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본주의 - 경제민주화를 넘어 정의로운 경제로 한국 자본주의 1
장하성 지음 / 헤이북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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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은 <21세기 자본>이 던진 화두에 대한 답이다!

 

 

 

올해 초부터 전 세계는 피케티 효과로 뜨겁다! 40대 초반의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파리경제대학 교수가 쓴 『21세기 자본(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장경덕 옮김, 글항아리, 2014)이 주인공이다. 영어로 695페이지, 국내서로는 820페이지에 이르는 대단한 분량의 이 책은 2013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것을 2014년 4월 하버드 대학 출판부가 출간하자마자, 전 세계 각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21세기 자본』의 요체는 이렇다. “자본 수익률이 노동 수익률보다 높기 때문에 불평등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면 결국 자본주의가 붕괴될 것이다. 그리고 능력 중심주의가 급격히 훼손되고 이를 토대로 한 민주사회가 망가진다.” 피케티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쥐꼬리만큼 커가는 연봉으로는 LTE 속도로 높아진 아파트 값을 따라잡을 수 없는 현실을 살고 있어서다. 

   하지만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은 말뿐인 푸념수준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부의 분배가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자본주의가 잉태되기 시작한 17세기부터 21세기 오늘날까지 무려 300여년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역사·경제 자료와 통계를 갖고 과거 프랑스, 미국, 영국, 일본 등 20개 이상의 나라를 대상으로 세무 통계를 내고 그 추이를 수치화하여 주류경제학과 정면으로 맞섰다. 


   1968년, GM의 CEO가 벌어들인 소득은 기본급과 수당을 다 합쳐 GM 일반 노동자의 66배였다. 하지만 오늘날 월마트의 CEO는 월마트 일반 노동자 임금의 900배에 달하는 돈을 번다. 그 해 월마트 창업자 가족의 총재산은 대략 900억 달러로, 이는 미국의 하위 40%, 즉 1억 2천만 명의 총소득과 맞먹는 규모였다. 말 그대로 하늘과 땅 차이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조세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12년 4월 기준 우리나라 소득 상위 1%가 한 해 동안 벌어가는 돈은 16.6%로 38조 4천 790억 원에 달한다. OECD 국가 중 미국의 17.7%에 이어 두 번째다. 회사는 커져도 노동자들의 삶은 위축되고, 노동 생산성에 미치지 못한 실질 임금의 감소는 기업이 잘 되도 가계에 그 혜택이 돌아가지 않음으로써 노동자들의 삶을 위축시키고 있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불평등은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해졌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1979년부터 2008년까지 하위 10%의 월소득이 101만 원 증가하는 동안 상위 10%의 월소득은 888만원이 늘어났다.   

   피케티는 오늘날 부의 불평등 상황에 대해 소득 상위 1%에 해당하는 이들이 정치 영역과 결탁해 그들만의 리그를 구조화하고 있는데, 이는 19세기 ‘세습자본주의’를 답습하고 있는 것이라 비판했다. 


   이 같은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피케티는 두 가지 정책을 제안했다. 첫째는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고소득자 누진과세(글로벌 부유세)를 통해 소득세의 누진 구조를 강화하고, 둘째는 교육의 공공투자로 교육의 불평등을 해소하자는 것이다. 


   피케티의 대안에 대한 논쟁은 『21세기 자본』의 등장만큼 뜨겁다. 이코노미스트는 “마르크스보다 크다”고 호평했고, 2008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는 “향후 10년 동안 가장 중요한 경제학 저서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반대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경제적 분석이라기보다 이데올로기적 장광설에 불과하다”고 말했고,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는 “너무 이상주의적인 정치 발상”이라고 혹평했다. 

   그도 그럴 것이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자신이 제안한 글로벌 부유세의 실효성에 대해 “글로벌 자본세는 유토피아적인 아이디어다”라며 스스로 비현실적인 것임을 먼저 밝혔고, “가까운 미래에 자본세와 유사한 제도 도입에 동의할 나라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라고 말한 바 있다.  


 

   피케티와 견해를 달리한 앵거스 디턴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는 책 『위대한 탈출』에서 “경제적 불평등은 성장의 유인책(인센티브)이며, 경제를 성장시키고 삶을 개선한다.”며 오늘날의 핵심 문제인 빈부격차, 즉 불평등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연합군의 포로수용소 탈출을 소재로 한 영화 <대탈주The Great Escape>에서 제목을 따온 이 책은 “포로수용소로부터 탈출에 성공한 사람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남겨졌고, 또한 도중에 죽음을 맞이하기도 했다. 빈곤과 죽음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인류의 시도 역시 이와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즉 “성장은 빈곤과 결핍에서 인간을 탈출시키는 원동력”이고, “불평등은 성장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또 다른 성장과 진보를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소득면에서 전 세계에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1981년에는 약 15억 명이었지만, 2008년에는 인류 인구가 20억 명이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8.5억 명으로 감소했다. 절대적인 기준으로 환산하면 빈곤인구 비율이 42%에서 14%로 빠르게 하락한 것이다. 

 


   한편 디턴 교수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피케티 식으로 잘 사는 국가를 만들려 하면, 과거의 인류가 겪었던 빈곤과 죽음을 다시 겪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성장이 빈곤층의 경제적 희생에 의해 생겼다는, 제로섬게임처럼 생각하는 피케티의 사고가 우리 사회에 퍼지면 우리는 다시 빈곤에 빠져 허덕이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본주의는 불평등 때문에 발전이 된다는 디턴 교수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얼마 전 내한해서 강연을 했던 피케티 교수는 “불평등은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효용이 있지만 너무 심해지면 성장을 저해한다. 어느 정도가 ‘과도하다’고 단언할 수 없지만, 현재의 불평등은 전쟁과 혁명을 촉발했던 20세기 초 수준으로 보인다.”고 반박했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장하성 교수의 반론이다. 그는 최근 펴낸 책 『한국 자본주의』를 통해  자본주의의 필연적인 불평등 구조 문제를 이야기한 『21세기 자본』의 내용을 한국에 적용해서 우리의 불평등을 살필 수 있는가 묻고, 전혀 그렇지 못하다고 자답한다. 

 

   그는 나라마다 자본주의의 역사와 현재의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피케티의 분석 결과를 다른 나라에 일반화하는 것은 오류를 범할 수 있다면서 피케티가 분석 대상으로 삼고 있는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과는 달리 한국을 포함한 모든 신흥 시장 국가들에서 ‘자본수익률(r)>성장률(g)'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실제로 피케티가 구한 자본 수익률의 경우 한국은 피케티와 같은 방법으로 적용할 수 있는 자료가 최근에서야 공개되었기 때문에 2011년과 2012년의 자본 수익만 구할 수 있는데, 이 수치를 대입하면 ‘자본수익률(r)>성장률(g)'과 반대의 경우가 된다. 마찬가지로 35여 년의 주식, 채권, 예금과 같은 금융자산의 수익률과 부동산의 가격 상승률을 구하면 한국의 경우에는 자본 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낮은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장하성 교수는 200년이 넘는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오랫동안 거대한 자본을 축적했고, 금융자산의 비중이 큰 선진국 대상의 분석 결과로부터 도출한 피케티의 자본세 정책대안으로 한국의 불평등 구조를 바꾸겠다고 나선다면, ‘학문적 사대주의’가 반복될 위험이 있고, 만약 한국경제에 그대로 적용한다면, 이는 한국의 불평등을 완화하기보다는 오히려 큰 오류를 범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선진국과 유사한 경제학적 모순들이 표출되는 것을 목격하기만 하면 언론과 학자들이 ‘신자유주의’ 정책 때문이라고 진단하는데, 사실 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개혁이란 특정한 이념에 기반을 두었다기보다는 기본적인 시장질서라도 갖추자는 큰 틀에서 왔으므로 ‘신자유주의’라고 일갈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한국 실정에 맞는 장하성 교수의 소득 불평등 구조 완화책은 뭘까? 적극적인 노동정책이나 임금정책이다. 한국의 소득 불평등이 심화된 이유는 기업들이 임금으로 분배하는 몫을 줄여온 기업 행태의 문제와, 임금도 낮고 고용도 불안정한 비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자영업 노동자의 비중이 높은 노동 구조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으므로 ‘초과 내부유보세’와 ‘업무 존속기간을 기준한 정규직 전환제’와 같은 정책이 우선적으로 시행되어야 한다는 견해다. 마지막으로 장하성 교수는 시장의 작동 방식 때문에 불가피하게 초래된 불평등한 결과가 한국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에 반한다면 이를 제어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뉴욕시에서 세 명의 손자를 돌보는 가난한 할아버지가 일감이 없어서 끼니를 때우기 어려웠다. 손자들이 배고파 우는 모습을 보다 못한 이 할아버지는 빵집에 들어가 빵을 훔쳤고 곧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다. 이 사건을 맡은 판사는 이 노인에게 벌금형을 내렸다. 판사는 노인에 대한 단죄로 그치지 않았다. 자신을 포함한 뉴욕 시민 모두의 책임이라고 선언하면서 자기 자신에게 벌금을 부과하였고, 재판정에 앉아 있던 방청객들에게도 벌금을 내게 하였다. 그리고 즉석에서 벌금을 걷어서 노인에게 주었다. 노인을 벌금을 물고 남은 돈을 받아 쥐고는 눈물을 흘리며 법정을 떠났다. 미국 역사상 명판결로 손꼽히는 라가디아F. Laguadia 판사의 판결은 과연 무엇이 이 불쌍하고 힘없는 노인으로 하여금 빵을 훔치게 만들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시장에도 ‘정의’가 필요한 때가 왔다. 우리가 어떻게 이걸 풀어나가야 할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정의가 사라져버린 시장’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때가 왔다는 것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로 한국사회 지성계에 새로운 담론을 제공하며 ‘정의’에 대한 화두를 던졌던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가 자신의 저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한 말이다.


 

   지난 30년 동안 우리는 시장 경제를 의심 없이 믿어 왔다. 시장경제가 공공의 이익을 성취할 주요 수단이라고 추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샌델 교수는 지금과 같은 시장에 대한 맹목적 신뢰는 잘못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시장경제가 ‘공공의 이익’을 성취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져야 할 시점이 바로 지금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는 가치 있는 ‘도구’임에는 틀림이 없다. 우리는 그러나 이것이 ‘도구’일 뿐, 삶의 마지막이나 좋은 사회의 의미 또는 우리와 다음 세대의 아이들이 가져야 할 미덕에 대해 답을 줄 수는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시장은 결코 윤리를 대신할 수 없고, 민주주의나 지역사회를 대신할 수 없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전하는 메시지는 시장 경제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에서 한걸음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 리뷰는 <동국대학원 신문>(186호) '인문산책'에 기고한 리뷰 입니다.

바로가기 - http://www.dgugs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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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 10년 - 불황이라는 거대한 사막을 건너는 당신을 위한 생활경제 안내서
우석훈 지음 / 새로운현재(메가스터디북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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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보다 먼저 읽어야 할 책!

 

 

 

   우석훈이 돌아왔다. 김미화, 선대인과 함께 ‘나는 꼽사리다‘로 전국을 달궜던 ’우띨‘이 마이크 대신 펜을 들어 독자들에게 물었다. “당신의 주머니는 안녕하십니까?”

   얼마 전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일본식 장기불황이 우려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 대한민국은 이미 불황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잃어버린 20년‘이라는 고난의 길을 걷고 있는 일본을 모델로 놓고 ‘우리보다 먼저 장기불황을 겪은 일본인들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앞으로 우리가 걸어가게 될 길이 보인다’는 저자의 생각이 이 책 전체를 이끌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한국경제의 전체적인 흐름이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10년간, 쉽지 않은 시간이 흐를 것이다. 10년 후에 한국경제의 본진이 될 가장 중추적인 집단이 30대다. 이들을 어떻게 한 명이라도 덜 죽거나 덜 다치게 해서 무사히 다음 흐름까지 버티게 할 것인가,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한국경제의 재약진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거의 유일한 해법이기도 하다.” 27쪽

 

   키워드는 생존. 일본 정부와 정치는 20년 내내 실패를 거듭하고 있지만, 일본 국민들은 훨씬 더 궁색해지고 씀씀이가 줄어들망정 높은 저축률을 자랑하며 실패하진 않았다. 힘든 시절을 먼저 겪은 그들을 통해 국내 현실을 투영한다면 불황의 탈출구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우선 ‘집 살까, 말까?’다. 최근 언론에서는 지금이 집을 사는 최적기라고 연일 떠들고 있는데, 결론을 먼저 말하면 저자는 ‘집 사지 말고 차라리 월세로 살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우리가 지금 오늘의 일본처럼 ’집을 사는 것이나 대출을 갚는 것보다도, 파는 게 더 힘든 시기를 향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아파트의 환금성(換金性) 측면에서 ’500세대 이상 아파트는 현금이나 다름없다‘는 말은 이미 옛말이다. 꾸준히 떨어질 뿐 오를 생각이 없는 아파트를 누가 살 것인가. 더구나 옛날처럼 시세차익 남기고 나중에 팔 집을 찾는다면 아예 살 생각일랑 접어야 한다.

   ’집 처분이 어려워졌다‘는 말이 담고 있는 무거운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몇 해 전 저축은행 사태 때 0.1%의 이자를 더 받겠다고 저축은행에 저축했다가 원금을 날린 예금피해자들을 떠올리면 덧정 없을 것이다.

   한편 만약 전세를 살고 있다면 재산권 확보를 위해 필히 ‘전세권’을 설정해야 한다. 불가능하다면 확정일자라도 확실히 받아두어야 한다. 현재는 가급적 월세는 사는 것이 좋다. 저자는 최소한 이번 정부 말기와 다음 정부의 정책을 기다리면서 월세로 살면서 이를 ’미래 리스크에 대한 회피비용‘이라 생각하고 버티라고 조언한다. 종합해 보면 ’한동안 일반인이 부동산으로 돈 벌기는 틀렸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다가올 10년 불황에 개인재무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축밖에 없다. 더 벌수 없다면 원금보장이라고 확보해야 한다.

 

“불황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의 저축률은 놀라울 정도다. 이에 대해 뒤집어 해석하면 일본인들이 소비를 안 해서 일본경제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국가 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개인들이 살아남아서 일본경제가 아직도 유지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98쪽

 

   우리의 20대는 ‘88만원 세대’지만, 일본의 20대는 저축률이 35퍼센트에 달한다. 대한민국 30대는 마이너스통장 등 '생계형 가계대출'로 겨우 버티지만, 일본의 30대는 30퍼센트의 저축률을 자랑한다. 불황의 긴 터널을 위해서 재무조정이 시급하다.

   10년 후를 보장받으려면 시급히 마이너스 통장을 청산하고 더 많은 저축을 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 해법으로 저자는 최소한 ‘1 년치의 생활비’를 비축하라고 말한다. 돈이라는 것이 참말로 요물이다. 돈이 없으면 오만가지가 먹고 싶어지고, 솜이불을 뒤집어써도 추위를 탄다. 하지만 ‘넉넉하다’고 느낄 만큼의 돈이 있다면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고, 기운이 나는 법이다. 저자가 말하는 이 1 년치의 생활비는 투자를 위한 시드머니(종잣돈)아니라, 불황동안 겪을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불안을 덜어줄 일종의 쌈짓돈인 셈이다. 여윳돈을 가지고 있으면 심리적 안정 덕분에 오히려 실제 지출이 줄어드는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 불황대비를 위해 돈을 모으는 가장 좋은 방법은 뭘까? 대답은 지극히 싱겁다. 1년짜리 정기예금 형태로 계속 묶어두는 것이 안전하다. 은행 이자율이 낮다거나, 차라리 펀드로 수익률을 높인다는 등의 신문 헤드라인 같은 말은 저축액이 10억 원 정도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 이하의 여유자금을 가진 우리에게 이자율이나 수익률 자체를 따지기는 무의미하다. 안전이 최고. ‘은행 이자율이 낮더라도 생돈을 날리는 것보다는 그 돈을 모아 묶어두는 편이 훨씬 낫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한편 더 말 할 것 없이 불황에 신용카드는 적이다. 신용카드를 가지고 있으면 사고 싶은 충동과 구매하는 순간의 시간 격차가 거의 없다. 소비가 불편한 ‘일상’을 만들어야 돈을 모을 수 있다. 신용카드를 가위로 잘라내든지, 굳이 있어야 한다면 물을 붓고 냉동고에 넣으면 어떨까. 그러면 얼음이 녹는 동안 ‘정말 이 제품(서비스)를 구매해야 할까’ 고민하는 시간을 벌테니까.

 

   이 책의 백미는 육아와 교육에 대해 논한 4장(불황 10년, ‘나쁜 교육’이 치료되는 시기)였다. 미래에셋 부회장 겸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장을 역임하고 있는 강창희 소장은 책 <당신의 노후는 당신의 부모와 다르다>에서 노후 대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자녀교육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언제까지, 얼마나 자녀를 도와주어야하는가를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난한 집 맏아들 출세시키기 식‘으로 올인 했다가 노후에 후회가 막급인 부모가 적지 않다.

   특히 지금 성행하고 있는 조기유학, 영어 조기교육, 선행학습 등 사교육 열풍은 ’낭비‘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기업의 입장에서 볼 때 국내영업에는 선후배로 얽힌 명문대생이 낫고, 해외영업에는 차라리 현지인을 고용하는 것이 더 낫다는 평가로 조기유학생은 요즘 취업에서 찬밥신세다. 또 선행학습을 하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선행학습의 성과가 확실하다면 시행하지 않을 선진국은 단 한 나라도 없다. 선진국이 선행학습을 하지 않는 이유는 도움이 안 될뿐더러 문제가 많아서다. 저자도 같은 생각이다.

 

“선행학습의 폐해는 명확하다. 놀기도 하고, 독서도 하고, 새로운 경험도 해야 하는 시기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을 이해해야 하는 학생들은, 잘 되면 학습의욕 상실, 잘못되면 스트레스 과다에 의한 우울증이다. 일반계 학교든 특수학교든, 학교에서 하는 내용에 대해서 자신이 아는지 모르는지도 명확하지 않은 상태로 흥미를 잃는 것은 덤이다.” 217쪽

 

 

   보통 과외를 하면 두어 달 후 시험결과 만으로 과외효과의 여부는 금방 파악된다. 하지만 선행학습은 그게 불가능하다. 저자는 몇 년 후에 배우게 될 과정을 미리 학습시키기 때문에 그 효과를 알 길이 없다. 혹 배우고 있는 내용을 모른다고 해도 자질이 부족해서 모르는지 어떤지 잘 모른다. 더 황당한 것은 그냥 돈만 내주는 부모는 더더군다나 모른다는 점이다. 효과도 모르는 채 남이 하기에 뒤쳐질까봐 돈을 지불하는 선행학습, 저자는 자본주의에 있어 이보다 더 기가 막힌 상품은 없다고 단언한다.

 

   2012년 현재 명목 사교육비 총 규모는 19조원이었다. 2007년 사교육비 통계 조사가 시작된 이래 사교육비 총액이 처음으로 20조원 아래로 떨어진 숫자다.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23만6천 원으로 전체 소비지출의 약 11.7% 이다. 경기가 나빠지면 다른 모든 지출을 줄이더라도 마지막까지 지키는 것이 교육비 지출이었다. 사교육비, 그래도 쓸 것인가.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반가운 책. 어설프니가 아닌 경제이론과 비즈니스에 정통한 경제전문가 우석훈이 전하는 생활경제 노하우가 가득 담겼다. 독자가 지식인들에게 듣고 싶은 말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저자 역시 에필로그에서 ‘무조건적인 도움을 주고 싶은 매우 가까운 지인들에게만 전수했던 경제 노하우들을 가감 없이 적었다’고 말했다. 가뜩이나 얇아진 지갑을 통째로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면 필히 일독해야 한다.

 

 

 

이 리뷰는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가 격주간 발행하는

출판전문저널 <기획회의>(378호)에 기고한 리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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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와의 경쟁 - 진화하는 기술, 사라지는 일자리, 인간의 미래는?
에릭 브린욜프슨 & 앤드루 매카피 지음, 정지훈 외 옮김 / 틔움출판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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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서 소외되는 인간…사람과 기계, 공존은 가능할까?

 

 

 

   아이폰 제조회사로 잘 알려진 중국기업 폭스콘은 중국 정부도 건드리지 못하는 공룡 기업으로 애플의 제품을 비롯해 노키아, 델, HP, 소니, 마이크로소프트, 닌텐도 등 누구나 알 만한 브랜드의 제품들을 조립업체다.

   그런데 폭스콘은 지난 2010년 봄, 국제적인 뉴스의 중심에 있었다. 한 달 사이에 이 공장에서 일하던 직원이 16명이 공장 창문 그리고 기숙사 창문에서 뛰어내려 투신자살을 한 것이다. 고등교육을 갓 마친 10대 후반의 직원들이 돈을 위해 4초에 한 번씩 반복되는 일을 입도 뻥긋하지 못한 채 하루 10,000번의 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일했다. 휴일도 없이 일주일 내내 하루에 12시간을 근무해서 버는 월급은 고작 520 위안, 우리 돈으로 10만 원이 채 되지 않는 임금이었다. 청년들은 마치 기계처럼 일해야 하는 열악한 근무환경을 견딜 수가 없어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폭스콘은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았다. 1년 매출이 애플이나 델, 마이크로소프트과 같은 글로벌 업체의 매출액을 뛰어넘지만 이익률은 4% 남짓(애플의 이익률은 27%이다)으로 값싼 노동력을 무기(가격 경쟁력)로 하는 조립회사로서 직원들의 근무조건 등에는 관심 없었다. 오히려 직원들의 투신사건이 있은 후 세계적인 비난을 받자 폭스콘은 앞으로 수십만 명의 노동자들이 해오던 일을 10,000 대의 로봇으로 대체하겠다고 발표했다. ‘기계를 통해 인간 노동력을 대체하는 폭스콘의 전략'으로 중국 청년 수십만 명이 실업자가 되어 길거리에 나앉게 되었다.

 

   MIT 슬론경영대학원 교수인 에릭 브린욜프슨(Erik Brynjolfsson)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기계와의 경쟁>에서 폭스콘의 예처럼 ‘학력이 짧거나 월급이 적은 사람들에 대한 사회의 수요는 계속 줄어들고 있는데, 그 이유는 기계가 사람의 일을 대신할 수 있기 때문이며, 이 때문에 대부분의 나라에서 빈부 격차가 발생하고 노동 인구가 줄어드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세계 공통의 현상인 실업과 일자리 부족 문제의 원인이 ‘기계의 급속한 발전‘이라는 것이다.

 

   경제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기업이 이익을 내고 투자를 확대할 때 일자리와 고용은 같이 늘었다. 하지만 오늘날은 다르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고용 없는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즉 기업들이 새로 개발된 기계는 꾸준히 사들이면서 신규 채용은 하지 않는 것이다.

 

   정보기술의 발달이 인간의 일자리와 기량, 임근, 그리고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고민한 이 책에서 브린욜프슨 교수는 폭스콘의 기계도입과 같은 ‘고용 없는 성장’은 제품의 생산력을 높일지 모르지만 회사가 벌어들이는 돈이 노동자에게 가지 않고, 기계를 사서 운영하는 자본가에게 가게 되므로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에 더 큰 불평등을 불러오게 되어 빈부 격차 문제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기계의 대체화는 폭스콘뿐 아니다. 기계에 의한 정보 혁명은 자동현금입출급기, 무인판매점, 자동응답기 등을 대중화시키면서 판매직 근로자의 일자리를 줄여왔고, 정보 혁명 이후 컴퓨팅 기술은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면서, 이제 전문직 일자리까지 넘보고 있다. 무인자동차와 자동 통번역 시스템, 신문 기사 작성, 법률 문서 분석 프로그램 등 인간 고유의 지각 능력과 판단력이 필요한 부분에까지 컴퓨터의 능력이 인간을 추월하기 시작한 것이다.

 

   만약 인간이 ‘더 빨리, 더 많이’만을 고민한다면 기계에 대체당할 수밖에 없지만 ‘어떻게 하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 기계가 인간을 도와서 과거에는 없던 새로운 기술력, 새로운 제품, 새로운 방법론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거라 저자는 조언한다.  예를 들어 우버 택시는 인간과 기계의 공존 개념에 좋은 모델이라 할 수 있다. 실시간으로 운전자와 고객을 연결해 주는 기술을 바탕으로 등장한 우버 택시는 운전자에게 과거 택시 기사들보다 더 많은 소득을 보장하고, 언제 일하고 어디서 일할지 더 나은 근무 환경을 제공했다. 또 다른 사례로 구글, 페이스북, 애플, 아마존과 같은 글로벌 기업들도 꼽았다. 이들은 첨단의 과학기술로 기계와 인간을 결합함으로써 새로운 조직 구조, 프로세스, 비즈니스 모델, 나아가 고용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저임금 노동자의 값싼 노동력에 의지해 약진하던 중국이나 인도의 저임금 노동력은 기계에 의해 쉽게 대체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커다란 위기를 맞이할 것은 뻔하다. 기술 발전에 대응해 기술력을 다룰 줄 아는 교육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것이 시급하다. 

   그렇다면 기계와의 경쟁 시대에 생존하게 될 직업은 무엇일까? 저자는 앞으로 현재 직업군의 절반은 사라지고, 교수, 법률가, 의사, 회사원과 같은 화이트칼라 노동자도 필요가 없을 거라고 전망했다. 살아남는 직업은 사람과 직접 일해야 하는 감성 노동자, 인공지능 기계를 설계하고 만드는 사람, 일부 서비스 직종 등 기계로 대체할 수 없는 일, 즉 리더십, 팀워크, 협상법, 공감 능력, 가르치는 일이나 환자를 간호하거나(nursing), 사람들을 가르치거나(teaching), 노약자를 돌보는(caring) 직업이 특히 중요해질 거라 말한다. 한마디로 기계와 공존할 수 있는 일자리인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기계와 공존이 아닌 경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인간과 기계의 공존 개념에 좋은 모델로 소개한 우버 택시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2009년 설립되어 운전자와 승객 알선 서비스로 정보통신망과 '공유 경제' 아이디어를 접목해 고객의 편의성을 크게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 우버 택시는 국내에서는 택시업계의 생계를 위협하는 불법행위라는 혹평을 받고 있다. 사업용 자동차가 아닌 자가용으로 승객을 태우고 대가를 받는 행위는 명백한 불법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우버 택시 측은 "단지 운송 알선행위를 할 뿐 법적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소유하지 않고 공유한다’는 아이디어 하나로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둔 플랫폼 비즈니스 에어비앤비(airbnb)도 마찬가지다. 집주인에게 여행자를 연결해 숙소를 중개해주는 에어비앤비는 2초마다 한 건씩 숙박예약이 이뤄지고 있을 정도로 전 세계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에어비앤비의 기업가치는 하얏트호텔 체인보다 17억 달러 높은 100억 달러. 창업한 지 7년밖에 되지 않은 벤처기업으로는 엄청난 성장이다.

   최근 주거공유의 불법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현재 독일과 캐나다 퀘벡 등이 법리를 검토 중이며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공청회까지 열렸다. 지난 2013년 5월 뉴욕 시법원은 불법임대로 고발된 주거공유 집주인에게 2천4백 달러(한화 약 260만 원)의 벌금형을 내려 화제가 됐다.

 

   무엇이 문제인가? 이에 대해 저자는 ‘지금 세계가 거대한 재구조화(Great Restructuring)시대 초입에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말한다. 인간의 능력과 제도가 기술의 발전 속도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드는 의문은 인간의 능력과 제도가 과연 18개월 마다 처리속도가 두 배가 되는 ‘무어의 법칙’의 속도로 내달리는 기술을 발전속도를 따라잡아 함께 경주(race)할 수 있을까? 이다.

 

 

 

이 리뷰는 <한국경제>에서 발행하는 논술섹션 생글생글i <BOOK&MOVIE>에 기고한 리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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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감옥 - 생각을 통제하는 거대한 힘
니콜라스 카 지음, 이진원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나는 자동화 기술의 주인인가, 노예인가?

 

2010년 10월 9일, 구글은 ‘스스로 운전할 수 있는 자동차들’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레이더와 수중 음파 탐색기인 소나 송신기, 동작 탐지기, 비디오카메라, 위성 위치 확인 시스템 수신기를 장착한 구글의 무인 자동차는 주변 상황을 세세하게 감지하고 운행 위치를 파악할 수 있어 운전자들이 실제 도로 주행 시 접하는 수많은 돌발 상황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복잡한 인간 세상에서 컴퓨터가 과연 인간이 내렸던 모든 결정을 대신할 수 있을까? 만약 무인자동차에 운전을 맡기고 잠이 들었는데 사슴이 뛰어들었다면 핸들을 옆차선으로 피하도록 설정해야 할까, 아니면 자동차의 안전을 위해 직진해서 사슴을 치도록 해야 할까? 무인 자동차가 접하게 될 수많은 법적, 문화적, 윤리적 문제들도 있다. 예를 들어 소프트웨어가 조종하는 자동차가 사고를 일으켜 사상자가 발생했다면, 이러한 과실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자동차의 소유자에게 있을까, 소프트웨어를 만든 프로그래머들에게 있을까?

 

기술의 자동화로 우리의 생활은 더 편리해졌고, 잡다한 일에 대한 부담은 확실히 줄어들었다. 제한된 시간에 더 많은 일을 하거나, 또는 과거에는 할 수 없었던 일도 가능하게 되었다. 하지만 자동화 테크놀로지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은 편리해졌다고 우리가 인간다운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베스트셀러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저자이자 디지털 사상가 니콜라스 카는 지난 10여 년간 디지털 기기에 종속된 인간의 사고방식과 삶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끊임없이 성찰했고, 그 결과물로 <유리감옥>라는 책을 썼다. 저자는 이 책에서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등을 통해 가속화되고 있는 자동화가 인간의 삶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집중적으로 파헤쳤다.

저자는 인터넷, 인공지능, 웨어러블 디바이스, 빅데이터 등을 통해 점점 가속화되고 있는 자동화가 인간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자동화 테크놀로지를 잘못 사용하거나 맹신한다면 기술이 준 편리한 삶은 우리를 가둬두는 감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스마트폰, 내비게이션, 로봇 청소기처럼 일상생활 속 기계들은 물론 의료, 항공, 전쟁 등 우리 사회 전체를 뒤덮은 자동화의 이면을 똑바로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2013년 미국연방항공국(FAA)은 항공사들에 일제히 안내문을 발송했다. ‘적절한 때에 조종사들에게 수동 비행을 홍보할 것을 권장한다’는 내용이었다. 미국연방항공국은 조종사들이 자동조종장치에 과도하게 의존할 경우 비행기를 비정상적 상태에서 신속히 원상태로 돌려놓을 수 있는 능력이 저하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실제로 2009년 콜건항공 소곡의 여객기 Q400는 비행기의 추락 위험을 알리는 실속 경고에 조종사들이 자동조종이 중단된 조종간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했고, 통제력을 잃은 비행기는 지상으로 추락했다. 같은 해 일어난 에어프랑스의 에어버스 A330기 역시 실속 상태에 빠진 비행기를 제대로 수동 조종하지 못한 조종사들의 과실로 인해 대서양 한복판에 떨어졌고, 승무원과 탑승객 228명 전원이 사망했다. 무엇이 조종사들의 조종 능력과 대처 능력을 빼앗아갔을까?

 

인간의 삶 깊숙이 파고든 자동화는 “소프트웨어는 수많은 변수들을 헤아려 가장 옳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중요하지만 불안한 질문을 던진다. 편리하다는 이유로 기계에 모든 통제권과 선택권을 넘긴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한편 저자는 자동화 테크놀로지를 비판하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로 자동화가 우리의 삶에서 행복을 빼앗아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회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행복과 만족감은 실제로 세상에서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직접 할 때 얻을 수 있는데, 우리의 주의 집중이 온통 컴퓨터 스크린과 스마트폰 액정에 향하는 바람에 세상과 동떨어지게 되고, 그것이 삶의 행복과도 멀어지지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자동화에 대한 경고를 접하면서 드는 의문은 그렇다고 1811년부터 1816년 사이에 영국의 중부와 북부 직물공업지대에서 일어났던 러다이트 운동처럼 야밤에 기계화 공장을 급습해서 기계를 파괴할 수도, 기계화된 세상을 거부하며 눈 가리고 귀 막으며 살 수도 없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스며드는 스크린의 공습에 나도 모르게 젖어버린 사람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 이은 디지털 사상가 니콜라스의 경고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더 쉽게 얻도록 해주지만, 내가 누구인지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을 차단하는 자동화에 대한 각성을 심어준다. 지금은 스스로에게 “나는 기술의 주인인가, 노예인가?”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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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스트 티의 기적 - 코카콜라가 감동한
세스 골드먼 & 배리 네일버프 지음, 이유영 옮김, 최성윤 그림 / 부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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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기업을 꿈꾸는 예비창업자의 필독서

 

“장사를 밥벌이로 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날마다 자기 자신과 가족, 친구와 고용주에게 뭐든 팔면서 산다.” 베스트셀러 작가 필립 델브스 브러턴이 쓴 <장사의 시대>에서 한 말이다. 인생은 세일즈와 많이 닮았다.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가 쓴 <파는 것이 인간이다>라는 책도 있듯 우리는 살아가며 모두 무엇인가를 팔고 사며 살고 있다.

문제는 설득하고 잘 팔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 드물다는 점이다. 비즈니스의 쉬운 말은 장사다. 삼성, 현대, LG, 두산 등 국내 내로라하는 대기업의 시작도 장사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장사란 것이 누구나 차릴 수는 있지만 누구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의 국내 창업시장을 지켜보면 마치 4년 마다 수백만 마리가 떼를 지어 미친 듯 낭떠러지로 달려 바다에 뛰어들어 생을 마감하는 레밍 쥐떼의 집단적 공황을 연상케 한다. 매일 수백 개의 점포가 문을 닫고, 그만큼의 숫자가 창업을 한다. 하지만 살펴보면 망할 것이 뻔한 업종의 아이템을 갖고, 안 팔릴 것 같은 자리에 문을 연다.

 

경제활동인구의 28.8%로 800만 명이 자영업자로 이미 포화상태가 된 대한민국.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소상공인 57% 이상이 평균 순이익 100만 원에 못 미치고, 창업 후 2년 내 50%가 폐업을 한다. 또한 자영업자 중 80% 이상이 주말 없이 하루에 10시간 이상 근무를 하고 있다. 창업을 하면서 이미 전 재산은 물론 대출까지 받아 ‘올인‘한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장사가 안 된다고 쉽게 문을 닫을 수도 없다. 더욱 우울한 것은 늘어난 수명에 비해 정년퇴임 시기는 빨라진 우리나라의 형편을 볼 때,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창업을 하고 또 망하는 악순환이 앞으로 30년 동안 끊임없이 이어질 전망이라는 점이다.

 

나는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장사의 성공확률을 높이고 싶다면 창업 전에 창업 관련서를 충분히 읽으며 공부하라고 권하고 싶다.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싶다면 관련서 백 권을 읽어라. 그러면 저절로 최고가 되어 있을 것이다.”는 말이 있다.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많은 독서가들이 공통적으로 던지는 조언이기도 한데, 이 말은 창업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다.

 

읽을 책도 잘 골라야 한다. 나는 창업에 대한 경험조차 없는 책상물림들이 저마다 ‘창업전문가’입네 하고 대박집, 쪽박집 운운하며 예비창업자들을 우롱하는 창업관련서보다 기업의 성공스토리를 다룬 책, 특히 성공한 기업가의 자서전을 권한다. 창업을 시작해 부침(浮沈)을 거듭한 끝에 성공한 기업가들의 사실적이고 생생한 목소리는 한 편의 소설보다 흥미롭고 유익하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최근 출간된 <어니스트티의 기적>은 군계일학처럼 돋보이는 책이다. 어니스트 티는 국내에서는 판매되지 않아 조금 낯선 이름이지만, 미국에서는 스내플, 애리조나, 타조 등과 함께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음료 브랜드이자, 오바마 대통령과 오프라 윈프리가 사랑하는 건강하고 정직한 음료로 유명하다. 또한 공정무역 거래를 통해 사회에 기여하는 착한 기업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1998년, 음료라곤 아무것도 모르는 예일대 경영대학원 교수 베리 네일버프와 제자 세스 골드먼은 어느 날 ‘달지 않고 진짜 차 맛이 나는 좋은 음료’가 마시고 싶었지만 시장에는 그런 제품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세히 살펴보니 음료산업은 흔한 500밀리 리터짜리 아이스티에 설탕 열두 스푼이 들어갈 만큼 설탕 범벅 제품들이 판을 치고 있었다.

저자들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주방에서 차를 우려내 보온병 5개에 담은 시제품을 만들었다. 좋은 찻잎을 좋은 물에 직접 우려내고, 값싼 액상과당 대신 유기농 설탕과 꿀로 단맛을 냈다. 칼로리도 기존 음료의 1/6에 불과했다. ‘어니스트 티Honest Tea’라는 정직한 이름이 들어간 회사 라벨에는 “우리는 음료 진열대에서 시작해 세상을 바꾸려 합니다.”라는 문구를 넣었다.

 

“창업하려면 다음과 같은 기본적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제품은 타 제품과 어떻게 다른가? 어떤 문제를 해결해주는가?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더 낫게 하는가? 우리에게 그 답은 분명했다. 우리는 기존 시장의 틈새를 발견했다. 마실 만한 좋은 음료를 찾지 못했고, 우리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단맛이 거의 없는 음료를 만들었다. 엄청난 양의 설탕을 넣어 거짓된 맛을 내려 했던 게 아니기에, 더 많은 돈을 들여 더 좋은 재료를 썼다.” 86쪽

 

포춘 300대 기업의 수많은 클라이언트들이 직면한 비즈니스 과제 해결을 위한 공동 작업을 하는 기업 레드 어소시에이츠의 공동창업자인 크리스티안 마두스베르그와 미켈 B. 라스무센이 쓴 <우리는 무엇을 하는 회사인가>에서 저자들은 성공하는 기업들은 대부분 ‘우리는 무엇을 하는 회사인가?’라는 업(業)의 본질(本質)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시작으로, 사람과 시장, 변화를 바라보는 시야를 현장으로 향하게 하고, 제품과 서비스를 개선하고 거듭나게 하는 인문학적 통찰을 통해 이루었다고 말한다.

어니스트 티의 공동창업자 역시 창업할 때부터 정직한 비즈니스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목표를 분명히 했다. 이들에게 어니스트 티는 단순한 사업 이상이었다. 건강한 음료를 만들어 식생활을 개선하고, 음료 생산에 쓰는 화학원재료의 총량을 줄여 생태계에 도움을 주고, 경제적 기회가 필요한 지역사회를 돕고자 했다.

 

 

 

 

1999년 최초로 유기농 차음료를 내놓은 것을 시작으로 유기농과 공정무역 원료를 점점 늘려, 2004년에는 업계 최초로 전 제품에 유기농 및 공정무역 인증을 받았다. 어니스트 티는 유기농 원료 구입을 넘어 제품이 팔리고 난 뒤까지 고려했다. 어린이 음료인 어니스트 키즈를 출시할 당시엔 포장재로 쓴 파우치를 최초로 업사이클링했다. 이러한 어니스트 티의 정직한 성장은 코카콜라의 인정을 받아 2008년 어니스트 티의 지분 40%를 매입한 뒤 3년 후 나머지 지분을 모두 인수한다. 코카콜라를 좀 더 어니스트 티처럼 운영해보고 싶어서였다. 창업 첫해인 1998년, 고작 25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던 어니스트 티는 코카콜라에게 완전 인수된 지 2년 후인 2013년에 매출 1억 달러를 넘어섰다.

 

치열한 음료산업에서 설탕을 줄여 소비자의 건강을 지키고, 공정무역 거래로 생산자를 지원하며, 화학원재료의 총량을 줄이고 재활용에 힘써 자연 생태계까지 지키는 정직한 비즈니스를 고수해 성공한 어니스트 티의 스토리를 좇다 보면 ‘창업,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이 하나 있다. 프랜차이즈 가맹 같은 게으른 창업은 창업이 아니라 그냥 ‘개업開業’이라는 점이다), 한편 마음 깊은 곳에서는 ‘내가 언젠가 꼭 한 번 저지르고 싶었던 창업’에 대한 열정이 새로 점화됨을 느낄 수 있다.

 

 

 

 

 

저자들이 예일대 경영대학원 사제지간이라는 이력답게 경제학 이론이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변용되는지 잘 기술하고 있다. 아울러 어니스트 티가 성장하는 동안 만나는 숱한 시련과 애환들을 통해 배운 소중한 ‘교훈’은 창업을 간접체험하기에 충분할 만큼 유익하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만화라는 점인데, 창업과정의 서사성이 만화형식에 잘 맞아떨어져 가독성이 배가 되었다(골프 드라이버 모양의 마우스를 제품으로 기업가의 삶에 첫도전한 워튼스쿨 두 청년의 파란만장한 어드벤쳐스토리 <마우스드라이버 크로니클>도 만화로 나왔더라면 훨씬 더 많은 사랑을 받았으리라).

 

 

 

이 리뷰는 출판전문저널 <기획회의>(378) 전문가 리뷰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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