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한아뿐
정세랑 지음 / 난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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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세랑 작가의 소설을 꾸준히 탐독하고 있는 중이다. 이전 단편들은 각각의 스토리와 설정, 인물의 특성이 달라 독서 후 짧은 소감을 남기기가 어려웠지만, 이번 책은 그나마 장편이어서 조금은 쓸 말이 있다. '작가의 말'에서 이르기를 스물여섯에 쓴 소설을 서른여섯 살에 고쳐썼다고 하니, 10년을 넘나든 책인 셈이다. SF적 요소를 담고 있기 때문에 다소 촌스럽거나 모던하지 않은 부분은 고쳐썼을테지만, 소설을 통해 작가가 보여주고 싶었던 사랑에 대한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얼마전 읽은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과 유사한 면모도 보이는데, 두 작가 모두 SF를 무한한 기술의 상상으로만 접근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진보와 발전으로 점철된 미래에도 남아 있을 인간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한아의 성향, 즉 무엇에 대단히 적극적으로 도전하기보다는 변하지 않는 무엇가를 지키려 하는 삶, 인간도 결국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고 보다 생태적으로 살기 위한 노력, 크고 화려하기보다는 소소한 배려와 지속적인 관심에 따른 사랑의 추구 등이 그러하다. <옥상에서 만나요>에서 보여주었던 현실적인 사랑에 대한 회의와는 전혀 다른 관점이다.


느림과 생태적 삶에 대한 작가의 예찬은 외계의 눈을 통해 한아를 사랑받기에 충분한 존재로 부각시키지만, 유사한 성향이 있는 많은 사람이 있을텐데도 왜 유독 한아에게만 집중되었느냐는 의문이 명확히 해소되지는 않는다(뭐, 사랑에 빠진다는 게 애초에 설명할 수도, 설명한다고 이해할 수도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서도).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전혀 다른 대상에게 사랑을 받게 된 한아가 예전과 달라도 너무 달라 의심스러웠던 경민의 정체를 알게 되었음에도 큰 저항 없이 받아들이게 되는 대목 또한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지만, 내가 사랑하던 사람이 똑같은 외모에 더 나은 성품이 되어 돌아왔다면 그를 거부하기도 쉽지는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대체된 사랑도 사랑인걸까? 외면은 같지면 본질이 달라진 사람을 예전처럼 사랑할 수 있을까? 그러면 나는 '그'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 맞나? 내가 사랑을 느끼면 되는 것이지 상대의 본질에 대한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걸까? 많은 질문이 남는다. 더욱이 사랑이라는 감정은 활활 타오른 이후에 겨우겨우 유지되거나 서서히 감퇴되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는데, 작가는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에 따른 인스턴트적 감정의 소비가 아니라 우주적 시각과 시간 속에서도 사랑을 꾸준히 키워나가며 유지할 수도 있다는 것을 하나와 경민을 통해 보여주려 하는 것 같다. 그것도 SF적 요소를 가미한 소설을 통해서 말이다. 


어쨌거나 간만에 사랑스러운 소설을 읽었다.

그러니까 이 모든 일은 결코 한아의 외모 때문에 벌어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왜 너 자신에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느냐고 묻는다. 끝내는 아무것도 남지 않고,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건전한 절대 명제, ‘누구나 하나의 세계를 이룰 수 있다’는 역사상 가장 오래 되풀이된 거짓말 중 하나일 거라고 주영은 생각했다. 세계를 만들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탁월하고 독창적인 사람들이 만든 세계에 기생할 수밖에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똑같이 기여하는 것이 아니다. 거인이 휘저어 만든 큰 흐름에 멍한 얼굴로 휩쓸리다가 길지 않은 수명을 다 보내는 게 대개의 인생이란 걸 주영은 어째선지 아주 어린 나이에 깨달았다. - 36, 37

"바보 같다고 생각 안 해. 한 번도 너 바보 같다고 생각한 적 없어. 넌 같은 자리에 있는 걸 지키고 싶어하는 거잖아. 사람들이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들을." - 81

"나는 안 될까. 처음부터 자기소개를 제대로 했으면 좋았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더 나은 방법일 것 같았어. 그래도 나는 안 될까. 너를 직접 만나려고 2만 광년을 왔어. 내 별과 모두와 모든 것과 자유 여행권을 버리고. 그걸 너에게 이해해달라거나 보상해달라고 요구하는 건 아냐. 그냥 고려해달라는 거야. 너한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그냥 내 바람을 말하는 거야. 필요한 만큼 생각해봐도 좋아. 기다릴게. 사실 지금 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난 괜찮은 것 같아. 우주가 아무리 넓어도 직접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야기들이 있으니까. 이거면 됐어." - 95

땅 위의 작은 생물과 물속의 커다란 생물까지 너와 이어지지 않은 개체가 없다는 걸, 넌 우주를 모르고 지구 위에서도 아주 좁은 곳에 머물고 있었는데도 이해하고 있었어. 나는 너의 그 선험적 이해를 이해할 수 없었어. 인간이 인간과 인간 아닌 모든 것들을 끊임없이 죽이고 또 죽이는 이 끔찍한 행성에서. 어떻게 전체의 특성을 닮지 않는 걸까. 너는 우주를 전혀 모르는데, 어떻게 우주를 넘어서는 걸까. 너는 너무 멀리 있는데, 나는 왜 널 가깝게 느낄까. - 102

"백날을 생각해봤자 답은 똑같을걸요. 어떤 특별한 사람은 행성 하나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질 때가 있어요. 그걸 이해하는 사람이 있고 못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저한텐 엄청 분명한 문제에요." - 118

"네가 내 여행이잖아. 잊지 마." - 137

그렇지만 뭔가 달랐다. 원래의 경민을 보냈을 때의 그런 몸이 간질간질하고 신경이 쏠리고 불안해지는 보고 싶음이 아니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심해를 헤매고 있어도 이어져 있는 보고 싶음이었다. - 151

"너의 사랑할 수 있는 능력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해 사랑해준 거 알아. 고맙게 생각해." - 205

"돌아올 거라고 믿었는데 그걸 믿는 날 믿을 수가 없었어. 믿으면서도 전혀 믿을 수가 없었어." -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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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들 - 장강명 연작소설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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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는 살인이다.”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도장 공장 옥상에 걸렸다. 해소는 살인이었으므로 그들은 ‘죽은 자’들이었고, 해고자 명단에 오르지 않은 사람은 ‘산 자’가 되었다. - 90, 91


이 대목이 이 연작소설의 전체적인 흐름을 관통하는 내용이다. 이 책은 '자르기, 싸우기, 버티기'라는 3부의 목차로 각각 3-4편의 단편을 모아 놓은 연작소설이다. 사람을 자르는 것과 그에 맞서서 버티고 싸우는 것이 엄밀하게 구분되지는 않기 때문에 자르기라는 목차에 구성이 되어 있더라도 싸우기나 버티기에 가까운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공장 밖에서'라는 제목의 단편은(쌍용자동차에서의 분쟁을 각색한 것 같다) '자르기'에 속해 있지만 그 안에는 잘리기를 거부하고 버티고, 버티는 이들을 몰아내기 위해 싸우는 이들이 공존한다. 작가가 생각하기에 가장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 노동 분쟁 사례를 구성한 것일 지도 모르겠다.


제목에 맞춰보자면, 이 단편들은 산 자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반대로 죽은 자들은 노동현장에서 자기의 위치를 끝까지 확보하지 못한 채 밀려나가는 이들이 될 것이다. 불성실한 알바생을 잘라야 하는, 대기발령 중인 사람들 틈에서 혼자라도 살아 남아야 하는, 공장을 돌려 임금을 받기 위해서 공장을 점거하고 버티고 있는 이들을 몰아내야 하는, 프렌차이즈 빵집의 출혈 경쟁 속에서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버텨야 하는, 그다지 높이 평가받지 못하는 학교 졸업자들 중에서 유독 홀로 대기업에 입사해야 하는...


다 읽고 나니 소설이라기보다는 르포같다는 느낌이 책을 펴서 읽기 시작할 때보다 더 강하게 들었다. 이 책은 소설인가, 르포인가, 아니면, 한국의 노동현실이야말로 이처럼 소설같은 현실이라는 것인가? 



사징이 혜미에게 처음 관심을 보인 것은 태국 바이어들을 접대한 회식 때였다.

"자존심이 밥 먹여 주는 것도 아니잖아."
"자존심이 밥 먹여 주는 거 아니지. 그런데 그때는 사람이 밥만 먹고 사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 - 63

연아는 전화를 끊고 누구에게 보내는 건지 모를 반성문을 썼다. 그 순간 가장 도움이 됐던 것은 중훈이 전에 술에 취해 했던 말이었다. 내가 굴욕이라고 생각하면 굴욕이지만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게 굴욕이라고. - 74, 75

진짜 구호도 있었다.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도장 공장 옥상에 걸렸다. 해소는 살인이었으므로 그들은 ‘죽은 자’들이었고, 해고자 명단에 오르지 않은 사람은 ‘산 자’가 되었다. - 90, 91

장사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주영이 이해한 것은 조금 더 나중이었다. 장사는, 돈을 쓰려는 사람을 섬기는 일이었다. 그러려면 그들의 마음을 이해해야 했다. - 135

주영은 동굴에서 사는 물고기들을 상상했다. 빛이 없고 먹을 것이 모자란 좁은 공간에 오래 살면서 눈이 퇴화하고 피부도 투명해진 작고 불쾌한 생물들. 불필요한 기관은 모두 버리고 오직 생존만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존재들. 주영은 하중동 사거리와 구수동 사거리가 그런 동굴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그 맑고 깜깜한 물속에 갇혀 있었다. - 137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될 수 없을 것 같은 열패감과 무력감.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듯한 소외감과 고립감. 자신이 그런 감정들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돌이켜 보자 금방 답이 나왔다. 거는 대외 활동을 다시 해야 했다. 그를 반겨 주고 인정해 주는 곳에 가야 했다. 설사 그들이 자신을 환영하는 이유가 값싼 노동력 때문이라 해도. - 263

악을 쓴다고 다리에 힘이 솟거나, 갈증이 해소되거나, 더위가 가시지는 않는다. 그것은 각성제도 스테로이드도 아니고, 인센티브도 페널티도 아니다. 육체적으로는 더 힘이 들고 더 고통스러워질 따름이다. 그럼에도 신은 대원들이 악을 쓰는 이유를 이해했다. (...)
몇 시간 동안 거울로 제 얼굴을 보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과 대화도 없이 땡볕과 아스팔트 열기 속에서 고행을 하다 보면 자기 자신이 존재한다는 감각이 희미해진다. 그럴 때에는 악을 써서 제 목소리를 귀로 들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현실감을 되찾아야 한다. 그렇게 악을 쓰는 건 일종의 대화이기도 했다. 나 죽을 것 같지만 조금 더 버틸게, 그러니까 너도 버텨 하는. - 264, 265

신은 자신이 어떤 역할극을 수행하는 중이고, 그 자리에서 너무 순도 높은 진실은 피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 267

경제학에서는 인간을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내리는 주체, 이콘이라고 가정한다. 경제학 밖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비판한다. 진실은 언제나 꼬여 있다. 인간은 이콘이 아니다. 하지만 완전히 아닌 것도 아니다. 소설을 쓸 때마다 내 안의 이콘이 그렇게 공들일 필요 있느냐며 딴죽을 걸었다. - 311

이미 세계의 질서가 정해졌는데 거기에 맞서는 기획이 얼마나 가망이 있을까. 질서는 시스템이고 기획은 이벤트다. 이벤트는 시스템을 결코 이길 수 없다. 성 평등 운동, 소수자 인권 운동, 환경 운동, 동물권 운동, 그런 기획들은 정말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거대한 질서가 새로 생길 때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 변화를 잘 타고 미끄러지는 것 정도가 아닐까? - 323

법규가 많아지면 도둑이 늘어날 뿐입니다.(法令滋彰, 盜賊多有) - 329

많은 새들이 날 수 있는 힘이 있지만, 실제로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때는 한정되어 있다. 놓칠 수도 있었던 잠재력을 깨닫고 목적에 맞게 쓴다는 것은 무척 즐거운 일 아닐까?
행정실장이 된 옛 교무 교감이나, 유체 이탈 화법을 쓴 학생 교감을 보며 내가 왜 이마를 찌푸렸는지, 이제는 설명할 수 있다.
그것은 사람의 잠재력과 관련이 있다. 사람은 대부분 옳고 그름을 분간하고, 그른 것을 옳게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 능력을 실제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행정실장과 학생 교감은 날지 않는 새들 같았다. 마지막으로 날아 본 게 언제인지도 모를 비둘기들이었다. - 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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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지니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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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정유정 작가의 작품 스타일을 기대하며 읽는다면 실망할 것이다. '이 작가도 이런 소설을 쓰네?'라는 다른 시선을 기꺼이 즐길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사실주의 작가의 판타지는 새로운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신작'을 기다려왔던 내 기대와는 많이 다른 방향이었다. 


프롤로그와 교통사고라는 전개까지는 흡입력이 있게 진행되었지만, 과하다 싶은 유인원과 밀렵에 대한 설명, 유인원의 시선으로 바라보게되는 지난 일에 대한 몽환적 묘사는 "생에 가장 치열했던 사흘에 대한 이야기"라는 표현이 무색하게 이야기로의 몰입을 오히려 방해했다. 


인간과 유인원의 공감, 이어서 벌어지는 다른 두 종의 사이에서의 허물어지는 경계, 그 둘이 다시 분리되는 과정에서 일상에서 소외되고 상처입은 이들이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서로를 치유하는 과정은 나무랄 데가 없다. 그러나 진이와 민주의 관점을 교차하는 편집, 빠른 전개를 방해하는 군더더기 설명과 묘사들은 뭔가 많이 아쉽다. 

막다른 곳에 불시착하는 때가 있다.

시험에 떨어졌다는 건 결과일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근거는 아니었다. 빈둥대는 걸로 보여도 묵묵히 내 할 일을 하고 있었다. ‘뭘 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 할 일의 대부분을 차지하긴 했지만.
고민의 핵심은 하고 싶은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되고 싶은 것도 없었다. 하다못해 넋 나갈 만큼 좋아하는 것조차 없었다. 대신 어떻게 해야 아버지가 좋아할지에 대해선 잘 알고 있었다. - 37

인생에서 최악의 사건은 죽음이 아니었다. 살아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나는 지쳤고, 피곤했다. 삶에 대한 미련도 없었다. - 48

화구가 닫힌 후, 나는 아주 단순한 진실을 깨달았다. 죽은 다음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진실. 무슨 짓을 하든, 얼마나 후회를 하든, 해병대 노인의 부름을 듣던 순간으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뭔가를 하려면 그때 했어야 했다. 뭔가를 할 수 있었던 그때 그 순간에. - 91

삶은 살아있는 자의 것이며, 살아 있는 동안 전력으로 살아야 한다고. 삶아 있는 한, 삶을 선택하는 것이 옳다고 – 293

죽음은 살아 있는 사람의 문제라고 했던 엘리아스의 말은 옳다. 잠에서 깨어난 아침, 나를 맞는 것은 언제나 정적이었다. 밥 먹고, 일하고, 숨 쉬는 매 순간순간 정적의 급류가 나를 휘감고 흔들었다. 어머니와 살던 집에서 기숙사로 거처를 옮겨봤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정적을 잊고 사람을 소리로 채웠다. 저 앞에 놓인 모퉁이를 향해서 온 힘을 다해 달려가는 내 발소리로. 잠시라도 발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불안하고 초조했다. 행여 틈을 비집고 정적이 끼어들까봐 두려왔다. 그 결과, 멈춰 사는 법을 잊어버렸다. - 296

누군가 그 숨소리에 이름을 붙이라고 한다면 나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두려움’이라 부르겠다. 그녀는 나와 함께 있었으나 완벽하게 혼자였다. - 326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토록 잔인한 일인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 328

나는 운명도 어느 지점에선 공평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살아남고자 안간힘을 다해온 자에게 비수를 꽂아서는 안 된다. 그런데 비수를 꽂고도 모자라 숨통마저 끊으려 들고 있었다. 다른 꼴은 다 봐도 너 사는 꼴은 못봐주겠다는 것처럼. - 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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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 권여선 장편소설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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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한 켠에 노란 빛을 발하고 있는 표지가 눈에 띄었다. 그런데 막상 가까이에서 보니 멀리서 볼 때와는 달리, 레몬이 선명하게 찍혀있는 표지가 아니었다. 상당히 흐릿하게 다소 몽환적인 느낌의 레몬이 검은색과 대비되어 그 빛을 발하고 있었다. 소설에서 레몬이라는 노란색은 더이상 애도의 색이 아닌 복수의 색임을 다언을 통해 밝히고 있다. 하지만 그가 의도했던 복수란 결국 가까이에서 볼 수록 희미해져 알 수 없는 무엇이었는지도 모른다. 


언니(혜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쫓기 위한 과정은, 그 죽음을 둘러싼 다언, 태림, 상희 등 각자의 상념으로 재구성된다. 그러나 이런 상념들이 죽음 이면의 진실에 대한 단초는 되지만, 진실 그 자체는 되지 않는다. 결국 책을 다 읽어서도 혜언이 누구에 의해 왜 살해되었는지에 대한 실체적 진실은 파악되지 않는다. 자동차 옆에서 나란히 대기하고 있던 한만우의 스쿠터, 한만우 뒤에 앉아 차 안을 살펴보던 윤태림의 속삭임. 그것은 이미 끝나버린 혜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악마의 교묘한 속삭임이었을까.


결과의 원인을 파악하여 그 원인을 야기한 자를 징벌하는 스토리에서 느낄 수 있는 쾌감 같은 것은 없다. 오히려 암시가 아닌 분명한 확인이었으면 하고 바라던 기대를 얻을 수 없어 답답한 마음이 더 컸다. 한 사람의 생은 마감되었고, 그의 죽음으로 인하여 주변인들의 삶은 차례차례 파괴되기 시작한다. 범인으로 지목된 자는 범인이 아닌 것 같고, 범인일 수도 있을 것 같은 이들은 다른 방식의 고통을 받으며 피폐한 삶을 살아간다. 결국 진실은 알 수 없는 추측으로 남게되고, 인과응보의 순리가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모를 현실만이 계속 된다.

나는 오래전 어느 경찰서 조사실에서 있었던 장면을 상상한다.

상상도 실제만큼이나 고통스럽다. 아니, 실제보다 더 고통스럽기도 하다. 그것에는 한계도 기한도 없다. - 9, 10

그의 삶의 갈피갈피에도 의미 같은 것이 있었을까. 아니, 없었겠지. 없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삶에도 특별한 의미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한다. 그의 삶에도, 언니의 삶에도, 내 삶에도. 아무리 찾으려 해도, 지어내려 해도 없는 건 없는 거라고. 무턱대고 시작되었다 무턱대고 끝나는 게 삶이라고. - 12

하지만, 내가 이 삶을 원한 적은 없지만 그러나, 선택한 적도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 35

나는 점점 어리둥절해졌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내가 언니를 별로 사랑하지 않았던 게 아닌가 하는 의혹에 빠졌다. 그건 무척 슬프고 괴로운 의혹이었다.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라 사랑하지 않았던 게 아닌가 하는 것. 과거형이라 이제는 어떻게 해볼 수도 없는 것. 그대로 결정돼버린 것. - 71, 72

나는 우리가 현실로 돌아오지 못했음을 알았다. 비틀린 경로로 우회하지 않고는 다시는 현실로 돌아올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자기 자신을 놓칠까봐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머리를 흔들거나 눈을 깜빡이는 불안증 환자들처럼 끊임없이 무언가를 행하고 취소하고 반복하는 경련의 삶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 88

어떤 삶은 이유 없이 가혹한데, 그 속에서 우리는 가련한 벌레처럼 가혹한 줄도 모르고 살아간다. - 145

끔직한 무엇을 멈출 수 없다는 것, 그게 한 인간의 삶에서 어떤 무게일지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 190

그들은 죽었고, 나는 살아 있다. 살아 있음,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면 그밖의 것은 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살아 있고 하루하루 살아간다. 엄마와 어린 혜은, 아무도 모를 죄책감과 기나긴 고독이 내 곁에 있다. -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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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 스트라이크
구병모 지음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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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의 판타지를 좋아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On Your Mark>나 제임스 카메론의 <Avatar> 같은 영화나 소설에서 한 번쯤 읽어 봤을 법한 설정이지만, 각자가 속한 사회에서 주류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이 자신이 속한 경계를 넘어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피할 수 없는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는 볼 때마다 설레기도 하지만 안타깝기도 하다. 이런 설정이 반복되지만 쉽게 질리지 않는 까닭은, 그만큼 우리의 삶이 자신이 속한 집단과 경계에 얽매여 있어서 그것으로부터 쉽게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할테다. 소속과 경계를 넘어서면 우리는 결국 아무 것도 아닌 하나의 존재에 지나지 않는 것을...

열사의 대지라도 한밤중에는 기온이 5도까지 떨어진다.

- 그건 오래전의 이야기고 우리는 우리지. 신화는 우리를 있게 했지만 우리가 신화를 따라갈 수는 없어. 그로부터 몇천 년이나 세월이 흘렀는지 모르는데, 우리와는 모습도 능력도 달랐을 초원조의 행적을 그대로 답습할 필요도 없고. - 17

익인들은 나와 미래의 발걸음을 함께해 달라는 의미로, 청혼 상대에게 자신의 가죽신을 벗어 내민다. 대개는 꼭 맞지 않게 마련인 상대방의 신을 신고, 훗날 고난이 닥쳤을 때 배우자의 입장에 서서 한 번 더 고민하고 이겨 내겠다는 다짐을 부탁하는 과정이다. 신체적 특성상 날개를 꺼내서 깃털이라도 한 장 뽑아 주는 게 더 어울리겠지만, 하늘을 자유로이 날되 살아가기 위해서는 언제고 땅에 발을 디뎌야 해서다. 땅에 두 발을 내려놓고 걷는다는 것은 날 줄 아는 인간들에게도 각별한 의미다. - 72, 73

나는 그 사람이 도시에서 무엇을 했는지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 같은 건 알고 싶지도 않았고 묻지도 않았어. 우리에게 귀한 것은 이름뿐이었으니까. 서로를 부르고 대답할 수 있는 이름. 부르는 순간 세상에 단 하나만이 존재하는 것 같은, 평화와 친밀감과 흥분을 동시에 주는 이름. 단지 소리 내어 부르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체취를 상기할 수 있는, 동시에 서로의 껍질 안쪽에 자리한 영혼이 돌출되고 마는, 그런 이름 말이야. - 107

세상의 모든 엄마가 자식을 낳아 놓은 것에 대해 일일이 죄책감을 느끼거나 사죄하면서 사는 건 부당하고도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하거든. 사람은 누구나 그날그날의 감정에 충실할 권리가 있고, 그 결과로 인한 짐을 제 것이 아님에도 나눠서 져야 할 때가 있지. - 113

사람은 왜 자기와 다른 것이나 알지 못하는 것이나 알지 못하기에 비로소 아름다운 것의 비밀을 캐내려는 본능을 타고난 것인지. - 197

동정이어서 안 될 건 또 뭐란 말인가. 동정 역시 살아 있는 사람이 누군가에게 혹은 무언가에 가질 수 있는 무수한 현실적인 감정 가운데 하나일 뿐인데. 동정이 아니라면, 전폭적으로 그 삶을 끌어안고 그 존재를 지지하는, 진실하며 불순율 영에 육박하는 무공해의 애정이라는 게 혹시 존재한다면, 그것이 평생 변질되지 않고 보존되기라도 하나. 그 감정에 영원히 끝이 오지 않기ㄷ라도 하나. 어차피 이 감정을 무슨 이름으로 부르든 간에,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최초는 변색 내지 탈색될 운명이라면. - 326, 327

그 어떤 새도 영원히 허공에서만 살 수 없고 언젠가 땅에 내려앉아서 두 발을 더뎌야 한다면, 네가 그의 유일한 영토이니까. - 340

그가 내려앉을 유일한 땅 한 뼘이 되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나는 가만히 앉아서 누군가의 휴식처로 남을 마음이 없어. 그래서 기다리기보다는 내가 땅을 떠나기로 한 거야.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알고 그럼에도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 유한한 인간이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론이라고 생각하니까. - 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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