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리필 되나요?

사십 대 중반의 나이였을 때, 나는 늙다리 대학원생이었다.
아이 둘을 기숙고등학교에 보낸 터라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다.
남편도 박사과정을 하고 있어서 재정상태는 바닥을 헤매고 있었지만 더 늦으면 시간이나 돈보다 몸이 말을 듣지 않을 것 같았다.
여름 방학을 시작하면서,
남편에게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 세 가지가 있다고 말했다.
그게 뭔데? 남편이 물었다.
첫째, 긴 머리 파마.
이건 이루지 못할 희망사항이다.
내 나이에 긴머리 파마는 도저히 봐줄 상황이 아니다.
그러게 좀 젊었을 때 했었어야 했는데.
두 번째는?
여행 많이 하는 거.
그거야 차차해도 되겠다 싶었는지 남편도 별 불편한 반응이 없었다.
지금도 많이 하고 있잖아. 토를 달긴 했지만.

거리를 지나다 보니, 쇼윈도우에 이런 게 있었다. 사랑은 좋은-야한-속옷을 입는 거라 말하는 것 같았다
세 번째는?
‘가슴 아픈 사랑’
이 대목에서 순간적으로 남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가 원위치로 갔다.
원래 지구력은 있어도 순발력은 ‘꽝’인 남편인지라 전의를 상실했는지 입을 굳게 다물었다.
남편과 구 년 동안 연애를 했고, 결혼을 해서 살아온 시간도 만만치가 않다.
나나 남편의 친구들은 우리 내외가 살아가는 그림이 좋아 보인다고들 한다.
그건 좀 떨어져 보아서 그런 것이다.
찰리 채플린이 말했다지 않는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라고.
우리는 뭐 비극까지는 아니더라도 ‘장미의 전쟁’도 불사하며 살아왔다. 그래도 미운 정 고운 정은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가니 이렇게 ‘일상’으로 살아가도 되는가 하는 생각이 가끔 들기는 한다.
그렇다고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선언할 일도 아니고. 아마 남편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가슴 아픈 사랑’ 운운도 절대 그냥 해보는 소리는 아니었다.
물론 일탈을 해서 ‘사고’를 치겠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감정’을 가질 수는 있지 않을까...중년의 나이에서 한 번쯤은 넘어야 하는 고개가 아닐까 싶다.
동창 모임에 가서 이 얘기를 했더니 한 친구가 명확하게 결론을 내려 주었다.
“흐흥...가슴 아픈 사랑이라? 꿈 깨라. 우리 나이엔 그런 거 없다. 이건 있지. ‘가슴 아픈 불륜’...”
모두들 수긍하는 눈치들이었고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아쉬운 마음은 감출 수가 없었다.
벌써 ‘사랑’도 꿈 꾸지 못할 나이들이 되어버린 것에 대한 서글픔 말이다.
집에 와서 남편에게 그 얘기를 했다.
“여보, 우리 나이엔 가슴 아픈 불륜은 있어도 가슴 아픈 사랑은 없대.”
웃긴 건 갑자기 남편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는 거다.
이 마누라가 늦게 대학원에 다니더니 마음에 두고 있는 ‘놈’이라도 있나, 말은 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거렸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저렇게 좋아하지.
그 모습을 보니 괜히 열이 났다.
“나 이제부터 머리 기를 거야.”
남편이 왜? 하는 표정이다.
“긴 머리 파마를 해서 예쁜 리본으로 묶어서 다닐 거다.”
“당신 나이엔 안 어울린다며?”
“내 맘이야. 우아하게 긴 웨이브 머리로 학교에 ‘쨘’하고 나타나야지. 개학하면.”
“등록할 돈은 있고?” 남편의 초치는 소리
“참 그게 문제네, 2학기 등록금” 김 빠지는 소리.
잠깐 우울함 속에 빠져 있는데,
“예쁘게 보여야 할 사람은 있고?” 또 긁는 소리.
이러다 보면 결론은 뻔하다.
서로 다른 이불 덮고 자야한다는 거.

남편과 나의 신발이다. 하동 최참판댁 댓돌에서. 남편이 하도 자기 집이라 우기는 바람에. 최씨거든요. 나란히 함께 걸어가는 거...그게 사랑일까요?
*** 사족 : 사랑도 리필이 될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나는 아무래도 아니라는 쪽이다. 리필된 사랑은 처음의 그 ‘사랑’이 아니다.
한 번 건넌 다리는 다시 그 다리를 건널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그러면 어떻게 하라고?
글쎄다. ‘처음’ 사랑의 용량을 매일매일 늘리는 수 밖에.
말을 하고 보니 어째 좀 사기 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