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득이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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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난쏘공>이 있었다면, 21세기엔 <완득이>가 있다!
 
밀레니엄을 넘어 우리가 일본소설에 주목하게 된 이유는 일본문화개방이라는 제도적 차원의 창구가 기본이겠지만 무엇보다 평범하디 평범한 우리들의 삶을 조망한 그들의 소재에 있었다. 무력해보이는 소시민의 삶과 일상, 그리고 그들이 대하는 오늘과 내일에 대한 생각을 엿보면서 자신을 투영하고 혼자만이 아니라는 위로와 함께 조금이나마 활력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공감한다는데에는 국적을 논할 바가 아니었던 것이다. 잘 만든 그네들의  일련의 청춘소설물들을 보면서 우리 작가들의 시선이 조금은 아래를 내려다봐 주기를 희망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잘 만들어진 우리 작가의 멋진 글이 내 앞에 나타났다. 완.득.이.
내방 큰소리가 옆집까지 들리는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산동네 옥탑방에 살고 있는 한 젊은 고교생의 이야기가 나를 뒤로 넘어가게 웃기는가 하면, 콧등이 시큰하게 감동을 안겨주었다.
난쟁이 방물장수 아버지와 말 더듬이 댄서 삼촌, 어릴 적 도망간 베트남출신 엄마, 욕쟁이 똥주 선생님과 만만찮은 옆집 고성방가 아저씨, 그리고 성별없이 '자매'님이라고 부르는 핫산까지 등장인물 모두 정감어린 탓에 시선이 옮겨지기 바빴다.
 
불행한 가족사와 자신의 처지는 1976년에 나온 조세희님의 난쏘공(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다를 바 없지만, 암울한 현실에 대한 아픔과 한탄을 공유했던 그때와는 달리 경쾌하고 스피디하게 진행되는 속도감과 조금씩 진화하는 삶의 변화를 기꺼이 행복해하는 완득이의 마음속에서 위안과 즐거움이 내게도 전해진다. 세상은 확실이 많이 나아졌고, 밝아짐을 느끼게 된다.
 
고교생다운 말투와 생각들, 거침없는 욕지거리들, 타이어같은 퇴계백숙, 'ㅋ'자 빠진 킥복식 도장의 간판까지 즐겁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전혀 다른 등장인물들을 끈끈하게 이어주는 '뜨거운 인간성'은 아닐까? 내가 가장 좋아하게된 인물은 바로 '똥주선생'인데, 지식과 해학이 똘똘 뭉쳐진 멋진 사나이의 모습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실재한다면 찾아가서 만나고 싶을 만큼 매력으로 넘친 인물이었다.
 
타고난 쌈마니에 킥복싱을 하게되었음에도 '꽃냄새 나는 껌'과 함께 찾아온 완득이의 사랑의 감정은 찢어지는 구름과 개천가에 생긴 얼음까지 즐거운 광경으로 보이게 만드는데 무뚝뚝한 남자들이 느끼는 설명할 수 없는 사랑을 잘 표현한 부분이었다. 즐기며 책장을 넘기다 보니 마지막을 맞이한 오랜만에 읽은 멋진 우리의 청춘소설이다. 지금도 개천가를 열심히 뛰고 있을 완득이가 1승 3패, 1TKO라는 전적을 얼른 갖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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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권으로 읽는 세종대왕실록 한 권으로 읽는 실록 시리즈 4
박영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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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느끼게 하는 위대한 존재의 일대기.
 
 
나는 세종대왕을 존경한다. 하지만 그분이 우리말 훈민정음을 만드셨고, 눈부신 과학발전을 이룩하셨으며, 영토확장에 기여하신 위대한 임금이셨다는 말 밖에는 더 이상 할 수 없다. 독서讀書의 이로움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예전에는 전혀 알 수 없었던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이 가장 으뜸되는 이로움이라면 이 책 <세종대왕실록>은 내게 독서의 으뜸가는 이로움을 제공해 주었다.
그리고 새로운 사실을 통해 좀 더 나은 나를 모색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이 책은 정말 놀라운 인물을 다룬 책이다.
 
저자는 세종대왕을 위대한 임금으로 기억하고, 존경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분이고, 어떤 업적을 이루셨는지에 대해 언급할 수 없는 나같은 어정잡이들을 위해 이 책을 쓰게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집필을 하면서 세종대왕 관련 책자가 거의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말했다. 하지만 곧 세종에 대한 사료가 너무 방대하기 때문에 연구자들에게는 엄청난 시간적 부담과 노력을 요구하는 일이어서 결과적으로 세종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담은 서적이 많지 않았던 것 아닌가 하는 말에 그분의 수없는 업적을 어림짐작할 수 있게 한 부분이었다. 그렇게 많은 분량의 이야기를 한 권으로 압축해서 읽을 수 있다는 것은 게으른 내게는 행운이었다.
 
세종의 즉위과정과 세종의 업적과 정치적 편력을 다룬 1부와 즉위 때부터 재위 32년간의 실록의 순서에 따라 기록된 2부 세종실록 요략편, 그리고 세종대왕와 함께한 그의 인재들에 대해 설명된 이 책은 기존에 읽었던 것과는 다르게 '역사물'을 보듯 드라마틱한 장면들이 많이 소개되어 자칫 딱딱하고 건조해질 수 있는 500여 페이지의 실록을 시선을 빼앗기지 않고 집중시키는 흡인력을 지녔다. 역사에 문외한인 내가 용케도 모두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이 책을 통해 받은 느낌을 이루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지만 딱히 몇 가지를 꼽아본다면 우선 주목되었던 것은 세종대왕은 어린시절인 충녕대군때부터 엄청난 독서가였다는 점이다.
몇 달간 앓아누워 있던 때에도 늘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아 아버지인 태종이 그런 아들의 건강이 염려되어 시자들에게 시켜 왕자의 책을 모두 빼앗아 감추라 지시했는데, 병풍 속에 끼어 있던 한 권의 책(구소수간-구양수와 소동파가 오고간 편지)을 찾아 그 책을 천 번이나 되풀이 해서 읽었다고 한다. 또한 훈민정음을 창제했을 때 언문의 불가함을 상소하는 신하들에게 "너희가 운서를 아느냐? 사성칠음에 자모가 몇인지 말해보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신하들은 세종에게 답하지 못했다 한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상소하는 신하들에게 '실무적 지식'으로 그들에 맞설 수 있었던 것은 중국과 일본등을 뒤져 읽어낸 세종의 '언어학'에 대한 실력때문이었다. 그 밖에도 동생인 성녕대군이 죽어갈 때 자신의 의학지식으로 직접 처방전을 썼다는 것, 주역을 직접 풀이 해 태종에게 보고했다는 점은 그분이 얼마나 대단한 독서가이자 노력가였는지 알 수 있게 한 대목이다. 얇은 쪽의 몇 권으로 책읽는다 말하는 내 입이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또한 그분은 말 그대로 백성을 사랑한 임금이라는 점이다.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손꼽히는 '훈민정음의 창제'의 동기에서처럼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 싶은 바가 있어도 제 뜻을 펼칠 수 없는 사람이 많아" 그런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기 위함"이 목적이 바로 백성의 편안함을 위했다는 것이다. 이는 이조판서 허조가 백성들에게 율문을 알리지 않는 이유가 사실은 한자를 양반들의 헤게모니로 가지고 있으려 했으면서도 '죄질의 대소에 따라 골라내서 두려워하고, 꺼리는 바 없이 제 마음대로 농간하는 무리가 생길 것'이라고 세종에게 말하자  '율뮨(법률)'을 만들어도 백성이 알지 못하는데 그 율문을 따르라고 한다거나, 범법한 자를 벌주게 되면, 법이 한낱 조삼모사의 술책에 지나지 않는다'고 쏘아보며 나무라며 백성들에게도 법률을 익히도록 지시했던 점을 보면 그것을 짐작하기에 충분했다. 성한 몸도 아닌 소갈(당뇨)을 앓아 앞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지팡이를 짚으면서도 훈민정음 창제를 위해 홀로 노력했다는 이야기에는 진한 감동을 주는 대목이었다.
 
불행한 가족사와 건강하지 못한 신체를 평생 가지고 있으면서도 백성과 나라를 위해 네 시간의 수면시간만을 빼고 전념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서는 고뇌로 가득했을 한 인간으로서 그분에 대해 연민의 정도 느낄 수 있었다.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질 수 있고,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는 말 그대로 '왕王'임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의 평생으로는 도저히 이룩할 수 없는 엄청난 일들을 해 냈던 세종대왕의 일대기를 글로나마 함께 목격하면서 내가 보내는 하루하루의 가벼운 가치를 뒤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뭔가 세상에 남겨질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열정이 나를 사로잡는다. 이 책으로 어제와는 다른 내가 된 듯한 느낌이다. 놓치고 싶지 않다. 그분의 업적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다시 또 다시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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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그림자의 책 뫼비우스 서재
마이클 그루버 지음, 박미영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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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익스피어가 이 책을 읽으면 뭐라 칭찬할까?
 
'400년간 숨겨진 세익스피어의 미발표 희곡을 둘러싼 인간의 욕망과 갈등'이라는 독특한 소재는 흥미를 자아내기 충분했고, 600페이지를 조금 못미치는 밤색 책의 포스는 베개를 써도 충분할 만큼의 두께에 처음부터 기가 죽었다. 자주 바뀌는 시점 변경과 극적 요소가 겸비된 주변인물과 배경에 대한 세밀한 요소들은 무협지의 그것처럼 속이 빈 두께를 자랑한 것은 아니었다. 숨을 길게 늘어뜨리면서 보지 않으면 안될 정도의 인내가 요구된 전반부. 힘이 들었다.
 
중반에 들어서면서는 큰 착각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 세밀한 묘사들이 이 작품의 핵심이라 할 정도로 눈에 잡힐 듯 냄새가 날 듯 빠져들기 시작한다. 브레이스거들의 암호들, 인물들의 복잡한 가족과 주변인물들의 이야기, 위트넘치는 저자의 구술능력은 연신 혀를 차게 만들었다.
 
팩션의 특징은 현대의 시점에서 과거를 추론하고 역으로 밟아가는 과정인데, 당연한 기본틀을 마구 부숴버려 난처한 초반을 되려 추적의 즐거움을 더해준 부분이란 것을 깨닫게 된다. 움베트로 에코의 장미를 연상케 하는 해박한 지식이 뭍어나는 부분들이 가득했다. 역사를 꽤 지루하게 여기는 내가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암호를 풀어가는 과정과 이야기의 배경으로 소개되는 영국역사, 그리고 세익스피어를 둘러싼 미스테리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너무 흥미로워서 이 책은 마치 스토리가 두 개인 소설이 씨줄과 날줄로 엮여진듯한 느낌을 들게 했다.
 
세계적인 문호이자 편지와 일기같은 사실적 사료없이 작품만 남겨진 세이스피어의 존재여부를 의심하고, 미발표된 작품을 등장시켜 그를 사랑하는 수많은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그의 포커스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만약이라는 불확실성과 이제껏 아무도 본 적이 없다는 희소가치성에 눈이 멀어버린 인간의 욕망등이 작품속에 녹아들어 그 세계에 참여하고픈 욕망마저 들게 한 작가의 힘은 정말 놀라웠다. 소설을 읽는 또 다른 재미는 독자마다 들여다 본 세계가 다르다는 것. 그 재미를 톡톡히 이끌어낸 멋진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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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만화 - 그림쟁이 박재동이 사랑한, 세상의 모든 것들
박재동 글.그림 / 열림원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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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1도 따뜻하게 만드는 젊은 흰머리 만화가의 시선, 그리고 그림.
 
나는 그림엔 젬병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까지 내가 그리는 사람은 머리와 눈을 그릴 동그라미 세 개와 짧고 긴 막대기 몇 개로만 필요할 정도로 둔치였다. 초중고를 합해 교과목 성적이 '양'인 과목이 유일하게 미술이었는데, 3학년 1학기에 받은 성적이다.(그렇다고 다른 과목이 '우수범벅'이었던 것도 아니다. 난 아름다움을 꾀 좋아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어머니가 취하신 행동은 미술학원이 아닌 만화월간지 소년중앙 한 권과 습자지(트레이싱 페이퍼) 10장. 어머니는 만화위에 습자지를 올려놓으시고는 연필로 선을 그대로 따라 그리라고 하셨다. 내가 쓴 글씨도 얼마 후엔 못알아볼 정도로 엉망이었던지라 구름말 속 대사까지 적었던 것은 물론이다. 나의 그림의 시작은 '만화 베끼기'였던 것이다.
 
매일 10장을 베껴쓰기는 5학년까지 계속되었고, 그에 따라 미술성적도 점차 늘어 졸업반때에는 '수'를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만화에 대한 관심은 지금도 높아 머리를 식힐 요량이면 만화방을 찾아 책을 빌려서는 '낄낄끌끌'대며 즐겨 읽는다. 물론 머리가 굵디 굵어진 지금도 보기에 멋진 그림을 발견할라치면 베껴그리곤 한다.
 
이 같은 까닭에 만화가는 내게 '예술가'이다. 오히려 미술관에 걸린 미술작품들에 찬사를 보내기 보다는 만화 속에서 그 경이로움을 경험하는데, 그래서 대중 속에 존재하는 예술작품은 만화라고 생각한다. 오늘 읽은 이 책은 대학시절 운동권 신문이란 별명으로 탄생한 한겨레 신문에서 촌철살인의 메시지를 날렸던 삽화를 그렸던 만화가 '박재동'화백이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것을 그림과 글로 표현한 책이다. 세월은 벌써 이십 년을 훌쩍 넘어 정치와 사회를 고발하던 날카로운 펜촉은 둥그렇게 무뎌진 듯 부드러운 화선으로 그림을 만들고, 색감과 인물 모두 10도 정도 따뜻해졌다.
 
내가 체감하지 못한 일상의 아름다움을 그림과 글로 묘사 되었고, 중년을 살아가는 대한민국 남성으로서 인생을 이 책은 말하고 있었다. 솔직하고 따뜻한 글은 한 편의 시와 같아 인생 중에 담은 한 컷 한 컷의 그림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의 글과 그림이 친구들을 말할 땐 동네 개구장이가 되고, 자녀들을 말할 땐 푸근한 등을 가진 아버지의 시선이 된다. 그가 사랑하는 세상의 모든 것은 자연이요, 주변의 사물이요, 그의 눈을 멈추게 한 일상의 나날들 이었다. 그리고 그가 마음을 던지는 소중한 그의 사람들이었다. '귀신도 부릴 수 있다'는 돈으로도 못사는 그의 펜잡은 손과 시선은 이 책을 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데우기 위해 하늘이 주신 선물 같았다. 부럽다. 한없이 부러웠다.
 
또 몇 해가 지나고, 달라진 세상을 본 박재동화백의 달라진 그림과 글, 그리고 시선을 보고 싶다. 그런 책이 나온다면 초판 1쇄 중 한 권은 내 것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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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이화
조두진 지음 / 예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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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되는 눈물과 한숨으로  끝무렵의 길고 긴 겨울밤을 잊게 한
슴아픈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
 
 영화나 책 속에서 만나는 수많은 영웅들의 탄생의 이면에는 추풍낙엽처럼 스러져버리는 수많은 이름없는 병사들의 죽음을 목격한다. 영화에서는 엑스트라로, 전투에서는 일개 병사로 제 역할을 한 이들도 하나의 삶인데...아무도 그들의 삶과 죽음을 알지 못한다. 차라리 관심이 없다는 표현이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나 스스로가 신문지상에 이름 석자 걸릴 일이 하나도 없는 평범한 국민이요, 영화상 엑스트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 스스로가 한 권의 책이다'라는 말처럼 엑스트라인 나도 내 삶에 대해 책을 쓰라면 두터운 소설은 쓸만큼의 사연이 있기에 그들을 주목하곤 했다. 
 
여기 나와 같이 특별한 시선을 가진 작가가 있다. 조두진.
그는 국가 중심의 역사가 아니라 사람의 역사를 담아내고 싶어하는 작가다. 그의 전작 [능소화]는 1998년, 경북 안동의 무덤에서 발굴된 '원이 엄마의 편지'를 모티브로 하여 써내려간 4백 년 전 조선 남녀의 안타까운 운명과 사랑을 재구성한 것이고, 지금 읽은 이 책은 임진왜란 말기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들의 가슴아픈 사랑이야기를 실존했던 선비 이진영(1571-1633)의 삶을 모티브로 구성한 작품이다.
 
이 책의 전체 줄거리는 임진왜란이 한창인 때 진주에 사는 안철영은 밀려드는 왜구를 막기 위해 의원을 필요로 할 만큼 아픈 아들과 아내 유이화를 두고 진주성사수를 떠나지만, 곧 왜구에 패배하여 포로가 되는데, 자신을 기다리던 아내가 일본에 팔려갔다는 소문을 듣고, 아내를 찾아 일본을 찾으러 떠나고 우여곡절 끝에 아내를 만나게 된다는 내용인데, 임진왜란 당시 전쟁포로가 된 백성들의 처절한 삶과 일본으로 끌려가 겪게 되는 참혹한 생활들이 자세히 묘사된다. 이 묘사들은 얼마나 참혹하던지 책을 덮고, 한숨을 쉬고, 눈을 감은 적이 여러 번이었다. 특히 한심한 조정의 실태와 초개처럼 스러져가는 백성들의 삶을 대조하며 조망하면서 과연 충과 효, 그리고 예와 인은 무엇이 우선인지, 그리고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고민하게 했다.
 
 주목되는 점은 작품상의 시점들이 변하는 것인데 임금의 나라 조선을 살리기 위해 죽어가는 아들과 아내를 남겨두고 진주성을 지키려 했지만, 포로가 되어 버렸고, 아내와 자식마저 잃어버린 안철영의 시점과 의원을 데리러 간다며 떠난 서방님을 기다리다 사흘만에 자식은 죽고, 죽은 시신을 안고 일주일을 더 기다리다 일본으로 끌려간 안철영의 아내이자 조선의 여인인 유이화의 시점이 엇갈려 서술되면서 그들이 겪은 인간적 고뇌를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그 누구에게도 허물이 있다 할 수 없는 역사적 상황에 폭폭한 가슴만 살피게 된다.
 
작가의 놀라운 묘사력은 조선의 백성의 처절한 삶과 당시 왜구들의 무식하고 잔혹한 만행들에 시선을 빼앗기에 충분해서 저녁을 먹고 난 넉넉한 밤 무심히 책을 폈다가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며 마자막 장을 덮을 때까지 내내 가슴을 졸이고, 아파했던 책이었다. 그 어떤 영화보다 생생한 묘사에 놀랐다.
 
'역사는 돌고 도는 법'. 국운에 목숨을 맡긴 백성이 그때만 있으랴. 조선이란 국호는 대한민국이 되었고, 그때의 백성은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그 시절의 국가들과 함께 걸어가고 있다. 국가에 염증을 느껴 떠난 국민들, 그리고 오고 싶어도 올 수 없는 국민들의 이야기가 인터넷을 타고 속속 들어오는 이 시점에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허울좋은 이름으로 무사태평으로 희희낙낙거렸던 내게 외국에 흩어져 있는 우리 국민들의 삶을 생각하게 했다.
 
거듭되는 눈물과 한숨으로  끝무렵의 길고 긴 겨울밤을 잊게 한 가슴아픈 사랑에 대한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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