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 캔자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토마스 프랭크 지음, 김병순 옮김 / 갈라파고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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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은 가난이 재생산되는 사회적 체계를 점검해 볼 시간도, 여력도 없다. 대신에 가난이 개인의 능력이라는 공정한(!) 기준에 따른다는 주장을 내면화한다. 그들은 삶을 보상받을 다른 가치를 원한다.

1. 경제, 다가설 수 없는 연인
경제는 심장박동처럼 멈출 수 없는 삶의 문제이지만 반복된 일상이기에 그 작동방식에 둔감해지기도 한다. 사회가 고도화될수록 개인의 차원에서 장바구니 물가만 유독 오르는 이유를 해명하는 건 더욱 어려운 일이 된다. 그러므로 그 지난한 과정을 두고 탐정놀이를 하기보다는 백마를 타고 오는 선지자처럼 단칼에 이 고난의 사슬을 끊어낼 영웅을 고대하게 된다.

2. 문화가 바로서야 나라가 산다.
모든게 엉망이 된 가장 큰 이유는 개혁한답시고 커피를 홀짝이며 대도시의 멋들어진 사무실에 앉아 현학적인 말을 늘어놓는 저 잘난 '자유주의자'들 탓이다. 그들은 유대인이나 프리메이슨처럼 암울한 현실을 조장하는 장막뒤의 검은 손이다. 그들이 자생하는 이 타락한 문화를 먼저 구원해야만 바른 질서가 가능하다. 향락과 육욕의 화신이자 상징인 클린턴을 보라.

3. 이상향으로서의 과거 회귀
그렇게 8년을 선거로 응징했다. 대통령도, 의회도, 사회 각 부문의 소소한 자리들도 싸워서 쟁취했다. 그러나 삶은 더욱 팍팍해졌다. 우리의 성전이 승리의 순간에도 무력한 것은 우리가 외면하는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저 망할 놈의 자유주의자들이 심어놓은 해악이 그만큼 뿌리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과거의 멋진 이상향을 되찾기 위한 싸움은 멈출 수 없다.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가 아니라 "문제는 문화야, 이 위선자야"
이렇게 오늘도 가난한 사람들은 계급을 배반하는 숭고한 사명을 행사하기 위해 투표장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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