분한 보상과 실패했을 경우의 대비책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는 그 세 가지가 다 부족하고, 평범한 사람과 기업들은 모험을 극히 꺼린다. 그 결과 역동성이 점점 사라지고 우리 공동체가 계급사회 같은 모습으로 굳어지는 중이다. 상속, 혼인, 시험과 같은 이벤트가 아니면 신분을 바꾸기 어려운. - 429, 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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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없는 약속
야쿠마루 가쿠 지음, 김성미 옮김 / 북플라자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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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중반까지는 불명의 누군가로부터 예전에 한 약속의 이행을 재촉당하는 미스테리의 형식을 유지하면서 꽤 몰입할 수 있는 전개를 하고 있다. 안정적으로 새로운 현실에 정착한 주인공의 회한과 고뇌도 잘 묘사되어 있다. 예상 밖의 반전이나 결말은 없지만, 그래도 한번 읽어보기에는 나쁘지 않은 소설이다. 


결말이 아쉽다는 평들이 많은데, 내가 아쉬웠던 점은 기막힌 반전이 없다는 점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한 무모한 약속의 댓가인 범죄자에 대한 응징이 새로운 범죄를 유발하는 것이라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선택의 문제, 선과 악의 불명확한 구분, 자신의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과 같은 상황에서 독자들에게 제시해줄 수 있는 작가만의 독특한 관점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야기가 그냥 전개되고 마무리될 뿐, 결론적으로 작가가 왜 이런 구성과 스토리라인을 짰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통찰이 결여되어 있다.   


반전을 거듭하고 현란하고 기교넘치는 볼거리들이 즐비한 현 상황에서, 소설 속 서사만으로 독자를 만족시키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이미 독자들의 기대는 글자를 통해 읽게 되는 작가의 상상을 훨씬 넘어서고 있는지도 모른다. 더 기막히고 예측할 수 없는 반전이 아니라, 작가의 관념과 통찰을 통하여 독자들에게 생각할 여지를 줄 수 있는지가 소설이 계속적으로 생존할 수 있을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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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라이프 - 내 삶을 바꾸는 심리학의 지혜
최인철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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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지려면 행복에 도달하기 위한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이러한 생각은 독창적인 것이 아니라, 나 또한 어디서부터인가 듣고 스스로 계속 되뇌임에 따라 형성된 것일텐데, 이 생각에 대한 레퍼런스라 할만 한 책을 발견했다. <굿 라이프>는 행복에 관한 흔한 오해들을 바로 잡고, 행복이 강도(intensity)가 아닌 빈도(frequency)이며, 달성해야 할 추상적인 무엇이 아니라 지금 바로 내 앞에 펼쳐진 상황에 대한 구체적 인식임을 밝혀준다. 


제목에 굳이 '행복'이라는 단어를 넣지 않고 '굿 라이프'라고 한 점에 대해서 저자는 행복을 '순간의 기분'으로만 이해하는 경향성이 아닌 '삶'의 행복임을 밝히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행복 자체가 삶의 목표가 아니라 행복은 좋은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관점 혹은 태도임을 강조한 것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행복의 의미를 밝히는 것은 매력적이지만 금방 성과가 나오거나 돈이 되는 연구는 아니어서, 이에 관한 많은 연구들이 주로 외국에서 이루어지고, 독자들은 그 책의 번역서를 읽음으로써 행복이라는 이러한 시각이 외국에서나 통용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최인철 교수팀의 연구결과를 풀어낸 이 책은 '행복'이라는 용어를 접하면서 생기게 되는 오해를 비롯하여, 우리가 행복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으며, 어떨 때 행복하다고 느끼며, 행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소상히 밝히고 있다. 


책의 구성에서는 행복의 추구가 결국 어떠한 삶을 완성해 갈 것인지를 행복한 삶, 의미 있는 삶, 품격 있는 삶이라는 세 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행복을 제대로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삶을 의미 중심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살아야 한다는 1부와 2부에 이어, 3부에서는 품격 있는 삶을 위한 십계명을 제시해준다. 1, 2부가 총론이라면, 3부는 구체적인 각론인 셈이다. 개인적으로 '~를 위한 십계명'과 같은 to do list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행복한 삶을 위한 방법을 해체하여 10가지로 유형화하였으니, 이 중 몇 가지라도 실천해보며 요즘 유행하는 '소확행'을 경험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행복의 의미를 밝히는 것은 매력적이지만 금방 성과가 나오거나 돈이 되는 연구는 아니어서, 이에 관한 많은 연구들이 주로 외국에서 이루어지고, 독자들은 그 책의 번역서를 읽음으로써 행복이라는 이러한 시각이 외국에서나 통용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최인철 교수팀의 연구결과를 풀어낸 이 책은 '행복'이라는 용어를 접하면서 생기게 되는 오해를 비롯하여, 우리가 행복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으며, 어떨 때 행복하다고 느끼며, 행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소상히 밝히고 있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학자라면 자기 연구만을 소개하기보다는 전공 분야의 연구들을 체계적으로 소개해서 독자들의 지식의 지평을 넓히는데 기여하는 것이 마땅하"고, "학자에게 최고의 행복은 자기 데이터로 자기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일텐데, <프레임>에 이은 <굿 라이프>는 저자에게 스스로 밝힌 학자의 책무와 기쁨을 부여해주는 결과물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우리는 행복을 순간의 쾌락 정도로만 오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행복’이라는 이름의 특별한 감정이 따로 있을 것이라고 오해한 나머지 이미 충분히 즐겁고, 호기심이 충만하고, 삶의 고요함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행복하지 않다고 불안해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행복이 성공을 포기해야만 찾아오는 것이라고 오해한 나머지, 행복해지는 것을 주저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행복이 유전의 산물이기 때문에 노력해도 소용없다는 냉소주의에 빠져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생존과 번식만이 인간의 궁극적 목적이라는 진화심리학의 논리 앞에서 쩔쩔매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행복을 철저하게 마음의 문제라고만 생각한 나머지 라이프 스타일을 바꾸는 것을 등한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행복은 도덕이나 윤리와는 무관한 것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타인의 행복을 해치면서까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품격 없는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 10, 11

쾌락은 생물학적이고 의미는 문화적이다. 쾌락은 현재에 집중할 때 경험되고, 의미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발견된다. 나이가 들면 쾌락보다 의미가 중요해진다. - 14

많은 연구는 우리가 충분히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로 ‘단 하나의 옳은 길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직된 사고를 꼽는다. 예를 들어 가능한 행동의 선택지를 극소수로 제한해놓은 문화, 다시 말해 엄격한 행동 규범이 존재하는 문화의 구성원들이 느슨한 문화의 구성원들보다 낮은 행복감을 경험한다. 개인적 자유가 억압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행복한 감정을 경험하기 위해서 ‘행복’이라는 어떤 특수하고 개별적인 감정을 경험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경직된 사고가 우리의 행복을 억압했을 수도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만족하고 이미 감사하고 이미 고요하고 이미 즐거우면서도, 여전히 행복이라는 파랑새 같은 감정을 경험해야만 한다는 숙제를 안고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 37, 38

관심 있는 마음 상태는 결코 피상적이거나 얕은 감정 상태가 아니다. 관심은 사랑과 예술과 과학, 그리고 모든 문화적 활동의 마르지 않는 원천이다. 관심이 행복이라고 이해하는 한, 행복은 결코 피상적일 수 없다. - 41

소득이 늘어나는 것에 비례해서 행복이 늘어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사람들이 늘어난 소득으로 행복에 큰 도움이 되는 경험을 사는 데는 인색하고, 행복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소유를 늘리는 데 집중하기 때문이다. - 116

경험은 우리를 비교로부터 자유롭게 한다. 경험의 삶이 곧 무소유의 삶인 이유는 무소유의 본질이 소유가 유발하는 비교로부터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소유를 모두 버려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무소유의 삶이 부담스러운 우리에게 경험의 삶은 아주 좋은 대안이다. - 119

유도 채점 방법과 올림픽 국가 순위 방식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행복은 긍정 정서 대 부정 정서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에 달려 있다(Happiness is the Frequency, Not the Intensity, of Positive Versus Negative Affect)」라는 논문 때문이었다. 아무리 강한 자극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그 자극에 적응하기 때문에 그로 인한 행복 혹은 불행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따라서 어쩌다 한 번 강한 자극을 경험하는 것보다는 소소한 즐거움이라도 자주 경험하는 것이 행복에 유리하다.
만일 이 행복 원리가 사실이라면, 행복한 사람들은 금메달 수보다 총 메달 수를 중시하는 집계 방법을 더 선호할 것이라는 가설이 가능해진다. - 131

심리학자 에릭 클링거(Eric Klinger)의 말처럼 "인간의 뇌는 목적 없는 삶을 견딜 수 없다(The human brain cannot sustain purposeless living)." - 153

인간의 마음속에서 현재는 쾌락의 시간이고, 미래는 의미의 시간이다. - 186

행복은 성공을 포기하는 대가가 아니다. 성공과 성취를 행복의 장애물로 보는 시각을 유지하는 한 의미 있는 성취를 통한 유능감, 자부심, 고요함을 경험하기 어렵다. - 194

우리의 생각이 잘 바뀌지 않는 이유는 주변 사람들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의식이 바뀌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가 어울리는 사람들이 바뀌었는지를 확인해보는 것이다. 아직도 그때 그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면, 그의 생각은 아직 그대로일 가능성이 높다. - 229, 230

관계의 지리적 편중과 의식의 편중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만나는 사람과 삶의 공간을 바꿔야 한다. 결심만으로 의식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현대 경영의 구루(guru)이자 사상적 리더인 오마에 겐이치(Omae Kenichi) 역시 인간을 바꾸는 세 가지 방법으로 공간을 바꿀 것, 만나는 사람을 마꿀 것, 그리고 시간을 바꿀 것을 제안한 바 있다. - 231

냉소적 불신이 가득한 사람은 자기 자신이 늘 기분이 좋지 않다. 우울을 경험할 가능성도 높다. 한마디로 행복하지 않은 것이다. 그뿐 아니라 냉소주의자의 특허인 적대적 태도, 공격성, 분노는 건강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냉소적 불신은 치매 가능성까지 높인다. - 240

불량볼트 하나가 우주선 사고의 원인이 되듯이 때로는 아주 미세한 원인들이 대참사를 빚기도 한다. 그런 직접적이고 미세한 원인들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동안 그 사건을 집요하게 들어다봐야 한다. 그런데 불행히도 ‘내 그럴 줄 알았지’라는 후견지명의 착각은 우리에게서 사고(思考)의 집요함을 빼앗아간다. - 252

생명력 있는 글이 좋은 글이고, 생명력 있는 삶이 좋은 삶이다. 생명력이 있는 글이란 불필요한 부사(副司)가 많이 쓰이지 않은 글이다. 미국의 작가 스티븐 킹은 "지옥으로 가는 길은 부사로 덮여 있다(The road to hell is paved with adverbs)"라면서 불필요한 부사의 남발에 대해 경고한 바 있다. 작가가 자신의 주장에 자신이 없을 때 불필요한 수식어를 남발하게 된다. 부사를 내세워 자기주장을 정당화하려고 한다. - 262

좋은 삶도 그렇다. 불필요한 부사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사는 인생은 생명력이 없다. 필요 이상의 권력, 부, 명품, 이미지 등이 인생의 부사들이다. 글에서 부사를 한번 남용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부사의 수가 늘어나듯이, 인생의 부사에 의지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그 수가 늘어난다. 결국 생명력이라곤 전혀 느낄 수 없는 그저 그런 글과 그저 그런 삶이 되고 만다. - 263

유연한 삶이 곧 타협하는 삶은 아니다. 삶의 복잡성에 대한 겸허한 인식이고, 생각의 다양성에 대한 쿨한 인정이며, 자신의 한계에 대한 용기 있는 고백이다. 확신을 갖되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 품격이 있는 삶이다. 아무리 옳은 주장이라고 하더라도 지나친 확신으로 타인을 몰아붙이는 것은 타인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행위이며, 궁극적으로 상대의 행복을 위협하는 행위다. - 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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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 있는 아무 말 대잔치 - 이왕이면 뼈 있는 아무 말을 나눠야 한다
신영준.고영성 지음 / 로크미디어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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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30대를 위한 책인 것 같지만, 누군가를 향한 조언이 반드시 젊은이들만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고, 아직까지도 나라는 사람에게는 충고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생각하며 책을 읽었다. 한때 독서와 영어공부를 하고자 청취했었지만 이제는 더이상 듣지 않는 팟캐스트의 진행자인 신영준, 고영성의 책이다. 이들이 진행하고 있는 한국사회 젊은이들에 대한 진지한 멘토 역할과 젊은이들의 변화를 통한 이 사회의 개선에는 크게 공감한 바 있다. 구조의 부조리와 불합리를 탓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인 자기자신에 대한 깊은 고민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접근도 동의한다.


말랑말랑한 말로 위안을 주거나, 되지도 않는 독설로 긴장시켜 독자들을 책망하게 만드는 여타의 자기계발서와는 달리, 이 책에서는 저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읽기, 쓰기, 공부, 학습능력, 성장이라는, 어찌보면 뻔한 행동의 변화에 대하여 진지하게 때로는 지극히 현실적으로 조망하며 충고를 한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준비하는 예비직장인이나, 사회 초년생으로 변화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들이 취합 정리되어 있다. 많은 책을 읽어 도움이 되는 구절을 하나하나 어렵게 얻을 수도 있겠지만, 이런 책들을 통한 집약적 습득도 나름 의미가 있다는 생각은 해본다. 


어느 정도 경험주의자의 관점을 갖고 있는 내게는,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자기가 겪어보고 실패하고 깨달아야 생각과 행동이 변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지만, 그래도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내가 20대에 이 책을 읽고 습관을 바꿨다면 인생은 달라졌을까? 아니겠지... 

행복 연구의 대가 조지 베일런트(George Vaillant)는 이렇게 말했다.
"고통을 어떻게 바라보는가가 행복을 결정한다." - 27

20대는 꿈을 이루는 시기가 아니라 개인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기본기를 축적하는 시간이다. (여기서 안전망은 경제적 잉여 생산물을 저장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20대에 목표를 성취해야 한다고 착각하고 그 수확으로 평생을 살아간다고 단단히 오해한다. - 32

디테일이 티가 나는 순간은 경쟁이 치열해지면서다. 상위 레벨로 가면 갈수록 디테일의 중요성은 점점 부각된다. 보통 일의 성과는 처음에는 노력한 만큼 올라간다. 하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성과의 포화 구간에 진입하게 된다. 노력을 해도 딱히 성과가 나지 않는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은 정도라도 성과가 올라간다. 그 작은 성과가 디테일이다. - 38

운은 통제 불가능한 영역이다. 하지만 운과의 접점을 늘리기 위한 계획과 운을 접한 후 그 결과 값을 극대화하는 전략은 철저히 실력이다. 운에 대해 고민하고 전략을 세우기는 어렵다. 하지만 고민하고 준비된 만큼 불운에 대한 타격은 상대적으로 감소하고 행운의 결과 값은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 41

사실 양과 질은 대비되는 개념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묶여 있다. 충분한 양의 시도가 있어야 훌륭한 질의 결과가 나온다. - 42

우선 개인이 불행한데 행복한 부부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건 거짓말입니다. 개인이 꼭 행복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행복합니까? 꿈을 이루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결과적으로 행복한 부부가 되려면 서로가 서로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가장 완벽한 조력자가 되어야 합니다. - 49

"입사는 스펙으로 가능하지만, 퇴사는 오직 실력으로만 가능하다." - 60

"학습은 많은 정보를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 능력을 키운다는 의미다." - 67

용기와 열정이 퇴사의 원동력이 되면 안 된다. 무모한 퇴사의 결말은 예측하기 어렵지 않다. - 84

속독에 대한 오해 중에 하나는 속독 기술을 익히면 책을 빨리 읽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사실 그런 기술은 없다. 게다가 기술을 익혀 속독한다는 사람 중에 내공이 높은 사람은 본 적이 없다. 내가 아는 사람들은 대개 엄청난 독서량을 기반으로 배경지식이 많아져서 맥락을 빨리 이해하기 때문에 빨리 읽었다. 맥락의 파악이 빨라지면 몰입도가 높아지면서 빨리, 그리고 오래 읽게 되고 더 많이 일게 된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선순환이 일어나면 읽는 속도는 자연스레 빨라진다. - 87

당연함으로 위장한 수많은 불합리 중에 하나가 선의에 대한 강요다. 선의가 넘치는 사회는 모두가 바라는 이상향이지만, 선의를 베푸는 주체가 누군지 명확히 해야 한다. 선의의 핵심은 그 시작이 자발적이라는 것이다. 마음에서 우러나온 이타적 행위가 아니라 타인의 강요에 의한 행위라면 선의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인내를 감수하는 셈이다. 그러면 누군가를 도와주는 좋은 일을 하면서도 기쁘지 않고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사실 선의를 강요받는 것만큼 지옥이 없다. - 104, 105

누구나 언제나 선택의 기로에 서면 갈등하고, 선택한 뒤에는 필연적으로 기회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후회가 남는다. 그래서 완벽한 선택을 내리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최대한 합리적인 결정을 내려 스스로를 납득시키고 후회를 최소화시켜 평생 남을 후회 대신 떨쳐 낼 수 있는 아쉬움 정도만이 남게 해야 한다. -127

30살이 넘어가면 선택의 순간이 다가온다. 도전만 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다. 그렇다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선택과 집중은 다른 단어지만 그 공통분모에는 아주 대단한 단어가 숨어 있다. 바로 포기다.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말은 다른 것을 포기한다는 뜻이다. 무언가에 집중한다는 말도 내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포기한다는 이야기다. 무언가를 얻고 싶은가? 무언가를 해내고 싶은가? 그렇다면 차분히 앉아서 포기해야 할 것부터 적어라. 그러면 꿈이 더욱 명확해질 것이다. - 142, 143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변할 수 있다고 믿지 않기 때문이고, 변화가 가능할 때까지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이 2가지 이유가 역으로 보면 습관을 바꾸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 220

혼자 성공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혁신은 집단에 의해 이루어지며, 아무리 개인의 역량이 뛰어나도 똑똑한 팀에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여러 연구에서도 밝혀졌듯이, 스타 인재는 ‘연결 지능’이 있는 사람이다. 곧 대인 관계 능력이 뛰어나다는 뜻이다. - 241

결국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본능을 충족시키기 위한 행동들을 칼같이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역설적이지만 포기하는 만큼 얻을 수 있다. 그렇게 포기해서 얻은 시간을 잘 활용하여 자신을 발전시킨다면 모든 일의 효율이 올라가고 또 추가적으로 시간을 얻게 된다. 그렇게 양의 되먹임(positive feedback) 구간에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 283

일괄적인 보상은 사실 역차별이다. 잘하는 사람은 대우 받고 못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아야 역차별이 사라진다. - 350

앞으로의 오늘을 후회가 아니라 만족으로 채워진 삶으로 만드는 더 나은 선택을 ‘지금’하는 것이다. 거창하게 인생 전체를 기준으로 삼지 않고 365일 중 하루인 바로 오늘, 보람찬 선택을 하고 있는가?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과거로 돌아가도 딱히 소용없을 것이다. 미래와 과거는 대척점에 놓인 개념이지만, 신기하게도 공통점으로 엮인 부분이 있다. 그 끝이 현재와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이는 지금 하지 못한 것은 과거에도 할 수 없었던 일이고, 미래에도 할 수 없는 일이라는 뜻이다. - 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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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곰탕 1~2 세트 - 전2권 - 김영탁 장편소설
김영탁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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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몇 번 눈에 띄었던 책인데, 망설이다가 독자들의 평이 좋아 구매했다. 그래도 그 후한 평가를 완전히 다 믿을 수는 없어 1권만 구매해서 읽어보기 시작했는데, 책을 중간 정도 읽었을 때쯤 2권을 함께 사지 못한 걸 후회했다. 간만에 일순간 휘몰아 치는 재미에 푹 빠져 지낼 수 있었는데, 괜한 의심으로 다음 권을 기다려야 하는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이 정도면 바로 다음날 2권을 구매했음은 굳이 밝힐 필요가 없을 것이다.


장르 소설이기는 한데, 미래를 다루고 있으니 SF라고 해야 할지, 스릴러라고 해야 할지, 스릴러에 못잖은 유머코드가 잔뜩 깔려 있는데, 게다가 우리가 사는 인간 관계를 다루고 있기도 하고... 제대로 규명할 수 없는 다양한 요소가 얽혀 있는 형태인데다가, 그 내용 또한 새롭고 기발하다. 제목은 또 어떠한가.


이 소설은 부산을 배경으로 한 디스토피아적 미래와 미래로부터 무언가를 해결하기 위하여 현재로 시간여행을 떠난 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현재로 도착한 사람들은 각각 현재에 남으려는 사람과 그런 사람을 제거하려는 사람, 현실을 통하여 미래를 바꾸려는 사람들로 나뉘기 시작하고, 그들의 '임무'와 '욕망'은 서로 뒤얽혀 복잡한 사건을 만들어 낸다. 다양한 복선을 실타래처럼 풀리며 미래에서의 모습이나 처지가 갖게 되는 숨겨진 의미가 밝혀지고, 미래를 바꾸고자하는 계획과 커다란 대가를 치르고서 타인의 행복을 누리려던 욕망은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 앞에서 무너져버리고 만다. 결국 가족이라는 연대를 재발견하고, 삶이라는 건 타인의 것이 아닌 내 것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삶의 의미를 되찾게 된다. 


다분히 한국적인 음식이라 할 수 있는 곰탕은 누군가에게는 잊을 수 없는 맛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배워와야 할 대상이기도 하면서, 아들에게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을 먹이로 싶어하는 아버지의 마음이자, (미래의) 아버지를 기다리며 준비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굳이 '한국형'이라고 붙이고 싶지 않지만, 국밥을 통하여 가족의 정서를 만들어 내고 그걸 바탕으로 이토록 다양한 시공간을 활용한 사건을 전개하는 것을 보아, 새로운 형태의 '한국형 SF'라고 칭해도 될 것 같다. 

맛이란 건 좋은 기억 같은 건가 보다. 잊을 수 없는 맛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인가 보다. 이우환은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매일 이야기할 수 있을까. 매번 저렇게 흥분해서 또 생생하게 말이다. - (1권) 14

한 번도 남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어본 적 없는 사람들은 안다.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 된다는 건, 자신이 소중해져서가 아니라 더 소중했던 사람에게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라는 걸. - (1권) 51, 52

아무것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모든 걸 동경하거나 무엇도 기대하지 않게 된다. - (1권) 81

물건 값은, 흥정은 했지만 무리하게 깎지는 않았다. 모든 게 제값이 있는 거였다. 종인은 되도록 값을 정하는 사람이 부르는 값을 믿어주려고 애썼다. 그가 조금 높게 부르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믿었다. 집안에 자식이 하나 더 태어났거나, 노모가 아프거나, 큰딸이 결혼을 해야 하거나, 종인이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수도 없이 많았다. 믿었다. 의심에 드는 시간을 종인은 낭비라 생각했다. 그럴 시간에 부지런을 떨면 믿음을 가질 여유가 생겼다. 그렇게 믿기 시작한 사람들과의 거래는 오래갔다. - (1권) 120

이 남자가 싫고 좋고 상관없다. 그냥, 아버지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나에게 할아버지가 된다. 가족이란 그런 거였다. 이유 없이 정해지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 (1권) 156

양창근은 한 사람 옆에 앉았다. 그리고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상대방의 얼굴만 집중해서 살폈다. 그럼 되었다. 상대방의 얼굴만 제대로 보고 있으면 듣는 사람의 마음 상태뿐만 아니라, 말을 하는 사람의 거짓말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얼굴에는 많은 게 드러났다. 하지만, 아주 섬세했다. 두리번거리는 눈으로는 제대로 볼 수 없었다. 한곳만 봐야 했다. 한곳만 집중해서 들여다봐야 했다. 그래야 보였다. - (2권) 34

종인은 이해를 바라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해한다는 말은, 세상을 알지도 못하는 팔자 좋은 누군가가 억지로 만든 있으나 마나 한 말이었다.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 말이었다. 누가 누구를 어떻게, 어째서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인지. 종인은 그런 걸 믿지 않았다. 하지만 오해를 줄이려고 항상 노력했다. 이해를 위한 노력이 시간 낭비인 것처럼, 오해는 또 다른 시간 낭비였기 때문이다. - (2권) 53

사람들에게 타인의 일은 모두 이벤트였다. - (2권) 84

권력을 가진 자는 그걸 나눠줄 생각이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권력을 나눠 받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며 권력자의 말을 따른다. 돈을 가진 사람이 돈을 쓸 때는 본인에게 필요한 경우에 한해서다. 권력도 마찬가지다. 권력자들은 본인에게 뭔가 필요할 때, 남을 위해 권력을 쓴다. 나눠주는 게 아니라 이용할 뿐이다. - (2권) 87, 88

혼자 자란 사람은 옷을 나눠 입는 법을 몰랐다. 종인은 자산의 옷을 입은 우환이 자신이 모르는 어딘가를 다니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싫었다. – (2권) 111, 112

사람은 보통 진실을 이야기하다가 거짓말을 해야 할 경우, 사실로부터 출발한다. 거짓말의 모든 부분이 거짓은 아닌 거다. 거짓말들 사이에 ‘진실’은 잘 없겠지만, ‘사실’은 자주 있다. - (2권) 145

거짓말을 못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했다. 많은 진실을 말하고, 거짓말은 필요한 경우만, 그것도 사실을 섞어서 이야기함으로써 사람들이 그가 말하는 모두가 진실이라고 믿게 만드는, 거짓말에 능한 사람들이 그렇게 했다. 사실에 근거한 거짓말이기 때문에 당당할 수 있었다. 실제로 사실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진실돼 보일 수 있었다. - (2권) 145, 146

연애와 닮았다. 그 사람이 눈앞에 나타나기 전에는 그 사람을 상상하게 되고, 그 사람을 한 번이라도 보고 난 후에는 그 사람만 그리워하게 된다. 보고 싶어 못 견딘다. 그를 소유하기 전까지는 애가 끓는다. 병이 난다. 비로소 그를 소유하게 된 후에는, 그리움도 애정도 잦아들기 시작한다. 먼 곳으로 보내고 나면, 잊는다. - (2권) 170

남자의 얼굴은 지루하지 않았다. 생각하게 했다. 담배를 물지 않았지만 담배를 피우고 있는 얼굴이었다. 고생스럽게 키운 딸을 탐탁지 않은 혼처로 시집보내야 하는 얼굴 같았고, 유약한 아들을 군대에 보내야 하는 얼굴 같았고, 병든 아내를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보내야 하는 얼굴 같았다. 이미 정해진 것들 앞에서 더 나은 해답을 찾지 못해 망설이고 있는 얼굴이었고, 그래서 절망하고 있는 얼굴이었고, 그래서 세상으로부터 관심받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세상은 걱정으로 그늘진 얼굴에 관심이 없었다. - (2권) 189

스스로 행복해진다는 건 판타지다. 남의 행복을 가져와야 한다. - (2권) 193

우환은 한 번도 가족을 가져본 적이 없다. 가져보지 못한 것이어서 그렇게 바랐는지도 모른다. - (2권) 197

하지만, 기다림만으로 타인의 인생을 살 수는 없었다. 누구나 자신의 현재가 있었다. - (2권) 320

50년 만에 쓰나미가 다시 올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돌았다. 소문이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냥 살았다. 두렵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 (2권) 361

아버지와는 그다지 살갑게 지낸 것 같지는 않아요. 한데 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 상실감이 이토록 긴 이야기를 쓰게 할 줄 몰랐습니다. 몸이 고되어도 아침이 되면 출근을 해야 하고, 맘이 무거워도 마감 일이 다가오면 써야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도 지금을 살아야 합니다. 시간 여행이 언제 가능해질지 모르지요. 그전까지는 어찌되었건 우리는 계속 지금에, 이 답답한 현재에 고스란히 살아야 합니다. <곰탕>이라는 소설을 통해 그럴 수밖에 없는 제 스스로에게, 그리고 읽게 될 우리에게, 그래도 살아봐야겠지요, 라는 말을 전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 (2권) 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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