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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킬러가 노년에 이르게 되면 평범한 삶을 그리워 하게 되는 걸까. 아니면 조각에게만 해당되는 것들일까. 나이 어린 투우와 조각 사이의 간극은 세월만큼이나 멀어 보이나 투우가 늙었을 때 조각과 같은 모습일 거라고는 상상이 되지 않으니 역시 킬러가 늙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참으로 생경스럽다. 어린 시절 모로 누워서 잠을 청해야 했던 좁디 좁았던 그 집에서 형제들과 부대끼며 어린 시절 지냈다면 그녀는 지금처럼 외롭지 않았을까.
조각에게는 늘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어린 시절 함께 살았던 가족들이 아닌 자신의 가족이 되어 주었던 '류', 그를 바라보면 그와 가족을 이루어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은 꿈을 꾸게 된다. 인연을 맺으면 그것이 파괴되고 죽어가는 것을 봐야만 하는 그녀의 삶에 처음부터 인연이라는 단어는 없었다는 듯 그녀의 곁에 맴도는 것은 오로지 죽음, 죽음 뿐이었다. 자신이 낳은 생명조차 지켜줄 수 없었기에 멀리 떠나보내야만 했던 그녀에게 강 박사의 가족은 유일하게 안도감을 느끼게 하는 일상이었다. 그래서 이것마저 파괴하려 드는 투우는 그녀에게 다름아닌 적, 처리해야만 하는 적일 뿐이다.
한동안 투우의 생각을 알지 못해 머릿속이 복잡했다. 황혼에 이르러 가는 조각, 그녀의 삶에 대해서는 그녀가 들려준 많은 이야기들로 인해 그녀가 바라보기만 해도 좋았을 강 박사의 가족에 대한 애정을 이해할 수 있었으나 투우는 나에게 많은 것들을 보여주지도, 들려주지도 않았기에 그의 기억속에서 희미해지지 않은 모든 것들에 대해 슬픔만을 느꼈을 뿐이다. 그동안의 투우의 삶을 알고자 하면 어쩔 것인가. 그가 조각의 곁에 이르기 위해, 이곳에 닿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을 죽였을 것인데 감정조차 뱉어내지 않고 무심히 살아왔을 그 수많은 세월을 알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투우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어 준 것이 있다면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사정을 알게 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살아왔을 것이며 또 한 가지가 더 바란 것이 있다면 단 며칠이지만 자신의 곁에 머물러 주었던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세월 앞에 삭지 않는 것이 없을 것인데 기억마저 그럴 것인데, 투우에겐 모든 것이 비껴가고 오로지 조각의 마음 한 자리에, 그녀의 기억 한 자리에 얹혀 있고 싶은 마음 하나만을 움켜 쥐고 있었을 그의 마음이 안쓰럽다.
투우와 조각, 모두 같은 곳을 바라볼 수는 없었을까. 잠깐의 달콤함에 빠져드는 조각의 일상조차 파괴해 버리고 싶은 투우에게 조각의 행복, 평온함, 안도감은 철저히 파괴해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만들기에 두 사람은 같은 곳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조각의 시선은 과거에 머무르고 투우는 늘 조각의 뒤를 따랐으나 두 사람은 이렇듯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음에도 그 끝은 다를 수 밖에 없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