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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 - 함민복 에세이
함민복 지음 / 현대문학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길은 최대한 직선을 지향한다. 그러나 굽을 수밖에 없는 것이 길의 운명이다. 가급적 평지를 택하나 경사를 품을 수밖에 없는 것도 길의 운명이다. 전등사 동문을 향해 오르는 길은 완만하게 몸을 틀고 그 굽이 따라 물도랑도 휘었다. 192쪽
누가 봄볕에 이리 잘 마른 길을 널어놓았을까. 가랑잎이 바스락 거린다. 바람이 내는 소리의 길은 생성과 동시에 소멸한다. 길가에 멈춰 새싹 돋은 쪽싸리나무를 들여다본다. 잎의 길을 출발하는 쪽싸리나무 연둣빛이 흔들린다. 바람이 읽고 있는 연둣빛을 보며, 눈은 여림과 옅음이 선사하는 평화로움에 젖는다. 새 한 마리가 몸에서 떼어낸 그림자를 끌고 간다. 192쪽
올봄에는 봄꽃이 일제히 피었다고한다.
몸 속에 그들만의 시계를 가지고 있을텐데 어쩐 일일까, 궁금해 하다가 꽃들의 바통터치도 한 번쯤은 이런 일도 있는 게 어떠랴 싶긴 하다.
올봄, 나는 꽃보다 길에 더 마음이 간다.
유난한 길치여서 낯선 길에 대한 두려움이 많지만, 그래서 늘 익숙한 길로만 다니지만 때로는 길을 잃고 헤메다가 뜻밖의 아름다운 길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