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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라스 일본사 - 역사읽기, 이제는 지도다! ㅣ 아틀라스 역사 시리즈 4
일본사학회 지음 / 사계절 / 2011년 4월
평점 :
1. 고대
▷ 조몬繩文 문화 (기원전 1만 년 ~ 기원전 3세기)
오모리 유적에서 최초로 '줄무늬(繩文)가 있는 그릇'을 발견하여 이것을 '조몬식 토기'로 명명
- 특징 : '마제석기, 토기, 농경'이라는 신석기시대 일반의 특징과 달리 장기간 농경문화 결여
▷ 야요이 시대 (기원전 3세기 ~ 서기 3세기)
규슈 지방을 중심으로 야요이식 토기가 등장
- 특징 : 농경 개시와 금속기 사용 (자생적인 변화가 아니라 외부(한반도)에서 이식), 계급사회 출현으로 정치 공동체 '구니國' 형성
▷ 야마타이 국
여왕 히미코가 대부 난쇼마이를 위나라에 사신으로 파견 (239년) → 위 명제가 '친위왜왕親魏倭王' 칭호를 내리면서 중국의 책봉체제 편입 시도
- 한반도와 교류 : 철 자원 확보 목적
▷ 야마토 정권 (4세기 초)
긴카의 야마토를 중심으로 형성되었으며, 게이타이 천황대에 호족 세력을 제압하고 세습 왕조 건설
▷ 소가씨 정권 (~ 645년)
게이타이 천황 사후 모노노베 씨와의 권력 다툼에서 승리하고, 스이코 천황과 쇼토쿠 태자 옹립
- 특징 : 불교 중심의 아스카 문화
▷ 덴무(673~686)·지토(690~697) 천황
진신(壬申)의 난을 통해 야마토 호족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제거하고 정권 장악(덴무)
- 특징 : 천황을 '아라히토가미(現神人)'로 신격화하고 국호를 '왜'에서 '일본'으로 변경, 율령 제정
* 율령 : 율은 형법, 령은 행정과 조세, 노역, 관리 복무 규정 등을 말한다.
▷ 나라시대 (710~794)
겐메이 천황(나라 천도) ~ 간무 천황(헤이안 천도) 시대
- 특징 : 황위 계승을 둘러싸고 황족과 귀족들(후지와라 가문)의 정쟁이 계속되고, 궁전과 사원 조영으로 재정 파탄
* 공지공민제 붕괴 : 과도한 세금을 견디지 못한 농민층이 호족과 귀족에게 몸을 의탁하고, 이들이 대규모 장원의 주인으로 등장하면서 토지와 인민을 모두 국가 소유로 규정한 공지공민제가 유명무실해졌다.
▷ 국풍 문화의 발전
견당사 파견 중지(894)를 계기로 대외 관계를 단절한 채 대륙 문화를 일본의 풍토 및 사상과 조화시키려는 움직임 태동
- 특징 : 가나 문자(히라가나, 카타카나) 발명, 일본 고유 형식의 시 와카(和歌) 성행, 모노카타리(物語) 성립
2. 중세
▷ 무사의 등장
10세기 농민군이 해체된 지방의 치안을 담당하기 위해 중앙에서 내려보낸 중하급 귀족 계층(쓰와모노,兵)이 무사의 시조이며, 11세기부터 지방 호족과 결합하거나 무력으로 영지를 차지하여 지방영주로 변모. (사무라이待는 본래 교토에 머무르는 상급 귀족을 호위한다는 뜻)
* 무사단 구성 : 일족의 수장 - 가자家子(일족) - 낭당郞黨 - 하인下人·소종所從
▷ 가마쿠라 막부(1180년대~1333)
세이와 겐지의 후손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세운 최초의 무가 정권으로 헤이시 정권 타도 과정에서 자신을 따르는 무사들이 적군의 토지를 몰수하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은상으로 급여하는 획기적인 조치를 통해 많은 무사들과 주종관계를 맺고 세력을 확장했다.
* 세이타이쇼군(征夷大將軍, 이하 쇼군) : 본래 나라·헤이안 시대에 동쪽 지역의 에미시 정벌을 위해 파견된 장군의 명칭이었는데, 요리토모가 천황에게 이 직책을 받으면서 막부의 수장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 고케닌(御家人) : 막부의 수장과 주종관계를 맺은 무사
▷ 조큐의 난(1221)
요리토모 사후 권력 다툼으로 막부가 동요하자, 이를 틈타 고토바 상황(퇴위한 후에 천황의 후견인을 자처하면서 실권을 장악한 전임 천황)이 거병했지만, 막부군에게 패한 사건. 이를 계기로 막부는 천황을 폐위하고 세 명의 상황을 유배시킨다.
- 영향 : 상황의 재산을 물려받은 고케닌들이 새롭게 지토(地頭)에 임명되어 서국 지역으로 대거 진출하였고, 막부 중앙에서는 유력 고케닌들로 구성된 평정중評定衆이 설치되어 집단 합의 정치가 시행된다.
▷ 몽골 침략
1차 원정(1274)과 2차 원정(1279) 모두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10세기 이후 국제적 긴장 관계를 경험하지 못했던 일본은 정신적 충격이 심대했다. 2차 원정시 불어닥친 태풍은 일본을 가호하는 신들이 '가미카제(神風)'로 외적을 격퇴한다는 신국사상神國思想을 널리 퍼뜨렸다.
- 영향 : 몽골 침략 방어에 동원된 고케닌들이 충분한 은상을 받지 못하고, 화폐경제의 발달로 생계가 날로 궁핍해지자 악당-장원영주나 막부체제에 저항하는 무사들을 지칭-으로 변모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 가마쿠라 시대의 종교
1) 정토종淨土宗 : 염불(나무아미타불)만 외치면 누구나 극락에 갈 수 있다는 호넨의 가르침을 설파
2) 잇펜(시종, 時宗) : 정토종 계열로 신앙심의 유무와 상관없이 모든 인간은 구제받는다는 가르침을 설파
3) 니치렌(법화종) : '남무묘법연화경南無妙法蓮華經'을 외면 성불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설파
4) 선종(임제종) : 간토 무사들 사이에서 세력을 얻었으며, 막부가 가마쿠라에 겐초지(建長寺)·엔가쿠지(圓覺寺) 등 대사원 건립
▷ 남북조 시대
가마쿠라 막부의 실권자인 호조 씨가 천황의 지묘인 계통과 다이카쿠지 계통이 교대로 천황에 취임하도록 하는 '양통질립兩統迭立' 정책을 시행하자, 다이카쿠지 계통의 고다이고 천황이 무사들의 반反호조 정서를 이용하여 거병하였고, 1333년 가마쿠라 막부가 멸망한다. 이후 1336년 무가의 군사력에 눌린 고다이고 천황이 교토를 탈출하면서, 교토 조정(북조)과 요시노 조정(남조)이 성립한다.
- 영향 : 남북조의 분열로 중앙권력이 약화되자 왜구 준동
▷ 무로마치 막부 성립(1338)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북조 쇼군에 올라 무로마치 막부 개창. 동생 다다요시와의 내란(1350년 간노의 요란擾亂), 남조와의 항쟁을 거쳐 다카우지의 손자 요시마쓰 대에 통일정권을 수립한다. (1392년)
* 슈고 : 전국의 무사들을 통합하기 위해 무로마치 막부가 파견한 아시카가 일족들로서, 지토와 고케닌을 부하로 편입하면서 세력을 키웠다. 점차 지방 유력자라는 뜻의 '다이묘'가 붙어 '슈고 다이묘'로 불리웠다.
▷ 오닌의 난(1467-1477)
무로마치 막부가 부패와 재정 낭비로 흔들리는 가운데, 1464년 쇼군 후계자 계승 싸움을 계기로 벌어진 전투. 극심한 전란이 이어지다가 동군의 가쓰모토, 서군의 모치토요가 연이어 사망하면서 1477년 유야무야한 상태로 종전되었다. 오닌의 난을 계기로 무로마치 막부는 통일 정권으로서의 권위를 상실하였고, 슈고 다이묘도 신흥 세력인 전국 다이묘에게 밀려나기 시작했다.
- 영향 : 경무장한 보병 용병 집단인 아시가루(足輕)가 주력부대로 등장하였으며, 이들은 방화, 약탈, 배신, 하극상을 일삼아 사회 혼란을 가중시켰다.
▷ 잇키의 시대
잇키(一揆)란, 법규(揆)를 하나(一)로 한다, 즉 마음을 합해 행동한다는 뜻으로 농민 결속체를 의미하며, 1428년 대기근에 따른 궁핍이 심화되자 농민 봉기(쓰치 잇키, 土一揆)로 발전한다. 법화(法華) 잇키, 잇코(一向) 잇키 같은 종교적 성격의 잇키도 등장하여, 1488년에는 슈고 다이묘를 몰아내고 가가 국에 '백성이 지배하는 나라百姓持國'를 세웠다.
▷ 전국 다이묘
동족 결합이 중심이던 가마쿠라 시대의 무사단과 달리, 전국 다이묘는 혈연이 다른 재지영주와 백성을 포함한 지역 결합이 핵심. 다이묘들은 확고한 지배력을 바탕으로 농업, 상공업, 광업을 진흥시켜 영국領國의 발전을 도모했다.
* 조카마치(城下町) : 전국시대 다이묘의 거점 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
3. 근세
▷ 오다 노부나가 정권
오와리 통합(1559) - 오케하지마 전투 승리(1560) - 미노의 사이토 씨 멸문(1567) - 교토 입성(1568) - 아네가와 전투 승리(1570) - 엔랴쿠지 파괴(1571) - 무로마치 막부 멸망(1573) - 나가시노 전투 승리(1575) - 이시야마 혼간지 정복(1580) - 다케다 가쓰요리 멸문(1582)
- 혼노지의 변(1582)
* 나가시노 전투 : 대량의 총포부대를 이용하여 최강의 기마 군단을 이끌던 다케다 가쓰요리를 물리친 전투
* 혼노지의 변 : 오다 노부나가가 아케치 마쓰히데의 반역으로 암살당한 사건
▷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전국 통일
야마자키 전투에서 아케치 마쓰히데에게 승리(1582) - 시즈가타케 전투에서 승리(1583) - 몇 차례 전투 후에 도쿠가야 이에야스와 화해하고 휘하로 편입(1584) - 규슈 정벌(1587) - 호조 우지마사 멸문하고 전국 통일(1590)
* 도검 몰수령(1588) : 농민 반란(잇키)을 봉쇄하고자 농민이 보유한 무기류 몰수
▷ 에도 막부의 성립
히데요시 사망(1598)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고다이로(五大老)의 필두로 등극(1598) - 세키기하라 전투에서 승리(1600.9) - 쇼군에 올라 에도 막부 개설(1603) - 오사카 성 함락으로 히데요시 가문 멸문(1615)
* 겐나(元和)의 대순교大殉敎(1622) : 기독교 금지령(1612)을 지키지 않은 55명의 선교사와 신도를 나가사키에서 처형
* 도자마다이묘(外樣大名) :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도쿠가와 가문에 복종한 다이묘
* 참근교대제參勤交代制 : 다이묘의 처자를 에도에 거주시켜 인질로 삼고, 다이묘가 에도와 영지를 1년마다 왕복하게 하는 제도
* 무라(村) : 농민 지배를 위해 인위적으로 설정한 기초 행정 단위로, 40~60여 호 정도의 가옥이 모인 지연地緣 공동체
* 겐로쿠 문화 : 17세기 오사카나 교토의 부유한 신흥 조닌을 중심으로 융성한 문화로서, 우키요조시(浮世草子) 소설, 렌카(連歌)에서 파생한 하이카이(俳諧), 가부키, 우키요에(浮世繪) 판화 등이 있다.
* 교호 개혁 : 8대 쇼군 요시무네(1716)가 강력한 쇼군 권력과 재정 재건을 목표로 실시한 개혁. 그 중 아게마이(上米) 제도는 다이묘에게 헌상미를 부과하는 대신, 에도 체류 기간을 반 년으로 줄여주었다.
* 번정藩政 개혁 : 18세기 중엽 서남 지방의 조슈 번, 사쓰마 번, 히젠 번 등은 특산품 개발, 금융업 확대 등으로 재정을 개선하여 막부 말기 정국을 주도한다.
* 덴포 개혁(1841) : 막번체제의 재강화를 위해 풍속 단속, 귀농령, 유통 독점 해산 등을 시도했으나 경제 위축과 농민 저항을 야기하였다.
4. 근현대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