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퀼로스 비극 전집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아이스퀼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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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클뤼타이메스트라
가족 : 아가멤논(남편) / 이피게네이아(딸), 엘렉트라(딸), 크뤼소테미스(딸), 오레스테스(아들)
운명 : 남편 살해(이후 오레스테스에게 죽임을 당함)


그가 자신의 운명을 피하거나 막지 못하도록
나는 이렇게 해치웠고 부인하고 싶지 않소.
(아가멤논 1380행)


(사후 변론)
내 남편의 심장을 가른 비수의 무정함을 탓하려면
아비에 대한 사랑만을 내세우며 나의 명줄을 끊은
오레스테스의 편협함은 어느 신에게 물어야 하는가.

그는 아폴론의 은총으로 피 묻은 손을 씻어 냈고,
아테네의 판결로 친족살해의 멍에를 벗었으며,
저주의 여신들을 자비의 여신으로 정화했다네.

그가 신의 명령을 아무 고민 없이 받든 것과 달리
한낱 여인네에 불과한 나의 의지와 내 손의 민활함이
내 무덤을 달구는 폄훼의 불쏘시개로 쓰인다면

나는, 기꺼이 그 짐을 짊어질 것이며,
그때가 다시 오더라도 망설임 없이
나를 둘러싼 운명의 사슬을 끊어버릴 것이오.

이피게네이아가 제 아비의 속임수의 덫에 걸려
제단에 올라 가련한 희생양으로 산화하는 순간
나는 이미 복수의 화신으로 거듭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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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4 - 자연주의와 인상주의, 영화의 시대, 개정판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4
아르놀트 하우저 지음, 백낙청 외 옮김 / 창비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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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특히 1830년 이후)가 되면 가장 혁명적인 분출로 근대를 마련한 자본주의가 자연과학과 함께 사회의 토대에 단단히 자리를 잡게 된다. 이때부터 사람이 사람을 위해서 만든 체제가 자아를 의식하게 된 안드로이드처럼 스스로 성장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은 비타협성과 비인격화의 반주를 곁들인 풍요와 빈곤의 합창을 듣고서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사회는 정밀하게 계산된 질서에 따라 재구성되어 갔지만 인간의 의식은 그 속도에 보조를 맞추지 못한 채 지체양상을 보였다. 이 뒤떨어짐은 근대의 또 다른 산물인 개인주의와 더불어 각자가 자신만이 거대한 시대의 흐름에서 소외되었다는 불안을 낳기에 충분하였다. 차분하게 흐르는 시간에 몸을 내맡기던 사람들이 이제는 사방으로 달려나가는 시간의 옷자락을 붙잡아 한올 한올의 최소단위로 분해하는 반복작업에 시달렸다.

시간은 삶의 동반자에서 부속품으로 위상이 바뀌었다. 예술가들이 도시적 감성으로 외부 세계를 바라보았을 때 이상은 고요한 전원에서 쫓겨났다. 미분된 시간은 정복의 대상으로 전락한 듯 보였지만 자본주의가 그러하듯이 시간도 기계적 신체를 만든 후로는 유기체의 융합성을 해체할 때까지 계속해서 자가 분열한다. 우리는 더 이상 시간을 사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거쳐야만 자신의 삶을 총체적으로 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목적지 없이 유랑하는 지난 세기의 낭만주의는 폐기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굳건해지는 외부세계에 비례하여 미약해지는 개인의 심상이라는 모순 현상은 변함이 없었다. 과학적 실험과 관찰 방식을 도입한 자연주의나 순간의 감각에 집중한 인상주의 모두가 일회성에 대한 강박을 떨쳐 버리지 못하였다. 고정된 진리는 없으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의 약동’만이 있다는 관념은 여전히 낭만주의의 그림자 아래서 번식하였다.

부르주아의 세계의 전위에서 탈락한 지식인들이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프롤레타리아의 영웅으로 등극하는 시대 상황도 이러한 경향을 부추겼다. 지식인들은 예술을 동원하여 사회의 부조리를 파헤치고 기득권에 맞서곤 했지만 그들의 예술적 관점과 정치적 관점은 변혁의 문 앞에서 매번 순순히 맞잡은 손을 놓았다. 그것은 편견에 맞서 자유를 옹호한 자신들의 싸움을 자신마저도 믿지 않았던 숙명론자의 당연한 귀결이었다.

낙원을 향한 꿈이 짓밟힌 자리에서 피어난 현대 예술은 모든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한사코 거부한 채 눈을 가리고 달아남으로써 자신을 입증한다. 대중은 예술을 통해 현실에 대해 안도하거나 분노하지만 이 이중관념은 일시적인 대리만족에 그친다. 위선도 박애도 둘 다 대중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강제된 도주를 멈출 방법은 경제적이고 사회적으로 높이 쌓아 올려진 문화적 독점의 성채를 향해 돈키호테처럼 돌진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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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3 - 로꼬꼬, 고전주의, 낭만주의, 개정판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3
아르놀트 하우저 지음, 백낙청 외 옮김 / 창비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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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이성에 대한 확신과 계몽에 대한 열망은 마침내 혁명을 불러왔다. 하지만 혁명은 새로운 사회와 제도 그리고 인간상에 대한 목적의식과 동경은 있을지언정, 그것들을 구현하기 위한 물질적 토대와 구체적인 전범을 갖고 있지 못하였고, 이 이상과 현실 사이의 깊은 간극에서 초래된 혼란은 사람들을 무차별적인 살육과 환멸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낭만주의는 이처럼 더 이상 균질하지도 않고 안정적이지도 않은 ‘집단의 해체’라는 사회상 속에서 과거에 의존할 수도 없고 미래에 안심할 수도 없는 한 개인이, 현재의 불투명성에 손을 대면 댈수록 커지는 불안과 두려움을 표현한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확신에 가득 차 달려가던 계몽주의의 마차는 거대한 바위에 부딪쳐 이미 산산조각 나버렸다.

따라서 낭만주의의 정신은 외부에 대한 폐쇄성을 특징으로 하며, 외적 실천이나 교육을 통해서 도달할 수 없는 오로지 천재적인 직관과 도약에 의해서 ‘일시적으로’ 근접 가능한 이상에 대한 동경을 바탕으로 한다. 그것은 현실에서 실현될 수 없는 이상이기에 낭만주의자는 “고향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국외추방자”처럼 영원히 떠도는 신세이다.

낭만주의는 목적지가 없는 방랑이면서 동시에 고향을 향한 여정이며, 찾을 수 없지만 찾아야만 하는 보물섬이다. 설사 그곳에 도달하더라도 평온이 아니라 거기로부터 벗어나야만 한다는 고독과 불안의 근원이며, 아무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모든 것인 무한성이다. 신앙을 깨뜨리고 나온 이성이 혼란에 빠졌을 때 돌아갈 곳은 다시 믿음이었다.

물론 이때의 믿음은 더 이상 인격화 된 유일신에 대한 믿음이 아니다. 천국은 신앙의 견고함과는 상관없이 갈 수 없는 장소이다. 이 믿음은 숙명적으로 파멸을 향한 믿음이며 자기 희생을 바탕으로 하는 믿음이다. 낭만주의는 철저하게 비극적이며 퇴폐적이다. 낭만주의는 자신과 타인 간의 이질감을 먹고 자라나는 나무이며 해체의 몸부림이다.

외부 세계와 내면 세계의 불합치와 이성과 비합리 어느 쪽도 포기할 수 없는 딜레마에서 오는 갈등은 현대인의 삶의 전제조건이다. 오로지 신앙만으로 지탱하거나 물질만으로 삶을 추동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들은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현대인일 뿐이다. 이 분열된 심연의 한가운데에서 걸어나오는 이가 바로 프로이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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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2 - 르네쌍스, 매너리즘, 바로끄, 개정판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2
아르놀트 하우저 지음, 백낙청 외 옮김 / 창비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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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이 길드의 수공업자로 등록되어, 교회나 궁정의 엄격한 주문 양식을 따르며, 자아 인식이라는 것이 희박하던 시절에는 ‘창작의 고뇌’라는 관념도 부재했다. 이러한 상황은 ‘별을 보며 길을 찾던 시대가 얼마나 행복했는가’라고 노래한 루카치의 말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하지만 그리스 고전문화의 재발견으로 대표되는 르네상스는 예술가가 한 개인으로 설 것을 요구하였다. 이는 자유의 공기를 호흡하게 되었다는 해방감과 광야에 홀로 선 존재라는 막막함을 동시에 안겨주었으니, 이제는 별이 아니라 자신의 손으로 길을 찾아야 하는 시절이 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상황이 갑작스럽게 도래한 것은 아니며, 상업의 발달과 시민계급의 출현으로 서서히 유럽인들의 내면에 스며들던 자본주의적 제도가 탐미주의와 화학적 융합을 이뤄낼 때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다. 예술가는 더 이상 작품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만으로 가치를 부여 받았다.

자유는 언제나 방종을 넘어서지 않는 절제를 요구한다. 예술가는 더 이상 수요자에 의도에 좌우되는 작품 제작에 얽매이지 않는 듯 보였지만, 자신의 심미안을 투영한 작품들이 무가치하게 버림 받는 상황을 외면할 수 없었다. 내면의 목소리만 따르기에는 현실이 핍진했던 것이다.

이는 곧 르네상스를 통해 그리스의 고전 문화가 부활한 이면에는 그리스 비극을 관통하는 중심 주제인 Pathei Mathos(고통을 통해 진리에 이른다)의 격언이 함께 깨어나게 된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예술가들은 이제 자신의 얼굴에 괴짜와 정신병, 기인의 이미지를 덧칠하였다.

16세기 이후로 예술은 인문비평가들이 펼치는 수사의 향연장에서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정착되어 갔으며, 소위 말하는 ‘교양’의 그늘 안에서 안식을 찾아갔다. 예술은 아무나 할 수 없고, 아무나 볼 수 없고, 그리고 아무나 느낄 수 없는 고상한 ‘ART’로 탈바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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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1 - 선사시대부터 중세까지, 개정판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1
아르놀트 하우저 지음, 백낙청 외 옮김 / 창비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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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과 ‘사회’의 3가지 주제 중에서 저자가 방점을 찍고 있는 부분은 바로 ‘사회’史이다. 저자의 의도는 ‘문학’과 ‘예술’의 변천과 전개 양상을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개의 닮은 듯 다른 렌즈에 비친 시대별 ‘사회’의 모습이 어떠한가를 그려내는 것이다. 일반적인 예술 관련 책들과 달리 도판이 거의 실려 있지 않다는 점도 이런 저자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고대부터 중세까지의 사회사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역설의 미학이다. 과거에 전개됐던 과정들이 기시감처럼 반복되고,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내듯이 한 사회가 가꾼 토양에서 무럭무럭 자라난 새싹들이 옛 제도와 관습을 해체한 후 새로운 사회의 기반으로 자리매김한다. 이렇게 부단히 요동치는 역설의 파도가 인간의 창조력을 자극하고 예술을 잉태한다.

예술은 종교적 의식(儀式, 意識)에서 비롯했지만, 작가의 자의식이 깨어났을 때 종교의 기반을 잠식한 것은 바로 예술적 창조력이었다.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귀족정의 폐단을 속속들이 체험한 귀족들에 의해 수립됐지만, 민주적 절차에 따라 자신의 설계자를 추방했다. 부르주아 혁명의 최대 맞수였던 절대 왕정을 키워낸 것은, 부르주아들이 보급한 화폐 경제였다.

선악(혹은 미추)는 천사의 날개 속과 악마의 뿔 위에서만 선명하게 나뉘어 숨쉰다. 인간은 그저 그 사이에서 흔들리는 갈대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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