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약을 뿌리고 비누를 가져다주었지. 하지만 당신 생각에 그들이 우리를 아껴서 그랬을 것 같소? 그럴 가능성은 없소. 우리가 병들어 죽으면 너무 끔찍할 테니 우리가 살아 있는 쪽을 선호한 것뿐이오. 만약 우리가 점점 말라가다가 종잇장처럼 변해 재가 되어 떠내려간다면, 그들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을 거요. 그들은 그저 자기들 마음이 불편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뿐이오. 그래야 편안히 잠을 잘 수 있으니까."
"난 모르겠어요."K가 말했다. "모르겠어요."
"깊이 들여다보지 않아서 그렇소." 로버트가 말했다. "그들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시오. 그러면 알게 될 거요."
K는 어깨를 으쓱했다.
"당신은 갓난애요." 로버트가 말했다. "평생 잠을 자고 있었던 거나 마찬가지지 이제 깨어날 때가 되었소. 왜 그들이 당신이나 아이들에게 자선을 베푼다고 생각하시오? 당신이 그들에게 위협적이지 않고,
눈을 감은 채 주위에 있는 진실을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오."
이틀 후, 그날 밤 밤새도록 울었던 아이가 죽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수용소 안이나 가까운 곳에 무덤을 팔 수 없다는 상부의 철통같은 지시가 있었기에, 아이는 시립 공동묘지 뒤편에 묻혔다. 열여덟 살먹은 아이 엄마는 아이를 묻고 와서 식음을 전폐했다. 그녀는 울지 않고 자기 천막 옆에 앉아 프린스 앨버트 쪽만 하염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위로하기 위해 찾아온 친구들의 말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친구들이 몸에 손을 대면 밀쳐냈다. 마이클 K는 그녀가 자신을 볼 수 없는 울타리 부근에 서서 그녀를 바라보며 몇 시간을 보냈다.  - P123

나는 지금 교육을 받는 걸까? 그는 궁금했다. 드디어 수용소 안의 삶에 대해 배우는 걸까? 삶의 장면 장면이 그의 앞에 펼쳐졌고, 모든 장면이 서로 연결되는 것 같았다. 그것이 무엇일지 아직 알 수는 없었지만, 모든 게 하나의 의미로 수렴되거나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녀는 하룻밤과 하루해를 천막 옆에 앉아 있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여전히 울지도 않고 먹을 것도 입에 대려 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았다. K가 아침마다 가장 먼저 하는 생각은 ‘오늘은 그녀를 볼 수있을까?"였다. 그녀는 키가 작고 뚱뚱했다. 아무도 아이 아버지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저 산에 있다는 소문만 들렸다. K는 자신이 마침내 사랑에 빠진 건 아닌지 궁금했다. 사흘이 지나자 여자는 다시 밖으로 나와 자기 삶으로 되돌아갔다. K는 다른 사람들 사이에 있는 그녀가 그들과 다른 점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그녀에게 결코 말을걸지 않았다.
12월 어느 날 밤, 수용소 사람들은 함성 소리에 잠에서 깼다. 그들은 비틀거리며 침대에서 일어나 프린스 앨버트 방향 지평선 위에서 컴컴한 하늘을 배경으로 거대하고 아름다운 오렌지색 불꽃이 타오르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놀라움에 숨이 멎고 휘파람이 절로 나왔다. "경찰서가 틀림없어!" 누군가 외쳤다. 그들은 불길이 분수처럼 너울거리며 타는 모습을 한 시간가량 지켜보았다. 몇 킬로미터에 걸친 텅 빈 펠트를 가로질러 사람들이 고함치고, 비명을 지르고, 요란하게 불길이 타오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러다 차츰차츰 불빛이 더 붉어지고 무뎌지면서 강렬함을 잃더니 연기에 섞인 불꽃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몇몇 아이들은 부모 품에서 잠이 들거나 눈을 비볐다. 이제 침대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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