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플랫폼 기업의 미션은 ‘착한 독점‘이다. 모순이고 실현 불가능한 목표다. <플랫폼의 생각법 2.0>은 수익과 분리된 ‘지향하는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플랫폼 기업 생애의 2부에 해당한다. 사람들이 독점을 용인하게 할 구호가 필요하다. 페이스북은 ‘사람을 연결하는 기업‘, 아마존은 ‘고객최우선을 추구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모든 플랫폼 기업은 미디어가 되어야 한다. 마음속에는 수익, 주가가 있어도 겉으로는 계속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 지향점을 만들고 끝없이 메시지를 발신하는 미디어가 되어가는 것이다. 일에 미친 개발자에서 능숙한 로비스트로 변해야 하는 순간이다.
그러다가 도달한 희한한 지점이 ‘수익 최소화‘다. 이윤이 목표인 기업이 수익을 줄이는 역설이다. 아마존은 규모에 비하면 턱없이 이익이 적다. 막대한투자를 통해 소비자 편익으로 돌려준다. 검색 시장을 독점하는 구글은 점차콘텐츠 제작자에 주는 광고로 배분을 높인다. 지난 2021년경 배달의민족은 5.8°/°의 수수료를 물리려다 포기했다. 플랫폼 기업은 커질수록 수익화는 어려워지는 역설을 겪는다. - P139

지금 미쳤다는 소릴 듣는 지도자가 있다. 푸틴Vladimir Putin 이다. 우크라이나침공으로 너무 많은 것을 잃은 걸 보면서 다들 ‘대체 왜?‘라고 묻고 있다. 더넓게 보면 침공의 이유는 뚜렷하다. 러시아에겐 시간이 없다. 극단적으로 말해 무너져간다. 인구는 1993년부터 경제는 2015년부터 역성장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면 골키퍼를 빼는 승부수를 던질 때다. - P194

<셰일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의 저자 피터 자이한Peter Zeihan 은 지정학의 세계에서 이단아 같은 존재였다. 셰일혁명 이후 미국의 진정한 전성기가 찾아오고 세계화는 끝장나며, 미국이 발을 뺀 세계는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에는 극단적으로 보인데다 ‘미국인다운‘ 오만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보며 그의 책을 다시 꺼냈다. 밑줄 친 문장을 다시읽었다.
"러시아가 인구 감소에서 살아남으려면 우크라이나·벨라루스 · 몰도바·루마니아·폴란드 · 발트3국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등 11개국을 흡수하는 방법 외에는 도리가 없다."
이 책은 2017년에 출간됐다. 읽었던 내용을 까먹지 않았다면 전쟁이 터지기 직전 주변 사람들과 러시아가 정말 우크라이나를 침공할지에 대해 내기할 때 침공에 걸었을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불확실한 문제가 아니다. 반드시 일어날 일이고 끝이 아닌 시작이다. 단순히 인구가 줄어서 침공을 하는게 아니다. 러시아의 이상적인 국경선은 소련(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때 달성했다. 동쪽은 톈진 산맥과 카라쿰 사막, 중앙은 대초원이 방벽 역할을 했고, 남ㅂ 는 코카서스 산맥이 보호했다.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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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작가 L.P. 하틀리는 그의 소설 『중재Go-Between』에서
‘과거는 곧 다른 나라‘라고 썼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다르게 행동한다." 우리의 세계는 고대의 세계와 다른 듯 닮아 있다. 때로 그들의 행위와 관습이 괴이하고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우리가 귀를 기울인다면 그들은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것이다. - P22

라에톨리 발자국

1978년 탄자니아의 라에톨리에서 발견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의 발자국 화석이다.
360만 년 전 우리의 먼 조상이 직립보행을 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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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남작이 자기를 들여다보는 눈으로, 남작의 요구를 깨달았다. 하고 겨우 중얼거렸다.
"부인이 아시면?"
‘아차!‘
그는 속으로 고함을 쳤다.
‘부인이 모르면 어찌한단 말인가?………… 모르면? ・・・・…… 이것이 허락의 의미가 아닐까? 그러면 너는 그것을 싫어하느냐? 물론 싫어하지. 무엇? 싫어해? 내 마음속에 허락하려는 생각이 조금도 없냐 아..... 허락하면 어쩌냐? 그래도……….‘
일순간에 그의 머리에 이와 같은 생각이 전광과 같이 지나갔다.
"조용히! 아까, 두 시에야 돌아오겠다고 하였으니깐 모르겠지요."
남작은 말했다.
이제야 엘리자베트는 아까 남작이 광고하듯이 지껄이던 소리를 해석하였다. 그리고, 두번째 거절을 해보았다.
"부인이 계시면서두…………?"
‘아차!‘
그는 또 속으로 고함을 안 칠 수가 없었다.


..약한 자의 슬픔 - P17

단조하고도 복잡한 엘리자베트의 생활은 여전히 연속하여 순환되고 있었다. 아침 깨어서는 학교에 가고 하학 후에는 아이들과 마주 놀고,자고---다만 전보다 변한 것은 평균 일 주 이 회의 남작의 방문을 받는 것이라.
대개는, 엘리자베트가 예기한 날 남작이 왔다. 남작이 오리라 생각한 날은, 엘리자베트는 열심으로 남작을 기다렸다. 그렇지만 그 방은 남작부인의 방과 그리 멀지 않은 고로 남작이 와도 그리 말은 사괴지 못하였다. 엘리자베트는 그것으로 남작이 와 있을 동안은 너무 갑갑하여 빨리 돌아가기 를 기다렸다.

...약한 자의 슬픔  - P21

‘남작이 고운가 미운가. 때릴까 안을까. 오랠까 쫓을까.
그는 한참이나 남작을 두고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탁 눈을 치뜨면서 주먹을 꼭 쥐었다. 이제야 겨우 그 원몸이 잡혔다.
"재판!"
그는 중얼거렸다.
그렇지만 남작을 걸어서 재판하는 것은 엘리자베트에게는 큰 문제에 다름없었다. 


......약한 자의 슬픔  - P49

약함이 이 세상에 있을 동안 인류에게는 싸움이 안 그치고 죄악이 안 없어진다. 모든 죄악을 없이 하려면 먼저 약함을 없이하여야 하고, 지상 낙원을 세우려면 먼저 약함을 없이 하여야한다.
만일 약한 자는, 마지막에는 어찌 되노? ・・・・・・ 이 나! 여기 표본이 있다. 표본 생활 이십 년 그는 생각난 듯이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나는 참 약했다. 일 하나라도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것이 어디있는가! 세상 사람이 이렇다 하니 나도 이렇다. 이 일을 하면 남들은 나를 어찌 볼까 이런 걱정으로 두룩거리면서 지냈으니 어찌이 지경에 이르지 않았으리요! 하고 싶은 일은 자유로 해라. 힘써서 끝까지! 거기서 우리는 사랑을 발견하고 진리를 발견하리라!
‘그렇지만 강한 자가 되려면은・・・・・


....약한 자의 슬픔 - P85

그는 벌컥 성을 내어 내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들은뒤의 내 성도 그에게 지지를 않았다.
"여보! 시끄럽소. 노망했소? 당신은 당신이 죽겠다구 걱정하지만, 그래 당신만 사람이란 말이오? 이 방 사십여 인이 당신 하나 나가면 그만큼 자리가 넓어지는 건 생각지 않소? 아들 둘 다 총맞아 죽은 다음에 뒤상 하나 살아 있으면 무얼 해? 여보!"
나는 곁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향하였다.
"여게 태형 언도를 공소한 사람이 있답니다."
나는 이상한 소리로 껄껄 웃었다.
다른 사람들도 영감을 용서치 않았다. 노망하였다. 바보로다.
제 몸만 생각한다. 내쫓아라 여러 가지의 펌이 일어났다.
영감은 대답이 없었다. 길게 쉬는 한숨만 우리의 귀에 들렸다.
우리들도 한참 비웃은 뒤에는 기진하여 잠잠하였다. 무겁고 괴로운 침묵만 흘렀다.
바깥은 어느덧 어두워졌다. 대동강 빛과 같은 하늘은 온 세상을 덮었다. 그 밑에서 더위와 목마름에 미칠 듯한 우리들은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


...태형
- P131

나는 저절로 목이 늘어지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머리에는 어젯밤 그가 이 방에서 끌려 나갈 때의 꼴이 떠올랐다.
"칠십 줄에 든 늙은이가 태 맞구 살길 바라갔소? 난 아무캐 되든 노형들이나…………"
그는 이 말을 채 맺지 못하고 초연히 간수에게 끌려 나갔다. 그리고 그를 내쫓은 장본인은 이 나였다.
나의 머리는 더욱 숙여졌다. 멀거니 뜬 눈에서는 눈물이 나오려하였다. 나는 그것을 막으려고 눈을 힘껏 감았다. 힘 있게 닫긴 눈은 떨렸다.

....태형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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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우리는 보부아르 근처의 작은 수도원에서 머물렀다가 다음 날리브몽 수도원으로 갔다. 오귀스탱 신부는 그곳에 수도사 한 명을 잘알고 있었고, 그분은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온 이유를 듣고 나자 신부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런! 딱하군요. 여기서는 당신들이 어떤 사람인지 말하지 마십시오. 우리 수도원장은 비열한 위선자여서 당신들이 누구인지 알면 당장 손발을 묶어 주교에게 보낼 것입니다. 내가 어쩔 수 없어 함께 생활하고 있는 수도사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타락 속에 빠져 있습니다. 여기서 반 리외쯤 되는 곳에 그들이 관리하는 수녀원이 있습니다만, 이곳은 그들의 방탕을 즐기기에 모자라 이 수도원에 속한 영지에 사는모든 농민들의 아내에게 초야권을 요구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 P95

시니 수도원 사람들은 리브 수도원 사람들보다 덜 문란했다. 그들은 기독교 교리를 설교하며 영주가 되기보다, 증여와 기부를 통해 서서히 재산을 늘리면서 성인으로 통하기를 바랐다. 그들의 식사는 거나했고, 그들의 방은 안락하게 치장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복장은 어느 정도 엄격했고, 일반인들의 방문을 받는 장소에는 어떠한 세속적인 장식도 내걸지 않았다.
그들은 대놓고 초야권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에 드는 유부녀와 처녀는 물론 그들의 관리를 받는 여신도와 은둔 수녀들을 상대로 능란하게 그 권리를 주장할 줄 알았다.
그들은 과부들과 힘없는 자들의 유산을 등쳐먹고, 늙은이들에게서 값비싼 증여를 뜯어내 그들 마음대로 사용하는 데에 탁월한 재간이있었다. 그들은 유언 속에 그들에 관한 언급을 잊은 망자를 위해서는 기도하지 않아서 상속자들이 그 소홀한 몫을 채워 주는 일도 허다하게 벌어졌다.
그들은 또한 돈 많은 독신자들을 성공적으로 그들의 수도원으로 끌어오고 이를 이용해서 상속을 받았다. 고해신부들은 무거운 죄의 고해를 위해 기독교를 위한 기금을 설립토록 했고, 이런 기금은 틀림없이 시니 수도원에 설치되기 마련이었다. - P100

오귀스탱 신부가 내게 말했다.
"귀족이 아닌 우리에게 인생은 단지 긴 고통의 연속일 뿐이지. 만약 우리가 가끔 행복을 만날 수 있다면, 서둘러 이 짧은 순간을 즐기도록 하세. 이 순간은 우리를 위한 것처럼 보이지 않고, 만약 영주들이 우리가 위로받을 수 있는 약간의 휴식을 맛본다는 의심을 품으면,
그들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기 때문이지. 나를 짓누른 모든 고통을겪은 다음, 예상했던 것보다 나의 노후가 길어지고 있네.만약 너희가 항상 행복한 것을 본다면 나는 가장 달콤한 평화 속에서 죽을 수있을 걸세."
- P215

그런데 도량 넓은 샤를 되브쿠르는 자신의 두 영지에 영지 조세의 절반만 부과했다. 그는 피카르디 지방에서 거느린 백성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하는 유일한 귀족이었다. 애석하다! 그가 추락한 것은 이 불행한 시대에는 선을 행하면 망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다. - 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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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는 초야권(初夜權)을 누렸는데, 15세기 초까지 심지어 신부와사제, 그리고 주교도 마찬가지로 그 권리를 행사했다. 그들은 소녀들에 대한 권리를 가졌으며, 이를 이용해서 미혼모에게 벌금을 부과했다. 망나니권 (le droit de havée), 9 판매권, 측량권, 영지 매매권 등을행사해서 영지에서 거래되는 모든 것의 일부분을 그들이 취했다. 잔재권 (Le droit des Epaves) 으로 모든 유기 가축을 차지했고, 그들의 땅을지나는 통로와 강에 대한 통행세, 겨울에 불을 지피는 농민에게 부과하는 세금인 호별세 (le droit de fouage), 임의 몰수권, 사냥 및 어업세,
기타 잡세 및 인두세, 재미를 위한 농지 유린권을 행사했고, 무역을가로막는 외국인 재산 몰수권 및 파선권(破船權) 등을 가졌다. - P13

백성은 죽기 전에 사제의 재산을 늘려주려 하지 않으면 교회 축성지에 묻힐 수 없었다. 혼례를 치르지 않고, 사제에게 결혼 음식을 바치지 않으면 결혼할 수 없었다. 엄청난 특권을 가진 성직자는 십일조를 정확히 납부하지 않는 사람, 교구를 위해 유산을 남기지 않은 사람, 그리고 수도사가 자식을 출가시키라는 명령을 전할 때 따르지 않는 사람을 파문할 수 있는 권리도 행사했다.
가문의 장자가 아닌 사람들은 장자권(長子權) 때문에 어려움에 처했다. 성관(城館)은 종종 강도들의 소굴이었다. 루이 성왕 시대에,
행인을 더 이상 강탈하지 않고 위조화폐를 더 이상 발행하지 않기로했던 영주들은 모두 이전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토지 예속 농노들은 불행을 타고 태어난 초가집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다. 법도, 치안도, 사법도, 풍습도 없어 프랑스에는 온통 강도짓과 미신, 광신,
특권 그리고 불행이 가득했다. - P14

평민들은 잔인한 형벌에 시달리는 데에 반해 특권을 가진 영주들과 성직자들은 이런 형벌과는 무관했다. 이들은 교회 규범에 정해진 처벌만 받고, 사제들에 의해서만 재판받았다.
이런 사실은 이 혐오스러운 시대의 실상을 잘 말해 준다. 재판받는 죄인은 이 세상에서는 화형에 처하고, 저세상에서는 영벌(罰)에처해졌다. 1397 년이 되어서야 이런 가혹한 일을 없애고, 죄수에게도 성례를 허락했다.
종교 축일에도 잔인한 풍습이 느껴진다. 성 요한 축일의 환희의 불은 40마리 정도의 고양이를 불태워 죽이지 않으면 꺼지지 않았다.
14세기 초에도 여전히 성직(聖職) 취득 헌납금(取得 獻納金)이 정착되고, 대사(50년 동안 성지순례로 로마의 성 베드로와 성 바울 성당을 15번 방문한 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가 제도화되었다. 이 세기가 끝날 무렵이 되어서야 사제의 동거를 진지하게 반대했다. 당시 여자들이 남자 수도원에서 지내는 경우가 많았고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이 세기에 북쪽 지방에서 비밀재판이 전례 없이 많이 행해져, 생쥐와 벌레조차도 파문되었다. 이런 파문은 이후 세기 그리고 심지어 우리가 사는 세기(1820년)에도 반복되었다.
1314년 2월 2일 발루아 백작령 의회는 뿔질로 사람을 죽인 황소를 교수형에 처하는 재판관들의 판결을 확정했다. 1444년까지 여전히 광인(狂人) 축제 그리고 비슷한 수많은 광란의 축제가 열려 당나귀와 창녀들이 사제 제의를 입고 교회 안으로 들어와 찬양을 받았다. - P26

영주가 우리의 재판을 시작하려는 순간, 하인이 와서 이르기를 영주의 봉신으로서 그에게 복종하는 이웃 봉토의 후계자가 저택 대문에 와있으며, 주군인 그에게 예의를 갖추고자 한다고 알려왔다. 관례에 따라 그를 즉시 맞아들였다. 그리고 우리를 영주의 무장 사병들과 함께 안마당 구석에 서도록 하고, 저택의 모든 하인들도 불러모았다. 또한 부역에 가지 않은 모든 농노들을 동원했다. 영주로서는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예식을 치르는 것이 권위를 높이는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봉신으로서는 가능하다면 주군 혼자만 만나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는데도 말이다.
모든 준비가 갖춰지자, 봉신이 입장했다. 그는 자기 영지에서 하던대로 붉고 흰 저고리와 바지를 입고, 같은 색의 모자를 쓰고 있어 오른쪽 절반은 흰색이고 왼쪽 절반은 붉은색이었다. 목에는 노루 뿔을 매단 새끼줄을 두르고 두 다리 사이에는 말 탄 듯 장대를 끼우고 있었다.
남자는 영주에게 다가가면서 양손으로 장대 두 끝을 잡고, 커다란호박을 머리에 인 채였는데, 호박은 만지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의봉토 출신 여자 4명이 염소젖이 든 항아리를 갖고 그의 뒤를 따랐다. - P42

나는 이 행렬과 광경을 놀란 눈으로 보고 아버지와 형들에게 종종 이이야기를 꺼내었으며, 아직도 그 기억이 머릿속에 가득 남아 있다.
봉신은 영주 앞에 이르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이제까지 떨어뜨리지 않고 머리에 이고 있던 호박을 장대 끝을 잡고 있던 손의 손가락으로 지탱할 수 있었다. 동시에 영주가 그에게 물었다.
봉신, 무엇을 바라는가?"
봉신은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 호박을 두 손으로 잡아 자기 앞에 놓고금으로 된 작은 십자가를 그 위에 놓으며 대답했다.
"전하, 전하의 어진 봉신이었던 제 부친의 별세로 비천하나마 소생이 전하의 봉신이 되고자 합니다. 여기 와서 모든 사람들 앞에서 전하가 나의 주군 되심을 아뢰고, 내가 가진 모든 것과 갖게 될 모든 것은전하의 허락을 받아야만 나에게 속한다는 것을 고하며, 이 빛나는 황금 십자가와 하늘, 땅, 기품, 성(聖) 게오르기우스의 장검, 나의 생명 그리고 이 성스러운 채소의 이름으로 전하의 충직한 봉신이 될 것입니다. 또한 전하를 위하여 모든 정성과 거느린 사람들의 몸과 목숨그리고 재산을 사용할 것이며, 내게 할당된 전하의 따님 결혼 지참금을 지불할 것이며, 포로가 된 전하 아드님의 몸값을 갚는 데 기여할것이며, 필요할 경우 전하를 위한 인질이 될 것이며, 저에게 부과하는 과금과 세금 납부를 이행할 것을 맹세합니다. 상반된 생각을 갖는다면 나는 배반자요, 저속한 자이며 극형을 받아야 하는 것이 마땅함을 언명합니다."
영주가 크게 소리쳤다.
"배반자, 저속한 자, 극형!" - P43

그러자 모인 농노들도 큰 소리로 따라 했다.
"배반자, 저속한 자, 극형!"
이 말이 끝나자 봉신은 주먹으로 호박을 내리쳤고 호박이 깨지며그 속에서 자고새 1마리가 나왔다. 자고새는 날지 못하도록 날개 끝이 잘린 채였다. 영주가 양쪽에 거느리고 있던 개 2마리가 자고새에달려들었고, 그러는 사이 영주는 봉신의 장대를 낚아채고 역시 봉신에게 달려들었다.
잠시 후, 개 1마리가 자고새를 잡았으나, 영주는 봉신을 잡지 못하니 봉신이 멈추었다. 이제 영주도 멈춰 서서 개가 물고 있던 자고새를빼앗아 봉신에게 저녁 식사용으로 주었다. 만약 개가 먹이를 잡기 전에 영주가 봉신을 잡았다면, 자고새는 그의 몫이 되었을 것이다.
자고새를 받은 봉신은 영주에게 동전 3개를 바치고 물러났다. 그러자 영주는 처녀 4명이 가져온 항아리에 든 염소젖으로 얼굴과 손발을 씻었다.
비록 영주들에게는 신성한 것이지만 어리석은 이 의식, 법과 같은힘을 지닌 이 우습고 역겨운 관습을 눈으로 보고 있노라니 인간 정신의 보잘것없음에 한숨이 나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인간이란 사방의 비천한 것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 스스로 대단해진다고 생각하고, 그가 지배하는 모든 사람들을 비천하게 하려고 하지만 실제로는 스스로 비천해질 뿐이다.
봉신이 물러나자, 영주는 오른쪽에 재판관, 왼쪽에는 집행관을 거느리고 높은 자리에 앉았다. 그는 우리 모두를 자기 앞에 오도록 하고, 성전기사에게 그가 누군지,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자기 영지의 농노가 되는 데에 동의하는지 물었다. - P44

낯선 남자는 자신이 누군지 어디서 왔는지 말할 수 없지만 로렌 지방에 있는 가족에게 간다고 대답하면서, 자신은 귀족 신분이기 때문에 자신을 종살이시키는 것은 잘못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영주가 되물었다.
"자네가 귀족이라는 것을 누가 내게 증명할 수 있을 텐가? 도대체언제부터 프랑스 귀족이 자신의 땅을 벗어나 홀몸으로 다니는가? 자네가 영주라면 거느리는 집행관과 무사, 사냥매와 개를 데리고 다닐것이다. 자네 가문의 기(旗) 나 기장(章)을 보여라."
"나의 모든 귀족 표시 가운데 남은 것은 내가 가진 장검뿐이오."
외삼촌의 주인이 대답했다.
"네 손에 가진 장검 하나로는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다. 농노가 되든지 아니면 네가 누군지 떳떳하게 신분을 밝혀라."
"내가 누군지 알 필요 없소. 노예가 되느니 차라리 죽을 것이오. 당신들이 감히 나를 붙잡을 수 있는지 두고 보시오!"
이 말과 함께 성전기사와 그의 좋은 손에 칼을 들고 밖으로 도망쳐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저택의 도개교가 올려지고, 그들뒤에 사나운 개 6마리와 무사들을 풀었다. 저항은 오래가지 않았다.
긴 미늘창으로 무장한 영주의 무사들은 두 남자의 장검을 상대했다.
장점은 미늘창을 휘두르는 사병들을 당할 재간이 없었다. 이런 싸움을 위해 훈련된 개들과 무사들은 힘을 모아 두 낯선 남자에게 여기저기상처를 입힌 다음 큰 어려움 없이 칼을 땅에 내려놓도록 만들었다.
무사들은 두 남자를 포승줄로 꽁꽁 묶어 재판대로 다시 데려갔다. - P45

"고문을 준비하도록, 이들을 반역자 취급해서 처단해야 해. 그러기전에, 이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야겠어."
영주가 말했다.
먼저 성전기사를 취조했다. 그는 불굴의 용기로 취조를 견디면서한마디도 실토하지 않았다.
영주의 하수인들은 그에게서 아무런 수확도 얻어내지 못해 실망한나머지, 불행한 내 외삼촌에게 같은 방법의 고문을 가했다. 외삼촌도이를 악물고 주인을 따라 했다. 하지만 초주검이 되어 힘이 바닥난 상태에서 파문당한 성전기사를 모시고 있다고 털어놓고 말았다.
"아! 맙소사!"
성전기사는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숨을 거두었다.
"뭐라고! 성전기사였다고?"
영주가 말했다.
"그가 죽었다니 안타깝다. 저놈을 산 채로 프랑스 국왕 앞에 끌고 간다면, 왕의 환심을 살 수 있었을 텐데. 그래도 저놈 시체를 소금에 절이도록. 궁정에 가져가도록 하지. 저 시체를 갖고도 챙길 몫이 있을것이다."
그러는 사이, 영주는 판결을 내려 나의 외삼촌은 파문당한 자를 모셨다는 죄로, 나의 어머니는 그를 집으로 맞아들였다는 죄로 교수대에 매달려 죽도록 했고, 이 날벼락 같은 명령은 당장 실행에 옮겨졌다. 그리고 나의 아버지와 우리 네 아들에게는 평생 발목에 쇠고랑을차고 다니며, 죽을 때까지 가장 고된 종살이를 하면서 고통 속에 죽어가도록 했다. - P46

앞에서 말했듯이 그 당시 나는 4살이었다. 사람들은 내 나이를 고려하지 않았다. 그들은 내 아버지, 형들과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무거운 쇠고랑을 채웠고, 땅 파는 일을 시켰다.
3년의 세월이 끊임없는 고통과 땀 그리고 가난 속에서 지나갔다.
참으로 끔찍하게 죽음에 던져진 어머니를 밤낮으로 애도하던 나의 아버지는 헤어날 수 없는 절망 속에 빠졌다. 그나마 목숨을 부지했던 것은 우리를 지키려는 마음 때문이었으며, 자살하는 사람은 영원히 지옥 불에 떨어진다는 것이 두려워 스스로 목숨을 끊지 못했다.
마침내 어느 날, 우리가 쇠고랑을 차고 살도록 만든 영주는 가까운숲에 사냥놀이를 가고 그의 재판관은 십일조와 봉건세를 내지 못하는불쌍한 사람들에게 판결을 내려 처벌하고 있었다. 우리는 아버지와함께 무척 힘든 부역을 하는 중이었는데, 맏형인 가스파르가 우리를불렀다. 그에게 다가가니 더위와 피곤으로 기진맥진한 아버지는 흙먼지 위에 몸을 뻗어 누운 채였다. 형 가스파르는 그때 14살이었고총명한 소년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도망을 가자고 제안했다.
"저런! 얘들아, 우리가 어디로 간단 말이냐?"
아버지가 말을 가로챘다.
"어딜 가나 여기서와 같은 취급을 당할 거야. 세상 사람들은 온통주인과 종이야. 힘 약한 사람은 힘센 사람의 노예가 되기 마련이란다. 하느님도 그것을 원하신단다. 사제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말이다." - P47

폭군들이 멀어지자, 우리는 다시 길을 재촉했다. 나는 더 이상 몸을가눌 수 없었고, 아버지는 나를 등에 업었다. 여전히 걸어야만 했기때문이다. 통행세를 내면서 강을 건너고, 배를 타고 길을 걷고, 다리를 건넜다. 다음 날 저녁이 되었을 때, 우리는 더 이상 가진 돈이 없는상태였다. 하루하고 반나절을 지나는 동안 우리는 통행세를 11번이나바쳤다.
우리가 떠나온 영지에서 약 7~8리의 정도 떨어져 있는 외브쿠르(Heubecourt) 4 땅에 도착한 때였다. 우리는 입구를 통과하기 위해 우리의 폭군 영주의 기장을 보여 주어야 했는데, 그 문장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우리는 문장을 증거로 내밀며 교회 일을 위해 왔다는 핑계를 댔지만 소용없었다. 돈을 내야만 했다. 우리에게 더 이상 가진 돈이 없었기 때문에, 문을 지키던 사람들은 우리를 외브쿠르 영주의 농노라고 선언했다. 세금을 내지 않고 영지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과 물건의 소유권을 영주에게 허락하는 외지인 소유재산 몰수권을 내세운 것이다. - P50

내 아버지와 형들이 영주의 번영과 오귀스탱 신부의 행복을 환호하며 벌어 주는 것을 보니 돈 많은 사람들은 마음만 먹으면 행복해질수 있고 원하기만 하면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조그만 선행을 베풀기만 해도 사방에서 좋아하기 때문이다.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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