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 문학나무 수필선 10
김제숙 지음 / 문학나무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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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풍경을 찍다

 

언제부터였을까, 아마 나의 생이 이미 반환점을 돌았다고 느꼈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풍경들은 머뭇거리지도 않고 그냥 흘러가 버렸다. 나는 시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자주 망연했다.

학자들은 우리의 뇌는 모든 기억을 평등하게 대우하지 않는다고 한다. 처음 겪는 일들은 강렬한 느낌, 신선한 기억으로 각인되어 오랫동안 지속되는 기억의 조각으로 남지만 나이가 들면서 겪는 반복적인 일상은 특별한 의미로 뇌에 저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간의 속도를 빠르게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은 흘러가는 조각들을 건져 올리는 몸짓일지 모른다. 때로 건져 올려야 할 것은 놓치기도 하고, 애써서 건져 올린 것은 별 소용에 닿지도 않을 허망한 것일 때도 잦았다. 그렇지만 유한한 시간 속에 사는 한 멈출 수 없는 일이 아닌가 혼자 위로를 하기도 했다.

 

시간의 장면들을 사진을 찍고, 글을 쓰면서 내가 소망한 것은 좀 더 느리게 사는 것이었다. 고요한 밤, 내 앞에 놓인 조각들을 보면 과연 느리게 살았던가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럼에도 좀 더 느리고 단순하게 살고 싶다는 바람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  삼 년여 동안 불경기(? 갱년기)여서 몸과 마음이 서로  몹시 부대끼며 살았습니다.

열병을 앓으면서도 웬지 띄엄띄엄 삶의 모습을 남기는 일을 그만둘 수 없었습니다.

그것을 한 권의 책으로 묶었습니다.

<여기까지>입니다.

 

이제, 다시 흘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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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09-20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중전 님이 펴내신 책인가요?
고즈넉하게 흐르는 사진이 감도는구나 싶어요.
아직 `미출간`인가 보네요.
화면에 `미출간`이라고 뜨는군요.

축하합니다.
널리 사랑받으리라 믿어요!

gimssim 2014-09-20 09:05   좋아요 0 | URL
네. 제 손에는 지난 주에 들어왔는데 서점에는 아직 배포가 안된 모양이군요.
사진과 글을 짝사랑하고 있는 여인의, 띄엄띄엄 살아가는 모습요.

순오기 2014-09-23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중전님의 사진책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진짜 멋진 분이셔요~ 중전님은!^^

순오기 2014-09-23 14:17   좋아요 0 | URL
사진책인 줄 알았더니 수필집이네요~@@
수필은 문학적 글쓰기가 안돼서 어렵더라고요, 저는!!

gimssim 2014-09-24 21:33   좋아요 0 | URL
네. 저지르는 김에 갤러리에서 사진전도 열고 있습니다.
책에 실은 사진 외에 다음책에 실을 사진을 더해서 서른 두 점.
오늘 첫 날이었고, 일주일간,
마치고 나면 정말 조신하게 들어앉아 책을 읽을 참입니다.
독서모임 강좌 열고 있어서 정말 열심히 책 공부 해야돼요.
날라리가 꿈이었는데 아줌마의 너무 무모한 도전이었나 싶어요.

2014-09-29 2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4-09-29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댓글을 남긴 뒤 아흐레가 지나고
시월로 넘어가는데
아직 알라딘에서는 `미출간` 그대로이네요
^^;;;;;;;;

사진전시 소식도 널리 알려주셔요~

gimssim 2014-09-29 20:34   좋아요 0 | URL
출판사에 전화를 넣어보았다더 교보문고, 예스24에는 들어갔다고 합니다.
수필집인데 알라딘에서는 소설로 분류가 되어있구요.
일주일간 전시회는 내일 마칩니다.
하루종일 갤러리에 있느라...
며칠 전에 들어와보았더니 제가 오래 자리를 비웠을 때도 즐겨찾기 해주신 분이 45명이었는데 이 글을 올리고 세 명이 나가셨더군요.
제 자랑을 한 건가, 좀 겸손하게 살아야 하는데...생각이 많았습니다.
최근 이삼 년간 많이 아파서 이런저런 여력이 없었고, 그 무기력에서 헤어나오고자 안간힘을 쓰는 중입니다.
책출간이나 사진 전시회도 그런 맥락이구요.
정신 좀 차려지면 사진 전시회소식, 거북이 걸음으로라도 서재의 끈을 놓지는 않으려 합니다.
함께살기님의 궁금해 하시는 마음에 많은 위로를 받습니다. 감사합니다.

***인터넷 교보문고에만 판매중이라고 뜨는군요.

2014-09-29 19: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0-04 2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0-06 2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랑스 자수에 밀려 고전하고 있는 독서회를 이끌기 위해 내 속에 있는 낙타를 일으켜서 전장에 나갔다.

내 속에는 낙타 한 마리가 산다.

평소에는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다가 이런 사태가 발생하면 분연히 무릎을 세운다.

나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녀석이다.

무장을 하고 갔더니 지난 주에 배정 받아놓았던 강의실 조차 없어졌다.

일찍 가서 내 방이라고 점령을 하고 있었더니 요리팀에서 자기들이 다시 배정을 받았다며 강의실을 비워내란다.

그럼 나는 어디로 가야 하냐니까 지난 주 등록이 한 명 밖에 없어서 방을 뺐단다.

그럼 오늘 온 여섯 사람은 어쩌란 말이냐.

먹고 살아야 하니까 요리팀에 강의실을 비워주고 말까, 한 삼초쯤 망설였다.

내 속의 낙타가 어림 반푼어치도 없단다.

결국 우리는 지하실을 넘겨주고 가을 볕이 잘 드는 4층으로 올라왔다.

일곱 명이서 영혼의 양식을 위해 분투했다.

다른 강의를 들으러 왔다가 일단 '맛있는 책' 한 번 만 들어보라고 꼬시킴을 받아 넘어온 분이 제일 많이 감격했다. 대박이란다.

그래도 이달 말까지 열 명은 되어야 강좌가 가능하다고 한다.

나는 원래 '굳세어라 금순아' 과니까 그까짓 거 문제없다.

에너지를 너무 많이 써서 집에 와서 저녁밥을 두 공기나 먹었다.

그러고는 그 살들이 무서워서 집 앞 학교 운동장을 열 시가 넘어 한시간이나 돌았다.

 

나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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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4-09-17 0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아오신 중전님을 환영하고 응원합니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습니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은데요.!!^^

gimssim 2014-09-17 18:23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늘 자리를 지키고 계시네요.
응원에 힘입어 앞으로 나아갑니다.

세실 2014-09-17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고 많으셨습니다. 잘 하셨어요^^
독서회는 5명만 되어도 개강해야지 무슨 10명....ㅎㅎ
조만간 대박 나실꺼 같은데요?

gimssim 2014-09-17 18:26   좋아요 0 | URL
그쵸? 인원이 문제되는 건 아니죠.
그냥 밀고 나갑니다!
좋은 서재 친구들...제가 복이 많군요.
 

관찰일기입니다.

성질이 전혀 다른 두 녀석이 한 공간에서 살아내는 것을 보면서 한 편의 글을 완성했습니다.

 

몇 달 동안 준비해온 독서모임은 회원이 차지 않아 강좌가 무산될 형편인데 옆 반의 프랑스 자수는 사람이 넘친다고 합니다.

조금은 심난한 마음을 누르고 초심으로 돌아가자 생각합니다.

다시 책을 읽고 글을 쓰자는......

 

아아!, 저는 돌아온 탕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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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4-09-15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독서모임의 이름을 확 끌리는 타이틀로 하실껄 그랬을까요? 인문학 책읽기, 공부하는 엄마들? ㅎㅎ
이제 멋진 사진이랑 글 감상할 수 있게 되었군요.
돌아오심을 환영합니다^^

gimssim 2014-09-15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개의 '맛있는 책'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는데 . . .으흠. . .아무래도 너무 수가 읽히는 이름인듯 합니다.
무슨 터무니 없는 오기인지, 긍정인지 내 속에서 낙타가 무릎을 일으키는 것이 느껴집니다.
내일이 첫 시간이니 칼을 갈아서 출장해야겠습니다. 흐흐흐(웃음 반, 울음 반!)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 - 함민복 에세이
함민복 지음 / 현대문학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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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최대한 직선을 지향한다. 그러나 굽을 수밖에 없는 것이 길의 운명이다. 가급적 평지를 택하나 경사를 품을 수밖에 없는 것도 길의 운명이다. 전등사 동문을 향해 오르는 길은 완만하게 몸을 틀고 그 굽이 따라 물도랑도 휘었다.  192쪽

누가 봄볕에 이리 잘 마른 길을 널어놓았을까. 가랑잎이 바스락 거린다. 바람이 내는 소리의 길은 생성과 동시에 소멸한다. 길가에 멈춰 새싹 돋은 쪽싸리나무를 들여다본다. 잎의 길을 출발하는 쪽싸리나무 연둣빛이 흔들린다. 바람이 읽고 있는 연둣빛을 보며, 눈은 여림과 옅음이 선사하는 평화로움에 젖는다. 새 한 마리가 몸에서 떼어낸 그림자를 끌고 간다. 192쪽

 

 

올봄에는 봄꽃이 일제히 피었다고한다.

몸 속에 그들만의 시계를 가지고 있을텐데 어쩐 일일까, 궁금해 하다가 꽃들의 바통터치도 한 번쯤은 이런 일도 있는 게 어떠랴 싶긴 하다.

올봄, 나는 꽃보다 길에 더 마음이 간다.

유난한 길치여서 낯선 길에 대한 두려움이 많지만, 그래서 늘 익숙한 길로만 다니지만 때로는 길을 잃고 헤메다가 뜻밖의 아름다운 길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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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낮게 가라앉는 날이면

 

오래 잊고 있었던 다락에라도 올라가 볼 일이다.

낡고 남루한 삶의 보퉁이를 이리저리 옮겨볼 일이다.

한 쪽 구석에 가뭇이 놓여 있는 등의 먼지를 털고 높이높이 걸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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