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그림의 아름다움
이동주 지음 / 시공사 / 199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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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차워진 연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듬을 알게된다. 완당의 세한도와 같은 그림은 풍경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진경화풍과는 다른 절개나 지조, 의리같은 작가의 머릿속에 또아리 틀고 앉아있는 관념이나 생각들을 그린 그림으로 일러 문인화라고들 합지요. 신품이라 칭송이 자자한 이 그림을 물끄러미 보다가 그 뭐 별 새로울 것도 신기할 것도 화려할 것도 없는 나무 하나 집 한 채의 그림을 보다가 문득 오래전에 본 만화책 생각이 뭉게뭉게 새록새록 피어났습니다.

본인이 어릴 때 심심 유심히 탐독한 만화중에 '검객 불나비'라는 제하의 만화가 있었더랬습니다. 이름하여 검객 불나비는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로도 있을 수 없는 이른바 전무후무 전대미문 후대불문의 초절정 슈퍼 울트라 고수였습니다. 그 당대에 적수가 없었던 천하무적 유아독존의 이 검객은 검(劍)이 도달할 수 있는 더 높은 경지를 찾아 강호를 떠나 속세를 등진채 멀리멀리 떠돌았고, 그리하여 차츰 세간에서는 잊혀져갔지만 어느새 그는 살아있는 전설이자 신화가 되어있었습니다. 그려.

검에 있어서 최고가 되고자하는 욕망으로 몸부림 발버둥 발광을 하던 희대의 승부사, X(不知其名이라)라는 또 다른 검객이 있었습니다. 뛰어난 검객X는 난다긴다뛴다하는 고수들과의 결투에서 연전연승 모두 승리함으로써 혹자들로부터는 최고의 검객이라는 칭송을 받기도 했습니다만은, 검객X의 마음속에는 항상 미진한 점이 깨림직하게 남아있었던 거입니다. 그것은 바로 불나비때문이었습니다. 진정한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불나비를 꺽어야만 한다고 X는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강호에서는 이미 그 종적이 묘연해진 불나비의 행적을 쫓아 방방곡곡 산천을 헤집고 떠돌기를 수년, 그러저러다 여처저차 차차차하여 드디어 불나비가 잠시 머물렀다는 깊고깊은 산속 심산유곡의 어느 고찰에 이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미타불, 산이라도 베어버릴 수 있다는 불나비인가 불나방인가 하는 건달인지 검객인지 찾아온적이 있었지. 아마, 히히, 니미 관세음보살' (사실 불나비는 강물위에 비친 달을 두 동강내어 버릴수도 있는 검객이었습니다. 그 유명한 '월광검법'이라는 거이지요) '으음, 그래서 소승이, 그렇다면 자네 이 그림을 한 번 베어볼텐가? 하며 그림을 하나 내어놓았더니만, 아...이 불나방라는 넘이, 히히히, 칼을 빼어들고 그림 앞에 앉아서는 사흘동안 땀만 삐질삐질 흘리며 생똥을 싸더니만 결국 그림에는 손도 대지 못한 채 똥꾸린내만 풍기면서 달아나 버리질 않았겠남요...허!!' 늙은 중대가리가 주절거렸습니다. 똑똑 또르르 목탁을 두드리면서 말입죠.

검객 X는 그 그림을 한 번 보자고 했습니다. 어린 사미승이 말라비틀어져 가지 몇 개만 간신히 붙이고 있는 그런 노송이 그려져 있는 액자 하나를 가져왔습니다. 고승이 말했지요. '처사님이 한 번 베어 보시려오? 그림 속 이 노송은 그래도 천년을 버틴 나무외다. 히히히..' 검객X는 그림을 한 번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전광석화와 같은 동작으로 단숨에 그 그림을 베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림값으로 커다란 금덩어리 똥덩거리 하나 던져놓고는 횡하니 절을 떠나버렸습니다. '큰 스님 이 금덩어리를 어떻할까요?' 어린 사미승이 물었습니다. '관세음보살....불나비는 그림을 베지 못한게 아니었어. 세월을 베지못한 게지. 세월을 말이야.....불나비는 그 그림에서 만고풍상파란을 겪은 노송의 천년 세월을 보았던 게야......으음.....그 금덩어리는 똥간에 버려라!!'

월광검법 불나비의 검이 아직 천년 세월을 감당할 정도의 그런 성취를 이루어 내질 못했는지, 어린 사미승이 그 금덩어리를 정말 똥간에다 버렸는지 아니면 자기가 꿀떡꿀꺽했는지는 참말로 모를 일이라요.....궁금한 일이기도 하구 말입죠...불나비가 차마 베지못한 그림은 아마도 모르긴 몰라도 완당의 세한도 비슷한 종류의 그런 그림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을 해보았습죠.....도판의 인쇄상태가 좋고 볼 만한 그림들이 많으니 제위들께옵서도 한 번 구경들 하시구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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