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원미동 사람들 세트 - 전2권
변기현 지음, 양귀자 원작 / 북스토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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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미동 사람들'이 만화로 탄생하여 선명한 색채를 지니고 밝은 햇빛에 드러낸 모습은 그야말로 처참하다. 아니 너무나 슬프고 씁쓸하여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할까. 나의 어린 시절이기도 한 우리들의 곤궁했던 시절 1980년대는 누구에게나 힘겨웠던 시절이었다. 써니전자, 행복사진관, 강남부동산 등의 가게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광경은 정겹기 보다는 생활의 곤궁함을 보여주는 것 같아 한숨이 절로 나온다.
 
'원미동 사람들'은 은혜아빠가 부천에 있는 원미동에 있는 무궁화연립으로 이사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내 집 마련이 희망과 같은 의미일텐데 집을 사서 이사를 가는 은혜네 가족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덕분에 나도 그의 가족들을 따라나선 길이 즐겁지가 않다. 원미동과의 첫 만남이 이러해서야. 동네 사람들과 서로 인사만 주고 받는 사이었다면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랬다면 원미동의 불 켜진 집들을 바라보며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하며 궁금해하기도 했을텐데 이 책을 읽는 독자지만 원미동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이렇게 사람들의 속마음까지 모두 알게 되니 그들을 보는 것이 그리 편하지도, 즐겁지도 않다. 9년 가까이 밖에 살지 않았지만 어른들보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더 많이 아는 경옥의 눈을 통해 본 원미동도 몽달 씨의 슬픔에 젖은 눈빛 만큼이나 아프다. 
 
우리는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거창한 생각들을 하며 살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시절이 지나고 돌이켜 보면 뜻하지 않게 나는 역사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학생운동을 하다가 학교에서 퇴학당한 몽달 씨는 항상 시를 읊고 다니고 바보 같기만 해서 형제슈퍼의 김 반장의 심부름을 도맡아 한다. 그의 눈빛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세상과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몽달 씨의 마음을 알고 있는 경옥의 눈에는 그가 너무 멋져 보인다. 바람결에 흩날리는 몽달 씨의 머리카락을 보고 있으면 나도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이니 나이에 비해 조숙한 경옥의 눈에도 멋져 보이리라.
 
하늘을 날고 싶어하는 슈퍼맨 진만이, 진만이는 알까. 아빠도 하늘을 날고 싶어한다는 것을. 거지꼴을 하고 다니는 아들때문에 울음을 터뜨리고야 만 아내를 생각하면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하지만 진만 아빠는 '전통문화연구회'의 외판원으로 사람들에게 물건을 팔아야 돈을 받을 수 있는데도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진만이가 가만히만 있으면 좋을텐데 병원비는 커녕 먹고 살기도 힘들구만 이녀석은 하늘을 날아보려고 높은 곳에서 떨어져 팔이며 다리가 부러진다. 정말, 먹고 사는 것이 쉽지 않다.
 
경옥의 언니 선옥에게 관심을 가지는 형제슈퍼의 김 반장은 같은 물건으로 장사를 하는 가게의 문을 닫게 만든다. 살아보겠다고 차린 마지막 가게였는데 그 가게의 주인에게 주먹질을 하는 김 반장이 대가족을 부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가슴만 답답해진다. 위험에 처함 몽달 씨를 구해주지 않는 비겁함에는 고개를 돌려 버리게 되지만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비겁해지는 그를 보며 단 한 마디도 할 수가 없다. 
 
연작단편으로 이루어진 '원미동 사람들'은 특정한 인물이 주인공을 맡고 있지 않다. 누구든 주인공이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으며 그들은 지금도 살아내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 생이 다하는 날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고 있을 것이다. 그 안에는 불행, 아픔, 슬픔도 있을 것이나 분명 희망과 행복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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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요 엄마
김주영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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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세 시에 아우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예상했던 전화였지만 경원은 시종일관 담담했다. 아우와 대화를 나누는 경원은 엄마의 죽음에 무심해 보였다. 속울음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아우와 이리도 담담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인가. 내 안에서 끓어오르는 감정들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타인의 죽음일 뿐이다. 이 세상의 모든 '엄마'가 그리움의 대상이라고는 하나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그녀가 죽었다고 해서 나의 감정까지 평정을 잃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아우에게 소식을 들은 후 거실에서 대형 LCD 스크린에서 터져나오는 섹스 장면들을 보는 그에게 불신의 감정을 품는다. 맞은편 아파트에 살고 있는 여자가 봤을까봐 걱정하는 그를 보며 나이든 노모를 돌보는 일은 아우에게 맡겨두고 자기 편한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라 단정짓고 만다. 그때서야 내 안에 소용돌이치던 감정들이 하나둘 가라앉기 시작한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어떤 이야기든 나도 시종일관 무심하게 그를 바라보기로 한다.
 
엄마의 얼굴에 남아 있는 화장의 흔적, 외삼촌의 자전거, 장춘옥의 짜장면, 경원은 그 어디에서 엄마와 둘 뿐이던 세상이 무너질 것이라 본 것일까. 엄마와 외삼촌과 함께 먹은 짜장면은 늘 배고픔에 허덕이는 경원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을텐데, 이것을 뱉어내게 할 정도로 그를 무섭게 만든 사건이 무엇일까. 누구든 짐작 가능한 일일테지만 경원 나이의 어린 소년이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상황을 감지해 낸다는 것이 놀랍다. 엄마에게 남편이 생긴다는 것은 경원에게 울타리를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것이었지만 경원에게 새아버지가 생긴다는 것은 엄마를 빼앗긴다는 위기감 뿐이었다.
 
학교에서 공부를 하다가도 엄마가 사라질까 두려워 권씨 집으로 달려 갔던 소년은 이제 어른이 되고 머리에 흰머리가 늘어가는 나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엄마의 손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고향을 떠나 살아가면서도 엄마의 그림자를 떼어내지 못한 채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놓여나지 못한다. 아우에게 듣고서야 엄마의 삶을 이해할 수 있었던 못난 아들은 핸드백에 넣어두고 바르지 않은 엄마의 립스틱을 보면서 무너져 내린다.  
 
경원과 아우가 기억하는 엄마의 모습은 두 사람의 기억이 합쳐져서야 온전한 엄마의 모습이 된다. 두 아들이 기억하는 엄마의 모습은 모든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묵묵히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억척스러운 여인의 모습이다. 운명이 무엇일까 철학적인 고민 따위는 하지도 않았을 터이지만 분명 그녀는 역사의 소용돌이속에서도 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자신이 살아가야 할, 살아낼 세월을 묵묵히 견뎌낸다. 엄마의 삶은, 그저 그때 그 시절이 그랬다는 말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경원의 외할아버지의 이야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그 사연 많은 세월까지 풀어내자면 긴긴 밤이 부족할 지경이다. 
 
엄마의 몸짓, 손짓하나 그 의미를 알지 못했던 아들이 엄마가 죽고 나서야 그 뜻을 알고 속울음으로 써 내려간 글인 '잘가요 엄마'는 임종을 지키지 못했던 못난 자식의 엄마를 향한 그리움이 담겨 있다. 한 번도 아우를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그가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야 가족의 의미를 알아간다. 새아버지가 생기고 아우가 태어난 후 엄마를 끊임없이 그리워했던 소년은 어른이 되어서도 그때의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애숙이 누나를 만난 후에야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는다.
 
언제부터였을까. 경원의 얼굴을 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책을 잡은 손가락에 시선을 두자니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볼 수 없고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오롯이 바라보고 있으려니 그의 첫 인상을 나쁘게 봐 버렸던 내가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다. 엄마와 그,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세월이 있었고 그의 아우조차 발을 디밀지 못했던 그들만의 이야기가 있었다. 감히 내가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는 신성한 곳이었다. 그곳에는 자식을 향한 엄마의 사랑만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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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표적 우먼스 머더 클럽
제임스 패터슨 지음, 이영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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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프레드 브링클리의 여섯번째 총알은 클레어 워시번의 아들 윌리에게로 향했다. 델 노르트 호에서 벌어진 무차별 난사사건의 범인인 프레드 브링클리를 잡지 않으면 총을 가진 그에게 그 누구든 표적이 될 수 있다. 제임스 패터슨이 '여섯번째 표적'을 시작하면서 델 노르트 호 사건의 범인의 이름을 노출시키고 시작한데는 이유가 있다. 프레드 브링클리가 과거 정신과에서 치료를 받은 병력이 있어 그가 이 사건에서 분열정동장애로 무죄를 선고받을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에 범인의 정체를 노출시켜 법정싸움으로 독자들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프레드 브링클리가 유죄판결을 받을 수 있을까. 분열정동장애를 이유로 모든 사건에서 무죄를 판결받는 것은 아닐까. "어이, 린지, 정말 날 잡았다고 생각해요?"라며 린지를 향해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프레드를 보면서 이 모든 것을 그가 계획한 것은 아닌지 섬뜩하다.

 

유키가 프레드 브링클리 사건을 맡으면서 이 시리즈의 다른 책들과 다르게 린지 박서의 독무대가 아닌 우먼스 머더 클럽의 한 멤버인 유키의 활약상도 지켜볼 수 있는데 검시관 클레어 워시번은 이 사건의 피해자로 미비한 활약을 하지만 기자인 신디 토머스는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져도 두드러진 활약을 보여주지 않는다. <클로니클>지의 준 발행인 헨리 타일러의 딸 매디슨 타일러의 납치사건에도 신디의 활약은 없다. 이정도만 해도 유키, 신디, 클레어가 조연급으로 자주 등장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세 사건을 처리하는 것은 역시 린지뿐이다. 린지, 그녀가 없으면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얘기다. 린지가 부서장 자리에서 실무만 담당하다가 예전에 파트너였던 재코비에게 그 자리를 넘겨주고 강등되어 현장에서 뛰게할 수 밖에 없었겠지만 다른 방법이 있었을 텐데도 앤서니 트래치오 국장의 지시로 린지가 강등된 것은 역시 이해할 수 없었다.

 

린지가 맡은 세 건의 사건들은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였다. 세 편의 단편들이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으나 다행히도 저자 제임스 패터슨은 린지가 세 사건을 훌륭하게 해결할 수 있게 이야기를 짜임새 있게 맞춰 나간다. 그러나 프레드 브링클리가 저지른 사건은 물론 매디슨 타일러가 납치된 사건과 유사한 실종사건이 어떻게 해결되었는지 알 수 없어 답답하다. 앞으로 이 사건들에 대해 알 수 있는게 있을까.

 

우먼스 머더 클럽의 멤버들은 서로 경쟁하지 않는다. 서로에게 훌륭한 조언자가 되며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준다. 린지, 유키, 클레어, 신디에게 경쟁자가 있다면 세상에 악을 퍼뜨리는 사람들일 것이며 세상의 악을 몰아내는 목적이라면 서로에게 훌륭한 팀워크를 보여줄 것이다. 다음에는 유키, 클레어, 신디의 활약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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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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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이 행복할 수 있을까. 타인의 삶에 관여하게 되면서 겪는 일들은 기쁜 일보다 슬프고 가슴 아픈 일이 대부분일텐데 과연 탐정이 자신의 삶 속에서 자신의 직업과 무관하게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까. 때론 고뇌하고 때론 울분을 토하며 때론 슬퍼하고 가슴 아픈 일이 생겨도 자신이 만들어 가는 삶 속에서는 안도감을 느끼고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아마 스기무라 사부로가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가까운 지인의 부탁으로 여러 가지 일을 조사하지만 탐정이라 이름 붙이기엔 아직은 부족하며 아니 자신이 탐정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다. 가까운 사람이 당한 어려움을 해결하는 일을 할 뿐이라고 생각하니 자신의 삶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사토미와 리코가 회장님을 통해 스기무라 사부로에게 부탁한 일은 표면적으로는 아버지의 자서전을 내는 것이었지만 여기에는 아버지를 자전거로 치고 달아난 범인을 잡기 위한 목적이 있고 사토미 개인적으로 어렸을 적 당한 유괴 사건과 관련하여 아버지가 죽은 것이 아닐까 걱정하기 때문에 굳이 어두운 과거를 밝혀내며 자서전을 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작용하여 이 일이 사건화 된다.
 
사토미 본인을 제외하고는 그녀가 어렸을 적 당한 유괴 사건이 실제로 있었던 일이 아니라고 여겨질 정도로 현실감이 없다. 사토미의 기억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인데 유괴 사건의 전모를 밝혀내지 않으면 사토미의 아버지 가지타의 죽음까지 밝혀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가지타가 자전거에 치여 죽은 것에는 다른 원인이 작용한 것 같지 않으나 가지타가 왜 평소에 잘 가지 않던 장소에서 죽게 되었는지를 밝혀내는 것은 이 사건의 아주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다.
 
모든 진실을 알게 되었지만 스기무라 사부로는 자신이 밝혀내고 알게 된 모든 진실들을 감춘다. 이는 그를 인간적으로 느껴지게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진실을 감춤으로써 생기는 일들은 내버려둔 것이 아닌가 하여 괘씸하다. 진실을 밝힐 것인가에 대한 나의 생각을 묻는다면 사토미와 리코에게 모든 진실을 밝힐 필요가 있다 생각한다. 새로운 상처가 더해지겠지만 분명 사토미와 리코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리코는 언니 사토미와 끊임없이 반목하고 싸워왔다. 표면적으로는 자서전을 내는 문제로 다투었지만 부모님의 듬직한 자식이었던 언니에게 질투하여 언니를 대하는 리코의 말에는 늘 가시가 박혀 있다. 섬세하고 사려 깊은 성격을 가진 사토미는 어릴 적에 당한 유괴 사건으로 세상의 어두운 면만을 바라보며 살아왔으며 부모님에게 샛별 같은 동생 리코를 부러워하며 자랐다.
 
사토미, 리코 두 사람의 감정의 골은 깊어져 곪아 터질 지경에 이르렀으며 나 같았으면 리코에게 가족으로 살아가고 싶지 않다고 선언했을 것이나 사토미는 이제 유일하게 남은 가족인 리코를 결코 내치지 못한다. 그렇다면 사토미가 자신의 것을 스스로 지켜가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데 이는 어려워 보인다. 언니의 것까지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만들겠다며 당당한 행동을 하는 리코를 결코 당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대로 둔다면 사토미와 리코는 불행한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러니 스기무라 사부로가 모든 진실을 말해준다면 사토미와 리코가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소소한 행복을 찾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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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추구 2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공경희 옮김 / 밝은세상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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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이 아내 도로시와 헤어지지 않고 새러와 만나는 이중생활을 시작했을 때 이미 잭과 새러의 사랑은 처음과 같이 순수하지 않았다. 하룻밤의 사랑 후 새러에게 아무런 변명조차 하지 않았던 잭의 행동은 비겁했고 새러와의 사랑에 여지를 주는 듯 보였다. 새러는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잭과 만나지 않았다면, 잭을 다시 만나 그와의 사랑을 이어나가지 않았다면' 하고 무수히 많은 '만약에'를 그려보지만 끝내 잭을 향한 사랑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새러를 향한 잭의 사랑은 어떠했을까. 새러가 자신에게 전부라고 생각했음에는 틀림이 없지만 새러와 그녀의 오빠 에릭을 가족으로 받아들였다면, 그랬다면 지금과 달리 좀 더 많은 것들이 변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 시절의 세계가 그랬다. 잭도 그 시절이 만든 희생자며 피해자였을 뿐임을 알지만 잭이 도로시와 새러를 오가는 이중생활만 하지 않았다면 새러와 가족을 이루어 살아갔다면 한번쯤 다시 생각해 봤을 것이다. 자신의 세계가 무너지는 것이 두려운 잭이 선택한 결과는 그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정도로 참혹했다.

 

자신이 선택한 결과에 대해서만이라도 책임을 졌다면 달라진 것이 많았겠지만 잭은 진실이 드러나는 그 순간까지 에릭을 걱정하고 슬퍼하며 새러를 위로하는 역할에 머문다. 새러가 떠나고 죄책감과 그녀를 향한 사랑으로 피폐한 삶을 살아가는 잭에게 그녀가 떠난 후 일어난 일들은 모두 당연한 결과라고 여겨질만큼 그의 행동은 정직하지 못했다. 잭과 새러, 두 사람의 관계가 이렇게 끝이 났다면 아, 두 사람의 사랑이 비극적으로 끝이 났구나 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새러와 잭은 서로를 그리워하며 그 사랑에서 놓여나지 못했다.

 

'용서'라는 단어는 쓰기는 쉽다. 서로 사랑하면 용서하고 나머지 삶을 함께 보내면 되지 않냐고 말하는 것 또한 쉽다. 그러나 잭과 새러, 이 두 사람이 서로에게 다가가기에는 꽤 많은 이유와 조건이 필요했다. '행복의 추구'에서 저자는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이 선택한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고 이것이 잭과 새러가 만나 사랑을 함으로써 발생된 무수히 많은 관계들을 내려 놓을 수 있는 길이며 그 사랑을 더이상 퇴색되지 않게 온전히 지킬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한다. 사랑이라는 이유로 모든 것이 허용되는 것이 아니라 '용서'라는 말이 사랑까지도 온전히 품게 하는 것이다. 몇 세대를 거쳐 이어져 내려온 인연들때문에 자신은 물론 타인의 행복을 위해, 잠시 동안의 평온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하는 것이다.

 

아직은 새러, 메그, 케이트, 찰리 모두가 행복하다고 느껴지진 않는다. 다만 모두가 현실과 타협하며 그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편안한 형태를 찾았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적당히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며 도로시와 잭을 추억하며 그들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 이것이 여기에서 찾을 수 있는 행복이고 삶이 아닐까.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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