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라는 어떻게 농장을 구했을까 - 성공하는 혁신은 아이디어와 실행으로 완성된다!
비제이 고빈다라잔 & 크리스 트림블 지음, 롯데인재개발원 옮김 / 글로세움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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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경영구루 톰 피터스는 <리틀 빅 씽>라는 책에서 혁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혁신공장이라 불리는 MIT 미디어랩의 연구원인 마이클 쉬라지는 “혁신은 본질적으로 원형에 대한 반작용으로 일어난다.”라고 말한다. 따라서 조직이 혁신을 이끌어내려면 ‘진지한 놀이Serious Play'가 필요하고 강조한다. 시리어스 플레이는 구체적으로 즉흥성이 요구되는 혁신을 뜻한다. 즉 게임의 룰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게임의 룰을 바꾸고 변화시키는 활동을 의미한다.

 

멋진 아이디어가 있다면 그냥 가만히 앉아 있지 마라. 죽을 때까지 그것을 두고 연구하지도 마라. 우선 친구 한두 명을 붙잡아라. 그리고 당장 빈 사무실을 찾아라. 그곳에서 여러분이 생각한 작은 일부터 시작해서 하나의 모델을 만들어내라.

 

그런 다음 다른 6명의 친구에게 모델을 보여주어라. 가급적 빨리 그렇게 하라. 그리고 친구들이 제시한 아이디어를 기록하라. 깊이 생각할 필요 없이 재빨리 머릿속에 입력하라. 그런 다음, 다음 라운드를 시작하고 도전하라. 이를 통해 혁신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라.“

 

 

아이디어가 혁신의 시작이라면, 실행은 마지막이자 답이다. 실행의 노하우를 말한 책들을 만나보자.

 

 

“혁신에는 리스크가 따른다. 그러나 혁신을 하지 않으면 리스크가 더 크다.”

- 피터 드러커

 

 

 

 

스텔라는 어떻게 농장을 구했을까

 

“파티가 끝난 후, 디어드리는 문들이 모두 잘 잠겼는지 확인하기 위해 농장을 한 바퀴 돌았다.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주위를 둘러보면서 깊은 생각에 빠졌다. 럭셔리 울은 훌륭한 생각이다. 정말 좋은 사업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런데 어떤 생각이 갑자기 떠올라 디어드리는 급작스레 발걸음을 멈추었다. 당장 내일 아침부터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전혀 생각해둔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갑작스레 디어드리는 중요한 사실을 깨우쳤다. 위대한 혁신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에서 ‘아이디어’는 단지 ‘시작’일 뿐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동물농장>과 존 코터의 <빙산이 녹고 있다고>에서 영감을 얻은 이 책은 다트머스대학교 터크 경영대학원 교수이자 기업혁신 전문가 비제이 고빈다라잔와 크리스 트림블이 규모와 상관없이 어느 조직이든 진정한 변화와 혁신을 통해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우화 형식으로 풀어낸 책이다.

 

저자들은 마이크로소프트, 보잉, 존슨앤존슨 등 다수의 글로벌 기업에서 경영자문과 혁신 컨설턴트로 활동하면서 10년 넘게 기업 혁신의 다양한 사례를 연구한 결과를 바탕으로, 조직이 기존의 사업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사업 즉, '혁신'을 추진할 때 조직 내외부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와 그 해결책을 동물농장을 통해 기술하고 있다.

 

윈저 농장은 동물들에 의해 운영되는 특별한 농장으로 규모의 경제로 커가는 인간농장과의 경쟁은 이제 막 농장을 물려받은 암말 디어드리에게는 버겁기만 했다. 경쟁 없는 신시장도 언젠가는 경쟁자가 넘쳐나는 레드오션으로 변하는 법, 윈저 농장의 디어드리는 레드오션 시장인 ‘양모’ 사업에서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만이 현명한 것이 아니라, 농장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하여 새로운 수익원을 찾아 나섰고, 농장 구성원들에게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구하는 공모 대회를 통해 ‘럭셔리 울’ 사업에 도전 할 것을 결정했다.

알파카를 이용한 ‘럭셔리 울’이라는 블루오션 시장으로 방향을 트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아이디어는 혁신의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변화와 혁신에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제로 작동시킬 수 있는 실행력이 필수다. 즉 진정한 혁신은 아이디어와 실행이 병행할 때 성공할 수 있다.

 

저자들은 아무리 '혁신'을 추진한다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의 주력사업임을 강조한다. 주력사업이 흔들리면 신규사업 뿐만 아니라 조직 전체에 심각한 유동성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조직구성원들에 대한 혁신의 핵심은 바로 기존 조직과 신규사업 전담팀의 건전한 파트너십이었다.

 

저자들은 혁신이 실패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익을 늘리기 위한 다른 수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을 진행하기도, 구성원의 협조를 구하기도 어렵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농장에서 가장 머리가 좋은 수탉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이에 대해 이렇게 강조했다.

“배우는 것이 첫째, 이익이 둘째!”

 

혁신에 있어 잊지 말아야 할 원칙은 새로운 사업은 배우는 과정이고 실험과 같다는 것이다. 새로운 도전은 실험이기 때문에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신규사업에 대한 학습을 통해 배운 수많은 시행착오와 연구결과는 추후 사업을 이끌어나갈 때 다양한 문제에 봉착했을 때 선례를 통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만든다. 그러므로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

 

혁신을 성공으로 이끄는 힘은 조직 구성원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새로운 전담팀에 대한 차이점을 인정하고 서로간의 관계개선에 나가는 것이다. 기존 사업이든 신규사업이든 한 조직의 구성원들이고 같은 공동운명체임을 인식하는 것, 그것이 출발점인 것이다. 아이디어는 단지 아이디어일 뿐이다. 아이디어를 혁신과 성공이로 만드는 것은 결국 조직 구성원의 헌신과 노력이었다. 혁신을 위해서는 탁월한 아이디어도 중요하지만 리더의 합리적인 선택, 혁신을 위한 팀 구성, 새로운 사업에 대한 기존 조직원들의 저항감 극복, 공동체의 비전 공유 등의 실행 역시 중요함을 배우게 될 것이다.

 

 

 

이 리뷰는 삼성SDS 웹진 '북카페'에 기고한 리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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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하려면 실행하라 - 99% 사람들이 하지 않는 단 1%
비제이 고빈다라잔 & 크리스 트림블 지음, 롯데인재개발원 옮김 / 글로세움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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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경영구루 톰 피터스는 <리틀 빅 씽>라는 책에서 혁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혁신공장이라 불리는 MIT 미디어랩의 연구원인 마이클 쉬라지는 “혁신은 본질적으로 원형에 대한 반작용으로 일어난다.”라고 말한다. 따라서 조직이 혁신을 이끌어내려면 ‘진지한 놀이Serious Play'가 필요하고 강조한다. 시리어스 플레이는 구체적으로 즉흥성이 요구되는 혁신을 뜻한다. 즉 게임의 룰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게임의 룰을 바꾸고 변화시키는 활동을 의미한다.

멋진 아이디어가 있다면 그냥 가만히 앉아 있지 마라. 죽을 때까지 그것을 두고 연구하지도 마라. 우선 친구 한두 명을 붙잡아라. 그리고 당장 빈 사무실을 찾아라. 그곳에서 여러분이 생각한 작은 일부터 시작해서 하나의 모델을 만들어내라.

그런 다음 다른 6명의 친구에게 모델을 보여주어라. 가급적 빨리 그렇게 하라. 그리고 친구들이 제시한 아이디어를 기록하라. 깊이 생각할 필요 없이 재빨리 머릿속에 입력하라. 그런 다음, 다음 라운드를 시작하고 도전하라. 이를 통해 혁신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라.“

 

 

아이디어가 혁신의 시작이라면, 실행은 마지막이자 답이다. 실행의 노하우를 말한 책들을 만나보자.

 

 

 

“혁신에는 리스크가 따른다. 그러나 혁신을 하지 않으면 리스크가 더 크다.”

- 피터 드러커

 

 

혁신하려면 실행하라

 

 

“세계에서 가장 경영을 잘 한다고 하는 기업조차도 혁신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몸부림 쳐야 한다. 우리가 혁신의 ‘다른 면’이라고 일컫는 실행은 상당 부분 잘못 이해되고 있다. 어떤 기업에서는 혁신의 양면 즉, 아이디어와 아이디어 실행의 단계를 통합하기도 한다. 두 가지 단계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기업에서는 혁신 계획을 실행하는 일이 평소에 하는 일상 업무를 수행하는 것과 비교하였을 때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들은 모두 틀렸다. ‘혁신의 실행 과정’은 ‘혁신’도 아니고 ‘수행’도 아니다. 이것은 완전한 별개의 것이다.”

 

 

“뛰어난 혁신 리더는 ‘기존 시스템과 싸워서’ 득 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성과 엔진이 함께 노력하는 파트너이지, 싸워서 이겨야 하는 원수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자신이 실행하는 혁신 계획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기업의 미래’라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성과 엔진을 ‘고물이 되어가는 공룡’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절대로 혁신 팀 구성원이 나중에 독이 될 만한 해로운 어조를 말하지 않도록 단속한다. 오히려 자신들의 방식을 내려놓고 긍정적인 태도로 협력 관계를 구축하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공유 스태프와 신뢰를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는다.”

 

 

“전담 팀을 구성할 때 가장 피해야 할 상황은 동일한 인력, 동일한 직함과 업무 내용, 동일한 위계질서 등 익숙하기 그지없는 환경으로 초기 설정되는 것이다. 혁신 계획을 기획하는 단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처음부터 새롭게 만들어야만 한다. 결국 혁신 계획은 과거의 관행을 버리고자 하는 의도적 노력이다. 기존 성과 엔진의 비용 범주, 성과 지표, 업무 진행표 등을 혁신을 위한 기획에 사용하는 것이 시간을 절약시킬 수는 있지만, 보다 깊이 있는 사고를 하고 날카로운 분석을 하는 데 있어서는 커다란 걸림돌이 된다. 잘못된 정보에 집중하거나 잘못된 기대치에 관한 정보를 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바른 혁신의 방법과 단계를 간단하고 알기 쉽게 설명하는 이 책은 ‘실행력’ 즉 실행의 방법을 논한 책으로 <스텔라는 어떻게 농장을 구했을까>가 이야기 형식을 통해 혁신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했다면, 이 책은 실행을 위한 매뉴얼 역할을 한다.

노키아, 모토로라, 코닥, 소니, GM 등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대기업들은 변화의 파도를 이기지 못하고 한순간에 무너져버렸다. 이 사실은 지금은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기업이라고 하더라도 내일 어떤 위기가 닥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사회에서 혁신은 더 이상 선택 사항이 아니라 반드시 이루어야만 하는 필수요건이다. 저자는 실제로 많은 기업들이 혁신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노력을 기울인 탓에 혁신에 실패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들이 혁신의 첫 단계인 아이디어 창출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혁신을 실행해야 하는가? 기업들이 혁신을 추진하면서 종종 저지르는 두 번째 실수가 바로 여기에 있다. 훌륭한 아이디어를 발굴하여 이를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하고는 혁신에 적합한 방식이 아닌 기존의 운영체제로 혁신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수행하는 것은 기존의 업무 수행 방식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방식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기업 조직은 혁신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일상 업무 수행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래서 혁신을 수행하는 것과 일상 업무 사이에는 근본적인 불일치가 존재한다. 이런 불일치를 극복하고 혁신과 일상 업무를 동시에 성공적으로 진행시킬 수 있는 강력한 모델 세 가지가 있다.

 

 

1. 모델S(small)는 소규모 계획에 적합한 것으로서 혁신을 여유 시간 안에 끼워 넣는 것이다. 소규모 계획을 여러 개 진행할 수 있다.

2. 모델R(repeatable)은 지속적으로 반복 수행되는 혁신 계획에 적합한 것으로, 혁신을 최대한 반복적이고 예측 가능하게 만드는 일이다. 규모와 상관없이 비슷한 계획을 연속해서 진행시킬 수 있다.

3. 모델C(custom)는 맞춤형 계획에 적합한 것으로서 모델 S와 모델 R의 한계를 넘어서는 모든 계획을 위한 것이다.

 

 

모델 C는 가장 어렵고 가장 낯설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강력하고 확실하다. 기업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모델 C를 필요로 한다. 새로운 프로세스를 개발하거나 신상품을 론칭하는 것, 새로운 서비스 또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필요할 수도 있는 것이 모델 C이다. 그 어떤 형태의 혁신 계획에서도 모델 C는 필요하다.

 

 

모델 C는 두 가지 요소 즉, 특별 팀과 특별 계획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특별 팀은 전담 팀과 공유 스태프라는 두 그룹 사이의 업무 협력을 필요로 한다. 전담 팀은 거의 풀타임에 가까운 형태로 모델 C계획에 전념하고 공유 스태프는 혁신 계획과 일상 업무를 동시에 책임진다.

전담 팀을 만들 때는 계획된 혁신 업무의 성격에 따라 맞춤형으로 구성하되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서 새로운 조직을 구성하는 것처럼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외부에서 인재를 영입하고, 새로운 역할을 만들며, 새로운 위계질서를 조성하고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고 기업이 성과 엔진을 잘 운영하는 동시에 혁신을 위한 새로운 조직을 구성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혁신 모델을 제대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기존 방식과는 다른 조직 구성, 위계질서, 평가 방식 등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기업의 주 동력원인 성과 엔진과 혁신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기 마련이고, 대부분의 경우 지금 당장 가시적인 결과를 낼 수 없는 혁신 프로젝트가 뒤로 밀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기업의 입장에서 성과 엔진과 혁신 프로젝트는 모두 중요하다. 성과 엔진은 기업의 현재를 위한 것이고, 혁신은 기업의 미래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리뷰는 삼성SDS 웹진 <북카페>칼럼으로 기고된 리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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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자본 (양장)
토마 피케티 지음, 장경덕 외 옮김, 이강국 감수 / 글항아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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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나버린 자본주의, 지금은 과감한 수정이 필요한 때 !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은 무언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다. 지난 30년간 우리는 물질적 사리사욕의 추구를 미덕으로 삼아왔다. 정말 이러한 욕망의 추구를 배제하고 나면 우리는 공동의 목적의식에 대해 아무것도 말할 것이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우리는 모든 것을 그것이 지닌 가치가 아니라 가격으로 판단한다.” 

 

  저명한 역사학자 토니 주트의 책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에서 한 말이다. 루게릭병에 걸려 의료 장비의 도움 없이는 숨조차 쉴 수 없는 상태였던 토니 주트가 육성으로 책을 쓰면서 하고 싶었던 말은 지난 30년간 극심한 빈부 격차와 불평등을 불러온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난이었다.

 

   오늘날 세계경제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에는 불평등(不平等, Inequality)이란 단어가 빠지지 않는다. 부자는 갈수록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갈수록 가난해지고, 중산층은 공동화되고 있다. 중산층의 소득은 감소하여 부유층 사이의 간극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1968년, GM의 CEO가 벌어들인 소득은 기본급과 수당을 다 합쳐 GM 일반 노동자의 66배였다. 하지만 오늘날 월마트의 CEO는 월마트 일반 노동자 임금의 900배에 달하는 돈을 번다. 그 해 월마트 창업자 가족의 총재산은 대략 900억 달러로 추산되었는데, 이는 미국의 하위 40%, 즉 1억 2천만 명의 총소득과 맞먹는 규모였다. 말 그대로 하늘과 땅 차이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조세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12년 4월 기준 우리나라 소득 상위 1%가 한 해 동안 벌어가는 돈은 16.6%로 38조 4천 790억 원에 달한다. OECD 국가 중 미국의 17.7%에 이어 두 번째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자본주의에서는 더 이상 희망을 발견하기 어렵다고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엉망진창으로 고장이 나버린 자본주의의 대안에 대한 목소리가 속속 출현하는 가운데 40대 초반의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파리경제대학 교수가 쓴 <21세기 자본(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이 단연 화제다. 2013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이 책은 유럽 사회와 학계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데 이어 지난 3월 미국 하버드대에서 영문판이 출간된 후에는 신드롬을 일으키며 전 세계 유명매체에서 연일 논쟁과 인터뷰를 쏟아내고 있다.

 

   피케티는 책 서문에서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보다 현저하게 높아지면 부의 집중이 한정 없이 계속될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능력 중심주의가 급격히 훼손되고 이를 토대로 한 민주사회가 망가진다.”고 진단했다. 역사적으로 19세기 말에 부의 불평등으로 혁명까지 이어졌고, 21세기에도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나보다 1,000배가 넘게 돈을 버는 부자들은 벌어들이는 1000배 만큼 펑펑 쓰지 못한다. 역설적이게도 그들은 가진 돈에 비해 오히려 1을 번 나보다 너무 적게 쓰는 편이다. 부자라고 해서 하루 15 끼를 먹는 것도 아니고, 1,000벌의 팬티가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원래 벌어들인 만큼 충분히 소비해야 경제가 활성화되는 법인데, 쓰고 써도 돈이 남기에 어쩔 수 없이 저축이란 걸 한다. 그리고 그 돈은 이 나라 전체와 전 세계를 돌고 돌며 금이나 부동산, 수많은 투기 상품 등 큰 수익이 된다면 무엇이든 세계 금융 시장의 일부가 되고 결국 큰 수익을 얻어 저축하기 전보다 더 큰 돈이 되어 돌아온다. ‘돈이 돈을 부르는 시스템’ 속에서는 불평등이 극심할 수밖에 없다.

 

   피케티는 낙수 효과(trickle down effect)로 모두가 잘살 수 있다는 자유 시장주의의 주장에 대하여 막연히 ‘부의 집중이 사회적 폐해를 낳는다’는 주먹구구식 주장에서 벗어나 이 책을 통해 체계적인 연구, 즉 ‘데이터’에 의한 분석으로 대응했다. 무려 300년(1712~2012년)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역사·경제 자료를 20개 이상의 나라를 대상으로 분석해 냈다.

 

   그 결과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을 앞지르면서 부의 집중은 심화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렇게 되면 자본가는 힘들게 리스크를 감수해 가며 물건을 제조해 판매할 이유가 없어진다. 쌓아둔 돈을 통해 새로운 수익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08년의 금융 위기 이후 국내경제사정은 이런 가설을 여실히 증명했다. 이명박 정부는 기업들에게 법인세를 깎아주며 투자를 독려했다. 하지만 낙수효과는 작동하지 않았고, 기업의 저축이 느는 동안 가계는 빚이 늘었다. 기업들은 투자보다는 벌어들인 이득을 쌓아두는데 급급했다. 하지만 가계는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푸념 속에 가계 빚만 1천조 원을 넘어섰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불평등은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해졌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1979년부터 2008년까지 하위 10%의 월소득이 101만 원 증가하는 동안 상위 10%의 월소득은 888만원이 늘어났다.

 

   피케티는 오늘날 부의 불평등 상황에 대해 소득 상위 1%에 해당하는 이들이 정치 영역과 결탁해 그들만의 리그를 구조화하고 있는데, 이는 19세기 ‘세습자본주의’를 답습하고 있는 것이라 비판했다. 그렇다면 피케티가 말하는 자본주의를 더욱 평화적이고 지속 가능하게 조절하는 방법은 무얼까?

 

   세금, 즉 ‘글로벌 부유세의 도입’이다. 그는 고소득층의 재산에 전면적인 누진세를 부과해야 한다면 불평등을 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전반적인 부의 이동을 공적 감독 아래 두자는 뜻으로 세계 생산의 4분의 1을 점하고 있는 미국과 유럽이 한목소리를 내 전 지구적인 금융 재정 자산 등기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래야만 협력을 거부하는 세금 피난처에 대한 제재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은 “경제적 분석이라기보다 이데올로기적 장광설에 불과하다”고 말했고,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는 “너무 이상주의적인 정치 발상”이라고 혹평했지만 소수의 엘리트가 지배하는 과두 체제로 흘러갈 위험이 현실화된 만큼 방법의 차이일 뿐 적절한 통제는 불가피해 보인다.

 

   최근 박근혜 정부가 발표한 기업소득환류세제만 하더라도 세금을 통해 억지로라도 지난 정부 때 이루지 못한 ‘낙수효과’를 거두어 불평등을 줄이겠다는 제도가 아니던가. 기업소득의 일정부분을 투자나 배당, 임금증가 등으로 사용하고 남은 금액에 대해서는 벌칙으로 세금을 매긴다는 내용인데, 적용대상이 대기업 그룹사들이 주종인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소속 기업과 자기자본 500억원 초과하는 4천여 개의 법인인 점을 고려하면 기업을 법인(法人), 즉 법적(法的)인 인격(人格)이라 본다면 일종의 부유세이자 보유세의 성격을 띤다.

 

   한편 토니 주트는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에서 “부의 불평등은 세대 간 계층 이동의 가능성을 사라지게 했다”고 역설했다. 절대 다수가 겪는 경제적 곤란은 곧 건강 악화와 교육 기회의 상실, 그리고 알코올 중독, 비만, 도박, 경범죄와 같이 우리에게 익숙한 우울증 증세의 증가로 이어지고, 실직과 비정규직과 같은 불완전 고용은 노동자들이 지금껏 갈고 닦아 온 기술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려 결국 경제에 불필요한 존재로 전락시키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책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은 불평등 해소를 통해 진정한 삶의 가치와 노동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있다. 주인공은 오카야마 현 북쪽의 가쓰야마라는 이름도 생소한 시골마을 빵집주인이자 제빵사인 와타나베 이타루이다.

 

   막연히 시골에 사는 농부를 꿈꾸다 서른이 넘어서야 간신히 유기농산물 도매회사에 취직한 저자는 동경하던 원산지 허위표기니 뒷돈 거래니 하는 부정을 저지르는 회사에 염증과 회의를 느끼고 퇴사하고 만다. 삶의 진정성을 찾아 헤매던 끝에 그는 ‘작아도 진정한 자기 일을 하고 싶다’는 결론에 이르고, 마침내 빵집을 열었다.

 

 

   빵을 만들기 위한 밀가루 반죽과정, 그리고 균을 통해 발효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저자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시간과 함께 모습을 바꾸고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배웠다. 아울러 빵이 만들어지는 이 모든 것은 균의 작용에 의한 ‘발효’와 ‘부패’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스트처럼 인공배양된 균은 원래 부패해서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물질마저도 억지로 음식으로 바꿔버리고 있었다. 균은 균인데 자연의 섭리를 일탈한 ‘부패하지 않는’ 음식을 만들어내는 인위적인 균이 이스트였다. 그는 곧 이 부패하지 않는 균, 이스트는 우리가 제일로 생각하는 ‘돈’을 닮았음을 깨닫는다.

 

   저자는 이 책 전반에 걸쳐 “부패와 순환이 일어나지 않는 돈이, 자본주의의 모순을 낳았다”고 주장한다. 이스트에 의해 만들어진 부패하지 않는 음식은 다량생산을 가능하게 해서 먹거리의 가격을 낮추고 일자리를 값싸게 만든 것처럼 돈 역시 시간이 지나도 흙으로 돌아가기는커녕 영원히 부패하지 않고 돌고 도는 물건이다. 오히려 돈이 쌓이면 투자를 통해 얻는 '이윤'과 대차(금융)를 통해 발생하는 이자로 인해 끝없이 불어나는 성질마저 있다.

 

   다루마리 빵집의 경영 이념을 ‘이윤을 남기지 않는다’이다. 그 이유를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메커니즘에서 찾았다. 상품의 가격을 떨어뜨리면 노동력이 값싸지고 노동력이 값싸지면 상품 가격도 떨어진다. 이러한 끝없는 반복 속에서 상품과 노동력의 질만 떨어지고 그로 인한 이윤은 자본가만 취한다고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주장했다.

 

   그래서 저자는 우선 정당한 가격에 상품을 팔았다. 이스트는 물론 인공첨가물은 절대 섞지 않고 최고의 재료들로 엄선해서 아무리 어렵더라도 천연 효모를 발생시켜 정성껏 빵을 만들어 파는 대신 정당한 가격에 빵을 팔고 있다. 시골의 빵집인데 빵가격이 평균 4,000원 정도, 비싼 편이다. 하지만 일본 전국에서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

 

   다루마리 빵집이 이윤을 내지 않겠다는 것은 그 누구도 착취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종업원, 생산자, 자연, 소비자 등 그 누구도 착취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사장이나 종업원의 월급을 제외하고, 그 외에 남는 것은 매달 결산내용을 직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여 공평하게 이윤을 나누어 착취가 있을 여지를 없앴다.

 

   게다가 일주일에 사흘은 휴무이고, 매년 한 달은 장기 휴가로 문을 닫았다. 제빵사가 숙련된 기술을 가졌다는 이유로 존경받으려면 스스로 잘 쉴 수 있어야 하고 인간답게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두 권의 책 제목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자본론(Capital)’은 다분히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 따온 것이다. 하지만 같은 제목 아래 결론은 각각 다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결국 종말이 올 것이라고 결론지었지만, 피케티는 마르크스가 주장한 자본 이윤율의 저하 자체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글로벌 부유세’로 고장 난 자본주의를 고쳐 쓰자고 결론 내렸다. 시골빵집 주인 역시 매월 결산 내용을 직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착취 없는 구조’를 만들고자 했다. 그에게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반면선생(反面先生)인 셈이다.

 

   이들의 공통된 주장은 실패한 공산주의를 다시 불러오자는 것이 아니라, 현재 잘못된 자본주의에 대한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점, 그리고 손을 본다면 공정성과 형평성을 충분히 고려해 공명정대해야 점이다.

 

   실험경제학에서 사용되는 게임이론 중에 최후통첩 게임(Ultimatum game)이란 게 있다. 게임의 대략적인 내용은 기본적으로 두 명의 참여자가 등장해 돈을 분배하는데, 1번 참여자가 돈을 어떻게 분배할지 제안하면, 2번 참여자는 이를 받아들이거나 거절 할 수 있다. 즉, 2번 참여자가 '거절'을 선택하면 두 사람 모두 한 푼도 받지 못한다. 하지만 2번 참여자가 '수용'을 선택하면 1번 참여자의 제안에 따라 돈이 분배된다.

 

   만약 독자인 당신이 이 게임에 반응자로 참여하고, 필자인 내게 처음 지급되는 돈이 20만원이라고 하자. 내가 19 대 1, 즉 내가 19만 원을 갖고, 달랑 1만 원을 당신에게 주겠다는 제안을 한다면, 당신은 어떤 반응을 할까? 이 게임의 룰을 알고 있는 당신은 틀림없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다 때려치워! 이 양심 없는 새끼야.

내가 1만 원을 포기하는 대신 너도 땡전 한 푼도 갖지 못하게 할꺼야!”

 

   순수경제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어떤 사람이든 ‘1만 원을 선택해야’만 한다. 재산이 한 푼이라도 늘어나는 쪽의 선택이 이성적이고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결과는 정반대다. 그런데 행동경제학의 많은 연구결과에 따르면 공평과 정의에 대한 인식에 의해 사람은 누구나 불공평한 제안을 받으면 두뇌의 뇌섬엽 부위가 활성화되어 먼저 화를 내고, 자신에게 불공평한 대우를 한 사람을 응징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려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최후통첩 게임이 주는 메시지는 우리가 지금 불평등에 분노하고 있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란 소리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배분을 제안해야 상대가 순순히 받아들일까? 최소 12 대 8 정도라고 한다. 이 연구가 주는 교훈은 ‘별 탈 없이 좀 더 많이 갖고 싶다면 적당히 나눠줄 줄도 알라.’일 것이다(듣고 있나, 1%?).

 

   지난 2011년, 우리는 수백만 인파가 거리를 점거하고 자신이 몸담은 억압적인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상황에 항의하는 모습을 직간접적으로 목격했다.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인 뉴욕의 월가 한복판에 1천여 명의 시위대가 모여들어 ‘월가를 점령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금융자본의 탐욕을 지탄하고 양극화와 빈부격차의 해소를 촉구했고, 이 운동은 전세계 대도시에 급속도로 전파되었다. 이집트, 튀니지, 리비아는 정부가 전복되었고, 예맨, 바레인, 시리아에서는 ‘불평등의 세상을 뒤엎자’는 시위가 일어났다.

 

   그 후 3년이 지난 우리의 현실을 보자. 실업은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해지고, 빈부격차와 소득의 불평등은 이미 도를 넘어버렸다. 게다가 탐욕스럽게 변해버린 금융자본의 전횡을 막을 수 있는 방법도 전무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움직이는 금융자본주의는 결코 우리에게 행복을 주지 못하고 있다. 행복은커녕 수많은 사람들을 파산시키며 분노로 몰아가고 있다. 이대로라면 다음 차례는 누가 될까? 불 보듯 뻔하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 대학 교수는 자신의 책 <불평등의 대가>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고, 최고의 의사의 도움을 받으며 최고의 주택에서 최고 수준의 생활을 하는 상위 1%들이 돈을 아무리 써대도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으니 바로 ‘자신의 운명이 나머지 99%의 운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인식이다.”라고 말했다. <국부론>을 쓴 애덤 스미스도 “구성원 대부분이 가난하고 궁핍하게 살아가는 사회는 번영할 수도, 행복해질 수도 없다.”고 수백 년 전 이미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불평등의 해결책은 뭘까? 이에 대한 명쾌한 해답은 클린턴 정부 시절 노동부 장관을 역임했고, <슈퍼자본주의>,<부유한 노예>,<미래를 위한 약속> 등의 명저를 쓴 로버트 라이시가 UC Berkeley 에서 했던 <부와 빈곤> 이라는 강의를 영화화 다큐멘터리의 내용 중에서 얻고자 한다.

 

“바로 99%를 구제하는 것이다. 우리는 낙수효과로 대변되는 트리클 다운Trickle-down 대신, 미들 아웃Middle-out 즉 중산층의 소비가 경제를 살리는 중심이 되도록 해야 한다. 지구상의 어느 곳이든 경기가 좋은 곳에서는 대규모 투자가 중산층과 빈곤층에 집중되고 있다. 궁극적으로 그들이 직업 창출자이자 최종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경제의 안정은 강한 중산층에서 비롯된다. 아울러 정부가 할 수 있는 가장 친기업적인 일 역시 중산층이 성공하도록 돕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제목은 <모두를 위한 불공평Inequality for All>이었다.

 

 

이 글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가 격주간 발행하는

출판전문저널 <기획회의>(374호) 특집원고로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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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용설명서 - EBS 다큐프라임
정지은.고희정 지음, EBS 자본주의 제작팀 엮음, EBS MEDIA / 가나출판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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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자본주의 생존법을 담은 경제교과서

 

 

 

   몇 해 전 <대국굴기>라는 다큐멘터리가 있었다. 중국의 CCTV가 3년의 노력 끝에 제작한 12부작 프로그램으로 세계 100여 명 석학들의 다양하고 깊이 있는 견해가 들어 있는 걸작이었다. <대국굴기>가 성공하자 CCTV는 중국의 발전 과정을 되짚어본 다큐멘터리 <부흥의 길>, 중국의 개혁개방 30주년 기념하여 ‘차이나드림의 10가지 표본’을 보여준 <중국이야기> 등을 제작했고, 지난 2010년에는 세계 역사 속에서 기업이 어떻게 진화해왔고 또 어떻게 세상을 바꿔왔는지 되짚어보는 10부작 다큐멘터리 <기업의 힘>을 제작하기도 했다(국내에서는 2012년 EBS를 통해 방영된 바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다큐멘터리의 왕국 영국의 BBC나 일본의 NHK가 아닌, 중국의 CCTV가 천문학적인 제작비를 들이고 수 년 동안 공을 들여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을까 하는 점이다. 당장 10부작으로 제작된 <기업의 힘>만 하더라도 이 다큐멘터리를 완성하기 위해 제작팀은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인도 등 8개국을 돌며 귀중한 역사 자료들과 유적을 찾아 다녔다. 그리고 세계 각국의 유수 대학과 경영대학원, 연구기관을 취재했고,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과 100명이 넘는 역사ㆍ경제ㆍ정치ㆍ사회 등 각 분야의 석학들을 만나 인터뷰 했을 것이다. 이 방대한 작업을 CCTV가 직접 한 이유는 뭘까? 답은 간단하다. 교과서가 없어서였다.

 

 

   공산주의 죽의 장막 속에서 꽁꽁 숨어 살다가 하루아침에 미국에 이은 경제대국이 된 중국은 세상이 궁금해졌다. 하지만 중국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해결해 줄 자료가 없었다. 그래서 직접 찾아나선 것이다. 세계 선진국의 현주소가 궁금했다. 그래서 발로 뛰며 <대국굴기>를 제작했다.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에 대한 연구를 하자니 수도 없이 튀어나오는 단어가 기업(企業)이었다. 그래서 <기업의 힘>을 제작한 것이다. 그리고 제작한 콘텐츠는 다시 책으로 만들어졌고, 중국 전역에 전파되었다.

 

 

   대륙의 성공에 어부지리(漁父之利)로 우리나라가 덕을 봤다.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있으면서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딱히 국민을 위한 경제교과서 없었던 대한민국은 대륙의 다큐멘터리를 제작되는 대로 공유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우리는 왜 이런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지 않은거지?”

 

 

 

EBS 다큐프라임의 <자본주의>는 그래서 태어난 작품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현재 위기는 대공황 때보다 더 크고 오래 갈 거라는 어두운 전망 속에서 문득 약 250년에 걸쳐 우리 사회를 지배했으며 현재 위기를 겪고 있는 ‘자본주의’를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자본주의의 발상지인 ‘영국’과 자본주의를 꽃피운 ‘미국’으로 건너가 자본주의 역사 그 자체인 영국과 미국의 석학들을 인터뷰하여 현재의 자본주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물었다.

   5부작으로 제작된 이 다큐멘터리는 시청자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얻었고, 지난 2012년 말부터 2013년 까지 방송관련 상은 거의 모두 수상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그리고 예의 CCTV의 다큐멘터리처럼 동명의 제목으로 <자본주의>라는 책까지 출간되었다.

 

   “우리가 좋든 싫든 사회와 경제가 복잡해지면 금융 부문이 성장합니다. 단순한 사실이죠. 사회가 더 부유해질수록 보험, 모기지, 신용카드, 다양한 저축, 연금 등과 같은 상품에 대한 욕구가 복잡해지기 때문입니다. 세계는 부유해질수록 금융 부문이 더 커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10년 뒤에 지금보다 더 금융이 중요한 세상에 살게 되리란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10년 전보다 지금 금융이 훨씬 중요하듯이 말이죠.”

 

 

   미국 하버드대 역사학과 니얼 퍼거슨 교수의 말은 이런 종류의 책을 읽어야 하는 당위성을 강조하는 듯하다. 21세기 현대인에게 금융공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숙제이자 운명이다. 죽어라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번다해도 늘리기는커녕 지키지 조차 못한다면 소용없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전체적인 구성은 기존에 출간된 수십 권의 경제관련서의 엑기스를 합해 놓은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 그도 그럴 것이 한 주제에 대해 유명저자이자 세계적인 석학들을 인터뷰한 내용들로 엮었기 때문이다. 살펴본다면 신문이나 뉴스에서 자주 나오는 내용들, 즉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대체 무엇이고 왜 문제가 생겼는지, 최근 저축은행 사태는 왜 일어났는지, 마트에 가면 왜 나도 모르게 많이 사게 되는지 등 요즘 꼭 알아야 할 자본주의 사회의 숨은 진실들을 만나게 된다.

 

 

 

   <자본주의>가 자본주의에 대한 실체를 다룬 개론서라면, 후속작인 <자본주의 사용설명서>는 자본주의의 숨겨진 진실을 알고 난 후 독자들이 현실세계에서 무엇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하는 ‘현실적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현대인이라면 그 누구도 금융과 소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전제 아래 금융, 소비, 돈, 금융교육의 각 장마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평범한 소시민들을 등장시켜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우리의 일상생활 깊숙이 침투해 있는 자본주의의 유혹과 위협을 구체적이고 실감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밀려오는 청구서를 처리하기 위해 왜 투잡을 뛰어야 하는지, 더 깊은 만족감을 위해 잠시의 쾌락을 접어두지 못하고 왜 쇼핑중독에 빠지는지, 금융 시장의 구성 요소를 모른 채 금융 열기에 뛰어들면 왜 안 되는지, 슬프거나 우울할 때 우리는 왜 뭔가 사려고 하는지 등 현실적인 내용들은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하며 궁금해 했던 것들이다.

 

 

   특히 ‘원 플러스 원 상품의 구입이 과연 합리적 소비일까’에서 합리적인 소비란 그 소비의 현재가치를 고려하고 이 소비를 위해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라는 내용에 깊이 공감했다. 그래야 기업의 의지가 아닌 내 의지에 의해 돈을 지출하는 소비가 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아껴 쓰고 싶어도 아껴 쓸 수 없는 사회’에서 프린터가 고장 나는 것은 기계적 결함이 아니라 프린터 안에 내장된 마이크로 칩에 의해 ‘1만 페이지’를 인쇄한 후엔 기계 작동이 멈추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고 깜짝 놀랐다. 만들 때부터 짧은 수명으로 프로그램 되어 나오는 물건들에 대해 소비자는 계속 쓸 지 말지에 대한 선택권은 애초에 없었다는 생각에 ‘소비 부추기는’ 제조사에 대해 괴씸한 생각까지 들었다.

   이 밖에도 ‘은행에 빚을 갚는다’는 것이 개인에게는 속박과 굴레를 벗어남을 뜻하지만 국가 경제로 보면 경제 규모의 축소를 의미한다는 것도 알게 되고, 마트에 가기만 하면 계산된 영수증을 보고 왜 나도 모르게 많이 산건지 후회하게 되는지도 속시원히 알게 될 것이다.

 

 

   이 책의 백미는 후반부에 있는 금융교육이다. 2007년 뉴욕발 금융위기 이후 미국 오바마 정부는 아이들을 위한 금융교육에 힘썼다. 그 중 시카고 웨스트리지 초등학교에서 진행한 머니 세이비 프로그램은 인상적이다. 소비, 저축, 투자, 기부로 칸이 나뉜 저금통을 아이들에게 나눠주어 돈이 생기면 저축만 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와 투자, 그리고 기부도 함께 하는 것임을 자연스럽게 알리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돈에 대한 근본적인 교육이나 금융교육은 학교에서조차 하지 않고 있다. 최소한 아이들에게 욕구를 참고 저축하며 경제 형편에 맞게 사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다시 한 번 밝히지만 <자본주의>와 <자본주의 사용설명서>는 재테크 책이 아니라 일반인을 위한 경제교과서 정도 된다. 읽어본다면 떼돈 버는 방법은 들어있지 않지만, 내가 과연 현명한 소비자인가, 슬기로운 투자자인가는 충분히 검토해 볼 수 있다. 이런 경제교과서가 많이 출간되기를, 그리고 많은 독자가 읽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이 리뷰는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가 격주간 발행하는 출판전문저널

기획회의 (374호) 전문가 리뷰에 기고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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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 천연균과 마르크스에서 찾은 진정한 삶의 가치와 노동의 의미
와타나베 이타루 지음, 정문주 옮김 / 더숲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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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나버린 자본주의, 지금은 과감한 수정이 필요한 때 !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은 무언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다. 지난 30년간 우리는 물질적 사리사욕의 추구를 미덕으로 삼아왔다. 정말 이러한 욕망의 추구를 배제하고 나면 우리는 공동의 목적의식에 대해 아무것도 말할 것이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우리는 모든 것을 그것이 지닌 가치가 아니라 가격으로 판단한다.”

 

 

 

  저명한 역사학자 토니 주트의 책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에서 한 말이다. 루게릭병에 걸려 의료 장비의 도움 없이는 숨조차 쉴 수 없는 상태였던 토니 주트가 육성으로 책을 쓰면서 하고 싶었던 말은 지난 30년간 극심한 빈부 격차와 불평등을 불러온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난이었다.

 

   오늘날 세계경제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에는 불평등(不平等, Inequality)이란 단어가 빠지지 않는다. 부자는 갈수록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갈수록 가난해지고, 중산층은 공동화되고 있다. 중산층의 소득은 감소하여 부유층 사이의 간극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1968년, GM의 CEO가 벌어들인 소득은 기본급과 수당을 다 합쳐 GM 일반 노동자의 66배였다. 하지만 오늘날 월마트의 CEO는 월마트 일반 노동자 임금의 900배에 달하는 돈을 번다. 그 해 월마트 창업자 가족의 총재산은 대략 900억 달러로 추산되었는데, 이는 미국의 하위 40%, 즉 1억 2천만 명의 총소득과 맞먹는 규모였다. 말 그대로 하늘과 땅 차이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조세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12년 4월 기준 우리나라 소득 상위 1%가 한 해 동안 벌어가는 돈은 16.6%로 38조 4천 790억 원에 달한다. OECD 국가 중 미국의 17.7%에 이어 두 번째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자본주의에서는 더 이상 희망을 발견하기 어렵다고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엉망진창으로 고장이 나버린 자본주의의 대안에 대한 목소리가 속속 출현하는 가운데 40대 초반의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파리경제대학 교수가 쓴 <21세기 자본(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이 단연 화제다. 2013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이 책은 유럽 사회와 학계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데 이어 지난 3월 미국 하버드대에서 영문판이 출간된 후에는 신드롬을 일으키며 전 세계 유명매체에서 연일 논쟁과 인터뷰를 쏟아내고 있다.

 

   피케티는 책 서문에서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보다 현저하게 높아지면 부의 집중이 한정 없이 계속될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능력 중심주의가 급격히 훼손되고 이를 토대로 한 민주사회가 망가진다.”고 진단했다. 역사적으로 19세기 말에 부의 불평등으로 혁명까지 이어졌고, 21세기에도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나보다 1,000배가 넘게 돈을 버는 부자들은 벌어들이는 1000배 만큼 펑펑 쓰지 못한다. 역설적이게도 그들은 가진 돈에 비해 오히려 1을 번 나보다 너무 적게 쓰는 편이다. 부자라고 해서 하루 15 끼를 먹는 것도 아니고, 1,000벌의 팬티가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원래 벌어들인 만큼 충분히 소비해야 경제가 활성화되는 법인데, 쓰고 써도 돈이 남기에 어쩔 수 없이 저축이란 걸 한다. 그리고 그 돈은 이 나라 전체와 전 세계를 돌고 돌며 금이나 부동산, 수많은 투기 상품 등 큰 수익이 된다면 무엇이든 세계 금융 시장의 일부가 되고 결국 큰 수익을 얻어 저축하기 전보다 더 큰 돈이 되어 돌아온다. ‘돈이 돈을 부르는 시스템’ 속에서는 불평등이 극심할 수밖에 없다.

 

   피케티는 낙수 효과(trickle down effect)로 모두가 잘살 수 있다는 자유 시장주의의 주장에 대하여 막연히 ‘부의 집중이 사회적 폐해를 낳는다’는 주먹구구식 주장에서 벗어나 이 책을 통해 체계적인 연구, 즉 ‘데이터’에 의한 분석으로 대응했다. 무려 300년(1712~2012년)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역사·경제 자료를 20개 이상의 나라를 대상으로 분석해 냈다.

   그 결과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을 앞지르면서 부의 집중은 심화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렇게 되면 자본가는 힘들게 리스크를 감수해 가며 물건을 제조해 판매할 이유가 없어진다. 쌓아둔 돈을 통해 새로운 수익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08년의 금융 위기 이후 국내경제사정은 이런 가설을 여실히 증명했다. 이명박 정부는 기업들에게 법인세를 깎아주며 투자를 독려했다. 하지만 낙수효과는 작동하지 않았고, 기업의 저축이 느는 동안 가계는 빚이 늘었다. 기업들은 투자보다는 벌어들인 이득을 쌓아두는데 급급했다. 하지만 가계는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푸념 속에 가계 빚만 1천조 원을 넘어섰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불평등은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해졌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1979년부터 2008년까지 하위 10%의 월소득이 101만 원 증가하는 동안 상위 10%의 월소득은 888만원이 늘어났다.

 

 

   피케티는 오늘날 부의 불평등 상황에 대해 소득 상위 1%에 해당하는 이들이 정치 영역과 결탁해 그들만의 리그를 구조화하고 있는데, 이는 19세기 ‘세습자본주의’를 답습하고 있는 것이라 비판했다. 그렇다면 피케티가 말하는 자본주의를 더욱 평화적이고 지속 가능하게 조절하는 방법은 무얼까?

 

 

   세금, 즉 ‘글로벌 부유세의 도입’이다. 그는 고소득층의 재산에 전면적인 누진세를 부과해야 한다면 불평등을 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전반적인 부의 이동을 공적 감독 아래 두자는 뜻으로 세계 생산의 4분의 1을 점하고 있는 미국과 유럽이 한목소리를 내 전 지구적인 금융 재정 자산 등기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래야만 협력을 거부하는 세금 피난처에 대한 제재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은 “경제적 분석이라기보다 이데올로기적 장광설에 불과하다”고 말했고,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는 “너무 이상주의적인 정치 발상”이라고 혹평했지만 소수의 엘리트가 지배하는 과두 체제로 흘러갈 위험이 현실화된 만큼 방법의 차이일 뿐 적절한 통제는 불가피해 보인다.

 

 

   최근 박근혜 정부가 발표한 기업소득환류세제만 하더라도 세금을 통해 억지로라도 지난 정부 때 이루지 못한 ‘낙수효과’를 거두어 불평등을 줄이겠다는 제도가 아니던가. 기업소득의 일정부분을 투자나 배당, 임금증가 등으로 사용하고 남은 금액에 대해서는 벌칙으로 세금을 매긴다는 내용인데, 적용대상이 대기업 그룹사들이 주종인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소속 기업과 자기자본 500억원 초과하는 4천여 개의 법인인 점을 고려하면 기업을 법인(法人), 즉 법적(法的)인 인격(人格)이라 본다면 일종의 부유세이자 보유세의 성격을 띤다.

 

   한편 토니 주트는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에서 “부의 불평등은 세대 간 계층 이동의 가능성을 사라지게 했다”고 역설했다. 절대 다수가 겪는 경제적 곤란은 곧 건강 악화와 교육 기회의 상실, 그리고 알코올 중독, 비만, 도박, 경범죄와 같이 우리에게 익숙한 우울증 증세의 증가로 이어지고, 실직과 비정규직과 같은 불완전 고용은 노동자들이 지금껏 갈고 닦아 온 기술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려 결국 경제에 불필요한 존재로 전락시키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책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은 불평등 해소를 통해 진정한 삶의 가치와 노동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있다. 주인공은 오카야마 현 북쪽의 가쓰야마라는 이름도 생소한 시골마을 빵집주인이자 제빵사인 와타나베 이타루이다.

   막연히 시골에 사는 농부를 꿈꾸다 서른이 넘어서야 간신히 유기농산물 도매회사에 취직한 저자는 동경하던 원산지 허위표기니 뒷돈 거래니 하는 부정을 저지르는 회사에 염증과 회의를 느끼고 퇴사하고 만다. 삶의 진정성을 찾아 헤매던 끝에 그는 ‘작아도 진정한 자기 일을 하고 싶다’는 결론에 이르고, 마침내 빵집을 열었다.

 

 

   빵을 만들기 위한 밀가루 반죽과정, 그리고 균을 통해 발효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저자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시간과 함께 모습을 바꾸고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배웠다. 아울러 빵이 만들어지는 이 모든 것은 균의 작용에 의한 ‘발효’와 ‘부패’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스트처럼 인공배양된 균은 원래 부패해서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물질마저도 억지로 음식으로 바꿔버리고 있었다. 균은 균인데 자연의 섭리를 일탈한 ‘부패하지 않는’ 음식을 만들어내는 인위적인 균이 이스트였다. 그는 곧 이 부패하지 않는 균, 이스트는 우리가 제일로 생각하는 ‘돈’을 닮았음을 깨닫는다.

 

 

   저자는 이 책 전반에 걸쳐 “부패와 순환이 일어나지 않는 돈이, 자본주의의 모순을 낳았다”고 주장한다. 이스트에 의해 만들어진 부패하지 않는 음식은 다량생산을 가능하게 해서 먹거리의 가격을 낮추고 일자리를 값싸게 만든 것처럼 돈 역시 시간이 지나도 흙으로 돌아가기는커녕 영원히 부패하지 않고 돌고 도는 물건이다. 오히려 돈이 쌓이면 투자를 통해 얻는 '이윤'과 대차(금융)를 통해 발생하는 이자로 인해 끝없이 불어나는 성질마저 있다.

 

   다루마리 빵집의 경영 이념을 ‘이윤을 남기지 않는다’이다. 그 이유를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메커니즘에서 찾았다. 상품의 가격을 떨어뜨리면 노동력이 값싸지고 노동력이 값싸지면 상품 가격도 떨어진다. 이러한 끝없는 반복 속에서 상품과 노동력의 질만 떨어지고 그로 인한 이윤은 자본가만 취한다고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주장했다.

   그래서 저자는 우선 정당한 가격에 상품을 팔았다. 이스트는 물론 인공첨가물은 절대 섞지 않고 최고의 재료들로 엄선해서 아무리 어렵더라도 천연 효모를 발생시켜 정성껏 빵을 만들어 파는 대신 정당한 가격에 빵을 팔고 있다. 시골의 빵집인데 빵가격이 평균 4,000원 정도, 비싼 편이다. 하지만 일본 전국에서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

 

 

   다루마리 빵집이 이윤을 내지 않겠다는 것은 그 누구도 착취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종업원, 생산자, 자연, 소비자 등 그 누구도 착취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사장이나 종업원의 월급을 제외하고, 그 외에 남는 것은 매달 결산내용을 직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여 공평하게 이윤을 나누어 착취가 있을 여지를 없앴다.

   게다가 일주일에 사흘은 휴무이고, 매년 한 달은 장기 휴가로 문을 닫았다. 제빵사가 숙련된 기술을 가졌다는 이유로 존경받으려면 스스로 잘 쉴 수 있어야 하고 인간답게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두 권의 책 제목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자본론(Capital)’은 다분히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 따온 것이다. 하지만 같은 제목 아래 결론은 각각 다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결국 종말이 올 것이라고 결론지었지만, 피케티는 마르크스가 주장한 자본 이윤율의 저하 자체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글로벌 부유세’로 고장 난 자본주의를 고쳐 쓰자고 결론 내렸다. 시골빵집 주인 역시 매월 결산 내용을 직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착취 없는 구조’를 만들고자 했다. 그에게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반면선생(反面先生)인 셈이다.

   이들의 공통된 주장은 실패한 공산주의를 다시 불러오자는 것이 아니라, 현재 잘못된 자본주의에 대한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점, 그리고 손을 본다면 공정성과 형평성을 충분히 고려해 공명정대해야 점이다.

 

   실험경제학에서 사용되는 게임이론 중에 최후통첩 게임(Ultimatum game)이란 게 있다. 게임의 대략적인 내용은 기본적으로 두 명의 참여자가 등장해 돈을 분배하는데, 1번 참여자가 돈을 어떻게 분배할지 제안하면, 2번 참여자는 이를 받아들이거나 거절 할 수 있다. 즉, 2번 참여자가 '거절'을 선택하면 두 사람 모두 한 푼도 받지 못한다. 하지만 2번 참여자가 '수용'을 선택하면 1번 참여자의 제안에 따라 돈이 분배된다.

 

   만약 독자인 당신이 이 게임에 반응자로 참여하고, 필자인 내게 처음 지급되는 돈이 20만원이라고 하자. 내가 19 대 1, 즉 내가 19만 원을 갖고, 달랑 1만 원을 당신에게 주겠다는 제안을 한다면, 당신은 어떤 반응을 할까? 이 게임의 룰을 알고 있는 당신은 틀림없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다 때려치워! 이 양심 없는 새끼야.

내가 1만 원을 포기하는 대신 너도 땡전 한 푼도 갖지 못하게 할꺼야!”

 

   순수경제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어떤 사람이든 ‘1만 원을 선택해야’만 한다. 재산이 한 푼이라도 늘어나는 쪽의 선택이 이성적이고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결과는 정반대다. 그런데 행동경제학의 많은 연구결과에 따르면 공평과 정의에 대한 인식에 의해 사람은 누구나 불공평한 제안을 받으면 두뇌의 뇌섬엽 부위가 활성화되어 먼저 화를 내고, 자신에게 불공평한 대우를 한 사람을 응징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려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최후통첩 게임이 주는 메시지는 우리가 지금 불평등에 분노하고 있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란 소리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배분을 제안해야 상대가 순순히 받아들일까? 최소 12 대 8 정도라고 한다. 이 연구가 주는 교훈은 ‘별 탈 없이 좀 더 많이 갖고 싶다면 적당히 나눠줄 줄도 알라.’일 것이다(듣고 있나, 1%?).

 

   지난 2011년, 우리는 수백만 인파가 거리를 점거하고 자신이 몸담은 억압적인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상황에 항의하는 모습을 직간접적으로 목격했다.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인 뉴욕의 월가 한복판에 1천여 명의 시위대가 모여들어 ‘월가를 점령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금융자본의 탐욕을 지탄하고 양극화와 빈부격차의 해소를 촉구했고, 이 운동은 전세계 대도시에 급속도로 전파되었다. 이집트, 튀니지, 리비아는 정부가 전복되었고, 예맨, 바레인, 시리아에서는 ‘불평등의 세상을 뒤엎자’는 시위가 일어났다.

 

 

   그 후 3년이 지난 우리의 현실을 보자. 실업은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해지고, 빈부격차와 소득의 불평등은 이미 도를 넘어버렸다. 게다가 탐욕스럽게 변해버린 금융자본의 전횡을 막을 수 있는 방법도 전무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움직이는 금융자본주의는 결코 우리에게 행복을 주지 못하고 있다. 행복은커녕 수많은 사람들을 파산시키며 분노로 몰아가고 있다. 이대로라면 다음 차례는 누가 될까? 불 보듯 뻔하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 대학 교수는 자신의 책 <불평등의 대가>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고, 최고의 의사의 도움을 받으며 최고의 주택에서 최고 수준의 생활을 하는 상위 1%들이 돈을 아무리 써대도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으니 바로 ‘자신의 운명이 나머지 99%의 운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인식이다.”라고 말했다. <국부론>을 쓴 애덤 스미스도 “구성원 대부분이 가난하고 궁핍하게 살아가는 사회는 번영할 수도, 행복해질 수도 없다.”고 수백 년 전 이미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불평등의 해결책은 뭘까? 이에 대한 명쾌한 해답은 클린턴 정부 시절 노동부 장관을 역임했고, <슈퍼자본주의>,<부유한 노예>,<미래를 위한 약속> 등의 명저를 쓴 로버트 라이시가 UC Berkeley 에서 했던 <부와 빈곤> 이라는 강의를 영화화 다큐멘터리의 내용 중에서 얻고자 한다.

 

“바로 99%를 구제하는 것이다. 우리는 낙수효과로 대변되는 트리클 다운Trickle-down 대신, 미들 아웃Middle-out 즉 중산층의 소비가 경제를 살리는 중심이 되도록 해야 한다. 지구상의 어느 곳이든 경기가 좋은 곳에서는 대규모 투자가 중산층과 빈곤층에 집중되고 있다. 궁극적으로 그들이 직업 창출자이자 최종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경제의 안정은 강한 중산층에서 비롯된다. 아울러 정부가 할 수 있는 가장 친기업적인 일 역시 중산층이 성공하도록 돕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제목은 <모두를 위한 불공평Inequality for All>이었다.

 

 

 

 

이 글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가 격주간 발행하는

출판전문저널 <기획회의>(374호) 특집원고로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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