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나온 책 중에 소생의 관심을 끄는 책은 <돼지에게 살해된 왕>이라는 책이다. 뭐 천출의 근본이 돼지여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소생은 워낙에 이런 역사서류를 좋아하는 것이다. 놀라운 영웅들과 별 거지같은 인간들이 뒤엉키고 설키고 꼬인 채 부대끼며 낑낑대며,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증오하고 또 죽고 죽이는 가운데, 의리와 충성, 음모와 배신이 난무하고 안타까운 인간들의 눈부신 비상과 비참한 몰락, 그 덧없는 영고성쇠가 거듭 반복되며, 흥건한 눈물과 콧물, 낭자한 유혈 속에서도 유유하고 굳세게 굴러가는 역사라는 거대한 수레바퀴의 자국을 멀리서 가만히 따라가본다는 것은 정말 흥미진진한 일이다.

 

 

소생은 역사서를 읽으면서 때로는 벅찬 감동에 눈물 콧물을 질질 흘리고 때로는 깊이 탄식하며 가슴을 친 일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드물게는 정의롭고 선한 인간들이 승리하는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파렴치하고 비열하고 비루한 것들이 득세하는 세상이었다. 정의롭지만 실패한 사람들은 매운 얼을 간직한 사관이 기록한 청사에서 길이 빛날 수도 있겠으나 대부분의 역사서가 결국은 승자의 기록이라고 본다면 이들은 과연 어디에서 위안을 얻어야 하는가. 소생이 역사소설을 즐겨 읽는 까닭이 어쩌면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미셸 파스투로의 <돼지에게 살해된 왕>에는 정말 돼지에게 죽은 왕이 나온다. 물론 소생이 죽인 것은 아니다. 1131년 루이6세의 맏아들인 필리프가 파리근교에서 낙마사고로 죽는다. 갑자기 왠 돼지 한 마리가 나타나서 그가 타고있던 말에게 달려들자 놀란 말이 넘어지면서 말에서 떨어진 필리프가 돌에 머리를 부딪혀서 죽게 된 것이다. 야생의 멧돼지도 아니고 집 돼지때문에 왕이 죽은 사고는 불명예스러운 사건으로 인식되었고 백성들은 신이 벌을 내리 것이라고도 했으며 그 돼지를 악마의 돼지라고 불렀다. 이런 불명예를 흔적을 지우기 위해 백합과 파란색을 왕가의 문장으로 사용하게 되었다는 뭐 그런 이야기다. 이분은 동물의 위계로 본 서양문화사라는 부제가 붙은 <, 몰락한 왕의 역사>라는 책도 썼는데 역시 구미가 당기는 책이다.

 

 

눈 밝고 귀 밝은 이들은 돼지에게 살해된 왕에서 불현듯 떠오르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 바로 <왕좌의 게임> 되겠다. 소설 초반부에 등장하는 칠왕국의 왕 로버트 바라테온이 사냥을 나갔다가 거대한 멧돼지의 날카로운 뿔에 받쳐 창자가 다 비어져나오고 거의 몸이 두동강나는 엄청난 상처를 입고 며칠을 버티다가 끝내 죽게된다. 마틴 옹께옵서 유럽의 역사에서 힌트를 얻었을 수도 있다. 나무위키의 설명을 보니 GRRM<얼음과 불의 노래>를 쓰면서 프랑스 작가 모리스 드뤼옹의 대하역사소설 <저주받은 왕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저주받은 왕들>을 총 7권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에는 1권만 번역되어 있다. 그것도 절판이다.(발빠른 소생은 어제 예스에서 중고로 구입했다.) 몹시 안타깝다. 나머지 6권도 빨리 출간되었으면 하는 돼지의 간절한 염원이다. 알라딘의 소개는 이렇다. ‘중세 말 유럽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미남왕 또는 무쇠왕이라 불린 필립 4세를 중심으로 성전 기사단 소송과 백년 전쟁의 빌미가 된 사건을 둘러싸고 실존인물들과 허구의 인물들이 벌이는 암투와 치정, 계급 갈등의 드라마를 흥미롭게 그려내고 있다’ 여기에 나오는 필립은 돼지에게 죽은 그 필립은 아니다. 어쨋든 말만 들어도 침이 줄줄 흐른다.

 

 

 

움베르토 에코의 <푸코의 진자>에도 자세하게 나와있듯이, 필리프 4세는 성전기사단을 이단으로 몰아 처참하게 죽인 그 왕이다. 대단한 미남이었다고 한다. 필리프가 왜 기사단을 박해했는지 정화학게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귀족 세력을 누르고 교황까지 손에 쥔(이른바 교황의 아비뇽 유수되겠다) 왕에게 오직 하나 성전기사단이 눈엣 가시였는지 모르겠다. 당시 성전기사단은 유럽 전역에서 너무 세력이 비대해져 있었고 또 엄청난 재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재정난에 허덕이던 필리프 4세로서는 기사단의 막대한 재산이 탐났을 것이다

 

 

 

 

 

 

 

 

 

 

 

 

성전기사단 이단 재판은 장장 7년을 끌었는데, 남색, 집단난교, 십자가를 짓밟는 등 악마 숭배 의식을 거행했다는 등의 죄목으로 기사단을 기소하고 살이 찢기고 뼈가 부러지는 잔혹한 고문 속에 많은 기사들이 고문을 견디지 못해 죽기도 하고 거짓으로 자백을 하기도 했다.(에코의 <푸코의 진자>에는 그 기소 내용과 심문과정의 문답들, 잔혹한 고문과 기사들의 자백 등등 온갖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나온다.) 성전기사단의 제23대 총장인 기사단장 자크 드 몰레는 1307년에 체포되어 이단판정을 받고 13143월에 화형주에 묶인 채 불에 타 죽었다. 몰레는 화형주에서 죽으면서 머지않아 프랑스 왕과 교황 모두 나와 신 앞에서 죄를 빌게 될 것이다. 너와 너의 자손들은 13대에 걸쳐 저주 받으리라!!" 는 저주를 하면서 죽었다고 한다. 역사에 기록된 사실은 아니고 소설, 영화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당연한 이야기로 <저주받은 왕들>에도 이 대목이 나온다<저주받은 왕들>은 바로 이 몰레의 저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저주가 주효했는지 몰레가 불에 타죽고 한달 후에 교황이 죽고, 필리프4세는 그해 11월에 가벼운 뇌졸중으로 쓰러졌지만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그의 아들 3명이 연이어 프랑스 왕이 되었지만 모두 단명했다.

 

 

필리프의 장남 장남 루이 10세는 즉위 2년 만에 20대의 나이로 의문의 죽음을 당했고 손자 장 1세는 루이 10세가 죽은 이후 유복자로 태어났으나, 5일 만에 죽었다. 조카 장1세를 이어 왕위에 오른 차남 필리프 5세 역시 상속자 없이 즉위 6년 만에 20대의 나이로 죽었다. 그 뒤를 이어받은 삼남 샤를 4세 역시 상속자 없이 즉위 6년 만에 30대 초반의 나이로 죽어서 결국 카페 왕조의 직계는 끊어지게 되었다. 필리프의 딸 이사벨라는 잉글랜드의 에드워드2세와 결혼하여 에드워드3세를 낳았는데, 이 에드워드3세가 자기 어머니가 카페왕조 출신임을 내세워 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요구하면서 두 나라 사이에 기나긴 백년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일설에는 카페 왕조의 방계인 브루봉 왕가의 루이16세가 단두대에서 목이 떨어지자 누군가 홀연히 나타나 루이16세의 떨어진 목을 주워 들고서는 이제 몰레의 저주는 완성되었다고 외쳤다고 한다.

 

<검의 폭풍>을 읽고 있다. 현재 다른 여러 가지 책들을 읽고 있기도 하지만 4<까마귀의 향연>이 나오려면 1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데, 한번에 훅 읽어버리기가 너무 아까워서 하루에 한 편씩만 야금야금 조금조금 읽고 있다. 어제는 다보스 편을 읽었고, 그제는 티리온 편을 읽었고 오늘은 산사 편을 읽을 것이다. 인물 한명 한명의 개성이 얼마나 뚜렷하고 사실적인지 다보스편을 읽으면 내가 다보스가 된 것 같고 티리온 편을 읽으면 내가 마치 난장이가 되어 뒤뚱뒤뚱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모두들 자신의 욕망을 쫓아 악전고투하는 그 모습이 왠지 쓸쓸하고 슬프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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