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오 영감은 이처럼 부성애라는 정념에 사로잡힌 개인의 비극적인 몰락을 그린 소설이지만, 이는 동시에 사회적·정치적인 측면에서 부권이 붕괴되어 가는 과정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발자크에게 있어 가정이란 사회의 한 축도로서 사회와 동일한 법칙에 의해 지배되는 세계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권의 붕괴와 관련해, 이 인물의 의미를 정치적 측면에서 해석해 볼 수 있다.
이 소설의 사건은 1819년에서 1820년에 걸친 왕정복고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이 소설이 실제로 집필된 시기인 7월 왕조 초기와도 무관하지 않다. 작품의 밑바닥에는 은연중에 1830년 혁명의 분위기가 깔려 있는 것이다. [적과 흑]에서처럼 왕정복고 이후 프랑스 역사의 시대착오적인 흐름은 마치 대혁명이 일어난 적이 없다는 듯이 진행되고 있었다. 포부르 생제르맹의 대귀족들은 이제 머지않아 7월혁명에 의해 소멸하고 말 영광의 마지막 잔광을 향유하고 있었다. 보세앙 부인 댁이나 카릴리아노 원수 저택의 화려하지만 어딘가 김빠진 듯한 무도회는 바로 그 덧없는 불꽃놀이들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고리오 영감은 유일하게 귀족 사회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야망을 품고 상경한 시골 귀족 라스티냐크를 제외한다면, 사회 상층부의 모든 사람들은 다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 두는 불편한 존재일 뿐인 고리오가 눈앞에서 사라지기를 바란다. - P89

그들이 고리오 영감을 시야에서 삭제해버리고 싶어하는 까닭은 그 인물의 배후에서 대혁명과 나폴레옹 시절의 기억이 망령처럼 되살아나서 마음을 섬뜩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한 니콜 모제의 해석은 귀 기울여 볼 만하다.

고리오에게는 나폴레옹을 상기시키는 그 무엇이 있다. 물론 오스테를리츠의 승리자 나폴레옹이 아니라 세인트헬레나 섬의 감옥에 유폐된 채 옥지기에게 성가시게 부대끼는 나폴레옹을 두고 하는 말이지만, 구체제의 귀족 계층이 한동안 덧없고 찬란한 옛 광영을 되찾아 소생하는 것과 때를같이하여 이 늙은 제면업자가 피할 수 없는 파멸의 길을 걸어가는 과정은퇴위당한 황제가 고난의 길을 걸어가는 과정과 시기적으로 일치한다.

먼저, 대혁명 이전에 한갓 노동자에 불과했던 고리오는 1789년 대혁명으로 희생된 주인집 사업체를 손에 넣고, 1793년의 혼란을 틈타서 큰 재산을 모았다가 나폴레옹이 최초로 크게 패한 라이프치히 전투 때인 1813년 사업을 포기하고 보케르 하숙집 신세를 지게 된다.
다시 나폴레옹의 운명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는 워털루 전쟁 때, 즉 1815년에 고리오는 그 한심한 하숙의 2층에서 더욱 옹색한 3층으로 옮아감으로써 하숙 안에서도 본격적인 몰락의 길을 밟기 시작한다.
이야말로 그에게는 나폴레옹의 유배에 버금가는 고립과 냉대의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 P91

이제 영감은 황제 부인의 말처럼 "포리오", "모리오", "로리오", "도리오" 등으로 이름마저 정확히 기억되지 않을만큼 미미한 존재, 즉 그 정체성을 상실한 존재일 뿐이다. 그리고 소설 끝에 이르러 고리오가 사망하는 1821년은 나폴레옹이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사망한 해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이 늙은 고리오 영감이 보여주는 거의 병적인 부성애의 붕괴 과정이 시기적으로 정확하게 일치하는 나폴레옹의 몰락과 궤를 같이함으로써 프랑스의 정치사적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고리오와 두 딸은 당시 프랑스 사회를 구성하는 세 계층의 미묘한 상관관계를 거의 알레고리에 가까울 만큼 뚜렷하게 드러내보이고 있다. 앞에서 이미 설명했듯이 고리오는 혁명 이전에 그저 국수공장의 노동자에 불과했다가 대혁명을 계기로 부를 축적해 점차 부르주아지의 반열로 상승했다. 그러나 만년에는 다시금 명백한 하층민의 신분으로 추락해 사망한다. 반면 그의 두 딸 중 한 사람인 아나스타지는 포부르 생제르맹의 대귀족 드 레스토와 결혼했고, 둘째 딸 델핀느는 이제 상승일로에 접어드는 자본 부르주아인 은행가뉘싱겐과 결혼했다. 따라서 당시 상황으로 보아 아나스타지 드레스토 부인은 이미 득세한 귀족 계층에 편입되었고, 뉘싱겐 부인은 아직도 포부르 생 제르맹 무도회에 초대받기를 간절히 바라는 신흥 부르주아지 계층에 속해 있다. 그러나 소설의 끝에 이르러 고리오 영감을 매장하고 난 야심가 라스티냐크가 선택한 쪽은 미래에 득세할 계층인 은행가 뉘싱겐 부인 댁이다. 고리오 집안의 갈등은 이처럼 당시 프랑스 사회를 구성하는 계층간의 갈등을 거의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 P91


가정에서는 아버지의 권능이 국가차원에서는 절대왕권과 황제의 위용이 여지없이 무너져 가는 시대의 소설 「고리오 영감』에서 모든 하숙생이 하나씩 떠나 버리는 순간, 절망한 보케르 부인이 자신의관점에서 요약하는 프랑스 역사는 그래서 특히 주목해볼 만하다.
보케르 부인은 말한다. "우리는 루이 16세가 처형당하는 것도 보았고, 나폴레옹 황제가 몰락하고 다시 돌아왔다가 또다시 몰락하는 것도 보았다." 보케르 부인은 그런 모든 사건은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이라고 말한다. 고리오의 운명이 역사적 필연에 따른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생각을 피력한 것이다. 왜냐하면 고리오의 부성애와 부권은 어느 면에서 보면 역사 진행의 필연성과 맞물린 의미를 지니고있기 때문이다.
고리오 영감은 소설의 표제에서부터 등장해 ‘그림의 모든 조명‘을한 몸에 받았고, 그의 죽음과 더불어 소설이 종결된다는 점에서 단연이 작품의 중심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고리오 영감을 독립된 소설 자체로 해석하느냐, 아니면 《인간 희극》이라는 전체 조망속에 놓고 보느냐에 따라 작품의 의미는 달라진다. 발자크의 방대한작품 세계가 아직은 앞으로 완성해야 할 대사원의 한갓 청사진에 머물러 있던 1835년 당시의 독자들에게 《고리오 영감》의 주제는 물론 비극적인 부성애 바로 그것이었을 터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알고있는 <인간 희극》 전체의 틀 속에 놓고 보면, 고리오 영감은 오직 이 작품 한 편에만 등장했다가 결국 그 마지막 페이지에서 퇴장하는 막간의 한 인물에 불과하다. 반면에 또 하나의 주요 인물인 라스티냐크는 이 소설뿐만 아니라 《인간 희극》전체에서 무려 25편의 소설에 재등장하는 가장 핵심적인 인물 가운데 하나다. - P92

현실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1. 서론

스탕달, 발자크, 플로베르, 졸라 등 19세기에 등장한 이른바 ‘현대작가들‘은 소설이 단순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시대와 사회, 다시 말해서 변화하는 역사의 산물임을 자각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 소설이라는 장르 자체에 대한 ‘반성적 태도‘를 첨예하게 드러낸다. 이를테면 그들은 소설을 쓰는 동시에 "소설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이리하여 소설은 단순한 이야기를 넘어 삶과 어떤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을 그 구조와 스타일 속에 은연중에 반영하게 된다.

① 스탕달은 소설 장르에 대해 반성하면서, 그것이 곧 ‘부르주아 시대의 극‘이요 사회를 비추는 ‘거울‘임을 자각해 ‘정치‘ 소설을 썼다.
② 발자크는 인물의 재등장이라는 독특한 장치를 통해 <인간 희극>에서 호적부와 경쟁하며 당대 사회의 전모를 드러내는 방대한 벽화를 그리고자 한다. 그는 소설의 나폴레옹이 되려고 했다.
③ 플로베르는 ‘스타일‘을 창조하기 위한 글쓰기의 고행에 삶을 바친다.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한 권의 ‘무‘에 관한 책이다. 그는 ‘시점‘point of view문제에 천착하면서 상대주의 세계관을 드러내 보이고, 현실의 내면과 외면의 상관관계를 소설의 형식에 투영하고자 한다 . - P141

④ 졸라의 자연주의는 과학(생리학----유전)적 야심을 가지고 실험소설론을 수립하고자 하는 한편, 새로이 떠오르는 계급인 노동자의 누추한 삶에 확대경을 들이댄다.
⑤ 프루스트는 예술로 변한 삶, 진정한 삶을 찾아 글쓰기의 장거리 고행 길을 나선다. 그에게는 예술이 곧 삶의 참모습이었다.
⑥ 카뮈는 예술, 특히 문학은 인간에게 주어진 조건, 즉 유한한 삶의 조건에 반항하는 ‘수정된 창조‘라고 생각한다. 그는 부조리 인식에서 출발해 반항과 절도와 사랑의 문학에 이르고자 한다. - P142

2. 귀스타브 플로베르


(1) 《마담 보바리》에 대하여

① 1857년 《마담 보바리》의 해

1857년은 소설 『마담 보바리』와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이 발표된 해로, 프랑스 문학사에서는 가히 ‘현대‘의 출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두 작품은 또한 "공중도덕과 종교에 위배된다"는 혐의를 받고 차례로 제2제정의 법정에 소환되었다. 역설적이게도 이 위대한 두 작품은 먼저 소송 사건을 통해서 대중의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그것은 당시 작품이 발표될 때의 한 삽화에 불과하다.
15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마담 보바리》는 현대 소설의 비켜 갈수 없는 교차로에 위치한 최대의 고전으로 인식되고 있다. -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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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해설
최초의 민중 소설 - 노동자의 언어로 전하는노동자의 이야기


1. 에밀 졸라에밀 졸라Emile Zola(1840~1902)와 관련하여 문학적 사실 외에 늘 특징적으로 언급되는 전기적 사실은 파리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죽었다는 것, 토목 기사인 아버지의 사업 관계로 세 살부터 열여덟 살까지 유소년기를 남프랑스의 중소 도시 엑상프로방스에서 보냈다는 것, 이 시기에 미래의 위대한 화가 폴 세잔과 죽마지우가 되었다는 것, 어머니는 프랑스인이었지만 아버지가 이탈리아인이었기에 스물두 살 때인 1862년 프랑스로 귀화했다는 것, 드레퓌스 사건(1894~1906) 때 진실과 정의를 위해 목숨을 건 투쟁을 했다는 것 등이다. 특히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양심이 아니다>라는 명제로 요약되는 프랑스 사회의 지적 전통을 마련한 직접적 계기가 된 드레퓌스 사건에서 졸라가 보여 준 영웅적이고 양심적인 행동은 그의 전기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일 것이다.
프랑스 문학사에서 일반적으로 졸라의 좌표는 19세기 후반 사실주의를 뒤잇는 자연주의라는 지점에 설정된다.  - P629

프랑스 문화사를 아주 짧게 개관하면서 이 지점을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해 보자. 유럽의 경우 고대 문화, 중세 문화, 르네상스 문화까지는 개별 국가의 문화라기보다는 주로 그리스 로마 문화와 기독교 문화에 의해 종합적으로 규정된다. 유럽 각국이 자국의 문화를 본격적으로 논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중앙 집권화가 일정하게 이루어지고 독립 국가의 윤곽이 뚜렷해지는 17세기에 이르러서이다. 프랑스의 경우 17세기는 코르네유와 라신이 주도한 고전 비극의 시대라고 할 수 있고, 18세기는 볼테르, 디드로, 루소가 이끈 계몽 철학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는 인쇄술의 발달로 문학이 황금기를 맞았던 시대로서 바로 이때 낭만주의, 사실주의, 자연주의, 파르나스파(派), 상징주의, 데카당스 등 오늘날까지 중요하게 탐구되는 문예 사조가 모두 나왔고, 소위 <세계 문학전집>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위고, 발자크, 스탕달, 플로베르, 보들레르, 랭보, 말라르메, 졸라 등이 탄생했다. 알다시피 20세기는 실존주의와 누보로망이라는 흐름이 있었고 프루스트, 지드, 말로, 카뮈, 로브그리예 Alain Robbe-Grillet 등이 활약했지만, 중후반으로 갈수록 사르트르, 레비스트로스, 푸코, 데리다 등 인문학자들이 더욱 돋보였던 시대로 여겨진다. 요컨대 졸라는 자연주의문학의 대표자로서 19세기 종반의 가장 중요한 프랑스 소설가라고 말할 수 있다.
자연주의는 사실주의가 극단화한 형태로서 연구자에 따라서는 자연주의를 따로 분류하지 않고 사실주의에 통합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19세기 프랑스 소설에 초점을 맞출 때에는 양자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이 옳은 태도일 듯하다. 왜냐하면 졸라, 모파상, 위스망스Joris-Karl Huysmans, 폴 알렉시 - P630

 Paul Alexis, 앙리 세아르Henry Céard, 레옹 에니크LéonHennique 등 19세기 후반 일군의 작가들이 자연주의라는 기치를 내걸고 사실주의 작가들과의 차별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립했기 때문이다. 졸라는 사실주의의 골간이 <과학적 방법론의 문학에의 적용〉에 있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는 이를 계승하고 심화했는데, 자연주의의 본질은 다름 아닌 <자연 과학적 방법론의 문학에의 적용에 있다. 그가 적용하려 했던 자연 과학적 방법론은 그 당시에새롭게 소개된 <유전론>과 <환경 결정론>으로 요약된다. 소설 속에 한 사회 전체를 재현하여 그 사회를 작동시키는 메커니즘을 파악하는 것, 그것은 발자크 이후 프랑스 소설가들의 꿈이었던바, 졸라는 역사와 과학과 문학의 행복한 결합을 통해 그것을 실현하려 했고, 그 결과물로서 <루공-마카르 LesRougon-Macquart) 총서를 세상에 내놓았다.
물론 <루공--마카르> 총서 (1871~1893) 이전과 이후에도 졸라는 소설을 썼지만, 그래도 졸라 문학의 정수가 환경 결정론과 유전론을 횡축과 종축으로 한 <루공---마카르> 총서에 있음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개별 소설의 제목이 아니라 20권의소설을 총칭하는 <루공-마카르>라는 제목은 아델라이드 푸크라는 여자를 정점으로 하는 한 가족으로부터 유래한다. 아델라이드 푸크는 먼저 루공이라는 농부와 결혼하여 아들 하나를 낳으며, 3년 후 남편이 죽자 마카르라는 주정뱅이 밀수업자와 관계하여 아들 하나와 딸 하나를 낳는다. 말하자면<루공---마카르>는 아델라이드 푸크의 자손들의 이야기인즉,
적통인 루공 가계는 대개 정상아들로 구성되어 있고, 사생아혈통인 마카르 가계는 대개 비정상적 기질을 가진 아웃사이더들로 구성되어 있다. - P631

유전과 환경의 문제는 <제2제정하의 한가족의 자연적·사회적 역사>라는 <루공----마카르>의 부제에서도 확인된다. 여기서 <자연적 역사>는 유전의 영향을, <사회적역사는 환경의 영향을 함축한다. 유전과 환경을 날줄과 씨줄로 하여 <루공----마카르>는 쿠데타, 부동산 투기, 은행 증권 조작, 자본 집중 등 제2제정 사회의 온갖 부패상을 그리고 있다.
사회적 차원에서 볼 때 <루공----마카르>는 한마디로 제2제정사회의 타락 백서라고 할 수 있다.
졸라의 소설은 노동자, 여성, 알코올 중독, 살인, 신경증 등사회적 소수자의 문제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20세기 후반 푸코의 활약으로 광기와 비정상이 담론의 중심부로 들어선이후 졸라 소설에 대한 연구가 폭증했다. 그러나 이런 위반의 문제 못지않게 학자들의 관심을 끄는 졸라 소설의 본질적인 특징은 돌과 나무로 형성된 건축물이 철과 유리로 형성된건축물로 바뀌는 서구 문명의 이행기를 적실하게 담아냈다는데 있다. 20세기 말에 활성화된 미국 문화 학계의 학제적 연구에서 졸라의 소설이 빈번한 탐구의 대상이 된 것은 이처럼그의 소설이 문화 정보의 풍요로운 보고(寶庫)였기 때문이다.
바르트는 진정한 문학적 참여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증언과 진단에 있으며, 그런 면에서 프랑스 문학사상 단연 돋보이는 작가는 졸라라고 말한 바 있다. 문학의 본질이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의 제기에 있다면, 문학의 본질이 미담을 미담으로, 추문을 추문으로 만드는 데 있다면, 21세기에도 졸라의 소설은 여전히 탐독할 가치가 있다. - P632

2. 목로주점의 안팎

프랑스 제2제정 말기와 제3공화정 초기는 19세기 산업화의최절정기로서 지방의 노동자 농민이 활발하게 파리로 유입되던 시대이며, 특히 파리 북부의 빈민가에서 노동자들의 사회정치적 운동이 고조되던 시대이다. 이런 사회 분위기는 졸라로 하여금 노동자를 주요 등장인물로 하는 소설을 구상하게 했다. 졸라에 앞서 공쿠르 형제가 제르미니 라세르퇴GerminieLacerteux의 서문에서 문학에의 민중 도입을 주장한 적이 있지만, 그것은 새로운 모티프에 대한 호기심의 반영일 뿐이었다. 졸라의 의도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발자크식으로 동시대사회 전체를 그리고자 한 졸라는 노동자의 언어로 노동자의삶을 통째로 이야기하는 소설을 쓰고자 했다. 졸라의 초안은그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한마디로 민중의 삶을 그 오물, 자포자기의 삶, 상스러운 언어 등과 함께 정확하게 그릴 것>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루공---마카르>의 대표 소설이자프랑스 노동 소설의 백미인 목로주점 L‘Assommoir』이다.
<루공---마카르> 제7권으로서 1877년에 발표된 목로주점은 유전론과 환경 결정론이 적용된 자연주의적인 노동 소설이다. 시조 아델라이드 푸크의 손녀로서 마카르 혈통인 제르베즈는 비정상적 신경증을 유전적으로 물려받아 게으름,
섹스, 알코올 등 위반의 쾌감에 쉽게 굴복한다. 더욱이 제르베즈가 사는 파리 북부 빈민가는 이런 유전적 약점을 악화시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위생적으로 열악하기 짝이 없는 환경을 갖고 있다. 요컨대 목로주점은 유전과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한 노동자에 대한 탁월한 임상 보고서이다. - P633

「목로주점」에서 제르베즈의 비중이 어느 정도인가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졸라가 <목로주점>이란 제목에 앞서 <제르베즈마카르의 단순한 생활>을 가제로 상정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열세 장으로 이루어진 목로주점은 1850년에서 1869년까지 전개되는 제르베즈의 성공과 실패의 이야기인데, 제르베즈를 중심으로 볼 때 그 서사 구조는 정확히 대칭을 이루는 하나의 건축물을 연상시킨다.
1장에서 6장까지 여섯 장은 제르베즈가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연인에게서 버림받은 후 새로운 연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세탁소 여주인으로 성공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7장은 목로주점의 정점이자 제르베즈의 생활의 정점인데, 여기서 그녀의 성공이 온 동네 사람들에게 과시되는 생일잔치 즉 그유명한 거위 요리 파티가 펼쳐진다. 8장에서 13장까지 여섯장은 환경과 유전의 영향으로 제르베즈가 게으름과 알코올중독에 빠져 가게의 파산을 겪고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비참하게 죽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목로주점》의 서사 구조가 하나의 건축물을 연상시킨다는 것은 이처럼 7장을 정점으로 하여 상승 국면을 담은 전반 여섯 장과 하강 국면을 담은후반 여섯 장이 서로 완벽한 대칭을 이루고 있다는 의미에서이다.
성(性)과 술은 빈자들에게 허용된 유일한 낙원으로서 주인공을 파멸시키는 두 계기를 이루지만, <목로주점>이라는제목이 시사하듯 이 소설에서 좀 더 근본적인 드라마는 역시 알코올 중독의 드라마이다. <목로주점>을 뜻하는 프랑스어 <assommoir)는 원래 보통 명사로서 짐승을 도살하는 데사용되는 <도살용 몽둥이>라는 뜻과 <불순한 술을 파는 술집 또는 술집 주인>이라는 뜻을 지닌다. - P634

 이를테면 이 소설에서 <I‘Assommoir>라는 제목은 <저급한 술집>과 <도살용이라는 두 가지 뜻을 두루 함축하여 <알코올로 사람을 죽이는 술집>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거리 이름 <구트도르Goutte-d‘Or> 또한 알코올 중독의드라마와 관련된다. <goutte-d‘or〉는 〈황금 물방울>이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다름 아닌 싸구려 증류주를 가리키는데, 소설은 제르베즈가 <황금 물방울>의 제물이 됨과 동시에 막을 내린다.
목로주점은 제2제정 사회의 벽화를 완성하기 위해 우발적으로 급조한 작품이 아니다. 그것은 수년에 걸쳐 작가의 머릿속에 있던 작품이며, 경험에서 자양을 얻은 작품이다. 일곱 살 때 토목 기사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졸라는 홀어머니와 수없이 이사를 하며 어렵게 살았고, 특히 파리에 올라온1859년부터 <아세트 Hachette> 출판사에 입사하는 1962년까지는 돈도 연고도 없이 파리 빈민가의 꼭대기 층, 지붕 밑다락방에서 살았다. 이 시기에 그는 하층민들의 풍속에 대해 개괄적 지식을 얻었다. 그리고 《목로주점》의 집필을 위해 직접 노동자 여성들의 사진을 찍었고, 평상복, 작업복 등 의복을 조사했으며, 샤펠 대로, 푸아소니에 가, 구트도르 가 등에서 가게와 건물의 양상, 퇴근 시간 거리의 움직임, 카바레와 싸구려 댄스홀의 장식 등을 유심히 관찰했다. 졸라의 말대로「목로주점」에서 노동자의 체취가 물씬 풍긴다면, 그것은 바로 이 체험과 현장 조사 덕분일 것이다. 그러나 작가가 서문에서 밝힌 대로 목로주점」에 드리워진 진짜 <민중의 냄새>,
그 냄새의 바탕은 뭐니 뭐니 해도 민중의 언어에 있다.
- P635

3. 목로주점」의 언어의 현대성

졸라는 서문에서 목로주점을 일컬어 <민중의 냄새가 나는 최초의 민중 소설>이라고 했다. 물론 졸라 이전의 소설에서도, 예컨대 발자크, 위고, 상드, 플로베르의 소설에서도 노동자가 등장했고, 노동자의 비극이 그려졌다. 그러나 그 언어는 여전히 작가의 언어요. 전통적인 문학 언어였다. 목로주점은 서술자와 등장인물이 모두 민중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최초의 소설이다. 당시에 민중언어의 사용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던지 목로주점에 대한 공격도 찬사도 모두 민중 언어의 노골성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서문에서 졸라가 안타까워한 것 또한 문학에서 민중 언어가 가지는 전환기적 가치의무시였다.
나의 죄는 민중의 언어를 모아서 그것을 무척 공들여 만든 거푸집에 붓는 문학적 호기심을 가졌다는 데 있다. 아!
형식, 거기에 대죄가 있다니! (서문 중에서)

「목로주점에서 사용된 노동자의 은어나 민중적 표현을알기 위해 졸라가 주로 의지한 책은 알프레드 델보AlfredDelvau의 가공하지 않은 언어 사전 Dictionnaire de la langueverte』과 드니 풀로 Denis Poulot의 숭고미 또는 1870년 노동자의 현실태와 가능태Le Sublime, ou Le travailleur comme ilest en 1870 et ce qu‘il peutetres였다. 이 책들에서 그는 <장화,
<불고기 병정>, <술고래> 등 민중의 별명, <기침하는 졸병〉,
<코흘리개 꼬마>, <광기의 그랑 살롱> 등 술집 이름, 다량의 민중적 어휘와 표현, 파리 노동자 은어로 된 술집에서의 대화 등을 빌려 왔다. - P636

목로주점은 별명, 조롱, 욕설 등 가공하지 않은 노골적 언어가 어떻게 집단 내의 결속과 다른 집단과의차별화를 야기하는지를 잘 보여 준다. 시인 말라르메는 목로주점의 민중 언어를 졸라가 문학에 부여한 절대적 참신성이라고 격찬한 바 있다. 목로주점」이 보여 준 언어의 현대성은민중 언어의 사용뿐만이 아니라 <자유 간접 화법 style indirectlibre>의 사용에서도 드러나는데, 자유 간접 화법이란 서술자의 목소리와 등장인물의 목소리를 결합한 형태를 일컫는다.
예컨대 목로주점 7장에 나오는 제르베즈의 생일 파티 장면을 보자.

술잔은 단숨에 비워졌고, 마치 폭우가 쏟아지는 날 빗물이 홈통을 따라 내려가듯 술이 목구멍을 따라 콸콸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포도주의 비야 이건 어라! 처음엔 낡은 술통맛이 나더니 자꾸 마시니까 고소한 개암 냄새가 나네. 와! 빌어먹을! 예수회 수도사들이 탓해 봐야 소용없어,
어쨌거나 포도즙은 정말 멋진 발명품이야! 좌중이 웃으며옳소! 하고 외쳤다. (307)

술의 향연에 대한 서술자의 서술이지만, 보다시피 어투는노동자의 어투 그대로이다. 졸라의 자유 간접화법은 이처럼 서술자가 자신의 의식과 언어에 노동자 집단의 의식과 언어를 실어 한꺼번에 전달하는 말의 경제를 실현함으로써, 달리 말해 발언자의 복수성을 구현함으로써 텍스트의 울림을더 풍요롭게 한다. 비평가 자크 뒤부아Jacques Dubois가  - P637

《목로주점》의 서술을 서술자의 독창이 아니라 <민중의 합창>이라고 부른 것도 이런 맥락에서일 것이다. 소설의 서문이 보여주듯 대부분의 동시대인들은 욕설 은어, 상투어 등을 그대로옮겨 놓은 목로주점의 언어의 자연주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민중의 어휘를 소설에 활용하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민중의 어휘와 통사 구조로 서술을 하는, 즉 독자의 목소리로 스토리를 이야기하는 언어의 실험은 졸라의 작품 세계에서도 독특한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 문학사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기념비적 시도였다는 것이 오늘날의 일반적 시각이다.


4. 「목로주점」에 대한 평가

《목로주점》은  졸라의 이름을 문단에 확고히 각인시키고 그를 명실상부한 자연주의 유파의 수장으로 만들어 준 출세작이다. 그러나 출간 당시에는 찬사보다 비난이 월등히 우세한 문제작이었다. 1876년 4월 13일 <파리 풍속 연구Etude demæurs parisiennes)라는 부제와 함께 급진 공화파 신문비엥 퓌블럭Le Bien Public에 호가 연재되자 즉각 보수과 논객들의 공격이 쏟아졌다. 민중의 참상을 담았다고 하여졸라는 <문학적 코뮌의 두목>이라고 공격당했고, 목로주점]은 <책상 위에 굴러다니도록 내버려 두지 말아야 할 책>으로 규정되었다. 「르비엥 퓌블릭」은 가장 대담한 부분의 삭제를단행했지만 결국 6장까지 연재한 후 연재를 중단했고, 「라 레퓌블릭 데 레트르La République des Lettres」가 나머지를 연재했다. - P638

라 레퓌블릭 데 레트로, 역시 몇몇 대담한 대목을 완화했음에도 <동물적 악취>, <오물>, <포르노그래피 > 등 혹독한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1877년 1월 말에 목로주점이 단행본으로 출간되자 비난의 일기는 한층 더 뜨거워졌다. 우파도 좌파도 낭만주의자도 사실주의자도 목로주점」을 공격했다. 목로주점」에서 <끔찍한 음란>과 <역겨운 불결함>을 읽은 우파는 싸구려 발자크> 졸라의 부도덕과 외설성을 문제 삼았다. 민중의 참상보다는 민중의 미화를 원했던 좌파는 목로주점에서 민중에 대한 <잔혹한 경멸>을 읽었다. 낭만주의자 위고는 설령 <진실>이라 할지라도 빈곤을 구경거리>로 제시해서는 안 된다.
고 하면서 목로주점을 <불량한> 소설로 규정했다. 졸라와같은 계열에 있던 사실주의의 주요 작가들도 흔쾌히 졸라의 편에 서지는 않았다. 샹플뢰리Jules Husson Champfleury는「목로주점」과 같은 소설들을 가리켜 <천박한 소설들의 눈사태>라고 했고, 졸라를 뜻밖의 횡재를 한 벼락출세자>라고 여겼던 에드몽 드 공쿠르는 <글쓰기에 대한 명백한 포기>라는표현을 통해 문체의 결여를 비판했다. 반대자들의 비난은 내용의 비도덕성, 문학 언어의 타락, 노동자 참상의 과대 포장으로 요약된다.
일방적 비난의 분위기 속에서 플로베르는 <체계>와 <원칙>에 대한 강박 관념을 비판하면서도 졸라의 진실 묘사와 이야기꾼으로서의 힘을 상찬했다. 전술한 대로 말라르메는 경탄할 만한 언어학적 시도>, <가난한 악마들이 만든 (・・・・…) 가장아름다운 문학적 언어>를 지지했다. 자연주의 계열의 후배들은 선배의 출세작에 당연히 열광했다.  - P639

모파상은 문체가 지닌 <엄청난 힘>에 감동했고, 위스망스는 <눈보라 속에서 만나서로 한마디 말 없이 자기 길을 따라 헤어지는 제르베즈와 브뤼영감>보다 더 감동적이고 위대한 묘사를 알지 못한다고 단언했다. 보수파 작가 진영에서는 드물게 부르게 Paul Bourget가 목로주점의 작가를 <세기말의 발자크>라고 격찬했다.
지지자들의 찬사는 이처럼 진실 묘사와 새로운 언어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졸라는 목로주점을 이런 말로 플로베르에게 헌정했었다.
<나의 위대한 친구 플로베르에게 취향에 대한 증오와 함께>이 헌사는 졸라가 <고상한 취향>을 강조하는 보수적 전통 비평을 얼마나 경멸했는지 잘 보여 준다. 또한 진보의 비난에대해 졸라는 <상처>를 알아야 <치료>도 가능하기에 <유토피아>를 꿈꾸기 전에 해야 할 일은 <현실>을 정확하게 탐구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어쨌든 늘 그렇듯 뜨거운 논쟁은 상업적 성공, 공쿠르의 표현에 따르면 <전례가 없는 엄청난 성공>을 몰고 왔다. 첫해에만 38 판이 찍히고 4년 동안 91 판이 찍힌목로주점은 현대적인 대량 인쇄의 문을 연 최초의 소설이라는 점에서도 한 시대의 획을 그은 작품임이 틀림없다. 결국「목로주점 덕분에 졸라는 파리 근교 메당에 자신의 집 ---- 이집은 오늘날 <졸라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을 마련할수 있었고, 거기서 위스망스, 모파상, 세아르, 에니크, 알렉시등과 함께 정기적 모임을 가짐으로써 자연주의 유파를 형성할 수 있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목로주점은 고전의 반열에 올랐고,
졸라 또한 적어도 19세기 중반의 최고 소설가로 평가받게 되었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 P640

(자연주의에 대한 평가의 불일치 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프랑스 문학사 책을 펼쳐도 졸라가발자크나 플로베르에게 버금갈 정도의 자리를 할애받고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지드는 1934년의 일기에서 이렇게 썼다. <목로주점을 다시 읽었다. (・・・・) 나는 졸라가 매우 높은 자리에 군림할 만한 작가라는 사실을 새롭게 확신한다. 경향과 무관하게 예술가로서 말이다. 게다가 1955년에르네 클레망René Clément 감독이 영화로 만든 이래 목로주점이 열 번이나 영화화되었다는 사실은 이 소설에 대한 문화계의 지속적인 관심을 입증한다. 심지어 소설가 레몽 크노Raymond Queneau는 목로주점」을 샹송 가사로까지 각색하지 않았던가. 여하튼 목로주점』의 탄생 이후 전개된 숱한논쟁을 고려할 때, 졸라의 무덤 위에서 읽은 아나톨 프랑스의조사(弔야말로 졸라에 대한 가장 종합적인 평가가 아닐까싶다.

사람들은 찬양했다. 사람들은 경악했다. 사람들은 칭찬했다. 사람들은 비난했다. 격찬과 비난은 하나같이 격렬했다・・・・・・ 그런 가운데 작품은 점점 위대해져 갔다. - P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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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녁으로 읽을 것
베르톨트 브레히트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말했다
내가 필요하다고.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돌보고
걸을 때 발밑을 조심하고
한낱 떨어지는 빗방울에도
맞아 죽지 않을까 염려한다. - P24

바다
폴 발레리

1
평평한 바다-------회색의, 울퉁불퉁하여 국부적 움직임을 보여주는 부분이 많은, 하나의 근질거림, 하나의 득실거리는 표면.
파문은 형태다. 움직이지 않는, 그러나 질료는 움직이는. 또는 움직이는, 그러나 질료는 잠시 ‘정거하는‘.
‘하나의 파도‘-------무엇으로 되었기에 하나로 동일한가?
뭇 형태들과 움직임의 연속인 것이다. 굴러가는 (보이지 않는)하나의 바퀴 위반짝이는 하나의 점이며, 또한 눈이 하나로 동일시하는 어떤 한 원 위 반짝이는 점들의 이어짐이다. 연속은 언제나 ‘공간‘과 ‘시간‘을 결합한다.

2
바다가 휘감은 돌과 대기의 비와 서리가 공들인 돌은같은 모습이 아니다. 같은 마멸이 아니다. 같은 종류의 우연이아니다. 바다의 활동은 변덕스럽다. 기후의 불순과 중력으로 인한 활동은 그렇지 않다. 하나는 구르고 휩쓸린다. 그 외의 것들은 전진하거나 끊기고, 또 분해된다. - P35

3 하나의 거품이, 때때로, 바다 위로 피어오르고, 이러한 시간들은 우연에 의한 것이다.


4
아침 ----------검고 바람 부는 새벽-----------바람의 포탄들
놀랄 만큼 긴장되는 나의 신경
잠에서 비롯하여 한껏 장전된 현재 위로, 사건은,
일말의 변화마저, 모두 드러나고, 울려 퍼진다
가득한 반향들, 섬광들, 기다림,
거진 잠들었으며 나머지도 잠들려 하는 하나의 진동하는 뾰족함.
아주 강렬하지만 아주 비좁은 가느다란 파문들. - P36

미라보 다리
기욤 아폴리네르


미라보 다리 아래 강은 흐르고
우리네 사랑
기억해야 하는가
기쁨이란 언제나 고통 뒤에 온 것임을

밤이 온 시간이 울린들
하루하루가 떠나가고 나는 머무네

손에 손을 잡고 서로를 마주 보자
비록 거기
우리의 말로 이어진 다리 아래
영겁의 시선에 지친 물결이 흐를지라도

밤이 온들 시간이 울린들
하루하루가 떠나가고 나는

사랑은 가네 흐르는 물처럼
- P40

사랑은 가네
삶이란 느린 것이기에
또 희망이란 난폭한 것이기에

밤이 온들 시간이 울린들
하루하루가 떠나가고 나는 머무네

하루하루가 지나고 한 주 한 주가 지나가고
지나간 시간도
그 사랑도 돌아오지 않아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르고

밤이 온들 시간이 울린들
하루하루가 떠나가고 나는 머무네 - P41

빛이 부서진다 태양이 비추지 않는 곳에서
딜런 토머스


빛이 부서진다 태양이 비추지 않는 곳에서
그 어떤 바다도 흐르지 않는 곳에서, 심장의 물결이밀물로 밀려든다.
그리고 머리 속에 반딧불이가 들어 있는 창백한 유령들, 빛과 같은 것들이
줄지어 살을 통과해간다 그 어떤 살도 뼈들을 치장하지 않는 곳에서.

허벅다리 사이 양초 하나가
유년과 씨앗에 온기를 주고 성년의 씨앗들을 불태운다.
그 어떤 씨앗도 움트지 않는 곳에서인간의 열매가 별들 속주름을 편다.
무화과처럼 빛나며
그 어떤 밀랍도 없는 곳에서 양초가 그것의 털들을 보여준다.


두 눈동자 뒤에서 새벽이 밝아온다.
두개골과 발가락 양끝에서 격렬한 피가 - P42

바다처럼 미끄러지듯 흘러간다.
울타리도, 말뚝도 없는, 하늘의 분출하는 유정들이미소 짓고 있는 점치는 막대기 쪽으로
눈물의 기름을 내뿜는다.


눈구멍들 속의 밤이,
역청으로 된 달처럼, 구체들의 경계를 돈다.
낮이 뼈를 비춘다.
그 어떤 추위도 없는 곳에서 몰아치는 거센 돌풍이겨울의 옷을 벗긴다.
봄의 피막이 눈꺼풀들에 매달려 있다.


빛이 부서진다 비밀스런 운명들 위로,
생각의 끄트머리들 위로, 생각들이 비 냄새를 풍기는 곳에서.
논리가 죽을 때,
흙의 비밀이 눈을 뚫고 자란다.
그리고 피가 태양 속으로 뛰어오른다.
버려진 경작지 위로 새벽이 머문다. - P43

불의 뾰족함
쥘 쉬페르비엘


살아생전
독서를 즐긴 그였다
촛불 하나 곁에 두고서
종종 그 위로
자신의 손을 갖다 대곤 했다
납득하기 위하여
자신이 살아 있음을,
자신이 살고 있음을.
그가 죽은 이래로
밝혀진 촛불 하나
줄곧 그의 곁을 지킨다
두 손을 가리운 채 - P60

거울
쥘 쉬페르비엘


지금 죽음이
삶에게 기다란 거울을
햇볕 비틀거리는 한 줌
벚꽃을 빼앗았다

눈은 푸르름 속에서
손은 순백에 반짝이고
행복에 잠긴 영혼이 어느덧
두근거리듯 그를 두드린다

그가 거울 안에서 바라보는
붉게 물드는 수천의 벚나무
돌멩이의 위협에서 벗어나
모이를 쏘아대는 한 떼의 새무리

나무에 오르는 자신을 바라보며
그는 손 안에서, 그토록 빨리

썩어삼에 순응하는 새들에
놀란 기색이 완연하다 - P67

코르도바의 민가 마을밤의 이야기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집에서는
별들의 침략을 조심한다.
밤이 무너진다.
안에서는 머리카락에
한 송이 붉은 장미를 숨긴 소녀가
죽어 있다.
격자창에선 여섯 꾀꼬리가
소녀의 죽음을 운다.


한숨을 내쉬는 사람들
입 벌린 기타를 들고 지나친다. - P77

가을이 인다
두보

옥빛 머금은 이슬에 단풍 숲 시들고
무산 무협의 가을 기운이 쓸쓸하다
강물 가른 파도의 용솟음 하늘과 맞닿고
요새 위 바람과 구름 음산히 땅을 덮는다
다시 피는 국화에 옛날은 눈물겹고
외로이 매어둔 배 고향이 묶여 있다.
곳곳에서 가위와 자가 겨울옷을 재촉하고
백제성 높이 급히 저녁을 다듬이질한다 - P86

오늘 나는 산책을 했다.…
로베르 데스노스


오늘 나는 산책을 했다 내 동료와 함께,
비록 그는 죽었지만,
오늘 나는 산책을 했다 내 동료와 함께.

아름다웠다 꽃이 핀 나무들,
그가 죽던 날 눈 내리던 밤나무들.
그와 함께 나는 산책을 했다.

오래전 내 부모는
당신들끼리만 장례식에 갔었고
그래선지 난 내가 어리다는 느낌이었다.

이제 나는 적지 않은 죽음을 경험했고,
하 많은 장의사들 보았다
하지만 그들에게 가닿은 적은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바로 오늘 - P90

나는 산책을 했다내동료와 함께.
그의 딸에 나는 조금 늙은 듯했다.

좀 늙었잖아, 그러며 그가 말하길
"너도 내가 있는 곳으로 올 거야,
어느 일요일이나 어느 토요일에,"

나는 바라보았다 꽃 핀 나무들을,
다리 아래로 흐르는 강물을,
돌연 나는 내가 혼자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에게 되돌아왔다. - P91

나무가 모르는 것
박술


넓어진 숲에서, 전혀 네가 아닌, 사프란 향의 바람만이 나를계속해서 만진다. 평범한 젖버섯일 뿐인 내가, 과분한 끌어안음에, 바람에 쏠리면서 검어져
간다. 무너지는 동안만큼은, 마치판관처럼 나를 대해주길 너와 숲의 안에서 나는 거의 보이지않는 희미한 군락을 이루고 있다. 먹혀 없어지기 전에 찾아 헤매는 손들과 먼저 만나길 기도하면서. 그런 감각이 있다. 네 한숨이 돌들을 비집고 나를 들어 올리고 마침내 균사의 끄트머리에 그 따뜻한 숨결을 불어넣을 것 같은 그런... 내 기억의 갓버섯이 사랑을 네게로까지 뻗는다; 지나친 줄도 모르고, 방황의 많은 길을 지나갔고, 네 작은 손가락을 에워싸는 마녀의 반지를 나는 줄곧 만들어두었다. - P103

살해당한 것들
콘스탄틴 카바피


내가 누구였는지 알고자 애쓰지 마라
내가 할 수 있던 말이나 행동을 들먹거리지 마라.
그것이 곧 장애물이 되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내가 살아간 방식과 행동을 바꿔버리고 말았다.
그것이 곧 장애물이 되어 내가 말하려 했을 때
나를 붙들고 좀체 놓아주지를 않았다.
여기 짐작기도 어려운 나의 행동들을 보라
여기 베일에 가려진 나의 글들을 보라-내가 누군지는 이를 통해서만 추측할 수 있을 따름이다.
하지만 어쩌자고 사서 고생을 해야 한단 말인가
그렇게 많은 노력을 들여 나를 이해할 필요는 없다.
언젠가-더 좋은 사회가 도래했을 때 -기어코 나와 꼭 닮은 누군가가
나타날 것이다. 자유롭게 활개를 치며. - P109

지나간 것을 좋아하나요
폴-장 둘레


그대는 지나간 것을 좋아하나요
옛 시절 떠오르게 하는
흐릿하게 지워진
이야기들을 그리곤 하나요?

은은하게
붓꽃과 용연향내 풍기는
발걸음 여읜
낡은 방들과

초상화들의 창백함과
죽은 이들이 입 맞추던
낡은 성유물들
그대여, 바라건대

그들이 당신께 소중하기를,
먼지 쌓인

신비로 가득한 마음에서
당신에게 말 걸어오기를 - P110

나는 일요일의 휴식을 살핀다
기욤 아폴리네르


나는 일요일의 휴식을 살핀다
게으름을 찬양한다
감각들이 내게 떠넘기는
저 끝없이 미미한 지식을
어떻게 어떻게 줄여야 하는가
감각은 산이다 하늘이다.
도시다 내 사랑이다
감각은 사계를 닮는다
그것은 목이 잘린 채 산다 그 머리가 태양이고
달은 그것의 잘린 목이다
나는 끝없이 뜨거운 시련을 겪고 싶다
청각의 괴물인 네가 포효한다 울부짖는다
천둥이 네 머리칼을 대신하며
네 발톱이 새들의 노래를 반복한다
괴물 같은 촉각이 파고들어 나를 중독시킨다
눈은 내게서 멀리 떨어져 헤엄친다
범접할 수 없는 별들은 시련을 겪지 않은 지배자들이다
연기로 된 짐승은 머리가 꽃피웠다
월계수의 풍미를 지니고서
가장 아름다운 괴물이 저 자신을 괴롭힌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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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프랑스 현대사 개관: 절대 왕권에서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① 부르봉 왕가와 계몽주의 시대(1589~1789)루이 14세와 고전주의, 절대 왕권-베르사유 궁전-계몽주의 시대, 백과사전
●데카르트(1596~1650), 코르네유 (1606~1684), 파스칼(1623~1662),
몰리에르(1622~1673), 라신(1639~1699)
●라파예트 부인 (1634~1693)의 『클레브 공작부인 (1678).
●세비네 부인(마리 드라뷔탱 샹탈, 1626~1696)●볼테르(1694~1778), 장자크 루소(1712~1778), 디드로(1713~1784),
라클로 (1741~1803)의 『위험한 관계 (1782)


② 프랑스 대혁명(1789) 7월 14일 민중봉기
1793년 1월에 국왕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처형

●제1공화정 (1792~1804), 국민공회(1792~1795), 총재 정부(1795~1799), 통령 정부(1799~1804)


③ 제1제정(1804~1814): 나폴레옹의 등장

●제정 시작: 1802년 종신통령, 1804년에 또다시 국민투표로 황제 즉위(나폴레옹 1세), 나폴레옹 법전.
●유럽 여러 나라 정복: 1805년 10월에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영국해군에게 격파당함, 1805년 12월 오스테를리츠 전투로 대륙 지배 시작.
●러시아 원정 : 1812년에 러시아 원정과 후퇴 - P23

●엘바섬 유배: 1814년 동맹군이 파리 점령, 실각한 나폴레옹
● 100일 천하 1815년 2월 엘바 섬 탈출에 성공, 황제 복귀. 6월에워털루 싸움 패배-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유배, 사망

④ 왕정복고 시대(1814~1830) 1824년까지 루이 18세-헌장 1830년까지 샤를르 10세

●스탕달(1783~1842)의 ‘적과 흑』 1830년의 연대기‘ (1830)-현대소설의 시작 『파르므 수도원 (1839)

●발자크(1799-1850): 1830년, 현대의 시작(연극에서 소설로 상경京 소설(성장소설)의 표본-고리오 영감 (1835), 『잃어버린 환상』(1843), 창녀들의 영광과 비참』 (1846)


⑤ 7월 왕정(1830~1848) 7월 혁명- ‘부르주아의 왕‘ 루이 필리프 시대


⑥ 제2공화정(1848~1852) 2월 혁명-라마르틴(1790~1869)


⑦ 제2제정(1852~1870)-나폴레옹 3세
샤를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808~1873)는 최초의 프랑스 대통령이자 두 번째 황제, 마지막 군주, 나폴레옹 1세의 조카로1848년 2월 혁명 후에 대통령으로 선출된 뒤 쿠데타로 제2제정을 선포하고 황제로 즉위했다.

●플로베르(1821~1880)의 『마담 보바리』 (1857), 감정교육』 (1869)오스만의 파리 정비 (개선문, 에투알 광장)-산업혁명의 완성-인구의 급증, 도시화, 노동 계급의 형성-사회 구조의 재편.

●에밀 졸라 (1840~1902)의 목로주점』(1877), 『나나』(1880),
날」 (1885)-《루공마카르 총서》 - P24

⑧ 보불전쟁과 파리 코윈-페르 라세즈 언덕, 저항의 벽

⑨ 제3공화국(1870~1940)

●아돌프 티에르(1871-1873) 공화국 행정 수반, 대통령, 1884년 헌법 개정 공화국‘이 프랑스의 ‘결정적 체제‘로 정착

●쥘 페리-과학과 진보에 대한 믿음과 애국심으로 물든 시기, 공화주의적 학교법, 공공 교육의 탈종교화, 1886년부터 교육자는세속인 신분-1세기에 걸친 발전의 기를 완성

●1894년 드레퓌스 사건-유대인 출신 대위 드레퓌스의 유죄 판결, 1894년 기아나로 유배, 1897년 피카르 대령이 그의 무죄 주장, 에밀 졸라, 나는 고발한다」를 <오로르>지에 발표, 지식인세계의 양분, 1899년 드레퓌스 유죄 판결, 대통령 사면

⑩ 20세기의 프랑스.
●‘벨 에포크‘ (19세기 말~제1차 세계대전 전) : 번영과 발전에 대한 믿음과 향수

① 제1차 세계대전(푸앵카레 대통령 집권 중 독일이 프랑스에 선전 포고, 1917년 미국 참전, 독일군 격파, 1919년 베르사유 조약)

●몽파르나스-피카소, 콕토, 샤갈, 헤밍웨이, 스타인, 헨리 밀러의 파리

●1908년 앙드레 지드, <누벨 르뷔 프랑세즈>(NRF) 창간, 세잔에서 피카소까지-입체파

●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전체 77:1913-1927) - P25

●1920년 투르 회의에서 공산당 창당, 소련 혁명 찬양

② 인민전선(1936~1938): 1936년 5월 선거에서 승리한 정권. 레옹 블룸의 사회주의적 급진적 정부

●행동주의 에스파냐 내란-헤밍웨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앙드레 말로(1901-1976) 『인간의 조건 (1933), 『왕』(1930), 『희망』 (1937)-에스파냐 내란

●생텍쥐페리 (1900-1944) 『어린왕자』 (1943) 야간 비행 (1931),
『인간의 대지 (1939)

③ 제2차 세계대전과 제3공화국 붕괴-1939년 9월, 히틀러가 폴란드 침공. 3일 프랑스와 영국, 독일에 선전 포고

4 비시 프랑스(1940~1944)-1940년 7월 앙리 페텡이 국회로부터 전권을 부여받아 국가원수가 되다. 독일과 협력

●알베르 카뮈(1913~1960)의 이방인 (1942), 시지프 신화』(1943),
r페스트』 (1947), 『전락』 (1956) - P16

1장



자아와 역사의 발견



-------스탕달과 발자크 - P27

(2) 적과 흑」에 대하여

① 작가 스탕달.
• ‘에고티즘‘과 실증주의 시대
19세기는 1인칭의 시대였다. 인간은 오직 그 자신만을 목적으로 한다고 생각한 스탕달은 "너 자신이 되라"고 역설했다. 개성의 완벽함과 강렬함, 자기와의 일치, 자기에 대한 만족, 자기 존중만이 그가 추구하는 목표였다. ‘행복 사냥‘, ‘에너지‘(정력), 이것이 스탕달을 요약할 수 있는 열쇠말이었다. 그는 실증주의에 깊이 물든 반항아로 18세기의 비판적, 개인주의적, 공리적 사상(엘베시우스, 루소, 벤담 등)을 바탕으로 자아의 모습을 다듬어 세웠다.
그는 새로운 시대의 인간으로서 운문을 거부하고 고상한 스타일을 파괴하고자 함으로써 현대의 고전이 되었다. 그는 "시의 시대는 가고 의혹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선언한 현대인이었다. 앙드레 지드는 "그는 절도가 있으면서도 열정적인 글쓰기 속에 전통과 현대를 융합시킨 작가였다"고 말했다. 그는 44세에 얄팍한 첫 소설 《아르망스》를 쓰기 시작한 늦깎이 작가였다. 1830년, 대표작이 된 적과 흑을 발표했을 때 그는 47세였다. 그는 부르주아 사회의 도래와 함께과거의 연극 대신 개인주의적인 장르로서의 소설의 시대가 왔음을 자각했다. "소설은 고독한 독서를 통해 ‘행복한 소수‘들을 결속시킨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었다. - P34

그러나 그렇게도 자유주의에 깊이 젖어 있던 그지만, 그의 근본은 귀족 정신이었다. 귀족적 취미와 예술가적 기질 때문에 그는 몰취미와 예술에 대한 무감각이 특징인 부르주아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드러냈다. 출신으로 보나 사회적 역할로 보나 부르주아였던 그는 부르주아라는 말을 경멸적인 의미로 사용했다. 그는 스스로 부르주아의 적이라고 여기면서도 부르주아적 삶의 디테일은 소설적인 것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작품 속에서는 그런 천박한 제재를 멀리하는 경향을 보였다. 따라서 그의 소설에 부르주아의 삶이 등장한다 해도 그것은 흔히 피상적인 것에 그쳤다. - P35

③< 적과 흑>이라는 제목

• 복식당시 법관들의 법복 색인 ‘적‘과 수도회 사제복의 ‘흑‘이라는 해석.

•정치적인 의미에서 ‘흑‘은 성직자 계층을 의미하고, ‘적‘은 쥘리엥의 공화적 지향을 의미한다는 주장.

• 소설의 모두에 언급된 루이 장렐Louis Janrel이라는 인물의 죽음과 관련시킨 상징성의 해석
소설의 제1부 5장에서 쥘리엥은 레날 시장의 집으로 찾아가기 전에 잠시 마을 성당으로 들어간다. 성당 안의 분위기는 이렇다. "모든유리창에는 진홍빛 천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 때문에 햇빛을 받자더없이 장엄하고 종교적인 성격을 띤 현란한 빛의 효과가 이루어졌다." ・・・・・・ 그리고 기도대 위에서 쥘리엣이 읽어 달라는 듯이 펼쳐져 있는 인쇄된 종이 하나"를 발견한다. 거기에는 ‘브장송에서 처형당한 루이 장렬의 최후의 순간과 처형의 상보……‘라고 적혀 있다. - P37

쥘리엣은 생각한다. "그의 이름은 내 이름과 끝 글자가 같구나......"
실제로 이 이름은 쥘리엥 소렐 Julien Sorel의 ‘아나그램‘, 즉 철자를 재배치한 다른 이름이다. 쥘리엣은 교회를 나서다가 성수반 곁에서
‘피‘를 본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그것은 거기 뿌려 놓은 성수였다. "창문에 드리워져 있는 붉은 커튼의 반사가 그것을 피처럼 보이게 했던 것이다." 이 에피소드에 기초해서 교회 안의 붉은색과
‘피‘, 즉 ‘적‘은 작품의 서두에서부터 이미 쥘리엥의 비극적 최후를예언한다고 보는 해석.

• 신분상의 의미
붉은색은 군대 제복이 상징하는 군인 신분(또한 쥘리엥의 우상인 보나파르트는 군대에 기원을 가진 훈장 ‘레지옹 도뇌르‘를 창시함으로써 그 색깔의 상징적 의미를 극대화했다)에 해당하고, 검은색은 왕정복고 시대 지배 세력의 일부인 성직 신분과 수도회에 해당한다고 보는 해석, 이쪽이 더 설득력이 있다. ‘적‘의 세계에 대한 당시 청년들의 동경과 왕정복고로 인해 허물어지고만 기대와 환상, 그리고 ‘흑‘이 지배하는 세계인 현실과의 타협과 야망의 상관관계를 그린 것이 바로 이 소설이기 때문이다.
나폴레옹 1세의 제정 시대였더라면 쥘리엥은 군인(적)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왕정복고 시대, 교회와 수도회가 뒷받침하는 세력이 지배하는 시대다. 쥘리엥의 삶은 이 지점에서 그 방향을 수정한다. - P38

쥘리엥 소렐의 모험은 1826년 9월 말에 시작해 1831년 7월 말에 끝나지만, 사실상 작품에서는 7월 혁명과 그 결과로 이루어진 7월왕조에 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으므로 이 소설은 1830년에 그 종말을 고한 왕정복고 시대에 국한된다고 보아야 마땅하다. 소설에 붙은 부제 ‘1830년의 연대기‘라는 표현은 왕정복고 시대의 역사적·정치적 상황에 대한 작가의 각별한 관심을 손가락질하고 있다. 따라서당대 정치·경제·사회적 현실은 소설의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주제
자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P40

⑤ 나폴레옹과 사회적 유동성: 성장 소설로서의 「적과흑」

혁명의 혼란기와 나폴레옹 치하의 전쟁 속에서 많은 개인과 가족들이 직업과 부와 수직 상승에 의해 신속하게 사회적 상층부에 이르렀다. 나폴레옹 자신은 "미미하고 재산도 없던 일개 중위의 신분에서 황제의 자리에 오름으로써 모든 계층에 사회적 상승 의지를 자극했다. 쥘리엥도 그런 신화를 좇는 신도들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왕정복 시대는 ‘잃어버린 환상‘의 시대다.
비평가들은 이 시대의 특징을 이렇게 지적한다. "쥘리엥 소렐과 함께 우리는 사회적 유동성의 한 양상을 목도한다. 이 야심가의 의식과 행동은 대혁명과 나폴레옹 제정이 19세기의 사회에 불어넣은뜨거운 열망을 말해 준다. 혁명이 앙시앵 레짐의 사회 질서를 파괴한 이후 일개 포병 중위가 황제가 되는 것을 목도한 이래 상향의 움직임은 최하층을 포함한 전 사회 계층에 파급된다. 그러나 쥘리엥의삶은 나폴레옹 제정 이후 사회적 유동성의 가능성과 그 어려움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는 사회의 사다리를 차례로 건너뛴다. 그러나 그의 처형은 유동성이 사실상 크게 제한되어 있음을 말해 준다. 기득권을 배타적으로 지키려는 이들에게 쥘리엥의 성공은 어떤 의미를갖는가? 그는 지방의 부유한 사람들의 공통된 증오 대상이다. 그는감옥에서 마틸드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시골 사람들은 내가 당신 덕에 이룩한 빠른 출세에 기분이 상해 있어요. 내 말을 믿어요. 나의처형을 바라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으니까." - P44

(1) 발자크와 그의 시대

① 연표

1789년 프랑스 대혁명

1799년 집정정부 시대 오노레 드 발자크 탄생

1804년 나폴레옹 제 1제정
1807~1814 방돔 기숙 학교

1815년 100일 천하, 워털루 전투
‘왕정복고‘
1819~1820 《고리오 영감》의 배경

1830년 7월 혁명 스탕달의 <적과 흙> 발표
‘7월 왕정‘
1835년 고리오 영감
1837년 잃어버린 환상
1841년 인간 희극 서문

1848년 2월 혁명
‘제2공화국‘ 1850년 발자크 사망

1851년 루이 나폴레옹 쿠데타
1852년 제2 제정

- P71

인간의 삶에 ‘생각‘이 끼치는 영향과 역할은 놀라운것이다. 발자크는 사회를 그리고 나서 그 모든 비극의 근원인 인간정신의 메커니즘과 법칙을 규명하고자 한다. 이렇게 사회에 가해진 모든 효과와 결과들을 <풍속 연구>에서 묘사한 다음, 철학 연구에서는 거슬러 올라가서 그 원인을 찾아내어 확인하려는 것이다. 이런 망설임과 암중모색의 과정을 거쳐 발자크는 인간과 삶의 전모를 해명해 나간다. 그의 소설들은 이런 해명 과정을 통해 ‘운명의 책‘으로 변한다. 이 철학적인 합류점 덕분에 《인간 희극》 속에 포함된 100권에 가까운(실제로 <인간 희극>에 포함된 소설은 총 89편) 작품들은 단순한 이야기의 차원을 넘어 보편적 인간 인식의 모뉴먼트monument로 승격하는 것이다.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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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소설은 그 전의 소걸 또는 이야기와 어떤 차이를 드러내는가라는 질문이 선행할 터다. 이 질문에 대해 흔히들 ‘리얼리즘‘ 또는 ‘미메시스‘라는 답을 제시하곤 한다. 그러나 이 개념은 매우 광범하고 복잡한 해석을 필요로 한다. 나는 이 문제를 ‘자아‘의 발견, ‘시간‘의 발견이라는 말로 바꾸어 설명해 보려고 했다. 자아의 발견이란 리얼리즘이 그 안에 낭만주의와 개인주의의 씨앗을 안고 있다는 뜻이다. 시간의 발견이란 프랑스사회가 대혁명을 거치면서 구체제가 물려준 영원불변의 통일성에서 벗어나 생성 변화의 힘인 역사를 발견하고 거기에 적응해 나간다는 것을의미한다. 특히 1830년을 기점으로 등장한 선구적 소설(가령 스탕달의 적과 흑,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은 이런 새로운 경험의 문학적 표현이라고 할수 있다. "소설이란 어떤 길을 따라서 이동하는 하나의 거울이다"라는스탕달의 말(적과 흑] 제1부 13장의 제사)은 리얼리즘을 말할 때 어김없이 인용되는 명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말 속에서 "거울"만이 아니라 "길을 따라서 이동하는" 이라는 현재진행형의 동사가 함축하는 현재의 즉흥성과 시간과 역사가 강요하는 생성 변화와 사회적 이동성의 함축에특히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19세기 전반기에서 후반기로 넘어오면서 프랑스 소설은 리얼리즘의 자각을 심화하는 한편, 소설이 무엇을 쓸 것인가에 못지않게 어떻게 쓸것인가라는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의식적으로 그 답을 찾으려는 모색의 과정을 그 소설 자체 속에 반영하게 된다. 이는 플로베르의 등장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소설사적 국면이다. 발자크가 19세기 전반기의 넘치는 에너지와 정념 소설을 표방하며 동시에 ‘역사의 서기‘가 되겠다고자처했다면, 플로베르는 그에 뒤이은 ‘잃어버린 환상‘을 정치한 문장과 언어 구조 속에 조탁하는 위대한, 그러나 금욕적인 소설의 ‘장인‘이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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