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산장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후텁지근한 여름 밤을 시원하게 해 줄 멋진 소설!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 일본 추리소설의 대부라는 그의 명성은 많이 들어왔던 터라, 영화의 원작소설로도 인지하고 있던 터라 그 유명세를 일찍부터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그에 대한 사전지식이 별로 없었음에도 운 좋게도 그의 초기작으로, 학원물 위주의 작품을 쓰던 작가가 처음으로 본격 추리소설에 도전해 성공을 거둔 작품 [백마산장 살인사건]을 집어들었다. 원제는 白馬山莊殺人事件이다.
 
한 해전 자살사건으로 종결된 오빠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친구 마코토와 함께 문제의 산장을 찾게 되는 것은 사건이후 배달된 "마리아 님은 집에 언제 돌아왔지?"라고 씌여진 엽서 한 장과 그리고 매년 같은 시기에 같은 손님들이 투숙한다는 또 다른 이유 때문이다. 사건의 진실을 찾기 위해 나선 두 여대생과 다음해 어김없이 찾아온 손님들, 그리고 특별한 이름의 방에 걸린 벽걸이의 동요 등이 이 사건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이자 실마리들이다. 오빠가 투숙했던 방 '험프티 덤프티' 안에서 홀로 주검으로 발견된 것은 추리소설의 전형을 나타내는 '밀실살인'을 보여주는데 '이런 구도의 사건이라면 나쯤 되도 풀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이 책에 더욱 몰입하게 만들었다. 후반부엔 지나친 자만심이었다는 것을 알게 하지만...
 
비밀리에 문제를 해결하던 중 투숙객이 또 다시 자살하게 되고, 이것이 타살이라는 증거를 찾게 되면서 삼 년에 걸쳐 세 건의 자살사건이 타살임을 그리고 전혀 개연성이 없는 듯 보이는 이 사건들이 사실은 하나로 교묘하게 얽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점점 더 책 속에 빠져들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난감하게 만든 것은 바로 동요 [마더구스]였는데, 그 유래나 내용을 전혀 몰랐던 터라 터무니 없어 보이는 가사를 이해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책을 좀더 이해하기 위해 찾아 보니 이 소설의 핵심적인 실마리를 제공하는 영국 동요 [머더구스]는 구전동요로 운율을 우선으로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리듬을 따라 부르는 아이들의 노래가사가 다소 엉뚱하고 섬뜩하기까지 한데, 특히 이 동요는 잔혹해 보이는 가사 때문에 아가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반 다인의 소설에도 쓰였다고 한다. '운율을 우선한 동요'의 괴상한 가사 때문에 이들이 암호적 요소를 품고 있었고, 추리소설의 소재로 쓰였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3년 연속 사람이 죽었어요. 게다가 똑같은 시기에."
"우연이라면 무서운 일이죠."
"아니오, 우연이 아닌 경우가 무서운 일입니다."
 
세 번 째 희생자 '오오키'의 자살로 등장한 형사 무라마사 경부의 등장은 이제 곧 사건이 해결되는 국면에 돌입했음을 알려준다. 우연치고는 좀 괴이한 또 다른 자살로 단정지을 즈음 나오코와 마코토는 이번 사건도 지난 해 오빠의 자살사건과도 연관이 있음을 알리게 된다.
 
백마산장의 관계자와 손님으로 있었던 등장인물들이 법률상 '용의자' 선상에 올라서면서 사건은 급진전하게 되고, 두 여대생의 사건해결을 위한 추적도 박차를 가한다. 추리소설의 전형인 밀실살인, 트릭들, 그리고 마지막 오십여 쪽을 남겨두고 펼쳐지는 거듭된 반전은 이 소설을 빛나게 하는 하일라이트였고, 학원물 작가 히라시노 게이지를 당당히 추리소설 작가로 거듭나게 할 수 있었던 부분이었다. 나오코가 위험을 무릅쓰고 백마산장을 찾은 이유는 타살이라면 억울한 죽음을 당한 것이라 생각한 여동생의 오빠에 대한 가족애때문이었고, 이 사건의 발단들 또한 그 이유로 비롯된 것이었다. 친구를 위해 함께 위험에 동참하는 친구 마코토의 우정,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알기 위해 함께 한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한 사람의 참여 또한 가족애에서 비롯된다. 추리소설 속에 담겨진 군상들의 심리를 알아가는 재미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전편에 걸쳐 외모나 체격으로 그리고 '툭' 던지듯 한 말투의 마코토가 "잘 모르겠는데, 왠지 여자는 무서운 존재 같아." 라고 의미있는 한마디를 던지며 이 책은 끝이 난다. 그 말 뜻이 무엇일지 그 답을 찾는 것도 또 다른 재미가 될 것이다.
 
늦은 초여름 밤 홀로 책 속에서 주인공들을 상상하며 느끼는 긴장감은 음산한 음향과 배우들의 표정들을 영상으로 보면서 느끼게 되는 스릴러 영화의 그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느낌이었다. 한 겨울 고립된 공간 백마산장에서 펼쳐지는 히라시노 게이지의 이 소설은 내게 추리소설의 맛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었다. 그의 다른 작품들도 읽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했다. 20여 년 동안 60 편이 넘는 작품을 냈다는 것이 뜨악하게 하긴 하지만 말이다. 후텁지근한 여름 밤을 시원하게 해 줄 멋진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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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스타 존의 수상한 휴가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북스토리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존 레넌]의 마음속 응어리를 풀어주는 [오쿠다 히데오]만의 특급처방!
 
  사람이면 누구나 호불호好不好 란 것들을 갖는다.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호好 들만 많다면 좀 좋으련만 사람들에게 까무러칠 만큼 좋은 호好 만큼이나 불호不好 가 많다는 것 씁쓸한 일이다. 싫은 것은 끔찍이 싫어해 보기만 해도 두드러기가 날 정도이니 가히 중증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것들을 모아 의학용어로 외상성 신경증(外傷性神經症)이라 불리우는 트라우마trauma 일텐데, 수 년 전 모 개그맨이 한동안 읊었던 '않좋은 기억'과 비슷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어린시절에 겪었던 끔찍한 기억으로 인해 나이를 먹어서도 비슷한 상황이나 사물을 혐오하게 되는 이 트라우마는 그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가 한 두 개정도는 가지고 있다고 한다. 내게는 무엇이 트라우마일까? 이 소설 [팝스타 존의 수상한 휴가]는 오쿠다 히데오의 데뷔작이자, 유명한 팝스타의 트라우마에 관한 이야기다.
 
  전업주부인 한 남자가 길에서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는다. 없어야 할 어머니가 '존!'하며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서 존은 극도의 긴장감에 휩싸인다. 실제의 어머니가 아닌 것을 확인했지만, 그 후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하복부의 위화감과 장에서 맹수가 우는 소리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병원을 다녀온 후로는 배변을 보지 못하게 된 존. 아내 게이코와 살고 있는 오봉즈음의 일본. 그리고 그를 둘러싼 사람들과 자신의 기억으로 이야기는 변비로 고생하는 '존'의 답답함 만큼이나 똘똘 뭉쳐 풀어질 실마리를 전혀 보이질 않는다. 배변을 못하는 괴로움으로 고민하는 그를 추적하다 보니 괜히 내 속도 더부룩한 듯 답답함을 느낀다.  
아내가 채근해서 가게 되 곳 아네모네 병원에서 관장도 해 보았지만 그것도 허사 급기야 닥터는 그에게 불면증으로 인해 그가 배변을 하면서도 못한다고 기억하는 것일지도 모르다고 말한다. 한편 그는 병원을 고가면서 안개낀 공원에서 그가 보고싶어 하지만 죽어서 볼 수 없는 이들을 만나서 나름의 회한을 풀게되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큰 범죄에 대해서도 해결할 수 있게 된다. 배변을 못하는 신체적인 답답함이 계속되는 와중에 오봉을 즈음해서 소위 말하는 귀신들을 만나서 마음속의 응어리는 풀게 되는 야릇한 며칠이 계속된다. 그리고 결국 그를 변비로 몰아넣었던 비밀과 잃어버렸던 기억 그리고 트라우마에 대한 이해와 용서를 하면서 끝을 맺는다.
 
 오쿠다 히데오는 존을 무척 좋아했었나보다. 그의 공백 4년에 대한 의문에 대해 그동안 나온 한 장의 앨범을 나름대로 해석해서 그를 뒤쫓을 수 있었다는 것은 팬의 정도가 아니라 마니아에 가까울 만큼 존을 좋아했던 것이 아닐까? 실제의 인물과 그와 관련된 사건들을 일본의 오봉과 연관을 지어 굳이 판타지 형식을 취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도록 독자를 유도하고, 자신의 답답하고 갑갑한 마음의 상태를 변비로 나타낸 저자의 치밀함이 돋보였다. 그의 데뷔작이라해도 등장인물의 대화속에서 편하게 묻어나는 위트와 유머는 훗날에 발표된 [공중그네]와 [걸]이 나올 수 있게 한 충분한 공감대를 만들어준다. 눈에 보이는 듯 묘사되는 이야기는 등장인물 하나 하나를 독특한 캐릭터로 인식하게 하고, 글 속에 숨어 있는 핵심단어에서 작품을 이해하기 보다는 항상 읽고 난 후 느끼게 되는 잔잔한 감동이 저자 오쿠다 히데오의 책을 읽게 하는 매력이 아닐련지... 요즘의 독자에게 사랑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작가다.
 
이 책은 묘하게 어느 것에도 미혹되지 않는다는 불혹 즉, 40의 나이가 겹친다. 존이 사망할 즈음에 저자가 데뷔를 했는데, 모두 마흔 즈음이다. 호불호가 명확한 이십 대를 지나, 뭔가를 저지르면서 앞만 보고 달리는 삼십대를 넘고 나니 예전엔 미처 몰랐던 것도 알게 되고, 딱히 놀랄 것도 많지 않은, 무엇에도 시큰퉁한 사십대가 되었다. 호불호의 자기인식에서 '사실'을 추구하게 되면서 '아~, 사실은 그게 아니었구나'하는 깨달음을 얻는 시기가 되었나 보다. 한동안 잊었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결코 해결되지 않았던 체증 은 결말에 완벽하게 해결된다. 독자가 보아도 시원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모든 병은 마음이 키우고 마음이 치료한다. 오해와 곡해로 생긴 병은 이해라는 치료제 밖에는 없다. 언제 어떻게 치료하는가 하는 것은 오롯이 나의 몫인 셈이다. 되돌아보자. 나에게 트라우마는 무엇일까? 나역시 존과 마찬가지로 가족인데 6년 전 돌아가신 추호秋虎 , 굶주린 가을 호랑이같은 우리 아버지인 것 같다. 나도 존과 같이 해결할 수 있다면 보름쯤 변비에 걸려도 좋겠다 싶다. 그럴 수 있다면 이젠 그렇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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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 계
장아이링 지음, 김은신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소설[색色, 계戒] !
 
 


 
하루를 쏟아부어내듯 열중한 그 무엇.
그것이 뭐였었나? 싶은 나날들이 있다.
 
처지와 관계에 얽혀 초심을 잃고,
이루어가지만, 실은 잃어가는...
그것이 눈에 보여 얼른 고치고 되돌리고 싶지만,
이미 그 무엇에 발을 푸욱 담궈버린 나날들이 있다.
 
살아있는 감각은 그것을 알지만...돌이킬 수 없다.
늦.은.때.
 
그래서 나를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싫어질 때,
거울보기가 싫어질 때,
내 눈에 걸려든 또 다른 무언가에 빠져버린다.
그것 또한 아닌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다며심하게 아주 심하게 빠져버린다.
결국 조각나 파괴될 걸 알면서도 손을 뻗게 된다.
 
중독.
 
주욱 떨어진 수트에 뽀마드를 바른 양조위는
실은 갈 곳 없이 헤매는 목마르고, 허기진, 고독한 늑대가 아니었을까?
 
한 마리 늑대.
 
그의 눈만...
그가 토해내는 숨소리만 뇌리에 남는다.
 
나같아서...
우리같아서...
 
- 지난 해 연말, 영화를 보고 난 후 쓴 리뷰.
 
 
  영화[色색, 戒계] 가 국내에 상영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은 이유는 많았다.
우선 중국의 문호 루쉰魯迅 과 함께 중국현대문학의 최고봉이라 평가되는 장아이링張愛玲 의 작품을 섬세함과 깊이있는 감정묘사로 세계적 거장 반열에 오른 리안 감독이 연출한 작품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명배우 양조위와 신인 여배우 탕웨이의 출연도 화제를 낳았지만, 파격적인 세 번의 정사신은 실제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영화를 보았는가? 그렇다면 본 그대로다'는 묘한 대답으로 진위를 피했다는 후문이 있을 정도였다. 최고의 원작과 감독, 그리고 배우가 만난 이 영화는 결국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기까지 한다.

  나 또한 남들과 특히 다를 바 없이 숱한 화제를 낳았던 영화였고, 개인적으로 리 안 감독과 양조위를 좋아해 기꺼이 본 영화였지만, 스크린이 밝아지고 일어서서 머리속에 남았던 것은 양조위의 눈이었다. 그리고 복수를 위해 만난 남자에게서 느끼는 왕치아즈의 애증과 배신으로 그녀를 떠나 보내야 했던 이易 선생의 속내는 어떠했을까 하는 의문은 모든 것을 관객의 판단에 내맡기는 영화의 작위성때문에 그 진심을 알지 못한 채로 남겨둬야 했었다. '나라면 어떠했을까...'
 
 





  그 의문에 대답이라도 하듯 책으로 다가왔다. 장아이링의 책 [色색, 戒계]가 그것이다.
그녀가 책을 발표한 후에도 여러 번 수정을 할 정도로 아꼈던 [해후의 기쁨 相見觀]과 [색, 계 色, 戒], [머나먼 여정] 등과 함께 총 일곱 편의 작품들이 수록된 이 책을 쥐고 가장 먼저 펼쳤던 작품은 단연 [색, 계 色, 戒]였다. 나라를 배신하고 적국의 앞잡이가 되어 '오직 살아남기'만을 위해 발버둥치는 그에게 나타난 왕치아즈. 그는 본능적으로 그녀를 의심하고, 시험하고, 또 관찰했다. 그리고 전쟁상황에서 패색이 짙어가는 일본군들의 두려움을 한 몸으로 느끼며 지쳐있던 그는 그녀만이 자신을 알아 줄 지기知己로 알고 그녀를 유일한 휴식처로 느끼게 된다. 또한 나라의 복수를 위해 이易 선생을 만나게 된 왕치아즈는 그를 만날수록 묘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연애하거나 사랑에 빠져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사랑이 뭔지 알 수 없었던 그녀는 그와 함께 있는 동안 불안하고 초조해진다. 죽여야 한다는 의무감과 그에 대한 알 수 없는 감정은 수면제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복잡하기만 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되는 곳은 공교롭게도 인도인이 운영하는 '보석가게'였고, 그곳은 둘의 관계에 있어 마지막 장소가 된다.
 
"내가 고른 반지인데...마음에 들어요?"
 
"반지 따위엔 관심없어. 반지를 낀 당신 손이 보고 싶을 뿐이야."
 
조금 서글퍼 보이는 미소였다. 스탠드에 비친 그의 옆모습에서 그녀는 부드러움과 왠지 모를 연민의 기운을 느꼈다. 그의 시선은 아래를 향해 있었는데 그의 속눈썹은 나방의 미색 날개처럼 여윈 그의 두 뺨 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 사람,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구나.'
 
갑자기 몰려든 생각에 뭔가르 잃어버린 듯 심란해진 그녀의 심장이 쿵광거리며 미친듯이 뛰었다.
 
 




 
그녀의 변심으로 살아남은 이易 선생. 그녀를 비롯한 일당을 모두 처결할 것을 지시하고 가정부가 차를 내오자 차를 받친 접시 위에 담뱃재를 털며 생각한다.
 
'그녀는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한 것이었다.
그녀는 그의 평생 유일하게 자신을 사랑한 지기知己였다. 중년 이후에 이런 만남이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었다. (...) 그녀는 죽으며 나를 분명 원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독하지 않으면 남자가 아니었다.' 자신이 그럼 남자가 아니었으면 그녀 역시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의 침실에 들어와 그녀가 누웠던 침대위에 앉아 아직 구김이 남아 있는 그곳을 쓰다듬던 이易 선생은 10시를 알리는 괘종시계의 종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고 눈을 감는다. 그녀와 일당들의 사살을 명령한 시간이다.
 
'그는 현재 전쟁 국면이 일본에게 점점 불리해져가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자신이 향후 어떻게 될 것인가도 알고 있었다. 지기知己를 한 명 얻었으니 죽어도 여한은 없었다. 그는 그녀의 그림자가 평생 영원도록 자신의 곁에 머무르며 자신을 위로할 것임을 알았다. 그녀가 자신을 원망하고 미워한다고 해도 상관없었고, 마지막 순간 자신에 대한 그녀의 감정이 얼마만큼 강렬했었는지도 상관없었다. 그냥 감정이 있었다는 것으로 족했다. 그들은 원시시대 사냥꾼과 먹잇감의 관계였고, 매국노와 매국노를 위해 결국 앞잡이가 된 관계였으며 가장 마지막에 서로를 점유한 관계였다. 그녀는 살아서는 그의 사람이었고, 죽어서는 그의 귀신이 되었다.'
 
  이 책을 통해 그동안 영화속에서 궁금해 했던 답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의심, 믿음, 그리고 배신으로 얼룩져 수많은 이야기를 담았던 이易 선생의 눈, 사상과 선악에 상관없이 살아남기만을 바라야 했던 암울한 시기의 한 남자에게 찾아온 사랑에 대한 감정과 곧 이어진 배신과 이별에 대한 그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내가 이 책에서 얻어야 할 것은 다한 셈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작품들은 더욱 훌륭했다. 극장에서 우연히 만난 두 남녀가 또 다시 만나게 되고 서로 사랑하게 되지만, 저마다 가지고 있는 거부할 수 없는 운명때문에 괴롭게 되는 소설 [못잊어 多少恨]는 1950년대에 완성한 작품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세련된 필체와 심리적 묘사가 어울어져 있었다. 특히 동양인만의 보수적사고와 사랑사이에서 갈등하는 이들의 모습은 장소와 시간만 다를 뿐 아직도 존재하는 우리의 아이러니라고 볼 수 있어 책 속에 빠져들기에 충분했다. 이 밖의 소설들도 중국의 격동하는 근대사 속에서 여성들이 겪는 사랑과 연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작품 속 주인공 한 명 한 명에게 애정을 놓칠 수 없었다.
 
화려한 이력만큼이나 훌륭한 작품을 써내려간 장아이링의 면모가 유감없이 발휘책 책이었다. 그녀를 통해 중국 근대사 속 여성들을 살펴 볼 수 있었고, 비슷한 시기와 상황을 겪은 우리네 여성들을 짐작하게 했다. 남성보다는 여성을 위해 만들어진 책인 듯. 여성들이 읽는다면 내가 해석한 [색, 계 色, 戒]와는 또 다른 관점으로 비춰지리라 생각된다. 일곱 편이 하나처럼 잘 엮어진 멋진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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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Che, 회상 - 체 게바라의 부인이자 혁명동지 알레이다 마치 회고록
일레이다 마치 지음, 박채연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체 게바라, 그는 '꿈과 사랑을 향한 순수함과 열정을 지닌 로맨티스트'였다!
 
 
"누가 내 책에 커피 쏟았어?"
 


 
   몇 페이지를 채 넘기지 않아 가장자리에 묻은 얼룩을 보고 가족들에게 외쳤던 고함소리다. 아무도 그랬다는 대답이 없어서 적잖이 멋적고 시큰둥해져서 다시 살펴봤을 때  조금은 낡고 오래된 맛을 내기 위해 거친 종이의 질감과 함께 출판사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효과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몇 분 후였다. 손이 많이 간 듯, 정성을 많이 쏟은 듯. 이것이 위대한 혁명가 체 게바라를 가장 가까이 지켜봤던 여인, 아내인 일레이다 마치의 책, [체Che, 회상] 과 나의 첫만남이다.
 
 



 "앞으로의 세대가 어떤 유형의 인간을 바라는가에 대해선 우린 이렇게 말해야 한다. '체 게바라'를 닮아라!' 어린이들을 어떻게 교육시킬 것인가에 대해서도 우린 서슴없이 이렇게 말해야 한다. '체 게바라'의 정신을 가르쳐야 한다!"  고 말한 쿠바 지도자이자, 게바라의 혁명동지였던  피델 카스트로는 말했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기위해 노력했던 앞선 세대들이 체 게바라 라는 인물에 대하여 존경을 넘어 배움의 대상으로 닮아주기를 바랬던 것과는 달리 청년들에게는 제임스 딘과 같은 '반항아' 혹은 '이상을 꿈꾸는 혁명가'의 아이콘으로, 여성들에게는 '헐리우드의 꽃미남'에 버금가는 섹시가이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아 수많은 상품과 제품 속의 그림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를 우려한 저자는 새로운 세대가 체를 단지 상징적 존재로서가 아니라, 어릴 때부터 꾸어온 꿈을 창조적으로 실현해 낸, 살아있는 인간으로서 가까이 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무거운 입을 열어 책을 쓰게 된 것이라고 책을 들어가며 말했다. 
 
 
 


 
  
  
  저자의 성장과 자연스럽게 혁명에 가담하게 된 사회적 배경, 혁명동지로서 체를 만나게 되고, 전투중에 그를 보좌하면서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 것, 그리고 결혼과 네 아이를 낳게 되는 이야기등 쿠바 혁명의 발전사에 나타나는 체 게바라가 아닌 신문과 언론의 이야기 밖에 꼭꼭 숨겨진 그의 사생활의 이야기가 많은 사진과 편지 그리고 엽서, 쪽지등의 자료들과 함께 40년만에 최초로 밝혀진다. 이 책은 아내가 보는 남편이자 혁명지도자의 일대기라기 보다는 존경하고, 사랑했던 아내의 시점에서 바라본 체에 대한 사실과 기억의 면면이 여과없이 밝혀진 책이라고 봐야겠다.
 




1965년 콩고에서 체가 아내를 그리는 마음에서 보낸 편지에서 '금발의 통통한 여선생을 보는 순간, 그는 철저하게 훈련받은 혁명가와 느낌과 욕구가 있는 한 남자 사이에서 갈등을 했다'고 썼는가 하면, 그의 패션감감으로만 생각하게 했던 목둘레의 검정색 스카프는 전투중 팔에 금이 가 깁스를 했을 때 그녀가 체에게 팔을 목에 걸 수 있게 해 준 것인데, '얇은 스카프(...) 내가 팔을 다쳤을 때, 그녀가 나에게 주었는데, 팔을 매는 '사랑스러운 붕대'가 되었다'고 말했고, 부상에서 회복한 이후에도 계속 지니고 있었다고 말하는데, 이렇듯 그녀의 입이 아니면 절대로 세상은 알 수 없는 이야기가 쏟아진다. 무엇보다 체 게바라의 바로 옆에서 그와 함께 가장 많은 시간을 호흡하고 생활하며 보냈던 그녀가 바라보는 체의 모습은 지극히 평범하고 다정한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버지임을 보여준다. 그 모습을 보면서 체와 나의 거리가 더 좁혀짐을 느꼈다.  
 


  진보적인 아르헨티나의 의대졸업생인 체가 여행중 미국(제국주의)의 만행을 목격하고, 그의 이상을 위해 쿠바로 향한다. 친미성향의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붕괴시킨다. 그는 쿠바혁명 승리후 쿠바공산당과 쿠바혁명정부의 중요직책에 있으면서 쿠바혁명에서 얻은 것들을 지키며 혁명을 더욱 전진시키기 위하여 정력적인 노력을 기울였는데, 그랬던 그인 만큼 점령지의 주택에 대해서도 440불의 월급에서 집세를 내고, 세계 제 3국을 순방할 때도 비서직에 있던 '아내'가 혹시 특혜를 받는다는 오해를 부를까 염려해 혼자서 수행한다. '이정도는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 아닌가?'하는 범인凡人들의 예상을 무참히 부수는 사례들이다. 그는 개인보다는 모두를 먼저 생각한 리더였다. 한편 혁명과 전투참여로 그녀와 떨어져 있는 동안 수시로 그녀와 아이들에게 보낸 수많은 연서書와 메시지들은 한 남자로서의 체가 아내와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잘 표현한다. '대통령이든, 육군대장인든, 깡패든, 살인자든 집으로 돌아오면 그들은 모두 남편이 되고, 아버지가 된다'는 언젠가 읽은 글을 생각나게 했다.
 

 

 
  독서광이기도 한 그가 전투중에도 항상 책을 옆에 두어 책읽기를 멈추지 않았고, 돈키호테를 여섯 번을 읽고 [자본론]은 인류지식의 금자탑이라고 칭찬하며, 함께 참여하고 싶은 아내를 위해 독서지도까지 하는가 하면 철학이라는 학문에 접근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그의 지인에게 고백했다고 한다. 그리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많은 좋은 책이 나와야 하고 이것들이 국민들에게 읽혀져야 한다고 피력한다. 그가 남긴 기록들을 함께 살펴보면서 '넘치는 꿈과 사랑을 지닌 지성인의 진면목'을 엿보게 되었다.
 
....
 
만일 내가 시멘트 바닥 어두운 곳으로 배정되어 가면
기억의 서글픈 보관소에 그것을 보관했다
눈물과 꿈의 밤마다 그것을 사용하구려...
 
안녕, 하나뿐인 내 사랑.
배고픈 이리 떼 앞에서
내가 없는 초원의 추위에서도 떨지 마요.
내 심장 옆에 당신을 데려가니까요.
그리고 우리 둘이 길이 끝날 때까지 함께 갈 거에요...
 
죽음을 예감한 체가 아내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 병마와 싸우고 있는 시한부 생명의 환자도 아닌 그가 '꿈과 이상'을 위해 죽음을 각오하는 한켠에 남겨지는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연민이 느껴진다. 발각을 우려해 60대 노인으로 분장을 하고도 가족을 만났던(아이들에게도 아버지임을 알리지 못하고) 그인 만큼 그가 없는 가족의 상황을 '이리 떼 앞에 놓인 초원의 추위'로 표현하는 가장으로서의 고뇌와 번민이 느껴졌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이, 과연 몇 있을까? 이런 그는 이데올로기를 뛰어넘어 변혁과 개혁을 꿈꾸는 모든 이에게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순수함과 열정을 지닌 로맨티스트였음을 알게 되었다.
 




 
 
지난 25일 폐막한 제61회 칸국제영화제에서는 미국의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만든 게바라의 전기영화 ‘체(Che)’가 큰 관심을 모았는데, 이 책이 그 영화의 시나리오의 바탕이 되었고, 체 게바라를 연기한 푸에르토리코 배우 베니치오 델 토로는 남우주연상을 받았다고 한다. 게다가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의 탄생 80주년이 다가오는 올 6월14일이다. 이젠 그의 평전과 자서전을 추적하고자 한다. 체 게바라를 알고 싶은 이들이 절대로 놓쳐서는 안되는 멋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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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 - 역사를 바꾼 중국 황제 10인의 통치 리더십
이세민 지음, 진성위엔 엮음, 김윤진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이 시대 국민들에게 필요한 '위대한 군주'는 누구인가를 이야기한 책 !
 
  만약 전지전능한 왕이 있다면 신하가 왜 필요할까? 같은 인간이고, 세상을 홀로 관장하기엔 체력과 능력이 부족하여 주위에 신하를 두어 그들의 입을 빌어 세상을 듣고, 그들을 통해 세상에 알린다. 당나라의 태평성대를 열었던 태종 이세민이 당을 열면서 강대한 진과 수가 하루아침에 멸망한 것을 거울 삼아 천하를 오래도록 편안하게 이끌어가는 방략을 담고저 천하를 다스린 10인(무측천, 양견, 이세민, 조광윤, 쿠빌라이, 주원장, 한 무제, 건륭제, 유방, 강희제)의 통치술을 엮어 책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이 책, [왕도]이고 이것은 정관의 치貞觀之治 라 명명하는 대당大唐 태평성대의 기초를 닦는데 일조했다.
 
 







  나라를 다스리는데 선대의 입에 귀를 기울인 것만으로도 나라를 이끌려 하는 의욕과 배움에 겸허한 그의 품성을 알 수 있는데, 이를 책으로 남김은 후세에도 그것을 따라 본받게 하기 위함이니 이 책의 완성이 태평성대를 예감하기에 걸맞지 않나 싶다. 이 책 [왕도]는 천하를 휘두른 중국 황제 10인의 통치술을 통해 리더십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군자는 군자를 부르듯 그를 보좌하는 뛰어난 신하들의 조언들이 가득 담겼다.
혼란에서 치리로, 부국안민과 태평성대를 통해 나라를 다스리는 도와 리더십을 갖추기 위한 덕목을
 
왕도는 군주의 실체다-왕도군체(王道君體),
현자를 찾아 등용하다-구현임능(求賢任能),
간언을 채택해 나라를 다스리다-납간치국(納諫治國),
관리를 심의하다-심핵관리(審核官吏),
상벌의 기준을 정하다-상벌유도(賞罰有渡),
간신을 없애 평안하게 하다-거참안방(去讒安邦),
농업에 힘써 백성을 편안하게 하다-무농안민(務農安民),
군을 정비하여 위험에 대비하다-열무방위(閱武防危),
검소함을 중히 여겨 부국을 이룬다-숭검부국(崇儉富國),
절제하고 경계해야 민심을 얻는다-계영득심(誡盈得心) 등
 
10가지로 두고 그 덕목에 필요한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였다. 군주로서 명심해야 할 사항들을 상세하게 적어둔 것이라, 현대에서 적용한다면 정치를 하는 위정자들을 비롯해, 조직을 이끌어가는 리더, 특히 비즈니스 사회에서의 군주라 할 수 있는 기업의 CEO들에게 있어서는 '사장의 제왕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필독을 권해야 할 책이다.
 
  이 책의 특징이자 단점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은 여느 책과는 다르게 '코멘트'가 없다는 것인데, 이는 우선 저자이자 나라의 행정수장인 군주 이세민이 자신의 성정聖政을 위해 마련한 일종의 '학습서'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후세에 자신의 정치를 알리기 위함이 아니라 당면한 과제를 보다 더 잘 해결하기 위한 '야전교범'이기 때문에 '미화나 허구'가 배제된 '객관적 사실에 입각한 사례'들이라는 점에서 여타 왕조들의 리더십 책과는 차별화를 둔다고 봐야겠다. 즉 '이 책은 정관의 치貞觀之治를 가능케 한 당태종 이세민 만의 교본'이기 때문에 필요한 자는 이것을 본으로 삼아 알아서 자신의 그것에 적용하라는 뜻이라 보겠다. 시대가 다르고 상황이 다른 현대인들이 자기에 맞게 체득화시키기에는 최적의 책이 아니겠는가?
 
  성군이 되고자 노력한 이세민의 책인 만큼 실정失政을 한 왕들의 치지들은 보이질 않는다. 선견지명이 뛰어난 놀라운 황제들의 판단력에 의한 정치도 보이질 않는다. 역대의 황제들은 '백성'을 불쌍히 여기고, 두려워 하여 그들을 대신한 신하들에게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독단적인 판단보다는 신하들의 귀중한 충언을 구한다. 이를 위해 더 나은 신하를 얻기 위해 삼고초려에 버금가는 노력을 하고, 그들에게 걸맞는 상벌을 주어 그들의 덕을 높이 치하했다.
 
 "좋은 군주가 악한 신하를 기용하면 조정이 제대로 다스려지지 않고, 충성스럽고 정직한 신하가 그릇된 군주를 받들어도 마찬가지가 되오. 임금과 신하가 모두 물과 물고기처럼 되어야만 천하를 평안하게 다스릴 수 있을 것이오. 비록 짐의 지혜가 부족하나, 다행히 그대들을 곁에 두어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게 되었으니, 조금도 숨기지 말고 짐에서 바른 소리를 해주어 함께 태평천국을 만들어 봅시다." 라고 이세민이 정관 6년에 신료들에게 말하자 "먹줄을 따라 자른 나무는 곧고, 군주가 신하들의 간언을 들으려 하면 현명한 군주가 된다고 합니다. 교경敎經 에서는 군주에게 7가지 바른 말 잘하는 신하가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이들은 직언이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 고하는 그런 신하라고 합니다. 폐하께서는 지혜로우셔서 어떤 의견도 기탄없이 받아들인다고 하시니, 신들은 앞으로 온 힘을 다 하겠습니다." 라고 간언을 잘하는 왕규가 말했다고 한다. 서로의 부족함을 알고, 부국안민을 향해 서로 돕자는 군주와 신하의 다짐이 너무나 아름다운 대목이다.
 
  이렇듯 위대한 군주들은 정치를 함에 있어서 자신의 의지와 신료들의 찬반을 놓고 서로 머리를 맞대고 조율했다. 그것은 군주의 위대함을 알리기도 아니요, 신하들의 자잘못을 가리기 위한 것도 아니다. 오직 백성들을 아끼고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발로된 것이다. 그들의 세치 혀로 발표된 정치는 군사적으로는 수십 수백만의 군사를 죽음의 수렁으로 내몰 수 있음을 아는 것이고, 경제적으로는 온나라가 궁핍해져 먹기 위해 서로를 해치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함이다. 목숨을 걸고 간언하는 신하들이나, 나라에 뜻이 깊은 백성들의 상소가 끊임없이 올라옴은 바로 그 까닭이다. 군주에게 바른 눈으로 백성과 나라를 보살피기를 바람에서 그들의 뜻을 봐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 무엇이 하늘인지 알아야만 왕업을 달성할 수 있고, 하늘이 무엇인지 모르면 왕업을 달성할 수 없다고 합니다. 왕은 백성을 하늘로 알고, 백성은 식량을 하늘로 압니다."
 
  퇴각하려는 유방에게 여식기가 말한 간언중 일부이다.
백성이 배불러야 성격이 온화해지고, 일할 의욕을 느끼며, 나라에 감사하게 된다. 그렇지 못하면 위정자를 원망하고, 나라에 호소하며 자신들을 봐주기를 항변한다. 그들의 간절한 목소리와 행동이 즉흥적인 충동에 의한 돌발행위로 보거나, 국가를 부정하기 위한 행동으로 본다면 잘못이다. 또 그렇게 평가하고 군주에게 잘못 알리는 신하들은 더 큰 잘못이다. 수단과 방법이 없는 백성들의 항변은 군집되고 무질서할 수 밖에 없다. 이를 유념해서 보고 제대로 판단해야 현명한 군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일말이라도 애정이 있기에 백성들은 군주에게 호소한다. 그 한계를 지나치면 백성들은 무관심해 질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신하의 간언을 무시하거나, 칼로써 응징하려한 군주에게는 현명한 신하와 백성은 타국을 떠나 자신을 의지했다. 독재정권에 맞서 제 일선에서 항변하던 뜻있는 국민들은 감옥으로 수감되거나, 나라에 실망해서 타국으로 떠났다. 백성이 없는 왕은 없다. 백성을 하늘로 아는 왕은 위대한 왕으로 칭송되었다.
 
 1,400년을 거슬러 둘러 본 역사속의 이 책은 군주에게 묻는다.
" 너의 하늘은 무엇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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