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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4 - 자연주의와 인상주의, 영화의 시대, 개정판 ㅣ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4
아르놀트 하우저 지음, 백낙청 외 옮김 / 창비 / 199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19세기(특히 1830년 이후)가 되면 가장 혁명적인 분출로 근대를 마련한 자본주의가 자연과학과 함께 사회의 토대에 단단히 자리를 잡게 된다. 이때부터 사람이 사람을 위해서 만든 체제가 자아를 의식하게 된 안드로이드처럼 스스로 성장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은 비타협성과 비인격화의 반주를 곁들인 풍요와 빈곤의 합창을 듣고서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사회는 정밀하게 계산된 질서에 따라 재구성되어 갔지만 인간의 의식은 그 속도에 보조를 맞추지 못한 채 지체양상을 보였다. 이 뒤떨어짐은 근대의 또 다른 산물인 개인주의와 더불어 각자가 자신만이 거대한 시대의 흐름에서 소외되었다는 불안을 낳기에 충분하였다. 차분하게 흐르는 시간에 몸을 내맡기던 사람들이 이제는 사방으로 달려나가는 시간의 옷자락을 붙잡아 한올 한올의 최소단위로 분해하는 반복작업에 시달렸다.
시간은 삶의 동반자에서 부속품으로 위상이 바뀌었다. 예술가들이 도시적 감성으로 외부 세계를 바라보았을 때 이상은 고요한 전원에서 쫓겨났다. 미분된 시간은 정복의 대상으로 전락한 듯 보였지만 자본주의가 그러하듯이 시간도 기계적 신체를 만든 후로는 유기체의 융합성을 해체할 때까지 계속해서 자가 분열한다. 우리는 더 이상 시간을 사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거쳐야만 자신의 삶을 총체적으로 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목적지 없이 유랑하는 지난 세기의 낭만주의는 폐기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굳건해지는 외부세계에 비례하여 미약해지는 개인의 심상이라는 모순 현상은 변함이 없었다. 과학적 실험과 관찰 방식을 도입한 자연주의나 순간의 감각에 집중한 인상주의 모두가 일회성에 대한 강박을 떨쳐 버리지 못하였다. 고정된 진리는 없으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의 약동’만이 있다는 관념은 여전히 낭만주의의 그림자 아래서 번식하였다.
부르주아의 세계의 전위에서 탈락한 지식인들이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프롤레타리아의 영웅으로 등극하는 시대 상황도 이러한 경향을 부추겼다. 지식인들은 예술을 동원하여 사회의 부조리를 파헤치고 기득권에 맞서곤 했지만 그들의 예술적 관점과 정치적 관점은 변혁의 문 앞에서 매번 순순히 맞잡은 손을 놓았다. 그것은 편견에 맞서 자유를 옹호한 자신들의 싸움을 자신마저도 믿지 않았던 숙명론자의 당연한 귀결이었다.
낙원을 향한 꿈이 짓밟힌 자리에서 피어난 현대 예술은 모든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한사코 거부한 채 눈을 가리고 달아남으로써 자신을 입증한다. 대중은 예술을 통해 현실에 대해 안도하거나 분노하지만 이 이중관념은 일시적인 대리만족에 그친다. 위선도 박애도 둘 다 대중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강제된 도주를 멈출 방법은 경제적이고 사회적으로 높이 쌓아 올려진 문화적 독점의 성채를 향해 돈키호테처럼 돌진하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