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나에게 무언가를 대가로 지불할 것이라는 기대 없이 그저 타자를 위해 헌신하는 자세. 그게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신의 목소리이다. 그것이 타자의 목소리이다.

내 안에 신성이 있다는 것을 나는 느끼지 못했다. 그러니 당연히 남의 신성도 느끼지 못한 것이다. 그냥 지적인 추론으로 사랑을 계산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양심의 소리는 특정한 내용을 갖지 않는다. 그것은 윤리적인 선한 내용을 강요하는 소리가 아니다. 오히려 양심의 소리는 무언의 소리로서(SZ., 273쪽) 아무 내용도 전달하지 않는다. - P128

이렇게 양심의 소리를 원하고 선택하는 것을 하이데거는 "결단"이라고 부른다. 양심의 소리를 결단할 때 그는 비로소자신의 가장 고유한 실존 가능성을 선택하는 것이다. (SZ., 288쪽) " - P128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인간 현존재의 본래적인 존재는 주체가 아니라, 주체에 의해 은폐된 존재이다. 따라서 하이데거의 철학은 기존의 형이상학이 주장해 온 "주체 중심적인 철학"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 P129

이와 같이 레비나스의 경우, 불안과 공포는 모두 외부적인 어떤것에서 비롯되고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이다. 또한 불안과 공포는 하이데거의 주장처럼 나의 본래적인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두려워하는 나, 고통스러워하는 구체적인 나를 드러낼 뿐이다. - P140

오히려 타자에 의해서 일깨워진 주체가 그것을 자신의 존재로 받아들이는것이다. 왜냐하면 타자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것이 곧바로 자신의존재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타자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 줄 것인가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 P139

결국 레비나스가 주장하는 진정한 주체는 타자를 향해 자신의 존재를 떠나는 adieu 자이며, 이때 타자 안에서 무한자인 신을 발견하고,
신을 향하는a Dieu 자를 뜻한다. -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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