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날 그대들의 자손들이 우리나 우리 후손들에게 그렇게 말할 경우에는, ‘보아라. 이것은 우리 조상들이 만든 주님의 제단 모형일 뿐이다. 번제물이나 희생 제물을 위한 것이아니라, 우리와 너희 사이의 증인일 따름이다.‘ 하고 대답하리라 생각하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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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처음 만나는 모든 전시는 첫사랑의 설렘을 닮았다."라고써둔 적이 있는데, 작가에 관한 공부를 할 때 종종 그런 느낌을 받는다. 잘 모르는 작가지만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지고, 그 궁금증을해소하기 위해 이리저리 탐색하는 동안 작가를 알아간다는 느낌.
낯설던 사람이 친숙해지고, 그의 생각이 드러난 작품을 만나고,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 사랑의 과정과 닮았기 때문이다. - P45

전시를 본다는 것은 한 권의 책을 읽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다만 책과 달리 미술은 문자와는 다른 언어로 우리에게 말을 건네고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책에서 제목과 목차를 먼저 훑어보고 내용을 상상하듯이 전시 제목은 전시가 어떤 이야기를 전해주고 감상하고 이해할 수 있을지 알려주는 첫걸음이다. - P54

그렇지만 나는 스크립트의 기준을 ‘하고 싶은 말은 줄이고 해야 할 말을 남기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되도록 해설부는 남기고, 도입부와 맺음부는 간략하게 줄이려고 한다. - P74

도입부 초고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작품 해설을 써야 한다. ‘해설부‘는 제한된 틀 안에서 도슨트 본인만의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그나마 스크립트를 독창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이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동선 설정‘과 ‘작품과 전시에 대한 짜임새 있는 해설‘이다. - P90

선별 기준은 단순하다. 전시 기획 의도에 부합하는 작품이 우선이다. 그 외에 아주 유명해서 전시를 찾는 관람객의 주된 목적이 되는 작품. 작가가 이전에 시도하지 않았던 양식의 특징적인 작품, 작가의 작품 세계에 특정한 변화가 나타난 시점의 작품을 포함한다. - P96

다소 번거롭고 고려할것이 많았지만 이 동선을 택한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박서보 작가의 후기 묘법 시리즈는 위로와 치유, 회복을 메시지로 던지는 작품이다. 그래서 다소 어두운 앵포르멜 초기작부터 점점 변화하는 유백색 묘법 작품을 둘러본 후, 가장 밝은 곳에서 관람객에게 위로의메시지를 주는 멘트로 스크립트를 마무리하는 게 작가의 작품의미와 결을 같이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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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한심한 이기적인 존재라는 사실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될 때 인간은 부끄러움, 즉 수치심을 느낀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것은 어쩌면 자신이 그런 이기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처절히 느끼게 했을 것이다. 자신이 이기적인 틀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죽음의 공포에 떨기만한 그 자신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구토감을 느낀다. 자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환멸감. 하이데거는 그 순간이 본래적 존재로 돌아가는 순간이라고 하고 레비나스는 그 순간 자신을 탈출할 수 있게 될 가능성이 열리는 한계상황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저항할 수 없는 공포와 불면 속에서 하나의 대상으로 전락한 자신에 대한 감정이 바로 레비나스가 말하는 "수치심"이다. - P144

수치심이 드러내는 것은 인간이 자기 자신에게 못 박혀 있는 존재라는 사실, 자기 자신을 숨길 수 없으며 자신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탈출」, 34-35쪽)이다. 수치심은 마치 카프카의 소설에서 묘사되고 있듯이 알 수 없는 어떤 힘에 의해 무력하게 "체포당한 상태에 있는 자신에 대한 수치심이며,
타인의 죽음 앞에서 살아남은 자신에 대한 수치심이기도 하다. 수치심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 때 느끼게 되는 것이 구토이다. - P144

이와 같이 죽음을 "사유" 속에서 현존재의 "불가능성의 가능성,
혹은 극단적인 존재 가능성"으로 보는 하이데거와 달리, 레비나스는 죽음을 현실적이고 육체적인 죽음, 즉 "가능성의 불가능성으로보고 있다. - P147

왜냐하면 나도 타자와 동일한 위험과 죽음에 처할 수있기 때문이다. 이때 우리는 ‘타자는 죽었고 나는 아직 살아 있지만나 역시 그렇게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공포감과 무력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리고 아직 살아남은 자로서 죽은 자에 대한 죄책감을느끼게 된다. 바로 이러한 의미로 레비나스는 타인의 죽음을 해명하고 있다: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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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움 쫌 아는 10대 - 데카르트 vs 레비나스 : 내가 먼저일까 친구가 먼저일까 철학 쫌 아는 십대 1
이재환 지음, 방상호 그림 / 풀빛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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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도서가 때론 큰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다. 이 책에서는 자아(주체)가 중요한지, 타자가 존중되어야 하는지를 문제로 다루면서 어떤 삶의 태도로 살아야 하는지 검토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특히 이 책이 예로 든, ‘죄수의 딜레레마‘는 개인(주체)을 우선시하는 사고 방식과 타인을 긍정하고 소통하는 사고 방식이 어떤 차이를 낳게 되는지를 명쾌하게 설명해 준다. 타인과 협력하면서 소통하고 살아가는 것이 역설적으로 주체에게 더 유리하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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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4-04-30 23: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청소년을 위한 철학책인가요. 리뷰를 읽으니 성인이 읽어도 좋은 책 같습니다.
마루님, 내일부터 5월입니다. 좋은 일들 가득한 한 달 되세요.^^

마루☆ 2024-04-30 23:28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청소년 대상인데 성인들에게도 도움이 될 거 같네요. 서니데이님 말씀대로 5월을 즐거움으로 가득 채워 보겠습니다~^^
 

남이 나에게 무언가를 대가로 지불할 것이라는 기대 없이 그저 타자를 위해 헌신하는 자세. 그게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신의 목소리이다. 그것이 타자의 목소리이다.

내 안에 신성이 있다는 것을 나는 느끼지 못했다. 그러니 당연히 남의 신성도 느끼지 못한 것이다. 그냥 지적인 추론으로 사랑을 계산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양심의 소리는 특정한 내용을 갖지 않는다. 그것은 윤리적인 선한 내용을 강요하는 소리가 아니다. 오히려 양심의 소리는 무언의 소리로서(SZ., 273쪽) 아무 내용도 전달하지 않는다. - P128

이렇게 양심의 소리를 원하고 선택하는 것을 하이데거는 "결단"이라고 부른다. 양심의 소리를 결단할 때 그는 비로소자신의 가장 고유한 실존 가능성을 선택하는 것이다. (SZ., 288쪽) " - P128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인간 현존재의 본래적인 존재는 주체가 아니라, 주체에 의해 은폐된 존재이다. 따라서 하이데거의 철학은 기존의 형이상학이 주장해 온 "주체 중심적인 철학"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 P129

이와 같이 레비나스의 경우, 불안과 공포는 모두 외부적인 어떤것에서 비롯되고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이다. 또한 불안과 공포는 하이데거의 주장처럼 나의 본래적인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두려워하는 나, 고통스러워하는 구체적인 나를 드러낼 뿐이다. - P140

오히려 타자에 의해서 일깨워진 주체가 그것을 자신의 존재로 받아들이는것이다. 왜냐하면 타자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것이 곧바로 자신의존재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타자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 줄 것인가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 P139

결국 레비나스가 주장하는 진정한 주체는 타자를 향해 자신의 존재를 떠나는 adieu 자이며, 이때 타자 안에서 무한자인 신을 발견하고,
신을 향하는a Dieu 자를 뜻한다. -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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