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소설은 그 전의 소걸 또는 이야기와 어떤 차이를 드러내는가라는 질문이 선행할 터다. 이 질문에 대해 흔히들 ‘리얼리즘‘ 또는 ‘미메시스‘라는 답을 제시하곤 한다. 그러나 이 개념은 매우 광범하고 복잡한 해석을 필요로 한다. 나는 이 문제를 ‘자아‘의 발견, ‘시간‘의 발견이라는 말로 바꾸어 설명해 보려고 했다. 자아의 발견이란 리얼리즘이 그 안에 낭만주의와 개인주의의 씨앗을 안고 있다는 뜻이다. 시간의 발견이란 프랑스사회가 대혁명을 거치면서 구체제가 물려준 영원불변의 통일성에서 벗어나 생성 변화의 힘인 역사를 발견하고 거기에 적응해 나간다는 것을의미한다. 특히 1830년을 기점으로 등장한 선구적 소설(가령 스탕달의 적과 흑,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은 이런 새로운 경험의 문학적 표현이라고 할수 있다. "소설이란 어떤 길을 따라서 이동하는 하나의 거울이다"라는스탕달의 말(적과 흑] 제1부 13장의 제사)은 리얼리즘을 말할 때 어김없이 인용되는 명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말 속에서 "거울"만이 아니라 "길을 따라서 이동하는" 이라는 현재진행형의 동사가 함축하는 현재의 즉흥성과 시간과 역사가 강요하는 생성 변화와 사회적 이동성의 함축에특히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19세기 전반기에서 후반기로 넘어오면서 프랑스 소설은 리얼리즘의 자각을 심화하는 한편, 소설이 무엇을 쓸 것인가에 못지않게 어떻게 쓸것인가라는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의식적으로 그 답을 찾으려는 모색의 과정을 그 소설 자체 속에 반영하게 된다. 이는 플로베르의 등장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소설사적 국면이다. 발자크가 19세기 전반기의 넘치는 에너지와 정념 소설을 표방하며 동시에 ‘역사의 서기‘가 되겠다고자처했다면, 플로베르는 그에 뒤이은 ‘잃어버린 환상‘을 정치한 문장과 언어 구조 속에 조탁하는 위대한, 그러나 금욕적인 소설의 ‘장인‘이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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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약을 뿌리고 비누를 가져다주었지. 하지만 당신 생각에 그들이 우리를 아껴서 그랬을 것 같소? 그럴 가능성은 없소. 우리가 병들어 죽으면 너무 끔찍할 테니 우리가 살아 있는 쪽을 선호한 것뿐이오. 만약 우리가 점점 말라가다가 종잇장처럼 변해 재가 되어 떠내려간다면, 그들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을 거요. 그들은 그저 자기들 마음이 불편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뿐이오. 그래야 편안히 잠을 잘 수 있으니까."
"난 모르겠어요."K가 말했다. "모르겠어요."
"깊이 들여다보지 않아서 그렇소." 로버트가 말했다. "그들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시오. 그러면 알게 될 거요."
K는 어깨를 으쓱했다.
"당신은 갓난애요." 로버트가 말했다. "평생 잠을 자고 있었던 거나 마찬가지지 이제 깨어날 때가 되었소. 왜 그들이 당신이나 아이들에게 자선을 베푼다고 생각하시오? 당신이 그들에게 위협적이지 않고,
눈을 감은 채 주위에 있는 진실을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오."
이틀 후, 그날 밤 밤새도록 울었던 아이가 죽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수용소 안이나 가까운 곳에 무덤을 팔 수 없다는 상부의 철통같은 지시가 있었기에, 아이는 시립 공동묘지 뒤편에 묻혔다. 열여덟 살먹은 아이 엄마는 아이를 묻고 와서 식음을 전폐했다. 그녀는 울지 않고 자기 천막 옆에 앉아 프린스 앨버트 쪽만 하염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위로하기 위해 찾아온 친구들의 말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친구들이 몸에 손을 대면 밀쳐냈다. 마이클 K는 그녀가 자신을 볼 수 없는 울타리 부근에 서서 그녀를 바라보며 몇 시간을 보냈다.  - P123

나는 지금 교육을 받는 걸까? 그는 궁금했다. 드디어 수용소 안의 삶에 대해 배우는 걸까? 삶의 장면 장면이 그의 앞에 펼쳐졌고, 모든 장면이 서로 연결되는 것 같았다. 그것이 무엇일지 아직 알 수는 없었지만, 모든 게 하나의 의미로 수렴되거나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녀는 하룻밤과 하루해를 천막 옆에 앉아 있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여전히 울지도 않고 먹을 것도 입에 대려 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았다. K가 아침마다 가장 먼저 하는 생각은 ‘오늘은 그녀를 볼 수있을까?"였다. 그녀는 키가 작고 뚱뚱했다. 아무도 아이 아버지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저 산에 있다는 소문만 들렸다. K는 자신이 마침내 사랑에 빠진 건 아닌지 궁금했다. 사흘이 지나자 여자는 다시 밖으로 나와 자기 삶으로 되돌아갔다. K는 다른 사람들 사이에 있는 그녀가 그들과 다른 점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그녀에게 결코 말을걸지 않았다.
12월 어느 날 밤, 수용소 사람들은 함성 소리에 잠에서 깼다. 그들은 비틀거리며 침대에서 일어나 프린스 앨버트 방향 지평선 위에서 컴컴한 하늘을 배경으로 거대하고 아름다운 오렌지색 불꽃이 타오르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놀라움에 숨이 멎고 휘파람이 절로 나왔다. "경찰서가 틀림없어!" 누군가 외쳤다. 그들은 불길이 분수처럼 너울거리며 타는 모습을 한 시간가량 지켜보았다. 몇 킬로미터에 걸친 텅 빈 펠트를 가로질러 사람들이 고함치고, 비명을 지르고, 요란하게 불길이 타오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러다 차츰차츰 불빛이 더 붉어지고 무뎌지면서 강렬함을 잃더니 연기에 섞인 불꽃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몇몇 아이들은 부모 품에서 잠이 들거나 눈을 비볐다. 이제 침대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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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남은 오후 동안, 덩굴식물과 풀을 베어 치우는 일을 했다. 그는 이따금 먼 곳을 쳐다보며, 내가 위층에서 자신을 계속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체했다. 나는 다섯시에 그에게 돈을 줬다. "당신이 정원사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어요." 나는 말했다. "나도 당신에게 맞지 않는 일을 시키고 싶진 않아요. 하지만 우리가 계속 자선에 의존해 살아갈수는 없잖아요."
그는 지폐를 받아 접어서 호주머니에 넣고, 나를 쳐다보지 않아도 되도록 눈길을 한쪽으로 돌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왜 그렇죠?"
"당신은 그런 걸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그는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으며 말했다. "자격이라 ・・・・・ 자격이 있는 사람은 누군데요?"
자격이 있는 사람은 누구냐고? 나는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그에게지갑을 쑥 내밀었다. "그렇다면 당신이 믿는 건 뭔데요? 가져가는 것인가요? 원하는 만큼 가져가고 싶어요? 자, 그럼, 가져가요!"
그는 침착하게 지갑을 받아, 거기에 든 30 랜드와 동전 몇 개를 꺼내고, 내게 지갑을 돌려줬다. 그리고 가버렸다. 개가 촐랑거리며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는 삼십 분 후에 돌아왔다. 술병이 딸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딘가에서 그는 매트리스를 구해왔다. 사람들이 해변에 갈 때 가져가는 접이식 매트리스였다. - P31

그들은 처음에 시작할 때는 자기들 목숨을 하찮게 여기겠지만, 결국 나중에는 다른 사람의 목숨마저 하찮게 여기게 될 거야. 자네가 그들에게서 감탄스러워하는 점이 꼭 최선은 아니라고.
자네가 지난번에 더이상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다고 했던 말에대해 계속 생각해보고 있어. 진심으로 한 말이라고는 믿을 수 없어. 아이들은 어머니나 아버지 없이 클 수 없어. 지금 우리 귀에 들리는 방화와 살인, 충격적인 비정함, 심지어 퍼케일 씨에 대한 폭행, 이러한 일들은 결국 누구의 잘못이지? 가서,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너는 이제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 나는 너에 대한 권위를 포기하겠다. 이렇게 말하는 부모에게 분명히 책임이 있는 거야. 어떤 아이가 진심으로 그런 애기를 듣고 싶어하겠어? 그런 말을 들으면 아이는 혼란에 빠져 돌아서서 이렇게 생각할 거야. ‘이제 나에게는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다.
그러니 죽음을 어머니로 삼자. 죽음을 아버지로 삼자.‘ 자네가 그 아이들에게서 손을 씻으면 그애들은 죽음의 자식들이 될 거야."
플로렌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녀는 단호하게 말했다.
"플로렌스, 자네가 나한테 말로 다 할 수 없는 일들이 플래츠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작년에 얘기했던 걸 기억하지? ‘불에 타 죽는 여자를 본 적이 있어요. 그 여자가 도와달라고 비명을 지르자, 아이들이 웃으며 여자의 몸에 기름을 더 부었어요. 살아생전 그런 일을 보게 되리라곤 생각도 못했어요.‘ 이렇게 얘기했었어."
"맞아요, 그렇게 말했었지요. 그리고 그건 사실이고요. 하지만 그 아이들을 그렇게 잔인하게 만든 게 누구죠? - P64

 그애들을 그렇게 잔인하게 만든 건 백인이에요! 그래요!" 그녀는 깊고 격하게 숨을 내쉬었다. 우리는 부엌에 있었다. 그녀는 다리미질을 하고 있었다. 다리미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는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가볍게, 그녀의 손에내 손을 댔다. 그녀가 다리미를 들어올렸다. 시트에는 갈색으로 눌은 자국이 희미하게 나 있었다.
자비 없음, 나는 생각했다. 자비도 없고 한계도 없는 전쟁. 안 보는게 상책인 전쟁.
"그들이 언젠가 성인이 되면," 나는 부드럽게 말했다. "자네 생각엔 그들에게서 잔인함이 없어질 것 같아? 부모의 시대는 끝나버렸다고 배운 아이들은 나중에 어떤 부모가 될까? 부모라는 개념이 우리 안에서 파괴되고 나면, 부모라는 것을 되살릴 수 있을까? 그들은 술을 마신다는 이유로 사람을 발로 차고 때려 사람들의 몸에 불을 지르고 그들이타 죽어가는 동안 웃고, 그들이 부모가 되면 자식들을 어떻게 다루겠어? 그들이 어떤 사랑을 할 수 있겠어? 그들의 심장이 우리의 눈앞에서돌로 변해가고 있어. 그런데 자네는 뭐라고 말하지? ‘이건 내 자식이아니다. 백인의 자식이다. 이건 백인이 만든 괴물이다. 이렇게 말하지.
그게 자네가 말할 수 있는 전부야? 자네는 그들을 백인 탓으로만 돌리고 등을 돌릴 셈이야?"
"아니죠" 플로렌스가 말했다.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저는 제 자식들에게서 등을 돌리지 않아요." 그녀는 시트의 모서리를 정확히 맞추며 가로세로 십자로 접고, 다시 가로세로 십자로 접었다. "이애들은 좋은애들이에요. 이애들은 철 같아요, 우리는 이애들이 자랑스러워요."  - P65

철로 된 아이들, 나는 생각했다. 플로렌스 자신도 철과 다르지 않다.
철의 시대. 그다음에 오는 청동의 시대. 그러한 순환주기에서, 점토의시대, 흙의 시대 같은 더 부드러운 시대가 돌아올 때까지 얼마나 오래,
얼마나 오래 걸릴까? 국가를 위해 싸울 아들들을 낳는, 심장이 철로 된 스파르타 부인 ‘우리는 애들이 자랑스러워요. 우리. 살아서 방패를들고 집에 와라, 아니면 죽어서 방패에 실려 집에 와라.
-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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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면서도 놀라지 않는다. 암시하거나 뉘앙스를 풍기는 말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그리고 그런 식으로 질문을 함으로써 특정한 답변을 유도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바에 맞는 한 법을 이용할것이다. 그런 다음 다른 수단을 동원할 것이다. 그게 제3국이 운영되는 방식이다. 법의 테두리 내에서 행동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법적 절차라는건 그저 많은 수단들 중 하나일 뿐이다.
- P139


내가 말한다. "당신이 오기 전에는 국경 문제 같은 건 전혀 없었소"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요 당신은 실상을 제대로 모르고 있을 뿐이오 당신은 과거 속에 살고 있소 당신은 우리가 몇 안 되는 평화로운 유목민 집단들을 상대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조직이 잘돼 있는 적들을 상대하고 있는 거요. 만약 당신이 원정대와 함께 작전을 나갔다면,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을 거요."
"당신이 데리고 온 한심한 저 포로들 말이로군. 그들이 내가 두려워해야 하는 적이란 말인가? 그게 당신이 하려는 말인가? 대령, 적은 바로 당신이야!" 나는 더이상 자신을 억제할 수 없다. 나는 주먹으로 책상을 쾅쾅 친다. "당신이 적이란 말이야! 당신이 전쟁을 했고, 당신이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순교자들을 만들어줬소. 그것도 지금 시작된 게 아니고 당신이 더럽고 야만스러운 짓을 이곳에서 처음으로 시작했던 일 년전부터 이미 시작된 거요! 역사가 내 말을 증명해줄 거요!"
"말도 안 되는 소리, 역사는 없을 거요. 이건 너무 사소한 일이거든." - P188

 나는 지금도 수치심에 몸이 오그라들지만, 내가 머리를 그녀의 다리에 대고 부러진 발목에 입을 맞추고 애무할 때, 그녀에게 내 흔적을 깊숙이 새기지 못하는 것을 진짜 속마음으로는 아쉬워하지는 않았는지 자문해봐야 한다. 부족 사람들이 그녀에게 아무리 친절하게 대해준다고 해도, 그녀는 정상적인 방식으로 구애를 받지 못하고 결혼도 하지 못할 것이다. 이방인의 소유물이었다는 낙인이 평생 찍힐 것이다. 아무도 그녀에게 접근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랬듯이 애처로운 감각적 동정심에서 그녀에게 접근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녀는 자신을 그렇게 대하는 나의 속내를 알아차리고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그녀가 그렇게도 자주 잠 속으로 빠져들었던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녀가 내 침대에서보다 채소의 껍질을 벗기면서 더 행복해했던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내가 막사 정문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그녀 앞에 섰을 때, 그녀는 이미 자신을 조여오는 허위의 독기를 느낀 게 틀림없다. 욕망으로 가장한 질투심과 동정심과 잔인성의 허위 말이다. 충동이 아니라 충동을 애써 거부하는 성행위에서도 허위를 느꼈을 것이다! 그녀의 냉정한 미소가 떠오른다. 그녀는 처음부터 내가 허위적인 유혹자라는 걸 알았다.  - P222


만약 내가 그녀를 이해했다면, 만약 내가 그녀를 믿었다면, 만약 내가그녀를 믿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면, 나는 혼란스럽고도 쓸데없는 속죄의 몸짓을 하면서 일 년을 보내지 않아도 됐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생각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냉혹하고 엄격한 대령과 정반대인 관대하고 쾌락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편안한 시절에 제국이 스스로에게 얘기하는 거짓말이고, 대령은 거친 바람이 불며 세상이 험악해질 때 제국이 얘기하는 진실이다. 제국의 통치술의 양면이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우물쭈물하면서 이름 없는 이 지역을 관망만 하고 있었다. 먼지 많은 여름,
짐마차에 실을 정도로 많은 살구, 긴 낮잠 시간, 게으르기 짝이 없는 수비대, 해마다 호수의 잔잔한 표면에 내려앉았다가 다시 날아가는 물새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참자 곧 저 사람은 떠날 것이다. 조만간 다시 조용해질 것이다. 낮잠 시간도 더 길어질 것이고, 우리의 칼날에도 녹이 더 슬것이다. 그리고 야간순찰자는 탑에서 살그머니 내려와 아내와 같이 밤을 보낼 것이고, 회반죽은 떨어져내리고 도마뱀은 벽돌 사이에 둥지를 틀게 될 것이며, 부엉이들은 종루에서 날아오를 것이다.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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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에는 야만인 손님들이 찾아오지 않았다. 예전에는 겨울이 되면유목민들이 집단으로 찾아와 담벼락 바깥에 천막을 치고 양모, 동물 가죽, 펠트, 가죽제품 등을 면직물, 차, 설탕, 콩, 밀가루 등과 맞바꾸곤 했다. 우리는 그들의 가죽제품, 특히 그들이 만든 질긴 구두를 귀하게 여겼다. 나는 과거에는 그 거래를 장려했지만 돈으로 값을 치르는 일은 금지시켰다. 또한 그들이 술집에 출입하지 못하게 하려 했다. 독한 술의 노예가 된 거지들과 부랑자들이 도시 주변에 기생충처럼 정착하는걸 나는 무엇보다도 원치 않는다. 예전에 이들이 상점 주인의 속임수에넘어가 자신들의 물건을 시시한 장신구와 교환하거나 술에 취해 도랑에 드러눕고, 결국 그들이 게으르고 부도덕하며 더럽고 어리석다는 주민들의 편견을 굳히는 모습을 보는 게 괴로웠다. 문명이 야만인들이 가진 미덕들을 타락시키고 그들을 종속적인 존재로 만든다면, 나는 문명에 반대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나는 이러한 입장에서 행정 업무를 수행했다. (지금은 야만인 여자와 잠자리를 같이하는 내가 이런 말을 하다니!)하지만 올해에는 변경의 모든 지역에 장막이 쳐져 있다. 우리는 성벽에서 황무지를 노려본다. 우리보다 더 날카로운 눈이 우리를 노려보고 있을 것이다. 교역은 끝났다. 제국을 수호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회생이 따르든 모든 수단을 동원하라는 지침이 수도에서 내려온 이래로 우리는 기습과 경계의 시대로 되돌아가 있다. 칼날을 세우고 경계하며 기다리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 - P66

유감스럽게도 그의 말 때문에 나의 회상은 끊기고 만다. 나는 말다툼을 하며 이 자리를 끝내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응수한다. "그건 소문일 뿐이오 그렇게 되지는 않을 거요. 우리가 야만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유목민이 그들은 매년 저지대와 고지대를 오가며 살고, 그게 그들이 사는 방식이죠. 그들은 결코 산악지방에만 갇혀 있지는 않을거요.
그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본다. 오늘밤 처음으로 나는 장벽이 내려오는 걸 느낀다. 군인과 일반인 사이의 장벽. "솔직히 말씀드리면 바로그게 전쟁입니다. 우리가 강요하지 않으면 선택을 내리지 않을 사람들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거죠." 그는 사관학교를 나온 젊은이답게 오만하고 솔직한 눈초리로 나를 살핀다. 나는 그가 지금쯤 멀리 퍼졌을 나에 관한 소문을 들었으리라 확신한다. 내가 제3국 소속의 경찰에게 비협조적이었다는 얘기 말이다.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것 같다.
그는 나를 수년 동안 이렇게 침체된 곳에서 게으른 토착민들의 방식에맞춰 살다보니 구태의연한 생각에 젖어 있고, 제국의 안보를 임시적이고 불안정한 평화와 맞바꾸려는 위태로운 생각에 빠진 하찮은 민간인관리쯤으로 여기는 것 같다.
- P85

그녀는 아무런 불평 없이 새로운 생활 방식에 적응한다. 나는 그녀가 야만인의 교육을 받고 자랐기 때문에 순종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야만인의 교육에 대해서 아는 게 뭐지? 내가 순종이라고 부르는 것은 무관심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거지에 아버지도 없는 그녀에게, 거처할 곳이 있고 배를 채울 음식만 있다면 내가 혼자 자든 말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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