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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권 ㅣ 제복경관 카와쿠보 시리즈 2
사사키 조 지음, 이기웅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폭설권" 책 제목만 놓고 보면 도저히 제복경관 카와쿠보 시리즈라고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조금 촌스럽다고 할 수도 있는 제목이지만 이것 보다 더 잘 만들기도 힘들었으리라. 책 제목인 '폭설권'은 책 속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나는 사계절이 있는 나라에서 태어났지만 겨울이라도 그리 큰 눈이 내리지 않는 지역에서 살고 있어 폭설권을 눈 앞에 생생하게 그려낼 순 없었지만 책을 읽는 동안 나의 눈 앞에는 온통 하얀 세상만 보였다.
제복경관 카와쿠보는 시모베츠의 주재경관으로 수사에 참여할 수가 없다. 이것이 작가 사사키 조에게는 최대 난점이었을 것이다. 작가가 앞서 말했듯이 작은 마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도 한정되어 있을 뿐더러 거기다 수사까지 할 수 없다니 이는 처음부터 내용이 단조로울 수 밖에 없음을 전제로 하고 시작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폭설권'을 보면 이런 장애조차 아무렇지 않게 극복해 버린다. 폭력단 조장의 집을 습격한 살인범이 마을 펜션 그린루프에 있는 사람들을 인질로 잡고 있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카와쿠보가 유일하다. 그런데 눈이 그칠 때까지 움직일 수 없다는 조건은 카와쿠보, 살인범에게도 동일하다. 카와쿠보는 이 살인범을 어떻게 처리할까. 주재경관으로 그저 도움만 되어 줄뿐 카부토야에게 공을 빼앗기는 것은 아닐까 불안하다. 사실 사건이 막판으로 치달을 때까지도 카와쿠보의 활약은 미비해서 도대체 이 책이 카와쿠보 시리즈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에 이르러서야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었으니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아케미와 스가와라, 니시다, 야마구치와 미유키 이들은 그린루프에 발이 묶여 다른 삶을 살게 된 사람들이다. 해피엔딩이라고는 말할 순 없지만 적어도 불행한 사태는 막았으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스가와라에게는 원통한 일이겠지만 다 자업자득이다. 뭐 그렇다고 아케미에게는 죄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스가와라에 의해 희생될 다른 여자들을 위해서 다행이라 해두자. 이미 스가와라는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분명 한 여자의 죽음에 관여했으니까. 이렇듯 '폭설권'에서는 여러 개의 사건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카부토야는 물론 카와쿠보도 이 책을 읽어보지 않는 다음에야 꿰뚫어 볼 수 없을 정도다. 그린루프에 모여든 사람들에게는 이곳에 오게된 저마다의 사정과 이유가 있다. 물론 이는 분명 작가의 의도로 설정된 것이겠지만. 의붓 아버지의 폭력에서 벗어나 가출한 미유키가 야마구치와 만나게 된 것은 그나마 이 불행한 사태에서 얻을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일 것이다. 이런 사태가 아니었다면 만나질 수 없는 사람들이었기에 운명이라 말해도 되지 않을까. 위험한 상황이긴 하지만 미유키를 지켜주기 위해 노력하는 야마구치의 마음은 독자들의 마음까지 안도하게 만든다.
'폭설권'은 제각각의 이유를 가지고 시모베츠보다 더 멀리 떠나려 하는 이들의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폭설이 경찰들의 움직임까지도 방해해 이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어떤 식으로 결말을 맺게 될지 전혀 예측할 수가 없어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을 수가 없게 한다. 하지만 하늘은 자연 앞에서 무기력해질 수 밖에 없는 약해 빠진 우리들에게 동정이라도 하는 것인지 막다른 길에 다다른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선사한다. 끔찍한 살인 사건이 일어났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은 지금 마음이 편안해지는 이유는 막다른 길에 몰린 사람들에게 새로운 문이 열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폭설이 아니었다면 어떤식으로든 아주 불행해졌을 테니까. 카와쿠보 시리즈는 이것으로 끝인가. 세 번째 작품을 기대해도 될 것 같은데 카와쿠보가 직접 수사에 참여해서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을 기대하고 싶지만 작가는 제복경관인 카와쿠보의 모습을 버릴 생각이 없나 보다. 어쨌든 이 시리즈가 계속 나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