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어두운 저편 창비시선 308
남진우 지음 / 창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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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
땅바닥으로 추락한 새
삭아서 앙상한 뼈와 깃털 몇개로 남았다
사람들이 무심코 밟고 지나가다
침을 뱉는다
담배꽁초를 던진다
보도블록 틈새
흐린 얼룩으로 들러붙어 있는 새 한 마리
그래도 바람이 불면
땅바닥을 벗어나 솟구쳐오르겠다고
먼 하늘 향해
하나 남은 가느다란
깃털을 흔든다
------------------------
모퉁이를 돈

누군가는,
얼굴을 보이지 않고,
저벅이는 발자국으로 지나간다

가만히 숨죽이고 담장에 귀대어보는 나

그건,
어쩌면,
인간의 몸을 한 사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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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 캔자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토마스 프랭크 지음, 김병순 옮김 / 갈라파고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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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은 가난이 재생산되는 사회적 체계를 점검해 볼 시간도, 여력도 없다. 대신에 가난이 개인의 능력이라는 공정한(!) 기준에 따른다는 주장을 내면화한다. 그들은 삶을 보상받을 다른 가치를 원한다.

1. 경제, 다가설 수 없는 연인
경제는 심장박동처럼 멈출 수 없는 삶의 문제이지만 반복된 일상이기에 그 작동방식에 둔감해지기도 한다. 사회가 고도화될수록 개인의 차원에서 장바구니 물가만 유독 오르는 이유를 해명하는 건 더욱 어려운 일이 된다. 그러므로 그 지난한 과정을 두고 탐정놀이를 하기보다는 백마를 타고 오는 선지자처럼 단칼에 이 고난의 사슬을 끊어낼 영웅을 고대하게 된다.

2. 문화가 바로서야 나라가 산다.
모든게 엉망이 된 가장 큰 이유는 개혁한답시고 커피를 홀짝이며 대도시의 멋들어진 사무실에 앉아 현학적인 말을 늘어놓는 저 잘난 '자유주의자'들 탓이다. 그들은 유대인이나 프리메이슨처럼 암울한 현실을 조장하는 장막뒤의 검은 손이다. 그들이 자생하는 이 타락한 문화를 먼저 구원해야만 바른 질서가 가능하다. 향락과 육욕의 화신이자 상징인 클린턴을 보라.

3. 이상향으로서의 과거 회귀
그렇게 8년을 선거로 응징했다. 대통령도, 의회도, 사회 각 부문의 소소한 자리들도 싸워서 쟁취했다. 그러나 삶은 더욱 팍팍해졌다. 우리의 성전이 승리의 순간에도 무력한 것은 우리가 외면하는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저 망할 놈의 자유주의자들이 심어놓은 해악이 그만큼 뿌리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과거의 멋진 이상향을 되찾기 위한 싸움은 멈출 수 없다.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가 아니라 "문제는 문화야, 이 위선자야"
이렇게 오늘도 가난한 사람들은 계급을 배반하는 숭고한 사명을 행사하기 위해 투표장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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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신 - 신은 과연 인간을 창조했는가?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한음 옮김 / 김영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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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건한' 종교의 가르침은 비록 그 자체로는 극단적이지 않아도 극단주의로 이어지는 공개 초청장이 된다. - 본문 중에서

도킨스는 불가지론자이거나 종교와 과학의 화해를 말하는 중용론자가 아니다. 그는 강력한 '무신론자'로서 종교 자체의 소거를 주장한다. 풍부한 논증으로 근본주의 탈레반과 맞서는 저자의 견결한 태도는 매우 합리적이며 공공선에 부합하는 듯 보인다.

이런 전투자세는 각종 신도 모자라 조상복마저 비는 우리에게는 낯설어 보이지만 절대자의 위엄 앞에 짓눌려온 서양의 개인들이 르네상스와 근대의 존재론적 회의를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종교의 폐해에 심각하게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저자의 자리가 소수자(혹은 소수권력)의 옆이라는 점이 곧 논증의 정합성을 보장해주지는 않는 바, 논점으로 삼을 수 있는 많은 재료들 중에 2가지만 중점적으로 고찰해보면,

1. 부시와 빈 라덴(그리고 그들의 무수한 선배들)으로 대표되는 근본주의 탈레반들이 오로지 자신의 종교적 믿음을 위해서 이 모든 비극을 연주한다는 가정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설사 그들이 완전한 종교적 열정에 휩싸여 서로를 향한 파괴 행위를 기도하더라도 그 실행을 뒷받침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세속적 권력과 이익 추구 집단이다.

그들 전체가 유신론에 휩싸인 광신도 집단이라고 가정하는 건 프리메이슨의 세계 정복 야욕이 현실적 위협이라는 것과 별다를 바 없는 주장이다. 그들 대부분은 'Money' God을 섬기는 유물론자들로서 종교는 그들이 대중을 미혹할 때 주입하는 유용하고도 강력한 수단 중의 하나일 것이다. 현대에는 신의 자리에 올라선 향락, 욕망, 자본, 이데올로기가 차고 넘친다.

2. 도킨스는 인간의 합리적 이성을 바탕으로 조직된 사회의 건강성을 매우 긍정하지만, 그것은 종교라는 비합리성에 바탕을 둔 상대가 반대편에서 강력한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대는 바가 크다.

그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비롯한 밈 이론을 사회 영역까지 확장함으로써 윌슨과 더불어 사회생물학의 강력한 지원군 역할을 하고 있다. 사회생물학은 (사회적) 불평등이 생물학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불가피하고 변화불가능한 조건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인간의 '모든' 측면이 유전자 안에 부호화되어 있고 자연선택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도킨스 자신은 그런 극단적인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할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의도와 상관없이 사회생물학은 (사회)권력으로서 자신의 입지를 다져가고 있으며, 그 양상은 과거의 종교가 누린 명성과 닮아있다. 이것은 마치 예수 운동이 가졌던 혁명적 사회평등 사상이 전부 거세되고 세속화된 교회들만 건재한 현실과 유사하다.

즉, 도킨스의 선의와 상관없이 사회적 밈의 영역안에서 그의 명확한 논리를 신봉하는 집단은 자신의 세력이 확고해질수록 상대방에 대한 일상적인 모욕과 배타적인 태도를 내면화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그들의 과학적 신념은 때론 종교적이기까지 하다.

비유하자면, 종교는 기부를 말하고 과학은 복지를 말한다. 나는 자발적 기부가 활발한 사회보다 보편적인 복지가 널리 깔려있는 사회가 훨씬 건강하다고 생각하지만 둘 중에 하나만 있는 세상은 꽤나 삭막하리라 생각한다.

아마 그 행위 안에 '사랑'은 거의 담겨져 있지 않을테고 세상은 여전히, 그리고 영원히 설명할 수 없는 섭리들로 채워져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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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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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는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그리스 서사시이다. 이 작품은 ‘고전’이란 단지 오래 묵은 세월의 무게로 지탱되는 원로원의 수장 같은 존재가 아니라, 지난한 세월조차 흩어버리지 못한 삶에 대한 시원(始原)적 통찰이 담겨 있는 책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세상만사에 지치지도 않고 간섭을 일삼는 ‘일리아스’의 신들은 전혀 신성하지 않다. 그들은 불멸의 존재이지만 필멸의 인간보다 나약하고 변덕이 심하다. 인간은 자신의 선택에 운명이란 이름으로 얽혀 있지만, 신들은 일시적인 아픔 앞에서 리셋 버튼을 남발한다.

그러므로 고향을 못내 갈구하는 오뒷세우스와 달리 신들에게는 향수병 같은 ‘그리움’이 없다. 그들은 어디든지 자유로이 운행할 수 있지만 발목이 피로에 잡혀 고단해질 때 간절히 되돌아갈 거처가 없다. 넥타르 한병, 암브로시아 한 접시면 더한 기쁨도, 더한 슬픔도 없다.

그래서 자신의 운명을 벗어날 수 없는 필멸의 인간은 그 경계를 찢고 나가려는 일탈의 충동을 끊임없이 발산하지만 신들에게는 파토스에 대한 자각이 없다. 그들은 슬픔이라는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자신들을 사로잡는 정념의 실체를 말로 표현하지 못한다.

서사시 이후로 그리스인들은 자유로운 신들의 관용(?)을 찬양하고 숭배하면서도 공허함은 떨어냈다. 어찌 보면 ‘오뒷세이아’는 ‘일리아스’라는 영웅의 세계를 탈피해가는 그리스 세계의 변화상을 상징한다. 인간은 신화를 매듭 짓고 역사를 자신의 필치로 써내려갔다.

이후 벌어진 전제정과 민주정, 폴리스와 제국의 긴장과 붕괴는 지극히 인간적인 흔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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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 - 정치와 죽음의 관계를 밝힌 정신의학자의 충격적 보고서
제임스 길리건 지음, 이희재 옮김 / 교양인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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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정치인(혹은 정치세력)들은 겉으로는 살인과 자살같은 '폭력 치사'를 줄여야 한다는 당위에 반대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범죄와 불안 테마를 기꺼이 환영한다.

1. 수치심
저자에 따르면 수치심이란 단지 외부에 내세울 것이 없는 결핍의 상태이거나 그런 상황이 공개됨으로써 느끼는 부끄러움을 넘어 일체의 자존감을 상실한 상태, 즉 자신에 대한 사랑이 고갈된 상태를 일컫는다. 수치심에 빠진 사람이 외부로 극단적인 폭력을 발산하면 살인을 하게 되고, 자신을 향한 죄의식과 결합하면 자살로 이어진다.

2. 개인을 둘러싼 사회망
수치심과 모욕감을 주는 요소들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타인과 불평등한 처지에 놓여 있다는 상황인식이 주요하게 작용하며, 이를 추동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이 바로 실업이다.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낙인이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찍힌 사람은 쉽사리 폭력으로 기운다. 이러한 경향은 공화당 집권기에 압도적으로 나타난다.

3. 분할 통치
가난한 다수가 공화당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이중 화법'이 감정에 호소하고, 책임소재를 특정인에게 귀속시키지 않으며, 인과관계를 은폐한 채 단호한 제스처를 보이기 때문이다. 범죄의 증가는 관용정책을 비판하고 처벌 강화를 선호하게 만들며, 집단 내의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여 연대 대신 분할을 유지하도록 한다.

ps. 얼마 전에 이마트에서 '반값 안경'을 판매한다는 뉴스가 나왔을 때 다수의 찬성을 받은 댓글들은 대부분 폭리를 취해 온 기존 안경점을 질타하면서 그들의 몰락이 사회 정의 구현과 등치된다는 주장들이었다. 다수의 힘없는(?) 소비자가 소수의 탐욕스런(증명되지 않은) 소자본 자영업자를 공격하는 와중에 대자본 이마트의 독점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분할 통치는 로마 시대부터 검증받은, 탁월하고 효과 만점의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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