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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총, 투표 - 왜 독재는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는가?
폴 콜리어 지음, 윤세미.윤승용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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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민주적 절차를 학습(學習, 배운 바를 일상에서 꾸준히 익힘)하지 않는 공동체에는 언제든지 '미친 민주주의(democrazy)'의 그림자가 드리울 가능성이 상존한다. 최빈국은 그러한 사회적 자본을 모을 시간과 기회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지만, 우리의 뒤틀린 일상은 어디 그런 변명이 통하겠는가.
(최빈국까지 확산된) 엄청난 정치 지형의 변화는 민주주의의 확산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선거 제도의 확산이었다. 그런데 승리자의 권력에 제한이 없다면, 선거는 사실상 생사의 문제가 된다. 이러한 생사 투쟁이 선거 관리 규칙의 지배 아래 있지 않으면 선거 참가자들은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는 민주주의(democracy)가 아닌, `미친 민주주의(democrazy)`다. pp.23-24
민주화가 평화 유지를 더 어렵게 만드는 실례를 원한다면 이라크를 보라. 현 체제의 한계가 무엇이든, 사담 후세인 체제보다는 훨씬 민주적이다. 하지만 후세인 통치하의 이라크는 평화로웠다. 비록 매력적인 평화는 아니었지만, 그것도 일종의 평화였다. 다만 국민의 동의보다는 선제적 탄압에 의존했다. 그리하여 억압 기술의 약화는 곧 민주주의로부터 초래되는 정치적 폭력 위험의 증가라고 난 생각했다. (...) 최빈국에서 민주주의의 책임성과 합법성의 효과가 정치적 폭력의 위험성을 감소시키지 않는 단도직입적인 이유는 이 나라들에서는 민주주의가 책임성이나 합법성을 담보로 삼지 않기 때문이다. p.34
전통적 경제에서 집단에 대한 충성심은 때로 다른 집단에 피해를 입히는데, 주로 경쟁 집단에 대한 폭력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현대 경제에서의 종족에 대한 충성심은 다른 집단에 훨씬 많은 피해를 입힐 수 있다. 공적 자금은 한 집단의 집단행동이 다른 집단을 훼손시켜가며 가질 수 있는 공동 재원이 된다. 이 단계에서 종족 집단에 대한 도덕적 의무는 전체 사회의 도덕적 의무와 충돌한다. (...) 일반적으로 이들 국가에서 도덕성은 종족 정체성이 사회에 해가 되더라도 집단에는 가치 있는 행동으로 여기게 한다. pp.66-67
선거가 치러지기 전에는 선거만이 권력을 잡기 위한 수단이므로 모든 정당이 참여할 만한 인센티브가 있다. 때문에 정당은 선거 캠페인에 모든 동력을 쏟고, 결과적으로 위험성은 줄어든다. 하지만 선거 결과가 정해지면, 승리자와 패배자가 생긴다. 당연히 진정한 민주주의라면 패배한 당은 승자를 축하하고 충실한 반대 세력을 구성해야 한다. 집권당의 권력 남용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패배한 당은 5년 안에 권력을 다시 잡을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분쟁 이후 상황은 일반적으로 그렇지 않다. 승자는 신이 나서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지 않는 자유로운 권력을 기대한다. 이렇게 되면 패배자는 상대의 손안에 있는 자신의 운명을 예상하고, 이제는 폭력을 사용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된다. p.98
죄수의 딜레마에 대한 해결책은 협력이다. 아프리카는 군비 지출을 줄일 수 있는 집단행동이 필요하다. 하지만 협력에서의 진짜 문제는 이를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각 정부는 인접국이 군비 지출을 감소하도록 격려하면서 자신은 그러지 않는다. 협력이 이루어지도록 돕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직접적인 것은 중립적 경찰이 실행에 옮기도록 설득하는 것이다. 이 경찰은 원조의 비정상적 누출을 막는 후원자나 무기 교역 금지를 내리는 유엔일 수도 있다. pp.138-139
전통적으로 최빈국들의 정부는 힘이 없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들은 스스로에 대해 자신들을 반대하는 국제 시스템의 피해자로 여긴다. 식민지로 있다가 어렵게 자유를 얻었기 때문에 아직도 더 강한 나라로부터 괴롭힘을 당한다고, 이런 강자와 약자 이미지가 역기능을 불러 일으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최빈국 정부가 주권을 아주 적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이 갖고 있다. (...)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이들 국가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공공재 가운데 하나가 정부의 책임성이다. pp.229-230
현실적으로 일반적인 최빈국 사회는 국민 주권(national sovereignty)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 국가의 형태를 갖추고는 있으나 아직 국민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선거 행위나 당선자에게 충분한 제한을 두는 결속력이 부족하다. 결과적으로 ‘대통령의 주권’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대통령이 민족 주권을 부러워하는 것은 곧 자신의 권력을 질투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 엘리트 집단은 국민의 요구에 응하는 것보다 국민 주권에 대해 지나친 열정을 갖고 있는데, 나는 이를 "얻어먹기보다는 죽는 게 낫다"라고 표현하고 싶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땐 숭고할지 몰라도 엘리트가 배고픔을 겪는 게 아닌 것을 감안하면 생각이 바뀐다. pp.23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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