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한심한 이기적인 존재라는 사실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될 때 인간은 부끄러움, 즉 수치심을 느낀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것은 어쩌면 자신이 그런 이기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처절히 느끼게 했을 것이다. 자신이 이기적인 틀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죽음의 공포에 떨기만한 그 자신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구토감을 느낀다. 자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환멸감. 하이데거는 그 순간이 본래적 존재로 돌아가는 순간이라고 하고 레비나스는 그 순간 자신을 탈출할 수 있게 될 가능성이 열리는 한계상황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저항할 수 없는 공포와 불면 속에서 하나의 대상으로 전락한 자신에 대한 감정이 바로 레비나스가 말하는 "수치심"이다. - P144

수치심이 드러내는 것은 인간이 자기 자신에게 못 박혀 있는 존재라는 사실, 자기 자신을 숨길 수 없으며 자신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탈출」, 34-35쪽)이다. 수치심은 마치 카프카의 소설에서 묘사되고 있듯이 알 수 없는 어떤 힘에 의해 무력하게 "체포당한 상태에 있는 자신에 대한 수치심이며,
타인의 죽음 앞에서 살아남은 자신에 대한 수치심이기도 하다. 수치심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 때 느끼게 되는 것이 구토이다. - P144

이와 같이 죽음을 "사유" 속에서 현존재의 "불가능성의 가능성,
혹은 극단적인 존재 가능성"으로 보는 하이데거와 달리, 레비나스는 죽음을 현실적이고 육체적인 죽음, 즉 "가능성의 불가능성으로보고 있다. - P147

왜냐하면 나도 타자와 동일한 위험과 죽음에 처할 수있기 때문이다. 이때 우리는 ‘타자는 죽었고 나는 아직 살아 있지만나 역시 그렇게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공포감과 무력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리고 아직 살아남은 자로서 죽은 자에 대한 죄책감을느끼게 된다. 바로 이러한 의미로 레비나스는 타인의 죽음을 해명하고 있다: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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