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돌아갈래."...유년의 뜰

   여름이면 생각나는 풍경이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부모님은 부산에 사시고 나는 시골 할아버지 댁에 잠시 있은 적이 있었다. 아마 바로 밑의 동생 때문이었던 것 같다. 네 살 터울이던 동생이 태어나자 가게를 하시던 어머니께서 힘이 드시니까 나를 잠시 친가에 맡기신 것이었다.
   일주일이나 열흘에 한 번 아버지가 나를 만나러 오시곤 했다. 과자를 한 봉지 - 손가락처럼 길게 생긴 것 안에 꿀이나 크림이 든 - 사주고 가시면서 ‘이것 다 먹을 때쯤 오마’ 하셨다. 어린 마음에 그것을 빨리 먹어버리면 아버지가 빨리 오시겠지 하는 생각에 마구 먹다가 할머니께 들켜서 혼난 기억도 난다.
   아버지가 언제 오시나 동구밖에 나가서면 쭉 뻗은 신작로 길 양편으로 미루나무가 길게 늘어서 있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인적 드문 한여름 날 오후, 햇살을 받아 은빛 비늘처럼 눈이 부시게 빛나던 미루나무들. 쉬지 않고 울어대던 매미 소리만이 한낮의 정적을 깨우던 그 장면은 내 기억 속에 너무나 선명하게 각인 되어 있어서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이 날 것 같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농사일로 늘 바쁘시고 나의 상대가 되어준 사람은 혼자 지내시던 작은어머니였다. 가끔 먼산을 넋을 놓고 바라보곤 하시던 작은어머니는 상당히 미인이셨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신랑에게 소박을 맞고 - 이 사실을 내가 이해하게 된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의 일이다 - 아이도 없이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던 터에 내가 함께 지내게 되었으니 작은어머니는 어린 질녀가 내심 반가웠던 모양이었다.
   일가친척들이 한 동네에 모여 살다 보니 사흘이 멀다하고 혼사니, 제사니, 어른들의 생신이니 하는 집안의 모임이 있었다. 밤이 아주 깊어서야 지내는 제사를 나는 볼 수가 없었다. 오늘은 기다렸다가 그렇게도 맛이 있다는 제삿밥을 먹어야지 다짐은 하지만 매번 나는 작은어머니의 등에 업혀서 개울을 건널 때에야 잠이 깨곤 하였다. 잠결에 느닷없이 달려드는 서늘한 기운에 눈을 뜨면 어김없이 작은어머니는 나를 업고 작은 징검다리를 건너고 계셨다.  은빛 실타래를 풀어놓은 듯 달빛에 젖어있는 강 가의 풍경은 어린 나의 눈에는 신기할 뿐이었다. 밤인데도 이렇게 밝을 수가 있다니. 나는 훗날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일기장에 이렇게 쓴 적이 있다. ‘밤이 깊어질수록 어둠은 오히려 밝게 빛난다’
   작은어머니는 남편에 대한 야속함, 품에 자식을 두지 못한 허전함을 질녀인 나에게 모든 애정을 쏟으면서 그 시절을 살았던 것 같다.
   겨울이 오기 전에, 어머니의 산후조리가 끝나고 어느 정도 회복된 다음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내 기억 속에 강렬하게 남아있는 시간의 첫부분이었다.
 
#1 고향마을의 봄 풍경1
제 아버지, 어머니의 고향마을 과수원 모습입니다.
원래 외갓집소유였는데 지금은 주인이 몇차례 바뀌었겠지요.


 #2 고향마을의 봄 풍경2 
임고서원입니다.
정몽주 선생이 후학을 가르쳤다는 곳이지요.
근처에 2003년 아름다운 숲으로 지정된 임고초등학교가 있습니다.


#3 고향마을의 봄 풍경3 
마악 물이 오르기 시작한 나무와 고향마을의 하늘


#4 공존이거나 동행이거나
삼십여 년 만에 가본 할아버지댁
낯선 사람들이 살고 있고
집은 다소 수리가 되긴 하였지만 옛모습이었는데
마을 뒷산은 승마장이다, 골프장이다 개발이 한창이더군요.
근데 나무들은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푸른 소나무와 붉은 단풍나무가 서로 자기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우리네 삶도 이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을 가져봅니다.


#5  강변공원 풍경
고향마을 강 가
한창 공원을 조성하고 있었습니다.
석양 무렵
사진으로 보는 농촌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조금 더 들어가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보면
국가이익, 개발의 논리, 경쟁력 강화...등등
이름붙일 수 있는 것들에 밀려
...
...

가슴 언저리가 짠해 옵니다.


#6 신식 돌다리
강변공원의 돌다리입니다.
댐의 물이 내려오는 이 시내는 마를 염려가 없지요.
어릴 적 멱감고 다슬기 줍던 곳입니다.
그때 사촌들이랑 멱감으러 갔다가 물에 빠져 죽을 뻔 했는데
죽지 않고 살았더니 지금 이런 글을 씁니다.
지금은 멱감는 사람은 없어도 다슬기 줍는 사람은 있더군요


#7 석양
강변공원의 저녁 풍경입니다.
하루의 외출을 접고
다시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입니다.


#8 고향마을의 하늘
이제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고 고향마을에 가서 사는 꿈을 꿉니다.
 하늘에서 힘찬 에너지를 느낍니다.
사진에 보이는 이상한 농부아저씨는 우리집 바른생활사나이 입니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순오기 2010-04-03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년의 추억은 아리면서도 아름답게 각인되어 있는 듯해요.
기억 속의 고향풍경은 항상 돌아가고픈 곳이지요. 나도 돌아갈래~~ ^^
작은어머니...지금은 어찌 사시는지 공연히 궁금해지네요.
저는 중2때 인천으로 전학 오기 전 할아버지댁에 혼자만 맡겨져 있었는데 참 서러웠던 기억이...ㅠㅠ

gimssim 2010-04-03 23:25   좋아요 0 | URL
우리 부모님은 오래 전에 돌아가시고,
그렇게 고우시던 작은 어머니도 이젠 고희를 넘기신 나이라...투병 중이시지요.
생각해 보면 오래 전의 일 같기도 하고
꿈결인 듯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blanca 2010-04-03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런 아름다운 고향의 추억이 없는 세대라 참으로 아쉬움을 느낍니다. 너무 아름답네요. 아름다운 추억이 많지 않으니 풀어낼 말도 기억할 일도 많이 없어 참 아쉽습니다.

gimssim 2010-04-06 21:46   좋아요 0 | URL
저는 인생의 어느 한 시기...특히 유년시절이라면 더 좋겠지요.
자연과 가까이 할 수 있는 시골에서 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좀 풍성한 이야기거리가 있지요.
굳이 김정운 교수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이야기가 있는 삶은 행복할 거란 생각이 듭니다.
blanca님은 다른 이야기거리가 많겠지요.

세실 2010-04-04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시골 출신이긴 하지만 면 소재지라 별다른 추억거리가 없습니다.
참 아름다운 곳이네요. 평생을 외롭게 사셨을 작은어머니..찡합니다.

gimssim 2010-04-04 20:09   좋아요 0 | URL
요즈음에 다녀보니까 정말 시골이라 해도 아름다운 곳은 별로 없는 것 같이 생각되어요.
그런데 이곳은 아름다워요.
형편만 된다면 정말 좀 느릿느릿 살아보고 싶은 곳이지요.

비로그인 2010-04-06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때때로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면 꿈결 같지요..
중전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gimssim 2010-04-06 21:43   좋아요 0 | URL
사회에 이런저런 사고들이 많아서인지 마음이 좀 그렇습니다.
아무 걱정없던 어린 시절이 그립습니다.

같은하늘 2010-04-08 0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서재마다 봄을 담은 사진이 가득하네요. 전 서울에서 나서 자랐지만 외곽이라 많이 농촌(?)스러웠는데 지금은 너무 변해버려서 추억이 사라진 기분이네요.

gimssim 2010-04-08 07:19   좋아요 0 | URL
날씨가 춥고 다소 음산하긴 해도 나가보니까 봄은 와 있었어요.
고향마을에 은퇴하면 등을 누일 집을 지으려고 땅을 조금 사두었는데
어제는 가서 매실 열아홉 그루, 벚나무 세 그루를 심고 왔어요.
남편은 이제 나도 '농장주'라고 자기한테 잘 보이라고 그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